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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아시아의 홀로코스트”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서평회와 1232차 수요집회를 보며

“박유하라는 지식인이 이런 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역사가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해주는 것이다. 미국에서 홀로코스트 소송을 걸어서 법정과 합의를 통해 70억불 합의금이 마련됐다. 한일합의 800만 불을 비교한다면 이건 말도 안된다. 홀로코스트 문제가 타결된 것은 재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론을 통해 법정과 합의해서 이룬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아시아의 홀로코스트다. 이걸 국제무대에서 세계사적으로 밝혀야 한다.”(원코리아 대표 정연진씨)

▲ 사진제공 : 미국OK원코리아 정연진 대표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밀실합의 파문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국의 위안부>를 펴낸 박유하씨에 대한 여론소송이 될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의 작가들이 지난 25일 국회의원회관에 모였다.

손종업 선문대교수를 비롯해 평화어머니회 대표인 고은광순, 미국 OK원코리아 정연진 대표 등 20명의 작가가 공동집필한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할머니들에게 또 한 번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준 ‘박유하’라는 제국의 변호인에게 날리는 일종의 비판화살이다.

도쿄조형대학 교수이자 일본민주법률가협회 이사인 마에다 아키라 교수와 미국 법정에서 홀로코스트 소송을 타결한 국제인권변호사 베리 피셔의 인터뷰 글도 실렸다.

이날 20여명이 조촐하게 모인 서평회였지만, 공동 집필자이자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12.28한일 졸속 합의에 분노를 담아내며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에 어떤 내용을 담으려고 했는지 각자의 의도를 전했다.

▲ 사진제공 미국OK원코리아 정연진대표

손종업 교수는 책 제목을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로 정한 이유에 대해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이 얼마나 경솔하고 비학문적이며 어느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언어인가?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언어다”라며 박유하씨가 마이니치신문사에서 ‘아시아/태평양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수상을)사퇴하지 않는 이유'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망명을 <제국의 위안부>가 대신 해내고 있는 셈"이라고 소감을 밝혔는데, <제국의 위안부>를 읽다보면 박유하가 정신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일본국과 동지적 관계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제국의 변호인'이라고 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국의 변호인'이라는 수사는 말 그대로 일본 제국, 일본 정부, 일본 군인을 변호함을 의미하고 저자 박씨는 형식적으로는 양측에 화해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늘 일본 정부, 일본 제국의 편을 들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덧붙였다.

베리 피셔씨를 인터뷰하고 이번 서평회를 위해 미국에서 온 정연진 원코리아대표는 12.28 한일 졸속합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당사자들인 피해자들의 요구는 반영하지 않고, 피해자가 수용할 수 없는 방식과 내용으로 협의해버렸다“며 피해자 중심의 접근이라는 인권원칙이 무시됐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고 법적인 책임 또한 전혀 인정하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을 지원하려고 설립한다는 재단도 피해국인 한국 정부에 떠넘겼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미국이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는 집요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한미일 군사동맹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를 여성인권의 문제로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서평회에서 발제를 맡은 고은광순씨는 ‘개같은 일본을 조심하라’했던 수운 최제우 선생의 이야기를 전하며 “19세기부터 조선을 약탈해온 일본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군인이 필요했고 그 군인들을 위해 성노예가 필요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박유하씨는 치졸한 짓을 했다”며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제공 미국OK원코리아 정연진대표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과거사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도폭력”이라고 규정하곤 “2차 대전 때 나치에 의한 여성의 성폭력 문제는 이제서야 유럽 여성학계에서 얘기가 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빨리 이 문제를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었고 그 배경에는 한국의 여성운동의 힘이 있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제도 폭력에서 지속될 수 있다. 여성 차별, 성폭력 등 이건 지금도 당할 수 있고 내가 (피해자가)될 수도 있다. 이 문제의 책임은 차별적 구조를 생산하고 지지하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일본이 사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과정이 중요하고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 근절할 순 없겠지만 줄일 수 있고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모두의 각성과 성찰을 원한다”며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문제이고 여성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를 펴낸 ‘도서출판 말’ 최진섭 대표는 “이 책은 박유하라는 제국의 변호인을 내세워 전쟁범죄를 부정하려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흐름을 밝혀내기 위한 책”이라며 “박씨가 어느 나라의 사람인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단지 국가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 인권의 문제에 대한 진실을 전하고 싶었다“고 책 출간의 취지를 전했다.

▲25일 정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123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렸다. 이날 수요집회는 일본 민간단체인 ‘헌법 9조-세계로 미래로 연락회’(9조련)가 주관했다.[사진출처 : 정대협 페이스북]

서평회 이틀 뒤인 25일 정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123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렸다. 이날 수요집회는 일본 민간단체인 ‘헌법 9조-세계로 미래로 연락회’(9조련)가 주관했다.

9조련은 일본이 전후 채택한 헌법 9조(전쟁포기, 전력 및 교전권의 부인)를 지키며, 전쟁을 반대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그동안 일본 정부에 의한 헌법 9조 개악 시도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2008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수요시위를 직접 주관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 연대하고 있는 9조련은 이번 집회가 9번째 주관하는 것으로 피해자 부재의 ‘한일 합의’와 ‘평화비(소녀상)’ 철거 반대, 아베 정권에 의한 “전쟁이 가능한 국가”에 반대하며, 일본 민중의 책임과 의무로서 평화와 인권을 위한 평화헌법 9조를 수호하는 투쟁을 계속해나기로 했다.

이틀에 걸친 두 행사는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씨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그대, 그대로 여성인가? 그대가 진정 여성이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가?!”

권미강 기자  kangmomo8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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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국회서 지배구조 개선 마무리”

 
“청와대에서 쪼인트 까이는 사장은 못 오게 해야”

“청와대 들어가 쪼인트 까이는 사장은 못 오게 하자”

25일 국회에서 진행된 <공영언론, 이대로 괜찮은가?> 제하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토론회의 결론을 압축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발제를 맡은 박태순 언론소비자주권행동 공동대표 또한 KBS와 MBC, EBS의 지배구조개선을 위해 최고의결기구이자 사장 선출권을 가진 이사회 구성을 13인으로 증원하고 정치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각 분야의 대표성을 가진 인물들을 포함시키는 안을 제시했고 ‘특별다수제’ 도입 또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19대 국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욕이 없었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은 점점 더 망가지고 있다.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된 20대 국회에서 언론사 지배구조개선을 시급하게 처리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김성수 당선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9월 정기국회에서 마무리해야”

25일 국회에서 진행된 토론회 <공영언론, 이대로 괜찮은가?>의 모습. 해당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방송기술인연합회,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강원민언련, 광주전남민언련, 경기민언련, 경남민언련, 대전충남민언련, 부산민언련, 전북민언련, 충북민언련,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새언론포럼, 자유언론실천재단,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언론위원회 등이 공동주최했다. ⓒ미디어스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당선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 이것 하나는 올해 9월 정기국회에서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대 국회에 설치됐던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 산하 자문위원회의 결론에 주목했다. 여야권 성향 학자 동수로 구성된 자문위는 △공영방송(KBS·EBS) 이사 수 13인으로 증원(7:6구조), △특별다수제 도입, △방통위원·공영방송 사장 및 이사 결격 사유 강화, △방통위원장 국회 임명동의절차 신설(방통위원 대통령 추천 배제), △편성위원회 구성 의무화(법률규정) 등에 합의 한 바 있다. 특히 쟁점이 됐던 특별다수제의 경우, 자문단 10명의 위원 중 선문대 황근 교수만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같은 안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 때문에 도입이 무산됐다. 

김성수 당선자의 말대로 정기국회에서 ‘특별다수제’가 도입된다면 당장 내년 2월 임기가 종료되는 MBC 사장직에 청와대 낙하산이 내려올 확률은 줄어든다. 특히, 2017년은 19대 대선이 치러진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에 MBC 사장 교체가 중요한 사안이 될 수밖에 없다. 

김성수 당선자는 “방송개혁은 시대과제로 반드시 관철해 내야 한다”라면서 “다만, 진보와 보수 간 정파적 이슈가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3당이 긴밀히 공조해 해직언론인들의 복귀와 공영방송지배구조개선, 방통위와 방통심의위 독립성 보장 문제 등을 놓고 어떤 문제부터 풀지 논의해야 한다”면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김성수 당선자는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의 공영방송지배구조개선TF를 구성하기로 했고 조만간 공식 발표할 것”이라면서 “MBC출신 의원들이 주축이 돼 국민의당과 정의당과 함께 연구모임을 만들고 있다. 반드시 9월 정기국회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추혜선 당선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도 분명한 골든타임이 있다”며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조속히 입법안을 만들어 개정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TF를 구성한다는데, 그동안 제안됐던 내용들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각 당의 자체 입장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공동TF 구성을 통해 조율하자는 제안을 드린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이용호 당선자 또한 20대 국회 개원 직후 공영언론 지배구조 개선 논의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 했다. 

KBS·MBC 구성원들, “공영방송 보도, 5공 시절 재현하는 수준”

이날 토론회에 토론회 패널로 나온 MBC 박성제 해직기자는 2012년 18대 대선보도가 여야에 얼마나 편향적으로 보도됐는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2017년 MBC 사장 교체시까지 법 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내년에 치러질 19대 대선보도 역시 편향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공영언론,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MBC 박성제 해직기자가 토론하고 있는 모습(사진=언론노조)

박성제 기자는 “김재철 사장 재직 시절 18대 대선을 앞두고 MBC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찾아봤다. 5공 때 (국영방송)보도가 재현됐다”고 총평했다. 그는 <뉴스데스크> 방송에서 MBC가 단독 취재한 이명박 대통령 아들 이시형 씨 전세자금 김윤옥 측근 송금 사건 보도가 누락됐고, 신경민 의원이 '막말' 발언을 했다고 보도하거나 정동영 의원이 한홍교 교수 트윗글을 리트윗한 것을 두고 노인폄하라고 보도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성제 기자는 이외에도 MBC의 편향 보도 사례로 △안철수 논문표절 관련 보도, △단일화 이후 문재인 후보 측의 ‘안철수는 지지유세 하는 한 명에 불과하니 부각하지 말라’는 지시 관련 보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여야의 흑색선전 공방으로 표현한 보도 등을 꼽았다

박성제 기자는 또 “영상기자회 카메라 분석을 확인해봤더니, 박근혜 후보에는 리액션 샷과 박수·환호 장면이 뉴스에 들어간 반면, 문재인 후보는 뒷통수, 무표정, 밋밋한 장면, 심지어 코 닦는 장면 등이 들어갔다”고도 지적했다. 이어, “<시사매거진2580>에서 간첩조작 피해자 아이템을 다루려 했으나 ‘인혁당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불가통보 받고 인사조치 및 징계 절차가 진행됐다”면서 “<PD수첩>의 경우 대선을 앞두고 7명의 PD가교체됐고 대체작가가 투입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배구조를 못 바꾸면 이런 일이 또 벌어질 것이다. 이제 권력이 공영방송을 정권유지를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KBS의 보도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언론노조 성재호 KBS본부장은 이른바 ‘상시청문회법’아 본회의에 통과될 당시 KBS의 인터넷판 기사제목이 ‘365일 청문회법 통과’였다며 “이것이 공평한 제목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전경련은 어버이연합에 돈을 줬지만 공영방송들은 뉴스로 지원을 대신한 셈”이라면서 “추악한 게이트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취재를 통한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 고대영 사장이 선임 당시 ‘청와대 낙하산’ 논란에도 불구 여야 7대4로 구성된 이사회(이사장 이인호)를 통해 선임됐다는 사실은 지배구조개선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장 한 명 바뀐다고 바뀌나?…바뀐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 “‘사장 바뀐다고 바뀌냐’는데,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출발점”이라며 “MBC가 김재철 사장 들어온 후, 얼마나 망가졌나. KBS의 문창극 총리후보에 대한 보도는 사장이 없을 때 나온 것이다. 사장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걸 하라고 국민이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현재 JTBC가 보도를 잘하고 SBS 또한 공영방송 KBC와 MBC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공영이 필요한가’, ‘상업방송을 잘 만들면 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면서 “일시적으로 경쟁을 통해 바람직한 상업방송이 나올 수도 있으나 이윤을 추구하고 사주 이해관계에 따라 방송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라면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공영방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전충남민언련 우희창 공동대표는 “KBS와 지역총국, MBC본사와 지역MBC간 공영방송네트워크를 다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사의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특히, 인사문제에 있어서 지역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가기간통신사업자 연합뉴스(연합뉴스TV)와 공기업 등이 대주주인 YTN·서울신문 등 언론사들의 실질적인 공정성 확보방안 또한 20대 국회에서 논의해야할 대상이라는 주장 역시 제기됐다. 전규찬 교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은 야3당이 대동소이하다”며 “아쉬운 것은 이렇게 중차대한 언론문제가 다른 사안들에 비해 그 중요도에서 밀린다는 점이다. 당 내에 의식 있는 분들이 해당 의제의 중요성을 끌어올려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권순택 기자  nan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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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역사 ①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역사 ①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
 
 
 
임병도 | 2016-05-25 09:43: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다음 중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중정)이 한 일이 아닌 것은?

① 정치인 사찰 및 협박, 회유
② 정권 유지를 위한 부정선거 및 선거 개입
③ 박정희 통치자금을 위한 민간인 재산 강탈
④ 유신 및 독재 정권 반대 인물에 대한 간첩조작
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진정한 국가안보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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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삽에 '깔따구' 20마리, "4대강이 썩어 문드러진다"

 

[현장] 모니터링을 위해 찾았던 금강, 죽은 물고기와 오염지표종만 그득

16.05.24 21:01l최종 업데이트 16.05.24 21:0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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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수 금강유역환경회의 사무처장이 60cm쯤 되어 보이는 죽은 잉어를 들어 보인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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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탁하다. 죽은 물고기도 즐비하다. 바지 장화를 신고 두어 발짝 들어가 물속의 흙을 떠보았다. 시커먼 펄 흙 속에서 붉은 생명체가 꿈틀거린다. 환경부 수생태오염지표종 4급수 붉은 깔따구 유충이다. 

24일 금강 모니터링을 위해 충남연구원과 금강유역환경회의 유진수 사무처장,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정책국장, 대전충남녹색연합 김성중 팀장과 세종보를 찾았다. 새벽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진다. 

최근 기온이 상승하면서 조류가 번성하고 있다. 오늘 방문은 세종시 마리너 선착장과 불티교, 공주시 고마나루터, 부여군 백제보와 규암나루터, 서천군 와초리 연꽃단지 등의 지점에서 강물을 떠서 수질분석을 의뢰하기 위함이다.

발길이 닿는 강변엔 죽은 물고기 득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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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보부터 서천군까지 가는 곳곳마다 죽은 물고기가 볼 수 있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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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찾아가는 세종보 상류 마리너 선착장 진입로는 달팽이들이 도로를 건너고 있다. 혹시나 밟을까 조심스럽게 들어간 선착장은 강물이 갈색빛이다. 바람에 파도치듯 강물이 출렁거리고 주변에서 밀려든 부유물로 쓰레기가 가득하다. 신발만 한 물고기가 죽어서 부유물 사이를 들락거린다. 

 

"에~휴 좀 치우지, 이건 아니다."

명승 제21호인 고마나루 인근의 나루터 입구는 지난밤 행락객이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던 자리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한마디씩 내던지며 물가로 다가가자 죽은 붕어가 강바람에 출렁인다. 정체 수역에서 살아가는 수생식물인 마름이 잔뜩 자라고 있다. 걸어서 공주보까지 가는 구간에도 간간이 죽은 물고기가 눈에 들어온다.

"와 저렇게 큰 잉어까지 죽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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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사업 당시 주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조성한 연꽃단지는 잡풀만 우거져 있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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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하굿둑과 인접한 서천군 화양면 와초리 연꽃단지를 찾았다. 상류와 별반 다르지 않게 썩은 악취가 밀려온다. 붕어와 잉어가 죽어서 둥둥 떠다닌다. 강물엔 녹조 알갱이도 뒤섞여있다. 4대강 사업 당시 주민소득을 높이기 위해 조성한 연꽃단지는 제방이 침식으로 무너져 내린다. 연꽃이 있어야 할 자리엔 잡풀로 뒤덮었다. 

