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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항소심 형량, '세월호'가 가른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3/03 11:09
  • 수정일
    2018/03/03 11:0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재판부 "허위 진술일 가능성 높아"... 대법원 이임순 판단 기다려야

18.03.02 16:59l최종 업데이트 18.03.02 17:01l

 

우병우, 구속 후 첫 공판 출석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21일 속행공판 출석을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 우병우, 구속 후 첫 공판 출석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해 12월 21일 속행공판 출석을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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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꾸라지' 우병우의 형량이 더 늘어날 수 있을까.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최순실로 불거진 국정농단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준엄하게 꾸짖었으나, 우 전 수석의 9개 혐의 중 4개만 일부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 검찰과 우 전 수석은 모두 항소했다. (관련 기사: "최순실 비위 알고도 은폐" 판결에 고개 떨군 우병우)

실질적으로 항소심에서 우 전 수석의 형량을 높일 수 있는 혐의는 '세월호 위증'이다.

 

우 전 수석은 2014년 6월 5일, 검찰이 해경과 청와대의 전화 통화 녹음파일을 압수수색하려고 하자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당시 광주지검 형사2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검사가 법정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해경은 압수수색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며 "꼭 압수수색을 해야 하나. 안 하면 안 되겠나"라며 수사에 외압을 가했다. (관련 기사: 우병우, 해경 압수수색 검사에 전화해 "안 하면 안 되나?")

그러나 우 전 수석은 2016년 12월 22일,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증인으로 출석해 "해경과 검찰이 압수수색 장소에 갈등이 있다고 들어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압수수색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은 한 적이 없다"며 발뺌했다. 

재판부는 "기억에 반하는 허위 진술일 가능성이 높다"며 우 전 수석의 위증 혐의를 사실상 인정했으나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은 채 공소 자체를 기각했다. 국회의 고발 절차가 적법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김성태 당시 특위 위원장은 2017년 1월 4일, 특검에 우 전 수석에 대한 위증 혐의 등으로 수사의뢰서를 제출했고, 같은 해 4월 10일, 특위 소속 국회의원 13명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재판부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아래 국회증언감정법) 15조 1항을 근거로, 특위 활동(2016년 11월 17일~2017년 1월 15일)이 종료된 뒤 이뤄진 고발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수사의뢰서 또한 위원들이 위원장에게 의결권을 위임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봤다. 

'최순실 주치의' 이임순, 1심 유죄 → 항소심 '공소기각'
 

 '비선 실세' 최순실(61)씨 일가의 주치의로 알려진 이임순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로 1심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비선 실세' 최순실(61)씨 일가의 주치의로 알려진 이임순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지난해 5월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로 1심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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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끼친 건 이임순 순천향대병원 교수의 항소심 판결이다. '최순실 주치의'로 알려진 이 교수는 지난 12월 청문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에게 김영재 원장의 아내 박채윤씨를 소개해준 적이 없다며 거짓으로 증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위법성이 중하고 죄질도 가볍지 않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우 전 수석과 같은 논리로 공소 자체를 기각했다.

그러나 이 교수의 1심 재판부가 위증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바 있어, 대법원의 판단은 항소심과 다를 수 있다. 만일 이 교수가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받는다면 우 전 수석의 '세월호 위증' 유죄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1심에선 "위증죄는 진술의 허위여부를 확인해 혐의 여부를 판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며 특위 활동 기간을 국회 본회의에 결과보고서가 의결된 1월 20일까지로 판단해 위증 혐의를 유죄로 봤다.

국회에 고발권을 준 법안의 취지에 따라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국회 고발을 위증죄 소추 요건으로 보는 건 국회의 자율권에 맡긴다는 취지인데 법원이 (특위의) 고발을 인정해주지 않는 건 전후가 모순되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수사의뢰서가 인정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고소·고발 효력은 처벌 의사만 있으면 되는데 명백히 국회 고발이어야 한다는 것도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런 문제의식을 골자로 한 법안은 지난 1월,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위는 해산을 전제로 한 조직이기 때문에 해산된 뒤에도 의원 10명 이상이 서명하면 고발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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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민주주의를 공격한 폭력에 관용은 없다”

“세월호와 민주주의를 공격한 폭력에 관용은 없다”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3/02 [23:2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극우단체들이 훼손한 광화문 세월호 광장의 시설. (사진 : 416연대)     © 편집국

 

3.1절 99주년이었던 3월 1극우단체들이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난입해 추모시설과 촛불조형물을 파괴하고 불태우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4.16연대는 2일 성명을 통해 “3.1절 극우단체극우정치세력의 폭력을 반드시 단죄할 것이라고 밝혔다.

 

4.16연대는 이 사태는 세월호참사의 희생자와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극우 테러방화 테러라고 규정하며, “이러한 심각한 사태를 중지시키고 재발을 막지 않는다면 앞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어떠한 공격이 가해질지 그리고 지금의 촛불항쟁의 결과가 다시 뒤집어질지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4.16연대는 어떤 관용도 없이 끝까지 추적하여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 고소고발의 법적조치를 취하고 시민들과 함께 연대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세월호참사의 왜곡과 모욕을 끝장내고 굴함 없이 진실을 밝혀나갈 촛불을 들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극우단체들에 의해 훼손된 촛불조형물. (사진 : 416연대)     © 편집국

 

지난 촛불혁명을 주도했던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현재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로 활동 중)도 촛불조형물을 파손한 보수단체에 대해 형사고발 및 민사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퇴진행동 기록기념위는 이들 극우단체들이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때 부터 무차별적ㆍ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왔고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다원주의사회정의관용의 정신과 미덕을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짓밟아 왔다고 지적했다.

 

퇴진행동 기록기념위는 3.1절 99주년이라는 경건한 날에 도심에서 태극기와 함께 일장기를 들고 행진하는 반민족행위를 버젓이 자행했다는 것세월호 참사 추모물·추모 관련 전시물들을 무참히 파손하는 반인류적 행위를 자행했다는 것시민들을 폭행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열망을 담은 촛불시민혁명 조형물을 파괴하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것 등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 훼손된 광화문 세월호 광장의 홍보물. (사진 : 416연대)     © 편집국

 

나아가 퇴진행동 기록기념위는 극우단체들의 심각한 폭력의 현장마다 늘 극우정치인들의 선동이나 동조가 있었다며 극우정치인들의 행태 역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공적 정치권 및 공론장의 영역에서 영구 퇴출을 요구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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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세월호와 민주주의를 공격한 폭력에 관용은 없다

- 3.1절 극우단체극우정치세력의 폭력을 반드시 단죄할 것이다

 

어제 3.1절 99주년이었던 3월 1민주주의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에서 야만적인 폭력사태가 벌어졌다극우단체들과 극우정치세력은 세월호참사 추모시설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이를 저지하려던 시민을 폭행하였다또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항거한 국민촛불항쟁의 상징 조형물 희망촛불에 방화를 하고 경찰까지 폭행하였다이뿐만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시민들의 기물을 파손하고 서울시 시설물까지도 훼손하였다.

 

이 사태는 세월호참사의 희생자와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극우 테러방화 테러다.

 

극우세력은 박근혜를 탄핵하고 구속하며 처벌에 이르는 지금의 과정을 전복하기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공격해야 할지 매우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범죄를 감행했다이러한 심각한 사태를 중지시키고 재발을 막지 않는다면 앞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어떠한 공격이 가해질지 그리고 지금의 촛불항쟁의 결과가 다시 뒤집어질지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이에 우리는 어떤 관용도 없이 끝까지 추적하여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 고소고발의 법적조치를 취하고 시민들과 함께 연대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세월호참사의 왜곡과 모욕을 끝장내고 굴함 없이 진실을 밝혀나갈 촛불을 들것이다.

 

검찰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역시 정당한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신속하고 엄정한 조치를 취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8년 3월 2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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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단체·극우정치인들의 폭력과 망동불관용행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특히 극우단체를 선동하는 극우 정치인들을 강력 규탄합니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열망하던 숭고한 항쟁을 기려야할 3.1절 99주년이던 3월 1일 극우단체들의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했습니다.

 

어제 극우단체들은 세월호 참사 추모를 위한 광화문 4.16광장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하고 시민들을 위협하고 추모시설물들을 마구잡이로 파손하였습니다이를 만류하던 4.16광장 관계자들과 시민들을 폭행하기까지 했습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저녁 6시 경 극우단체들은 4.16광장 바로 옆에 서있던 촛불시민혁명 당시 세워졌던 희망촛불” 조형물이자 블랙리스트로 고난받던 문화예술인들의 피땀어린 창작물을 파괴하고 방화까지 저질렀습니다.

 

지금 많은 국민들이 이들의 반인륜적 행위민주주의와 관용의 미덕을 끝없이 위협하는 행위에 분노하고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이들의 행위가 이번 한번만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의 규탄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박근혜라는 희대의 권력범죄자의 온갖 범죄를 눈으로 확인하고도 이를 애써 모른 체하며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를 할 때부터 시민언론인경찰심지어 외국인에게 까지도 무차별적ㆍ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왔고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다원주의사회정의관용의 정신과 미덕을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짓밟아 왔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이들이 거짓뉴스로 박근혜 탄핵무효를 외치고맹목적냉전의 시각으로만 한미동맹 강화 등을 외치는 것 자체도 큰 문제이지만이는 생각과 사상의 다양성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보장할 수 있다고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그런데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문제는 이들이 3.1절 99주년 이 경건한 날에 도심에서 태극기와 함께 일장기를 들고 행진하는 반민족행위를 버젓이 자행했다는 것이요다양하고 다원적인 주장의 표출을 넘어 우리 모두가 다같이 추모하고 진상을 규명해야할 세월호 참사 추모물·추모 관련 전시물들을 무참히 파손하는 반인류적 행위를 자행했다는 것이고자신과 생각이 다른 동료 시민들을 폭행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열망을 담은 촛불시민혁명 조형물을 파괴하고 방화까지 저지르는 실질적·구체적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런 작태는 분명히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와 관용의 미덕과 정신에우리 사회의 상식적이고 공정한 운영에 극심한 해악과 실체적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더욱 심각한 것은 극우단체들의 심각한 폭력의 현장마다 늘 극우정치인들의 선동이나 동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31일 극우단체들의 망동의 날에도 자유한국당의 김문수 전 도지사김진태 현 의원 등이 함께 했습니다우리 국민들은 항상 극우단체들을 선동하고 동조하고 극단적 망언과 망동도 서슴지 않고 있는 극우정치인들의 행태 역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공적 정치권 및 공론장의 영역에서 영구 퇴출을 요구해나갈 것입니다.

 

이에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는 극우단체들의 3월 1일 폭력을 묵과할 수도용납할 수도 없는 반사회적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강력히 규탄합니다기록기념위는 앞으로 구 퇴진행동에 참여했던 시민사회단체들, 4.16연대, “희망촛불” 조형물을 창작하고 어렵게 세워냈던 문화예술대책위그리고 대다수 우리국민들과 함께 극우단체들의 반복적이고 실로 위험하기만 한 사회적 폭력행위의 근절을 위해 행동해 나가겠습니다.

 

먼저 31일 극우단체들의 폭력과 범죄행위를 형사고발하고 민사소송도 추진할 것입니다무엇보다도 우리 대다수 국민들과 함께 이들이 다시는 이러한 만행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대응도 꾸준히 전개하고동시에 평화적이고 다원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가는 기본을 지켜달라는 당부와 호소도 병행해 나갈 것입니다.

