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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확대④] 급히 도입하자는 정치권 주장이 위험한 이유

주52시간제는 전면 시행도 안돼..최소한의 보완제도도 없는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8-11-29 16:24:22
수정 2018-11-29 16:2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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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총파업

민주노총 총파업ⓒ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탄력근로제 관련법 개정을 연내에 추진하겠다는 정치권의 계획이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며 뒤로 미뤄졌다. 정부가 급하게 법 개정을 추진하기보다, ‘사회적 대화’를 거쳐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표하면서다.

하지만 탄력근로 확대를 둘러싼 공방은 이제 시작이다. 지난 22일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에서 경영계와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탄력근로제는 일이 몰리는 성수기에 일을 좀 더 하고, 일이 적은 비수기엔 노동시간을 줄여서 업무시간을 조절하는 제도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며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확대·도입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 왜 노동계는 총파업 주요 의제로 이를 꼽으며, 탄력근로제 확대 법 연내 추진을 막아섰던 것일까? 

정치권의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추진에 대해, 노동계가 지적한 문제들을 정리했다. 또한 향후 확대 시행된다고 했을 때, 확대 시행 이전에 반드시 보완해야 할 지점에 대해서도 정리해 봤다.

■ ‘탄력적 근로시간제’ 이해를 위해 알아야 할 근로기준법 제51조(탄력적 근로시간제) 

① 사용자는 취업규칙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2주 이내의 일정한 단위기간을 평균하여 1주 간의 노동시간이 주40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탄력근로를 시킬 수 있음. 다만, 많이 일하는 주의 노동시간은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사용자는 ‘노동자대표와의 서면합의’에 따라 3개월 이내의 탄력근로를 실시할 수 있음. 다만, 많이 일하는 주의 노동시간은 52시간을, 특정한 날의 노동시간은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노동자 건강 악화, 임금 삭감은 어쩌고?” 

탄력근로제는 내용적 측면에서 사용자에겐 유리하지만, 노동자에겐 불리한 제도다.

탄력근로를 시행하게 되면, 사용자는 일의 양이 많고 적음에 따라 노동자의 업무시간을 조절하면 되므로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는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게 되고, 성수기 기간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경영계의 말대로 2주 또는 3개월 이내 단위로 허용하고 있던 탄력근로를, 6개월 또는 1년으로 늘렸을 경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기간이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는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노동계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받던 연장근로수당을 받을 수 없게 돼, 실질임금이 깎이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경영계의 요구대로 탄력근로 기간이 확대되면,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최대 7%가량 깎일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경영계도 정치권도 이같은 노동자의 피해를 상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사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건설의 날’인 2018년 6월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 앞에서 ‘건설적폐 청산 및 건설산업 구조개혁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사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건설의 날’인 2018년 6월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 앞에서 ‘건설적폐 청산 및 건설산업 구조개혁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손피켓을 들고 있다.ⓒ임화영 기자

“아직 주52시간제조차 시작 안 했다”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한 논의는 사실, 올해 초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진행되며 시작됐다. 

올해 2월 개정된 근로기준법 부칙 3조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2년 12월31일까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노동시간 제약이 없던 특례 업종을 일부 축소하자는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경영계의 요구인 탄력근로제 확대를 부칙에 넣은 것이다. 

부칙에 이같이 기한을 명시한 이유는, 주52시간 제도가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상황을 지켜본 뒤 확대하는 것 등을 검토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올해 7월부터 정식 시행키로 했던 3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주52시간 상한제는, 계도 기간이 생기며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 300인 미만 50인 이상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0인 미만 5인 이상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법을 적용키로 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법이 현장에서 완전히 시행되려면 수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영계와 정치권이 애초 법 취지를 무시하고 탄력근로 기간 확대를 연내에 추진하겠다고 밀어붙인 것이다. 노동계는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요국가들 탄력근로 기간이 한국보다 길다고?”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8개 회원국 중 2번째로 긴 장시간 노동을 하는 국가다. 그런데 이런 노동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주요 선진국처럼 탄력근로 기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러나 경영계나 보수언론·경제매체들이 “한국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너무 짧다”며 비교하는 독일, 프랑스 등의 사례는 비교 전제조건조차 성립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탄력근로 기간을 비교하려면, 전제로 노동환경이 비슷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 국가들과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지적이다. 

이들 국가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짧은 1300~1400시간대다. 반면,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100시간 가까이 된다. 전문가들은 연 평균 노동시간이 700시간 가까이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이들 국가들에 비해 탄력근로 기간이 너무 짧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주52시간 상한제가 아직 시행도 안 된 시점에서, 탄력근로제 기간확대 법 개정은 너무 이르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2017년 4월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에서  CJ E&M의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고 이한빛 PD 의 모친 김혜영 씨가 발언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7년 4월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에서 CJ E&M의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고 이한빛 PD 의 모친 김혜영 씨가 발언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급하게 추진될 경우, 악용될 우려가 있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기간확대’가 제대로 된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고 급하게 추진될 경우, 기업들이 이를 악용해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상 3개월 이내 단위의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더라도 한 주 노동시간은 52시간을 넘어선 안 되고, 하루 노동시간 또한 12시간을 초과해선 안 된다. 그런데 현행법은 탄력근로를 시행하며 동시에 ‘한 주 12시간 상한의 연장노동’을 더 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사용자들에게 이같은 원칙을 어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1일 단위 제한은 없다.

이 말인 즉은, 탄력근로제에 따라 특정일에 12시간 노동을 시킨 뒤, 12시간 연장노동을 또 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최대 하루 24시간 노동도 가능하다. 게다가 아직 주52시간 상한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인 점을 고려하면, ‘1주 연장노동 12시간’에 ‘주말 16시간’까지 추가해 한 주 최대 80시간 노동까지 가능하게 된다.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규정하는 뇌심혈관계질환 유발 기준치(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를 훨씬 웃도는 초장시간노동을 시켜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드라마·영화 제작 등 하루 20시간 노동이 이루어지는 현장이 흔하다. 사용자들이 탄력근로제를 핑계로 초장시간 노동을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노동계는 주요 국가들이 중요한 원칙으로 두고 있는 ‘1일 최소휴식시간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24시간당 최저 11시간의 계속된 휴식을 매일 부여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어, 사용자의 무분별한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이미 악용되는 사례도…” 

현장에서는 이미 탄력근로제가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건설업계 쪽이다. 올해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자, 건설업계는 2주 단위 탄력근로제를 적극 도입·시행하기 시작했다. 

현장노동자들은 ‘탄력근로제가 도입됐으면 효율적인 노동시간 조정으로 노동시간이 줄어야하는데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2주 단위 탄력근로제를 시행했으면, 첫째 주는 평소보다 더 오래 일하고 둘째 주는 그만큼 쉬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쉬어야 할 날에도 회사 눈치를 보며 출근해 일을 한다고 한다. 애초 취지와 다르게 탄력근로제가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확대가 급하게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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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평화의 도시, 통일의 도시로 만듭시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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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8/11/30 12:09
  • 수정일
    2018/11/30 12:0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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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북정상회담’ 서울시민 환영위원회 발족… 146개 단체 참가

“남북이 함께 쓰는 대서사시가 시작되었습니다. 2018년 한 해, 분단이후 ‘최초’라는 일들이 입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과 북 두 정상이 평양에서 약속한 것처럼 올 겨울, 서울에서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서울지역 146개 단체가 한 목소리로 서울 정상회담 환영 준비에 나섰다. ‘서울 남북정상회담 환영! 서울시민 환영위원회(서울환영위)’가 29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족을 선포했다. 서울환영위에 가입한 각계 단체 대표와 회원들이 크고 작은 단일기를 들고 회견장을 메웠다.

김삼렬 서울환영위 공동상임위원장(독립유공자유족회 대표)이 146개 단체를 대표해 마이크를 잡고 ‘서울 정상회담’에 기대를 표했다. 김 위원장은 “연일 감격스런 날이다. 전쟁의 위협 속에 단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우리민족은 5천년을 함께 살아온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서울 남북정상회담은 우리민족에게서 전쟁을 걷어내고, 평화의 꽃을 심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온 세계에 민족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평양의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환호했던 모습처럼, 그 이상의 열기로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물결이 서울에 울려퍼져야 한다”면서 “서울시민 환영위원회가 큰 일을 해낼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참가 단체들을 대표해 5인이 ‘서울환영위 결성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서울 정상회담’ 환영 의지를 표현했다. 조헌정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서울본부 상임대표, 최은철 민주노총 서울본부장, 이요상 동학실천시민행동 대표, 이수경 성동구통일한마당 추진위원회 상임대표, 서울대생 방슬기찬 군이 나섰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서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전 세계 만방에 ‘평화와 통일의 도시 서울’을 과시할 것이며, 천만 서울시민들이 분단 70년 역사를 한순간에 뒤바뀌려는 서울 정상회담을 무척 설레어하며 가슴 뜨겁게 기다리고 있다”고 전하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촛불시민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시대의 주인공으로 다시 한번 평화의 촛불, 통일을 촛불을 치켜들자”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천만 서울시민에게 “서울 동네 곳곳, 골목골목마다 단일기가 물결치도록 하고, 4차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는 날엔 광화문광장으로 모이자.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날엔 거리마다 환영의 인파로 차득차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서울환영위는 회견에 앞서 조직 결성을 위한 대표자회의를 열어 공동상임위원장과 공동환영위원장을 선임하고 주요 활동계획을 논의했다.

서울환영위는 남북정상회담 발표 전까지 ▲각 구별, 부문별 환영위 준비 및 구성 ▲10만 서울시민 환영단 모집사업 ▲서울지역 곳곳 단일기 물결 만들기 ▲대대적인 환영 엽서쓰기 운동 및 여론 홍보사업을 펼친다.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는 날엔 광화문광장 1000인 상징의식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엔 ‘거리환영’ 및 ‘천만시민 단일기 달기’, 그리고 전 국민·천만 서울시민 공동실천을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의 시민사회·노동조합·정당·종교·풀뿌리단체 등은 서울환영위 결성에 앞서 ‘환영위원회 결성을 위한 선언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시민환영단 홈페이지(환영엽서 쓰기&환영단 가입) : http://welcomeseoul.org/

 

서울정상회담 환영! 서울시민 환영위원회 결성선언문

서울시민 여러분!
70년 분단과 적대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역사적 장면이 곧 서울에서 펼쳐집니다.

3차례의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두 정상의 과감한 의지와 결단은 판문점에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만들었으며 9월 평양에서는 사실상의 종전을 합의하고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5.1 경기장 연설과 평양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은 남측 지도자와 평양시민의 교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제 서울이 답할 차례입니다. 서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서울시민이 만나는 그 현장은 70년 분단과 적대관계를 완전히 끝내는 역사적 순간이 될 것입니다.

서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전세계 만방에 평화와 통일의 도시 서울임을 과시합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3차례 정상회담에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약속했고 이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천만 서울시민들 역시 분단 70년의 역사가 한순간에 뒤바뀌려는 서울정상회담을 무척 설레여하고 가슴 뜨겁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울의 환영열기가 전국의 환영열기를 선도할 것입니다.
천만 서울시민들의 뜨거운 환영열기로 서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평화도시 서울로’, ‘통일도시 서울로’, 전세계 만방에 과시합시다.

서울시민 여러분!
촛불의 힘으로, 또 한번 역사의 주인공이 됩시다.

우리들은 촛불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촛불 시민입니다.
새롭게 열리고 있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시대의 주인공으로, 다시 한번 평화의 촛불, 통일의 촛불을 높이 치켜듭시다.
평화를 함께 지키고 만드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어야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서울, 가장 평화로운 서울이 될 수 있습니다.
촛불시민의 저력으로 이제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가는데 힘을 모아나갑시다.
역사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가 역사의 주인공이 됩시다.