서두른 탓에 일정보다 빨리 끝났다. 추가로 공주 쌍신 공원을 찾았다. 녹색연합 김성중 활동가가 바지 장화를 입고 강물로 들어갔다. 수변을 장악한 마름을 밀쳐내고 삽을 찔러 넣었다. 

"으~악,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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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보 우안 상류 1km 지점에서 퍼 올린 흙 속에서 발견된 환경부 수생태오염지표종 붉은 깔따구.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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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닥에서 퍼 올린 시커먼 펄 속에서 붉은 생명체가 꿈틀거린다. 환경부 수생태오염지표종 4급수 붉은 깔따구다. 숨이 턱 막혔다. 정신을 차리고 흙을 제치자 20여 마리가 보인다.
 

 
▲ 붉은 깔따구 충남 공주시 공주보 우안 상류 1km 지점에서 퍼 올린 흙 속에서 발견된 환경부 수생태오염지표종 붉은 깔따구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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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cm 삽날의 한 삽에 깔따구 20마리, 300m 강폭을 계산해보니 머리가 아프다. 일행은 말문이 막혔다. 꿈틀거리던 붉은 깔따구 유충을 봤던 여성 연구원이 무섭다며 몸서리를 치면서 종종걸음을 친다. 

"수질 개선에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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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공주 쌍신공원 주변에는 죽은 물고기가 득시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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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수 처장은 "비가 내리는 날에도 예년보다 물빛이 더 탁하고 흙빛에 가깝게 까맣다. 시궁창 냄새도 일상적으로 풍긴다. 수달이 잡아먹거나, 낚시꾼이 잡아서 버린 물고기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죽은 물고기 사체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수질상태가 저하되면서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이어 "올해는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강변 초지가 빠르게 자라고 있다.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 교란종인 가시박이나 단풍잎돼지풀이 늘었다. 정수성 식물인 '마름'과 '연'이 급격하게 확산하는 것을 보면 금강이 정체 수역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증거다. 보 운영과정에서 흐름을 지속해서 만들지 않는다면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수질 개선에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라고 주문했다.     

김성중 팀장은 "강바닥이 진흙이 돼 장화가 푹푹 빠졌다. 진흙을 퍼 올리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체를 보고서 깔따구로 직감했다. 지난번에는 (한 삽에)5~6마리 정도로 확인되었는데 오늘은 20여 마리 정도로 많은 개체 수가 번식한 걸 알 수 있었다. 기온이 높아지면 개체 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생각하니 앞이 깜깜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4대강 사업에 보가 막히고 물의 흐름이 사라지면서 오염지표종이 증가하고 있다. 죽어가는 강을 이대로 방치하면 결국은 사람까지 위험에 처할 수가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수문을 개방하고 강의 흐름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물은 썩어가고 죽은 물고기는 늘어난다. 시궁창 속에서나 보이던 붉은 깔따구는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한다. 4대강 준공 4년 만에 보고 듣지도 못한 오염 종들이 출현하고 있다. 정부는 4대강 물 활용론만 내놓을 뿐 수질개선에는 손을 놓고 있다. 실패한 4대강 사업에 대한 정부의 빠른 대책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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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구 선생 회고록3권 ‘수학자의 삶’

안재구 선생 회고록3권 ‘수학자의 삶’(3)내 학문의 어버이, 박정기 선생님을 만나다

통일운동가 안재구 선생의 회고록 <끝나지 않은 길> 3권 ‘수학자의 삶’을 연재한다. 1권 ‘가짜 해방’, 2권 ‘찢어진 산하’에 이어진다. 1952년 대학 입학과 재학시절, 그리고 4.19혁명의 격동기에 대한 기록이다. 이 회고록을 통해 독자들은 친일잔재와 분단이 남긴 비극을 한 대학생의 고뇌를 통해 읽게 된다. 특히 군 복무 시기에 맞은 4.19혁명을 생생하게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매주 화요일 게재된다.[편집자]

 
▲경북대학교 수학교수로 재직시절, 제자들과 교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내가 박정기(朴鼎基)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제적당한 나는 초등학교 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해 17살부터 초등학교 선생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일을 2년 만에 그만두고, 다시 공부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했다. 막상 대학 진학을 하자니 무엇보다 중학교 1학년 중퇴라는 학력이 문제였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학년을 건너뛰어 영남고등학교에 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 이때가 1951년 19살의 나이였으니, 그래도 제 나이에 맞게 고3이 된 셈이었다.

박정기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영남고등학교에서 <고등대수학>이라는 3학년 과목의 첫 수업 시간이었다. 그때는 1951년 가을학기로 전선에서는 남북의 청년들이 매일같이 시산혈해(屍山血海)로 죽어나가던 시절이었다. 이남의 군대와 미군이 겨우 서울을 되찾았으나, 바로 그 북쪽 얼마 안 되는 곳에서는 포탄이 터지고 살이 찢어지며 고지에는 날마다 백병전으로 아수라장이던 때였다.

박정기 선생님은 6.25전쟁 전에 고려대학교 수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셨다. 또 서울대학교와 연희대학교 등에서도 강의를 하셨다. 그러다가 전쟁을 맞아 남쪽으로 피난을 오셨는데 당시 서울의 대학은 전시 휴학상태라 강의가 없었다. 때문에 피난 온 교수들은 대구에 있는 몇 안 되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야만 했다. 그야말로 피난살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어 고등학교에까지 강사로 나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일찍부터 박정기 선생님의 제자가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 통의 고등학교 3학년 반에는 군에 입대한 사람들 중 이른바 ‘빽’을 써서 후방근무를 배치 받아 군복을 입은 채로 학교에 오는 학생도 간혹 있었다. 대부분 학생들도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졸업장만 받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니 수학시간에는 대부분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엎드려 자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 오직 한 사람만이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도 그 모습이 인상에 깊이 남으셨던지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문리대 수학과에 개설된 박정기 선생님의 해석학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간 나는 뒤편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강의실에 들어온 박정기 선생님이 강의를 시작하려고 학생들을 둘러보시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놀란 듯한 얼굴로 나를 보시더니 대뜸 알은 체를 하셨다.

“어, 안 군이 여기에 웬 일인가?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가?”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모아졌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일어나 대답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문리대에서 선생님이 강의하신다는 걸 알고 오늘 선생님의 강의를 한번 들으러 왔습니다.”

“응, 그런가? 그럼 앉게.”

그러고는 강의를 시작하셨다.

당시 신설된 문리과대학의 수학과에는 박정기 선생님이 주임교수로 오셨다. 박정기 선생님은 대구사범대학 수학과에서 시간강사로 강의하시면서 몇몇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 수학 세미나를 조직하셨다. 이들을 단단히 지도하시어 일본 책을 그대로 불러주는 강의가 아니라 진짜 수학 강의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셨다. 그렇게 당신한테서 수학을 제대로 배운 제자들을 선발해 문리과대학의 수학 강의를 맡겼다. 덕분에 문리대 수학과는 경북대학교 신설 때부터 학문의 분위기가 올바르게 잡혀 있었다.

이 소문을 듣고 나도 1학년 2학기부터 시간이 겹치지 않으면 문리대 수학과 강의를 들으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내가 문리대 수학과의 강의를 허락도 없이 들으려고, 이른바 도강하려고 간 첫날이 바로 박정기 선생님의 해석학 강의 시간이었다. 당시 문리과 대학은 한 학년에 학생 수가 15명 정도였다. 그 틈에 내가 앉아 있으니 단박에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나서 선생님은 나를 연구실로 데려가 이것저것 물으셨다. 그 다음부터는 선생님의 강의를 시간을 지켜 열심히 들었다. 비록 재적대학은 사범대학이지만 강의는 형편이 닿는 대로 문리대 수학과에 가서 열심히 들었다.

박정기 선생님의 해석학 강의는 참으로 명강이었다. 수학의 논리체계가 빈틈없이 짜여 있고, 군데군데 그런 논리체계가 구성되는 역사적 배경도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논리체계는 조금의 빈틈도 없이 하나의 구조물을 짜나가는 듯했다. 비록 그것이 논리체계라서 손에 쥘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는 것이지만 참으로 훌륭한 구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다보면 논리체계로 뼈대를 엮어나가는 아름다운 창조물을 보는 듯했다. 선생님은 종종 그 창조물에 취하셔서 칠판에 특유의 필체로 적은 수식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다가, “역시! 수학은 예술이야!”라고 감탄사를 뱉으셨다. 그러면서 심산유곡의 경관을 보듯 제자들도 함께 그 논리의 창조물에 도취되도록 만드셨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수학은 예술이었다. 그간 사범대학의 강의 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던 나는 그때부터 수학이라는 학문에 흠뻑 매료되고 말았다.

2학년이 되자 선생님은 나에게 <현대대수학> 책을 한 권 주셨다. 그러면서 1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일 대 일로 세미나를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선생님과 함께 한 이 세미나를 통해 수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 학문을 하는 사람의 인생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선생님의 특별한 배려 속에서 문리대에서 4년 동안 수학공부를 했던 나는 문리대 수학과 대학원에 응시해 합격했다. 선생님을 따라 수학이란 학문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겨울방학이 가까워지자 한날은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연구실로 찾아뵈니 내게 <해석기하학>과 <좌표기하학> 책 2권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안 군, 곧 방학이 되네. 방학 동안 이 두 권의 책을 보고 자네가 학생을 가르친다고 생각하고 강의노트를 만들어보게. 겨울방학이 끝날 때 그 노트를 내게 가져오게.”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냥 열심히 강의노트를 만들었다. 방학이 끝나는 날 두 과목의 강의노트를 만든 대학노트 4권을 선생님께 갖다드렸다. 선생님은 다른 말씀 없이 그냥 두고 가라고 하셨다. 그 이튿날 선생님이 나를 급히 찾으신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께 달려갔다.

“노트를 만드느라 수고했네. 내가 노트를 만들라고 한 것은 자네에게 그 강의를 맡겨도 좋을지 어떨지 알아보려고 그런 걸세. 꼭 그대로 새 학년부터 강의를 해주게.”

선생님은 따스한 시선으로 나를 보시고,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나는 너무나 뜻밖이라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선생님의 손을 맞잡았다. 대학을 졸업한 바로 그 해에 대학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선생님께서 나에게 거는 기대는 각별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지도로 석사학위도 받고,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리고 학자로서의 자질도 배웠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의 기대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유신체제의 광풍을 맞아 수학자로서의 인생을 끝내고 말았던 것이다. 선생님께서 내게 쏟으신 그 은공은 보답하지도 못하고 통일운동가의 인생으로 그 여정을 바꾸어야만 했던 것이다.

선생님은 언제나 제자들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문은 대를 이어 발전해나가는 거야. 선대가 이루어놓은 터 위에서 그 터를 딛고 올라서는 거지. 자네들이 나를 밟고 올라서게! 그래야 나도 내가 사는 보람을 가지게 되네!”

편집국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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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제, 남북해외 동포가 힘을 합쳐야”

<6.15공동위원장 인터뷰③> 손형근 6.15해외측위원회 부위원장
선양=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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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24  09: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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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북해외 위원장회의’가 19~20일 중국 선양(심양)에서 열렸고, <통일뉴스>는 전 과정을 동행취재했다.
회의 결과는 공동보도문을 통해 발표됐고, 개성 6.15민족공동행사와 서울 8.15민족공동행사, 8.15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비롯한 부문.지역별 상봉과 행사 등이 합의됐다.
<통일뉴스>는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 손형근 6.15해외측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 대행)과의 인터뷰를 순서대로 싣는다. /편집자 주

 

   
▲ 손형근 6.15해외측위원회 부위원장과 20일 중국 선양시 모란관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해외측 입장으로서는 반갑고, 조금 돌이켜 보아도 이렇게 모두가 생각이 일치된 것도 과거에는 없었고, 정말 쉽게 합의를 본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손형근 6.15해외측위위원회 부위원장은 중국 선양(심양)에서 진행된 ‘6.15공동선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북해외 위원장회의’가 4개항의 공동보도문을 내고 마무리된 20일 저녁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정말 전체가 일치하는 속에서 공동보도문 합의를 보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와병 중인 곽동의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을 대행해 이번 회의에 참가한 손형근 부위원장은 ‘일본 문제’를 “공동보도문에 반드시 하나의 항목으로 넣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이런 문제는 우리 재일교포 만이 아니라 남북해외가 단합된 힘으로 반대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동보도문 3항은 “소위 일본군 '위안부' 범죄와 강제징용, 징병 등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과거 죄악에 대한 사죄와 배상 및 재일동포들의 민족적 권리와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활발히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그는 특히 “최근 4,5년 전부터 헤이트 스피치, 민족차별이 시작됐다”며 “근본적인 원인은 한일조약”이라고 짚었다. 1965년 한일조약 체결 당시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와 식민지배 반성, 배상 없이 국교정상화를 서두른 결과 지금까지 민족차별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

또한 “일본 정부가 북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겠다는 시기마다 미국이 반대했다고 본다. 미국의 반대에 영향을 받아서 멈췄다”며 “미국이 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펼치고 있고 그에 일본 정부가 따라가고 있는데 우리가 좀 더 노력해서 일본이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해서 북과 교섭을 더 전진시켜서 관계를 정상화 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3,4,5세가 민족에 대한 희망을 잃어서 일본 사람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서 통일로 향하는 움직임이 시작되면 다시 그런 사람들도 민족의 희망을 가지게 되고 통일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고 무엇보다도 ‘민족의 희망이 있다. 민족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 큰 흐름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 반독재투쟁 시기 결성된 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의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딱지 탓에 노무현 정부 시기 발급받은 한국 여권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8년전 박탈당했다며 “매일 매일 화가 나서 분개해서 정말 한마디 하면 참을 수가 없다”고 울분을 토로하고 “제발 좀 해외동포에 대해서는 조금 사상이 다르다고 해서 여권 안 주는 것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그는 “해외 모두가 공동보도문의 내용을 실현하는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우리 남북해외 동포가 이번에 합의를 실현하는 속에서 새 시대, ‘제2의 6.15시대’가 반드시 열리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20일 오후 8시(한국시간 9시) 중국 선양시 모란관에서 손형근 6.15해외측위원회 부위원장과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공동보도문 상당히 쉽게 합의에 이르렀다”
”일본문제, 반드시 하나의 항목으로 넣아야“

   
▲ 손형근 부위원장은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왼쪽부터 김완수 6.15북측위원회 위원장,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손형근 부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통일뉴스 : 곽동의 위원장 건강은 어떤가?

■ 손형근 부위원장 : 이번에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곽동의 위원장께 인사드리러 갔다. 곽동의 위원장은 많이 건강을 회복하셨고, 회의 참가자들에게 안부 전해달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여기 와서 곽동의 선생 인사를 전했더니 회의에 참석하는 분들이 다 ‘잘 됐다’고 말해줘서 인사를 전한 나도 좋았다.

아무래도 연세가 86세라 조금 걷기가 어렵고 말씀도 충분히 못하는 상황이었다. 1년 전에 입원했는데, 반년 전에 만났을 때는 굉장히 상황이 안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일주일 전에 뵜더니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자기 몸으로 조금 이동할 수도 있고, 말씀도 정확히 나눌 수 있었다.

□ 이번 회의에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 대행 자격으로 참여했나? 6.15민족공동위원회 강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해외측위원장 문제에 관한 논의가 있었나?

■ 곽동의 위원장이 갑자기 그런 상황이 돼서 못 가는 사정으로 해외측위원회 사무국에서 일본지역 의장인 내가 대행으로 가기로 했다.

작년부터 그렇게 하고 있는데, 다른 해외측위원회 지역본부에서 별다른 반대의견은 없었다고 보고 있다. 아마 사실상 다른 지역본부의 인정을 받아서 와 있다고 생각해도 문제없는 것 같다.

□ 이번 공동보도문에 담긴 개성 6.15공동행사, 서울 8.15공동행사 등 합의 내용에 대해 6.15해외측위원회는 이견이 없었나?