 

2018년 3월 2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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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화해가 미국의 사전협조 받을 일인가?

남북화해가 미국의 사전협조 받을 일인가?
 
 
 
김용택 | 2018-03-02 09:24: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文대통령, 트럼프에 답방형태 대북특사 파견 계획 전달”
“27일만에 11번째 통화.. ‘평창 외교전’ 결과 공유·대북공조 방향 협의”
“문 대통령, 트럼프와 전화통화..북미 ‘탐색대화’ 조율”…

“전달, 협의, 조율…”이 무슨 뜻인가? 듣기에 따라 ‘사전 허락’과 같은 뉘앙스로 들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뉴스를 보면 국민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든든해 할까? 아니면 ‘왜 미국에게 시시콜콜하게 북한과의 적대관계가 아닌 평화관계로 가기 위한 노력을 일일이 보고하고 있느냐’는 생각이 들까? 미국과 우리나라는 어떤 관계인가?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시킬 수 있다”(한미상호방위조약 재 6조)

“대한민국 군 중 한미연합작전통제권에 들어있는 부대들의 전시 작전권은 주한미군 사령관인 미군 장성이, 평시 작전권은 한국 합동참모본부가 갖는다. 평시인 데프콘 4의 경우에는 한국군이 지휘하며, 데프콘 3 부터 1까지는 미군(한미연합사 사령관)이 지휘권을 갖는다.” 냉정하게 말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국가 주권의 일부를 미국에 이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미연합작전통제권에 들어있지 않은 부대로는 2군, 특전사, 수도방위사, 수도권 인근의 2개 보병사단 등이다.

위 두 조약을 보면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비록 군사적인 입장에서만 이런 관계에 있는 게 아니다. 오늘 아침 한국대통령이 미국에게 허락을 받아 남북대화를 추진할 수 있는 듯한 이런 뉴스를 보면 자주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 다른 나라도 미국과 이런 관계에 있을까?

원종이후 100여 년간 원의 지배하에 있었던 고려는 ‘폐하’ 대신 ‘전하’라고 하고 ‘태자’가 아니라 ‘세자’라고 불러야 했다. 왕의 묘비명을 지을 때에도 ‘조’나 ‘종’이 아니라 ‘○○왕’이라고 해야 하고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왕의 이름 앞에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으로 ‘충’자를 붙여야 했다. 비극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끝난 게 게 아니었다. 36년간 국권을 빼앗긴 일본과의 관계는 그렇다 치고, 조선시대의 명나라와의 관계 그리고 해방정국에서 미국의 관계는 자주적이고 대등한 외교관계가 아닌 예속의 관계, 굴종의 관계로 이어져 왔다.

약소국의 한계로 체념하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나 문재인정부의 재제와 협상 원칙을 보면 원에 예속되었던 100여 년 친명이교를 지향하던 명나라와의 관계에 있던 조선, 그리고 해방후의 일본과, 미국의 관계, 친일, 친미의 자주성을 잃은 외교의 부끄러운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1945년 미군정시대부터 시작된 미국과의 관계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7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는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군사주권이 없는 불명예 국가로 남아 있다.

“부적격”, “광태”, “깡패”, “늙다리(dotard)”... 등 화려한(?) 별명을 달고 다니는 트럼프 덕분일까? 미국을 무조건 좋아하던 친미주의자들조차 ‘미국이 우리에게 천사의 나라가 아닌 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트럼프는 최근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나타나는 남북간 화해 분위에 노골적으로 찬물을 끼얹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정간섭에 가깝다. 문재인정부가 남북간의 접촉을 사전에 미국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허락 받는 듯한 모습이며, 남북화훼 분위기를 못마땅해서인지 통상압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면 미국이 우리에게 혈맹이요, 천사의 나라라고 믿어도 좋은지 의구심이 든다.

평창올림픽에서 미국 부통령 팬스의 속 좁은 모습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 미국은 입만 열면 ‘한반도 평화’ 운운하지만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휴정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남북불가침 조약이라도 맺도록 주선하면 안 될까? 혹 한반도의 분단 상태 유지가 미국의 무기판매에 수익에 유리하기 때문은 아닐까? 미국이 지난 달 한·미 자유무역협정 2차 개정협상에서 ‘특허권 갑질이며, 디지털교역, 약가제도, 화학물질등록평가법…’ 등 무차별 통상압력을 보면 진정한 우방국인지 약탈국인지 분별이 안 된다. 언제까지 한미관계는 자주외교가 이런 모습을 지속해야 할 것인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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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3선 도전’ 마음은 정했다”

민주당 후보 경선 결선투표제 도입엔 “시너지 높인다면 피할 이유 없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일 오후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지방분권 및 기본권 강화 개헌’ 촉구 공동선언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 도전’을 기정사실화했다.

박 서울시장은 2일 아침 가톨릭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과 전화인터뷰에서 “아직 (3선 도전을)공식 발표 안한 것 맞다”면서도 “마음은 정했다”고 더불어민주당 경선 참여 의사를 밝혔다.

박 시장은 “지난 6년간 서울의 혁신을 연속성 있게 이끌어온 사람으로서, 또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제게 주어진 소명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시민들이 좋은 정부 덕분에 내 삶이 바뀌었다, 이런 느낌을 갖도록 하는 일, 결코 녹록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중략) 제가 신년사를 통해서 ‘내 삶을 바꾸는 10년 혁명’ 이것이었는데요. 지금 서울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과 확장을 기반으로 진화를 해야 할 때”라고 결심의 배경을 전했다.

박 시장은 민주당이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데 대해 “당의 결정은 기본적으로 존중한다”면서 “다만 경선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정말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활발해서 축제의 장이 돼야 한다, 그래서 그런 건강한 경선의 흐름이 결국 본선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그리고 이게 후보간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시너지를 높이는 것이라면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진행자가 ‘결선투표가 도입돼서 만약에 1차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시면, 반(反)박원순 연대가 생길 수도 있다’고 묻자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지는 않고요.(중략) 시민들의 삶을 잘 챙기고 시정을 잘 돌본다고 하면 모든 난관과 장애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3선 도전에 성공할 경우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을 질문 받곤 “서울시장 선거가 엄중하고, 또 내 삶을 바꾸는 도시를 완성하고 이러는데 시민들의 동의와 지지를 저는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박 시장은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다”며 웃었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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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 100년...전쟁없는 한반도, 자주평화통일 이루자"

3.1민회 조직위, '평화주권선언, 신만민공동회' 개최(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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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1  23: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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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일절 99주년을 맞아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하는 3.1민회에서 가극단 '미래'의 배우들이 한반도 단일기를 들고 '3.1평화주권선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삼일절 99주년을 맞아 전국 80여 풀뿌리 단체와 개인 등이 준비한 민간차원의 '3.1민회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3.1혁명 100년 , 다시 일어나는 대한민국'대회가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됐다.

황선진 3.1민회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과  이요상 집행위원장, 재정위원장인 손운 의암 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 위원장 등은 대회사를 통해 우리부터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고 먼저 평화가 되며, 남북한 자주평화통일을 이룩하고 전쟁없는 한반도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또 전국의 각계각층 평범함 대중들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상향식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새로운 100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주권자 전국회의 상임고문인 함세웅 신부는 "3.1독립선언 99주년을 맞이해 순국선열들을 마음속에 모시면서 오늘 평화주권선언에 임한다"면서 "한반도 전쟁위기를 타파하고 1953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 3.1독립정신을 평화주권정신으로 선언해야 한다. 문재인 대툥령이 말한대로 한반도 운명은 우리가 쥐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 땅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함께 평화를 지향해 나가자"고 역설했다.

이어 "오늘의 주제는 평화이다. 평화는 모든 사람이 함께 사이좋게 지내는 삶을 말한다. 평화(平和)의 뜻은 공평하다는 의미와 함께 벼를 의미하는 화에 입구를 쓰고 있는데 곧 먹을 것을 골고루 잘 나누는 것이 평화의 기초가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4년전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명동성당에서 남북의 화해를 기원하면서 "남과 북은 말이 같다. 말이 같다는 것은 어머니가 같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같다는 것은 바로 같은 형제, 자매라는 것이다. 여유있는 형제 자매들이 어려운 형제 자매를 도와주는 것은 인간으로서, 또 가족으로서, 동족으로서의 의무이다"라고 한 언급을 상기시키면서 "민족적 관점에서 보면 외국인인 교황이 고맙기도 했지만 부끄러웠다. 교황이 남북의 일치와 화해를 호소하는데 우리 동족이 서로 헐뜯고 미워하고 증오한다면 어머니와 민족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했다. 

가극단 미래의 배우들은 1919년 당시의 차림으로 한반도 단일기를 평쳐들고 3.1 평화주권선언을 힘차게 낭독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 앞줄 오른쪽부터 황선진 3.1민회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요상 집행위원장, 의암 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 위원장인 손운 재정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날 대회는 극우 기독교계가 주도한 '3.1절 구국기도회 및 범국민대회'와 같은 시간대에 진행되어 매우 어수선한 가운데 진행되엇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들은 3.1평화주권선언 1차 제안자 643명을 대표해 발표한 '3.1평화주권선언'을 낭독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인 남과 북은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으로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구체적이고 실효성있는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군사적 행동과 일체의 갈등 조장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평화를 향한 주권자들의 의지를 모으는 주권자 평화회의와 세계 시민들의 힘을 모아 나가는 세계 평화회의 개최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대회 이후 진행된 신 만민공동회에서는 한성 6.15공동선언실천 서울본부 대표(3.1혁명 100면, 다시 일어서는 대학국민들이여, 국민주권시대로 자주통일시대로 신명나게 나아가자)와 이대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9한겨레여! 한말글 빛내어 어깨펴고 살자!), 전희식 농부철학자(탈핵전 에너지 자립선언),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여성독립선언서), 탁계석 예술비평가회 평론가(문화 독립선언문) 등이 '2018년 3.1혁명 백년 다시 일어서는 대한국민 3.1민회 추진위윈회 새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3.1민회는 영상으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1919년 3.1혁명을 '독립의지 천명과 함께 민이 주인되는 나라 대한민국의 탄생'으로, 항일무장투쟁은 '자주독립 국가건설을 향한 가장 절박한 행동', 4.3제주민중항쟁은 '외세를 거부하는 자주통일정부 수립에 두려움없이 싸우다'로 정리했다. 이어 4.19혁명은 '친일친미 반민족 독재정권을 기어이 무너뜨리다', 5.18광주민중항쟁은 '군사독재정권을 두번 다시 용납할 수 없었다', 6월 민중항쟁은 '시민의 거대한 주권선언, 군사독재 살인정권의 숨통을 끊어놓다'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촛불항쟁의 2017년을 지나 2018년 3월 1일 '이제, 우리는 3.1민회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는 광화문 일대에서 극우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태극기와 성조기가 흩날리고 날카로운 소음이 뒤섞인 가운데  개최된 '3.1절 구국기도회 및 범국민대회'와 같은 시간대에 열리면서 여간 소란스럽지 않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4.16연대는 이날 일부 극우세력들이 광화문 4.16광장에 난입해 시민들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전시한 작품과 현수막 등을 파손하고 이를 만류하던 관계자와 시민들을 폭행하는 사태에 이르러 이들을 경찰에 고소해 즉각적인 수사와 폭력가담자 전원 처벌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번 폭력사태 관련자들을 끝까지 찾아내 처벌하고 앞으로 이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함세웅 신부는 민족적 관점에서는 외국인일 수밖에 없는 교황이 남북의 일치와 화해를 호소하는데 우리 동족이 서로 헐뜯고 미워하고 증오한다면 어머니와 민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무대 위 오른쪽부터 한성 6.15공동선언실천 서울본부 대표와 이대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등이 '2018년 3.1혁명 백년 다시 일어서는 대한국민 3.1민회 추진위윈회 새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바리톤 석상근 님이 '그리운 금강산' 등 곡목을 불러 대회를 빛내주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여성 4인조 '워킹애프터 유'가 평화를 원하는 강렬한 록음악을 공연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통일비빔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3.1민회(民會) 대회사(전문)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기미(1919)년 3월 1일, 억눌려 있던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세계적으로 피압박 민중을 일으켜 세우는 횃불이 이 땅에서 일어났습니다. 온 민족의 마음과 행동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온 겨레의 양심이 서로를 공경하고 경청하고 배려하여 새 문명을 천명했습니다. 선조들의 위대한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우리의 길을 밝힙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3.1혁명을 <지금,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본래 있어야 할 대한민국으로 되돌려 놓을 것입니다. 100년의 정성을 모아 참된 자주, 독립, 평화, 자유, 풍요의 대한민국을 세울 것입니다.