오늘 서울지역의 시민사회,노동조합,정당,종교,풀뿌리 등 150여개의 단체들은 서울시민 환영위원회 결성을 선포하며 아래와 같이 천만 서울시민들에게 제안드립니다.

-. 평화와 통일의 마음을 모아 서울시민환영단에 함께 해주십시오.
-. 서울 동네 곳곳, 골목 골목마다 단일기가 물결치도록 함께 해주십시오.
-. 4차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는 날 광화문 광장으로 다시 모입시다.
-.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날에는 거리거리마다 환영의 인파로 가득차게 만듭시다.

서울시민 환영위원회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이 거대한 물줄기가 서울 동네 곳곳에, 전국 곳곳에 퍼지도록 천만 서울시민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2018년 11월29일
서울남북정상회담 환영! 서울시민 환영위원회

(사)광개토대제기념사업회/(사)대한요가연맹/(사)민족화합운동연합/(사)우리누리평화운동/(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사)한국민족춤협회/(사)한국요가문화협회/5.18광주민주화운동부상회서울지부/6.15광진본부/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서울본부/6.15서울서대문본부(준)/615구로본부/615시민합창단/AOK(action one korea)/GMO 없는먹거리국민운동본부/Sudden Enlightenment Theatre/강동구청 공무원노조/강동노동인권센터/강동시민연대/강동연대회의/강동희망나눔센터/강명구평화마라토너원불교후원회/경성대학교 재경민주동문회/경희총민주동문회/공무원노조서대문구지부/광진구통일한마당추진위원회/광진시민사회단체연석회의/국가보안법피해자모임/금강산투자기업협회/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회/기독교대한감리회 수유교회/까페봄봄/남북경총 통일농사협동조합/너머서/노원겨레하나/노원유니온/노원일행/다이음협동조합/대전국노점상연합 북부지역연합회/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시민회의/도깨비방망이지역아동센터/동북아평화통일협의회/동자동사랑방/동학실천시민행동/들꽃향린교회/로레알코리아 노동조합/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민들레교회/민족자주평화통일서울회의/민주노점상전국연합 동대문중랑지역연합회/민주노점상전국연합 북부지역연합회/민주노점상전국연합 서부지역연합회/민주노점상전국연합 송파지역연합회/민주노점상전국연합 중부지역연합회/민주노총서울본부/민중당 강동구위원회/민중당 서울시당/민중당 용산구 미군꺼져 분회/민중당 노원구위원회/민중당영등포구위원회/민중민주당 서울시당/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노동조합/범민련서울연합/법치민주화를 위한 무궁화클럽/부루벨코리아노동조합/분단과 통일시/비정규직 없는 송파행동/샤넬노동조합/서대문시민환영단/서대문지역노조/서울겨레하나/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서울노동광장/서울노동자민중당/서울대학생겨레하나/서울민권연대/서울민주동문회협의회/서울빈민민중당/서울여성연대(준)/서울진보연대/서울청년네트워크/서울청년민중당/서울통일의길/성동겨레하나/성동구통일한마당추진위원회/성동희망나눔/송파시민연대/송파연대회의/송파유니온/아나키스트김약산과의열단/안양/언론소비자주권행동/여순항쟁범시민위/영등포겨레하나/영등포시민연대피플(준)/영등포여성회/영등포통일넷(준)/예수살기/용산효창동작은도서관고래이야기/우리다함께시민연대/우리동네노동권찾기/우포늪생태관광네트워크/의주로교회/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자락길품/자주평화통일실천연대/장준하부활시민연대/적폐청산의열행동본부/전교조서울지부초등동부지회/전교조 중등 강송지회/전교조 초등서부지회/전국공무원노조 용산지부/전국노점상총연합 북서부지역연합회/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전국회의 서울지부/정의당 강동구위원회/정의당 서울시당/정의당 영등포구위원회/정의연대/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즐거운청년커뮤니티ⓔ끌림/진보대학생넷/착한도농불이운동본부/천도교한울연대/청년다락/초록교육연대/초콜릿책방/촛불문화연대/촛불혁명출판시민위원회/통일로가다/통일염원시민회의/통일의밀알/평화연방시민회의/평화의길/평화이음/평화재향군인회/평화통일 시민행동/학비노조 서울지부/한겨레대연합/한겨레신문발전연대/한겨레온/한문화사/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행복중심용산소비자생활협동조합 (2018년 11월 28일까지, 총 146개 모임)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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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 아버지의 승리

반올림 6회 리영희상 수상… 황상기 대표 “삼성을 위해 기사 쓰는 언론 많았지만…”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8년 11월 30일 금요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대표 황상기)이 리영희상을 수상했다. 리영희재단은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언론인 리영희의 정신을 기려 해마다 리영희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인물이나 단체에 리영희상을 시상해왔다. 지난해에는 이용마 MBC기자가 수상했다. 리영희상 수상자로 언론인이 아닌 시민단체의 수상은 상징적이다. 그만큼 삼성의 산업재해 이슈에서 언론이 무기력했다는 뜻이다. 

신인령 리영희상 심사위원장은 “반올림’이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거짓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자 한 리영희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단체”라며 수상이유를 밝혔다. 반올림은 지금껏 100여명의 첨단 제조업의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을 도와 그 가운데 34명이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지난해엔 산업재해판단에 있어 피해 노동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내 피해자보호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 11월2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6회 리영희상 시상식에서 황상기 반올림 대표(오른쪽)가 수상포즈를 취하고 있다. ⓒ반올림
▲ 11월2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6회 리영희상 시상식에서 황상기 반올림 대표(오른쪽)가 수상포즈를 취하고 있다. ⓒ반올림
 
2007년부터 시작된 반올림의 싸움은 삼성반도체 노동자였던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시작점이었다. 거대권력 삼성자본과 맞서 싸운 황상기씨의 실화는 강한 울림을 주며 영화제작으로 이어졌다. 산업재해 피해자가족은 삼성반도체가 제시하는 보상금액과 패배에 대한 두려움으로 갈등했다. 메아리 없는 빌딩숲에서 개인의 외침은 나약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그들을 붙잡은 건 한 노동자의 아버지가 보여준 강한 의지와 진실에 대한 확신이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주연배우 박철민씨는 극중 연기했던 황상기씨에 대해 “소주 한 잔 하면서 세 네 시간 이야기한 뒤 안심할 수 있었다. 너무나 꿋꿋하게 세상을 이겨낸 단단한 분이었다. 그럼에도 여느 동네 아저씨와 같았다. 넓은 인품을 느꼈다”고 말했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려했던 ‘유미 아버지’는 올해 삼성의 피해보상과 공식 사과를 받아내며 비로소 진실을 쟁취했으며, 승리했다. 다음은 황상기 반올림 대표의 수상소감 전문.  

 

▲ 2014년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 2014년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안녕하세요. ‘반올림’ 대표 황상기입니다. 이렇게 귀한 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유미가 백혈병에 걸려서 치료를 받는 중에 제가 물었습니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냐고요.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담갔다 빼는 작업을 했다고 했습니다. 유미랑 짝으로 같이 일했던 동료도 똑같은 백혈병으로 죽었습니다. 백혈병이 흔한 병도 아니고, 공장 화학약품 때문에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치료비가 급했기 때문에, 산업재해를 인정받아서 그 돈으로 치료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찾아온 삼성 직원에게 유미가 화학약품을 쓰다가 백혈병에 걸렸으니,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이 반도체 공장에서 화학약품을 쓰지도 않고 아예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미가 했던 일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그 직원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삼성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더 있었지만, 삼성은 알려주지 않고 없다고만 했습니다. 그 뒤에 피해자들이 계속 나올 때도 삼성은 늘 그 사람들이 전부라고만 했습니다.  

치료비를 주겠다며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유미의 사인을 받아가고선, 그 약속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백혈병이 재발해서 유미가 병원에 있을 때 찾아와서는 백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을 주면서, 이거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치료비가 급해서 그 돈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유미가 병에 걸려서 힘들게 고생하고 있을 때 제가 유미한테 약속한 게 있습니다. 유미의 병은 유미 스스로 걸린 게 아니고, 반도체 공장 화학약품 때문에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병에 걸린 원인을 꼭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2014년 소송에서 유미의 병이 직업병이라는 판결을 받아서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번 삼성과의 합의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유미 말고도 산재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졌고, 법도 좋게 바뀌었고, 삼성에서도 폭 넓게 보상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보상이 모두 마무리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유미한테 큰 소리로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너무 자랑한다고 얘기할지는 모르겠는데,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아빠가 이 문제 해결했다!’ 하고요. 

 

▲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딸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반올림
▲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딸과의 약속을 지켜냈다. ⓒ반올림
 
한 편으로는, 이런 사고가 처음부터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너무 늦게 해결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가정이 해체되기도 해서 착잡한 마음도 듭니다. 지금도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합의된 게 다행이지만요. 삼성이 사회공헌 약속을 하고서는 지키지 않은 적이 많기 때문에, 약속을 지킬 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고 다짐도 합니다.

 

저는 배운 게 별로 없는 촌사람입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의사선생님들, 변호사님, 노무사님, 교수님들 그리고 일마다 도와주신 분들, 천 일 넘게 농성장 같이 지켜주신 분들.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문제 해결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그저 오랜 세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왔었고, 다들 도와주신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이 ‘진실’을 소중히 생각했던 언론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삼성 직업병 문제에서도 ‘진실’을 소중히 여기는 언론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삼성을 위해서 기사를 쓰는 언론이 많았지만,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들 덕분에 삼성 직업병 문제를 많이 알릴 수 있었습니다. 유미가 병에 걸린 원인을 밝히려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인데, 이렇게 상을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5742#csidx2cd826340362c209ef861b1c6042a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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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 차이

[1면보기]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 차이
 
 
 
임병도 | 2018-11-30 07:57: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1월 19일 전국 법관 대표회의는 ‘재판독립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결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일명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 농단 의혹과 관련해 출석한 법관 대표 105명 중 53명의 동의를 얻어 ‘탄핵 논의 촉구안’도 통과됐습니다.

헌정 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의 가능성이 생긴 겁니다.

11월 20일 주요 일간지 5곳은 모두 1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습니다. 먼저 제목만 비교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선일보 동료 판사 탄핵 촉구한 판사들
동아일보 ‘사법농단 판사’ 탄핵 요구한 판사들
중앙일보 법관대표 105명, 초유의 현직 판사 탄핵 요구
한겨레 법관대표, “재판개입, 탄핵소추할 중대 헌법위반” 최초 결의
경향신문 사법농단 법관 ‘탄핵의 문’ 법관들이 열었다

조선일보는 ‘동료 판사 탄핵’을, 중앙일보는 ‘현직 판사 탄핵’을 강조했습니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은 ‘사법농단’을 제목에 넣었고 한겨레는 ‘재판 개입은 탄핵 소추할 중대 헌법 위반’이라는 결의 내용을 짚었습니다.

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기사 일부에 ‘사법 농단’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라고 표현한 점이 눈에 띕니다.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조선일보는 법관대표회의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내용을 기사에 담았습니다.

‘어느 법관이 탄핵 대상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탄핵 소추를 촉구하면서 대상을 정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적으며 “무책임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누가 지적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 법관대표회의가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들이 주도하고 있다’면서 대표성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한 원로 헌법학자의 “사법부 일을 국회에 해결해달라고 한 꼴이다. 사법부가 스스로 독립성을 자해하는 일이 벌어졌다”라는 말을 붙이며 기사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중앙일보는 ‘법원 내부 반응은 엇갈린다’라는 말을 적으며 “일부 판사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우려도 제기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누구의 우려인지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법원 내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고 적으며 미래를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보수 신문으로 분류되는 조.중.동은 모두 탄핵 과정의 어려움에 대해서 지적했습니다. ‘탄핵 촉구안을 냈지만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동아일보의 언급도 있었습니다. 또 법관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절차와 헌법재판소 절차까지 나열하면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경향신문은 ‘법관회의는 대법원장 자문기구로 의결에 법률적 효력은 없다. 선언문에는 국회에 직접적으로 탄핵소추를 요구한다고 명시돼 있지도 않다’고 적으며 역시 절차의 어려움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이어서 ‘판사 탄핵으로 반헌법 행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 일선 판사들의 집단 목소리라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적으면서 사법농단 탄핵 소추의 가능성에 대해 예측했습니다.

