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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2
    500명의 용산 / 40만의 명동
    tnffo

500명의 용산 / 40만의 명동

다들 다음주 토요일 '10만 국민 대회'를 기약한 때문인지, 2월 21일 토요일 '용산 추모 대회'에는 500여명이 모였고, 경찰의 강제해산 과정에서 영정사진이 깨지고 경찰에게 짓밟혔다는 소식이다. 사건의 직접적 당사 가족이 아닌 누가 그 아픔과 분노를 감히 실감할 수 있을까만, 그들의 고립과 관심에서 멀어진 처지가 안타깝고 미안하다. 토요일이라 블로그들도 한산하기만 하던데, 다들 어디로 가고 고작 500명만이 모여 그들과 함께했다는 말인가! 공권력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공권력에 무시되고 괄시될 만한 숫자만을 남기고 모두들 떠나버린 무관심이 낳은, 경찰의 마구잡이 행동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며칠 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임한 조문객의 행렬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그 숫자가 40만명에 육박한다는 소식이 겹쳐진다. 감히 이런 불경한 비교를 한다는 꾸짖음이 옆에서 들리는 듯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남은 자들의 것이지 떠나신 분의 것은 아니리라는 믿음으로, 간략히 두 기사를 함께 엮어둔다. 

 

▲산산조각이 난 영정사진 (사진=손기영 기자) 

 

경찰, 유족 폭행 영정사진 짓밟아 / [현장] 5차 추모대회 원천 봉쇄…시민들 "어떻게 이럴 수가"

(...) 경찰의 봉쇄를 피해 청계광장에서 프라자호텔 앞으로 집결한 유족들과 시민 500여명은 추모대회 개최가 어렵다고 판단한 뒤, 오후 5시 10분 행진을 시작했다. 김태연 범대위 상황실장은 “청와대로 행진하면서,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시민들에게 전하겠다”며 항의했다. 하지만 추모행진은 채 5분도 되지 않아, 서울시청 앞 광장 부근에서 봉쇄되었다. 전경 500여명은 행진에 나선 참석자들을 둘러 샀고,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거칠게 항의했다. 이어 경찰이 참가자들을 인도 쪽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양 측간에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전경들은 유족들이 들고 있던 영정사진을 방패로 밀쳤고, 나무 프레임으로 된 액자와 유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또 영정사진이 바닥에 떨어지자 군화발로 마구 짓밟기도 했다. 한 전경은 고 양회성씨의 영정사진을 빼앗아 바닥에 내팽겨 쳤고, 유족들은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통곡했다. 이에 흥분한 고 이성수씨의 아들 상흔군이 거칠게 항의하자, 전경 3~4명은 그를 대오 안으로 끌고 들어가 안면 주변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또 고 이상림씨의 아들 성연씨는 전경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어지러움 증과 구토증상을 호소한 뒤 실신해 응급실로 긴급 이송되었다.

(...) 연좌시위를 마친 추모대회 참가자들은 다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경찰 봉쇄에 막혀 시내 일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은 저녁 7시 45분 경 명동 ABC마트 앞에 집결해, 정리 집회를 열었다. (...) 이날 추모대회 참가자들은 정리 집회를 마치고 저녁 8시 대부분 자진 해산했지만, 일부 시민들은 밤늦게까지 종로 탑골공원 등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편, 범대위는 오는 28일 오후 ‘10만 국민 대회’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모을 예정이다. (손기영 기자, 레디앙, 2009년 02월 21일 (토) 22:44:09, 전체기사의견(0))

 

▲ 2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릴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제5차 범국민추모대회'가 경찰들에게 원천봉쇄 되자 서울시청 광장에 모인 용산 철거민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다가 경찰들에게 둘러쌓여 있다. (ⓒ 유성호 출처 : 부서진 희생자 영정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 오마이뉴스)

 