■ 걱정을 좀 하고 왔다. 원활하게 회의가 진행되고 원만하게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걱정이 있었지만, 여기 와서 회의에 참가해 보니 북측에서도 솔직한 의견을 내고, 남측에서도 있는 생각대로 말하고, 우리 해외측에서도 많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그런 토론을 토대로 공동보도문 작성 작업에 들어가는데 상당히 쉽게 합의에 이르렀다. 합의를 보니 지금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원하는 우리 동포라면 다 지지 찬동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었다.

해외측에서도 마련된 안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지지 찬동했고, 북에서도 남에서도 그런 의견표명이 있었다. 정말 전체가 일치하는 속에서 공동보도문 합의를 보았다. 해외측 입장으로서는 반갑고, 조금 돌이켜 보아도 이렇게 모두가 생각이 일치된 것도 과거에는 없었고, 정말 쉽게 합의를 본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 해외측에서 강조한 내용 중 공동보도문에 반영된 내용이 있나?

■ 이번에 해외측에서 강조한 것은 첫째로, 해외에서 조국반도 정세를 보면 군사적인 긴장이 높아가고 있고, 정말 전쟁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군사적인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 대화가 시작되어야 하고, 민간단체에서도 자주적인 평화를 수호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런 제안을 했다. 공동보도문에 반영됐다.

둘째로는 일본에 관한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있고, 작년 12월에 한.일 정부 간에 졸속 합의가 있었다. 우리 재일동포로서도 이것은 인정할 수 없다. 일본 정부의 법적인 사죄와 배상이 없는 이런 합의는 인정할 수 없다는 소리가 높다.

그리고 요즘 일본 사회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증오 발언)랑 노골적인 민족차별이 확산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도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우리 재일교포 만이 아니라 남북해외가 단합된 힘으로 반대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점을 강조해서 공동보도문에 반드시 하나의 항목으로 넣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4,5년 전부터 헤이트 스피치, 민족차별 시작”
“민족차별, 근본적인 원인은 한일조약이다”

   
▲ 손형근 부위원장은 재일동포 3세로서 자신의 성장과정과 민족의식, 통일의지가 싹 튼 과정을 20일 만찬장에서 들려줬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회의 과정에서 남측의 4.13 총선과 북측의 7차 당대회를 주요사안으로 언급했는데, 한발 떨어져 있는 해외에서는 어떻게 보았나?

■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먼저 4.13 총선에 관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문제가 있다’, 이런 국민들의 목소리가 선거 결과에 반영됐다고 보고 있다. 그러니까 여소야대라는 국회의 새로운 구조가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대북정책을 억제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상당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다.

또 하나는 제7차 노동당대회다. 거기서 민족자주, 민족대단결, 평화보장, 남북관계 개선, 공동선언 이행, 이런 통일운동에 있어서의 원칙이 재확인됐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북한이 그 원칙을 지켜서 통일운동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보았다.

남북에서 두 가지 큰 사건이 4월, 5월에 있었는데, 우리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올해 통일운동을 더 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 조선학교 중등교육 무상화 배제를 비롯해 일본 내에서 ‘반한, 반조선’ 기류가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실제 체감도는 어느 정도이고,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나?

■ 최근 4,5년 전부터 헤이트 스피치, 민족차별이 시작됐다. ‘조센징은 한국으로 돌아가라’ 이런 말을 일본 사람들이 가두에서 데모하면서 외치는 그런 모습을 보고 덜덜 떨었다.

그것은 우리가 어릴 때 일본학교에서 당했던 차별이다. 부끄러워서, 무서워서 어린 내가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그 후부터 일본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흐름이 있어서 그런 움직임은 조금 진정되고 있었다. 그런데 4,5년 전부터 그렇게 다시 노골적인 민족차별이 일어났는데 충격이다.

그래서 왜 이런 움직임이 다시 일어나는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우리가 생각해봤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일조약이다. 한일조약을 체결할 때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을 어떻게 하느냐?’ 그 물음에 대해서 대답을 해야 하는 그런 시기였다. 그런데 명백한 사죄를 안했다. 오히려 침략행위를 정당화했다. 그 당시 박정희 정권도 그걸 애매하게 인정해서 한일조약이 맺어졌다. 그러니까 우리민족에 대해서 법적으로 반성도 해야 하고 사과도, 배상도 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안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하나 문제가 있다. 일본 정부 자세다. 그것도 4,5년 전까지는 일본 정부가 그런 문제가 있는 한일조약을 맺었지만 내외에 여론이 있어서 ‘반성해야 된다, 배상해야 된다’ 그런 소리에 거부를 못 해서 조금씩 그런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런데 4,5년전부터 특히, 아베 정권이 출범해서 ‘과거청산은 하지 않아도 된다’, ‘역사 수정주의’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의정자가 등장했다.

헤이트 스피치 규제 법안이 일본 국회에서 이달 중에 통과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헤이트 스피치를 금지한다’라는 조항이 없다. 또 ‘법을 위반하면 처벌한다’는 조항도 없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한다는 수준인데, 그래도 한걸음 전진이라면 전진이다. 계속 우리는 반대 소리를 높이고 절대로 민족차별을 못하게 하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문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이다. 요점은 일본 정부가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침략에 의해서 일본에 올 수 밖에 없었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도 근본적으로 없어질 전망이 열린다. 그러니까 우리 재일동포의 권익을 위해서도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올바르게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싶다.

재일동포 문제는 재일동포 만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현실적으로 보아도 우리 민족이 당하는 차별의 일환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일동포 만이 아니라 모든 남북해외 동포가 힘을 합쳐서 우리 운동에 참여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면, 일본 중학교에 다닐 때 일본 역사 수업이 있었다. 그때 ‘조선’이란 말이 나왔다. 선생님 말에서 수치심,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일본학교 교육 속에서 우리 재일동포 학생들에게 조선 민족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안 한다. 그러니까 선생님 이야기 듣고 있는 재일동포가 느낀 것이 부끄러움이다. 그러다가 일본 학생들에게 멸시당했다. 그때 직감으로 우리나라가 분단돼 있기 때문에 그런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다. 15살 중학생 때 그렇게 느꼈다. 그것이 내가 통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최대한의 동기다.

북.일 수교, “미국이 반대했다고 본다”
8년전 한국 여권 박탈 “참을 수가 없다”

   
▲ 20일 선양시내 한 음식점에서 오찬을 즐기는 손형근 부위원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북한과 일본 관계가 안 좋은 것도 한 가지 이유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북.일관계의 현황과 전망은?

■ 일본은 조선에 제일 가까운 나라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조선반도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나라다. 문화적으로도 제일 가까운 나라가 조선반도다. 그런데 일본이 한국과는 관계정상화를 했지만 북반부 조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국교가 없다.

북.일 관계정상화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이 있었고, 어느 때는 국교가 가깝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문제가 생겼다. 일본 정부가 북하고 국교를 정상화하겠다는 시기마다 미국이 반대했다고 본다. 미국의 반대에 영향을 받아서 멈췄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런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역시 일본 사람들의 자주적인 생각과 행동에 기대를 걸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역사와 문화적인 친밀한 관계를 설명하면 할수록 이해를 해준다. 그것이 힘이 된다.

그러니까 미국이 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펼치고 있고 그에 일본 정부가 따라가고 있는데 우리가 좀 더 노력해서 일본이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해서 북과 교섭을 더 전진시켜서 관계를 정상화 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

□ 지금 한통련(한국민주통일연합) 관계자들의 한국 입국이 금지된 상태로 아는데 입국 문제와 이적단체 문제는 해결 전망이 있나?

■ 노무현 정부 때 우리가 정식 여권을 받아서 한국에 왕래할 수 있었다. 아주 기뻤다.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도 정식 여권을 받아서 정식 국민으로 인정받았다’, 그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여권 갱신 때 영사관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한통련 거의 모든 간부에게 ‘반국가 단체니까 여권을 못 주겠다’, 혹은 ‘제한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영사관에서 했다.

정말 그때도 충격을 받았다. 정식 여권이 있어야 우리가 해외에 살아도 한국 국민으로 자기 자신도 그렇고 객관적으로도 인정받게 된다. 나 자신도 8년 전에 여권이 박탈되어서 정말 섭섭한 마음이었다. 중국은 갈 수 있으나 다른 나라에 가지도 못하고 재외동포의 선거권이 부여됐지만 여권이 없으면 선거도 못한다. 중국은 중국 정부가 특별하게 배려해서 오갈 수 있다.

보수정권 출범 후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한국에 못 가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15번 왕래했다. 내가 재일동포 3세고 일본학교 다녔다. 그런 내가 민족을 느끼고 민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조국에 가서 조국의 사람과 이야기하고 조국의 공기를 맡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막혀서 매일 매일 화가 나서 분개해서 정말 한마디 하면 참을 수가 없다. 제발 좀 해외동포에 대해서는 조금 사상이 다르다고 해서 여권 안 주는 것 그만두라. 일단 국민으로 받아들이고 그 전제로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한국 국민이 아니라면 어디에 의거하면 좋으냐? 다른 민족은 다 자기 조국이 있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여권을 못 가진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느냐? 중국에 와도 세관에서 수첩을 보고 ‘무슨 사람이야? 한국 국적인데 패스포트도 없고. 아, 이상한 사람이구나’ 그런 눈으로 본다.

‘민족의 희망이 있다. 민족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제2의 6.15시대’가 반드시 열리게 될 것”

   
▲ 손형근 부위원장은 “해외 모두가 공동보도문의 내용을 실현하는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20일 공동보도문을 발표한 뒤 남북해외 대표단이 포즈를 취한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일본내 통일운동 진영의 기류나 활동, 문제점을 소개해달라.

■ 7.4공동성명이 발표됐을 때도 우리 동포는 환영했고 아주 활발했다. ‘통일이 가깝다. 통일을 하자’. 6.15공동선언 발표했을 때도 그렇고 10.4공동성명 발표됐을 때도 힘 얻어서 ‘앞으로 통일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자’, 그것과 동시에 ‘무엇보다도 민족적으로 살자’, ‘민족에 희망이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됐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에 우리가 조국을 긍정적으로 보고, 일반 동포들도 그때까지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희망이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우리 통일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수정권이 8년 전에 등장한 후에는 불을 끄듯이 그런 앙양감이, 뜨거운 마음이 없어지고 많이 고생을 하고 있다. 우리 활동가는 그래도 상황을 잘 알고 있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문제는 일반 동포들이다.

지금이야 뭐 재일동포의 주류는 3,4,5세다. 대부분 일본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남북관계가 좋을 때 통일운동에 사람이 많이 모였다. 그런데 8년 전부터 남북관계 경색이 시작되면서 좀 열의가 없어지고,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3,4,5세가 민족에 대한 희망을 잃어서 일본 사람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서 통일로 향하는 움직임이 시작되면 다시 그런 사람들도 민족의 희망을 가지게 되고 통일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고 무엇보다도 ‘민족의 희망이 있다. 민족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 큰 흐름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이번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 이번에 회의에 참석하게 돼 동포들로부터 “잘 갔다 오라. 성과 있기를 기원한다”, 그런 인사를 많이 받았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는 스스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6.15선언을 이행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민간단체가 나설 수밖에 없고 민간단체가 뭔가 상황을 바꿔야 된다는 생각이 있다고 본다. 그런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이번에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게 됐다. ‘돌아가서 공동보도문 내용을 단결해서 실현하기 위해서 다 노력을 해보자. 그렇게 우리가 노력을 하면 반드시 전망이 열린다’, 그렇게 정말 느꼈다. 이 공동보도문 가지고 일본에 돌아가서 많은 재일동포들과 그 공동보도문의 내용을 알리고 손잡고 같이 통일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입장은 일본지역만이 아니고 해외 통일운동의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니까 세계 각국에서 6.15해외측위원회에 결집하고 있는 동포들하고도 이 성과를 공유하고 해외 모두가 공동보도문의 내용을 실현하는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그래서 우리 남북해외 동포가 이번에 합의를 실현하는 속에서 새 시대, ‘제2의 6.15시대’가 반드시 열리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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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초염수 소금 소식에 잠 못 이룬 김정은위원장

지하초염수 소금 소식에 잠 못 이룬 김정은위원장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5/25 [06:4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맛좋고 영양가가 높으며 생산단가도 싸게 먹히는 지하초염수 염전에서 기쁜 웃음을 터트리는 김정은위원장     © 통일뉴스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맛좋고 영양가가 높으며 생산단가도 싸게 먹히는 지하초염수 염전 생산 보고를 받고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너무 기뻐 한달음에 염전으로 달려갔다는 북 보도가 나왔다.

 

24일 통일뉴스, 연합뉴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은 24일 김정은위원장이 "인민군대에서 지하초염수에 의한 소금생산방법을 받아들여 적은 면적의 소금밭에서 많은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너무 기뻐 잠이 오지 않았다"면서 "소금에 대한 날로 늘어나는 인민 경제적 수요를 원만히 충족시킬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열리였다"고 말했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귀중한 자원에 의거하여 큰 실리를 얻는 새로운 소금생산방법이야말로 소금생산의 집약화를 실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 지하초염수를 직접 손으로 받아 맛을 보는 김정은 위원장     © 통일뉴스

 

그는 "바닷물에서 소금을 얻어내자면 저류지, 예비증발지, 증발지, 결정지를 거쳐야 하지만 지하초염수는 바다물보다 농도가 몇 배나 높은 것으로 하여 증발지와 결정지만 거쳐도 소금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지금 이용하고있는 소금밭 면적의 절반정도만 소금생산에 이용하고 나머지 면적에서는 바닷가 양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하초염수로 소금을 생산하면 종전에 비해 소금밭 면적은 물론 생산주기를 대폭 줄일수 있고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을 뿐만아니라 정보당 생산량을 몇 배로 장성시킬 수 있다"면서 "소금생산의 집약화를 실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하초염수로 생산한 소금은 맛이 좋고 칼륨, 요오드 함유량이 많으며 증금속 함유량이 적어 건강증진 및 식료품 생산, 화장품 등 생활필수품 생산에 이용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 북의 지하초염수 염전 풍경     © 통일뉴스

 

▲ 지하초염수소금의 우월성과 생산현황을 소개하고 있는 염전의 알림판     © 통일뉴스

 

그러면서 "해당 부문에서 탐사를 힘있게 벌려 유망한 지하초염수 매장지들을 찾아내며 각지 제염소들에서는 지하초염수에 의한 소금생산방법을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어 "소금생산은 식량 생산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이며 마음먹고 달라붙어 투쟁한다면 능히 자급자족할 수 있다"며 "소금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절실히 요구하는 소금을 원만히 보장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소금더미에 다가가 몸소 소금 맛을 보며 "이곳은 보물을 생산하는 곳", "소금더미가 백금산으로 보인다"며 환하게 웃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보도를 종합애 보면 김정은위원장은 소금에 대해 매우 해박하고 깊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좋은 소금은 조미료가 필요없을 정도로 음식 맛을 좋게 해주며 건강과 병치료에도 큰 도움을 준다. 현대인들의 질병이 많은 이유가 정제염 즉, 미네랄 등은 완전히 제거해버린 순수 염화나트륨 가공소금을 먹기 때문이라는 자연의학자들의 주장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소금이 많이 나는 곳이다. 특히 남서해안은 소금의 보물고이다. 각 지역마다 소금 맛이 다 다르고 영양가도 다르다고 한다. 북의 지하초염수소금의 맛이 어떨지 정말 궁금하다. 소금은 정말 금보다도 더 중요한 필수품이 아닐 수 없다.

 

남측에서도 갯벌에 깊은 우물을 파서 그 안에 고인 염도가 높은 물로 소금을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의 초염수 소금이 있는데 그 맛이 좋고 미네랄이 풍부하여 이를 죽염으로 만들어 비싼 값에 판매하고 있다.