한겨레는 법관회의 토론 과정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법관회의 안에서는 찬반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졌다고 한다’고 적으면서 법관회의 공보를 맡은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의 발언을 인용했습니다.

찬성 의견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하고, 탄핵소추 절차를 촉구하지 않는 게 법관회의의 중요한 임무를 방기 하는 것이다. 탄핵 절차를 통해 법관들에 의해 자행된 반헌법적 행위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적었습니다.

반대로 “탄핵 소추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정치적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게 옳지 않다. 국회에 사법부가 탄핵 소추를 요구하는 게 부적절하다”라는 반대 의견도 함께 담았습니다.

사법 농단의 종착점이 될 수도 있는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 이 과정에서도 신문의 성향에 따라 기사의 온도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바로보기:[1면보기]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 차이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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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철도가 대륙으로 뻗어가길”

남북 철도 현대화 공동조사, 2천6백km 여정 시작
도라산=공동취재단/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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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30  09: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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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철도 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단 28명을 태운 남측 조사열차가 30일 오전 9시 5분 도라산역을 출발해 북녁으로 향했다. [사진-도라산 사진공동취재단]

“오늘 이 기회가 남북 철도가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의미가 있다.”

30일 오전 6시 40분 서울역, 열차가 북녘으로 향했다. 남북을 오가던 철도가 멈춘 지 10년 만에 다시 철마는 내달렸다.

남북 철도 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가 이날 시작됐다. 남측 기관사가 모는 조사열차 6량은 이날 오전 서울역을 출발, 임진강역을 거쳐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18일간의 공동조사를 위해 북녘으로 향하는 열차 환송식이 열렸다.

남측 공동조사단 단장인 임종일 국토교통부 건설교통과장은 “2007년도에 남북 공동조사단원으로 참석한 이후 거의 11년 만이다. 감회가 새롭다”며 “오늘 이 기회가 남북 철도가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종일 단장은 “열심히 보고 자세하게 보고, 향후 추진해야 할 기본적인 사항들을 잘 보고 단원들과 함께 열심히 조사에 임하고 오겠다”며 “조사단원들이 이 분야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육안으로도 시설 노후화 등 대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북측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얼마만큼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측 공동조사단 중 유일한 여성으로 궤도를 담당하는 한영아 한국철도시설공단 과장은 “여성 최초로 참여하게 돼서 기쁘다”며 “궤도 분야 전문가로 참여하게 됐다. 지금까지 참여했던 공사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리고 “북쪽은 여성 전문가가 많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여성 궤도 분야 참여자가 적다”며 “이번 기회로 제가 처음으로, 첫발을 밟는다는 생각으로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 북녘에서 18일 간의 여정을 보낼 조사열차가 30일 오전 6시 30분경 서울역을 출발했다. [사진-도라산 사진공동취재단]
   
▲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드는 남측 공동조사단. [사진-도라산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조사열차를 몰고 북측 판문역으로 향하는 김재균 기관사는 감회가 달랐다. 기관사 경력만 20년인 김재균 기관사는 2007년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1년 동안 경의선을 달리는 열차를 운전했다.

김 기관사는 “10년 동안 열차가 안 다녔다. 녹슨 철길이 녹이 제거되고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열차가 상시적으로 많이 운영돼서 우리 겨레가 염원하는 통일이 간곡히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기관사는 북측 판문역까지 특대형 디젤 기관차를 몰고 올라간 뒤, 북측 기관차에 바통을 넘기고 이날 되돌아온다.

이날 오전 8시 10분 도라산역에서 조사열차 환송식이 열렸다. 남북 철도 중단 10년, 11년 만의 남북 철도 재조사를 기념하는 각계의 환송 인사가 이어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오늘 드디어 경의선.동해선 철도 현지 공동조사가 시작된다”며 “정부는 앞으로 남북 두 정상이 합의하신 착공식도 올해, 연내에 개최할 수 있도록 착실하게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로 이어질 철길을 통해서 남북이 함께 번영하게 될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도 탄탄해질 것”이라며 “한반도를 오가는 열차는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실어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남북 철도 현지공동조사 환송식이 30일 오전 도라산역에서 열렸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환송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도라산 사진공동취재단]
   
▲ 검정색 패딩을 맞춰입은 남측 공동조사단. [사진-도라산 사진공동취재단]
   
▲ 북녁으로 향할 조사열차를 배경으로 환송식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도라산 사진공동취재단]

자유한국당 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은 “경의선 연결만 되면 향후 30년간 140조까지 경제 효과 나온다는 예상 나오는데, 단순히 철도 연결하는 것뿐 아니라 대한민국 안에서만 갇혀있다가, 북한을 넘어 유라시아까지 뻗어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북한 비핵화와 이에 따른 미국 대북 제재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북한 인프라 개발에 대한 중.러.일 등 주변 강대국과의 경쟁에서 주도권 가질 수 있도록 면밀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국회 남북경협특위 간사도 “오늘 철도 공동조사단의 출정은 이제 경협시대 철도의 연결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철도는 인류의 길이기도 하고, 경제의 길이기도 하지만, 평화의 길이고 공동 번영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단지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시대, 아니면 유라시아 시대뿐 아니라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 연결하는, 그동안 한반도의 남쪽에서 고립된 채 끊겨 있던 우리의 지리적 영역을, 물류의 영역을 전 세계로 확대해내는 대단히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내년 8.15에는 동해선 또는 평양역 지나 대륙으로 가는 철도를 탈 수 있게 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 북측 판문역까지 조사열차를 운전할 기관사들이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에게 출무신고를 하고 있다. [사진-도라산 사진공동취재단]

각계의 환송을 받은 조사열차를 북측 판문역까지 운전하는 김재균 기관사는 출무신고를 했다.

“남북 공동 조사열차 출무신고 하겠습니다. 내빈께 인사, 안!전! 바로. 102열차 출무신고! 기관사 김재균, 기관사 박준만, 기관차 번호 7482호, 현차 6량, 환산 5량, 열차량 8량 5부, 도라산역에서 판문역까지 7.3km 열차 안전운행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빈께 인사, 안!전!”

그리고 남측 공동조사단 28명을 태운 조사열차는 오전 9시 5분,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의 “102호 열차 발차!” 외침과 함께 북녘 2천6백km, 총 18일간의 공동조사 여정을 시작했다.

북측 판문역에 도착한 조사열차는 북측 기관차가 이끄는 북측 조사열차에 연결된다. 그리고 신의주역까지 경의선을 조사하고, 안변역에서 두만강역까지 동해선을 누빈다.

   
▲ 조사열차 침대칸. [사진-도라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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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에 위자료 줘라”

대법 “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에 위자료 줘라”

등록 :2018-11-29 12:33수정 :2018-11-29 13:21

 

“개인 청구권 인정된다” 손해배상 확정
“1인당 8천만~1억5천만원씩 지급해야”
소멸시효 기산 늦춰 하급심 승소 잇따를 듯
대법원 청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법원 청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달 신일철주금에 대한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내린 판단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9일 일제 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돼 일본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등에서 임금 한 푼 없이 노동을 강요당한 양금덕(87)씨 등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에서 1억5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이날 또 강제징용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의 히로시마 기계제작소와 조선소 등에서 일한 정창희(95)씨와 이미 사망한 피해자 4명의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도 피해자 5명에게 8천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파기환송 후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협정이 있었다고 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지난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전범기업 쪽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으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는 전원합의체의 판결 이유 그대로다.

 

재판부는 또 양씨 등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2012년 10월 소송을 낸 것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의 제소라는 미쓰비시중공업 쪽의 주장에 대해, “피고가 이 사건에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해 원고들에 대한 채무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앞서 광주고법 민사2부(재판장 홍동기)는 2015년 6월 판결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일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강제노동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는지에 대해 여전히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고, 일본이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며 지금까지도 청구권협정 관련 정보공개조차 거부하고 있는 사정 등을 종합해보면, 원고들이 (대법원 판결 이후인) 2012년 10월 소송을 제기할 무렵까지도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며 미쓰비시중공업 쪽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배척했다.

 

대법원이 ‘소멸시효’ 문제에 대한 원심의 이런 판단을 받아들인 것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크게 늦춘 것이어서, 2005년 이후 많이 늘어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하급심 재판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추가 소송도 잇따를 전망이다.

 

그동안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두고, 2005년 8월 한일협정 관련 민관공동위원회 발표 이후 또는 2012년 5월24일 대법원의 원고 승소 취지 파기환송 판결 이후로 봐야 한다는 등의 논란이 엇갈렸다. 이 시점을 객관적 장애요인이 사라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안 날’로 보면, 소멸시효는 민법 규정에 따라 각각 3년 뒤인 2008년8월 또는 2015년 5월 종료된다.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2005년이나 2012년이 모두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해서는 반인륜적 범죄인 만큼 소멸시효를 두지 말아야 한다거나 최소한 지난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확정판결 이후부터 기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을 전망이다.

 

양씨 등 여자근로정신대 동원 피해자들은 국민학교 졸업 전후이던 14~15세 시절 교장 등의 꼬임을 받아 1944년 5~6월부터 옛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공장 등에서 비행기 부품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파이프에 천을 꿰매는 등 힘든 노동에 내몰렸다.

 

종전 뒤 임금 한 푼 못 받고 귀국한 양씨 등은 1999년 3월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지만 2008년 패소가 확정됐다. 이어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는 않았다’는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인 2012년 10월 국내 법원에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일본 정부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강제동원 정책에 편승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로 14~15세 소녀들을 군수공장에 배치해 열악한 환경 속에 위험한 업무를 하게 한 것은 반인도적 불법행위”라며 미쓰비시중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양씨 등에게 8천만원에서 1억5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3년 넘게 재판을 미뤄오다 지난 9월 전원합의체로 넘겨 심리를 벌였으나 다시 원래 소부 재판부로 넘겨 판결을 선고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정씨 등은 1944년 9~10월 히로시마의 옛 미쓰비시중공업 기계제작소와 조선소에 강제징용됐다. 이들도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한 뒤 국내 법원에 2000년 5월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채권은 이미 시효로 소멸했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패소로 판결했으나, 2012년 5월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 후 항소심은 원고 1명당 80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2013년 9월 재상고가 접수된 지 5년2개월 만이다. 재판이 장기화한 데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행정부와의 교감 아래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 사이 원고 5명 중 4명이 사망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2330.html?_fr=mt1#csidx42a1ccaa2dc31fbafb714ca94d48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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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 “미한정상회담 결과 따라 미북 고위급회담 여부 결정될 것”

“문 대통령 중재역할 주목… 회담 결과, 김 위원장 연내 서울방문과도 연계” 분석

미 관영방송 미국의소리(VOA)가 28일(현지시각)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주말 예정된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불발된 북미 고위급회담 개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은 오는 30일~12월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VOA는 이날자 <트럼프-문재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정상회담서 제제 완화 구체적 조건 조율 전망>이란 제목의 ‘뉴스해설’ 꼭지에서 “오는 주말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답보 상태에 있는 미-북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정상회담 결과는 미-북 고위급회담 개최와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과도 연계돼 있다”며 이렇게 전망했다.

VOA는 “미국과 북한(조선)의 비핵화 협상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장기간 답보 상태에 있는데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깨기 위한 나름의 중재안을 갖고 회담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각각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당부했던 것을 상기시켰다.