‘정신적 지도자’ 잃은 상실감이 ‘국민장’ 승화   
 

...파 성철스님 입적 이후 처음ㆍ“현 지도층 도덕적 리더십 부재 실망감 표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는 추모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며 국민적 추모 신드롬을 ... ...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며 국민적 추모 신드롬을 낳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에만 조문객40만명에 육박하면서 김 추기경의 장례식은 사실상 ‘국민장’으로 승화되고 있...    [사회/사회 일반] 2009.02.19. 23:09:06

조문객 39만명 ‘끝없는 추모 물결’     

...정진석 추기경 교황특사 자격 입관식 집전 김수환 추기경 선종 4일째인 19일에도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은 조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 추기경의 마지막 모... ...입관식 집전 김수환 추기경 선종 4일째인 19일에도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은 조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시민들이 새벽부...

[사회/사회 일반] 2009.02.19. 18:07:46 경향

 

김수환 추기경 '사랑 바이러스' 퍼트리고 영면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한국 천주교 지도자이자 사회의 큰 어른으로 ‘모든 이들을 위하여’ 헌신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은 이런 메시지를 남기고 그가 평생 믿고 의지했던 하늘나라로 떠났다.

김 추기경 선종 닷새째인 20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주교단과 사제단, 한승수 국무총리와 주한 외교사절, 신자 등 성당 안팎에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 추기경과의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장례 미사가 봉헌됐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이름으로 집전한 장례 미사는 오전 10시 참석자들이 입당성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를 부르면서 엄숙하게 시작됐다. 미사는 성경의 지혜서와 요한의 서신, 마태오의 복음 등을 읽고 정 추기경의 강론을 듣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고별식 순으로 1시간 40분 가량 진행됐다. 정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김 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빛과 희망이 되어주었고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의 ‘사랑과 평화의 사도’였다”며 “사랑과 나눔을 우리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유산으로 남겨주어 이 슬픈 상황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추모했다. 정 추기경은 고별식에서 “장례 미사에 모인 김 추기경의 친족과 모든 분에게 주님의 힘과 위로에 대한 보증으로서 진심으로 사도의 축복을 보내드린다”는 교황의 위로 메시지를 대독했다. (...) 장례 미사 후 김 추기경의 관은 경기 용인의 천주교 성직자 묘역으로 운구됐으며, 오후 1시30분부터 정진석 추기경, 윤공희 대주교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관을 땅에 묻는 하관 예절이 진행됐다. 하관 예절은 흙을 관 위에 덮기까지 30분이 걸렸을 정도로 간소하게 진행됐다. 김 추기경은 이제 영면에 들었다.

김 추기경은 1969년 한국의 첫 추기경으로 임명된 후 개발에 밀린 사람 등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섰으며 1970~80년대의 격동기에는 민주화운동을 후원한 사회의 큰 어른이었다. 30년간 봉직한 서울대교구장에서 1998년 은퇴한 그는 지난해 건강이 나빠져 입원 치료를 받던 중 16일 향년 87세로 선종했다. 김 추기경 선종 후 명동성당의 빈소를 찾은 신자와 일반 시민의 추모 행렬은 40만명에 달했으며, 각막 기증 소식에 장기 기증자가 줄을 잇는 등, 고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놀라운 사랑과 화해의 정신적 메시지를 주었다. (한국아이닷컴 고광홍 기자, [김수환 추기경 영면] "서로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경제한파에 지친 국민 가슴에 '따듯한 가르침' ⓒ 인터넷한국일보, 입력시간 : 2009/02/21 03:03:52)

 

* 아마도, '사랑이란, 너무나 소중해서 혼자서만 가슴 속에 꼭꼭 묻어두고 곱게 간직하다가 죽을 때 쯤 장기 기증 등으로나 증명해 보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으나 사는 게 아닌 소외받고 가난한 사람들의 옆에서, 설령 별 뽀족히 해줄수 있는 게 없더라도, 함께 손 잡고 있어주고, 때로는 투쟁으로 실천으로 쟁취해가는 과정을 일컫는다'는 것이 고인의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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