외국군이 이 땅에 70여년이나 주둔하고 있으며, 정치·경제·문화·사상적으로 외국에 종속되는 고통이 이미 두 갑자가 지났습니다. 세상의 중심이 자본으로 넘어가 그 자본의 논리에 의해 4대강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산하는 찢겨지고, 이 땅위 많은 사람들과 생명들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생존권이 이리저리 짓밟히는 바, 그 정도가 심각합니다.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시련을 이겨내느라 수백 만명이 고귀한 목숨을 던졌으며, 수천만명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시련이 우리를 담금질하여 다가오는 문명사적 세상의 위기에 쓰임을 하려는 것이었다고 오히려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무려 백년의 정성이며, 백년의 공을 쌓았습니다.

때가 왔습니다. 우리의 뜻을 이룰 때가 왔습니다. 바로 하늘의 때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일은 인화(人和), 즉 이 땅위의 사람들이 하나로 어울리면 될 일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 중심들이 어울려 3.1민회로 모여들어 그 길을 가려 합니다.

우리는 수구 외세 의존세력과 반문명적인 정치경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시스템을 통해 이득을 보고 있는 그 어둠의 세력들을 지켜보면서, 3.1기미독립선언에서 밝힌 위대한 포용을 본받아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수구 세력과 외세 의존 실력자들이 어리석고 불합리한 사익(私益)추구와 공명심을 고치고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생명·평화·밝음의 철학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옛법을 새롭게 하여 <지금, 이곳>에 우리 민족 고유의 밝은 문명을 숨쉬게 할 것입니다. 그 문명은 <오래된 미래>로서의 새로운 문명이며, 한민족 르네상스의 길이며, 근본적으로 인간을 돕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길입니다. 그 길은 현대문명을 치유하는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이며, 근대국가를 넘어 호혜평등의 세계 문명이며, 물질을 포괄하는 정신문명으로 나 있는 길입니다.

3.1혁명의 정신을 본받아 종파와 정파를 넘어, 계층과 보수·진보를 아우르며 우리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나라, 새로운 문명의 길에서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더욱 믿음직한 대안으로 이 땅 많은 민초(民草)들에게 그 모습이 드러나도록 할 것입니다. 3.1혁명 100년을 시작하는 오늘, 전국의 각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들은 하늘과 만천하에 우리의 뜻을 전합니다.

공약(公約)3장

하나. 동학을 비롯하여 유·불·선, 기독교, 양자물리학 등의 모든 사조를 하나로 통하여 동서양을 아우르는 새로운 시대의 철학을 확립한다.

하나. 우리는 남북한 자주평화통일을 이룩할 것이다. 우리부터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고, 우리가 먼저 평화가 될 것이며, 우리가 앞장서서 하나가 될 것이다. 남남갈등을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할 것이며, 남북이 불가침 협정을 맺고, 북미가 동시에 평와 탈핵을 약속하도록 하고, 나아가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미국, UN 등 국제사회가 돕고 인정하는 평화의 질서로서 전쟁없는 한반도를 만들 것이다.

하나. 3.1정신으로 모든 생명들 사이의 벽을 허물고 하나됨과 어울림의 세상으로 나아가 공존(共存하도록 한다. 우리는 전국에서 각계각층의 평범한 대중들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상향식으로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3.1민회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스스로 하늘의 마음이 되도록 하여 이후 100년의 중심이 되도록 한다.

대한민국 건국 100년
3.1민회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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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3·1절 연설… 불편한 심기 드러낸 조선·중앙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3/02 10:39
  • 수정일
    2018/03/02 10:3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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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 “일본과 갈등 부를 것” 중앙 “북 비핵화 이야기 빠져”…경향 “일본에 가장 강력한 메시지”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2018년 03월 0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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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다 죽는다? 낙동강 수문은 왜 닫혔나

[주장] 특정세력에 의해 민심 왜곡... 3.1절, '4대강 독립 만세'를 외치는 이유

18.03.02 00:27l최종 업데이트 18.03.02 00:34l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삼일절을 기념하는 봄비다. 이 봄비는 여느 봄비와 달리 무척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라 농민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크게 환영받을 바이지만, 필자에게는 특히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바로 '4대강 독립'의 길로 성큼 다가가게 할 봄비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큰 기조 중의 하나가 '4대강 재자연화'였다. 이는 국민적 열망의 반영이자, 촛불 민심의 반영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따라서 이를 정책에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4대강 보 개방을 방해하는 세력들

그 수순으로 4대강 보 개방 지시가 두 차례 있었다. 지난해 6월 1일에 한 차례 수문개방이 있었고, 이후 지난해 11월 13일 2차 수문개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6월의 1차 개방에서는 개방 폭이 크지 않아서 이른바 '찔금 개방'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지난해 6월 1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낙동강 보의 개방이 이루어진 날이다.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지난해 6월 1일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낙동강 보의 개방이 이루어진 날이다.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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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지난해 11월의 2차 개방에서는 개방 폭이 비교적 컸다. 금강과 영산강은 모든 수문이 열렸다. 그러나 유독 낙동강에서만 개방의 개수도 적었고, 그마저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기막힌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 사태를 초래한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일부 세력들 때문이었다. 지난해 6월 1차 개방 때 낙동강 강정고령보 주변에는 여러 장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수문 개방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체육회나 부녀회, 새마을협의회, 이장협의회, 번영회, 한국농업경영인회 등의 이름으로 내걸렸다.

"대책없는 보개방에 달성농민 다 죽는다", "강정보 개방 결사반대한다", "이 가뭄에 달성보 개방은 미친 짓이다" 

현수막 문구는 반대 이유로 농민 핑계를 댔다. 농사 지을 물도 부족한데 낙동강 보의 수문을 열어서는 안된다는 논리였다.
 

 대구지역 단체들이 내건 '보 개방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
▲  대구지역 단체들이 내건 '보 개방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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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농민들을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다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첫 일성이었다. 필자 역시 농민의 자식이고, 도시로 나와 직접 텃밭농사도 지어본 사람으로서 농사에 물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주장에 동조해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당시의 정부 방침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농사짓는 농민들을 배려해서 보 개방 폭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선택했다. 4대강 보의 수위는 순서상으로 관리수위, 어도 제약수위, 양수 제약수위, 지하수 제약수위, 하한 수위, 최저 수위로 구분되어 있다.

이중에서 '양수 제약수위'란 것은 국토부의 정의가 "농업용 양수장 취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위"로, 농업용수 공급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수문을 연다는 뜻으로 당시 개방 폭은 딱 그 수준으로 이루어졌다. 영농철인 6월 농업용수 공급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은 수준의 조심스러운 개방이었던 셈이다.  

 4대강 보 수위의 정의. 양수 제약수위란 것은 농사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수문을 개방하는 것이다.
▲  4대강 보 수위의 정의. 양수 제약수위란 것은 농사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수문을 개방하는 것이다.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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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문이 닫히다...일부 단체와 언론이 만든 합작품

그런데도 경상도 지역 일부 단체들은 엉뚱한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것을 지역의 언론은 대서특필했고, 그것이 지역의 여론인양 호도되어 정부는 보 개방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왜곡된 여론의 반영 결과 지난해 11월의 2차 개방에서는 낙동강 8개 보 중에서 단 2개만 열리는 초라한 개방이 결정되었다.

당시 합천창녕보(이하 합천보)의 수문은 큰 폭으로 열렸다. 그로 인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래톱이 돌아오고, 새가 찾아오고, 지천이 살아나고 수달이 찾아오는 등 낙동강의 생태계가 되살아난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 MB와 문대통령께 꼭 보여주고 싶은 영상 ... 이것이 부활한 낙동강이다 )

정부는 보 개방을 통해 실제로 환경단체와 하천 전문가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하는 바를 검증해보고자 했다. 강을 실제로 흐르게 했을 때 강의 하상이나 유속, 수질, 보의 안정성 등을 보 개방 전과 비교 분석해보고자 했다. 

그를 통해 올해 연말 4대강 보의 존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었다. 보 개방이나 철거에서도 이명박근혜 정부에서처럼 일방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기조하에 세워진 나름 조심스러운 선택이었다.
 

 2차 수문개방이 이루어져 낙동강이 막 되살아나고 있을 무렵.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과 한농연 소속 농민들과의 간담회가 열렸고, 이를 지역 보수언론에서는 대서특필 했다. 가뭄으로 인한 영향을 마치 보를 개방해서 작물이 시들었다며 왜곡된 여론을 만들어냈다.
▲  2차 수문개방이 이루어져 낙동강이 막 되살아나고 있을 무렵.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과 한농연 소속 농민들과의 간담회가 열렸고, 이를 지역 보수언론에서는 대서특필 했다. 가뭄으로 인한 영향을 마치 보를 개방해서 작물이 시들었다며 왜곡된 여론을 만들어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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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자유한국당의 추경호 의원과 한농연 조직이 움직였다. 추경호 의원은 지난 1월 한농연 소속 농민들을 불러 보 개방과 관련된 간담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또다시 지역의 보수언론에 주요하게 보도 되고 그것이 지역의 일반적 여론인양 호도됐다. 

특정세력에 의해 왜곡된 농심

그러나 당시 필자가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들의 주장은 철저히 왜곡된 일방적 주장이다. 그들은 2월 중순이면 양수장을 가동해 농업용수를 공급해야 겨울 밭작물의 피해가 없을 거라면서 양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문을 개방한 문재인 정부를 성토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 실렸던 달성군의 현풍양수장 주변의 농민과 농어촌공사 고령달성지사를 통해 확인한 바 그들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낙동강변 옆 대구 달성군 현풍면 원교리의 현풍들의 보리밭. 이 들은 대부분 보리밭이고 이곳에는 실지로 마늘과 양파밭이 많이 없고, 이곳에 물을 대는 것도 땅이 녹고, 양수장이 가동하는 시기인 4월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곳 농민의 증언이었다.
▲  낙동강변 옆 대구 달성군 현풍면 원교리의 현풍들의 보리밭. 이 들은 대부분 보리밭이고 이곳에는 실지로 마늘과 양파밭이 많이 없고, 이곳에 물을 대는 것도 땅이 녹고, 양수장이 가동하는 시기인 4월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곳 농민의 증언이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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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말 낙동강 바로 옆인 대구 달성군 현풍면 원교리의 시금치밭에서 작업을 하던 농민을 만나 확인을 해보니 그는 "농사에 물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지금 당장 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르면 3월 말이나 4월 초에 가서 물을 공급해주면 된다"면서 "지금은 땅이 얼어서 물을 줄 수도 없기 때문에 양수장이 가동이 되는 그때 물을 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전화를 통해 확인한 농어촌공사 고령달성지사 관계자 또한 올해 양수장 개방은 4월 말에 계획하고 있다는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모내기철이 다가오는 4월 말이나 5월 초가 되어야 현풍양수장 양수기가 시동을 건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추경호 의원과 한농연 소속 일부 농민들의 의도는 성공을 한 셈이 된다. 결국 정부는 그들의 의도대로 지난 2월 2일 합천보 수문을 닫아 걸었다. 당시 수문개방 문제를 관리하던 환경부는 제대로 검증도 해보지 않고 일부 세력의 주장에 동조해준 셈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필자를 포함해 환경단체와 농민 등 이해 당사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사후에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잘못된 결정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발언이었다. 
 