문 대통령의 ‘중재안’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진 건 없다”면서도 “문 대통령은 그동안 줄곧 북한(조선)에는 좀 더 적극적인 비핵화 조치를, 미국에는 속도 있는 상응조치를 촉구해 왔다. 이번에도 이런 토대 위에서 북한(조선)의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권고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미국을 방문해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종전선언과 대북 인도주의 지원, 경제시찰단과 예술단 교류,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상응 조치의 예로 언급했던 점을 떠올렸다.

특히 대북 제재 문제를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핵심 관심사”로 꼽으며 “문 대통령은 그동안 적절한 상응조치가 북한(조선)의 비핵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면서 ‘제재를 완화하더라도 북한(조선)이 속일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토대 위에서 미국이 제재를 완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할 것”으로 봤다.

그러곤 문 대통령의 대미 상응조치 제안 내용이 북한(조선)쪽과 사전 조율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남북이 올해 벌써 세 차례 정상회담을 진행해 온 만큼 그 과정에서 대화채널을 가동해 왔을 것이고, 또 개성에 차관급을 소장으로 한 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들을 통한 협의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봐야 한단 얘기다.

그래서 VOA는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북미 고위급회담 개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고위급회담 개최 여부는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을 가늠할 척도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내년 초에 열리려면 미-북간 고위급회담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와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의 연관성에 대해 “미-북간 비핵화 협상에서 뭔가 구체적인 합의가 나오지 않으면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의제에서부터 뚜렷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가령 북한(조선)은 남한과의 경협을 강하게 바라지만 제재 때문에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북 고위급회담이 조만간 열릴 경우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그만큼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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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지지율 40%대로 추락…중도층 역전

[리얼미터] 민주당 지지율도 9주 연속 하락
2018.11.29 10:04:03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처음으로 40%대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9일 나왔다. 

리얼미터의 11월 4주차 주중 집계 결과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48.8%로 지난주보다 3.2%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부정 평가는 45.8%로 3.3%포인트 올랐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9주 연속 하락해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의 격차(3%포인트)가 오차 범위인 ±2.5%포인트 안으로 들어왔다. 

이념 성향별로 진보층(▼3.2%포인트, 77.5%→74.3%, 부정 평가 22.0%)과 중도층(▼3.1%포인트, 49.6%→46.5%, 부정 평가 50.0%), 보수층(▼3.0%포인트, 23.7%→20.7%, 부정 평가 76.4%) 모두에서 지지율이 하락했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과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골고루 떨어졌고, 연령별로 봐도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에서 하락했다. 

리얼미터는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도 더불어민주당으로 기울어져 있던 중도층에서 처음으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섰다는 점을 '적신호'로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 후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50대 장년층(▼6.7%포인트, 긍정 평가 44.6%→37.9%, 부정 평가 57.4%)도 부정 평가 우세로 돌아섰다.  
 

ⓒ리얼미터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경제의 어려움과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를 맞이한 점이 꼽혔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남북 문제가 외적 요인이었다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을 둘러싼 여당 내부의 갈등은 내적 요인으로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했다.  

리얼미터는 "'이재명 논란'에 따른 지지층 내부의 분열로 최근 몇 달 동안 여당이 야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맞대응하지 못했다”며 "여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중도층과 보수층 등이 추가로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문 대통령의 세부 지지율은 27일까지는 48.0%로 내려갔다가, 한미 정상회담 보도와 2019년도 아동 수당 지급 대상 확대, 출산 장려금 250만 원 지급 예산에 대한 여야 합의 보도가 있었던 28일 48.4%로 다소 회복세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37.6%로 지난주보다 1.6%포인트 떨어지며 9주 연속 동반 하락했다. 진보층과 중도층이 동시에 이탈한 결과다. 반면에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6.2%로 지난주보다 3.3%포인트 올라 '최순실 태블릿 PC' 사건 직전인 2016년 10월 3주차(29.6%) 이후 약 2년 만에 처음으로 25%선을 넘어섰다.  

그 뒤를 정의당 8.2%(▼0.6%포인트), 바른미래당5.9%(▼0.1%포인트), 민주평화당 3.0%(▲0.8%포인트)이 이었다. 무당층은 16.5%로 1.9%포인트 떨어졌다. 

이번 조사는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무선(80%)·유선(20%) 임의걸기(RDD) 전화면접(CATI)·자동응답(ARS) 혼용해 실시했다.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만9104명에 통화를 시도해 최종 1508명이 응답을 완료함으로써 응답률은 7.9%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2.5%포인트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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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쌍둥이는 자라서 남북의 명필가가 됩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11/29 13:13
  • 수정일
    2018/11/29 13: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글 서예의 산실 필운동 배화여자고등학교

 
등록 2018.11.29 09:24 수정 2018.11.29 09:25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와 한글 서예

인왕산 남쪽 끝자락은 '필운대(弼雲臺)'라 부른다. 조선시대에 봄이 되면 이곳의 꽃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필운대'라 이름 지은 것은 조선중기 문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항복이 이곳 필운대 아래에 살아서 그의 호인 '필운(弼雲)'을 빌어 이곳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 큰 바위에는 '필운대'란 세 글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 동네를 '필운동'이라 부른다.
 

▲ 필운동 배화여자고등학교 ⓒ 황정수


필운대 아래쪽에는 오래된 학교가 하나 있다. 이 학교는 1898년 미국 남감리교 여선교사 캠벨(Josephine Campbell)이 세운 배화여자고등학교이다. 캠벨은 고간동(현 내자동)에 여학생 2명과 남학생 3명을 모아 '캐롤라이나 학당'을 창설한다.

1910년에 학교 명칭을 '배화학당'이라고 바꾸고, 1916년 현재의 과학관 건물로 학교를 이전한다. 1926년 캠벨 기념관이라 불리는 현재의 본관을 신축하여 학교가 완성되었다. 1938년부터 배화여자고등학교라 이름을 바꾸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학교는 한국 여성 교육에 앞장 선 선구적인 학교였다. 기독교 사상에 입각한 완전한 여성을 키우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한글 교육에 앞장을 섰고, 또 한글 서예 발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교사로 재직하며 한글 서예를 연구한 두 사람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한 사람은 독립운동가로 한글 글씨를 잘 썼던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 1863-1939)이었고, 또 한 사람은 교육학자로 남궁억의 영향을 받아 한글 서예 발전에 남다른 노력을 했던 야자(也自) 이만규(李萬珪, 1889-1978)이다.

한글 서예를 연구한 남궁억과 이만규
 

▲ 남궁억(좌) /이만규(우) ⓒ 황정수


남궁억은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여기에 영어까지 익혀 조선 최초의 영어통역관이 되어 고종의 통역을 맡았던 인물이다. 또한 그는 1895년 궁내부의 토목국장이 되어 '탑골공원'을 축조하기도 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 관계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나와 '황성신문' 사장이 되었다. 1905년에는 성주목사, 이듬해에는 양양군수로 있으면서, 양양에 현산학교를 설립하였다. 1908년에는 '교육월보'를 간행하고 관동학회 회장을 하였다.

1910년 10월에 한일 합방 조약이 체결되자, 바로 배화학당의 교사가 되어 한글과 역사를 담당하였다. 배화학당 교사로 있으면서 '가정교육', '신편언문체법' 등의 교과서를 지었고, '우리의 역사', '언문 체법', '가정교육' 등의 책을 발간하였다. 또한 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애국 가사를 보급하였으며, 한글서체를 창안하여 보급하는데 힘썼다.

그는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세'로 시작하는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을 비롯한 노래와 시 등을 작사 작곡하였다. 또한 나라꽃인 무궁화를 전국에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노동과 애국심을 주제로 한 찬송가와 시, 가사 등을 지어 전국의 교회와 기독교계 학교들에 보급하였다. 특히 그가 지은 창가 가사 '무궁화동산', '기러기 노래', '조선의 노래' 등은 민간에 널리 유행하였다.

남궁억보다 15년 정도 늦게 배화여고보에 부임한 이만규는 본래 경성의전을 나온 의사였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 두고 교육학과 한글을 공부하여 교사가 되었다. 그는 호를 '야자(也自)'라 하였는데, 천자문의 마지막 글자 '야(也)'로서 '자신(自)'을 낮추고 겸손함을 표현하여 지었다고 한다.

이만규는 188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문과 서예를 수학하다가 16세가 되어 경성에 올라와 경성의학교에 다닌다. 졸업 후 개성에서 의사 생활을 하던 중, 1913년 윤치호의 권유로 송도중학교에서 교육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교사 생활 도중 반일 내용의 노래를 보급하고, 또한 3·1운동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감되기도 한다.

1926년 개성 생활을 정리하고 경성의 배화여고보 교사로 부임한다. 한편으론 조선어학회에 가입하여 간사, 위원장을 맡으며 정열적으로 한글 운동을 한다. 국어 철자법을 통일하고 보급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 이만규가 이렇게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젊어서 관동학회에서 활동할 때 받은 남궁억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관동학회를 세운 남궁억은 인품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궁체에 바탕을 둔 한글 서예에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뛰어난 예술가이기도 하였다. 이만규는 이곳에서 남궁억의 감화를 받아 한글 서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만규는 직접 한글 글씨를 쓰며 궁체에 대한 연구에 집중한다. 두 사람이 경성의 같은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한 것도 또한 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만규의 특별한 한글 사랑
                 

▲ 이만규·이각경 ‘새시대 가정 여성훈’ 1946년 ⓒ 황정수

 
이만규는 6남매를 두었는데, 그 중에 딸이 넷이었다. 그는 선각자적 교육열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네 딸을 모두 전문학교를 다니게 하였다. 첫째는 임경(姙卿), 둘째는 각경(珏卿), 세째는 철경(喆卿), 네째는 미경(美卿)이다. 이중 각경과 철경은 쌍둥이였다. 첫째 이임경은 경성사범학교를 다녔고, 이각경은 이화여전 가사과를 다녔으며, 이철경과 이미경은 이화여전 음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였다.

그는 네 딸에게 모두 한글 서예를 가르쳤다. 주로 체본을 보고 글씨를 쓰는 방법으로 지도를 하였다. 때로는 상궁들이 쓴 글씨를 낙선재 등에서 빌려 직접 보고 쓰도록 하는 등 열성을 보였다. 특히 이각경과 이철경은 뛰어난 재주를 보여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경성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였던 큰언니 이임경도 막내인 이미경에게 글씨 지도를 할 정도로 네 자매가 모두 한글 서예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이만규는 특히 서예를 본격적으로 한 이각경, 이철경, 이미경 3자매의 호를 '봄뫼', '갈물', '꽃뜰'로 지어주기도 하였다. 또한 '비단 땅', '비단 마음', '비단 글', '비단 글씨' 등 자매들이 사용한 아름다운 인장 문구 또한 모두 이만규가 지어준 것이다. 이들 호와 인장의 문구는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모두 우리글을 사랑했던 이만규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들이다. 세 딸은 아버지가 지어준 호와 인장의 글귀를 평생 사용한다.

이각경, 이철경, 이미경 세 자매의 활동과 작품

네 자매 중 이각경, 이철경, 이미경 세 사람은 모두 배화여고보를 다니며 한글 서예를 수련한다. 이들은 모두 전문학교에 진학해 자신의 전공이 따로 있었음에도 평생 한글 글씨를 놓지 않는다. 이들의 노력은 한글 궁체가 서예라는 예술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각경과 이철경 두 사람은 1914년 개성에서 쌍둥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글 서예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개성의 호수돈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5학년 때 부친의 전근으로 경성의 배화보통학교로 전학한다.