 

▲ 2014년 북의 10대 발명품으로 들어간 지하초염수 소금, 남측 보수 언론은 이런 것도 무슨 발명품이랴고 혹평했다. 소금이 건강과 산업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무지의 발상이 아닐 수 없다.     © 자주시보

 

북은 2014년 지하초염수를 10대 발명품의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그후 1년여만에 염전을 완공하고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보수언론에서는 지하초염수소금도 무슨 발명품이냐고 혹평을 하던데 정말 무지의 발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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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소폭포 차오르는 산란기 열목어의 힘

칡소폭포 차오르는 산란기 열목어의 힘

윤순영 2016. 05. 24
조회수 13 추천수 0
 

아프도록 시린 찬물서만 번식하는 멸종위기 냉수어종, 산란기와 고수온기 맞아 상류로 도약

백두산 폭발로 분리된 '살아있는 화석', 세계 최남단 분포지…생태계 연구 필요 

 

크기변환_DSC_9072.jpg» 강원도 홍천군 명개리 칡소폭포에서 도약하는 열목어. 멸종위기야생생물2급 보호동물이다.

 

강원도 홍천은 우리나라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곳이다동쪽과 서쪽 사이에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다양한 풍경이 펼쳐진다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켜선 곳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크기변환_DSC_6272.jpg» 해발 650m의 하뱃재를 지나면 상뱃재를 만나게 된다.

 

크기변환_DSC_6278.JPG» 홍천군 내면 면 소재지.

 

특히 홍천의 동쪽으로 난 길구룡령로(56번 국도)를 따라 하뱃재를 넘고 상뱃재를 넘으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청정함과 빼어난 풍광을 갖춘 내린천의 특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내린천이란 이름은 홍천군 내면의 와 인제군 기린면의  을 딴 것이라고 한다.

 

크기변환_DSC_6508.jpg» 을수골의 내린천 발원지 상류 계곡.

 

크기변환_DSC_6480.jpg» 칡소폭포 바로 위 물웅덩이. 이곳에 고인물이 내려오는 물과 만나 칡소폭포를 향해 거센 물줄기를 힘차게 내려꽂는다.

 

크기변환_DSC_9435.jpg» 열목어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산란을 하기 위해서는 이곳 칡소폭포를 넘어 상류로 가야 한다.

 

65에 달하는 내린천 중에서도 특급 청정지역은 바로 내린천 최상류 지역인 홍천군 내면의 명개리와 광원1리다내린천은 광원1리 발원지에서 출발해 칡소폭포 인근에서 계방천(명개리)과 만나 몸집을 키운다.

 

크기변환_DSC_6488.jpg» 산철쭉이 화산한 칡소폭포에 열목어가 뛰어오르고 있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칙칙하게 보이지만 맑고 찬 물이어서 열목어가 많이 모이는 곳이다.

 

크기변환_DSC_6165.jpg» 칡소폭포 아래 모습.

 

미약골이 홍천강의 발원지라면 광원1리 을수골은 내린천의 발원지다을수골의 자랑은 칠소폭포다계곡수가 7개의 소를 만들며 흐른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공식 명칭은 칡소폭포다.

 

어쩌면 수심 깊은 폭포의 빛깔이 거무칙칙해서 칡소라는 이름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내린천의 최상류 칡소폭포엔 열목어가 산다.

 

크기변환_DSC_6520.jpg» 칡소폭포 풍경.

 

열목어는 사람이 발을 담그면 30초도 안돼 아플 정도로 찬 물에서만 산다. 눈에서 열이 나 찬물에 몸을 식히려 한다고 흔히 얘기한다. 그러나 애초 열목어는 냉수성 물고기로 진화했다열목어는 빙하기 때 종이 고정된 냉수성 어종으로 한여름에도 수온이 섭씨 20도 이하로 유지되는 산간계곡이라야 살 수 있다. 

 

맑고 차가운 물에서만 사는 녀석이다특히 명개리와 광원리에 걸친 열목어 서식지는 서식환경이 우수한 곳으로 꼽힌다.

 

 

크기변환_DSC_6567.jpg» 오전 11시30분이 되자 어김없이 뛰어 오르기 시작하는 열목어.

   

크기변환_DSC_6528.jpg» 소나무와 짙푸른 칡소의 물이 어우러진다.

 

칡소는 수온 11~14도에 암반과 크고 작은 돌모래 등을 고루 갖췄다주변엔 숲도 우거졌다산란기인45월이 되면 열목어는 온몸이 짙은 홍색으로 물든다등지느러미와 가슴지느러미 부분은 회록색을 띤 무지개 모양의 광택을 내며아름다운 무지갯빛 지느러미로 변한다.

 

크기변환_포맷변환_DSC_1239.jpg» 칡소폭포를 잇달아 뛰어오르는 열목어들. 넘기 힘든 장애물이다.

 

크기변환_DSC_8030.jpg» 폭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떼지어 물살 속으로 달려든다.

 

칡소폭포에 가면 열목어들이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높이가 2~3m나 되는 폭포를 향해 거침없이 뛰어 오르는 열목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흐린 날은 뛰어 오르는 열목어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맑은 날엔 수온이 오르는 오전 1130분께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이런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주로 4~5월 산란기에 펼쳐지는 풍경이지만한여름에도 볼 수 있다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다열목어가 산란을 위해 목숨 걸고 뛰어오른 칡소폭포 위쪽이 을수골이다.

 

■ 연속 사진으로 보는 열목어의 칡소폭포 뛰어넘기

 

크기변환_DSC_7982.jpg» ① 거센 물살 헤치고 열목어가 얼굴을 내밀었다.

 

크기변환_DSC_7978.jpg» ② 물살을 가르며 꼬리의 힘을 이용해 뛰어오르기 시작한다.

 

크기변환_DSC_8666.jpg» ③ 혼신의 힘을 다해 물살을 거슬러 치고 나간다.

 

크기변환_DSC_8297.jpg» ④ 순간적으로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 그 반동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다.

 

크기변환_DSC_8008.jpg» ⑤ 몸을 일직선으로 만들어 위로 솟아오른다.

 

크기변환_DSC_8403.jpg» ⑥ 부서지는 물살을 헤치고 칡소폭포 정상을 향해 나아 간다.

 

크기변환_DSC_0236.jpg» ⑦ 열목어는 폭포정상에 이르렀다. 바로 이곳 바위 턱을 뛰어넘지 못해 많은 열목어들이 상류로 향하지 못하고 다시 도약을 시도해야 한다.

 

크기변환_DSC_9581.jpg» ⑧ 폭포 꼭대기에 닿는데 성공했다. 이제 열목어는 물살을 가르고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상류로 향해 나아간다.

 

크기변환_DSC_6931.jpg» ⑨ 혼신의 힘을 쏟아 칡소폭포를 넘어선 열목어가 가쁜 숨을 쉬며 바위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개울이 새 을’()자처럼 굽이돌며 흐른다는 곳내린천의 발원지를 품고 있는 이 계곡이 열목어의 산란장이다물이 흐르는 여울의 가장자리나 하상에 모래와 자갈바닥을 약 15㎝ 정도의 깊이로 바닥을 판 후 산란한다.

 

크기변환_DSC_6173.jpg» 유속이 느린 내린천 여울에서 열목어는 산란을 한다.

 

크기변환_DSC_6168.jpg» 수정처럼 맑은 물에서 열목어 새끼는 알에서 깨어나 자란다.

 

어린 새끼들은 유속이 완만한 곳의 가장자리에서 떼를 지어 유영한다열목어는 한여름엔 수온이 섭씨 20도 이하로 유지되는 산간계곡에서 지낸다그러나 날씨가 추워지면 월동을 위해 하류의 큰 강으로 내려간다.

 

크기변환_DSC_1755.jpg» 폭포를 뛰어 오르는 열목어.

 

크기변환_DSC_2361.jpg» 아직 큰비가 오지 않아 수위가 낮기 때문에 열목어들이 칡소폭포를 넘는데 애를 먹고 있다.   

크기변환_DSC_6932.jpg

 

현지 환경감시원들은 여름철 하천의 수온이 오르면 상류의 찬물을 찾아 열목어들이 폭포를 뛰어넘기 시작한다며 “8월까지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진다”라고 말한다.

 

특히 비가 많이 온 다음날이면 열목어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과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빗물로 폭포 아래 수위가 높아지면 열목어가 폭포를 뛰어넘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크기변환_DSC_6577.jpg» 힘차게 뛰어 올랐지만 바위 턱에 걸린 열목어.

 

크기변환_DSC_6730.jpg» 상류 도약에 실패하고 바위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열목어.

 

크기변환_DSC_9496.jpg» 열목어는 결국 바위 바닥으로 나둥그러졌다.

 

크기변환_DSC_6930.jpg» 폭포 아래로 추락하는 열목어.

 

강원도는 1994년 923일 내면 광원리와 명개리 일대 25(162)를 열목어 서식지 보호구역인 강원도 기념물 제67호로 지정했다현재 열목어는 '지역 절멸위기에 처한 곳이 많다열목어가 살 수 있는 청정한 계곡이 사라지고 있다. 자연 훼손의 결과다. 1996년 1월에는 환경부가 열목어를 특정 보호 어종으로 지정함으로써 허가 없이 채취·포획·가공·유통할 수 없도록 하였다.

 

크기변환_DSC_0231.jpg» 열목어는 산란을 위해 목숨을 걸고 서식지인 칡소폭포를 넘어 내린천 을수골 상류로 올라가야 한다.

 

 

2000년대 들어 수가 급격히 줄면서 환경부는 2012년 531일 열목어를 멸종 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했다열목어는 수질과 수온 등 환경에 매우 민감한 어류인 만큼 서식지 보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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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 동네 분들은 열목어를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열목어가 꺽지 치어와 금강모치개구리 등 종을 가리지 않고 다 먹어치워 물고기는 물론 개구리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불평한다.  이곳 생태계에서 열목어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그 영향이 어떤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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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단면만 바라보는 획일적인 방법은 종 보호 수단이 되겠지만 주변의 생물들의 처지를 생각해야 공생를 통해 모든 종에 절멸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크기변환_DSC_3756.jpg» 열목어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노랑할미새.

 

한반도를 기준으로 보면 열목어는 서해안 수계정확하게는 '고황하 수계'에 사는 물고기다아무르강은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고아무르강 수계다동해안 수계에 사는 열목어가 어떻게 서해안 수계로 넘어왔을까열목어는 연어나 송어처럼 바다로 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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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약 400만 년 전 백두산이 솟아오르면서 압록강과 아무르강 상류의 지형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백두산 융기 이후 고아무르강에 연결돼 있었던 압록강의 흐름이 서쪽으로 바뀌었고 그 때 압록강 상류에 살던 '열목어' '우레기' '곤들메기' '자치' '아무르장어등 고아무르강 수계의 냉수성 어종들이 서해안 수계로 넘어오게 되었다아무르강은 열목어의 주서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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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목어나 곤들메기는 400만년 전 백두산 화산폭발로 서해안 수계로 넘어온 뒤 고립된 환경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인간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300만 년 전이니 이런 물고기들은 지질학적 연대를 뛰어넘는 '살아 있는 화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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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목어는 우리나라와 만주몽골러시아 연해주카자흐스탄 일대 하천에만 분포한다그러니 우리나라 최남단 서식지라면 곧 지구 최남단 서식지가 된다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지구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는 섬진강 발원지 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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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길이 3070㎝이다몸은 길고 옆으로 납작하다입이 작고 날카로운 이가 12열로 배열되어 있고 연어과 물고기의 특징인 기름지느러미가 있다몸 빛깔은 은색 바탕에 눈 사이와 옆구리·등지느러미·가슴지느러미에 크고 작은 자홍색의 불규칙한 작은 반점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치어 때는 송어의 치어처럼 812개의 흑갈색 가로띠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기름지느러미는 짙은 빛깔이고 1쌍의 덧지느러미가 있다냉수성 어류로서 여름에는 물속 차갑고 깊은 곳에 살며 늦은 가을과 겨울에는 얼음 밑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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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된 먹이는 곤충단각류작은 어류, 다른 물고기 알개구리 등이다시베리아·유럽·북아메리카의 깊은 산 냉수계에 분포한다한국에서는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섬진강 상류)과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등지가 분포의 남한계이다.

 

서식지에 열목어가 희귀해짐에 따라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정암사의 열목어 서식지를 천연기념물 제73(1962),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봉화 석포면의 열목어 서식지를 제74(1962)로 지정하여 보존에 힘쓰고 있다.

  

·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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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대전차미사일은 세계 최강

[북무기연재2] 북의 대전차미사일은 세계 최강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5/24 [05:1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의 레이저유도 반땅크로켓 시험발사(대전차미사일)     ©자주시보

 

▲ 북의 신형 대전차미사일의 위력     ©자주시보

 

최근 국내 모 사이트에 올라온 대전차미사일에 대한 북의 주장을 보면 "올해 2월에 새로 개발완성하여 실전배비된 공화국의 반땅크유도무기체계는 장갑관통능력과 파괴력이 놀라울 정도로 위력한 우리 식의 주체무기이다."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면서 "무장장비정밀화, 경량화를 가장 완벽하게 실현한 새형의 휴대용레이자유도반땅크로케트는 사거리가 세계적으로 제일 길며 명중성이 마치 저격수보총으로 목표를 쏘아맞히듯 대단히 정확하다.
특수복합장갑을 뒤집어쓰고 기동력과 타격력에 대하여 발전되였다고 자랑질해대는 미국산 땅크, 장갑차들도 우리의 반땅크유도무기앞에서는 삶은 호박에 불과하며 일단 땅크를 푹 찌르고 들어간 로케트탄은 목표물을 산산이 부셔버린다."라고 강조하였다.

 

대전차미사일과 대공미사일은 미국보다 러시아의 것이 훨씬 위력적이다. 일단 미국의 것은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가 매우 힘들지만 러시아는 그보다 훨씬 가볍고 장갑관통능력과 파괴력도 미국보다 강하다. 가격은 훨씬 더 싸다. 물론 미국도 최신형의 경우 관통능력과 파괴력, 포탑타격방식 등을 적용하여 위력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게가 무거워 병사들이 휴대하고 다니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국군도 러시아 대전차미사일을 대량 도입하여 실전배치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 러시아도 북의 대전차미사일을 자신들 것보다 더 위력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대량 수입을 해다가 사용해왔었다는 사실이 스톡홀름 보고서를 통해서 익히 알려졌다.

북의 구형 대전차미사일도 그렇게 위력적인데 올해 북이 개발 실전배치한 최신형의 경우 얼마나 위력적일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먼저, 북이 강조한 가장 가볍고 사거리가 가장 길다는 점은 대전차 미사일의 생명과도 같은 문제이다. 가벼워야만 보병들이 더 많은 미사일을 휴대하고 전차가 다니는 곳으로 은밀히 접근할 수 있고 또 매복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사거리가 길어야만 상대의 반공격에서 공격하는 병사들의 생존성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쏘자마자 피할 수 있는 파이어 앤 포켓 방식을 적용할 경우 쏘는 병사들의 생존성을 더 높일 수 있지만 미사일 자체가 적외선 탐지나 탱크형상을 추적하여 알아서 탱크를 맞추는 이런 방식은 요즘 적외선 기만장비, 레이저 무력화 장비에 의해 쉽게 무력화 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다음으로 북은 보총으로 신체 부위도 구분해서 저격하듯 대전차 미사일로 적 탱크나 장갑차를 부위별로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이는 레이저유도 방식이기에 가능하다.

쏘고 난 후 레이저 포인트로 적 탱크의 특정부위를 맞추고 있으면 미사일이 그 레이저를 따라가 정확하게 타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런 정확도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레이저도 무력화하려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겠는데 북은 자신의 고유한 레이저와 미사일을 연동시켜놓을 수만 있다면 무력화되지 않게 된다. 어쨌든 요즘 초정밀 타격에 있어 레이저유도가 가장 정확하다.

사거리가 길어도 이런 유도 방식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고 북은 자신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탱크들은 상대가 나를 요격하기 위해 레이저포인터를 쏘면 그것을 감지하여 방어시스템을 본격 가동하고 상대를 찾아 먼저 타격하려고 하기 때문에 유도 레이저를 쏘더라도 감지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와 관련하여 북에 무슨 기술이 있는지 모르겠다.