 합천보의 수문의 닫혀 현풍양수장에서 양수가 가능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양수장은 가동되고 있지 않다.
▲  합천보의 수문의 닫혀 현풍양수장에서 양수가 가능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양수장은 가동되고 있지 않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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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수문개방을 통해 드러났던 양수장의 양수구가 합천보 담수로 인해 다시 물에 깊게 잠기게 된 지금까지도 양수장이 가동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 

'4대강 독립'의 날을 생각하다

봄비 내린 삼일절을 맞아, 지난 수개월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4대강 보 개방이란 것은 이른바 '4대강 독립'의 초석이다. 영남의 젖줄이자, 인간을 비롯한 뭇생명들의 목숨줄과도 같은 4대강이 저 죽임의 보로부터 놓여나는 것이 '4대강 독립'이다. 이명박이 세운 저 녹조라떼 제조시설인 죽임의 보로부터 강의 뭇생명들이 해방되는 그날이 바로 4대강 독립의 날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 강력히 저항한 날이 삼일절이다. 그 삼일절을 맞아 '4대강 독립운동'을 생각한다. 그리고 삼일절의 그 정신을 이어받아 기미년 삼일 독립만세를 외쳤던 그러한 각오로 '4대강 독립운동'을 진행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 본다.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현재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시리즈'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촬영 현장이다. 낙동강에서 지난 2월 초 취재 모습.
▲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현재 '4대강 부역자와 저항자들 시리즈'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촬영 현장이다. 낙동강에서 지난 2월 초 취재 모습.
ⓒ 오마이뉴스 안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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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의 핵심 지역이 낙동강이듯 '4대강 독립운동'의 핵심은 바로 낙동강이 흐르는 이곳 영남지역이다. 이곳의 왜곡된 여론을 바꾸어내고 낙동강이 예전처럼 유유히 흐르게 하는 그 길이 4대강 독립을 완성하는 길이다.

삼일절을 맞아 4대강 독립을 방해하는 세력에 맞서 당당히 외쳐나갈 것이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그 정신으로 4대강 독립 만세를 외쳐나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간들과 야생동식물과 같은 뭇생명들의 목숨줄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은 살고 싶다!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청와대 앞에서 열린 보 수문 추가개방 촉구 기자회견의 모습.
▲ 영남의 젖줄 낙동강은 살고 싶다! 4대강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청와대 앞에서 열린 보 수문 추가개방 촉구 기자회견의 모습.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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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힘차게 외쳐본다.

"대한독립 만세!!! 4대강 독립 만세!!!"

'4대강 독립운동'에 동의하고, 그 길에 동참하는 작은 통로가 있다. 다음 같이가치 모금함(관련 링크 - 다시 돌아온 녹조라떼, '4대강 독립운동'에 동참해주십시오)으로 들어가서 지지의 뜻을 밝혀주면 된다. 영남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4대강 독립군들에게 작은 힘이 되주시길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지난 10년 간 4대강사업 현장을 기록하고 이를 고발해왔습니다. 이 글은 <평화뉴스>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낙동강#삼일절#4대강 독립운동#보 수문개방#달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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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 자신감을 얻었다”

<기고> 남북공동응원단 활동과 앞으로의 통일운동
이하나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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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8  16: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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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 통신원(남북공동응원단 홍보팀장,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정책국장)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평창에서 전국으로 울려퍼진 “반갑습니다” “우리는 하나다” “다시 만납시다” 외침들. 이 현장에 ‘남북공동응원단’이 있었다.

평화올림픽이 국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순간을 목도한 우리는 통일운동에 자신감을 얻었다. 남북공동응원단이 느낀 평창올림픽의 의미와 소감을 전한다. /필자 주

 

우리는 왜 평창으로 향했나 - 단일기가 물결이 되었을 때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내내 낮이나 밤이나 단일기를 든 환영이 계속됐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평창올림픽이 시작될 때를 돌이켜보면, 자칫 아찔한 장면들이 있었다. 만경봉호가 남북의 바닷길을 열며 묵호항에 도착하는 순간, 항구에는 북측 국기를 불태우며 “돌아가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들의 염원과 동떨어진 일부세력의, 말 그대로 ‘난동’이었는데 이를 처음에 막지 못한 것이 통일운동가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팠다.”
​김병규(응원단 운영팀장, 한국진보연대 반전평화위원장)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앞둔 강릉아트센터 앞에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북측 국기를 태우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개막식 현장에서도 곳곳에 평화올림픽 ‘반대’ 집회가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올림픽이 진행되면서, 평화올림픽을 반대하는 이들의 소동은 맥을 못 추고 가라앉았다. 남북공동응원단의 ‘장외’ 응원이나 다름없는 환영활동과 이에 호응한 국민들 덕분이었다.

응원단은 평창과 강릉 등지를 단일기로 뒤덮었다. 대학생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거리에서 단일기를 들고 통일노래를 부르며 환영분위기를 만들었고, 개막식 날에는 전국에서 모인 평화통일 활동가들이 단일기 거리를 만들었다.

어느새 평창에서는 관중들은 물론 자원봉사자들도, 버스 기사도, 관계자들까지도 모두가 자연스럽게 단일기를 들었다. 우리가 들기 시작한 단일기가 하나의 물결이 되는 것을 본 순간, 우리는 ‘평화올림픽을 원하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응원도, 평화도 우리 힘으로

   
▲ 남북공동응원단은 경기장 관중들 앞에 서서 응원을 지휘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남북공동응원은 생각보다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했다. 응원단 좌석은커녕 입장권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 단일팀의 첫 경기에는 고작 11명만이 입장할 수 있었다. 이후 경기마다 응원단은 새벽부터 줄을 서가면서 간신히 표를 개별 구매해 입장해야 했다.

단일기를 공급하는 것도 ‘일’이었다. 아이스하키 경기마다 4-5천장의 단일기가 필요해 준비한 단일기는 금새 동이 났다. 특히 ‘독도가 있는 단일기’를 달라는 시민들의 성원이 대단했고, 경기가 끝나도 버려지는 단일기가 단 한 장도 없었다.

긴급 모금을 통해 단일기를 제작해야 했다. 개막식에는 미처 단일기를 충분히 배포하지 못했는데 개막식 공동입장의 순간 관중석 가득 단일기가 나부꼈다면 그것이야말로 평화올림픽 시작의 선언이 아니었을까. 못내 아쉬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북의 만남을, 감동을 만들었다. 경기장에서 처음 만났지만 같은 구호, 같은 박자로 응원소리를 맞추어내고 단일기 파도타기를 만들었다.

22일 북측응원단이 강릉 정동진에서 ‘깜짝’ 공연을 하던 날, 전농 회원들은 진행 중이던 행사를 축소하고 달려가 눈물의 공연을 만들었다. 24일 원주체육관 북측 응원단의 마지막 공연에는 6천명의 시민들이 체육관을 가득 채우고 박수를 보내며 화답했다.

주어진 것은 없지만 갖은 노력 끝에 만들어 낸 남북의 만남. 남북관계의 현 주소를 드러내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응원도 평화올림픽도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았다.

시민들이 외치는 ‘우리는 하나다’를 보며
 

   
▲ 경기장 앞에서 응원단이 나눠준 단일기를 들고 입장하는 시민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출전한 경기장 곳곳에는 어김없이 '우리는 하나다' 현수막이 내걸렸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가득했던 수천명의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우리는 하나다!”를 외칠 때의 그 소리!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고윤혜(응원단, 부산대학생겨레하나)

남북공동응원단 활동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경기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목소리다. 관중들은 숨죽이며 경기를 지켜보다가도 한 목소리로 응원을 했다.

14일 일본과의 경기에서 마침내 첫 골이 터졌을 때는 경기장이 터져나갈 듯 했다. 20일 단일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경기장 3층 구석에서부터 ‘힘내라’ 함성이 시작되면 경기장 전체 관중들이 한마음으로 단일팀을 응원했다.

시민들의 한 목소리를 이끌어낸 것은 관중 앞에 서서 응원을 지휘한 남북공동응원단이었다. 응원단 좌석이 보장되지 않았지만, 응원단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전체 응원단이 지휘자가 되어 관중들과 함께하는 응원을 만들어냈다.

“관중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누가 앞에 서서 응원하자고 하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우선 신뢰를 주자’고 마음먹었다. 경기 시작 전에 먼저 단일기를 나눠주며 자기 소개와 인사도 하고, 응원구호를 연습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내 앞의 관중들이 온 몸과 표정으로 응원에 동참하는 것을 보면서, 매 순간 감동받았다”
권순영(응원단 서울팀장, 서울겨레하나 운영위원장)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통일응원이라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관중들이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국민들이 단일팀을 믿고 지지하는 마음을, 응원으로 만들어 낸 것이 자랑스럽다.”
​전기훈(응원단 기획팀장, 부산민중연대 선전국장)

20대 통일의식이 걱정이라면? 민족을 만나게 해야

   
▲ 북측응원단의 모습. 남북 20대 응원단이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남북공동응원단의 대다수는 20대 대학생들이었다. 북측 사람을 만나는 것이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통일을 책으로, 역사로 배운 학생들. 이들에게 응원단 활동은 남다르고 값진 경험이었다.

처음 북측응원단과 마주치자 수줍어하며 ‘하이파이브’를 위해 손을 내밀던 학생들. 북측 응원단이 손뼉을 마주쳐주자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던 학생들. 20일 단일팀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까지 모두 빠져나간 경기장. 마지막으로 떠나는 북측 관계자에게 “다시 만납시다”라고 인사를 건네는 대학생들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북측응원단 200여명의 연령대는 17세에서 30세이고, 20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남측응원단에도 대학생 100여명이 있었다. 이들은 같은 곳에서 10여일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

이 젊은 20대들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 대화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단일팀 선수들이 친한 언니 동생이 되었던 것처럼 20대 남북응원단 사이에도 그 못지않은 정과 민족애가 싹틀 수 있지 않았을까.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단일팀 논란과 20-30대에서의 부정적 반응에 대해 ‘요즘 20대 통일의식이 걱정’이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말 젊은 세대의 통일 의식이 걱정된다면 해결방안은 쉽다. 우선 만나게 해야 한다. 직접 만나고, 대화하는 것만큼 통일의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다음세대를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이다. 남측응원단과 북측응원단이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응원 현장에서, 통일운동 자신감을 얻었다”

   
▲ 남북공동응원단의 최대 성과는 ‘자신감’이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남북공동응원단 활동을 마치고 응원단이 가장 크게 얻은 성과는 ‘자신감’이다. 스무 살 대학생부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생생히 경험했던 사람까지. 다양한 세대의 응원단은 시민들과 호흡하며 ‘우리가 힘을 합치면 다시 통일시대를 열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대학생들은 “시민들이 통일을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주셨다”고 고백하고, 보다 나이 많은 세대는 “2000년대에 비해 마음의 벽이 크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 뜨거운 통일열망이 살아있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응원단을 준비하며, ‘시민들이 얼마나 호응할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남북교류가 멈춰있던 시기, 종북몰이에 우리 스스로 위축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관중들 표정과 몸짓에서 마음속에 살아있는 통일열망을 확인했고, 그 에너지가 발산되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구나’ 통일운동의 자신감을 가장 크게 얻었다.”
​이원규(응원단 응원팀장, 6.15부산본부 사무처장)

평창 이후 민간통일운동의 역할을 고민한다

   
▲ 남북공동응원단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27일, 판문점에서는 패럴림픽 실무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을 오가는 남북이 벌써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통일대교 앞에서의 ‘소동’은 여전했고 앞으로도 남북관계는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고민은 본격적으로 열릴 화해시대 ‘민간통일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공동응원단 활동은 그런 의미에서 소중한 경험과 교훈을 준 생생한 현장이었다.