최고 명문 여학교인 경성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경기여고 전신)에 함께 입학하였으나, 2학년을 수료한 후 아버지가 근무하는 배화여고보로 전학한다. 우수한 두 딸을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로 유치하려는 생각과 좀 더 가까이에서 한글 공부를 시키려는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배화여고보의 이각경과 이철경. 동아일보 1931.2. 8일자 ⓒ 황정수

 
두 사람의 활동은 여고보 시절부터 장안의 화제였다. 당시 동아일보에서 두 사람의 우수한 성적과 서예 활동에 대해 크게 보도할 정도였다. 또한 고보 졸업 후 이화여전에 동시에 입학한 것 또한 화제가 되었다.

동아일보는 두 사람의 입학을 대서특필하며 '공부 질하고 글씨 잘 쓰는 미모의 쌍둥이 형제'라는 제목과 함께 두 사람과의 대담을 실었다. 특히 두 사람의 서예 실력을 칭찬하였는데, 이각경의 한문 글씨와 이철경의 한글 글씨를 실어 두 사람의 재능이 비범함을 칭찬하였다.
                               

▲ 이각경의 글씨 ⓒ 황정수

 
언니 이각경은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로 유학을 다녀 온 후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1886-1947)의 비서가 된다. 이때 마침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비를 만드는 일이 있었는데, 여운형이 이각경을 추천하여 비문을 쓰게 한다.

당시 여성이 비문을 쓰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이 일로 이각경은 일약 유명세를 타며 서예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를 계기로 초등용 습자책 <어린이글씨체첩>과 중등용 습자책 <가정글씨체첩>을 발간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1950년 한국 전쟁이 나자 이만규와 함께 월북한다.

이각경의 글씨는 전형적인 궁체로 유연하기보다는 필선이 강한 강단이 있는 글씨이다. 서예 작품으로서의 필체라기보다는 궁중에서 서사 상궁들이 책을 베끼며 쓰던 필체에 가깝다.

실용적인 글씨인 궁체가 현대 서예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초기 형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현대 한글 궁체에서 보는 세련된 맛이 적고 예전 궁체의 날 것 그대로가 남아 있다. 이런 이각경의 필체는 훗날 북쪽에서 '각경체'라 불리며 북한 한글의 중심이 된다.
          

▲ 이철경의 글씨 ⓒ 황정수

 
이에 비해 남쪽에 남은 이철경은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후 배화·이화 등 여러 여학교 교사를 한다. 1960년 이후에는 금란여고 교감과 교장을 지낸다. 그는 교직에 있으며 저명한 여류명사로 활동하였으며, 서예가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쌓는다.

일찍이 문교부 검인정교과서 검정위원과 서예교과서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갈물한글서회'를 창설하여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한국 한글 서예 발전은 모두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밖에 수많은 여성 단체 회장을 맡으며 여성운동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철경의 글씨는 언니 이각경의 글씨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비록 같은 체본으로 함께 공부하였으나 타고난 품성에서 나오는 개성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철경의 글씨는 '갈물체'로 불렸는데, 쌍둥이 언니 이각경의 '각경체'와 함께 남북의 한글 서예를 대표하는 필체가 되었다.              
                      

▲ 이미경의 글씨. ⓒ 황정수


막내인 이미경도 언니들과 마찬가지로 배화여고보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하였다. 음악교사 생활을 10년 하였으나 역시 한글 서예를 잊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 두고 서예에 전념한다.

그의 글씨는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며 조화를 이룬 흘림체 궁서로 일가를 이뤘다. 이미경의 한글 글씨는 실력에 비해 언니들의 명성에 가려진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실제 한글 글씨를 쓰는 능력에 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오히려 언니들에 비해 더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한때 필자는 같은 동네에 살던 언론인 성재(誠齋) 이관구(李寬求, 1898-1991) 선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선생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한글 글씨는 '꽃뜰'이 좋지" 하며 빙그레 웃으시었다. 그만치 이미경의 글씨는 이미 원숙한 경지에 있었다.

어찌 보면 언니들의 화려한 명성에 가려져 빛을 더 발하지 못한 것 같다. 특별한 언니를 둔 동생의 숙명 같은 것이라 할까? 그러나 음악을 전공하였고, 시조도 잘 짓고, 글씨 또한 경지에 이른 이미경의 예술 세계는 분명 대단한 경지에 있음을 세상은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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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철도 공동조사, 30일 시작

남측 열차, 서울-신의주-택암-안변-두만강-원산-서울 누벼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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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8  16: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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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철도 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가 30일 시작된다. 서울역을 출발해 신의주를 거쳐 안변, 두만강, 원산을 지나 서울로 돌아오는 18일의 여정이다. 2008년 남북 열차운행 중단 10년 만에 재연결의 첫 관문이 열렸다.

통일부는 28일 “남과 북은 11월 30일부터 총 18일간 북한 철도를 따라 약 2천6백km를 이동하며 남북 철도 북측 구간 현지 공동조사를 시작하기로 합의하였다”고 밝혔다.

경의선의 경우, 개성-신의주 400km 구간으로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6일간, 동해선의 경우 금강산-두만강 약 800km 구간으로 12월 8일부터 17일까지 10일간 조사가 진행된다.

   
▲ 조사열차 구성. [자료제공-통일부]

남측 철도차량 6량이 30일 오전 6시 30분 서울역을 출발해 북으로 올라간다. 발전차, 유조차, 객차, 침대차, 침식차, 유개화차(물차)로 구성된 6량의 열차를 이끌 남측 특대형 디젤기관차는 남측 기관사가 운전해 오전 8시경 도라산에 도착한다.

오전 8시 30분경 도라산을 출발한 조사 열차는 오전 9시경 북측 판문역에 도착한다. 여기서 남측 기관차는 분리하고 귀환한다. 북측 기관차는 남측 철도차량 6량과 연결해 북측 구간을 조사하게 된다. 북측 차량의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다.

공동조사단은 남측 박상돈 통일부 과장, 임종일 국토교통부 과장 등 관계부처 담당자와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 등 총 28명과 북측 28명으로, 경의선과 동해선 조사단이 각각 꾸려진다.

남측 조사열차, 서울-도라산-신의주-택암-안변-두만강-원산-서울 누벼

조사열차는 경의선과 동해선을 누빈다. 북측 판문역에서 남북 경의선 공동조사단을 태운 조사열차는 평부선(개성-평양), 평의선(평양-신의주)을 달린다. 경의선 조사를 마친 열차는 신의주역에서 평양 인근 택암역으로 이동한다. 남측 경의선 조사단은 이후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평양 인근 택암역에 머문 조사열차는 원산으로 향한다. 열차는 원산에서 안변으로 내려와 남측 동해선 조사단을 태우고 강원선(안변-고원), 평라선(고원-라진), 함북선(라진-물골), 두만강선(물골-두만강)을 달린다. 북측 금강산역에서 안변역까지는 북측의 요청으로 버스를 이용해 조사가 진행된다.

동해선 공동조사를 마친 열차는 두만강역을 출발, 원산에 도착한다. 남측 조사단은 내린 뒤, 열차만 평라선을 이용해 평양을 거쳐, 개성역으로 이동한다. 개성역에서는 남측 기관차에 연결해 서울역으로 돌아온다.

조사 방식은 조사열차로 선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북한 철도 시설 및 시스템 분야 등을 점검하고 북측 공동조사단과 조사결과공유 등 실무협의가 진행된다.

   
▲ 조사열차 이동경로. 조사열차는 서울역을 출발해 도라산역을 거쳐 판문역, 신의주역까지 경의선을 조사한다. 그리고 다시 평양 인근 택암역으로 내려온 뒤, 평라선을 이용해 원산역에서 안변역으로 내려온 뒤, 다시 두만강역으로 달리며 동해선을 조사한다. 조사열차는 원산역으로 내려온 뒤, 평라선을 이용해 평양에서 개성을 거쳐 서울역으로 돌아온다. [자료제공-통일부]

통일부는 “경의선의 경우 개성-신의주 구간에 대해 2007년 현지조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10년간 변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며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구간은 분단 이후 우리 철도차량이 처음으로 운행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7년 12월 경의선 현지조사는 개성-신의주 412km 구간을 대상으로 7일간 진행됐다. 남측 14명, 북측 40명으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이 남측 3량, 북측 5량 등 총 8량의 기차를 타고 조사를 했다.

남북은 2007년 5월 경의선 문산-개성 구간과 동해선 제진-금강산 구간에 열차 시험운행을 했으며, 그해 12월 11일부터 2008년 11월 28일까지 주 5회 총 448회 화물열차를 운행했다. 하지만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에 따른 남측의 금강산 관광 중단 조치에 맞서, 북측이 ‘12.1’조치로 열차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판문점선언’에서 시작..실제 공사는 유엔 대북제재위 면제받아야

이번 철도 공동조사는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판문점선언’에서 시작됐다.

6월 남북철도협력 분과회담을 통해 7월 동해선과 경의선 공동조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8월 유엔군사령부의 불허로 철도를 이용한 공동조사가 한 차례 무산됐고, 10월 공동조사 추진도 미국 정부의 대북제재 준수 요구로 진척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3일(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가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 사업 관련 제재 면제를 승인함에 따라, 공동조사의 길이 열렸다.

   
▲ 2007년 5월 17일에 열린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남북은 이번 철도 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 이후 착공식을 열지만, 실제 공사는 유엔 대북제재위의 면제를 받아야 한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통일부는 “이번 현지 공동조사를 효율적으로 마무리하여 북측 철도 시설의 실태를 파악하고 향후 현대화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며 “현지 공동조사 이후에는 기본계획 수립, 추가 조사, 설계 등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연내 착공식도 가능해졌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28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착공식과 관련해 남북 간에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남북교류협력사업들을 대북정책의 틀 내에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제재와 관련해 우려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잘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철도 현대화 공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는 철도 공동조사만 제재 면제를 승인했을 뿐, 공사 자체에 대해 면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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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복구 외주노동자 “통신선 새로 깔 KT 정직원은 없다”

등록 :2018-11-27 16:23수정 :2018-11-27 22:04

 

 

화재 복구 현장 외주노동자 인터뷰
“구조조정 과정서 현장직 모두 감축
신규 선로 까는 일은 100% 외주화”
효율화에 밀려난 이들이 ‘대란’ 수습
케이티(KT) 서울 아현동 통신국사의 통신구 화재 현장에서 27일 오후 노동자들이 통신 케이블을 꺼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케이티(KT) 서울 아현동 통신국사의 통신구 화재 현장에서 27일 오후 노동자들이 통신 케이블을 꺼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케이티(KT) 서울 아현동 통신국사(통신망 관리거점)의 통신구 화재로 24일 ‘통신대란’이 일어난 지 사흘이 흘렀다. <한겨레>는 사고 직후부터 현장 복구에 참여하고 있는 외주업체 노동자 ㄱ씨와 26일 늦은 밤 통화해 복구 현장 상황과 이번 사고의 문제점 등을 들었다.

 

ㄱ씨는 26일 밤 기준으로 “(인터넷 등을 연결하는) 광케이블은 접속 오류 등을 제외하고 99% 복구가 되었지만, 아현동 관내 유선 전화는 복구가 하나도 안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현 통신구와 광케이블로 연결만 되면 유선 전화 작동이 가능한 서울 용산 등은 대부분 복구되었지만, 아현 지역 내에서 구리선으로 연결된 유선 전화는 하나도 복구되지 않은 상태라는 의미다. 구리선은 통신구 내에서 복구 작업을 해야 하지만, 현재 현장 감식 등으로 통신구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또 구리선의 경우 두께가 두꺼워 도로 등으로 우회해 매설 작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만 광케이블은 도로 매설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은 빠른 복구가 가능했다.

