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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리비아식 해법이 헛소리인 이유3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04/28 10:34
  • 수정일
    2018/04/28 10:3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3. 아랍의 봄, 그리고 카다피의 최후

 

“후세인은 독재자이다.”

 

“카다피도 독재자이다.”

 

“둘 다 나쁜 놈이다.”

 

이 논리를 반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둘 다 나쁜 놈이고, 둘 다 이라크와 리비아를 철권통치했다. 이 둘이 죽자, 이라크와 리비아는 ‘지옥’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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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시절 리비아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실시됐다. 게다가 남녀공학이었다. 세속주의자였던(그렇다고 터키식의 완전한 세속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 독재자가 사라졌다. 덕분에 리비아는 지금 세 조각으로 나뉘어져 피 튀기는 내전 상태에 돌입했고, 유럽은 카다피의 부재로 ‘개판 5분 전’이 됐다.

 

아이러니한 게 카다피를 죽이겠다고 토네이도 전폭기, 라팔 전투기를 동원해 공격했던 유럽인데, 카다피가 죽고 난 뒤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그동안 카다피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넘어가는 걸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카다피가 재스민 혁명에 의해 위기에 처했을 무렵 리비아 주재 유럽 대사들을 불러 모아 이 같은 경고를 했었다.

 

“이 정권이 몰락하면, 유럽은 아프리카 난민들로 인해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카다피의 말은 현실이 됐다.

 

‘재스민 혁명’에 관해서는 몇 번의 기사를 통해 소개를 했기에 넘어가겠다. 재스민 혁명 초창기만 하더라도,

 

“아랍의 봄”

 

“SNS를 통한 인터넷 민주주의 혁명”

 

“철옹성 같은 이슬람 문화권에 민주주의 봄바람이 불어닥쳤다.”

 

등등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찬양했던 게 서방 세계 언론이었다. 정확히 7년 만에 중동 지역은 무간지옥이 됐다. 후세인도 카다피도 각각 자국의 얽히고설킨 정치, 민족, 종교 문제를 힘으로 억누르고 있었다(후세인과 카다피 모두 신정일치 사회를 막기 위해 종교의 정치 진출을 엄격하게 막았고, 그 결과 제법 ‘형태’를 갖춘 근대 국가의 모양새를 가지게 됐다. 독재정부란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재스민 혁명 이후 우후죽순으로 튀어나온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내세워 국가를 통치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방 언론이 말한 ‘민주주의 혁명’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물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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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당시 ‘아들’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으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내세웠다. 그리고는 3가지 증거를 내밀었다.

 

첫째, 이라크의 WMD(대량살상무기)가 국제사회에 위협이 된다

 

둘째, 이라크가 이제 생화학 무기를 넘어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

 

셋째, 이라크와 알 카에다가 결탁을 해서 9.11 테러를 일으켰다

 

하나씩 논파해 보자.

 

첫째.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가 국제 사회에 위협이 될 거라는 주장

 

이미 한스 블릭스 UN 무기사찰단장에 의해 전쟁 전에 부정되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BBC에 비밀리에 이 대량 살상 무기의 허상을 폭로한 영국 국방부 소속 생화학 무기 전문가였던 데이비드 캘리 박사의 증언과 자살이었다. 당시 캘리 박사는 블레어 총리의 최측근이었던 엘러스테어 캠벨 공보수석이 ‘이라크는 공격 명령을 내린 뒤 45분 안에 생물, 화학무기를 실전에 배치할 수 있다’는 내용을 영국 통합정보위 보고서에 삽입하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캘리 박사의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영국은 즉시 허튼 조사위원회(Hutton inquiry)를 구성했다. 캘리 박사의 죽음과 이라크 파병을 위해 블레어 행정부가 정보 조작을 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 수사했지만, 허트 조사위는 블레어에게 면죄부를 던져주고 BBC 사장 해임이라는 결과만을 남겼다.

 

미국 역시 이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CIA와 부시간의 일전이 있었다. 보복적 성격의 CIA 요원의 실명을 거론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당장 CIA 측에서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불확실한 정보임을 알려줬었다. 한스 블릭스 UN 무기사찰단장이 수차례에 걸쳐 이라크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사찰을 실시하였지만, 성과가 없었다. 한스 블릭스는 2003년 9월 17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확인 사살을 하게 된다.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는 10년 전에 폐기됐다.”

 

부시는 단순하고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이 주장을 잠재웠다. 점령한 이라크 땅에서 UN 무기사찰단을 쫓아내고, 1천 5백 명의 전문가를 총동원해 2003년 6월부터 5개월간 강도 높은 대량 살상 무기 수색 작업을 벌였다. 그들이 찾아낸 건 몇 개의 농업 비료 공장과 비료 저장고, 그리고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라고 주장하는 종이 쪼가리 한 장뿐이었다.

 

둘째, 이라크가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는 거짓말

 

2003년 1월 28일 국정연설에서 공개된 부시의 거짓말은 그의 안보 보좌관인 콘돌리사 라이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야 했다.

 

“이라크의 아프리카 우라늄 구입설을 제기한 부시의 1월 28일 국정연설은… 단지 한 문장 속에 들어간 16개의 단어일 뿐이다.”

 

미국은 끝까지 이라크의 핵무기 제조 관련 거짓말을 생산해 냈지만, 번번이 그 거짓말은 들통나고 말았다. 일례로 미국은 이라크가 농축우라늄 방식의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로 고강도 알루미늄관의 수입을 제시하였지만, 그 알루미늄관은 로켓포에 사용하기 위해 수입되었던 것이다.

 

셋째, 911테러와 이라크의 연관성

 

침공 당시 미국, 아니 부시가 주장한 이라크와 알 카에다의 연관성에 관한 증거는, 911테러의 주모자 중 하나인 모하마드 아타(Mohammed Atta)와 이라크 정보국 관료가 체코의 프라하에서 접선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체코 정보국 당국이 그런 적이 없었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리비아, 아니 카다피의 선택은 앞날을 내다본 탁견처럼 보였다. 미국은 없는 핵무기도 만들어 내 한 나라를 박살을 내는 국가였다. 이때까지 카다피는 몰랐다.

 

“미국에게 반기를 들었던 독재자의 선택지는 오직 하나뿐이다.”

 

라는 단순한 진리 말이다.

 

2011년 재스민 혁명이 리비아로 번졌다. 리비아 전역에 시위대들이 들고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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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카다피는 거의 극단에 가까운 조치들을 취했는데(‘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해야 할까? 평소의 미친 짓이 이때가 되면 어떻게 손써 볼 상황이 아닐 정도로 변해 버린다), 유전을 폭파하겠다고 하질 않나, 감옥에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풀어줘서 리비아를 혼란으로 이끌고 가겠다고 하질 않나...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까지 몰리게 된다.

 

카다피가 가장 분노했던 존재는 바로 ‘방송’이었다. 아랍권 최대 방송사였던 알 자지라가 재스민 혁명을 부채질했다는 것에 분노했고, 여기에 발맞춰 아랍의 봄을 미화하고 부추긴 서방 언론들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미국과 유럽이 나서게 된다.

 

당시 상황은 카다피에게 낙관적(?)이었다. 초반의 혼란을 수습하고 일어선 카다피는 시위대(얼마 안되어 시민군이 됐다)에 대한 무력 진압을 선택하게 됐고, 어느새 시민군으로 변한 이들을 무차별 학살하게 된다. 당시 리비아군의 숫자는 5만 명이 채 안됐지만, 그래도 ‘정규군’이었다. 기계화 장비가 있었고 편제가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공군’이 있었다.

 

하늘도 카다피를 버리진 않았다. 3월 11일 쓰나미가 일본을 덮쳤다. 전 세계 이목은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할지 말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카다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겠다고 결심했다. 전 세계 이목이 일본에 쏠려 있는 그때 시민군을 몰아세우고, 내전을 종식 시키겠다는 거였다.

 

이때 미국과 유럽이 들고일어나게 된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캐나다, 덴마크 등등이 힘 모아 뜻 모아 카다피를 공격한 거였다.

 

‘오디세이 새벽 작전(Odyssey Dawn)’이 시작됐다. 리비아 정규군은 미국과 나토 연합군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 무너졌다. 얼마간을 더 버티다가 결국 수도 트리폴리가 시민군의 손에 떨어졌다. 카다피는 나토군의 공습을 피해 2~3일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며 암울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카다피는 프랑스 라팔 전폭기의 폭격과 미국 무인기의 공습에 친위대와 호송 차량을 모두 잃고, 그 스스로도 부상을 당한다. 이때 시위대들이 카다피를 낚아챈다(시위대가 그를 권총으로 쐈다는 설과 폭격으로 입은 부상이 악화돼 죽었다는 설이 있지만, 중요한 건 아니다).

 

불과 5년 전 핵을 포기한 대가였다.

 

김성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리비아식 해법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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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식 해법이 아닌 다른 해법은 자유한국당이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김정은이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김성태의 발언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문재인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주기 위해 한국 내에서도 ‘의심’의 목소리가 있고,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봤지만, 이런 식의 접근이 통용되는 상황이 아니다. 진짜 협상력을 높여주려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야당도 담보해 준다는 초당적인 지지일 것이다. 북한에게는 10.4 공동성명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남한의 정치체제는 여당이 야당이 되고, 야당이 여당이 될 수 있는 상황이기에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만약 자유 한국당이 집권한다면 어떻게 될까? 김성태의 주장이 현실화된다는 의미다. 그 말은 즉, 김정은의 목을 따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정책을 실행하겠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다른 해법은 없을까? 카다피의 몰락 이후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우크라이나였다.

 

1991년 12월 26일 갑작스런 소련 연방의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는 얼떨결에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이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176개의 핵미사일과 1,800여 기의 핵탄두가 있었다(같이 독립한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시에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핵탄두가 있었다). 순식간에 세계 3, 4, 5위의 핵전력을 구축한 신생 독립국. 이때 순진한(?)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시는 자진 반납의 길을 걸었지만, 우크라이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우리가 소련에게 짓밟힌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1922년 소련에게 강제 합병된 아픈 기억이 있었다. 문제는 이게 소련과 우크라이나만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 점이었다. 체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신생 독립국. 핵기술, 핵무기 유지에 대한 인력이나 관리 체제, 심지어 ‘돈’도 없었던 우크라이나에게 1800여 개의 핵탄두를 쥐여준다는 건 인류의 멸망을 재촉하는 길이란 ‘공통된 인식’이 유럽과 미국의 가슴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1986년에 있었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유럽은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지 않은가?

 

(결정적으로 가난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누군가’에게 팔아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농담이 아니라 예견된 현실이다. 독립 직후 가진 건 ‘무기’밖에 없었던 가난한 우크라이나는 자신이 가진 풍부한 ‘무기’들을 제3세계를 비롯해 무기가 필요한 모든 국가에 팔아넘겼다. 소련으로부터 분리독립하던 시절 핵무기 말고도 90만 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현역용 장비, 물자와 100만 명 이상을 무장시킬 수 있는 전략 예비 물자가 우크라이나에 배치돼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건 우크라이나 정부의 소유물이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이걸 유지할 돈도, 인력도 없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순식간에 세계 최대의 ‘AK-47' 수출국이 됐다)

 

결국 1994년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대 핵보유국이 부다페스트에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안전을 보장해 주고, 덤으로 4억 6000만 달러의 경제지원을 약속받았다(5억 불도 안되는 돈에 핵무기 1,800기를 다 넘긴 거였다).

 

우크라이나는 가지고 있던 핵무기를 전량 러시아에 넘겼고, 얼떨결에(!?)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게 된다. 당시 미국, 영국은 우크라이나의 등을 토닥이며,

 

“너희들이 러시아로부터 핵위협을 받으면, 우리가 너희를 지켜주겠다.”

 

라고 약속했지만 20년 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로 진격했고, 부다페스트에서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나섰던 나머지 네 나라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비핵화의 모범사례라며, 우크라이나 사례를 북한에 적용하자고 나선 전문가들을 뻘쭘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리비아식, 우크라이나식 해법은 답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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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즉, 김정은에게

 

“네 목을 따겠다.”

태그타이틀 , , , , , ,

 

라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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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김정은, 한반도 대전환의 문 열다

[판문점 선언 해설] '완전한 비핵화' 명시로 북미정상회담 '길잡이' 대성공... 제목에 '통일' 들어간 첫 문서

18.04.27 23:38l최종 업데이트 18.04.28 00:27l

 

남-북 정상 '도보다리' 친교 산책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부근 '도보다리'까지 산책하고 있다.
▲ 남-북 정상 '도보다리' 친교 산책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부근 '도보다리'까지 산책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한반도 대전환이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정상회담을 통해, 1953년 7월 27일 이후 '언제라도 전쟁이 터질 수 있는' 휴전 체제였던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대전기를 만들었다.