 

세번째로 상대의 복합반응장갑도 쉽게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대전차미사일이라는 점이다. 이를 텐덤탄두라고 하는데 미사일 탄두에 튀어나온 부분이 일차 폭발하면서 복합반응 장갑을 무력화시킨 후 본 탄두가 탱크를 뚫고 들어가 안에서 터지는 방식이다. 요즘 이런 방식은 거의 일반화 되어 있다. 다만 탱크 장갑이 강해지고 두꺼워져서 이를 효과적으로 뜷고 들어갈 수 있는 관통력이 관건인데 북은 그 관통력에 있어 자신이 있는 것 같다. 어떤 탱크도 다 뚫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뚫고 들어가 탱크 내부에서 미사일 탄두가 폭발했을 때 위력과 살상력이다. 자체의 포탄 탄피의 파편만으로 격벽형식으로 되어 있는 내부의 인원을 모두 살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폭발력을 키워 탱크 내부의 격벽과 집기들을 산산이 부수어 그 파편이 인명을 살상하게 하거나 내부의 공기를 순간적으로 소멸하거나 고온고압으로 만들어 인명을 살상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는데 북에서는 시체조차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을 보니 매우 강력한 열폭풍과 격벽도 파괴하는 폭발력을 지니는 고에너지 폭탄을 개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딱 하나 약점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요즘 국군의 흑표 전차 등에는 능동방어시스템으로 RPG나 대전차미사일이 다가올 경우 이를 레이더가 감지하여 수많은 쇠구슬탄을 터트리고 방어미사일을 쏘아 도달하기 전에 폭발시켜버리는데 북 대전차미사일이 이를 무력화시키면서 공격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탱크에서 켜놓고 있는 레이더를 무력화시키거나 방어장비가 가동되기 전에 빠른 속도로 먼저 타격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북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북의 신형 대전차미사일에 맞은 탱크는 포탑이 산산이 부서져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등 그 파괴력이 매우 크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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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보전·경영정상화 근본적 한계..방북 불가피"

김서진 개성기업협 상무, 개성공단 관련 세미나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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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23  23: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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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 중단과 정부정책, 그리고 기업의 미래' 세미나가 23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됐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피해 실태조사를 완료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개성공단 중단에 따른 입주기업의 불가피한 직접적 피해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원칙과 기준 하에 지원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서 열린 ‘개성공단 중단과 정부정책, 그리고 기업의 미래’ 주제의 세미나에서 강종석 개성공단공동위원회 사무처장이 대독한 인사말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번 세미나는 최근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따른 기업의 피해 실태조사가 완료된 후 기업의 불가피한 직접적 피해에 대한 정부의 세부 지원 대책 발표를 앞두고 남북협력기금 수탁기관인 한국수출입은행 북한·동북아연구센터가 국민대학교 한반도미래교육원과 공동 주최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전날에는 기업 추산 원부자재와 완성품 등 유동자산 피해액(약 2,400억원)의 약 40%에 해당하는 1,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통일부의 해명이 있었다.

홍 장관은 “지난 2월,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한 것은 북한의 거듭된 핵・미사일 도발로 민족의 생존과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국가 안보와 국민 안위라는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었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지난 3개월간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의 조속한 경영정상화와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자금지원, 고용안정, 판로지원, 생산기반 확보 등 다양한 지원정책을 마련하여 기업들을 지원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밝혔다.

이어 “개성공단 기업들의 경영정상화와 고용안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지원 뿐만 아니라 기업과 근로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는 이날 북측이 제시한 청산절차를 밟기 위해서도, 단전 단수 상태에서 설비 점검을 위해서도 기업들의 개성공단 방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부 측 기류가 반영된 홍 장관의 축사에 이어 토론자로 참여한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는 정부의 지원 대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상무는 전날 통일부가 개성공단 기업의 직접적 피해에 대해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예산의 범위 내에서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합리적 원칙과 기준을 마련해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데 대해 ‘피해규모가 아무리 커도’,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을 당해도’ 이런 원칙과 기준을 제시할 수 있겠느냐며  목청을 높였다.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보상’이라는 표현도 쓰지 못하고 있지만 명백히 정부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개성공단 기업들이 피해규모에 합당한 지원도 아니고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예산 범위 내에서 주면 주는 대로 받는 일방적인 시혜대상은 아니지 않느냐는 항변인 셈이다.

그래서 피해구제를 소급적용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기도 하다.

김 상무는 정부의 지원대책에 대해서는 기업이 입은 피해보전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피해보전을 위해 정부가 3월 21일부터 기업들의 피해규모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피해실태 조사에 착수했으나, ‘예산의 범위 내에서’라는 지원 원칙으로 인해 실태파악의 목적에 부합한 조사를 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실태조사 과정에서 3일간의 열람 기회를 주었지만, 기업들이 열람 한 후 추가 증빙자료를 제출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또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의 대부분이 노동집약산업으로서 이미 한계기업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채산성이 맞지 않아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것인 만큼 이제 와서 정부가 돈을 빌려 줄 테니 국내에 대체생산 시설을 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나마 개성공단 생산비중이 낮은 곳은 경영정상화가 가능하겠지만 123개 입주업체 중 개성 생산비중이 100%인 49개사를 포함해 개성 생산비중이 70% 이상인 72개사는 사실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기업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대안은 해외생산이지만 이는 시간이 걸리고 바이어가 기다려주지도 않으며, 투자자금 조달 문제도 있어 결국 근본적 해결은 개성공단 재가동이라고 강조했다.

김 상무는 이날 토론회에서 기업들의 개성공단 방북과 관련한 문제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지난 3월 10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제기한 청산 절차라는 것이 어쨌든 중요하며, 청산 절차를 밟아서 자산 동결 또는 압류조치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해당 절차를 밟기 위해 방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당분간 자산동결 철회와 관련한 협의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으나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에 대해 예단할 필요는 없으며, 북한이 기존 남북합의 무효화를 선언하면서도 아직 개성공단의 자산에 대해 압류조치하지 못한 것은 해외투자 유치를 원하는 측면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곧 장마가 닥칠 텐데, 개성공단이 일시 중단된 지난 2013년과 달리 지금은 단전·단수 상태여서 시설을 영구 폐기할 것이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자산 점검을 위한 방북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5월 10일 현재 개성공단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내용. [자료제공-김종호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이날 ‘정부의 기업 지원정책 평가 및 개선방향’에 대해 발표한 김중호 한국수출입은행 북한·동북아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지난 2월 12일부터 3월 15일까지 5차례에 걸쳐 5개 영역 24개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3월 21일부터 4월 10일까지 피해실태조사 접수를 시작했으나 정부지원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지 일반 국민들이 알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합법성, 투명성,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지원과 보상의 원칙을 명료하게 해야 하는데, 피해실태조사에서도 정부가 제시한 ‘합리적 원칙과 기준’을 좀 더 명료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기존의 핵심 요소인 ‘값싼 노동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의 생존을 위한 경쟁력 제고에 필요한 중장기 지원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앞으로 북한 리스크 관리 및 분쟁처리를 위해 좋은 선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피해야 할 일은 ‘신속히’, ‘최소화’, ‘충분한’ 등 여론을 의식한 감성적 표현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합법적인 지원 제도의 기능이 약화 또는 상실되지 않도록 지원내용과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도 지적했다.

경협보험은 123개 가동기업 중 79개사가 가입되어 있고 교역보험은 한 곳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는데, 제도적 장치로서 관련 보험제도의 활용도가 낮은 상태에서 피해 발생에 대한 지원 및 보상을 정치적으로 처리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날 세미나 사회를 맡은 조동호 한국수출입은행 북한·동북아연구센터 소장은 개성공단 중단과 관련, 정부와 기업 모두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하면서 기업의 거래 대금이 북의 핵·미사일 개발자금으로 들어갔다고 단정적으로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개성공단 가동이 쉽지 않도록 미래 가능성까지 다 막아 버렸다는 것이다.

또 기업들에 대해서는 기업의 이익만 염두에 두면서 근시안적 경영을 해 온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회공익활동도 벌여서 개성공단의 의의에 대해 널리 알리는 일들을 해 왔다면 대통령이라고 해서 그렇게 쉽게 공단을 폐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최수영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개성공단 운영평가’, 홍순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 ‘개성공단 중단의 정책적 의미’, 김종호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이 ‘정부의 기업지원정책 평가 및 개선방향’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이봉희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부장과 이찬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구체적인 대응책을 논의한 2세션 ‘개성공단 중단과 대응 관련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김주현 국민대학교 한반도미래연구원 원장의 사회로 이상민 통일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단장과 유창근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 정낙근 여의도연구원 정책실장, 권은민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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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 ‘오월에서 통일로’ 화두 집중을”

김준태 광주오월문학축전 조직위원장 “한국문학에 희망 보인다”권미강 기자 승인 2016.05.23 댓글 0
▲김준태 광주오월문학축전 조직위원장이 민플러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작가들이 서사를 찾은 거 같더군요. 이야기를 찾은 것입니다. 사실 한동안 방황을 했었어요. 이야기를 찾았으니 이제 한국문학에 희망이 보이는 거 같습니다.”

지난 21~22일 광주에서 열린 ‘광주오월문학축전’에는 400여명의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기억과 초혼, 문학의 저항’이란 주제로 한 ‘오월문학의 현대적 흐름과 전망’ 심포지엄을 통해 각 장르별로 오월광주를 담아낸 작품들과 그 의미를 짚어보았다.

이번 문학축전을 총괄 지휘해 온 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인 김준태 축전 조직위원장은 22일 민플러스와 인터뷰에서 작가들이 서사를 찾은 것을 이번 축전의 성과로 꼽았다. 김 조직위원장은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란 작품으로 80년 광주항쟁과 신군부의 학살 만행을 세상에 알린 시인으로 유명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문학적 성과들을 통해 5월 문학의 미래를 내다보길 바랐다. “작가회의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오월에서 통일로’라는 화두에 주목하고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통일해야 살 수 있습니다. 국가적 위상으로 보나 남한이 큰 틀 속에서 북녘과 함께 손을 잡고 우리 민족의 재생기를 한번 꾀할 시기가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오월문학축전의 의미를 새겨본 김 위원장과 인터뷰는 이날 오전 축전 현장에서 이뤄졌다.

- 16년 만에 광주에서 대규모 오월문학축전을 열었습니다. 4.13총선 이후 맞는 전국단위의 문학축전인데요, 먼저 그 의미를 말씀해주시지요.

“한국작가회의는 74년도에 조직된 자유실천문인협회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6월 항쟁 무렵에 생긴 민족작가회의를 거쳐 작가회의로 발전했지요. 작가회의의 원뿌리는 자유실천문인협회입니다. 600명에서 3000여명으로 거대조직이 됐지요. 세계적으로 이런 문인조직이 없습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선거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4.13총선 직후에 이번 행사가 열렸어요. ‘현 정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민심으로 보여준 선거혁명 이후에 열려서인지 어느 행사보다도 성황리에 진행됐습니다.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면서 보니 작가들이 서사를 찾은 거 같더군요. 이야기를 찾은 것입니다. 사실 한동안 방황을 했었어요. 이야기를 찾았으니 이제 한국문학의 희망이 보이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럴수록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개혁세력이 아닌 굉장히 극우적 성향의 세력들이 많습니다. 보수적인 심지어 극보수적이고 극우적인 성향의 세력들이 많습니다.

다수의 민족, 민중과는 괴리된 세력들이 이번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서 멈추면 안 되죠. 재무장해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새로운 시절을 열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광주 5.18뿐 아니라 8.15해방 이후의 모든 사건들, 나라가 분단됐기 때문에 일어난 학살들에 대해서 단죄할 수 있지요.

광주학살은 군인세력들이 5.17군사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루어진 학살입니다. 그 학살은 계속돼 왔었지요. 그런 차원에서 우리 민족에게 화두였던 5월 정신, 즉 ‘대동세상, 5월에서 통일로, 생명존중’은 이번 5.18의 가장 큰 화두였고 작가들도 그 화두를 찾아가야 하죠.”

▲김준태 광주오월문학축전 조직위원장이 민플러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번 오월문학축전을 통해 얻은 성과와 작가회의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한 화두에 대부분이 공감하고 재인식하는 거 같습니다. 또 그런 의도를 가지고 조직위원회에서 이번 행사를 기획했구요. 근자에 이렇게 많이 작가들이 모인 적이 없었습니다. 400여명이 넘는 작가들이 광주를 찾았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모든 작가회의 지부가 참여했습니다.

작가회의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오월에서 통일로’라는 화두에 주목하고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통일해야 살 수 있습니다. 국가적 위상으로 보나 남한이 큰 틀 속에서 북녘과 함께 손을 잡고 우리 민족의 재생기를 한번 꾀할 시기가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8.15해방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나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순사건, 제주4.3, 대구 10월항쟁, 전국 각처에서 일어난 보도연맹사건, 6.25한국전쟁, 자유당 독재시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억울한 죽음들, 최근엔 세월호 사건까지 거쳤습니다.

4.13총선 통해 민(民)의 의중 알게 됐다

현재 우리사회는 굉장히 생명 경시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번 강남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듯이 인명 경시현상이 일어난 거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우리 사회가 리듬이 깨져 버린 거 같습니다. 다시 새 틀을 짜서 새롭고 아름다운 정치 환경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우린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담론을 찾았습니다. 4.13선거를 통해서 민(民)의 의중을 알게 됐습니다. 민심이 천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 민족이 기로에 서있는 거 같습니다. 경제적으로나 통일문제에 있어서나. 이번을 기점으로 해서 우리 민족이 전열을 가다듬으면서 평화와 생명존중과 통일의 세상을 위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김준태 광주오월문학축전 조직위원장이 민플러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런 시점에서 작가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심포지엄에서 ‘5월에서 4월로’라는 내용이 나왔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시죠.

“작가들은 글 쓰는 것 자체가 행동입니다. 작품을 통해서, 모든 사회단체들과 연대도 하면서. 이제 서사를 찾았으니 더 바람직한 서사를 통해서 나가야 합니다.

4.19는 분단사회가 만들어낸 자유당 독재에 맞선 혁명이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었지요. 결국 사월혁명은 민주주의를 부르짖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통일이었구요.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였습니다. 우리민족이 살 길은 통일입니다. 4.19혁명도 궁극적으로 통일입니다. 자유구요. 나라가 분단됐기 때문에 자유가 없었죠. 극우세력들은 모두가 반공, 종복으로 밀어붙였죠. 자기 당을 반대하게 되면 종북으로 몰고 있습니다. 있지도 않은, 만들어낸 단어가 종북입니다. 예전 같으면 공산주의자로 모는 것입니다. 그래서 4.19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도 통일이고, 5.18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통일입니다. 4.19에서 통일로. 통일 안에는 ‘자유와 평화, 함께 사는 삶’이 들어있습니다. 5월에서 통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4.19의 숙제는 5.18의 숙제입니다. 4월 혁명의 숙제는 5월 혁명의 숙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숙제를 풀고 있습니다. 아직 답은 만들어내지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이 살 길은 통일

이번 4.13선거는 명예혁명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 민족의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80년 5월에 우리가 희망을 느꼈었지요. 우리는 과거에 주었던 4월 혁명의 숙제, 5월 혁명의 숙제, 이 숙제를 계속 풀어야 합니다. 숙제를 완성하지 않았지만 그 숙제의 정답은 바로 ‘통일’입니다. 그런데 통일을 왜, 어떻게 그 길을 찾아내야 하느냐. 그 숙제를 혼자가 아닌 다 같이 풀어야 합니다. 작가는 그 안에서 글과 연대를 통해 풀어야 합니다. 종교든 단체든 모든 조직이 각자의 방식대로 내용을 풀면서 외부 단체와 연대해야 합니다. 예술로 봤을 때 미술인공동체, 음악인공동체, 문학인공동체 등 각 예술의 공동체들이 연대를 이뤄서 숙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 오월문학축전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신가요?

“오월문학축전은 87년부터 해마다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거리의 문학전을 해오고 있지요. 갇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열려있는, 금남로에서 스피커 틀어놓고 시를 낭송했습니다. 음악도 미술도 문학도 밖으로 나왔습니다. 앞으로도 오월마다 진행할 것입니다.”

- 노무현 정부 때처럼 북한의 작가들과 교류를 추진할 계획은 있으신가요?

“해야죠. 저도 평양을 갔다 왔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시절에. 결국 관계 속에서 소통이 됩니다. 관계와 소통이 되지 않고는 통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남과 북 작가들이 관계를 갖고 다시 회복하고 나가서 소통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관계와 소통이 없는 절벽이지요.