 

 

1. D등급 아현국사 화재에 21만 인터넷 암흑 된 이유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30년 가까이 선로 작업을 한 ㄱ씨도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합선이 원인이라면 전기가 원인이어야 하는데, 누전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동선이나 광케이블에서는 스파크가 나지도 않는다. 30년 가까이 일했지만 어떻게 화재가 일어났는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ㄱ씨는 앞서 경찰이 밝힌 대로 사람의 실수로 인한 화재 가능성도 없다고 봤다. 그는 “통신구는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아니다. 작업에 들어갈 때는 작업자 이름과 연락처 등을 다 적어놓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출입 통보를 한 뒤에야 들어갈 수 있다. (당시 통신구로 들어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람 때문에 화재가 벌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이주민 서울경찰청장도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문도 이중이고 자물쇠 장치 등으로 담당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형태”라며 방화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재는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 피해 규모가 크다는 점이다. 통신구 화재로 기지국 2833개가 연결이 끊기고, 인터넷 21만5000여 가입자(아이피티브이 포함)가 통신 암흑 상태에 처했다.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20%인 5개 자치구에서 ‘통신대란’이 벌어졌다. 복구도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사연을 보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통신구 등급부터 살펴야 한다. 과기부는 통신구를 에이(A)부터 디(D)등급으로 나눠 관리하는데, 아현 통신구는 가장 등급이 낮은 디등급이다. 에이부터 시(C)등급은 정부가 직접 관리하지만 디등급은 통신사가 자체 관리를 한다. 또 에이부터 시등급의 경우 정부가 백업망을 갖추도록 권고하지만, 디등급의 경우 그런 지시조차 없다. 서울 5분의 1을 마비시킨 아현 통신구가 디등급에 머문 이유를 ㄱ씨는 케이티의 통신국사 통폐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석채 전 회장 때부터 전화국을 많이 매각했다. 사실 아현국사가 그렇게 중요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통신국사가 매각되면서 시설이 그쪽으로 이전됐다. 디등급인 국사가 갑자기 대형화된 셈”이라고 말했다.

 

경영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통신국사를 팔아 디등급이었던 아현국사가 대형화됐지만, 누구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채로 방치돼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해관 케이티 새노조 대변인은 2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예전에는 한국의 땅값이 싸고 통신 장비값이 비쌌다. 그래서 대규모 장비가 아닌 작은 장비를 여러 곳에 분산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이익이었다. 하지만 점점 땅값이 비싸지고 장비 가격이 싸졌다. 이 때문에 케이티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부동산(통신국사 등)을 팔거나 임대업에 사용했다. 대신 아현국사처럼 상대적으로 싼 곳에 장비와 시설을 집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대변인은 “원효, 신촌, 가좌, 은평 등 이번 화재로 통신장애가 발생한 지역의 국사들에도 다 장비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그걸 다 아현으로 집중화시킨 것이다. 지금 원효 등에는 장비는 다 빠지고 요금 등을 받는 직원들만 남았다”고 덧붙였다.

 

 

2. 2002년 민영화 이후 KT 직원 수 2만 줄어

 

2002년 민영화 이후 케이티는 국사만 줄이지 않았다. 인력 감축도 함께 진행했다. 케이티 사업보고서를 보면, 민영화 직전인 2001년 12월 기준 직원 수는 4만4094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에는 2만3817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 중에는 통신선로를 까는 직원도 포함됐다. 그런 이유로, 현재 불이 난 아현국사 현장에서 통신선로를 까는 작업은 케이티 직원들이 아니라 외주업체 직원들이 전담하고 있다. 1100여명의 화재 복구 작업자들 가운데 케이블 포설 등 현장 복구를 하고 있는 작업자 중에는 케이티 정직원들이 없다는 얘기다. ㄱ씨는 “케이티가 구조조정이 들어가면서 현장직을 다 감축했다. 이제 신규 선로를 까는 작업은 100% 외주화됐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이번 화재 뒤 케이블 포설 작업자 가운데 케이티 정직원은 없다. 케이티 직원 등의 말을 종합하면, 본사에도 통신선로 작업을 하는 직원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신규 충원을 하지 않고 있으며 주된 업무는 긴급 복구 정도다. 이번 처럼 선로를 새로 까는 일은 외주사가 다 맡는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케이티 관계자는 “현재 현장에 포설 작업을 하는 본사 직원이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네트워크 업무를 담당하는 본사 직원도 여럿이 나가 함께 복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케이티 외주업체 직원들은 대부분 일용직이다. 올 5월 전주시비정규노동자지원센터가 전주 지역에서 일하는 78명의 케이티 용역업체 통신노동자를 상대로 한 ‘긴급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실태 보고서)를 보면, 64.1%가 일용직이었고, 기간제가 11.5%를 차지했다. 정규직은 7.7%에 불과했다. ‘케이티 상용직 노동조합’이 소속되어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관계자는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올해 하반기 통신외선공 평균 공임(일당)은 28만1811원이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케이티 외주업체 평균 임금은 16만원 수준이다. 외주업체들은 평균 낙찰률이 80% 수준(22만원가량)이라 일당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 주장을 따르더라도 하루 6만원을 덜 받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케이티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맨홀 밑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케이티 용역업체 통신노동자 긴급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전주시비정규노동자지원센터)
케이티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맨홀 밑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케이티 용역업체 통신노동자 긴급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전주시비정규노동자지원센터)
근무일은 일정치 않다. 여느 일용직처럼 공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 실태 보고서를 보면, 이들의 한 달 평균 근무일은 16.8일이다. 경영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통신국사는 통폐합되면서 발생한 ‘대란’의 뒷수습을 하는 것은 모두 ㄱ씨와 같은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평소에도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늘과 땅밑을 오간다. 높은 전봇대 위를 올라 전선을 정리하고 차량이 오가는 도로 밑 미끄러운 맨홀을 기어 내려가 끊어진 선을 잇는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한다며 대접을 받았던 것은 너무 오래전 일이다.

 

 

3. “고된 일 하는 케이블 매니저보다 휴대전화 더 파는 직원 우대”

 

케이티 직원 ㄴ씨는 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케이블 매니저(통신선로 관리) 일이 좀 지저분하다. 맨홀이나 지하통신구 들어가야 하니까 기피 직업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여기서 일을 잘하면 우대하는 전통이 있었다. 고된 일을 하니 존경받은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회사가 아무런 대우를 안 해준다. 오히려 휴대전화 몇 대를 더 파는 사람들을 더 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케이블 매니저들이 있는 부서에서도 휴대전화를 몇 개 팔았냐를 가지고 회의를 한다. 담당 부서에서조차 전문가가 우대받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를 팔아 매출에 기여한 직원이 우대받는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ㄴ씨는 또 “(민영화 전인) 1999년 삼각지역 공사장 근처 지하통신구에서 불이 났을 때는 복구 작업에 투입된 직원 대부분이 본사 소속이었다. 물론 외주업체 직원도 있었지만 주축은 본사 ‘케이블 매니저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현장에 파견된 본사 소속 직원은 홍보팀 등 일부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케이티는 2002년 민영화 이후 본사 소속 케이블 매니저는 한 명도 안 뽑고 모두 외주로 돌렸다”고도 했다. 이젠 케이티 본사에서 현장에 나가 통신선로 복구 작업을 할 수 있는 직원 중 막내가 50대 중반이라고 한다.

 

케이티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전봇대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케이티 용역업체 통신노동자 긴급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전주시비정규노동자지원센터)
케이티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전봇대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케이티 용역업체 통신노동자 긴급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전주시비정규노동자지원센터)
ㄱ씨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바라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케이티다. 우리는 약자라 회사(외주업체)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회사는 케이티 눈치를 봐야 한다.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고 일당이라도 좀 더 올랐으면 하지만 현장 개선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ㄱ씨는 이틀 동안 24시간 넘게 통신선로 복구에 매달린 뒤 26일 밤 겨우 퇴근을 했다. 자신을 “우리는 일용직이다. 일당에 일한 날짜를 곱해서 받는”이라고 설명한 ㄱ씨와 같은 일용직들 덕에 서울 지역 다섯개 자치구는 통신 마비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밀려난 이들이, ‘효율화’ 때문에 일어난 ‘통신대란’을 앞장서 수습한 셈이다.

 

정환봉 선담은 기자 bonge@hani.co.kr
 
 
이슈KT 화재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1997.html?_fr=mt1#csidxb253ccc8379483fb890fb8ffe4fb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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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30년, 한 명의 조합원을 꼽으라면 손석희”

[인터뷰] 권영길 언론노조 초대위원장이 말하는 언론운동 30년 “언론민주화로 사회민주화에 기여한다는 언론노조 제1목적, 여전히 유효”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8년 11월 28일 수요일

권영길. 민주노총 초대위원장, 민주노동당 대표 등 그를 설명하는 경력은 대체로 ‘위원장’ 아니면 ‘대표’였다. 그러나 그는 위원장·대표 이전에 기자였다. 그는 서울신문 기자시절이던 1988년 언론노련 초대위원장을 맡으며 언론운동의 깃발을 들었다. 언론노동운동 30년을 맞아 지난 23일 권영길 언론노조 제1대~3대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언론민주화로 사회민주화에 기여한다’는 언론노조의 제1목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거듭 강조했으며, 언론노조가 “직종을 넘어서는 연대에 적극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약속 장소였던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30년 전 사진을 넘겨보고 있었다. 사진 속 언론노련 위원장은 어느덧 백발이 되었으나 눈빛은 30년 전 그대로였다. 그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했으며 지난 30년 간 인상적이었던 언론노조 조합원 한 명으로 손석희 JTBC 대표이사를 꼽았다. 그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두 시간 가까이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여전히 꿈 많은 대중 운동가였다. 2013년 정계를 떠난 뒤 지금은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에게 언론운동의 지난 30년을 묻고, 앞으로의 30년을 물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 권영길 초대 언론노련 위원장이 30년 전 언론노련 창립대회 사진을 뒤로하고 웃고 있다. ⓒ김현정PD
▲ 권영길 초대 언론노련 위원장이 30년 전 언론노련 창립대회 사진을 뒤로하고 웃고 있다. ⓒ김현정PD
 
-30년 전 언론운동의 맨 앞에 있었다. 소회를 듣고 싶다.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이었고, 민주노동당 초대 대표였다. 오랜 기간 정치인으로 불렸는데, 여전히 위원장으로 불리는 게 제일 좋다. 마음속은 언론노련위원장 권영길 그대로다. 언론노조는 성찰과 희망 속에서 탄생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의 봄이 왔을 때 언론인들은 자괴감 속에 무임승차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전두환 독재, 박정희 독재 시절 언론은 독재정권의 대변자 노릇을 했다. 언론인들은 자괴감 속에 한탄하며 보냈다. 개인의 힘으로 독재정권에 맞서서 민주화할 수 있느냐, 개인의 힘으론 어렵다, 조직의 힘으로 민주화시키자, 그게 노동조합이었다. 언론이 이제는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해서 만들어진 것이 언론노조였다. 언론노조의 핵심기조는 ‘언론민주화를 통해 사회민주화에 기여한다’였다. 1988년 언론노련은 만들어질 때보다 만들어진 이후의 상황이 엄중했다. 봄은 왔지만, 봄날은 짧았다. 각 단위노조 내부도 많은 탄압을 받았다. 해고자도 많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어 오늘날에까지 이르게 됐다.” 

-30년 전 오늘 어떤 마음으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 올랐는지 궁금하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이 자리가 지금은 힘든 자리이지만, 언젠가는 영광된 자리가 되도록, 내가 몸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사회를 바꿔나가는 한복판에 서 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1988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다. 당시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건설해서 지금까지 한국사회 개혁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1987년부터 30년에 이르는 한국사회 역사적 흐름의 가장 큰 줄기가 바로 노동조합이다. 많은 노조 중에서도 언론노조는 보이지 않게 더 많은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노동조합은 자기가 몸답고 있는 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은 사회일 때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 싸우는 게 목적이자 과제가 되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헌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 노조가 설립됐을 때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은 ‘기자들이 노조를 한다니 창피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노조는 기름때 뭍은 육체노동자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한 거다. 노조를 모르는 무식함이었다.”  