1993년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이후 현재까지 한반도를 짓눌러온 북한 핵문제에 대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함으로써 돌파구를 만들었다. 또 올해 내에 한국전쟁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 세계에 마지막 남은 냉전 체제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열 수 있는 초석을 놓은 것이다. 

양 정상이 합의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은 지금까지 나온 남북 합의문 중에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유일한 선언문이며, 제목에 '통일'이 들어가 있는 첫 문서이기도 한다.
남-북 정상, '판문점 선언' 포옹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뒤 포옹하고 있다.
▲ 남-북 정상, '판문점 선언' 포옹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뒤 포옹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완전한 비핵화'는 사실상 CVID... 트럼프, 북한 뜻 알았기에 김정은 칭찬한 것" 

이번 선언은 ▲ 한반도비핵화 ▲ 항구적 평화구축 ▲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이날 회담의 3대 의제에 대해 매우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양 정상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데 합의하고 이를 직접 발표했다. 

이번 회담 전날까지, 양측은 합의문에 '완전한'이라는 문구를 포함시키는 데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오늘 양 정상의 직접 회담을 통해 최종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5일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북측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측의 체제안전이 보장되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구두로 밝힌 내용을 명문화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이야기 나누는 정의용-리수용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리수용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27일 오후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남-북 정상의 식수 행사를 마치고 대화하고 있다.
▲ 이야기 나누는 정의용-리수용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리수용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27일 오후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남-북 정상의 식수 행사를 마치고 대화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이와 관련해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들은 현재까지 어떤 합의서에도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 한 적이 없었다"면서 "이번 합의문에 김 위원장이 정의용 실장에게 말한 내용이 명시되는 것만으로도 이번 정상회담은 '성공'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완전한 비핵화'가 명문화됐다는 점에서 대성공인 셈"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완전한'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미국 정부가 강조해온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clasmantlemen)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도 이미 북한의 의중이 이 정도 수준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계속 김정은 위원장을 칭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도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표현에 동의한 것은 그가 이미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기로 결심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청와대도 이날 합의 직후에 낸 '2018 남북정상회담 결과 설명자료'에서 "이를 통해 본격적인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개시와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뒷받침"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표현대로 한다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이번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대해 '확실한 길잡이'가 됐다는 얘기다.

실질적 비무장지대화·판문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합의

두 번째 의제 '항구적 평화구축'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진전을 만들었다.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는데 합의한 것이다.

이는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10·4 선언 4항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시점을 '올해'라고 못 박아 이행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이와 함께 ▲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인 평화지대화 ▲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화를 위한 실제 대책 수립 ▲ 5월 내 장성급 군사회담을 시작으로 국방부 장관 회담을 비롯한 군사당국자회담 수시 개최 등에 합의했다. 또 '단계적 군축 실현'과 '불가침 합의 재확인'에도 뜻을 모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가 원한 내용 모두 담았다... 우리에게 최선의 결과" 

세 번째 의제인 '남북관계 진전'분야에서도 ▲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 민족공동행사 적극 추진, 2018년 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경기들에 공동 진출 등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 및 접촉 활성화 ▲ 8.15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 진행 등 이산가족·친척상봉 문제 협의 ▲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의 적극 추진 등을 합의했으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과 현대화 등의 성과를 냈다.

핵 문제에 대한 유엔의 대북제재가 시행중이라는 점 때문에 경제협력 분야는 10.4선언 합의 내용과 철도와 도로 분야 정도로 한정한 것으로 보인다. 

양 정상은 이번 합의에 대한 이행 의지도 적극 밝혔다. 정기 회담과 직통 전화 사용을 약속했으며, 문 대통령이 올해 가을에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내용도 합의서에 담았다. 

실제로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정권의 힘이 가장 강력한 집권 1년 차이고, 김 위원장도 의욕이 왕성한 집권 7년차라는 점에서 1, 2차 정상회담에 비해 이행 동력도 강한 편이다. 

남북관계 전문가인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목표했던 내용들이 다 담겨있다"면서 "우리로서는 최선의 결과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남-북 정상 '도보다리' 친교 산책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부근 '도보다리'까지 산책하며 친교의 시간을 갖고 있다.
▲ 남-북 정상 '도보다리' 친교 산책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부근 '도보다리'까지 산책하며 친교의 시간을 갖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7.4공동성명 + 남북기본합의서 + 6.15 선언 + 10.4 선언 

이번 합의는 과거 남북간 핵심 합의들인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6.15선언, 10․4선언의 내용을 망라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선언문 1항에 언급한 '자주통일'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이 합의한 3대 통일원칙의 하나다. 항구적 평화 정착의 방안들로 거론된  '단계적 군축 실현'과 '불가침 합의 재확인'은 1992년에 나온 남북기본합의서의 핵심 내용 중 하나였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기본합의서의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가 원형이다.  6.15선언과 10.4선언은 아예 이번 합의문에 명시됐다.  양 정상은 이와 관련해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 개선과 발전이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 내용을 총괄해 합의문 서두에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하였다"고 선언했다.
 
'곧 다시 만나요' 남-북 정상 부부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앞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 환송공연을 마친 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헤어지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곧 다시 만나요' 남-북 정상 부부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앞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 환송공연을 마친 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헤어지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영상 제공 : 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영상 편집 : 황지희 기자 ) ⓒ 황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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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은 엉터리 댐, 허물고 원상 복구해야

김정욱 2018. 04. 27
조회수 766 추천수 0
 
내성천은 담수 능력 큰 ‘천연 댐’에 자정능력 뛰어난 모래강
지반 약하고 산사태 잦아, 수질개선용 영주댐에 썩은 물 고여
 
y3.jpg» 녹조로 초록색으로 물든 영주댐의 모습. 황선종 제공.
 
나는 1970년대 초 팔당댐을 만들 때 수리분야의 설계에 관여하면서 팔당의 물에 관심을 가졌다. 그때 팔당의 강물이 너무나 깨끗하고 좋았기 때문에 여기에 댐을 만들면 서울 사람들 정말로 좋은 물을 마시게 될 줄 알았다. 그리고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몇 년 후에 돌아오니 팔당댐이 완공되어 있었다. 깨끗한 물을 기대하고 팔당을 찾았는데 녹조가 잔뜩 끼어 냄새가 나고 팔을 담그면 손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탁해진 물을 보고 놀랐다. 부영양화를 이론으로는 배웠지만 팔당의 물에 이렇게까지 부영양화가 진행되어 변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책임은 여기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지역의 농민들이 뒤집어썼고 분뇨로 농사짓다 발각된 사람은 감옥에 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껏 엄한 규제를 받게 되었다.
 
4대강 사업의 하나로 최근에 완공한 경북 영주시 내성천 영주댐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강이 인공화되어 옛 모습을 잃었는데, 우리나라 모래하천의 원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간주하여 보존의 가치가 크다고 인정되던 강이 내성천이었다. 회룡포, 선몽대, 무섬마을 등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들이 다 이 내성천을 끼고 있는 곳들이다. 내성천은 소백산의 부스러진 화강암에서 특별히 많은 양의 모래가 공급되면서 세계에서도 드문 모래강으로 알려졌다. 
 
y6.jpg» 고운 모래와 깨끗한 물로 희귀생물의 서식처요 어린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던 내성천의 옛 모습. 박용훈 제공.
 
유럽은 석회암과 편암이 많은데 일교차가 크지 않아 풍화된 점토는 가벼워 잘 떠내려가기 때문에 강바닥에 쌓인 모래가 많지 않다. 그래서 강들이 깊고 좁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화강암이 많은데, 큰 일교차로 인하여 풍화되어 모래가 많이 나와서 강바닥에 쌓이기 때문에 강들은 얕고 넓다. 소백산은 특히 화강암의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천둥만 쳐도 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흙이 잘 부스러져 내려 모래의 공급이 많은 지역이다. 
 
잘게 쪼개진 모래와 또 모래 사이에 낀 점토는 대개 음전하를 띠는데 전기적인 인력으로 콜로이드상의 유기 오염물질이나 광물질을 흡착하고 또 모래 사이의 틈으로 오염물질을 걸러준다. 그리고 모래 바닥은 수많은 생물이 사는 서식처가 되어 이들 생물이 여기에 걸러진 오염물질을 소화해 내기 때문에 물을 깨끗하게 한다. 그래서 극히 깨끗한 모래강에서 살 수 있는 흰수마자와 먹황새와 같은 희귀생물들의 서식처였고 고운 모래와 깨끗한 물로 인하여 아이들의 훌륭한 물놀이터가 되어 왔다. 
 
05640589_P_0.JPG» 내성천이 주 서식지였던 멸종위기종 어류인 흰수마자. 박용훈 제공.
 
이 모래의 수질정화 능력은 상수처리장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마시는 물은 강모래에 한 번 쓱 걸렀다가 소독해서 각 가정으로 보내주는 것뿐이다. 나는 전에 실험에 쓰다 남은 큰 수조가 하나 있어서 이를 어항으로 쓴 적이 있다. 이 수조에다 강모래를 깊이 채우고 수초를 심어 물고기를 길렀는데 어항의 물은 한번 넣으면 몇 년간 갈아 주지 않아도 물고기들이 잘 살았다. 모래가 물을 잘 정화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강바닥에 두껍게 쌓인 모래는 물을 저장하는 댐 구실을 한다. 강바닥 모래의 절반가량은 빈틈인데 여기에 물이 저장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깨끗한 물이 저장된다. 그래서 내성천 사람들은 가뭄을 모르고 살아왔다. 강바닥의 모래만 파면 언제나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래강 자체가 훌륭한 댐인데 여기에다가 또 댐을 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래서 이전에도 영주에 댐을 짓겠다는 계획이 나왔지만, 그때마다 주민들이 가뭄이나 홍수대책이 필요한 곳이 아니라고 반대하여 짓지 못하던 것을,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밀어붙여 댐을 쌓았다. 수몰지구의 주민들은 고령의 농민들만 남아 있었는데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정든 땅을 떠났다. 
 
05386867_P_0.JPG» 2015년 수몰되기 직전의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모습. 뒤로 댐이 보인다. 영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영주댐의 목적은 지금까지 모든 댐의 공통적인 목적이었던 홍수나 가뭄 대책이 아니었다. 낙동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하여 여기에 내성천의 깨끗한 물을 저장했다가 깨끗한 물을 하류로 흘려보내 낙동강의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댐의 주목적이었다. 4대강 사업 자체가 물그릇을 키워 수질오염을 희석하고 또 하수처리장을 지어 수질오염 배출량을 대폭 줄여 물을 깨끗하게 하는 사업이라면서 또다시 깨끗한 물을 흘려보낼 댐을 만든다는 것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영주댐에 물을 담자 이 물에 녹조가 일어나 시퍼렇게 되었다가 또 녹조가 사라지면 시커멓게 썩어 분뇨 냄새가 나는 물이 되고 말았다. 댐의 상류에는 많은 축산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전에는 그 두꺼운 모래가 물을 맑게 하여 깨끗한 물을 만들었다. 댐을 짓고 난 후에 모래 공급이 끊어지면서 내성천에는 모래가 사라져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시커멓게 썩어 냄새나는 물이 흘러가면서 완전히 망가졌다. 낙동강의 수질을 개선하기는커녕 도리어 수질을 악화시키는 오염원으로 등장했다. 
 
05386951_P_0.JPG» 영주댐이 건설된 뒤 내성천의 모래밭은 급속히 초지로 바뀌었다.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금강마을 앞 내성천 모습. 영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영주댐은 수질오염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비난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앞으로 큰 물난리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도 안고 있다. 댐은 단단한 암반 위에 세워야 하고 옆구리도 암벽에 걸쳐야 한다. 잘 지었다고 소개되는 세계 모든 나라의 댐들이 다 이렇게 지어져 있다. 그러나 영주댐은 바닥에 암반이 안 보일 뿐만 아니라 잘 부스러져서 적당하게 사면 처리를 한 흙더미 같은 곳에다 댐을 걸쳐 놓았다. 미국, 프랑스, 호주,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댐이 무너진 경험이 있는데, 무너진 댐들은 옆구리가 터져 무너진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연천 댐도 옆구리가 터져서 무너졌다. 이런 곳에다 댐을 세워서는 안 된다. 
 