연초부터 매우 빠르게 또 조심스럽게 준비된 평창올림픽이었다. 오랜만에 열린 남북대화에서 과제는 산적했고, 정부도 안정적으로 ‘관’이 주도하는 올림픽을 치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평화올림픽은 결국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완성되었다.

그 과정에 민간이 만들어낸 응원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올림픽에 방문한 김영남 상임위원장, 김여정 제1부부장이 “우리는 하나다”에 감동받았다 말하고, 문재인 대통령도 “공동응원이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고 언급한 것처럼 말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남북이 신중하게 열어낸 길에서, 남북공동응원단은 남북을 잇는 뜨거운 환영열기를 만들어 냈다. 이는 고스란히 평화올림픽의 밑거름이 되었고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 복원이 본격화되는 만큼 앞으로는 보다 원활한 민관협력을 당부하고 싶다. 민간 통일운동은 이번 남북공동응원처럼 남과 북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안내자로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이연희(6.15남측위 기획위원장,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

남북관계가 열리고 많은 기회의 장이 열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어떤 기회도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았다. 경기장 사람들의 손에 단일기를 쥐어주기까지 넘어야 했던 산, 그렇게 우리가 건넨 단일기가 큰 파도와 물결을 만들어낸 장면을 기억하며, 우리는 이번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다음 통일운동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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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에 세운 소녀상 할머니는 한을 풀지 못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 ⑦] 당진 평화의 소녀상

18.03.01 12:06l최종 업데이트 18.03.01 12:06l

 

수많은 이 땅의 평범한 여성들을 강제로 전쟁터에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노예로 만든 일본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피해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졸속으로 체결한 한일위안부 합의의 폐기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전국 각지에 세워진-지금도 세워지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답사한다.  

이는 '국가'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전개된 여성 인권 유린과, 아직도 이를 공식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필자만의 평화적인 방법이며, 부끄럽고 잘못된 과거를 바르게 청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 사회의 여러 노력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단, 그냥 찾아다니기만 해서는 의미가 적다고 보고, 가능하면 소녀상이 세워진 지역의 역사성과 소녀상 건립이 갖는 의미, 소녀상의 모습과 상징성 등을 다양하게 알아보고 그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평화의 소녀상 답사를 넘는 지역 답사의 의미도 갖게 됨을 의미한다) - 기자 말 
 

당진 평화의 소녀상  당진 평화의 소녀상은 다른 일반적인 소녀상과 달리 꼿곳이 서서 하늘과 새를 바라보고 있다.
▲ 당진 평화의 소녀상 당진 평화의 소녀상은 다른 일반적인 소녀상과 달리 꼿곳이 서서 하늘과 새를 바라보고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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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 심훈, <그날이 오면> 일부 

1930년 3월 1일, 고향인 충남 당진에 터 잡았던 시인이자 소설가 심훈은 1919년 3.1 운동에 참여했던 당시의 감격을 되살리며 독립의 염원을 담아 지금도 마음을 절절하게 뒤흔드는 이 시를 썼다. 생전에는 발표하지 못했던 이 시는 해방 이후인 1949년에야 발표된다. 

<상록수>로도 잘 알려진 심훈.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되고 퇴학당한 학생, 신문사 기자이자 영화배우에 감독이기도 했던 청년, 그리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검열에 걸렸던 일제의 감시 대상, 고향 당진에서 농민문학을 개척한 계몽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그날'을 보지 못하고 35세의 짧은 인생을 불꽃처럼 살다 갔다. 

심훈이 1930년 3월 1일, 감격에 겨워 <그날이 오면>을 쓴 그날로부터 86년 뒤인 2016년 3월 1일, 그의 고향 당진시는 당진종합버스터미널 앞 광장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저항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 당진
 

심훈  시 <그 날이 오면>과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심훈은 고향인 당진에서 필경사를 짓고 살다가 35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 심훈 시 <그 날이 오면>과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심훈은 고향인 당진에서 필경사를 짓고 살다가 35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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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을 통해 알 수 있듯 당진은 저항정신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1919년 3월 10일, 16세의 원용은 학생이 서울에서 3.1 운동을 목격하고 내려와 고향인 면천(현재 당진시 면천면)에서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벌였다. 면천의 만세운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학생 주도의 3.1 운동'이었다.  

당진은 이웃한 서산과 함께 천주교가 가장 먼저 뿌리내린 고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이 당진 출신이고, 100년을 넘긴 천주교회가 여럿인 고장이다. '천주 앞의 평등'을 내세우는 바람에 서슬 퍼런 박해가 이어진 조선말에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새롭고 진보적인 사상과 종교를 빠르게 흡수하고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정신으로 역사에 일관된 흐름을 남긴 당진. 지금은 아산만과 바다로 이어지는 제철 산업 단지가 거대한 공단의 긴 띠를 형성하였고, 그 배후도시가 되면서 인구가 늘어나 2012년 '군'에서 '시'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른다.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시내가 크게 변모하고 있지만, 조금만 벗어난 시골에서는 기지시줄다리기 같은 민속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고장. 그만큼 변화가 빨라 좀 어지럽게도 보이는 당진시내에 들어서면 변화를 반영하듯 구도심과 신도시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당진 평화의 소녀상 뒷모습  당진 시가지가 확장되어 소녀상 앞에는 상가 빌딩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소녀상의 새는 그 위를 날아가려 하는 것 같다.
▲ 당진 평화의 소녀상 뒷모습 당진 시가지가 확장되어 소녀상 앞에는 상가 빌딩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소녀상의 새는 그 위를 날아가려 하는 것 같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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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당진종합버스터미널도 15년 된, 비교적 근래의 시설이고 주변에 아파트 단지와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아침에 일찍 가니 도로 건너편의 고층 빌딩들이 소녀상에 그늘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수도권의 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가 단지들이다. 그래서 이 소녀상을 잘 보려면 그늘이 없는 한낮에 찾는 것이 좋다. 

당진종합버스터미널 광장 한쪽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당진 평화의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에서 1002명의 시민과 34개 시민단체의 힘을 모아 6천만 원의 성금으로 세웠다. 이 소녀상은 다른 고장의 일반적인 소녀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우선 한복을 입은 소녀상은 앉아 있지 않고 우뚝 서 있다. 13~16세 정도의 소녀 형상이라 한다. 오른팔을 하늘을 향해 높이 들었는데, 그 손 위에는 한 마리 새가 놓여 있으며, 소녀의 시선은 새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새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당진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 오른손 위에 놓여 있는 새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며 지상과 천상의 매개체를 의미한다.
▲ 평화의 소녀상 오른손 위에 놓여 있는 새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며 지상과 천상의 매개체를 의미한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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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을 만든 배효남 작가는, 소녀가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은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고, 손 위에서 날개를 펴고 있는 새는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며 지상과 천상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발바닥에는 물방울 파장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미래 세대에까지 민족의 아픔과 슬픔, 역사적 교훈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바닥을 잘 들여다보니 할머니의 그림자와 평화를 상징하는 나비 그림도 있다. 

소녀상 옆 바닥에는 평화의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에서 새긴 글이 있다. 

"일제에 의하여 꽃다운 나이에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인권과 평화가 넘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당진시민이 마음을 모아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합니다."
 

당진 평화의 소녀상 아래 발바닥에는 물방울 파장이 있고, 그 파장 위로 할머니 그림자와 나비가 그려져 있다.
▲ 당진 평화의 소녀상 아래 발바닥에는 물방울 파장이 있고, 그 파장 위로 할머니 그림자와 나비가 그려져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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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은 충남 지역의 마지막 위안부 생존자 이기정 할머니의 고향이다. 1925년 당진(송산면 당산리)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8세 때 위안부로 끌려가 싱가폴과 미얀마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뒤 해방 후 부산으로 귀국하였다. 하지만 위안부 후유증으로 결혼 후에도 불임으로 아이를 낳지 못했고, 중풍으로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한 채 삶을 이어갔다. 2017년 11월 11일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나셨고, 당진시청에서 시민장을 치른 후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하였다. 

그래서 그런가. 소녀상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위를 올려다보면 소녀상의 시선과 손과 새가 모두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기정 할머니가 고통과 한으로 점철된 이 세상의 육신을 떠나 넋이나마 자유롭게 유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하다. 한을 품고 가신 할머니께 소녀상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란다. 
 

당진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새와 손과 소녀상의 시선이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
▲ 당진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새와 손과 소녀상의 시선이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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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삼 이렇게 또 한 분의 할머니를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괴감일지 모른다. 그분들이 생전에 원했던 것이 이루어졌나.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진정한 사과, 여성 인권과 명예 회복, 한일위안부 합의 파기, 이 말들이 아직도 허공을 떠돌고 있는 듯하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그날이 오면' 두개골이 깨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겠다는 심훈의 지극한 열망. 이미 그날이 온 지 73년째가 되어가지만 '그날'의 열정과 감동은 그저 역사 속의 박제물로만 남은 건 아닌가. 

2018년 3월 1일을 앞두고 2016년 3월 1일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보며 묻게 된다. 

심훈이 1919년 3월 1일에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1930년 3월 1일에 노래한 그 해방, 우리는 삼각산이 일어나고 한강물이 뒤집힌 그날에 얻은 해방으로부터 몇 걸음이나 더 앞으로 나가 있는가. 

※ 답사 정보 

* 서해안고속도로 당진 IC에서 나와 32번 국도 당진, 서산 방향으로 가면 당진에 닿는다. 평화의 소녀상은 당진종합버스터미널 앞 광장 서쪽에 세워져 있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를 이용해 당진에 가면 터미널 정문으로 나오자마자 오른쪽에 위치한다. 차를 가지고 가면 당진종합버스터미널 주차장에 주차하면 된다. 주차 공간이 넓고 주차비가 저렴하다. 

* 당진은 시내와 북쪽 해안의 공단 지대를 제외하면 전통적인 시골 풍경이 남아 있는 고장이다. 시간이 되면 송악 기지기줄다리기박물관에 가보거나 심훈 생가인 필경사에 들러보면 좋다. 필경사는 심훈이 직접 설계해서 지은 집으로, 1935년 <상록수>를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라면 합덕의 솔뫼성지에 가보면 좋겠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의 부조  농촌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했던 민속놀이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의 부조 농촌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했던 민속놀이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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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벌써 번식지에, 화사한 깃털 뽐내는 황여새

윤순영 2018. 02. 28
조회수 594 추천수 1
 

산수유 마을 '잔칫상'에 몰려들어 열매 포식

참빗으로 빗은 몸매에 형광빛 꼬리 깃털 눈길

 

크_포맷변환_YSY_1943_00001.jpg» 참빗으로 빗어내린 것처럼 고운 깃털의 황여새.