현 정부가 허락하지 않겠지만 노력을 해야 하지요. 우리 민족은 희망 있는 민족입니다. 한반도는 인류의 모든 고충들을 축약한 곳입니다. 나라가 분단됐고 엄청난 모더니즘 사회로 가고 있고, 신자유주의로 가고 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남과 북은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고 궁극적인 목표인 통일로 가야 합니다. 우리 작가들도 한국문학의 발전을 꾀하면서 동시에 우리 민족의 화두인 통일로 나가야 합니다. 통일로 가는 길만이 진정한 정치 민주주의, 경제 민주주의로 나가는 길입니다.”

권미강 기자  kang-mom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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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온탕 속 개구리처럼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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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4 08:16
  • 수정일
    2016/05/24 08:1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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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경제, 온탕 속 개구리처럼 죽어간다"
 
2016.05.24 07:21:14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현재, 2008년 경제 위기와 유사"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문제." 

지금 진행 중인 해운 및 조선 산업 구조 조정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그래서 만난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학교 교수)의 대답이 이랬다.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게다. 다양한 정책을 조합해서, 그나마 나은 길을 찾아가는 선택지가 있을 뿐이다.

문제가 오로지 해운 및 조선 업체 세 곳, 즉 현대상선, 한진해운, 대우조선해양뿐이라면, 조금은 자신감을 보여도 된다. 어느 정도는 답이 보인다. 김 소장 역시 한국 경제가 이들 세 업체의 부실 처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최상위 기업 일부를 제외하면, 재무 상태가 안정적인 기업이 드물다. 구조 조정 도마 위에 올라야 할 기업이 앞으로도 많으리라는 이야기다.  

경기 순환이 사라진 상황 역시 답을 찾기 힘들게 한다. 한국 경제의 성공 방정식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좀비 기업들이 정리된다. 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은 기업은 경기 상승 국면에서 폭발적인 성장 기회를 잡는다. 그러다 거품이 심하게 낀 기업은 곧 이어지는 경기 하강 국면에서 사라진다. 이 시기를 견딘 기업은, 새로운 경기 상승 국면에서 그간의 부실을 털어낸다. 삼성전자 등 성공한 기업은 이런 오르막내리막 곡선을 잘 활용한 경우다. 

그런데 2011년 이후, 한국 경제는 그냥 직선이다. 경기 순환 곡선을 그리는 통계청은 지난 2011년 8월 정점을 찍은 뒤 지금까지 저점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오르막 곡선의 꼭짓점을 표시했는데, 5년 가까이 지나도록 내리막 곡선의 꼭짓점을 어디에 찍어야 하는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이는 한국 경제의 과거 성공 방정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파른 내리막이 있어야 부실 기업을 쉽게 정리할 수 있다. 가파른 오르막이 있어야, 손실을 메우고 성장할 수 있다. 2010년대 이전까지 한국 경제는 내리막과 오르막이 모두 가파른 구조였다. 이런 환경이 한국 기업의 특징을 규정했다.  

하지만 경기가 직선을 긋는 상황은, 정부 관료, 기업 경영자, 경제학자 모두에게 낯선 환경이다.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방식, 기업 경영진이 신규 투자를 결정하는 방식이 모두 변해야 한다. 새로운 방식은 아직 찾지 못했는데, 위기 신호는 쌓이고만 있다. 김상조 소장은 "온탕 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1년 반 사이에 30대 재벌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다. 이제는 그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30대 재벌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질 것이라는 게 김 소장의 전망이다. 이렇게 천천히 죽어가는 게 훨씬 괴롭다. 대책 마련도 더 힘들다.  

김 소장과 가까운 경제학자들은 최근 그를 "한국의 루비니"라고 부른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학교 교수는 대표적인 비관론자다. '닥터 둠(Dr.Doom)'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요즘은 낙관론자 찾기가 더 힘든 때 아닌가. 비관론자가 한 명 더 늘어난 게 대수인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소장이 "한국의 루비니"가 된 건 의미가 각별하다. 김 소장은 그냥 큰 그림만 보는 학자가 아니다. 거대 담론 대신 기업 회계 자료를 들여다본다. 법률과 시행령을 꼼꼼하게 살핀다. 이런 일을, 20년 넘게 해 왔다. 숫자와 법률, 구체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므로, 그는 늘 신중한 편이었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문제"라는 말은, 그의 이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 단정적인 표현을 꺼린다. 그런데 이제 비관론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정치의 역할' 등 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왜 그럴까. 김 소장을 지난 17일 한성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났다. 해운 및 조선 산업 구조 조정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국의 루비니"가 된 까닭에 이르기까지, 이날 나눈 대화를 간추려 정리했다.  

 

"한국형 양적 완화, 이름 잘못 붙여서 생긴 혼란이 심각"


프레시안 : 정부가 '한국형 양적 완화'를 추진한다. 지난 4.13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선거 공약이었는데, 여당이 선거에서 지면서 물밑에 잠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걸, 박근혜 대통령이 끄집어냈다.  

김상조 : 잘못된 네이밍(Naming, 이름 붙이기)에 따른 혼란이 심각하다. 지금 진행되는 건, 산업은행 및 수출입은행 등 국책 은행에 대한 자본 확충이다. 양적 완화라는 거창한 표현은 부적절하다. 다행히 정부도 최근에는 '국책 은행 자본 확충'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게 맞다. 

"5조~10조 원 쓰면 끝나는 문제인가?" 

프레시안 : '양적 완화'는 아예 불필요하다는 건가.  
 

▲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김상조 : 그 이야기는 뒤에서 하자.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총선 당시 거론한 '한국판 양적 완화'는 지금 이야기되는 것과 논의 범위와 초점이 모두 다르다. 

일단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부터 정리해보자. 그게 뭐라고 보느냐에 따라 필요한 자본 규모와 자본 조달 방식이 각각 달라진다. 

문제가 현대상선, 한진해운, 대우조선해양 등 세 업체의 부실 처리라면, 정부 재정으로 해결하는 게 옳다. 하지만 누구도 그게 문제의 전부라고 보지 않는다. 이들 세 업체의 부실 처리 비용으로 5조~10조 원쯤 쓰면, 끝나는 일인가. 그 정도 부담은 한국 경제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는 일이 아니라고 보니까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번에 국책은행의 증자를 하고나서, 얼마 뒤에 또 새로운 재원 조달 방식을 찾아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재원을 찾고. 이렇게 매번 편법으로 시간 벌기에만 급급하다 결국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 그게 걱정이다.  

"2008년 위기와 닮았다편법으로 일관한 정부"

 


많은 이들이 지금 상황을 1997년 IMF 외환위기와 비교한다. 내가 볼 땐, 오히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와 더 비슷하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시시각각 치솟았다. 하루에 100원씩 오르기도 했다. 자칫하면, 1달러에 2000원까지 갈 뻔했다. 마침 그때, 미국, 일본, 중국 등과 통화 스왑을 하면서 빠르게 진정됐다. (통화 스왑 : 두 나라가 자국통화를 상대국 통화와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자국통화를 상대국에 맡기고 외국통화를 단기 차입하는 중앙은행 간 신용계약이다. <편집자>) 

2008년 9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를 돌아보면, 지금과 닮은 점이 많다. 당시엔 건설업 부실이 심각했다. 그래서 2008년 10월, 이명박 정부는 건설업 구조 조정을 시작했다. 당시 건설 업체에 돈을 빌려준 금융사, 즉 '대주단'과 건설사의 협약(대주단 협약)을 통해 이뤄졌다. 현재 해운업체들에게 적용된 자율 협약과 비슷한 것이다. 법적 근거가 없어서 사후 감시·평가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얼마 뒤, 부실 건설 업체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을 대출한 저축은행의 부실이 물 위로 떠올랐다. 그러니까 정부는 예금보험 기금에서 돈을 빼서 쓰기 시작했다. 원래 예금보험 기금에는 칸막이가 돼 있다. 저축은행, 시중은행 등에 대해 각각 보험료가 따로 쌓여 있다. 그런데 저축은행 보험료만으로 부족하니까 시중은행 보험료를 가져다 썼다. 

"문제를 잔뜩 키운 뒤에야 국회로 갔다" 

이렇게 원칙 없는 대응으로, 문제가 풀렸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2008년 10월경에는 건설 업체와 저축은행의 부실이 문제였다. 그러니까 정부는 관치금융 방식으로 금융기관의 팔을 비틀어서 급한 불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에 들어서자 부실이 시중은행으로까지 확산됐다. 그러니까 정부는 은행자본 확충 펀드를 만들었다. 은행 후순위채 등을 매입해 자본을 확충해주는 펀드다. 그래도 시장이 불안정하니까, 채권시장안정펀드, 증권시장안정펀드를 만들었다. 당시 채권시장안정펀드에 한국은행이 돈을 댔다. 정부가 쓸 수 있는 돈은 모두 가져다 쓰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유사 공적자금인데, 감시로부터는 벗어나 있다. 

그래도 문제는 풀리지 않았었다. 결국 정부는 2009년 1월 구조조정기금과 금융안정기금을 조성했다. 부실이 건설과 저축은행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미 해운 및 조선 산업의 부실이 심각하게 거론됐었다. 산업 전체를 바라보면서 구조 조정을 해야 했는데, 그러자면 그때그때 펀드를 만드는 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대규모 기금을 조성해야 했다. 그러면 국회와 감사원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감시에서 벗어난 자금을 대규모로 조성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국회에서 공적자금법을 개정했다.  

요컨대 정부는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편법으로 시간만 벌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 확대됐고,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국면이 된 뒤에야 국회 논의가 시작됐다. 

"해운 및 조선 구조 조정은 정부 재정으로" 

지금도 똑같다. 관료들은 절대로 국회에 찾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게 문제의 핵심이다. 대신 중앙은행 멱살 잡고 밀실에 들어가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한국은행법 64조, 65조를 읽어보면, 한국은행이 지원하는 게 기술적으로도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설령 한국은행이 지원한다고 해도, 어차피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황은 또 닥친다. 그때마다 편법으로 넘기면, 문제는 계속 커지기만 한다.  

다시 정리하자. 해운 및 조선 산업 구조 조정에 따른 국책 은행 자본 확충 문제는 정부 재정으로 해결해야 한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증세 등의 조치가 여기 포함된다. 

"선제적 구조 조정은 공적 자금으로" 

하지만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것이다. 결국 큰 규모의 선제적인 구조 조정을 해야 하는데 여기엔 돈이 많이 든다.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이건 공적 자금 조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정부가 지급 보증한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하는 게 공적 자금이다. 부실기업으로 흘러가는 돈이므로, 상환되지 않는 돈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결국 재정으로 메워야 한다. 재정, 즉 국민의 세금이 쓰일 것이므로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 2009년 조성한 금융안정기금을 앞서 언급했다. 그걸 활용하면 수십 조 원까지 확보할 수 있다. 

 

 

▲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실업 대책은 정부 재정으로거제, 울산에 공공 인프라 짓자"

 


그 다음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개별 기업의 구조 조정이 진행되면, 가계와 지역에 충격이 온다.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이 생기니까. 여기에 대한 대책은 공적 자금 투입으로 마련할 수 없다. 공적 자금은 기업과 가계에 직접 전달되는 게 아니다. 일단 은행으로 흘러간다. 은행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니까 구조 조정 충격에 대한 대책 마련은 결국 다른 재원으로 해야 한다. 다시 정부 재정이다. 다만 여기서 바로 사회안전망 확충 문제로 건너뛰는 데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은 전 국민에게 적용돼야 한다. 따라서 한번 도입하면 돌이키기 힘들다. 그러니까 논의 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그런데 구조 조정의 충격은 당장 급한 일이다. 

예컨대 거제와 울산의 대형 조선소에서 곧 실업자가 대거 쏟아질 수 있다. 실업 급여를 확대하는 등의 대책으론 어림없다. 일반적인 의미의 사회안전망이 아닌,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여기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거제와 울산 지역에 꼭 필요한 공공 인프라 건설 사업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조선소 사내 하청 노동자가 하는 업무는 건설업과 닮은 점이 많다. 그걸 고려한 대책이다. 물론 한계 역시 분명하다. 실업자를 완전히 흡수하긴 어려울 게다. 따라서 다른 대책이 곁들여져야 한다. 다양한 정책의 조합(Policy Mix)가 필수적이다. 

"양적 완화, 위기 대책으로 남겨둬야" 

그래도 남은 문제가 있다. 예컨대 중국 경제가 경착륙한다고 하자. 하필 그 시기에 가계 부채 문제가 터졌다고 하자.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앞서 언급한 '양적 완화'는 그때 해야 한다. 최후의 수단인 양적 완화를 정부가 엉뚱한 상황에서 꺼내는 바람에 논의가 꼬여 버렸다. 양적 완화란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범정부, 범정치권 차원의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걸 바탕으로 중앙은행에 양적 완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양적 완화를 실시한 모든 나라가 이런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런 과정을 무시했다.

다만 위기 상황에서 양적 완화에 대한 폭넓은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과거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했던 방식은 찬성하지 않는다. 한국의 원화는 국제 교환성이 없는 탓에, 미국, 일본 식 양적 완화를 하면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다. 대외 교역에서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양적 완화를 해야 한다면, 선별적 방식이 옳다고 본다. (외환 관리를 받지 않고, 미국의 달러화 등 주요 국가 통화와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화폐를 '경화(硬貨, 하드커런시(Hard Currency))'라고 한다. 예전에는 금과 교환되는 화폐만을 '경화'라고 했으나, 지금은 보다 폭넓은 뜻으로 쓰인다. 한국의 원화는 '경화'가 아니다. 국제 교환성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화폐를 쓰는 국가가 무리하게 통화 공급을 늘리면(양적 완화), 환율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편집자)  

"부실 책임 규명과 구조 조정, 동시에 하려면…" 

프레시안 : 공적 자금 조성에 대한 논의를 하자고 했다. 여기에 대해선 관료들의 거부감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김상조 : 맞다. 한국이 공적 자금을 두 번 조성했다.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 직후다. 그런데 두 번 모두 청문회를 했고, 관료들이 불려 나갔다. 관료 입장에선 추가경정예산 편성보다 공적 자금 조성이 더 싫은 선택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정치권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공적 자금 조성이 필요한 상황은 구조 조정을 할 때라는 말이다. 실무 측면에선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 한다. 한편으론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른 한편에선 미래를 내다보고 부실을 정리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종종 같은 사람이 하게 된다는 점이다. 과거 부실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 구조 조정 실무자가 된다. 결국 둘 다 안 하게 된다. 자기에게 책임 묻는 일을 열심히 할 리가 없다. 과거 부실에 대한 책임 규명과 미래를 내다본 구조 조정은 서로 맞물려 있으므로, 구조 조정 실무도 소홀해진다. 

"여야정 협의체가 책임 범위 정해줘야"  

이 문제는 관료 스스로 풀 수 없다. 정치권이 나서서 책임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 머리 가르마를 타듯, 경계를 정해줘야 한다. 예컨대 산업은행 부실 문제라면, 역대 수장에 대해선 단호하게 책임을 묻되, 지금 실무를 담당한 이들은 오로지 구조 조정 업무에만 매진하게끔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과거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져야만 구조 조정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방식, 즉 책임 규명을 전제로 자금 지원을 하는 방식으론 아무 것도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면 책임 규명과 자금 지원 사이에 경계를 정해야 하는데, 이런 결정을 누가 할 수 있나. 정치권 외에는 없다. 여당, 야당, 정부가 만나는 여야정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아울러 내가 '정치권은 구조 조정에서 손을 떼라'는 식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유다. 정치권 등 외부 개입 없이 기업이 자율적으로 하는 구조 조정이 더 효율적인 건 맞다. 하지만 그건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때 이야기다. 시장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다들 '복지부동'한다. 지금 시장에 없는 게 바로 '예측 가능성'이다. 그걸 부여하는 건, 결국 정치의 역할이다.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재원 조달은 어떻게 할 건지 등을 여야정 협의체가 정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 참가자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1980년대 S&L 파산 처리에서 배우자" 

이 문제를 고민하면서 미국 사례를 되짚어봤다. 미국은 1980년대 S&L(Savings and Loan Association, 저축대부조합) 파산 사태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미국은 이걸 어떻게 해결했나. 크게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책임에서 자유로운 다른 기관이 문제를 처리하게끔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문제, 과거 책임 규명과 구조 조정 실무를 같은 사람이 담당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한 조치다. 두 번째는 아주 길고 끈질긴 책임 규명이다. 책임 추궁을 결코 한 번에 끝내지 않는다. 정교하게 책임 소재를 따지는 작업이 10년 가까이 진행됐다. 이 두 가지는 앞으로 한국에서 진행될 구조 조정 작업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고 본다. 