또 하나 중요하게 지적할 것은 산사태가 일어나는 곳에다 댐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바욘트 댐은 산사태가 일어나고 지반이 약한 지역에 댐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지었는데, 이 댐을 짓고 난 뒤에 이 지역에 지진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댐에 담아둔 물의 엄청난 무게에 지반이 내려앉은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이론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1963년에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댐이 넘쳐 무너졌고 이로 한하여 하류의 5개 마을이 사라지고 2000여 명이 죽는 참사가 벌어졌다. 
 
y1.jpg» 영주댐 주변에는 산사태 흔적이 많다. 정수근 제공.
 
영주댐 지역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내성천을 모래 강으로 만들 정도로 적은 비에도 모래흙이 잘 흘러내리는 곳이어서 지금도 곳곳에 산사태가 일어난 흔적을 많이 관찰할 수 있다. 이런 곳에다 다량의 물을 저장하면 물을 머금은 흙이 무너지면서 산사태를 불러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바욘트 댐이 좋은 교훈이 되어야 한다. 
 
y5.jpg» 영주댐 지역의 사질토로 작은 비에도 모래가 쉽게 흘러내린다. 정수근 제공.
 
영주댐을 짓고 난 뒤 내성천에 모래 공급이 끊어지면서 교량들이 밑동이 드러날 정도로 강바닥에 침식이 일어나고 있다. 이 모래는 댐 안에 다 쌓이고 있어서 댐의 수명도 길지 않다. 영주댐은 엉터리 목적을 내세워 건설한 엉터리 댐이다. 허물고 원상복구 하는 것이 답이다. 
 
김정욱/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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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선언 : 남북이 함께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 시대’ 개막

굳게 손 맞잡은 문재인-김정은 “더 이상 전쟁은 없다, 새로운 평화의 시대”

최명규 기자 acrow@vop.co.kr
발행 2018-04-28 00:59:05
수정 2018-04-28 03: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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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위원장이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사인, 교환한 뒤 서로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위원장이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사인, 교환한 뒤 서로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남과 북이 함께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 시대가 개막했다. 남북의 두 정상은 굳게 손을 맞잡고 65년간 계속된 '전쟁의 시대'를 종식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끊어진 혈맥을 다시 잇고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분단과 대결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만났다. 두 정상은 '금단의 선'이었던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손을 맞잡고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경계를 허문 두 정상의 만남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일명 '판문점 선언')을 탄생시켰다. 판문점은 이제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됐다.

"더 이상 전쟁은 없다,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

남북의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엄숙히 선언했다.

특히 두 정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 선언'을 하기로 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인 한국전쟁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정치적 선언인 종전 선언은 정전 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 평화 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미국과 중국도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만큼, 남북은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북측이 주동적으로 취한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20일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북부핵시험장(풍계리) 폐기를 선언했다. '완전한 비핵화' 의지 표명은 향후 개최될 북미정상회담과도 밀접히 관련돼 있는 대목이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은 '불가침 합의'를 엄격히 준수하는 한편,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인 군축도 실시하기로 했다.

새로운 평화의 시대, 남북이 함께 주도한다

이러한 판문점 선언에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남북이 함께 주도해야 한다는 두 정상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민족 자주'의 원칙이다. 이는 1조 1항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으로 명시됐다.

남북 정상은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핫라인)를 통해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기로 했다. 한반도 문제를 두 정상이 직접 풀겠다는 것이다. 회담 정례화 차원에서 문 대통령은 올 가을 평양을 방문한다.

앞서 역사적인 2018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에 이르게 된 것도 남북의 주도적 역할, 진정성 깃든 노력, 담대한 결단 덕분에 가능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순간부터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끈기있게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전면 개선 의지를 피력하면서 김여정 특사를 비롯한 고위급 대표단과 선수단·응원단·예술단 파견으로 화답했다.

남북 공동의 노력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세계 만방에 전하는 장이 됐다. 또 평창에서 불어온 봄바람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길을 열었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에 갔다 다시 남측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에 갔다 다시 남측지역으로 향하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10년간 꽉 막혔던 남북관계, 확 뚫린다

남북이 함께 새로운 국면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우선 10년간 꽉 막혀 있던 통로를 확 뚫어야 한다. 이에 따라 1조 1항에는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의 내용이 담겼다.

남북은 올해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3년 만에 재개하기로 했다. 또한 동해선·경의선 철도 및 도로들을 연결하기 위한 대책을 취하기로 합의했다. 철도와 도로 연결은 남북 공동 번영의 기초가 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개선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어떤 국제 정세 변화가 있더라도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바탕 위에서 진행돼야 한다. 선언에는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방안들이 명시됐다.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대표적이다. 개성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적 장소이다.

특히 두 정상은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과 같은 '모든 남북 선언과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하기로 했다. 남북 간 모든 약속들을 반드시 지킨다는 원칙을 확립한 것이다.

6.15를 비롯한 남북에 모두 의의가 있는 기념일에는 정부 당국,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추진한다. 올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경기에도 남북은 공동으로 참가하게 된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당국뿐만 아니라 신분, 계층을 넘어선 전민족적 단합이 기반이 돼야 한다.

군사긴장 완화:DMZ와 NLL을 평화지대로
군사 회담 등 대대적 남북대화 국면 열린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도 필수적이다. 남북 정상은 선언에서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 방안으로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일체의 상호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 전단살포 등이 중지되고 그 수단이 철폐된다.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추진된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드는 대책도 마련된다. 또 남북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에 대한 군사적 보장 대책을 취하기로 했다.

남북은 이러한 군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사 당국자 회담을 자주 개최하기로 했다. 당장 5월에는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리게 된다.

군사 회담 외에도 향후 대대적인 남북 대화 국면이 펼쳐진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합의된 문제들을 실천하기 위해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기로 했다.

남북정상회담의 모든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북측으로 돌아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를 배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모든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북측으로 돌아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를 배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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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당일, 조선일보 “북핵 폐기 못하면 아무 것도 아냐”

[아침신문 솎아보기] 남북정상회담, 단판승부 요구하는 조중동… “정부발표 따르라” 방통심의위 월권 논란도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8년 04월 27일 금요일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날 아침신문들은 1면에서 정상회담 소식을 다뤘다. 단계적 평화체제 구축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보수신문은 ‘단판승부’를 요구하고 나섰다. 조중동은 일제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상회담 보도에 대한 사전 ‘권고문’을 배포한 데 대해 ‘언론통제’ 논란을 제기했다. 드루킹 논란을 계기로 네이버에 ‘아웃링크’를 요구하는 기사들도연일 쏟아지고 있다.

다음은 27일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 오라”(경향신문)
“이 길에서 평화가 시작된다”(국민일보) 
“9시30분 판문점, 비핵화 첫발 뗀다”(동아일보) 
“분단 넘어서 평화 새길로”(서울신문) 
“분단 5cm 벽 넘어... 남북 평화 새 길 연다”(세계일보) 
“25년을 끌어왔다, 북핵 마침표 찍자”(조선일보) 
“비핵화 여정... 한반도 빅게임 시작됐다”(중앙일보) 
“1953. 7.27 정전 2018. 4. 27 평화”(한겨레) 
“남과 북, 모이고 포개졌던 사을 기억해 냈으면”(한국일보) 
 

▲ 27일 한겨레, 경향신문 1면.
▲ 27일 한겨레, 경향신문 1면.

회담 성패는 ‘비핵화 의지’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의제는 크게 비핵화, 한반도 평화구축, 남북관계 등 3개 분야다. 이 가운데 정부와 언론은 비핵화 명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임종석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은 “뚜렷한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이것이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함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면 이번 정상회담이 매우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이번 회담에서의 비핵화 ‘의지’가 명문화 되는지 여부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 성공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경향신문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회담에서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에 대한 궁극적 폐기 방침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토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 임하게 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한겨레 역시 “남북정상이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내 일각의 우려를 씻어내면서 회담 성공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신문도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지만 한미,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과정의 디딤돌”이라고 밝혔다.
 

▲ 27일 중앙일보 기사.
▲ 27일 중앙일보 기사.

이 가운데 조중동은 북한이 모호한 합의 문구를 끌어내게 한 다음 순차적으로 경제지원 등을 요구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려’를 부각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많은 사람이 지금 마치 평화가 온 듯 생각하고 있다. 봄 바람이 불 때 얼음이 깨지는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면서 “북핵 폐기를 확인하면 성공이고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역시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의 인식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비핵화에 합의해도 구체적인 후속조치에는 여러 난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선언적 의미의 비핵화만 합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내용을 ‘한 외교 소식통’을 통해 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핵우산 폐기 노림수가 들어 있는 조선반도 비핵화같은 모호한 합의 문구로 회담의 성공을 내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서 “혹여 김정은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천명을 끝내 거부한다면 문 대통령은 의지를 박차고 나올 수도 있다는 결기를 갖고 회담장에 들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발표 따르라” 방통심의위 월권 논란 

정상회담을 앞두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전 가이드라인 성격의 권고문을 배포한 데 대해 보수신문은 ‘언론통제 논란’으로 부각하고 나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6일 배포한 ‘취재보도시 유의사항’을 담은 공고문을 발표했다. 방통심의위는 △정상회담 기간 동안 특별 모니터링팀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하고 △‘유의해야 할 사항’으로 ‘정부의 공식 발표를 토대로 보도할 것’을 요구하고 △언론사가 직접 취재할 경우 확인되지 않은 발언 또는 주장 인용을 지양할 것 등을 권고했다. 

조중동은 일제히 권고문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은 방통심의위의 권고가 언론의 취재, 보도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방통심의위는 민간기구지만 정부여당이 추천하는 위원이 다수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부 행사에 부정적인 보도를 막기 위해 지나친 사전개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한 조중동은 26일 ‘사전개입은 명백한 월권’이라는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성명을 비중 있게 인용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진보 언론단체까지 ‘회담취재 부당한 간섭 중단하라’”는 제목을 통해 진보단체도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지난 정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검열행위 비판, 공영방송 개혁 요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이들 신문이 이처럼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입장을 전하는 경우는 없었다. 

언론의 ‘아웃링크’ 타령 이어져 

드루킹 사건으로 촉발된 네이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언론사는 아웃링크(기사를 클릭하면 네이버가 아닌 언론사 홈페이지로 이동하는 방식)에 네이버가 소극적이라는 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매일경제는 “아웃링크 방식 도입이 국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면서 여야의 관련 법안 추진 계획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해외 주요 포털과 매체들은 이미 뉴스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연결하는 아웃링크로 뉴스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 27일 중앙일보 기사.
▲ 27일 중앙일보 기사.

 

 

앞서 신문협회가 아웃링크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을 내자 24개 신문이 이를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언론사 홈페이지 직접 방문 비율이 늘면 수익이 올라가기 때문에 네이버 댓글 논란을 지렛대 삼아 이 같은 주장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루킹 논란 이후 네이버가 댓글 개편을 했음에도 댓글량에 별다른 차이가 없어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서울경제는 “25일 총 31만 1373개의 댓글이 네이버 뉴스에 올라온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개편 전인) 24일에는 29만 926개의 댓글이 달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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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닥치는 어린 죽음, 동물구조센터의 ‘잔인한 봄’

이준석 2018. 04. 26
조회수 757 추천수 0
 
소쩍새, 수리부엉이, 삵, 고라니…여름 전쟁터 앞둔 폭풍 전야
충돌, 둥지 파괴, 납치 등 어린 생명의 고통과 죽음 몰려들어
 
r2.JPG» 4월은 야생동물에게도 잔인한 철이다. 번식기여서 새끼가 늘어나고 구조되는 개체도 많고 짧은 생을 마감하는 동물도 많다. ‘솥 적다’고 한 번도 울어보지 못한 채 건물에 충돌해 죽은 어린 소쩍새.
 
꽃샘추위가 지나고 벚나무는 꽃잎을 떨어뜨려 푸릇한 요즘 새들은 저마다 둥지를 짓느라 분주하고, 여름 철새는 하나둘 돌아와 여름이 다가옴을 알린다. 4월은 여름이라는 폭풍의 전야로 구조센터는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름은 야생동물의 번식기여서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만큼 많은 동물이 구조되고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한 어린 동물 또한 넘쳐나 구조센터로서는 정신없는 폭풍 같은 시기이다. 
 
4월 중순인 지금 멧비둘기와 수리부엉이 새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벌써 구조됐다. 구조센터의 여름은 이미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많은 동물이 밀려들 것이다.
 
r5.JPG» 어린 수리부엉이가 구조됐다. 구조센터의 여름은 벌써 시작됐다.
 
생태계의 시간은 여간해서 크게 뒤틀리지 않는데 야생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이 아닌 구조센터에서도 그 시간을 느낄 수 있다. 매년 3월 말 가장 먼저 번식을 시작하는 수리부엉이와 연 2~3회 번식하는 어린 멧비둘기가 구조되면서 여름이 다가옴을 알린다. 
 
r15-1.jpg» 구조돼 치료를 받고 자연으로 돌아간 어린 멧비둘기.
 