 

입춘이 지나면서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난 새들의 생활과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유난히 추웠던 올겨울 추위는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겨울철새들은 혼인색을 띤 채 번식지로 돌아갈 준비로 분주하다. 번식를 향해 북상하면서 먹이가 풍부한 곳으로 찾아든다. 힘든 번식을 앞두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크기변환_YSY_2022.jpg» 산수유 열매를 따먹는 황여새.

 

크기변환_YSY_2007.jpg» 열매를 통째로 삼키고 나중에 씨앗만 배설한다.

 

2월 초순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 향리천 주변의 산수유나무에 황여새 무리가 몰려들었다개군면은 산수유 마을로 새들에게는 잔칫상이나 마찬가지다황여새는 바짝 마른 산수유 열매를 즐겨먹는다. 인근 향리천 보에는 얼지 않고 흐르는 물이 있어 마른 목을 축이고 소화를 돕기에 제격이다. 물 찾아 먹이 찾아 번거롭게 멀리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크기변환_YSY_4417.jpg» 황여새는 나무꼭대기가 가장 편한 안식처다.

 

기변환_DSC_3821.jpg» 개군면 상자포리 향리천 양 방향을 따라 산수유 열매가 풍성하게 열렸다.

 

기변환_YSY_4330.jpg» 황여새는 은백양나무 꼭대기에서 주변을 살피다 안전을 확인한 후 먹이를 찾아 나선다.

 

황여새는 대개 나무꼭대기 가까이 앉는다이곳 은백양나무 꼭대기도 예외가 아니다무리를 지어 주변을 한참 살피다 한 마리가 날아오르자 무리 전체가 산수유나무로 달려든다안전이 확보된 것이다황여새는 산수유나무에 매달려 급하게 열매를 쪼아 먹는다열매를 쪼아먹다 또다시 한마리가 날아오르면 일제히 날아올라 순식간에 은백양나무 꼭대기로 돌아간다.

 

크기변환_YSY_2620.jpg» 산수유나무로 달려드는 황여새.

 

크기변환_YSY_2645.jpg» 산수유나무에 앉자마자 열매를 먹기 시작한다.

 

물을 마실 때에도 같은 행동을 보이며 이를 하루 종일 반복한다황여새 무리는 조직적인 체계와 질서 아래 움직인다새들은 열매를 따먹을 때와 물을 마실 때 무방비 상태가 된다개군면 면소재지는 차량과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번잡한 곳인데 황여새가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이 마을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기변환_YSY_3983.jpg» 산수유나무는 황여새의 풍요로운 밥상이다.

 

크기변환_YSY_2470.jpg» 황여새가 열매를 따먹는 모습이 익숙하고 솜씨가 좋다.

 

크기변환_YSY_2044_01.jpg» 그렇지만 아무 열매나 먹지 않는다. 질 좋은 산수유 열매를 골라 목을 길게 뻗는다.

 

황여새가 무리를 지어 민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맹금류의 습격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맹금류는 작은 새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그러나 맹금류는 인가와 사람을 기피한다맹금류의 생활방식을 아는 새들은 천적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려고 사람 쪽으로 다가서는 선택을 했다

 

크기변환_YSY_1964.jpg» 산수유 열매를 물고 잽싸게 날아가는 황여새.

 

크기변환_YSY_2565.jpg» 집중해서 열매를 따먹다가도 주위 낌새가 이상하면 재빨리 자리를 피한다.

 

크기변환_YSY_2704.jpg» 황여새는 이런 행동을 하루 종일 반복한다. 생존 본능이다. 뒤로 꼬리 끝이 붉은 홍여새도 보인다.

 

작은 새들은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생활하지만 특히 무리를 짓는 겨울철새들은 시골 민가 근처도심 정원공원 등 사람과 인접한 곳에 정겹게 찾아와 감고염향나무 열매회화나무 열매찔레 열매꽃사과 열매를 비롯한 나무 열매와 새순을 먹는다.

 

 황여새가 물 마시는 연속 동작

 

크기변환_YSY_3070.jpg» 주변의 안전부터 살핀다.

 

크기변환_YSY_3094.jpg»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부리를 깊숙이 물에 담그는 황여새.

 

크기변환_YSY_3072.jpg» 황여새는 물을 마실 때 아래부리를 두레박처럼 이용해 넘치게 퍼올려 삼킨다.

 

크기변환_YSY_3095_01.jpg» 황여새는 3회 정도 빠르게 물을 먹는다. 나무열매를 따먹을 때도 바쁘게 움직인다.

 

크기변환_YSY_3273.jpg» 곧바로 자리를 뜬다.

 

크기변환_YSY_3096.jpg» 물을 적당히 마시지 않으면 메마른 열매 표피가 벗겨지지 않고 씨앗과 함께 그대로 배설된다.

 

황여새의 겨울나기는 녹록하지 않다향리천의 텃새 직박구리가 방해한다직박구리는 까치만큼이나 영역에 대한 애착이 강해 자기 영역에 들어온 황여새가 못마땅하다전국을 떠도는 황여새는 어디를 가나 낯설어하고 텃새가 텃세를 부리는 힘은 막강하다.

 

두 마리의 직박구리가 황여새 무리를 쫒아 다니며 심통을 부리는 바람에 열매를 따먹기가 순조롭지 못하다그나마 수적으로 우세하여 직박구리 두 마리가 텃세를 부리기엔 역부족이지만, 황여새는 계속해서 직박구리의 눈치를 봐야 한다.

 

크기변환_YSY_4101.jpg» 황여새를 괴롭히는 향리천 텃새 직박구리.

 

크기변환_YSY_3281.jpg» 박새도 산수유나무를 찾는다.

 

황여새는 나는 모습이 몸에 비해 짧아 보인다날개를 매우 빠르게 퍼덕이며 오징어처럼 추진력을 이용해 날아가는 듯한 모양이 특이하다한국에는 전국적으로 찾아와 겨울을 나는 겨울철새이나 규모는 해에 따라 불규칙하다.

 

보통 1030마리때로는 50~100마리더 큰 무리는 200여 마리가 넘는 경우도 있다무리를 지어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땅 위에는 목욕과 물을 마시기 위해서만 내려오지만 뛰어다니다 땅에 떨어진 나무열매를 주워 먹기도 한다.

 

크기변환_YSY_1948.jpg» 급하게 산수유 열매를 따먹는 와중에도 좋은 열매를 고르는 황여새.

 

크기변환_YSY_2413.jpg»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온 황여새. 첫 번째와 두 번째 날개깃 무늬가 탈처럼 보인다.

 

몸길이는 20㎝이고 다른 새와 달리 특징적으로 멋진 긴 머리 깃이 있다머리와 몸 윗면은 흐린 분홍색을 띤 회갈색의 질감 있는 깃털이 비단결처럼 느껴진다꼬리 끝 부분은 검고 꼬리 끝에는 굵고 선명한 노란색 띠가 형광색처럼 두드러진다눈에는 길고 검은 선이 있고 멱은 검은색이다첫째 날개깃은 검은색이나 첫째 날개덮깃 윗면의 흰 줄과 날개 끝은 노란색이다.

 

크기변환_YSY_2645_01.jpg» 황여새는 화려하면서도 지나침이 없다. 꼬리 끝에 노란 띠가 있으면 황여새고 붉은 띠가 있으면 홍여새다.

 

크기변환_SY3_0305.jpg» 꼬리 끝에 붉은 띠가 있는 홍여새.

 

둘째 날개깃 끝 부분은 흰색이고 끝에 돌출된 붉은 깃털도 형광색처럼 눈에 띈다아래꼬리덮깃은 붉은색이고 배는 회갈색이다약한 소리로 찌리리리리’ 하고 반복해서 운다.

 

흔하지 않지만 겨울이면 우리 주변으로 정겹게 다가오는 새다스칸디나비아 북부에서 캄차카에 이르는 유라시아대륙 중부북미 북서부에서 번식하고유럽 중부와 남부소아시아중국 북부북미 중서부에서 월동한다.

 

 

·사진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촬영 진행 이경희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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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성노예 피해자 학살만행, 미국은 죄가 없나!

일제 성노예 피해자 학살만행, 미국은 죄가 없나!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3/01 [09:4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오늘 27일 3·1절 99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한·중·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콘퍼런스에서 일본군이 조선인 성노예 피해 여성들을 학살한 영상을 최초 공개했다.

 

서울대 연구팀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아낸 19초짜리 흑백 동영상인데 발가벗겨진 조선인 여성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중국 군민당군의 모습 등을 촬영한 이 참혹한 영상은 미·중 연합군이 중국 텅충을 일본군으로부터 탈환한 다음날 찍은 것이다.

 

▲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조선여성들의 처참한 학살 시신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찾아낸 19초짜리 흑백 동영상 속의 조선인 성노예 피해자들의 처참한 시신들 

 

▲ 일제가 조선인 성노예 피해여성을 학살했다는 문서  

 

영상을 분석한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강성현 교수는 (촬영자)소속은 '164 통신사진중대 B 파견대'라고 돼 있고 (미군)영상 카메라맨 볼드윈이 1944년 9월 15일 촬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미 연구팀은 텅충이 함락되기 직전인 1944년 9월 13일 밤에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중 연합군의 작전정보 보고서를 입수해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동영상자료가 발견됨에 따라 일본의 과거사 부정에 반박할 수 있는 새로운 자료가 확보된 셈이다.

 

▲ 2018년 2월 27일 SBS 8시뉴스에서 보도한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일본군 학살만행 증언 

 

2월 27일 SBS 8시뉴스에서는 이옥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관련 대담을 소개하였다. 

 

"데려다가 어찌했는가. 질러 죽이고 쏴 죽이고, 다 이렇게 죽였지! 먼저 죽은 사람들 정말 불쌍하지요..."

 

▲ 위안부 즉, 성노예 피해자들은 일본군의 특종군수품이었고 함락직전 군수품 폐기 방침에 따라 학살했다. 

 

▲ 군수품 폐기 차원에서 조선인 성노예 피해 여성들을 발가벗겨 무참히 학살한 일제의 만행  

 

강성현 교수는 당시 일본군에게 위안부 즉, 성노예 피해 여성들은 특종군수품이었고 일본군 점령지 함락 직전에 군수품 폐기 차원에서 조선인 여성들을 발가벗겨 무참히 학살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제는 칼로 찔러죽이고 총으로 쏴죽이고 막사에 슈류탄을 마구 던져 시체마저 갈갈이 찢어죽이는 등의 방법으로 위안부를 학살했음이 밝혀졌다.

 

▲ 이번에 동영상으로 확인된 텅충처럼 미야마 국경 인근 송산에서 학살된 위안부 시신  

 

▲ 도망을 치다 잡혀 이런 무참한 문신을 당한 북의 위안부 피해자 정옥순 할머니  

 

▲ 위안부 막사에 슈류탄을 던져 시신마저 갈가리 학살한 일제의 천인공노할 만행  

 

이런 증거사진들과 증언들이 수도 없이 나왔지만 일제는 최근 들어 더욱 기를 쓰고 성노예 문제를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매춘부니 뭐니 하며 피해자들을 이중 삼중으로 유린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 등 일본의 국군주의 보수우익들은 이미 인류정의와 양심은 저 깊은 태평양에 던져버렸고 타오르는 화산 속에 불태워버린지 오래다.