다만, S&L(저축대부조합) 파산 사태 당시 미국 사회가 보여준 저력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사라져버렸다. 모두가 공범이 돼버린 탓이다. 책임에서 자유로운 주체를 찾을 수 없다. 다들 공범이니까 정교하게 책임을 묻는 절차도 사라졌다. 결국 '양적 완화'로 곧장 달려갔다. 미국의 퇴화 조짐이라고 본다. 한국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의 미국이 아니라 1980년대 S&L 파산 사태 이후의 미국에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주)대우 방식으로 쪼개자" 

프레시안 : 산업 구조 조정을 오로지 재무적인 관점에서만 진행해야하는지는 의문이다. 조선 산업 구조 조정을 놓고서도 비슷한 논란이 인다. 산업의 특수성을 무시한 구조 조정은, 장기적인 경쟁력을 망친다는 게다.  

김상조 : 어려운 문제다. 산업의 경쟁력은 구조 조정 이슈와는 별개로 봐야 한다. 조선 산업의 과잉 설비를 잘라내면(구조 조정 하면), 그 혜택이 한국 기업에게 오나. 그렇지 않다. 한국과 '치킨 게임'을 하고 있는 중국 기업이 혜택을 본다.  

이렇게 보면, 대우조선해양을 통째로 법정관리에 넘겨서 문 닫게 하자는 건, 어리석은 소리다. 물론, 부채 비율이 4000%(연결 기준)를 넘긴 대우조선해양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과거 김우중 회장이 이끌던 대우 그룹이 망했을 때, (주)대우 등을 정리했던 방식을 참고할 수 있다. 당시 (주)대우를 세 개로 쪼갰었다. 경쟁력 없는 부문은 한데 모아서 청산했다. 나머지는 둘로 나눴다. 각각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이 됐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해서 각각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본다.  

"삼성중공업에 국민 세금 들어가면 이재용 자리 못 지켜"

일부 경제지는 대우조선해양을 정리하자고 한다. 의구심이 드는 주장이다. 배후에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이 있다고 본다. 이들 두 회사에게만 좋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또 이른바 조선업 빅 쓰리(Big 3 :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를 한 덩어리로 취급하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현대중공업은 다른 두 업체보다 수준이 높은 기업이다. 총수인 정몽준 회장 탓에 경영이 어려워졌지만, 경쟁력이 탄탄하다. 일각에선 삼성중공업의 부실을 털기 위해 국민 세금을 쓸 수 있다고도 한다. 그 역시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되면, 이재용 부회장은 자리를 지키기 힘들다. 사회적 비난이 엄청날 것이다. 

"현대, 동부, 두산, 한화, 한진…미래 어둡다" 

프레시안 : 김 소장이 이사로 있는 경제개혁연구소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연결재무비율 분석> 보고서를 꾸준히 내고 있다. 이걸 보니까, 한국 경제의 미래가 참 어두워 보인다. 

김상조 : 지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주요 그룹의 재무 자료를 분석해서 연결부채비율 및 연결이자보상배율을 계산했다. 이걸 보면, 3년 연속 빨간불이 들어온 그룹은 예외 없이 해체됐다. 금호, 동양, 대한전선, STX 등이 그렇다. 지금 위험 신호가 켜진 그룹은 현대, 동부, 두산, 한화, 한진 그룹 등이다. 이들 역시 그룹이 사라지거나, 규모가 확 줄어들 것이다. (연결부채비율이란 기업 집단의 계열사를 포함해 부채 총액을 자기 자본으로 나눈 비율이다. 계열사간 출자와 내부 거래를 제거한 연결 기준을 적용하므로 그룹 단위 재무 건전성을 파악하기에 좋다. 

연결이자보상배율이란 연결 기준으로 구한 이자보상배율이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영업 이익)이 그해에 갚아야 할 이자 비용에 비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이라는 건, 한 해 동안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다는 뜻이다. 김 교수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그룹들은 이 두 가지 지표가 모두 나빴던 경우다. 편집자)

"중국 경제, 9월 G20 회의 이후가 불안하다" 

프레시안 : 김 소장이 동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한국의 루비니"로 불린다고 들었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위험, 가계 부채의 심각성에 대해 예민하게 살핀다고 알고 있다. 
 

▲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김상조 : 중국이 과거 한국이 겪었던 IMF 외환위기 수준의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건 경착륙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중국 경제가 올해 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다 3, 4월 들어 반등했다. 그게 좋은 징조라고 보지 않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구조 개혁을 포기한 측면이 많이 작용했다고 본다. 중국 기업의 부채는 더 쌓였다. 올해 9월, 중국 항저우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중국 공산당의 특성을 고려하면, 그때까지는 지금 기조를 유지하리라고 본다. 문제는 그 이후다. 구조 개혁을 계속 미루면서, 올 연말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하필 그때, 집단 대출 만기가 대거 돌아오면서 가계 부채 문제가 불거지면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비관론을 자주 이야기하는 게 사실이다. 어쩌면 내가 조금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을 강조하는 것일 수 있다. 나름대로 의도가 있다. 

"비관론 강조하는 까닭" 

해운 및 조선 산업 구조 조정이라는, 돈으로 치면 5조~10조 원짜리 문제를 푸는데 정부는 정공법 대신 편법을 택했다. 이렇게 문제를 뒤로 넘기기만 하다가, 진짜 큰 문제, 방금 언급한 위험한 상황이 터지면 그땐 어쩔 건가 싶다. 계속 편법만 쓸 건가. 그건 아니지 않는가. 정치권이 역할을 해야 한다. 여야정 협의체가 원칙을 확인하고 가이드라인을 잡아줘야 한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비관론 이야기를 자주 한다.  

물론,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이유는 이밖에도 많다. 2010년대 들어서 한국 경제에서 경기 순환이 사라졌다. 대단히 위험한 신호다. 통계청도 인정했다. 경기 순환이 없으니까, 경지 사이클의 저점을 어디에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다. 예전엔 반대였다. 한국은 매우 굴곡이 심한 경기 순환 곡선을 그렸다. 경기가 나쁠 때는, 그저 수명만 이어가는 좀비 기업들이 대거 정리됐다. 살아남은 기업은 경기가 좋아졌을 때, 밤샘 조업을 하면서 부실을 털고 도약한다. 삼성전자 등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더 크게 성장한 기업들이 대개 이런 식이었다. 경기 순환 흐름을 잘 탔다. 반면, 이런 흐름을 제대로 못 탄 기업은 위상이 추락했다. 

"죽어야 할 기업은 죽지 않고, 산 기업은 기회 못 잡는 경제"

그런데 이제는 굴곡이 사라졌다. 그냥 직선이다. 한국 경제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죽어야 할 기업이 죽지 않는다. 살아남은 기업은 성장 기회를 못 잡는다. 온탕 속의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길이다. 경기 사이클이 위로 향하는지, 아래로 향하는지 구별하지 못하는 침체 국면, 성장이 멈춘 상황이 지금이다.  

여기에 중국의 위협이 겹쳤다. 앞으로 겪을 위기가 1997년 외환위기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1997년에는 재무적 구조조정만 하면 됐다. 지금은 산업 전체를 봐야 한다. 중국 변수까지 고려해서 산업을 재편해야 한다. 훨씬 어려운 문제다. 당연히 고용 문제가 불거진다. 이걸 정부 재정만으로 풀기는 어렵다. 다양한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 재정의 역할, 공적 자금의 역할을 각각 규정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이런 결정은 정치권 외에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을 인정하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6개월 남짓이다. 하필 그 시기가 19대 국회가 끝나고 20대 국회가 시작되는 때다. 정치권이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답답하다.  

"천천히 망하는 게 더 괴롭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30대 그룹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1년 반 동안 문을 닫았다. 앞으로 전개될 위기 양상은 다를 것이라고 본다. 30대 그룹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사라질 것이다. 다만 천천히 망해갈 것이다. 그게 더 고통스럽다. 최상위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역시 전망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한성대학교 교수로 부임했을 때가 1994년이었다. 그때 입학한 학생들이 4학년이 되니까,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당시 생각이 자주 난다. 그 뒤로 지금까지 학생들은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린다. 아무리 열심히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안 된다. 대학 시절 내내 놀아도 취업이 쉬웠던 우리 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 세대가 지닌 생각의 관성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진보 진영이 흔히 갖고 있는 관성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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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고발뉴스 브리핑] 5.23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내 무릎에 앉든가” 보훈처 간부, 5.18유족 성희롱 논란류효상 특파원  |  balnews21@gmail.com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아흐레 앞둔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토크콘서트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에 이해찬(앞줄 의자 왼쪽 두 번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재정(앞줄 의자 왼쪽) 경기도교육감, 더불어민주당 은수미(앞줄 의자 오른쪽 두 번째) 의원, 더불어민주당 배재정(앞줄 의자 오른쪽) 의원과 시민들이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1. 오늘 열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에 여야 정치인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추도식을 앞두고 김해 봉하마을이 추도객으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친노패권 타령하다가 봉하오면 노무현 정신 어쩌고 하는 정신줄 놓으신 분들 많더만...

2.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우간다를 방문하게 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최근 새마을운동에 큰 관심을 보이며 우리나라와의 협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또 나가? 우간다 중흥만 신경쓰지 말고 우리 민족 중흥도 먼저 이바지 하심이...

   
▲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6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 참석,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3. 보훈처가 주관한 5·18 민주화운동 정부 기념식에서 보훈처 간부가 5·18 유가족을 ‘성희롱’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일부 유가족의 자리가 부족해 배정을 요청하자 보훈처 과장으로 알려진 인물이 ‘그럼 내 무릎에라도 앉으면 되겠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훈처장이나 과장이나... 쯧쯧... 할 말이 없도다~

   
▲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들의 항의를 받으며 입장을 저지 당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4. 혜리를 등장시킨 ‘알바당’ 광고로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권리를 대중적으로 알린 잡코리아가 정작 조직 내부에선 부당노동행위를 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권고사직에 응하지 않고 노동조합을 만든 직원의 자진 퇴사를 유도하기 위해 부당한 인사 발령을 냈다고 판정했습니다.
여러 가지 하는 구만... 참으로 잡스러워라~

5. 배우 구혜선과 안재현이 지난 토요일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구혜선과 안재현 부부는 결혼식을 여는 대신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해 어린이 병원 환자를 위해 기부했습니다.
어느 결혼식보다 아름답습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아름다운 사랑 만들어 가시길~

6. 대리점에 '밀어내기' 영업을 하다 법적 처벌까지 받은 남양유업에 공정위가 결국 큰 폭으로 줄어든 과징금을 확정했습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애초 124억 원이었던 '갑질'에 대한 과징금을 재산정해 25분의 1수준인 5억 원으로 확정했습니다.
자료가 없고, 증거가 부족했다고? 대국민 사과는 자백이 아니었어? 에라이~

7. 20대 국회 입성에 실패한 전·현직 의원들의 '종편 행'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공백 기간에 인지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쏠쏠한 돈벌이도 가능한 '일거양득'의 기회인 종편 출연이 매력적인 '부업'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다 한 방에 훅 간다... 하긴 먹고는 살아야지... 그게 날지도 모르지...

8. 조영남 씨의 그림 '대작 사건'과 관련, 조씨가 대작 화가인 송모 씨에게 보내서 그리게 한 그림 일부의 원작은 송 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조 씨 그림 '대작 사건'으로 불거진 조수의 개념 논란과는 다른 것이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기 참 쉽지요~ 자기가 무슨 밥 아저씨쯤 되는 줄 아는 모양이야...

9. 대법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공무원의 실수로 투표하지 못한 김모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30만 원의 배상 책임을 확정했습니다.
김 씨는 3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1심과 2심은 공무원의 과실이 인정된다며 30만 원의 배상을 선고했었습니다.
반대로 투표 안 한 사람한테는 30만 원 벌금 내게 하면 어떨까? 권리 포기죄...

10. 휴전선 주변에서 지뢰 폭발 사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원도 양구군 한 야산에서 산나물을 뜯던 A 씨가 발목 지뢰로 추정되는 폭발물이 폭발해 왼쪽 발을 다쳤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출입 금지 ‘지뢰 표지판’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물밭이 아니라 지뢰밭인 게지... 국민이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거야?

11. 중국 정부 기관 직원들이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조작용 댓글을 직접 작성한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하버드 연구팀에 의하면 중국 정부의 여론조작은 5억 개에 이른다는 분석입니다.
댓글 조작의 원조가 중국이었어? 혹시 우리가 갈쳐줬을라나?

12. 북한이 '남북 군사회담'을 공식 제안했습니다.
이에 우리 군은 국방부 대변인의 공지문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둘 다 어딜 보고 얘기하는 건지... 일단 만나서 얼굴 보면서 얘기 좀 하면 안 될까?

13. 서울 강남역 인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된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묻지 마 범죄'로 결론 내렸습니다. 
프로파일러의 심리면담 후 종합 분석을 한 결과 전형적인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 마 범죄' 유형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식이면 혐오 범죄라는 게 있기는 한 거야? 거참~

   
▲ 22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프로파일러 이상경 경사가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34)씨의 심리분석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경찰은 지난 19일과 20일 2차례에 걸쳐 김씨에 대한 심리면담을 진행했고 분석결과 이번 사건은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범죄' 유형에 부합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제공=뉴시스>

14. 명동 노점상에 '실명제'를 본격 도입해 노점의 무질서한 난립을 막고, 노점의 임대·매매를 근절해 '기업형 노점'을 뿌리 뽑는다고 합니다.
실명제는 기존 명동에서 노점을 계속해 온 사람을 대상으로 1인 1노점만 허용합니다.
자기 이름에 먹칠하는 사람은 없겠지? 근데 생각 보다 많다는...

15.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폭력의 심각성과 지속성 등을 평가해 가해 학생에게 서면 사과부터 퇴학까지 조치할 수 있는 세부기준이 마련됩니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 비슷한 학교폭력 사례라도 학교폭력대책위의 판단에 따라 다른 조치가 취해지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처벌이 우선이 아니라는 건 잘 아시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학교... 꿈이 아니었으면...

16.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신병이 미국으로 인도됩니다. 
미국에서 구스만이 유죄 평결을 받더라도, 사형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보증을 받았다고 합니다.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멕시코인이 수천수만인데... 구스만은 참 쉽게 가는 구만... 축하해~

17. 여야 3당과 정부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노사 합의로 진행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여야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불법논란을 지적했고, 정부는 불법과 탈법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연한 얘기를 뭐 이렇게 거창하게 하시나 그래... 지켜보겠으~

18. 친구와 놀이동산을 간다는 이유로 생후 2개월 된 아이를 홀로 둬 숨지게 한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어린이날 전날 아들을 홀로 두고 친구와 놀이동산에 갔으며 남편과는 별거 중이었습니다.
이런 철딱서니 없는 엄마를 봤나 그래... 철이 없어서 놀이동산 간 거는 아닐 텐데... 에휴~

19. 법조 비리 의혹 사건을 통해 변호사들이 돈을 감추는 기상천외한 수법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엔 개인 금고에 현금다발을 숨겨놓는가 하면 자금 용처를 감추기 위해 별도의 회사까지 만든 정황도 나왔습니다.
하여간 있는 것들이 더 하다니까... 이제 탈탈 털렸으니 어쩌니~

20. 민변이 가습기 유해독성물질을 승인ㆍ방치한 국가를 고발했습니다.
오바마는 NHK 인터뷰를 통해 원폭에 대해 사과할 생각 없다고 했습니다.
페이스북 코리아가 '강남역 살인 사건'의 포스팅을 삭제했답니다.
미 블룸버그가 ‘한국에서 해고는 가난으로 직결’된다고 했답니다.
일베 회원이 ‘강남 살인사건’ 추모 포스트잇을 훼손했답니다.
2020년 이후엔 90% 이상 현역 판정되도록 기준이 완화된답니다.