그 뒤를 이어 4월이면 까치와 올빼미 등의 새끼와 번식을 위해 돌아온 제비, 소쩍새, 솔부엉이 등의 여름 철새가 구조된다. 포유류 중에선 어린 삵이 가장 먼저 구조 혹은 납치되기 시작한다. 
 
5월이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다. 위에 언급한 동물들과 함께 더 많은 어린 새가 구조되는데 참새목에 속한 참새, 박새, 딱새 등의 유조는 한두 마리가 아닌 둥지째 구조되고, 흰뺨검둥오리, 원앙의 유조도 수 십 마리가 한 번에 구조되기도 한다. 포유류는 삵과 함께 너구리가 구조되기 시작한다. 
 
r7.JPG» 구조된 원앙 새끼들.
 
6월은 여름의 절정으로 여름 철새의 유조와 어린 고라니, 수달까지 구조되며 일 년 중 가장 많은 동물이 구조되는 시기다. 작년의 경우, 6월 한 달 동안 구조된 야생동물은 277마리이며, 4월부터 8월까지 700여 마리가 구조됐다. 다친 야생동물의 수만 봐도 여름이 폭풍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숫자로는 이렇게 덤덤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숫자는 여름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생태계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생태계의 시간에 발맞추는 야생동물의 삶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700여 마리의 동물이 구조됐는데, 숫자 하나마다 한 마리의 삶과 고통이 녹아있다. 그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단순히 700이라는 숫자에 가두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r6-1.jpg» 구조된 꺼병이(꿩 새끼).
 
최근 구조된 수리부엉이 유조는 차량과 충돌하면서 양쪽 날개가 모두 부러져 안락사시켜야 했고, 건물에 충돌한 소쩍새는 폐사했다. 이 시기에 구조되는 암컷 고라니는 태아를 지닌 상태로 숨이 끊어진다. 벌써 많은 생명이 죽어 나가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곧 어린 포유류들이 납치당해 어미와 생이별할 것이다. 둥지 밖으로 나서보지도 못한 어린 새들은 나무가 베어져 둥지째로 추락하거나, 인간에게 방해된다는 이유로 둥지가 허물어지고 길바닥에 버려진 채 구조될 것이다. 죽은 어미 곁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어린 오리들이 구조될 것이며, 먼 길을 날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사고를 당한 여름 철새들이 구조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처절한 여름이 왔음을 알려준다.
 
r-1-2.jpg» 차량 충돌로 다리가 골절돼 수술을 기다리는 고라니, 엑스선 사진에서 3마리의 태아를 볼 수 있다.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지만 세상에 나오자마자 빛을 잃는 동물이 많다. 늘 죽음을 곁에 두는 곳이기에 익숙할 법도 하지만, 갑작스레 닥쳐오는 수백 마리의 죽음과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어린 생명의 죽음, 잠깐의 방심과 작은 실수도 용납지 않고 매정하게 떠나버리는 생명을 보면서 자신의 노력에 대한 의구심과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 폭풍을 만나 조금씩 가라앉는 기분이다.
 
r11-1.jpg» 하나둘 떠나는 어린 생명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뜩이나 순탄치 못한 야생동물의 삶은 인간으로 인해 더욱 힘겹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짧지만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야생의 삶을 보노라면 별것 아닌 작은 행동에도 감동을 하게 된다. 그들이 그러한 삶을 잃고 모든 걸 체념한 눈을 할 때, 우리 손으로 그 삶을 다시 한 번 되돌려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다잡고 나선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올여름도 그들과 삶과 죽음을 함께할 것이다. 한 생명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여름을 보내야겠다.
 
글·사진 이준석/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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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 배에서 태어난, 68살 ‘김치 베이비’의 평화가게

흥남철수 배에서 태어난, 68살 ‘김치 베이비’의 평화가게

등록 :2018-04-26 19:46수정 :2018-04-27 01:08

 

 

문 대통령도 흥남철수 피란민 출신
2004년 어머니·이모 상봉 직접 지켜봐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경남 거제로 향하던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베이비’와 그들 부부는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틀간 스페셜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봉사 첫날이던 2월23일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에서 네 사람이 컬링 경기 봉사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치 넘버 원’ 손양영씨, 그의 아내 유동남씨, 옥정희씨(이경필씨 아내), ‘김치 넘버 파이브’ 이경필씨. 평화통일연구회 옥영태 대표 제공
1950년 12월 흥남철수 당시 경남 거제로 향하던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베이비’와 그들 부부는 지난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틀간 스페셜봉사단으로 활동했다. 봉사 첫날이던 2월23일 강원도 강릉시 올림픽파크에서 네 사람이 컬링 경기 봉사를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치 넘버 원’ 손양영씨, 그의 아내 유동남씨, 옥정희씨(이경필씨 아내), ‘김치 넘버 파이브’ 이경필씨. 평화통일연구회 옥영태 대표 제공

 

 

‘김치 넘버 1’ 손양영씨
5살 딸·9살 아들 두고 배에 오른 부모
그 이름 부르고 또 부르다 세상 떠나
“북한의 형·누나 만나 한 풀었으면”

 

‘김치 넘버 5’ 이경필씨
아버지 전쟁없이 살고 싶단 말씀에
가축병원 문 열며 ‘평화가축병원’ 간판
“부모 고향에 갈 날 하루빨리 오기를”

 

 

 

“죽기 전에 함경도에 있는 부모님 고향 땅을 밟고 북한에 남겨진 형 누나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북한과 왕래하며 사는 게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모두의 소망일 겁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25일, 성탄절을 맞은 경남 거제 장승포항에는 이틀 전 피란민 1만4천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떠난 미국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도착했다. 혼란스러운 전쟁통이었지만 이틀 남짓한 시간 동안 배에서는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고, 미국인들은 아이들에게 ‘김치 파이브’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배에서 첫 번째, 다섯 번째로 태어난 실향민 손양영(68)·이경필(68)씨는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평창 겨울올림픽부터 본격화된 한반도 평화의 불씨가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이들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정상회담에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이들이 태어난 빅토리호를 함께 타고 장승포항에 내린 피란민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004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낼 때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어머니 강한옥씨가 여동생을 만나 목 놓아 우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있다.

 

다섯 아기 중 첫 번째로 태어나 ‘김치 넘버 원’으로 불린 손씨도 “북한에 두고 온 형과 누나를 꼭 만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한을 풀고 싶다”고 소망했다. 흥남철수 당시 손씨의 부모에게는 아홉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이 있었다. 손씨는 어머니의 배 속에 있었다. 만삭인 아내와 어린 자녀들까지 함께 피란길에 오르기 힘들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손씨의 형과 누나에게 “큰삼촌과 며칠만 지내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빅토리호에 올랐다. 금방 전쟁이 끝나 자녀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손씨의 부모는 60년 동안 북에 두고 온 자녀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북에 두고 온 자식들이 그리웠던 손씨의 부모는 생전에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부를 때 항상 ‘영옥아’라고 하셨어요. 북한에 두고 온 누나 이름이 손영옥입니다.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는 제 아내한테 ‘영옥아, 영옥아’ 하셨고요.” 1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손씨의 어머니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때마다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어머니는 ‘곧 고향에 가서 자식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셨어요. 결국 한을 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셨네요.”

 

지난 2월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에 참석했던 손씨는 ‘평화’를 구체적인 공기로 느꼈다고 한다. “김여정과 김영남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고향 사람을 만난 듯했어요. ‘곧 형과 누나를 만날 수 있으려나’ 싶었습니다.”

 

빅토리호에서 막내로 태어난 ‘김치 넘버 파이브’ 이씨도 남북정상회담으로 불어온 따뜻한 평화의 기운이 반갑기만 하다고 했다. 이제 ‘수의사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더 익숙한 이씨는 1975년 처음 문을 연 동물병원 이름을 ‘평화가축병원’이라고 지었다. “아버지가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동물병원 이름에 ‘평화’를 넣어달라고 하셨어요. 다른 가족들도 자영업을 했는데 ‘평화사진관’, ‘평화상회’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한 그의 아버지는 10여년 전 세상을 뜨면서 “묘비에 함경남도 흥남시 고향 주소를 적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버지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후손 중 누군가가 대신 고향 땅을 밟아줬으면 하고 바라셨어요. 제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합니다.” 차분하고 온화한 그의 말투에서 봄기운이 느껴졌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2269.html?_fr=mt1#csidx49a1978852ef6619258ca610e3b01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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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 철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8/04/27 06:30
  • 수정일
    2018/04/27 06: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연재] 오인동의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조국’ ⑪
 
오인동  | 등록:2018-04-26 10:28:25 | 최종:2018-04-26 11:07: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인동 / 재미동포 정형외과 의사이자 통일운동가

<차례>

1. 한 나라로 함께 사는 세상 
2. 연합방 경제체제 청사진 
3. 민족사 최고의 부강번영 
4. 서둘러야 할 연합방체제 
5. 미국: 평화협정 거부, 북: 핵개발 
6. 북핵은 겨레의 핵으로 

7. 다시 열어야 할 6.15시대 
8. 남북연합방 평화체제 먼저 
9. 겨레의 핵을 어쩔 것인가? 
10. 북남 겨레핵의 비확산 선언 
11. 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철수 
12. 풍요 자유 평등 자주 통일조국

 

11. 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 철수

2013년에도 인공고/무릎관절 수술하려 평양에 갔다. 출간한 책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남북 연합방>도 가지고 갔다.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들과 수술을 하고 난 오후, 책을 받아본 양철식 6.15선언실천 북측부위원장과 만났다. 척하거나 체하지 않고 말 수가 적은 북 고위관료들과의 대화는 재외동포에 연상인 내가 주로 이끌게 된다.

다른 날 저녁엔 초대소에서 해외동포위원회 맹경일 부위원장과 ‘연합방-연방’기에 북핵을 남북이 ‘겨레의 핵’으로 품어 안아야 할 데 대한 얘기를 나눴다. 서로 다른 의견도 있었지만 원칙적으로 공감했다. 열흘 뒤 서울로 가서 10일 동안 대학과 시민단체들에서 통일 강연을 했다. '연합방 경제체제의 실행과 연합방 평화체제’ 합의에 대한 공감은 컸다.

2014 년 4월에는 3주 동안 6·15 남측위원회 지역본부 안영욱 위원장과 시민단체들이 마련한 20차례 전국순회강연도 했다. ‘북핵=겨레핵의 비확산’을 합의/선언한 뒤  ‘겨레의 핵우산 쓰고' 미군을 철수해 통일로 가자는 제언에 대한 놀라움과 공감은 대단했다. 2017년 8월, 서울에서 임동원, 백낙청, 정세현, 문정인 교수와 만나고 평양에 다녀왔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북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보며 먼저 미국의 기를 꺾어 놓고 보려는 듯했다.
   
2017년 말 북은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하며 미국과 균형을 이뤘다고 했다. 미국에 맞대결하는 북에 놀란 남의 종미세력은 적화통일의 위기라고 선동하고, 남 정부는 킬체인, 미사일방어, 대량 보복체계를 서두른다는데 모두 효용 없는 일이다. 트럼프는 때 만난 듯 남에 무기 장사를 하니 남에겐 외화 낭비일 뿐이고. 핵 없는 남에 재래식 무기가 무슨 효력이 있으며, 전작권도 없는 남은 자신의 뜻대로 쏠 수도 없지 않나?

트럼프가 북을 전멸시키겠다니 그나마 문재인은 조국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옳은 말을 하면서도 압박(?)과 대화로 통일을 이루겠다며 미국 따라 북 지도자 참수 부대 창설도 한다니 이건 또 무슨 망발인가? 수구세력을 달래기 위해선가? 북이야 남 대통령 참수 작전 같은 얘기는 하지도 않을 텐데 부끄럽지도 않나? 트럼프가 남 국회에서 온갖 대북 욕설을 퍼붓는데 박수치는 의원들의 모습을 미국에서 보자니 한심하고 가여웠다.   
    
1900년대 후반 미국은 조국반도와 베트남 전쟁에서 각기 수만 명, 2000년대 이라크, 아프간, 중동에서는 각기 수천 명 미군 전사자를 냈다. 반면 상대국들의 수백 만 등 총 2천만 명이 살상된 것은 미국의 반인륜 인권유린 만행이었다. 현세 핵국가들 사이의 전쟁의 결말은 즉각적이고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교전 상대방은 승리와 패배의 예상이 아니라 핵전쟁 뒤 인간적/물질적/ 도덕적 손실과 이득에 대해 심각한 고려를 할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핵선제 공격으로 평양이, 북의 반격으로 워싱턴이나 뉴욕이 당했다면 누가 이겼을까? 수 백 만이 죽고 도시가 폐허가 됐는데 승패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래서 핵국 사이의 핵전쟁은 없었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된다.
   
