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오래된 여행가방

오래된 여행가방   -김수영

 

스물살이 될 무렵 나의 꿈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여행가방과 펠리컨 만년필을 갖는 것이었다. 만년필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낯선 곳에서 한번씩 꺼내 엽서를 쓰는 것.

 

만년필은 잃어버렸고, 그것들을 사준 멋쟁이 이모부는 회갑을 넘기자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아이를 낳고 먼 섬에 있는 친구나, 소풍날 빈방에 홀로 남겨진 내 짝 홍도, 애인도 아니면서 삼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은 남자,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 삼촌...

 

추억이란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 잊고 있다가 문든 가슴 저려지는 것이다.

 

이따끔 다락 구석에서 먼지만 풀썩이는 낡은 가방을 꺼낼 때마다 나를 태운 기차는 자그락거리며 침목을 밟고 간다. 그러나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주워온 돌들은 어느 강에서 온 것인지, 곱게 말린 꽃들은 어느 들판에서 왔는지.

 

 어느 외딴 간이역에서 빈자릴를 남긴 채 내려버린 세월들. 저길이 나를 잠시 내려놓은 것인지, 외길로 뻗어있는 레일을 보며 곰곰 생각해 본다. 나는 혼자이고 어디로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읽다가 유독 눈에 들어오던 시다.

꽤 오랜시간을 버스에 쭈구리고 앉아있다가 문득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도 그냥 곰곰 생각해본다.

스물 넷. 난 갖고 싶고 하고 싶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혹여 세월이 훌쩍 흘러 되돌이켜볼 때 세월의 무게에 가벼워지고 문득 가슴이 저려질 추억조차 만들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춘천행 기차를 타고 가다 지나던 조그마한 간이역이 생각났다.

언제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