 

▲ 1988년 11월26일 언론노련 창립대회 모습. 가운데 발언하고 있는 이가 권영길 위원장이다. ⓒ언론노조
▲ 1988년 11월26일 언론노련 창립대회 모습. 가운데 발언하고 있는 이가 권영길 위원장이다. ⓒ언론노조
 
-30년 간 언론운동의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언론노조가 철저하게 자주적·민주적 입장을 취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연맹이 결성이 되고나서, 당시는 민주노총이 없었다. 전국적인 노조조직은 한국노총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노총은 노동자를 억누르고 임금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역할을 했다. 관제노총이자 어용노총이었다. 연맹체가 되면, 우리 상급단체를 기명하게 되어 있었다. 그 때는 한국노총 밑에 출판노련이 있었다. 우리는 출판노련을 거부했다. 상급단체에 한국노총을 기재하지 않았다. 이걸 정부기관도 알고, 끊임없이 회유가 들어왔다. 상급단체 올리고 필증이 나오면 나중에 빼면 된다는 식으로, 일단 한국노총을 기입해달라고 했으나 단호히 거부했다. 나는 아예 설립신고를 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상급단체 없이 노동부에 신고했고 당연히 거부됐다. 그 때부터 언론노련 합법화를 위한 법적 투쟁에 돌입했다. 그 후 1992년 12월 대법원에서 법률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고 이후 다른 노조가 합법화됐다. 언론노련은 무엇보다 우리나라 노조의 자주화·민주화에 기여했다. 예전부터 노조를 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들이 자주적 민주적으로 만들었다고 선언하면, 노조는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마치 노조가 허가제처럼 존재하는데, 이 악습을 깨는 역할을 이뤄낸 것이었다.” 

-언론계에서의 구체적 성과들을 꼽는다면.  

“언론노조 결성의 제1목적이 ‘언론민주화를 이뤄 사회민주화에 기여한다’였다. 구체적인 언론민주화 방법은 첫째가 편집-편성권 독립이었다. 편집국장·보도국장을 정권 입맛, 사주 입맛으로 임명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직선제와 임명동의제·중간평가제를 쟁취하기 위해 파업투쟁을 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1988년 부산일보가 제일 먼저 싸워서 직선제를 쟁취했다. 공영방송 KBS·MBC나 정부 산하 서울신문 같은 매체는 낙하산 사장 거부투쟁을 벌였다. 투쟁이 수없이 일어났고, 연맹은 연맹대로 많은 집회를 열었다. 세계 언론사상 그렇게 파업으로 편집권 독립을 쟁취한 역사가 유례를 찾기 힘들었다. 당시 서울 외신기자들이 내게 두 가지를 보고 놀랐다고 했는데, 세계 어느 언론사도 이렇게 결집이 되어 민주화투쟁 집회를 여는 곳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계 언론사에 길이 빛날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서 외치는데도 신문지면이나 TV화면에 한 줄도 보도되지 않는 걸 보고 두 번째로 놀랐다고 했다. 뼈아픈 이야기였다. 그러나 한국 언론노동자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판사가 판결로 말하는 것처럼 언론노동자들은 지면과 화면으로 말하기 위해 지금까지 투쟁해왔다.”  

-30년간의 언론운동 시기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은 언제였나.  

“1990년 4월 KBS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이었다. 국민들로부터 돌팔매질 당하던 KBS를 살려낸 투쟁이었다. 90년 4월 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당시 정권차원의 분열공작이 엄청났다. 같은 시기 울산 현대중공업 투쟁이 있었다. 제조업과 언론의 연대투쟁이 돼야한다 했지만 KBS 동지들이 당시까지 그걸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참 안타까운 점이었다. 만약 함께 끝까지 연대 투쟁했다면 당시 노태우 정권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노동조합의 생명은 자주적·민주적 운영이라고 말했는데, 그와 함께 가장 중요한 게 연대다. 연대하지 않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노동조합이 함께 가야 한다. 직종을 넘어서 투쟁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연대에서는 아직까지도 언론노조가 약하다. 가슴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 연대다. 언론노조 틀 안에서의 연대, 민주노총 안에서 모든 직종과의 연대, 그 연대가 결국 언론노조를 살린다.” 

-지난 30년 간 언론노조 조합원 중 가장 인상적인 조합원을 꼽는다면.

“언론민주화를 위해 신념으로 걸어온 동지들이 있다. 전부 다 생각나고 훌륭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JTBC 사장으로 있는 손석희 조합원을 가장 인상적인 후배로 꼽고 싶다. 민주노총위원장 시절 내가 진보진영 대통령 후보로 나가야 한다는 논의 끝에 1997년 국민승리21(민주노동당의 전신)이란 정치조직체가 탄생했다. 나는 당시 언론에서 한 줄도 언급되지 않는 대선후보였다. 고민 끝에 손석희 MBC조합원을 대변인으로 떠올렸다. 당시 손석희씨는 미국 미네소타에서 공부 중이었다. 개인 돈으로 비행기 표를 마련해 사람을 보냈으나 데려오지 못했다. 이후 손석희는 한국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가장 중심적인 길을 걸어왔다. 내가 그 길을 가로막을 뻔했구나 싶어, 돌이켜보면 (대변인직을) 거절해서 정말 다행이었다.(웃음) 사람들에게 손석희를 잘 봐라, 손석희에게 배우라고 늘 얘기했다. 손석희는 어떤 정당에서든 영입 1번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입 1번도 손석희였다. 손석희가 대단하다는 건 그 모든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친 것이다. 대통령 앞에서 거절할 수 없으니 아예 대통령이 부르는 곳을 가지 않았다. 그 결과 독보적인 언론인이 됐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내공을 쌓으며 MBC조합원 시절에도 연대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 박근혜 정권이 청와대에서 감옥으로 가기까지 손석희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인물을 사장시킬 뻔했다.”

-30년 전에는 조중동 기자들도 언론노조 소속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언론노조가 조중동과 결별하고 산별노조로 전환한 이후 언론의 정파성이 강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해법이 있다면.  

“조중동이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적대시되고 있다. 안타깝다. 언론노련 결성 이후 상당한 기간까지 조중동 조합원들이 연맹체 안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많은 조합원들이 조선일보를 노동조합의 힘으로 바꿔보자고 했다. 조선일보의 명예를 회복해보자고 했다. 조선·동아는 민족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지금껏 사주의 반민족행위에 대해 진실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자유언론운동의 횃불을 들었던 동아투위와 조선투위의 역사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이 빛나는 역사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조가 노력했고, 언론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노조가 엄청난 위협과 어려움을 겪었다. 동아일보 사주는 노조위원장에게 ‘당신은 진짜 파업을 했다’며 ‘용납 못한다’고 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의 투쟁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는 조선일보의 명예회복을 위해, 동아일보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동조합이 재탄생해야 한다. 허울만 유지하는 노조는 언젠가 깨어나야 한다.”  

-공영방송이 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고, 정권 교체 이후 언론자유도 역시 높아졌다. 그러나 언론계에 산적한 과제가 적지 않다. 앞으로 30년, 언론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지금은 30년 전과 완전히 다르다. 30년 후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지금은 모든 국민이 기자다. SNS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보 전달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된다. 이 시대 언론이 뭘 하면 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 답은 현재 언론노동자들이 찾아야 한다. 지금 미국을 보면 트럼프가 모든 주류언론을 가짜뉴스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트위터로 활동하고 있다. 이 대목을 잘 봐야 한다. 언론의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 언론인들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또한 노조는 회사 경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권리와 책임을 철저하게 세우고 이행해야 한다. 지금은 심하게 얘기하면 방관자다. 노조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 권리와 책임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 자본과 노동이다. 자본과 노동이 국가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중심이다. 그게 바로 노동이 당당한 나라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은 소통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30년 전 오늘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무얼 하고 싶나. 

“3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국민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다. 평등 평화 통일 운동을 새롭게 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와 닿는 운동을 하고 싶다. 금융노조의 금융민주화, 언론노조의 언론민주화, 보건의료노조의 보편적 건강권 같은 구호가 국민들의 가슴속으로 다가가게 하고 싶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여전히 대중운동을 하고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은 언론민주화에 있다.” 

-언론계 후배들에게 당부할 것이 있다면.  

“언론인은 오늘의 현상을 빚어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걸 져버리면 안 된다. 왕조시대 사관은 그대로 받아 적었지만, 언론은 다르다. 그러기 위해선 사물을 정확히 봐야 한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언론계 후배들에게 또 하나 당부한다면, 건강에 유의하라. 4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한다. 맑은 물 맑은 공기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게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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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60%, 김위원장 서울방문이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 영향줄 것

국민 60%, 김위원장 서울방문이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 영향줄 것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11/27 [16:26]  최종편집: ⓒ 자주시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수석부의장 김덕룡사무처장 황인성)는 11월 23~25, 3일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18년 4분기 국민 통일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통일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한반도 평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구체적으로 국민 60.1%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36.9%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최전방 GP철거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남북 군사분야 합의 이행을 위한 최근의 조치가 남북 간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적 의견도 61%,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응답에 비해 26.1%P 높게 나타났다.

 

그리고 평양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 진전 속도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이 55.3%로 나타났다.

 

이어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남북 간 협력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분야로는 철도·도로·항만 등 인프라 건설’(33.9%)을 제일 높게 꼽았으며 그 다음으로 경제 협력’(32.8%), 보건의료 협력’(8.8%), 농업 협력’(6.6%), 관광 협력’(5.8%), 산림 협력’(1.6%) 순으로 응답했다.

 

이번 2018년 4분기 국민 통일여론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하여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됐으며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는 ±3.1%P라고 민주평통은 밝혔다.

 

▲ 민주평통이 실시한 통일여론조사. [출처-민주평통 홈페이지]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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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린 검찰총장 - "오늘 눈물 잊지 말라"는 피해자들

[현장]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부실수사 공식 사과

18.11.27 17:47l최종 업데이트 18.11.27 19:18l

 

눈물 훔치는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던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눈물 훔치는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던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남소연

"과거 정부가..."
 
준비된 사과문을 손에 든 문무일 검찰총장이 채 열 글자도 읽지 못하고 말을 멈췄다. 입술을 굳게 다문 그는 이내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아냈다. 이른바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자리였다.
 
문 총장은 27일 오후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피해자들을 만나 고개를 숙였다. 과거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저지른 과오를 사과한 것이다. 그의 눈물에 피해자들은 "오늘 눈물을 잊지 말아 달라"라고 호소했다.
 
이날 문 총장은 "그때 검찰이 진상을 명확히 규명했다면 형제복지원 전체의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지고, 인권 침해에 대한 적절한 후속 조치도 이뤄졌을 것"이라며 "하지만 검찰은 인권 침해의 실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이렇게 피해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현재까지 유지되는 불행한 상황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김용원 검사가 형제복지원의 인권 유린과 비리를 적발해 수사를 진행했으나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조기에 종결하고 말았다는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라며 "기소한 사건마저도 재판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은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만으로는 부족하겠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자분들의 아픔이 회복되길 바라며 피해자와 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면서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을 진력을 다하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만난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형제복지원 피해자 만난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남소연

형제복지원은 1975년~1987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운영된 부산 지역 최대 수용시설(약 3000명)로 불법감금, 강제노역 등 인권 유린이 자행된 곳이다. 이곳에서 숨진 이들은 확인된 것만 500여 명이다.
 
형제복지원의 설립 근거는 당시 전두환 정권의 내무부훈령 제410호 '부랑아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지침'이었다. 피해자들은 지난 9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형제복지원 사건은 위헌적 성격의, 그것도 법령도 아닌 훈령에 의해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무참히 짓밟힌 사건이며 어느 한 개인이 벌인 일이 아니라 경찰력과 행정력이 동원된 국가에 의한 인권유린이자 범죄"라고 규정했다(관련 기사 :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회 앞에서 300일 노숙한 이유).
 