핵국 북과 재래식 무력의 남 사이의 전쟁은 일어날 수도 없으나 남북대결의 악화로 우발적 이거나 전략/전술 차원에서의 국지전은 일어날 수도 있다. 혹시 조국강토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면 양극화가 극심해져 재부가 세습된다는 남의 5포, 7포 청년세대 중 전장에 나가 싸우겠다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한 수구계 국제관계학자의 강연에서 10-20% 라는 얘기를 들으니 금수저/흙수저 얘기가 헛소리가 아닌가 보다.

한편, 2015년 8월 휴전선 지뢰폭발사건으로 북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자 남에서는 90여 병사가 애국심에 전역 연기 신청을 했다고 종미반북 언론들이 자랑스럽게 보도했다. 다른 한편 선군절을 맞았던 집단주의 북에서는 1백만 청년이 자진입대 청원을 했고, 2017년 여름 북미대결 때는 370만 명의 재입대와 신규입대 청원이 있었다고 한다.

남과 북의 이런 모습을 밖에서 보는 재외동포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또 북은 ‘평화’, ‘통일’ 쪽지를 매단 방사포 공포탄 한 발씩을 인천공항 활주로와 여의도광장에 착지만 시켜도 공항폐쇄와 더불어 수도권을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을 시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남북 ‘연합방 평화체제’가 합의되면 주한미군은 철수시켜야 한다 했지만 북의 핵/미사일 무력의 완성으로 합의된 남북/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핵과 미군철수 문제를 해결해야할 것이다. 미군이 철수해도 북은 남침하지 않을 것이며 남북전쟁 같은 짓을 이제 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매해 대북 핵전쟁 연습으로 남녘 주민들의 전쟁위기 의식을 자극하며 반북정서를 북돋고 통일 의지를 약화시켜 왔다.

그러니 통일해야 미군철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철수해야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일찍이 LA Times 논평가 플레이트(T. Plate) 교수와 전 주한미국 대사 레이니(J. Laney)조차 ‘미군이 철수해야 통일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남의 정치인과 국방관료들 중에 미군철수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종미반북 수구세력들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평통사’를 북의 지령에 따르는 ‘빨갱이’라고 몰아친다. 북보다 여러 배의 국방비를 쓰는 남 정부나 군사전문가들이 국민을 확신시키지도 못했기에 주한미군 없이는 북 인민군에 패배한다는 공포 속에 살고 있다.

남의 국방비 40여조원은 북의 총생산액(GDP)보다 높고 남의 GDP는 북의 40배라는 데도 북을 포용하지도 못했다. 기득권 세력은 어제까지도 북의 붕괴/흡수통일을 말했는데 북미 핵대결 상황을 보며 패망한 남베트남의 부패한 종미세력들처럼 탈남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남은 북핵이 없었던 지난 50여 년에도 지금도 북에 맞서지 못하고 미군 뒤에만 선다. 마치 남녘에서 인기 있다는 노래 “애모”의 가사처럼 국군은 “…인민군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미군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와 같은 모습 같다.
    
그런데 남에서는 현역/퇴역 장성들과 국방관료들 중 전작권을 전환해야 한다는 소리도 없다. 전작권 전환이나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민중의 시위에는 퇴역군인 장성들까지 성조기를 들고 반대시위하려 광장에 몰려나온다. 이에 더해 2006년 이래 10년에 36조 원 이상의 미국무기를 사들인 남이 정보/정찰 능력이 모자라 전작권 전환은 시기상조라고 한다.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가 미국과 같은 군사력을 갖췄단 말인가? 그 세계 나라들 중 하나도 작전통제권을 미국에 맡기지 않았다. 미국이 독립국의 군사주권을 돌려주지 않겠다고는 못할 테니 남은 전작권을 전환하고 ‘북의 불가침보장’에 화답해 ‘연합방 평화체제’를 합의/선언하자. 미국이 거부한다 해도 주권국가의 ‘배타적 고유권리’인 군사주권은 남이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행사해도 된다.
   
북의 역량이 지금 같지 않았던 1992년 김용순(북)/캔터(미)회담, 2000년 김대중/김정일 대화, 김정일/올브라이트 대담에서 김정일이 ‘주한미군의 역할이 달라지면 통일 뒤에도 계속 주둔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을 구실로 삼는 핑계는 지난날의 얘기로 끝나야 한다.

트럼프가 현재 ‘73% 부담인 남의 방위비 분담금을 200%로 인상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겠단다. 미국에 큰 은혜를 입었다고 고마워하는 남의 종미세력은 미국의 국방비 감축도 도와드릴 겸 미군을 고향으로 보내드려 절약되는 군사비를 사회복지에 쓰면 어떨까? 그리하여 민족사에 중국, 일본, 미국군대가 차례대로 조국에 주둔해 겨레가 피해와 수모를 겪어온 쓰라린 과거와 현재를 말끔히 청산하자!

‘연합방 평화체제’선언 뒤 겨레핵의 비확산을 선언하면 남북은 겨레의 핵우산 함께 쓰고 미군을 철수시켜 남으로 하여금 미군기지 신세에서 벗어나게 하자. 그 뒤 남북은 세계비핵화를 위해 1996년 유엔에서 채택한 포괄적핵시험금지조약(CTBT)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 조약에 183국이 서명하고, 166국이 비준했으나 핵개발능력을 보유한 44개 발효 요건국들 중 영국, 프랑스 등 36국이 비준했는데 미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 이란, 이집트 8국의 거부로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후발 핵국 ‘남북’은 이 조약을 비준하고 미비준국들을 선도해 세계비핵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조국의 남에 묻는다. 남이 북의 숙적 미국과 한패가 되어 어떻게 북과 통일할 수 있나? 미국과 북 중 누가 ‘우리’고 누가 ‘남’인가? 북에 묻는다. 외세배격/민족자주를 주장하는 북은 북남 평화체제부터 합의해서 겨레의 이익을 극대화하며 ‘연방’의 길로 남과 함께 가야한다. 
     
2016년 북의 5차 핵시험 뒤 뉴욕타임스는 “북은 비이성적인가? 아니면 미친 척 했나?”라는 기사에서, “천만에, 매우 합리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북은 남과 미국에 한 발짝 씩 물러서야 할 부담을 떠넘겼다”고 했다. 이번엔 미국의 뜻대로가 아니라 우리겨레의 뜻대로 해보자.

6.15 선언의 합의사항들을 10년 동안 이행해냈던 남북이었다. 이것이 오로지 남북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민족공조의 원칙이고, 또한 이것은 다른 그 어떤 대안도 없는 현실적 상식이다. 지난 3월 북중 정상회담이 있었고 북미회담 전에 북러회담도 있음 직하다. 급변하는 이런 현상을 보며 남에선 그것이 북에 유리하다느니, 남에 불리하다느니 또는 그 반대라느니 하는 얘기들이 한창이다. 남북이 한 마음이면 북에 유리하면 남에도, 남에 불리하면 북에도 불리하다는 기본자세를 가져야 한다.

서로 통일하겠다면 어떻게 남에, 북에 하며 따로 생각하나? 남북은 우리이고 주변국은 모두 남이다. 모든 일은 ‘우리 민족끼리 먼저’라는 원칙에서 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회담은 북미
간이 아니라 남북/북남간이 먼저란 인식으로 더 자주 만나 주변국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민족차원에서 진솔하게 논의/실행해야 한다.
    
제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남이 해야 할 일은 제1장에서 말한 6.15시대를 다시 열어가기 위해 남북 ‘연합방체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남은 남북교역 중단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환원과 개성공단 운영재개를 합의하자. 이는 모두 민족 내부의 일이니 유엔제재에 구속되지 말자. 더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산가족상봉이다. 그리고 10.4선언의 합의사항들과 북의 경제발전전략사업들을 총화해서 ‘연합방 경제체제’ 운영을 실행해갈 방안들에 대해 합의하기 바란다.

남 정부는 비핵화가 최우선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남은 이에 대해 먼저 나설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지난 세월 늘 북핵 문제는 북이 미국과 논의해야 할 일이라고 해온 남녘 논객들의 주장대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이 성취하려는 바를 남은 먼저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에 따라 북핵을 남이 북과 함께 한마음으로 대처해 나갈 데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반대로 남이 미국의 북핵 폐기 주장에 함께 하려면 차라리 북 혼자 미국과 담판하게 맡겨두고 연합방체제 합의에 주력하는 게 더 생산적일 것이다.

그런데 4월 21일 북은 “핵시험과 대륙간 탄도로켓 시험발사 중지”와  “핵시험장도 폐기할 것”이라며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과정으로 국제적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라고 했다. 이 성명으로 북은 핵보유국임을 선포한 것이며 앞으로 핵국가들과 함께 세계비핵화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북의 이 선언은 앞에 제언해온 ‘겨레핵의 비확산과 세계비핵화’와 상통한다는 생각이다. 70여 년 분단의 멍에를 벗어제끼고 남북은 어떤 이상의 통일조국으로 가야할 지 제12장에서 얘기해 보자.

오인동 (Indong Oh) 약력 

   
 

인공관절수술전공의사(은퇴),6.15해외측미국위공동위원장
하버드의대(MGH)교수,미국고관절학회:J.Charnley, F.Stinchfield상
인공고관절기/기구고안 (HD-2, Spectron, Biofit, Tifit System등) 
인공고관절논문:70여편,수술법저서:14권, 미국발명특허:11 종

RoKorea - 윤동주민족상 - 윤동주사상선양회 - 2013
DPRKorea - 명예의학박사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2012
RoKorea- 한겨레통일문화상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2011

<밖에서그려보는통일의꿈> - 남북연합방, 다트앤, 서울, 2013
<평양에두고온수술가방> - 의사오인동의북한방문기, 창비, 서울,2010
<통일의날이참다운광복의날이다> - 밖에서본한반도, 솔문, 서울,2010
<Corea ,Korea>- 서양인이부른우리나라국호의역사, 책과함께,서울,2008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513&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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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남북 정상회담]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소설가 박민규

입력 : 2018.04.26 22:02:00 수정 : 2018.04.27 00:01:49

 

 

ㆍ27일, 남북 정상 11년 만의 동행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그저 날씨나 좋았으면 좋겠다. 화창하고 눈부신 날이면 고맙겠지만 아니어도 나는 족하다. 겨우 근근이 봄이구나, 싶은 하늘이면 또 어떠한가. 설사 날이 궂더라도 오는 이의 표정을, 또 맞이하는 이의 기다림을 서로가 알아볼 정도라면 나는 좋겠다. 오래전부터 당신은 손님이었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이산가족인 나 같은 사람에겐 더더욱 그러하다. 1974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될 당시 조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의 얼굴에 서린 당신의 이름을 나는 또박또박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글씨를 못 읽는 꼬마였고 조부는 남하한 함경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합이란 이유만으로 나는 당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끝내 오지 않는 손님이었다.