많은 사람이 충고를 받지만,
오직 현명한 자만이 충고의 덕을 본다.
-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쉬 지치기 쉬운 뜨거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요.
나를 위한 충고에 귀 기울이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현명한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게 바로 소통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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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과 5.18

한명숙과 5.18
 
옥중에서 온 편지…
 
강기석 | 2016-05-23 08:11: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20일) 아침, 의정부 교도소에서 9개월째 징역살이하고 있는 한명숙 총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5.18 새벽에 쓴 편지다. 편지지 앞뒤를 꽉 채워 8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이었다. 그동안 한 총리와 몇 번의 서신 왕래가 있었지만 이번 편지의 의미는 각별했다.

5.18 광주항쟁이 한 총리의 공적인 삶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됐다. 민중에 대한 그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도 알게 됐다.

비록 사신(私信)이지만, 편지 내용 중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빼고 일부만이라고 공개하고 싶다. 한 총리가 편지에서 “당분간 제 소식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라고 당부했음에도 그리 하고 싶다.
 
5.18을 맞아 누군가에게라도 간절하게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이고 그 상대로 내가 선택됐지만, 한 총리를 아끼고 존경하는 모든 이들이 공유할 만한, 공유해야 할 이야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 총리같은 인물이 추잡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에 연루됐을 리 없다는 믿음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정치검찰을 앞세운 수구 기득권세력이 왜 눈에 불을 켜고 그를 핍박하고 있는지를 짐작하는 단서가 됐으면 더 좋겠다.

“오늘은 5.18, 새벽 4시 30분입니다. 
아침 일찍 눈이 떠져 잠을 청하지 않고 펜을 들었습니다. 
제 방은 밤이나 새벽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광명의 세계인지라 조용한 5.18 아침에 편지쓰기가 안성맞춤입니다. (...)

강 선생님은 아실지 모르지만 1980년 5.18 당시 저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으로 투옥된 후 서울에서 광주로 이송가 바로 그 역사적 순간에 광주교도소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시민군과 전두환 사단의 격투가 벌어지면서 교도소 수형자들은 일체 출력을 못 나가고 꼼짝없이 비상식량인 건빵만으로 2주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재소자들은 외부로부터의 정보가 끊어진 상태에서 5.18 민주항쟁은 상상도 못하고 전쟁이 일어났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총소리가 울리면 방안의 우리들은 두툼한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지냈습니다.
같은 방에 있던 한 60대의 아주머니가 창문을 보더니 ‘삐라다!’라며 절망과 공포의 외마디를 질렀습니다. 
쇠창살 사이로 뭔가 붉은 것이 펄럭이며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총소리와 붉은 삐라’, 전쟁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사(女舍)의 유일한 정치범인 나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곧 독방으로 옮겨져 철저히 감시를 받았습니다. 
시민군이 퇴각한 후 한 수형자가 출력을 나갔다가 삐라 한 장을 주어다 줬습니다. 
그것은 최규하 대통령의 담화문이었고 그것을 통해 전 처음으로 공포에 휩싸였던 그 일의 전모를 알게 됐습니다. 
5.18 항쟁 때 광주교도소는 전두환 사단의 후방기지였습니다.
이 안의 인쇄공장에서 삐라를 만들고, 운동장은 헬리콥터 기착지였으며, 시민군을 잡아다 굴비처럼 엮어 가두기도 했습니다. 
붉은 삐라는 헬리콥터가 뜰 때 일으키는 강한 바람에 휘말려 하늘 높이 떴다가 헬리콥터가 멀리 사라지면 다시 펄럭이며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비 같았습니다.
5월에 흩날리는 꽃비는 처절합니다. (...)

전 항상 1980년 봄 스러져간 광주민주영령들과 같은 곳에서 함께 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간직하면서 그 민중의 힘을 오늘도 교도소 안에서 가슴깊이 담고자 합니다. 
얼마 전 비바람이 몰아쳐 개나리 진달래 철쭉 라일락꽃들이 속절없이 떨어져 하룻밤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화려하고 예쁜 꽃들이 비바람에 약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들이 가고 난 후 이곳은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의 향연이 한창입니다.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이 이렇게 강인하게 자신의 꽃을 피우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너무나 작아 앉은 자세로 가까이 들여다 봐야 할 정도의 꽃들이 군락을 이루어 봄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잡초 대신 야생초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징역살이 12년 동안 ‘야생초 편지’를 쓰신 황대곤 선생의 마음이 고맙습니다. 
야생초는 시멘트벽을 뚫고 나와 싱그러운 잎을 뻗기도 하고, 벽돌 사이사이에서도 빼꼼히 푸른 얼굴을 내밉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야생초 꽃들은 신이 나서 춤 출 뿐 속절없이 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강해지는 민중과 꼭 닮았습니다. 
그들은 맘껏 꽃을 피우고 즐기다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들은 봄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마치 함박눈처럼 훨훨 날며 짝짓기를 하고 나서 땅위에 납작 엎드립니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땅 속 깊은 곳에 튼튼히 뿌리박고 생명을 모아 숨쉬고 있다가 다시 새봄이 오면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번식으로 땅을 뚫고 나옵니다. 
요즘은 운동시간 절반은 야생초들과 마음을 나누며 생명의 기(氣)를 받습니다.
제 마음 속으로 조용히 염원합니다.
‘야생초들아, 계속 뻗어나가 교도소 높은 벽까지 타고 넘어 다 점령하리라!’ (...)

수락산 자락 큰집은 지금도 봄과 겨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난방이 끊어진 4월부터는 봄 추위가 영하 23도의 한겨울보다 더 냉혹하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다행히 사동 청소도우미들이 가르쳐 준 ‘신문지 비법’ 이 많은 도움을 줍니다.
냉골 바닥에 신문지를 두텁게 깔면 시멘트 바닥의 냉기도 막아주고 냉기와 온기가 부딪쳐 생기는 습기를 흡수해 주는 이치입니다. 
오늘도 신문지를 깔면서 예쁜 사진이 나오면 눈 맞추기도 하고, 보기 싫은 사진이 나오면 휘~익 뒤집어 깔기도 하면서 신문지 비법을 즐기며 두 다리 쭈욱 뻗고 잤습니다. 
걱정 마소서. (...)

2016년 5.18 아침
5.18 영령들의 영혼을 마음에 담아
한 명 숙 ”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0&table=gs_kang&uid=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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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반대편에 있는 '별난 어른들'

 

[리뷰] 채현국·방배추 등 우리 사회 참 어르신 발굴한 김주완 저 <별난 사람 별난 인생>

16.05.23 08:10l최종 업데이트 16.05.23 08:10l

 

꼭 어버이연합 때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버이',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이 나빠진 건 사실이다. 고집불통이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며 노욕에 빠진 사람이라는 인상이 짙어져 버렸다. 거기에다가 '폭력', '선동', '빨갱이' 이런 단어도 저절로 연상된다.

물론 어버이·어르신 중에도 정말 괜찮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뚜렷하게 누군가를 꼬집어내자면 몇몇 짐작되는 분들은 있을 뿐 애매해진다. 술자리에서도 이 지점에서 꽉 막혀 버렸다. 결국 김수환 추기경이나 신영복 선생 같은 분을 애매하게 들먹이며 '어른이 없다'며 찝찝하게 단정 지어 버리는 게 보통이었다. 분명 사람이 있을 텐데.
 

기사 관련 사진
▲  <별난 사람 별난 인생>(김주완 저) 표지
ⓒ 피플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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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민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책이 나왔다. 제목은 <별난 사람 별난 인생>(김주완 저, 도서출판 피플파워)이다. 이 책에는 총 8명이 나온다. 더러는 아는 사람이고, 더러는 처음 듣는 사람도 있다. 일단 출연(?) 인물부터 살펴보자.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장형숙 할머니
-방배추(방동규) 선생
-양윤모 영화평론가 겸 시민운동가
-김장하 선생
-임종만 창원시청 공무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순재 전 창원 동읍 농협조합장

이 중 채현국, 장형숙, 방배추, 김장하씨가 바로 오늘 내가 말할 '어른'이다.

"가진 게 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수백만 원 같은 작은 돈은 포기할 수 있다. 상당히 재산이 있으면 몇 억 정도는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포기하는 단위가 수백억 원이나 수천억 원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엄청난 재산을 벌었다. 가족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그냥 그걸 버리다시피 한다. 기부나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줘 버린다. 이게 가능할까?
 

기사 관련 사진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 피플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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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이사장을 살펴보자. 우리가 아는 '흥국'으로 시작되는 모든 기업들의 총수였다. '흥국'이란 '채현국이 흥해라'라는 뜻으로 채현국 이사장의 아버지 채기엽씨가 지은 이름이다. 채현국은 회사 이름 대로 흥했다. 양산 개운중학교, 경남대학교(당시 마산대학교)를 샀으며, 강원 도계 흥국탄광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채현국 이사장은 1960년대 당시 돈으로 매달 200만 달러에 가까운 흑자가 났다고 한다. 1970년 납세자 순위 전국 2위였다. 탄광이 주 수입이었고, 이 외에도 조선(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1000톤 단위의 배를 만든 곳이 흥국조선이다), 금융, 종묘장 등 손을 안 대는 것이 없었다. 아마 계속 쭉 흘러갔으면 삼성, 현대 못지않은 대재벌이 됐을 것이다.

1972년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했다. 대한민국은 독재국가가 됐다. 독재란 정치적으로만 자유가 억압된 것이 아니다. 독재란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단어다. 딱 잘라 말해서 이제 대한민국은 박정희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채현국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그 전에 경남대학교도 문교부에 헌납했다(그걸 피스톨 박, 박종규 경호실장이 먹었다. 지금도 박종규 일가가 경남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흥국탄광은 노동자들에게 그냥 나눠줬다. 원래 내 것이 아니니 가져가라고 했다. 나서지 않는 노동자들에게는 몇 년 치 임금을 쥐여줬다. 그중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 도망쳐 온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채현국은 그런 사람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이름을 몰라야 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더라도 못 불지 않겠냐는 것이다.

서울대 친구들을 불러 모아 기업을 그냥 쪼개줬다. 그냥 던져 줘 버렸다. 니가 이사해라, 니가 사장해라. 나는 더는 못하겠다. 그중에 어리숙한 친구가 있었다. 채현국을 몰래 등기이사로 올려놨다. 아마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부도를 냈다. 등기이사 채현국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렇게 1973년 이후 지금도 채현국은 신용불량자다. 그때 채현국의 나이 38살이었다.

기자는 채현국 이사장이 있는 양산에 가본 적이 있다. 학교 건물 안에 채현국 이사장의 거처가 있다. 요즘 신식 원룸보다 조금 더 못한 5평 남짓한 원룸에 옷가지 몇 벌을 걸어 놓고 살고 있었다. 그래도 학교 이사장이니까 학교에서 밥이 나오고 부인이 전 국립대 교수니 연금이 있다. 또한 잘 나갈 때 민주화 운동가나 해직기자들에게 집을 막 사줄 때가 있었다. 그런 인사들에게서 '삥을 뜯으며'(최근엔 좀 유명해져서 전국을 다니며 특강료를 받으며) 통장 하나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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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하 선생. 남에게 알려지는 걸 꺼려 사진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 경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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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선생. 진주 사람이라면 '남성당한약방'이라는 말은 들어봤을 것이다. 삼천포 한약방 점원으로 일하면서 19살에 전국 최연소로 한약종상(현 한약업사)이 됐다. 그리고 남성당한약방을 차렸다. 명의로 소문나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들었다. 돈을 벌었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 할 정도였다. 

돈을 그냥 '쌓았다'. 그리고 쌓은 돈은 그냥 뿌렸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줬는지 본인이 말하지 않기 때문에 짐작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음으로 양으로 알려진 바만 해도 진주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한 것, 진주지역 개혁언론이었던 진주신문 운영비 지원한 것, 문형배 판사 등 수많은 지역 인재와 시민단체가 그의 지원을 받은 것 등이 있다.

왜 그랬는가 물으니 "아픈 사람과 사회적 약자에게 돈을 벌었으니 돈을 되돌려 준 것뿐"이라고 한다. "똥을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고 한다.

수없이 정치에 나서라고 해도 나서지 않았다. 얼마나 나서지 않았는가 하면 평소 안면이 있던 저자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국장 외에는 제대로 인터뷰 한 사람조차 없다. 모두들 돈은 받았지만 김장하 선생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돈 버는 건 최고의 마약이다', '돈은 똥이다' 이 어른들이 엄청난 돈을 벌고도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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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형숙 할머니
ⓒ 피플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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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0인 장형숙 할머니. 한겨레 신문을 보다가 좋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주소를 알아내 그 사람에게 손편지를 보낸다. 저자 김주완 국장도 이렇게 편지를 받아서 알게 된 어른이다.

"자연을 벗 삼은 농부님들의 수고 덕분에 아직 먹고 살고 있군요. 이름도 생소한 '크라우드 펀딩' 수고 많이 하셔요. 나는 늙어서 동참할 기력도 없지만 박수 치고 자랑하고 싶답니다."  - 2014년 5월. 자연농법 농사펀드를 하는 남산골 농원 조관희 씨가 받은 편지

이런 편지를 정확히 언제부터 써 왔는지 할머니는 기억하지 못한다. 적어도 10년은 더 됐고, 많을 때는 일주일에 10통이 넘게 보내기도 했다니 최소한 1000명이 넘는 사람이 할머니의 편지를 받은 셈이다. 

"늙은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나요? 편지라도 써서 좋은 일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면 보람이지요."

백기완-황석영 선생과 함께 조선 3대 구라라고 하는 방배추 선생. '스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그가 백기완 선생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민주 인사들과 어울리다가 1974년 박정희 정권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았다. 고문을 받고 나올 때 이빨이 그냥 우수수 빠졌다고 한다. 41살 때부터 그는 완전 틀니로 살고 있다. 민주화 유공자 이런 것에도 등록하지 않았다. 필자가 보기엔 그저 '협객'으로서 당연히 겪어야 할 고초로 여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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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배추(방동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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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이 회사를 차려 주기도 했다. 중국에서 회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잠시 좋은 차도 몰고 다녔다. 그때 그의 모친은 길에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모친은 방배추 어른에게 '이놈아, 사기 치지 말고 살아'라고 했다. 그 길로 회사를 다 때려쳤다. 안면이 있던 유홍준 문화재청장 재임 때 경복궁 지도원(사실상 경비)을 했다. 경복궁 경비가 끝난 후 채현국 이사장이 있는 효암고등학교 학교 지킴이를 했다.

"일을 많이 하고 잘난 사람은 돈 많이 주고, 못하는 사람은 적게 주고, 아주 못하는 사람은 퇴출시킨다? 이건 노예의 노동이야. 노예들끼리 잡아먹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상대를 죽이는."

"태어날 때 신체적으로 무능력한 사람이 있잖아요. 무능력하니까 굶어 죽어야 하는 거야? 그래도 똑같이 먹어야지. 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고 아무리 고조할아버지라도 혼자 살면 떡 한 덩어리만 줘요. 아무리 천하고 지위가 낮아도 식구가 열이면 열 덩어리를 줬죠. 이게 우리나라의 분배원칙이에요."

방배추 어른의 지론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어른들이 얼마나 진중하고 사려 깊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어른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 '사람에 대한 예의'가 살아 있었다. 물론 이 4명 어르신 말고도 유명 영화평론가였다가 지금은 제주 강정마을에 계시는 양윤모 선생, 창원시청 공무원이지만 정말 영혼이 살아 있는 임종만씨,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막아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농민을 위한 진정한 조합장 김순재씨 등 사람 냄새 나는 괜찮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어쨌든 이 책 덕분에 필자는 오랜 숙제를 덜어버렸다. 이제 술자리에서 '아직 어른이 있다'고 증명할 수 있게 됐다.

덧붙이는 글 | 딴지일보 필진입니다. 딴지일보에 기고한 서평을 일부 보완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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