1987년 탈출을 시도한 원생 1명이 직원의 구타로 사망하고 35명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져 형제복지원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박인근 원장 등은 횡령죄 등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1987년 시설 폐쇄 후 형제복지원 사건은 잊히는 듯했으나 2012년 피해자 한종선(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대표)씨가 국회 앞 1인시위를 벌이며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그를 포함한 피해생존자들은 국회 앞 농성, 릴레이 1인시위, 서명운동, 토론회, 공청회, 증언대회, 삭발, 단식, 국토 도보행진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지난해 11월 7일부터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01일째 국회 앞 노숙농성 중이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는 지난 9월 문 총장에게 이 사건의 비상상고를 권고했고, 문 총장은 지난 20일 이를 이행해 대법원에 박인근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구했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도 지난달 정부와 검찰의 사과를 권고했다.
 
피해자 딸 편지에 손편지 답장한 검찰총장
 
눈물 보인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던 중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 눈물 보인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던 중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다. ⓒ 남소연

이날 현장에는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 30여 명이 참석해 그동안의 설움을 토로했다. 피해자들은 어린 나이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혹독한 세월을 보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피해자 김대호씨는 "부산 성지초등학교 3학년 11반 학생이었던 저는 경찰에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 생각만 할수록 치가 떨린다"라며 "교회당을 짓는다며 10살 아이에게 벽돌을 찍고, 그 벽돌을 지고 올라가게 했다,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자격증도 따고 택시 운전면허증도 땄지만 마음처럼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는 "9년 가까이 저를 찾겠다고 돌아다닌 아버지는 결국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고 이후 가정이 파괴됐다"라며 "저는 골병이 들어 지금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국가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청소했던 그때가 60세 가까이 된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하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함께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동생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는 다른 피해자는 "국가가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에 가족들조차 '네가 거지처럼 살았으니 끌려간 것 아니냐'라고 말하더라"라며 "36년 동안 악몽을 꾸며 살아왔는데 이제라도 국가가 좀 앞장서서 억울한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줬으면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진주에 살던 제가 부산의 오빠 집에 잠깐 놀러 갔다가 순경들에 의해 끌려갔고, 이후 검찰이 똑바로 수사하지 않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며 "어린 나이에 끌려갔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가 없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피해 생존자들을 위해 문 총장이 진상규명에 힘을 써달라"라고 덧붙였다.
 
현재는 전주에 거주한다는 이 피해자는 이날 자신의 딸이 문 총장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읽기도 했다. 문 총장은 이후 비공개 면담 후 피해자 딸에게 수기로 답장을 써 보내기도 했다.
 
"총장님 안녕하세요. 만약 총장님이 형제복지원 피해자였다면 이러한 상황에 이를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엄마께 사과해주신다고 하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엄마가 이 일(형제복지원 피해자 모임 활동)을 하신 지 5년이 흘렀는데 무척 힘들어하셨고, 지켜보는 가족들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오늘 엄마의 상처가 조금은 괜찮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끔 신경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이△△ 학생. 엄마의 아픔은 우리나라의 아픔이었습니다. 아픔을 우리 삶의 아름다움으로 이루어내길 기대합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굳센 엄마의 모습에서, 학창시절 또 청춘시절 엄마로서의 삶을 멋지게 펼쳐나가길 바랍니다. ◯◯ 학생, △△ 학생의 행복을 기원하며 문무일 드립니다."

 
고개숙인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 고개숙인 문무일 검찰총장 문무일 검찰총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만나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남소연

한종선 대표는 이날 피해자들을 대표해 요구사항을 문 총장에게 전달했다. 요구사항에는 ▲ 애초에 검찰 윗선의 외압이 있었던 만큼 국회에 계류 중인 특별법을 검찰 차원에서 강력히 요구해 달라 ▲ 모든 인권유린 사건의 범죄자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려달라 ▲ 앞으로 검찰이 윗선에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 ▲ 한 번의 사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검찰의 뼈아픈 역사로 기억해 검찰을 개혁하는 자세를 보여 달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 대표는 "비상상고만으로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법치를 외치며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겠다는 검찰에게 잘했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함과 동시에 범죄자에겐 엄벌을 내릴 수 있는 당당한 검찰이 되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문 총장은 지난 3월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를 찾아가 검찰의 과오를 사죄한 바 있다. 최근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피해자 강기훈씨에게도 검찰총장이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관련기사 : 검찰과거사위 "검찰총장은 강기훈에게 사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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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부 1년 6개월, 도대체 이게 뭐냐"

민중공동행동, 12.1 '전국민중대회' 개최...10대 요구안 발표(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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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7  22: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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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개 진보 민중단체들로 구성된 민중공동행동은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오는 12월 1일 여의도에서 '2018 전국민중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대하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을 주축으로 한 전국 민중대회가 오는 12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개최된다.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킨 촛불에 처음 불을 당긴 지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대회를 진행한 주체들이 3년만에 '전국민중대회'라는 이름으로 오는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와 맞서는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것.

민중공동행동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는 12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개혁 역주행 저지! 적폐 청산! 개혁입법 쟁취! 2018 전국 민중대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민중공동행동은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에 즈음해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에서 이름을 바꾸어 출범했으며,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민주노점상전국연합, 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한 50여개 진보·민중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 1년 6개월이 넘도록 촛불항쟁 기간 국민들이 절실하게 요구한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서민들의 인간다운 삶은 전혀 진척이 없다며, '개악을 멈추자! 적폐는 치우자! 개혁을 당기자! 모이자 12월 1일!'이라는 대회 구호를 발표했다.

공약 미이행과 친재벌 정책 등 촛불 민의와 멀어지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고 국회에 개혁입법을 촉구하며, 사법농단 등 적폐청산을 촉구하는 것을 대회의 기조로 삼겠다고 말했다.

대회가 열리는 1일 여의도 일대에서 '밥 한공기 300원! 농정대개혁 쟁취'를 주제로 한 전국농민대회, '노점관리대책 멈춰! 폭력강제철거 안돼!' 빈민결의대회,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총 결의대회 등이 사전대회로 진행된다.

   
▲ 왼쪽부터 박석운 민중공동행동 상임공동대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김순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윤헌주 민주노점상연합 노량진수산시장 지역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석운 민중공동행동 상임공동대표는 "촛불항쟁 기간 동안 국민들이 절실하게 요구한 것은 적폐 청산, 사회대개혁, 서민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촛불정부 출범 1년 6개월이 넘어가는 동안 도대체 이게 뭔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대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적폐청산의 깃발은 요란한데 된 건 없고 사회대개혁 요구는 국회에서 멈추어 개혁 역주행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굉장히 분노한다"고 말했다.

수당없는 연장근로, 과로사 우려를 크게 하는 탄력근로제 확대가 추진되고, 5년만에 결정되는 쌀값 목표가격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196,000원으로 정하곤 생색내기에 급급하며, 집합건물인 노량진 수산시장엔 유례없는 단전단수와 용역깡패의 난동이 자행되는 등 서민의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법부내에서도 탄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사법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은 멈춰 있으며, 득표수와 의석수를 비례하도록 하자고 선거구제 개혁을 약속한 집권여당은 지금와서 딴소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촛불을 열었던 민중은  신발끈을 다시 매고 적폐의 온상인 국회, 민중을 짓밟고 민주노총을 물어뜯는데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여·야당 에 민중의 뜻을 천명하고 청와대에 전달하고자 전국민중대회를 개최하고 상징행위로 국회를 포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회 참가 규모는 노동자 1만 명, 농민 1만 2천명, 빈민 2천 명 등 총 2만 5천명 규모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노동자대회 6만명, 총파업 16만명과 총파업대회 4만명에 이어 12월 1일 민중대회를 시작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ILO노동협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 탄력근로제 확대 철회 등을 위해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김순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올해는 5년만에 쌀값을 정하고 이 쌀값은 앞으로 5년동안 바뀌지 않는다. 6년전 야당일 때 21만7,000원을 제시한 더불어민주당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19만6,000원을 제시하면서 5~6만원을 올렸다고 생색내고 있다"면서 "터진 입이라고 그걸 자랑하느냐"고 타박했다.

"'밥 한공기 300원'으로 해달라는 요구가 무리한 요구는 아니지 않느냐"며, "지금 농민들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민중공동행동은 이날 △노동 △농민 △빈민 등 민중의 요구와 △재벌체제 청산 △한반도 평화 △사법적폐 청산 및 권력기구 개혁 △성평등과 인권 △민주주의와 정치개혁 △세월호 및 위험사회 안전환경 △사회안전망, 국민연금 등 사회공공성 강화 등 '2018 민중 10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2018 민중 10대 요구안(전문)

 
1. 노동

- 노조 할 권리 가로막는 노동적폐 청산

- 비정규직 차별해소 및 철폐

- 노동기본권 보장

- 개악 최저임금법 원상회복

-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2. 농민

- 밥 한공기 300원 보장과 농업예산 2019년 정부 발표 대비 9.8% 인상

- 농민수당제 도입 및 스마트팜 밸리 사업 폐기 및 예산 전면 삭감

- GMO 완전 표시제 및 주요농산물 공공수급제 도입

- 농특위 설치 법안 조속 처리

 

3. 빈민

-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복지예산 확대

- 장애등급제, 장애인 수용시설 완전폐지

- 노점 관리대책 폐지, 용역깡패 해체

- 공공임대주택 확충, 전월세상한제 도입, 강제퇴거 금지법 제정

- 강제철거 중단, 선(先)대책 후(後)철거 순환식 개발 시행

 

4. 재벌체제 청산

① 범죄 총수일가 경영권 박탈과 불법 편법 경영승계 원천차단

- 범죄 총수일가 복귀금지를 위한 상법개정

- 총수 일가 사익추구 금지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

 

② 10대 재벌 비정규직 사용금지와 노조파괴 엄중처벌

- 10대 재벌 비정규직 사용금지와 대기업 고용의무 특별법 제정

- 재벌 노조파괴 엄중처벌과 노조 파괴기업 특별 세무조사 실시

 

③ 범죄재벌총수 구속처벌과 재벌범죄수익 환수

- 재벌범죄수익 환수

- 사내유보금 환수

 

5. 한반도 평화

- 판문점 선언 국회비준과 북미공동선언 이행 및 대북 제재 중단

-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

- 한일 위안부 굴욕 합의 파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 한미 방위비 분담금 및 전쟁비용 삭감, 무기도입 중단

- 분단적폐 국가보안법 폐지, 사면복권 및 양심수 석방, 테러방지법 폐지

 

6. 사법적폐청산 및 권력기구 개혁

- 양승태 사법 적폐청산을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 적폐판사 탄핵. 원상회복

- 국정원 해체

- 경찰 및 검찰개혁,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

 

7. 성평등 / 인권

- 차별금지법 제정, 이주민·장애인·성소수자·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 차별 철폐

- 성차별·성폭력 근절

- 낙태죄 폐지

 

8. 민주주의와 정치개혁

-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18세 선거권보장. 투표시간 연장, 유권자 표현의 자유 보장

- 국회의원 소환제, 국민발안제 도입

- 국민참여형, 기본권확대 통일헌법, 민중헌법 개헌

 

9. 세월호 및 위험사회 안전환경

- 세월호 참사 전면 재조사, 재수사

- 탈 원전, 미세먼지 근본적 대책 마련

- 생명 안전 노동의 외주화 금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규제프리존법 폐지

 

10. 사회안전망, 국민연금 등 사회공공성 강화

- 사회안전망, 사회공공성 확대

-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

- 공공병원 확충 및 의료비 인하, 어린이 노인부터 무상의료 등 의료 공공성 강화

- 무상교육 확대, 유치원 정상화

(출처-민중공동행동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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