이제 당신이 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오늘 모두가 그 광경을 지켜보겠지만, 거기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지난 세기의 염원이고 이름이다. 어서어서 당신이 오기를 바랐던 이들은 대부분 눈을 감았고, 어서 당신이 오기를 재촉했던 이들도 미련을 접은 지 벌써 오래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 세대들이 이미 자랐고, 그들에게 당신은 딱히 간절하거나 그리운 이름도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당신 없이도 그런대로 살아왔다. 당신이 머물러 있을 그 길가에 희망이란 이름의 꽃들이 아직 피었나 모르겠지만, 풀 한 포기 없는 길이라도 누굴 원망할 처지가 아님을 우선 나부터가 잘 알고 있다. 불쑥, 어서 올 생각 아예 말아라. 어서어서 서두르다 넘어지지 말고 그러니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오라. 어떠한 부담과 희망… 원망 없이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남북 정상회담]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우선은 그저 서로의 ‘실익’을 얘기하자. 하나의 겨레였느니 그딴 소리 접어두고 이익과 생존을 목표로 한 ‘각자’와 ‘각자’로 서로를 존중하자. 한 걸음 한 걸음 끝까지 너는 너를 위하고 끝까지 나는 나를 위하자.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나를 위한 일이 너를 위한 일이었음을, 그래서 너가 나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각성하자. 그토록 서로가 떠들던 통일이란 말이 그래서 지난 세기의 철지난 단어임을 자각하자. 한바탕 굿판처럼 돌아갈 카메라들, 침 발린 소리들도 이내 바로 잊어버리자. 분단이 만든 괴물들이 여전히 서로의 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자각하고, 분단을 부추긴 괴물들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잊지 말자. 그러니 살자, 같이 살자. 그리고 같이 걸어가자. 동행하자. 역사라는 수레를 끄는 두 개의 바퀴처럼, 나란히 동행하자. 그래서 나는 그저 날씨나 좋았으면 좋겠다. 허튼 이념 허튼 소리 오지도 않을 손님 더 이상 떠들지 않고 실익과 생존을 위해 남북이 동행하는 첫날이 오늘이기 때문이다. 껴안지 않아도 좋고 손잡지 않아도 나는 족하다. 그저 동행하기 좋은 봄날이라 그게 기쁘고, 나란히 이어질 두 개의 궤적을 따라 비로소 누군가가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를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여 그저 걸어가자. 동행하자. 통일은 염원이나 소원이 아니라 다만 우리의 족적이고, 동행하는 우리의 기나긴 그림자에 다름 아니다. 기다리지 않고 우리는 간다, 가겠다. 그러니 통일이여, 걸어서 오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따라오라. 그저 봄날일 뿐이고 동행할 뿐인데 근근이 봄이구나, 싶은 이 하늘에도 왜 이리 족한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나란히 걷는 이 봄길이 왜 이리 부시고 아름다운지도 나는 모르겠다. 동행(同行)이 곧 통일이다. 걷고, 또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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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남북정상회담 지지, 신자들과 특별기도

교황, 남북정상회담 지지, 신자들과 특별기도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8/04/26 [10: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며 격려의 메세지와 함께, 신자들과 함께 특별한 기도를 드렸다.[사진출처-정상회담준비위홈페이지]     ©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 오전(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지지와 격려의 메시지를 발표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수천 명의 신자들과 특별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교황은 “4월27일 남북한의 지도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다.”고 말하고, “이 만남은 화해의 구체적 여정과 형제애의 회복을 이끌어낼 상서로운 기회가 될 것이며, 마침내 한반도와 전 세계에 평화를 보장할 것”이라며 기대를 표현했다.

 

교황은 이어 “평화를 열렬히 갈망하는 한민족에게 개인적인 기도와 아울러 온 교회가 여러분들 곁에서 함께 할 것을 약속하며 교황청은 사람들 간의 만남과 우정을 통해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유용하고 진지한 노력을 지지하고 격려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남북의 지도자들에게, “평화의 ‘장인’으로 역할하면서 희망과 용기를 가지기를 기원한다”며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해 내디딘 발걸음을 믿음을 가지고 걸어 나가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특히, 교황은 남북정상회담 지지 격려 메시지에 이어, “하느님은 모든 이들의 아버지이고 평화의 아버지이므로, 모든 이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남과 북에 있는 모든 한민족을 위해 기도를 바칩시다.”며 원고 없이 한민족을 위해 ‘주님의 기도’를 함께 바치자고 하였으며, 성베드로광장에 모인 수 천 명은 일제히 ‘주님의 기도’를 암송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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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3채 마을에서 시작된 정전... '평화'로 마무리짓길

[박도 칼럼] 정전회담 당시 판문점 사진 공개... 4.27 이후 평화의 상징 되길

18.04.26 10:40l최종 업데이트 18.04.26 10:40l

 

 초기 판문점 정전회담장. 문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회담을 마친 대표들은 헬기로, 기자단과 회담 준비요원들은 버스를 이용해 문산이나 서울로 철수했다. 원래 이곳은 초가집 세 채와 주점이 있었던 자그마한 마을로 애초 널문리였다.
▲  초기 판문점 정전회담장. 문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회담을 마친 대표들은 헬기로, 기자단과 회담 준비요원들은 버스를 이용해 문산이나 서울로 철수했다. 원래 이곳은 초가집 세 채와 주점이 있었던 자그마한 마을로 애초 널문리였다.
ⓒ 조지 풀러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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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은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날이다. 부디 회담의 성공으로 '4.27'이 역사에 길이 기록될 평화의 날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사를 쓴다. - 기자 말

정전회담 '소사'(小史)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처음에는 북에서 남으로, 인천상륙작전 이후는 남에서 북으로 해일처럼 한반도를 덮쳤다. 하지만 1950년 초겨울부터 중국군이 참전한 이후 유엔군의 1951년 1.4 후퇴로 양측은 38선 일대에서 교착했다. 

유엔군과 공산군 양 측이 38선을 사이 두고 지루한 공방전을 펼쳤지만 피차 개전 초기와 같은 전선의 급격한 변동은 없었다. 그 무렵 전선은 서로 상대의 샅바를 거머쥔 채 상대방 허점만 노리며 씩씩거리는 씨름꾼의 형세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1951년 6월부터 유엔군과 공산군, 양 측은 그제야 비로소 단시일 내 상대편을 군사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런 데다가 전선도 장기간 북위 38도선 일대에서 교착되자 국제 외교가에서는 정전 논의가 슬그머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한국전쟁 발발 당시 미국인들의 전쟁 지지도는 65%였으나, 1951년 2월에는 39%로 떨어졌다. 게다가 대통령 트루먼의 지지도마저도 전쟁 초기 43%에서 1951년 5월에는 24%로 곤두박질쳤다. 

그러자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1951년 6월 초, 당시 유엔주재 소련 대사 야곱 말리크와 비밀리에 접촉해 정전협상을 제의키로 했다. 미소간 비밀 접촉 끝에 사전 조율한 각본대로 주유엔 소련대사 말리크가 신호탄을 쐈다. 그는 유엔방송을 통해 '평화의 가치'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련 인민은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종용하고, 교전국 간의 정전협상 토의가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이 한 마디는 미국으로서는 '불감청고소원'이었다. 당시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체면상 먼저 '정전'이라는 말을 차마 먼저 꺼낼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대외적으로 소련 측에서 이를 먼저 제의하자 미국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미국은 자신들의 본심을 숨긴 채 몽니를 부렸다, 그런 뒤 겉으로는 말리크 소련대사의 체면을 살려주는 척, 의뭉스럽게 슬그머니 정전협상 테이블에 나갔다. 

개성에서 최초 정전회담이 열리다

국제 여론 역시 대체로 조속한 종전 방향으로 흘러갔다. 말리크 소련대사의 연설이 있은 지 얼마 뒤인 1951년 6월 29일 유엔군 총사령관 리지웨이는 원산 앞바다에 정박 중인 덴마크 병원선에서 정전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공산군 측이 개성에서 회담하자고 제의했고, 이에 따라 1951년 7월 10일, 개성 봉래장에서 유엔군과 공산군 양측이 최초의 정전회담을 열었다. 

이에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은 완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전국에서는 연일 휴전반대 관제 데모가 일어났다. '통일 없는 휴전은 있을 수 없다'며 학생들까지 나섰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 개성에서 정전회담이 열리자 유엔군과 공산군 양측은 본회담 시작 17일 만에 5개 항의 의제와 의사일정에 전격 합의했다. 

한 서방 기자는 한국전쟁 정전회담 취재 차 3주간의 출장 명령을 받고 한국에 왔다. 그만큼 서방 대부분 나라는 한국전쟁의 정전회담이 쉽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막상 정전회담에 참석한 양측은 서로 전장(戰場)은 아니더라도, 정전협상 테이블에서만은 이기고 싶었다. 
 

  1951. 7. 개성 봉래장으로 초기의 정전회담장이었다.
▲  1951. 7. 개성 봉래장으로 초기의 정전회담장이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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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국은 그들이 깔보던 북한과 중국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는 것 자체에서 치욕을 느꼈다. 그래서 미국은 그들의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정전회담에서 상대방에게 줄곧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들은 상대에게 최대의 피해를 주면서 정전회담을 우아하게 끝내고 싶었다. 

한편, 중국도 이참에 국제 사회에 '종이 호랑이'로 실추된 자존심을 살리고자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즐기면서 일축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전회담장에서 미국과 대등하게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을 서방 기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慢慢的)를 즐기는 모양새였다. 

정전회담은 전쟁을 멈추기 위한 회담이 아니라, 교전국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또 하나의 치열한 전쟁터가 됐다. 그래서 한국전쟁 정전회담은 그 어느 전쟁 강화회담보다 매우 지루하고도 잔인하게 그리고 장기간 계속됐다. 

정전회담장에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은 특히 포로 송환문제를 둘러싸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양측은 서로 상대를 압박하고자 무력 공세도 서슴지 않았다. 유엔군은 폭격기로 북한의 수풍·장진댐을 비롯한 수력발전소를 폭격했고, 그밖에 군수공장에도 폭탄을 쏟아부었다. 공산군도 이에 맞서 지상공세를 강화했다. 정전회담 기간 중 전선에선 포로로 잡힌 병사보다 훨씬 더 많은 병사들이 죽어갔다. 
 

 1951. 11. 10. 원래는 자그마한 시골마을이었던 판문점 정전회담장.
▲  1951. 11. 10. 원래는 자그마한 시골마을이었던 판문점 정전회담장.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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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 4. 널문리. 초가집에서 바라본 판문점 정전회담장(왼쪽 흰색이 공산 측 막사, 오른쪽 검은 색이 유엔군 측 막사).
▲  1952. 4. 널문리. 초가집에서 바라본 판문점 정전회담장(왼쪽 흰색이 공산 측 막사, 오른쪽 검은 색이 유엔군 측 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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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새로운 정전회담장이 되다

1951년 8월 공산군 측은 정전회담이 열리고 있는 개성 일대에 대한 유엔군의 야간 폭격에 격분해 정전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그러자 1951년 9월 6일, 유엔군 측 리지웨이 사령관은 이를 타개하고자 회담장소를 바꾸자고 제의했다. 그러자 공산군 측은 1951년 10월 7일, "회담장소를 개성 동남쪽, 송현리 서북쪽에 있는 널문리로 정하자"라고 회답했고 유엔군은 이에 동의했다. 

이로써 정전회담장은 개성에서 널문리로 옮겨졌다(해방 이전 행정구역상 주소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널문리). 당시 널문리는 초가집 세 채와 주점 한 곳이 있었을 뿐이었다. 유엔군은 작은 마을 앞 콩밭에 회담장을 지었다. 유엔군, 중국군, 조선인민군이 당사자로 참여하는 이 정전회담의 회담장은 영어, 중국어, 한글로 표시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널문리'라는 지명은 중국어로 표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사자들이 의논한 결과 널문리에서 널문, 곧 '판문(板門)', 주점(酒店)에서 점(店)을 떼어낸 뒤 '판문점(板門店)'으로 작명했다. 이리하여 영어 표기는 'Panmunjom' 중국어로는 '板門店' 한글로는 '판문점'으로 확정했다. 
 

 1952. 9. 18. 하늘에서 내려다본 판문점 정전회담장 전경(가운데 회담장, 오른쪽 북측 사무실, 왼쪽 유엔군 측 사무실과 기자실).
▲  1952. 9. 18. 하늘에서 내려다본 판문점 정전회담장 전경(가운데 회담장, 오른쪽 북측 사무실, 왼쪽 유엔군 측 사무실과 기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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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측 대표들은 회담장소가 바뀌어도 여전히 정전회담장에서 지루한 입씨름만 벌였다. 그런 가운데 전쟁 당사국들에게 정전회담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하는 사정이 발생했다. 

미국에선 1952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아이젠하워가 당선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전쟁의 종전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미국인들은 장진호 전투와 1.4후퇴의 악몽을 잊지 않고 있었던 터라, 아이젠하워의 대선 종전 공약은 설득력이 있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출범하지마자 한국전쟁을 끝내고자 적극 노력했다. 아이젠하워는 취임 전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 전선을 조용히 시찰하기도 했다. 

그런 데다가 소련에선 1953년 3월에 스탈린 수상이 사망했다. 스탈린의 사망은 미국에 대한 소련의 냉전 기류를 완화시켰다. 중국 역시 내전을 마친 지 1년 만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라 피폐한 국내 사정이 있었다. 한국전쟁을 마냥 오랫동안 끌고 갈 수 없었다. 
 

 1953. 4. 9. 유엔군 측 경비장교와 북한 측 경비 장교 간의 설전으로 정전협정 이후에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  1953. 4. 9. 유엔군 측 경비장교와 북한 측 경비 장교 간의 설전으로 정전협정 이후에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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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이었다, 결코 '평화'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53년 5월, 공산군 측은 유엔군 측의 주장을 반영한 포로교환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 수정안에는 '송환을 원치 않는 포로는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에 넘겨 처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수정 포로교환 협정이 체결됨으로서 비로소 정전회담의 최대 난제가 해결될 실마리가 보였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각. 동쪽 입구로 유엔군 측 수석대표 해리슨 장군과 실무자가 판문점 정전회담장으로 입장했고, 그와 동시에 서쪽 입구에서 공산군 측 수석대표 남일과 실무자가 들어와 판문점 정전회담장에 착석했다. 양측 대표는 서로 목례도, 악수도 없는 시종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양측 대표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본 9통, 부본 9통의 정전협정문에 부지런히 서명했다. 

