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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4
    변절/바보/위선 사이에서... (정운찬의 경우)(1)
    tnffo

변절/바보/위선 사이에서... (정운찬의 경우)

오마이에 실린 "정운찬의 '도박'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라는 제목의 글 일부를 옮겨온다. 충청-중도-실용을 아우를 수 있다는 이유로 정운찬이 총리로 지명됐다지만, 이런저런 정치역학-지역역학 관계의 미묘-복잡함이 '도박'의 성공을 방해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글이다. 정운찬의 경제-정치관(교육 포함)은 mb류의 그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 다른 둘이 함께 노를 저어 '위대한 대한민국의 창조'에 헌신하겠다는 충심의 발로로 한 배를 탄다니, 그래서 '도박'이란다. 일확천금을 버는 데는 바보같은 근면보다 도박이 더 실용적인 결과를 때로는 낳을 수도 있으니, 행운만을 빈다.

 

단지 여기서 내게 흥미로운 부분은 도박의 성공에 대한 전망이 아니라 이런 도박이 가능하게 된 배경이다. 정운찬이 총리 지명을 수용한 배경이 이명박의 허울뿐인 "친서민 행보"에 속은 것이라면 그는 '바보'이고, 그 허울뿐임(몰진정성-몰내용성)을 알고도 그랬다면 그는 '변절'한 것이라고 기사는 말한다. 그런데 바보와 변절 보다는 '위선'(가식-허구-사기-껍데기) 이라는 단어가 내게 먼저 와닿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그를 잘 모르기 때문이겠지(일전의 황석영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마도! 누군가는 mb정권과 정운찬을 "논에 심은 장미"(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5410) 라고 비유를 하는 마당이니, 나의 어설픈 느낌이 잘못된 것이길 희망해 본다, 성공, 안 성공은 둘째치고.

 

 

정운찬의 '도박'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 어떤 글에서 정 전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해 "감세가 실제 경제 효과 없이 소수 부자들의 재산을 불려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의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라며 "경제이론으로는 효력을 상실한 레이건 정부 시절의 공급 경제학에 기대어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위기의 해법으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한 노동자 소득기반 강화, 교육 개혁을 통한 분배구조 개선, 금융 건전성 규제 강화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정 전 총장이 비판한 현 정부의 정책레짐(policy regime)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그가 비판했던 강만수 특보는 여전히 MB 곁에 있다. 부자감세는 요지부동이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친서민 행보에 진정성이 있겠는가. 이걸 안다면 그의 선택은 변절이다. 모른다면 바보다. 날치기하고, 야당과 대화하지 않는데 어떤 관점에서 그것이 중도실용으로 보일까. 

이유는 또 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대패한 이유는 양극화 때문이었다. 맡겨놨더니 없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했다는 정서가 핵심 패인이었다. 이웃 일본의 경우에도 양극화 때문에 54년 만에 자민당 정권이 무너졌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전면화한 고이즈미 때문에 지난 8월 30일 아소가 굴욕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MB가 기존의 정책기조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이상, 'MB의 남자'로서 정 전 총장은 분노한 민심의 주타깃이 될 것이다. 현재의 구도상 정 전 총장의 상징어는 개혁이 아니라 지역이다. MB는 수도권·영남연합정권이다. 민주당은 호남정당이고, 범민주당의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정동영 의원이나 정세균 대표는 호남 출신이다. 박 전 대표는 영남 출신이다. 여기에 충청이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대결 구도로 짜이면 정 전 총장의 지지기반은 대단히 협소해질 것이다. 가장 결집도가 낮고, 규모가 작은 지역의 대표성에 국한되는 것은 실익이 없어 보인다.  

김준엽이란 인물이 있다. 정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대학총장을 지냈다. 김구와 함께 일제 독립운동을 한, 장준하의 친구다. 이런 인물이니 그에게 총리직을 제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매번 거절했다. 전두환 때문에 대학총장직에서 쫓겨난 그였기에 화려한 복귀에 대한 미련이 왜 없었으랴. 하지만 그는 아닌 길을 가지 않았다.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역사의 신'을 두렵게 여겼다. '정운찬 카드'야 성공하든 말든, 정운찬이 평소 했던 약속만큼은 지켰으면 좋겠다. 그가 말했다. "인생의 가치는 자신의 몫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느냐에 달려 있다." 돈 없고,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핍박받거나 손해 보거나 삶을 힘겨워하지 않도록 몫을 나누는 일에 매진했으면 좋겠다. 

출처 : [동향과 분석] MB-정운찬 연대, 당장은 좋지만 불행한 결별로 끝날 수도, 오마이뉴스 09.09.03 15:52, 글 이철희 (rcmlee)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09498&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

 

 

변절이야 시간과 공간이 부여한 사적 개인의 특별한 자유이니 배신감이야 들더라도 남들이 뭐라 할 필요는 없겠지만, 만약에 변절자가 변절의 곡절을 변호해낼 공적 설득력을 얻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변절 이전의 모든 과거는(과거의 발언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전락하여 한 개인의 인생을 모조리 부정하는 치명적 행위가 된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는 있겠다. 행여 바보도 변절도 위선도 아니라면, 위선과 짝꿍을 이루는 -지식인들의 고유한 속성인- '순진'이라는 단어가 남는다. 불타는 조국애와 학문적 사명감으로 '호랑이 굴'도 마다않는 용기야 훌륭하지만, 그 소굴의 성격과 주변역학을 고려하지 않은 도전은 무모하거나 순진한 것으로 전락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순진함이 스스로에 위상에 대한 과신에서 온 것이라면, -이 또한 지식인의 한 속성 이겠지만- 그것은 힘-권력 앞에서 비굴해지기 십상인 엘리트의 허망한 오만에 불과할 것이며(특히 그의 교육관은 엘리트 중심주의 라던가...), 결국은 엘리트가 세상을 이끈다고(혹은 바꾼다고) 믿는 과대망상이 낳은 결과이다.

 

이 모든 경우 중에서 내가 도박으로 방점을 찍어두고 싶은 단어는 '위선' 이다. 애초에 그는 '장미'가 아니였었기에 그의 선택은 엘리트적 오만에 기인하는지는 몰라도 순진한 것은 아니며, 어쩌면 스스로의 가치관에 상당히 걸맞는 순리에 따랐다고 보여진다(자신의 경제철학은 mb의 그것과 안 다르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소위 민주진보세력들이 그를 '우리편'이라고 믿게했던 그의 지난 말씀들은, 선택된 엘리트 기득권 지식인이 건전해 보이는 도덕성으로 위장하여 뱉아냈던 위선적 설교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여진다. 한마디로, 배신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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