 

이번에 발굴된 동영상을 보고도 일제는 변함없이 연합군의 기록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며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정말 그렇게 나온다면 일제에게 이 학살만행에 대해 죄를 묻는 방법은 물리적인 방법밖에 남지 않게 된다.

일제는 백년 아니 천년이 가도 기어이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우리 민족의 의지를 똑똑히 새겨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동영상을 촬영하고 기록에 남긴 미군 등 연합군도 반성해야할 지점이 있다. 이런 일제의 만행을 이렇게 기록하는 등 확실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일제 전범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비호 두둔하였다. 일본을 대소전진기지로 삼고자 자신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전범자들을 이용해먹기 위해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을 눈감아 준 것이다. 

그래서 아베 총리와 같은 자들이 지금도 버젓이 성노예 만행을 부정하고 오히려 매춘부니 뭐니 하며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제사회에서는 오직 힘이 정의이다. 우리 민족의 힘을 키우지 않는 한 이런 무참한 치욕을 영영 면치 못하게 된다.

그후 한국전쟁 중 미군들에 의해 우리 여성들이 얼마나 무참한 성적 학대와 학살을 당했던가. 지금도 미군에 의해 얼마나 많은 우리 여성들이 성노예 취급을 당하고 있으며 범죄자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가. 

북미사이에 전쟁이라도 발생하면 이 땅의 여성들은 또 얼마나 참혹한 피해를 입겠는가. 

 

그래서 하루 빨리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을 이루고 부강번영할 통일조국 강력한 힘을 가진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런 참혹한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 선조들의 귀와 코를 베어다가 만들어 놓은 일본의 귀무덤이 그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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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3.1절 기념사 “위안부 문제, 일본이 끝났다고 말해선 안돼”

[전문]문 대통령 3.1절 기념사 “위안부 문제, 일본이 끝났다고 말해선 안돼”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입력 : 2018.03.01 10:42:00 수정 : 2018.03.01 11:15:02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3·1운동 정신이 “나무꾼, 기생, 맹인, 광부 이름도 없던 아버지 어머니 누이들이 앞장서 만든 민주공화국”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1919년 3·1 만세운동이 그해 5월 임시정부 수립,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민주공화국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은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지난 겨울 1700만개 촛불로 거듭났다고 현재적 의미를 말하며 “3·1운동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에 대해 문 대통령은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침탈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부정하고, 전시하 반인륜 인권범죄 행위인 위안부 문제 해결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을 비판했다. 또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며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이라고 말했다.

내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시작으로 삼겠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우리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낼 역량이 있다”며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에 기반한 번영의 새로운 출발선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3·1운동이라는) 거대한 뿌리가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의 나무를 튼튼하게 키워낼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이다”며 김구 선생 어록으로 연설을 맺었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3.1운동 아흔 아홉돌입니다. 

3.1운동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에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의 벽돌 하나하나에는 고난과 죽음에 맞선 숭고한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박제화된 기념식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기념식을 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일제 강점기동안 해마다 2천600여 명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그 날까지 10만여 명 가까이 이곳에 수감되었습니다.

열 명 중 아홉 명이 사상범으로 불린 독립운동가였습니다. 
 

10대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남쪽의 제주도에서 북쪽의 함경도까지, 나이와 지역을 막론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실천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 형제자매가 함께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어머니와 아내들이 이곳 형무소 앞 골목에서 삯바느질과 막일을 해가며 자식과 남편의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수감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모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99년 전 오늘, 마을과 장터에 격문이 붙었습니다. 

독립선언서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서울과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정주 선천, 원산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만세 운동은 순식간에 지방도시와 읍면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멀리 중국의 간도와 러시아의 연해주, 미국 필라델피아와 하와이 호놀룰루의 하늘에도 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해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국내에서만 무려 1,542회의 만세 시위가 일어났고, 당시 인구의 10분의 1을 넘는 2백2만여 명이 이에 참가했습니다. 
 

3.1운동의 경험과 기억은 일제 강점기 내내 치열했던 항일 독립투쟁의 정신적 토대가 됐습니다.
 

3.1운동 이후, 수백 수천 명의 독립군이 매일같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대한국민회,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군무도독부, 서로군정서, 대한독립단, 광복군 총영을 구성하여, 일제 군경과 피어린 전투를 벌였습니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열 사람이 일어섰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뒤를 이어 

강우규, 박재혁, 최수봉, 김익상, 김상옥, 나석주, 이봉창,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의사들이 의열투쟁을 이어갔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가 그 정점이었습니다.
 

1937년 한 해 동안에만 국내에서, 무려 3천 600건의 크고 작은 무장 독립투쟁이 있었습니다.

1940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최초의 정규 군대인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모두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입니다.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열여덟 살 유관순 열사는 지하 독방에서 고문과 영양실조로 순국했습니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의 동풍신 열사는 함경북도 명천 만세시위에 참가했고 이곳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밤을 지새우며 태극기를 그린 부산 일신여학교 학생들, 최초 여성의병장 윤희순 의사,

백범 김구 선생의 강직한 어머니 곽낙원 여사, 3.1운동 직후인 3월 9일 46세의 나이에 압록강을 건너 서로군정서에 가입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근우회 사건을 주도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열단 활동을 한 박차정 열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경을 6차례나 넘나든 정정화 의사, 우리에게는 3.1운동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어머니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독립투쟁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치열했습니다.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최후의 일각’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함께 싸워 이뤄낸 결과입니다.
 

국민 여러분, 

3.1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독립선언서에 따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었습니다.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이며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명백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되었습니다. 
 

왕정과 식민지를 뛰어넘어 우리 선조들이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3.1운동이었습니다. 
 

3.1운동의 힘이 약해질 때, 주권자인 국민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독립운동은 애국지사들만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상인들은 철시운동을 벌였습니다. 

나무꾼, 기생, 맹인, 광부들, 이름도 없이 살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누이들까지 앞장섰습니다.
 

국민주권과 자유와 평등, 평화를 향한 열망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계층, 지역, 성별, 종교의 장벽을 뛰어넘어 한 사람 한 사람 당당한 국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으로 만든 것이 바로 3.1운동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에게 헌법 제1조뿐아니라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태극기와 애국가라는 국가 상징을 물려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다고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지난 겨울 우리는,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었습니다. 

3.1운동으로 시작된 국민주권의 역사를 되살려냈습니다. 

1천7백만 개의 촛불이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 역사를 펼쳐보였습니다.

어둠을 밝혔던 하나하나의 빛은 국민 한 명 한 명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임을 또 다시 선언했습니다.

새로운 국민주권의 역사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향해 다시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우리 정부는 촛불이 다시 밝혀준 국민주권의 나라를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3.1운동의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입니다.
 

2020년 문을 열게 될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는 대한민국을 세운 수많은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길 것입니다. 

3.1운동에 참가한 나무꾼도, 광부도, 기생들도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이름으로 새겨질 것입니다.
 

국내외 곳곳 아직 찾지 못한 독립운동의 유적들과 독립운동가들의 흔적도 계속 발굴할 것입니다.

충칭의 광복군총사령부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에 맞춰 복원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에겐 3.1운동이라는 거대한 뿌리가 있습니다. 

해방과 국민주권을 가져온 민족의 뿌리입니다. 

우리에겐 독립운동과 함께 민주공화국을 세운 위대한 선조가 있고,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건국 2세대와 3세대가 있습니다. 

또한 이 시대에 함께 걸어갈 길을 밝혀준 수많은 촛불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낮출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광복을 만들어낸, 자긍심 넘치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평화를 만들어낼 역량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국민들의 역량과 자신감으로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에 기반한 번영의 새로운 출발선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우리의 힘으로 바로 세워야 합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우리 땅입니다.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지금 일본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일본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습니다.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입니다.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일본이 고통을 가한 이웃나라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평화공존과 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바랍니다. 

저는 일본에게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답게 진실한 반성과 화해 위에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우리는 오늘 3.1운동을 생생한 기억으로 살림으로써 한반도의 평화가 국민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광복 100년으로 가는 동안 한반도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를 완성해야 합니다.

분단이 더 이상 우리의 평화와 번영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국민들께 이 목표를 함께 이뤄갈 것을 제안합니다.
 

빈부, 성별, 학벌, 지역의 격차와 차별에서 완전히 해방된 나라를 만들어냅시다.

김구 선생이 꿈꾼, 세계 평화를 주도하는 문화강국으로 나아갑시다.
 

3.1운동이라는 이 거대한 뿌리는 결코 시들지 않습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는 이미 국민들 마음 구석구석에서 99년 전부터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뿌리가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의 나무를 튼튼하게 키워낼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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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평창 동계패럴림픽 대표단.선수단만 파견

남북 평창 동계패럴림픽 실무회담 공동보도문 발표 (전문)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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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7  18: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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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27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실무회담’을 열고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북측은 애초 150여 명 규모보다 축소된 24명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통일부]

북측이 오는 9일부터 열리는 평창 패럴림픽에 대표단과 선수단만 파견하기로 했다. 예술단, 응원단, 기자단 등 150여 명을 파견하기로 했던 애초 계획보다 축소된 것.

남북 27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실무회담’을 열고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공동보도문에 따르면, 북측 장애인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은 3월 7일 경의선 육로를 이용해 방남하며, 귀환 시기는 양측간 합의에 따라 편리한 시기를 정하기로 했다. 

북측은 이날 대표단 4명과 선수단 20명 등 총 24명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가 지난 1일 발표한 북측 선수단 8명보다 늘어난 것. 이 중 2명은 크로스컨트리 종목 출전 선수이며, 나머지는 임원진이다. 

여기에 북측은 추가로 선수 4명과 보호자 8명 등 총 12명의 선수단을 추가로 파견한다고 제의했으며, 이들 선수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인원이다.

통일부는 “평창 동계패럴림픽 대회에 참가하는 북측 대표단 및 선수단의 규모는 IPC와 협의를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실무회담' 종결회의 장면. [사진제공-통일부]

이번 동계패럴림픽에 북측은 응원단, 예술단, 기자단 등을 파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측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이번 평창 동계패럴림픽 대회에 예술단과 응원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추정”되며 “북측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측 예술단, 응원단의 참가가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이어가는데 이미 일정부분 기여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지난달 17일 남북고위급회담 실무회담에서 북측은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기자단 등 150여 명 규모를 파견하기로 한 합의보다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기대를 모은 리분희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의 방남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남북은 “북측 대표단은 남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르며, 남측은 북측 대표단의 편의를 보장하”며 “북측의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참가와 관련한 구체적인 실무적 문제들은 판문점을 통한 문서교환 방식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통일부는 “남과 북이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만큼, 평창 동계패럴림픽도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알리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실무회담에 남측에서는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을 수석대표로, 임찬규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 패럴림픽국장, 송혜진 통일부 과장이 대표로 나섰다.

북측에서는 황충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장을 단장으로, 정현 조선장애자보호연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윤철 조선장애자보호연맹 중앙위원회 장애자체육협회 부서기장이 대표로 마주했다.

(추가, 19:19)

[전문]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실무회담 공동보도문

남과 북은 2018년 2월 27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북측의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참가와 관련한 실무회담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북측은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에 장애인올림픽위원회 대표단과 선수단을 파견하기로 한다. 