양측 대표가 서명을 마치자 양측 선임 참모장교가 그것을 상대편에 건넸다. 그런 뒤 그들은 정전협정서를 교환하고 아무런 인사도 없이 곧장 회담장을 빠져나갔다. 그때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12분이었다. 이날 정전협정 조인식은 회담장 분위기조차 글자 그대로 '정전'이었지 결코 '평화'가 아니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은 소련이 정전협정을 제의한 지 25개월 만에, 모두 765차례 회담 끝에 이뤄졌다. 1953년 7월 27일 오후 10시, 그제야 정전협정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155마일 휴전선에 비로소 총성이 멎었다. 
 

 1953. 7. 25. 판문점, 정전회담 본회의장
▲  1953. 7. 25. 판문점, 정전회담 본회의장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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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 4. 11. 유엔군 측 대표 다니엘 제독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  1953. 4. 11. 유엔군 측 대표 다니엘 제독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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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 6. 8. 정전회담장을 나오는 북한군 측 남일과 이상조 대표.
▲  1953. 6. 8. 정전회담장을 나오는 북한군 측 남일과 이상조 대표.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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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소가 되기를

유엔군과 공산군은 이후 정전협정 기구들의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해 회의장 건물과 마당을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설정했다. 공동경비구역 북쪽에 있는 '판문각'은 1964년에 지은 육각정을 헐고 1969년 9월에 신축한 뒤 1994년에 증축한 3층 석조 건물로 북한 대표부가 쓰고 있다. 남쪽에 있는 '평화의집'은 1989년 12월에 준공한 3층 석조 건물로 남측 대표부가 쓰고 있다. 이번에 이곳이 역사적인 4. 27. 남북정상회담장이 된다. 

사람 팔자도 알 수 없듯이, 땅 팔자도 알 수 없다. 전쟁 전 개성 동남쪽 송현리 서북쪽에 초가 세 채의 자그마한 널문리 마을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한 정전회담장으로, 그동안 양 진영의 첨예한 대립 장소로 65년의 명맥을 이어왔다. 

이번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의 8000만 겨레는 한결같이 '판문점'이라는 지명이 '분단'과 '대립'의 상징에서 '화해'와 '평화'의 상징 땅으로 도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리라.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은 이러한 8000만 겨레의 성원에 보답해야 한다. 아무쪼록 화해와 평화의 큰 발자취를 남겨주시길 기원한다. 그리하여 판문점은 우리 겨레 화해의 광장, 만남의 광장으로, 후일 '4.27 평화의 광장'으로 명명, 세계적인 명소가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쓰고자 다음의 도서를 참고했음. 1) 신광수 엮음 눈빛출판사 <끝나지 않은 전쟁> 2) 박태균 지음 책과함께 <한국전쟁> 3) 이태호 엮음 눈빛출판사 <판문점과 비무장지대 4) 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 <한국현대사산책 1950년대 1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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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특집 완전분석: 자유한국당의 리비아식 해법이 헛소리인 이유1

 

 

 

[전제 1]

의식의 흐름 그대로 쓰려고 한다.

 

[전제 2]

5일 연속 술독에서 허우적거리다 쓰는 글이다.

 

[전제 3]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써달라는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의 ‘주문’이었는데, 정중히 거절했다. 이미 주요의제에 대한 합의는 다 끝났을 테고, 핵심은 북미협상으로 가기 전 ‘중간점검’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물론 민족적으로 의미 있는 ‘정치행사’이며, 어쩌면 70여 년 남북분단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이벤트일 수도 있다. 아니, 그게 맞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모의고사’라는 게 내 판단이다. ‘본고사’는 북미회담이다.

 

 

 

1.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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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모 방송사에 나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리비아식 해법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다.”

 

란 발언을 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방송에 나와 할 수 있는 발언은 아니다. 홍준표 대표가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면, 협상의 가치가 없으며 북한의 ‘시간끌기용’ 회담이라며 남북 정상회담을 폄훼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해의 범주 안이었다.

 

“북한은 그래왔으며”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으며”

“이제까지 보여준 자유한국당(전신인 새누리당, 한나라당, 신한국당)의 발언과 행동들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북한에게(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네 목을 따겠다.”

 

라고 선언한 것이다.

 

핵무기가 이 세상에 나온 지 70여 년, 수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이 중 성공한 나라는 안전보장 이사국 5개국과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보유했지만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타협’을 본 이스라엘만이 핵무기를 개발했고, 보유했다.

 

수 많은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만큼의 절망을 경험해야 했다. 이제까지의 역사 중 그나마 ‘덜’ 절망스러웠던 역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하나 정도가 고작이었다.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고수하던 남아공은 전 세계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외교적, 군사적으로 고립돼 있던 남아공은 자신들의 활로를 찾기 위해 핵이란 금단의 병기에 손을 댔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백인정권’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마지막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Frederik Willem de Klerk. 반아파르트헤이트 헌법을 통과시킨 정치인. 이 사람 덕분에 만델라가 대통령이 됐다. 흑인정부가 별 무리 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가교가 된 백인 정치인)는 1993년 3월 의회 연설을 통해 하나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남아공은 핵무기 6개를 생산해 보유했으나 모두 폐기했고, 개발정보도 모두 파기했다.”

 

이 메시지를 내보내기 위해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1991년 11월부터 2년 반 동안 남아공의 모든 핵 관련 시설을 100여 차례 사찰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이때 남아공이 ‘왜’ 핵무기를 포기했는지 속으론 알고 있었지만, 겉으론 다른 말을 했다.

 

“남아공의 인류 평화와 아프리카의 안정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했다.”

 

개소리였다. 남아공이 핵무기를 폐기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이유,

 

“흑인들에게 핵무기를 건네줄 수 없다.”

 

남아공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친절하게’ IAEA의 사찰단을 맞이했다. 처음부터 핵무기의 완전한 폐기와 양도, 핵무기 생산 프로그램의 철저한 파괴를 ‘기본방침’으로 내세운 정부였기에 IAEA의 사찰을 전면적으로 수용했다.

 

(남아공의 핵무기 개발 덕분에 이스라엘도 핵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남아공은 자신들의 핵무기를 실험할 때 이스라엘의 핵무기도 ‘덤’으로 터트려줬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전면적으로 핵무기 포기를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사찰에만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거였다. 하물며 의지도, 명분도, 국제정치적인 ‘여건’도 만들어지지 않은 나라에서 전면적인 핵을 포기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김성태 원내대표가 선언(?)한 리비아식 해법은 어땠을까?

 

1980년대 광풍 같은 테러의 물결이 스쳐 지나가고, 미국의 보복(리비아 공습)과 뒤이은 리비아의 보복(팬암 103편 폭파 사건) 등으로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달렸다. 이 둘의 국교단절은 1980년대 시작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미국은 1981년 리비아와 단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국과 국교를 단절한다는 건 자본주의 체제하에 편입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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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지금까지 북한의 목에 걸려있는 각종 규제들 중 큰 것만 하나씩 살펴보면,

 

① 수출관리법: 인도적 물자와 홍보자료를 제외한 상업물자의 수출 전면 금지. 지금 이 기사를 보고 있는 PC의 OS가 뭔지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대부분 ‘윈도우’ 체제일 텐데, 북한에서는 원칙적으로 MS 오피스나 윈도우를 쓸 수 없다. 이 때문에 김정일이 생전에,

 

“주체 조선의 컴퓨터 운영체제는 리눅스로 한다!”

 

라고 선언한 거다.

 

② 무역법: 최혜국 대우(MFN)와 특혜관세(GSP)부여 금지. 북한이 아무리 미국에 수출을 하고 싶어도 엄청난 관세를 두들겨 맞기 때문에 사실상 수출이 불가능하다.

 

③ 대적성국교역법: 대적성국교역법의 ‘외국자산 통제규정’에 의거, 북한과의 금융거래는 대부분 금지되어 있으며, 미국 은행 시스템을 통과하는 북한 자산은 동결된다.

 

④ 수출입은행법: 대북한 무역 시 수출입은행의 보증이나 지원 전면 금지. 수출은 물론 북한 물건을 수입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⑤ 대외원조법: 인도적 식량지원을 제외한 어떠한 원조도 제공불가. 이 법의 가장 무서운 조항은 다음인데,

 

“테러지원국을 원조하는 국가에 대한 원조금지”

 

항목이다. 즉, 북한을 지원하는 국가 또한 미국의 원조를 받을 수 없다. 국제적인 ‘왕따’를 만든 거다.

 

⑥ 국제금융기관법: 테러지원국에 대한 국제금융기관의 차관제공에 반대하도록 의무화. 이는 사실상의 북한에 대한 차관제공을 불가능하게 한다. 국제금융기관의 경우 출자금 액수에 비례하여 가중치가 주어지기 때문에 미국의 차관반대 의사표명은 곧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차관제공 불가를 의미한다.

 

⑦ 국제안보 및 개발협력법: 테러지원국으로부터의 상품 및 용역 수입 금지

 

북한은 90년대 동구권의 붕괴 이후 전 세계에서 완벽하게 고립돼 있었다. 전 세계는 지금 미국 주도 하의 WTO 체제에서 생활하고 있다. G2라고 ‘설레발’ 치는 중국도 미국의 WTO 체제 아래서 ‘달러’를 가지고 거래하며, 미국 채권을 산다. 이런 세상에서 경제발전과 생존이 가능할까? 이제까지 버틴 북한이 대단한 거였다.

 

...그렇다면 리비아는? 리비아의 경우는 북한보다 제재가 ‘덜’ 했다. 1986년 미국 내 리비아 자산의 동결, 미국의 대(對)리비아 교역 금지 조치가 이루어졌다. 1992년에는 UN 안보리 제재를 받았고, 원유 수출이 금지되면서부터는 하루하루 피가 빠져나가는 고통을 겪는다.

 

당시 리비아의 카다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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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을 하는 것만이 리비아와 내가 살 길이다.”

 

독재자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유혹이다. 핵보유국과 비보유국의 발언권의 차이, 국제사회의 위상. 사람들은 핵의 ‘폭발력’과 이후 벌어질 수많은 위해(방사능 낙진)를 걱정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핵무기는 발사하는 순간 위력이 사라진다. 즉, 핵은 ‘고도의 정치적 무기’란 말이다. 보유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 이게 핵무기의 사용 방법이다.

 

역사학자들이 핵무기를 두고 농담 삼아,

 

“인류가 만들어낸 발명품 중 딱 2번만 사용한 뒤 사용하지 않은, 그럼에도 계속 만들어지는 극히 드문 제조물”

 

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핵은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무기가 아니라 보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다. 만약 사용한다면? 사용한 국가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든가, 그렇지 않더라도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핵무기는 정치적인 무기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2차 대전 직후 소련이 이란 쪽으로 병력을 옮기자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당시 미국 주재 소련대사인 그로미코를 백악관으로 불렀다.

 

“이란에서 48시간 이내에 철수하지 않으면 미국은 원자탄을 사용할 것이다.”

 

소련은 24시간 안에 철수했다. 소련이 핵무기를 가졌을 때는 어땠을까? 2차 중동전은 영국과 프랑스에겐 다 이긴 전쟁이었다(이스라엘이 박살 낸 뒤에 영국과 프랑스가 뛰어든). 그러나 중동, 게다가 요충지인 수에즈 운하를 넘길 수 없었던 소련은 이집트 편을 들었고, 프랑스와 영국에게 핵 협박을 한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의 소유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절치부심 핵무기 개발에 나서는데, 당시 프랑스는 무려 국방예산의 25%를 핵무기 개발에 쏟았다.

 

(미국은 월남전 때도 북베트남에 핵 협박을 했었다. 구정 대공세 당시 전황이 어렵다고 판단한 존슨 대통령이 핵 협박을 했고, 닉슨 대통령 역시 북베트남과의 종전협상 테이블에서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며 협박했다. 이렇게 미국은 핵을 가지지 않은 나라에게 ‘핵 협박’을 일삼았는데, 이는 결과 핵을 가지지 않은 나라, 특히 독재자들에게 핵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게 된다. 핵 협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미국과 동등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하는 ‘절대병기’였으니까.)

 

카다피 역시 핵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 제재국면에서 리비아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는 ‘핵’이었다. 그 역시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세계의 정치지형이 뒤바뀌게 된다.

 

『Never Forget』

 

미국은 보이는 게 없었다(이 말이 가장 ‘적확한’ 표현일 거 같다). 당시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영공개방을 거부했고, 미국은 아주 정중하게 파키스탄을 폭격할 거라고 말했다(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후원자였으나, 협박과 300억 불의 경제지원, 이스라엘과 인도를 끌어들였다는 ‘대외적 명분’을 이유로 영공을 개방한다).

 

상황이 어떠한지는 북한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었는데, 미국과 대척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눈 돌아갔다는 걸 직감하고, 즉각적으로 테러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우리나라 외교부와 청와대, 국방부 등도 덩달아 긴장해서 대기했었는데, 북한이 911테러에 털끝만큼이라도 개입했다간 한반도가 사라질 기세였다.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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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를 장식한 건 이라크의 후세인이었다.

 

눈치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악에 받쳤던 건지 후세인은 911테러가 ‘신의 응징’이라는 성명을 냈다. 그 결과는 2년 뒤에 전 세계인이 확인하게 된다.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에 발맞춰 카다피가 백기를 든다. MI6(영국 비밀 정보국)를 통해서 미국 측에 협상을 제안했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

 

눈 돌아간 미국에게 반기를 든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회담은 강경 일변도로 흘렀고, 2003년 4월부터 그해 11월까지 비밀협상이 진행됐다. 이때 리비아는 협상재료(?)로 자신의 핵 프로그램을 공개했고, 이를 완전히 포기할 것을 선언한다.

 

2003년 12월부터 지난한 ‘사찰’과 ‘감시’이 시작되었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에 가입하는 건 물론, 2004년 1월부터 8월까지 IAEA의 고강도 사찰을 받았다. 핵무기 제조의 핵심장비라 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비롯한 각종 핵 무기 제조장비와 관련 서류 25톤이 미국 테네시즈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옮겨졌고, 리비아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종료된다. 2005년 10월에야 모든 게 끝났다.

 

리비아의 핵개발 계획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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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로부터 가져온 화학무기를 살펴보는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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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흐리는가?

누가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흐리는가?
데스크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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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6  03: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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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이 다가왔습니다. 이어 5월 말-6월 초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예정돼 있습니다. 어떤 일의 성패 여부는 사전 분위기를 엿보면 대강 감지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미 3국에서 회담 성사와 성공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한창입니다.

정상회담의 사전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아무래도 북한입니다. 북측은 남측 및 미국과 상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두 개의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북한의 분위기 조성 노력이 주효했습니다.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해 성공적 평화올림픽 개최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아울러 특사를 파견해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판문점 남측 지역 개최 및 남측과의 한반도 평화문제 논의 등을 수용하면서 회담 성사의 물꼬를 텄습니다. 미국에도 일찌감치 ‘비핵화’ 언질을 줌으로써 북미 정상회담 성사의 걸림돌을 제거했습니다.

특히 김정은 북한 위원장은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무력건설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경제발전 전략적 노선’으로 수정했으며, 동시에 핵무력건설 폐기 입장에 따라 ‘Δ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 Δ북부 핵실험장 폐기 Δ핵무기, 핵기술 이전 않을 것’ 등을 선언함으로써, 두 개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에 열성적으로 박자를 맞추는 건 트럼프 미국 대통령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이후 전개된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연일 쌍수를 들고 흥분과 기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공동회견에서 “우리는 북미 정상회담을 세계적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20일 북한의 핵과 ICBM 시험발사 중지 선언에 “북한과 세계에 아주 좋은 뉴스이고 큰 진전!”이라고 반색하면서 “우리의 정상회담을 기대하라”고 장담했습니다.

또한 24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과정에서는 “김정은은 정말로 매우 열려 있고 나는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일이 아주 명예롭다고 생각한다”며 김정은 위원장을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들떠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은 착 가라앉아 있는 편입니다. 문 대통령은 23일 “북한의 핵 동결 조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대한 결정이자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청신호”라면서 “북한이 핵 동결로부터 출발해 완전한 핵 폐기의 길로 간다면 북한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며 일반론을 펼치지만 격한 감정을 억누르는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남북.미 지도자들이 회담의 성사와 성공을 위해 적공을 들임에도 불구하고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망동도 나타납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5일 “문재인 정권의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북핵 제재위기로 붕괴위기에 처한 북한을 살려주려고 하는 것이고 속아선 안 된다”라고 비판한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행위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미국 주류의 분위기는 치밀한 것 같으면서도 가관입니다.

미국에서는 북한은 정권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 한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핵무기 불포기론’, 북한의 핵무기는 단순히 체제 보장 목적이 아니기에 북미 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이뤄낼 가능성이 없다는 ‘비핵화 불가론’과 ‘정상회담 무용론’, 제대로 준비를 못한 회담일수록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에 연기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정상회담 연기론’ 그리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까지 대북 제재가 계속되어야 하고 단계별 비핵화 조치에 보상을 해선 안 된다는 ‘재뿌리기 형’ 등 다양하고 요란합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민족통일과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 분수령이 될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들 회담의 성공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판에 사전부터 분위기를 흐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들 비관론자와 회의론자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도를 넘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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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이유

조홍섭 2018. 04. 25
조회수 1618 추천수 0
 
질병 들끓는 열대서 면역체계 유지보다 번식기 온대 이동 유리
여름 철새, 온대 텃새와 비슷한 면역체계…힘든 번식기 부담 덜어
 
03952151_P_0.JPG» 대표적인 여름 철새인 제비는 왜 겨울을 난 동남아가 아닌 온대지역에 와 번식할까. 질병 회피와 관련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강재훈 기자
 
해마다 때가 되면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장거리 이동을 감행한다. 누, 흰긴수염고래, 도요새, 연어, 제왕나비, 된장잠자리 등 포유류에서 곤충까지 다양한 동물이 지구 전체를 이동한다. 이 가운데 새들의 이동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생태 신호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기러기가 오면 가을이 깊었음을 알고 제비가 날면 여름이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동물의 이동은 광범한 현상이지만 그 원인이 무언지 딱 부러진 결론은 없는 상태이다. 먹이 부족을 피하거나 적절한 기후를 찾아 떠나는 것이 흔한 이유이지만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겨울 철새는 추위를 피해 찾아와 겨울을 난 뒤 봄에 번식지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여름 철새는 왜 열대지역을 떠나 온대지역으로 오는 걸까. 떠나는 곳에 겨울이 오는 것도 아니고 먹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러기가 오는 건 이해가 가는데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건 왜일까.
 
01313252_P_0_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JPG» 봄·가을 우리나라를 지나 대규모로 이동하는 도요새와 물떼새 무리. 김태형 기자
 
이런 궁금증을 풀 단서를 제공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에밀리 오코너 스웨덴 룬드대 생물학자 등 이 대학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여름 철새는 질병을 피해 이동한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연구자들은 참새목의 조류 1311종의 계통 유전학 자료를 분석해 면역체계가 새들의 이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펼쳤다.
 
연구자들은 온대인 유럽의 텃새와 사하라사막 이남의 적도 아프리카 텃새, 그리고 적도 아프리카에서 온대 유럽으로 이동해 번식하는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를 비교했더니, 아프리카 텃새의 면역체계가 가장 다양하고 포괄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에 참여한 헬레나 웨스터달은 “깜짝 놀란 것은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유럽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점이었다. 철새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병원체 모두를 견뎌야 하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질병을 옮기는 병원체는 적도로 갈수록 다양하고 많아진다. 아프리카 텃새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다양한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온대지역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것은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이 그만큼 부담이 많이 가는 일임을 보여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김봉규 기자.JPG» 인천 연평도 인근 무인도에서 번식한 저어새. 번식기는 어미나 새끼에게 매우 힘든 시기로 병원체 위협이 적은 곳이 번식에 유리하다. 김봉규 기자
 
특히 번식기에 그 부담은 크다. 어미 새는 번식기 때 생리적 부담이 극한에 이르기 때문에 질병에 대처할 에너지가 거의 없다. 어린 새도 일생 중 이때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가장 약하다. 따라서 비용이 많이 드는 면역체계를 회피한 채 번식을 병원체가 적은 곳에서 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일리가 있다.
 
이번 연구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텃새와 철새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아시아와 동남아 사이에서도 비슷한 관계가 나타날지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mily A. O’Connor et al, The evolution of immunity in relation to colonization and migration, Nature ecology & evolutionhttps://doi.org/10.1038/s41559-018-0509-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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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 넘는 첫 북한 지도자 김정은, 키워드는 파격·실용·호탕

군사분계선 넘는 첫 북한 지도자 김정은, 키워드는 파격·실용·호탕

 

 

 

 

 

 

 

북한을 방문했던 정의용(앞줄 왼쪽) 수석 대북특사가 지난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이 자리에는 김여정(오른쪽)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도 동석했다
북한을 방문했던 정의용(앞줄 왼쪽) 수석 대북특사가 지난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는 모습. 이 자리에는 김여정(오른쪽)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도 동석했다ⓒ청와대 제공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대외적으로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들어 전면에 직접 나서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반전되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연일 자신감과 여유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만큼,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선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 당일 북측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다. 이 극적인 장면은 전세계로 생생하게 송출된다. 그동안 간접적으로만 접해온 터라 처음으로 일거수 일투족이 생중계될 김 위원장의 모습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거침 없는 행보에서 드러나는 스타일
"30대 중반 나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 평가도

김 위원장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후계자로서 권력을 넘겨받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 이듬해 노동당 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올랐고, 2016년에는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외부의 우려와 달리 빠르게 집권 기반을 마련하고 강화한 셈이다. 1984년생으로 29세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된 김 위원장은 어느덧 집권 6년차를 보내고 있다.

그만큼 서른 한 살 나이차가 나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마주 앉아도 '세대 차이'에 따른 어색함 없이 남북 정상으로서 대화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관훈클럽 조찬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본 분들한테 '김 위원장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같이 얘기하면서 김 위원장의 나이를 인식해 본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이에 '나이를 인식한 적이 없다. 나이 차이를 못 느꼈다'고 얘기하더라"며 "그 얘기는 그 나이 치기 같은 게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김 위원장이 2012년 4월에 처음 대중 앞에서 연설한 모습,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서 했던 퍼포먼스 등을 보면서 상당히 자연스럽다고 느꼈다"며 "어떨지 모르지만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세대 차이를 느껴서 얘기를 못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료사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자료사진.ⓒ뉴시스/노동신문

이러한 모습을 바탕으로 한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거침이 없어 보인다. 김 위원장은 새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친 데 이어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조성된 대화 국면을 계속 이끌어나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두고는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남북 뿐만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말~4월 초에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현 중앙정보국장)를 만나고서는 '나와 이렇게 배짱이 맞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연일 이어지는 파격적인 행보에는 김 위원장의 실용주의적인 성향과 과감한 결단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불필요한 격식을 따지기 보다는 필요한 내용에 충실한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을 경험한 만큼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와 사상을 지녔다는 평가도 받는다.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뒷줄 오른쪽) 수석 대북특사와 서훈(뒷줄 왼쪽) 국가정보원장 등 특사단이 지난3월  5일 평양에서 열린 만찬에서 김정은 북한 국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를 만나 환담하고 있는 모습.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뒷줄 오른쪽) 수석 대북특사와 서훈(뒷줄 왼쪽) 국가정보원장 등 특사단이 지난3월 5일 평양에서 열린 만찬에서 김정은 북한 국위원장과 부인 리설주를 만나 환담하고 있는 모습.ⓒ청와대 제공

김정은, 농담도 줄곧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

또한 김 위원장은 농담도 즐길 줄 아는 여유롭고 호탕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지난 3월 5일 방북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났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특사단)이 실제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특사단과 만찬을 즐기던 김 위원장은 남측 언론이나 해외언론을 통해 보도된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도 알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무겁지 않은 농담'을 섞으며 여유 있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언급하던 '로켓맨' 등 자신을 조롱하는 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또 "그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 대통령이 새벽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하느라 고생 많으셨다.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는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는 재치 있는 말로 무거웠던 그간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단독 공연 '봄이 온다'를 직접 관람한 후 남측 예술단에 특유의 '북한식 유머'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런 자리가 얼마나 좋은지 문 대통령에게 전해달라"며 "(나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다. 본인이 본인 이름을 언급하며 남측 예술단 공연에 만족감을 표한 것으로, 친근감을 쌓기 위한 '농담'으로 해석됐다.

지난 4일 오전 평양순안공항에서 이용객이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공연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람을 보도한 북한 노동신문을 보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평양순안공항에서 이용객이 남북평화협력기원 남측예술단 공연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람을 보도한 북한 노동신문을 보고 있다.ⓒ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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