2. 북측 장애인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은 경의선 육로를 이용하여 왕래한다. 북측 대표단과 선수단은 3월 7일에 남측으로 이동하며, 귀환 시기는 양측간 합의에 따라 편리한 시기로 한다. 

3. 북측 대표단은 남측의 안내와 질서에 따르며, 남측은 북측 대표단의  편의를 보장한다. 

4. 북측의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 참가와 관련한 구체적인 실무적 문제들은 판문점을 통한 문서교환 방식으로 협의한다. 

2018년 2월 27일

(자료제공-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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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동결-한미합동훈련 중단, ‘북미대화 입구’ 될까

북미 중재 나선 문 대통령, 북측에 설명한 ‘비핵화 방법론’은?

최지현 기자 cjh@vop.co.kr
발행 2018-02-27 19:55:13
수정 2018-02-28 07:3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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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이 25일 오후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뒤편으로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보좌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이 보이고 있다.
2018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이 25일 오후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뒤편으로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보좌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이 보이고 있다.ⓒ2018평창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과 북한이 빨리 마주 앉는 게 중요하다”며 북미 사이를 중재하고 나섰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미국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북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직접 만나서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실제 마주 앉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북미 모두 대화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지만, 그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 동결→완전한 핵 폐기’ 2단계 접근법,
현실에서 통할까?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강원도 평창 모처에서 김영철 부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비공개로 만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미 대화가 조속히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구상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미국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북미대화의 목적지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방법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청와대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문 대통령이 그동안 언급해온 구상과 현실을 감안하면 ‘단계적 방법론’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핵 동결은 대화의 입구가 되고 출구는 완전한 핵 폐기”라며 ‘핵 동결→완전한 핵 폐기’라는 2단계 접근법을 제시해왔다.

이는 북한이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비핵화 논의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미국 등 국제사회가 단계별 상응 조치를 협의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작년 6월 기자간담회에서 “최소한 북한이 추가적인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 동결 정도는 약속을 해줘야 본격적인 핵 폐기를 위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핵 동결을 핵 폐기를 위한 대화의 입구라고 생각한다면 동결에서 폐기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단계에서 서로가 ‘행동 대 행동’으로 교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도 언급했듯 이러한 구상이 실현되려면 구체적인 ‘행동’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들과의 연례회동에서 “우리는 오직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만 대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도 북한의 분명한 입장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조선신보는 최근 “남북 관계개선이 이어지는 동안,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북한은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던 작년에만 해도 핵·미사일 시험을 이어갔지만, 올해는 단 한 차례도 하지 않고 있다.

핵 동결을 선언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대한 자위권 행사이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다’던 북한의 기존 입장에 비춰보면 한결 완화된 분위기로 읽힌다.

지난 2007년 8월 3척의 미국 핵항모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지난 2007년 8월 3척의 미국 핵항모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미 해군 공개 사진

북핵 동결에 상응한 미국의 카드는?
한미 합의에 조정 가능한 한미합동훈련 조정 가능성

북한이 ‘대화의 입구’가 될 핵 동결을 공식화하는 것은 미국과의 대화 여건이 조성돼야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 여건은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일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의 대화 의지와 핵 동결 가능성을 확인한 문 대통령이 향후 미국과 대북 정책을 어떻게 조율해나가느냐가 한반도 정세를 푸는 데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한미간 협의 과정에서 쟁점이 될 대북 정책으로는 ‘대북 제재’와 ‘한미합동군사훈련’이 꼽힌다.

이중 대북 제재는 북한이 강하게 거부하는 정책일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실 대북 제재는 사안에 따라 예외로 인정하면 적용을 피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재개된 남북교류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북측 갈마비행장까지 비행할 아시아나 전세기의 이륙은 미국의 독자 제재에 걸려 있었지만 한미간 협의로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동시 제재 대상이었던 최휘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남도 예외로 인정돼 가능했다.

다만 미국 의지만 있다면 비교적 문제 해결이 쉬운 독자 제재와 달리 국제사회의 다자간 합의인 유엔 안보리 제재의 경우 문제 해결 과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응원단 등을 태우고 입경한 만경봉호 92호의 등유와 난방용 경유 등 기름 지원을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가 결국 무산된 것도 유엔 안보리 제재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이 북미 사이를 중재하더라도, 당장 대북 제재를 완화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배경이다.

그럴 경우 남는 카드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다. 북한은 한미합동훈련에 줄곧 반발해왔다. 미국은 자신들이 결코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한미 합동훈련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합동군사연습 재개 책동은 북남관계의 개선을 위하여 온갖 성의와 노력을 다하고 있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악랄한 도전으로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또 “남조선에서 외세와 함께 벌이는 합동군사연습으로 현 북남관계 개선의 흐름이 깨지게 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과 그에 추종한 자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한미합동훈련은 한미 합의에 따라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중에는 중단돼 있는 상태이다. 패럴림픽이 끝난 뒤 4월에 훈련이 재개될 가능성도 높지만, 한미간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훈련 규모와 시기 등을 조율할 수 있다는 건 확인된 셈이다. 결국 미국의 의지가 관건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7일 기자들과 만나 한미합동훈련 재개 여부와 관련해 “지금 뭔가를 가정해서 얘기를 하기에는 시기상조”라며 “아마 패럴림픽 끝나고 나서 공식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은 북미 양측에 ‘핵 동결과 한미합동훈련 중단’을 중재안으로 제시했거나 앞으로 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해결책으로 제안했던 ‘쌍중단(雙中斷)’과도 비슷하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동결하는 대신 한미 합동훈련도 중단하는 것으로, 현실적인 방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이 26일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접견한 자리에서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고,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이 빨리 마주 앉는 게 중요하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전제조건을 100% 깔고 가면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며 “펜스-김여정 만남 불발도 있었지만 그런 대화의 조건을 서로 조금씩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대화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부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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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로 조작하는 ‘마타도어’

색깔론 공격을 위한 왜곡은 극우보수의 유일한 무기
 
임병도 | 2018-02-28 09:09:4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마타도어’ 근거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편을 중상모략하거나 그 내부를 교란시키기 위해 하는 흑색선전(黑色宣傳)의 의미로 정치권에서 널리 쓰이는 말

북한 김영철이 방남하면서 SNS에는 한 장의 사진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군청색 양복을 입은 인물이 김영철과 인사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일부 SNS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김영철과 악수한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사진을 공유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아무래도 수상함”이라는 글부터 “이럴 바에야 차라리 문재인이 아니라 김영철을 대통령이라 하는 게 낫겠다”라는 비아냥이 섞인 내용들이 올라왔습니다.

극우성향의 만화가로 알려진 윤서인씨는 페이스북에 “시사만화 그리기 시작한 이래 가장 분노하면서 그린 컷”이라는 글과 함께 <미디어펜>에 연재하고 있는 한컷 만화를 공유했습니다.

만화에는 천안함 장병을 배경으로 SNS에서 돌아다녔던 사진 속 김영철과 악수하는 인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윤씨는 만화 하단에 “고개라도 좀 숙이지 않았으면”이라는 코멘트를 달았습니다.

만화를 보면 마치 문재인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고 악수한 것처럼 묘사됐습니다. 그러나 김영철과 인사를 한 인물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호텔 관계자였습니다.

사진을 왜곡한 글과 그림에는 ‘비굴한 행동이다’,’빨갱이다’,’문재인을 탄핵해야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전형적인 ‘마타도어’,’가짜뉴스’인 셈입니다.


‘색깔론 공격을 위한 왜곡은 극우보수의 유일한 무기’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부르며 북한과 내통하며 비굴한 외교 정책을 펼친다는 주장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6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내통’ 주장에 대한 문재인 전 의원의 반박 페이스북 ⓒ페이스북 캡처

 

2016년 당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문재인 전 의원을 가리켜 ‘북한과 내통했다’라고 공격했습니다. 이 대표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발간한 회고록 일부를 발췌해 지난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의견을 물은 뒤 기권했고, 그 과정에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의원이 개입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문재인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단한 모욕이다. 당대표란 분이 금도도 없이”라고 반발했습니다. 문 전 의원은 “내통이라면 새누리당이 전문 아닌가. 앞으로 비난하면서 등 뒤로 뒷거래, 북풍, 총풍, 선거만 다가오면 북풍과 색깔론에 매달릴 뿐 남북관계에 철학이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과거 북풍 사건을 벌인 새누리당을 비판하면서 “이제 좀 다른 정치 합시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페이스북에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의록을 직접 구입해 읽어봤다며 “그런데 책에도 나와 있지만 북한의 의견을 확인해보자고 한 것은 이미 우리가 기권으로 결정을 내린 이후의 일입니다. 북한이 기권하라고 해서 기권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라며 새누리당을 향해 “제대로 정독을 좀 하세요”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김정일도 만난 박근혜’

 

▲2002년 박근혜 의원은 방북을 계기로 창당과 함께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안보와 북한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가장 많이 사용한 사람들이 극우보수입니다. 이들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 편지를 보냅니다.

2001년 대선 경선 참여를 선언했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돌연 2002년 탈당합니다. 박근혜 의원이 탈당한 이유는 이회창 총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이회창 대세론에 밀려 한나라당 내에서는 도저히 대선 경선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2002년 5월 11일 박근혜 의원은 김정일이 제공한 특별기를 타고 방북을 합니다. 극진한 대접을 받은 박 의원은 김정일과 속기사만 배석하고 단독 회담을 하기도 합니다. 당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돌아온 박근혜 의원은 3일 뒤인 5월 14일 ‘한국미래연합’ 창당 대회를 합니다. 탈당 후 신당 창당을 준비할 때만 해도 별로 눈길을 끌지 못했던 박근혜 의원이었지만, 방북 이후 쏟아진 관심과 주목 속에서 화려하게 이회창과 승부를 겨루는 대선주자로 급부상합니다.


‘주사파 정권이라며 공격하는 이유는 6.13 선거 때문’

 

▲2월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부근에서 자유한국당 장제원, 김무성, 김성태 의원 등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겸 통일전선부장의 방한 철회를 주장하는시위를 하던 중 식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정권이 명실상부한 친북 주사파 정권이 아니고서야 대통령이 김영철을 얼싸안고 맞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5천만 우리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두시길 바란다. 제아무리 주사파가 득세한 청와대라고 하더라도 이 나라는 주사파의 나라가 아니라 언제나 자유대한민국 국민의 나라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김정은의 남남갈등, 한미 간 책동에 부화뇌동하는 친북 주사파 정권의 최종목표는 결국은 연방제 통일인가요?. 반미 자주를 외칠 것이 아니라 한미 동맹으로 나라의 안보를 지키고 경제적인 압박에도 벗어나야 할 때인데 주사파들의 철 지난 친북정책으로 나라가 혼돈으로 가고 있습니다.” (홍준표 대표 페이스북)

자유한국당과 극우보수가 김영철 방남을 저지하기 위한 쇼를 벌이고 문재인 정권을 주사파라고 부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6.13 선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설 연휴 전 63%에서 68%로, 민주당 지지도는 48%까지 올랐습니다. 이에 반해 자유한국당의 지지도는 고작 11%에 불과합니다. 이대로 가면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참패가 예상됩니다.

결국, 자유한국당에 남은 유일한 도구는 ‘평양 올림픽’,’빨갱이’,’주사파 정권’이라는 색깔론 뿐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 국민들은 색깔론에 속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국민들은 ‘마타도어’,’흑색선전’,’가짜 뉴스’를 신봉하며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들이 진실을 알 수 있을까요?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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