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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동막골

단풍노이(丹風露離)님의 [웰컴투 동막골] 에 관련된 글. 

  날씨마저 좋은 광복절날, 예정에 없던 영화 한편을 보게 되었다. 웰컴투 동막골.

정말 충동적으로 영화표 한 장을 사들고, 논픽션을 주장하며 정말 오랜만에 박수를 받아봤다는 광고 카피와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대체로 광고를 믿지 않는데, 한편으로는 말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 얼마나 잘 만들었나보자란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딴짓하다가 영화 시작시간을 놓치고 한 십분 쯤 늦게 들어가서야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초반 3분의 2는 정신없이 웃기다가, 마지막 3분의 1은 슬프다는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증명이나 하듯, 내 옆자리 남자는 꺅꺅 거리며 웃더니만 나중에는 훌쩍훌쩍 울고 있는게 아닌가.

이렇게 경쾌한 사람이 있을수가!

 

  영화의 내용과 결말은 충분히 상상한 그대로였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동막골은 아이들처럼 막살라는 이유로 붙여졌을 뿐 그것이 언제부터 누가 그렇게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수 없다. 애초부터 그렇게 불려졌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자연 그대로의 공간인 것이다. 물론 이 공간은 누구도 들어오고 나갈 수 없는 폐쇄적 의미로서의 자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을 사람도 도시가 궁금해서 나가기도 하고, 외지 사람이 들어와 살기도 하는 개방적 공간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순수 그 자체로 만들어 버리는 신비한 힘이 작용한다.

 

  그 곳에 북쪽군인과 남쪽군인 그리고 연합군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군대라는 곳을 벗어난 순간부터 개인으로 동막골에 동화되어 간다. 물론 그렇게 동화되기까지 과정은 한국분단의 오랜된 역사처럼 금방 치유될 수 있는 골은 아니다. 인민군과 한국군이라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양편으로 무기를 겨누며 대치하는 몇 일을, 감독은 확연한 대립구조로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이념의 골은 혹독한 낮 열기와 비바람, 그리고 결국엔 졸음이라는 자연 생리현상을 통해 꺽이고, 감독은 이 과정에서 그들의 행동을 희화화하고 동막골 주민들의 순수성이 돋보이는 것으로 장면을 처리했다.

 

  그리고는 이들이 단합하게 되는 최대의 계기. 그것은 마을 사람들의 생존까지 위협할 멧돼지의 처지로 설정한다. 이 거대한 멧돼지가 공격하는 장면을 느리게 처리함으로써 자칫 별 의미없이 지나갈 수 있을 장면을 상당히 의미있게 진행시켰고, 이는 결국 동막골을 생존의 위협인 전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외지인들이 단합해서 지켜내리라는 결말에 대한 일종의 복선을 부여한다.

 

  전통적 소재 역시 적절히 활용했는데, 스미스를 구하고 동막골을 전략 요충지를 활용하기 위해 파견된 군대를 공격한 나비가 바로 그 것이다. 나비는 예로부터 죽은 사람의 혼이 부활한 것으로 사용되는 소재이다. 이는 윤흥길의 <장마>라는 소설에서 한국전쟁 당시 죽은 인민군인 삼촌의 현신으로 구렁이가 나타난다는 것과 유사한 설정이다. 나비는 민족의 혼을 상징하고, 이 혼이 모여 떼를 이루어 동막골을 지켜내기 위해 군대를 공격한다. 약한 날개이지만 부딪히고 깨져서 지켜내리라는 민족 정서가 보여지는데, 이 나비떼가 부대를 모두 죽이지 못한 것으로 나머지는 산자들의 몫이기도 한 것이라고 감독은 말한다.

 

 

 

  이 영화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요인은 이런 것들이었다.

때묻지 않고 순수성으로 대변되는 동막골 주민들의 말과 행동.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터지는 웃음.  여기에 동막골 주민의 강원도 사투리와 인민군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북쪽 지방의 사투리가 자아내는 언어의 묘미들. 중간중간 "머리에 꽃 꽂았습네다~"라는 말 한마디에 광년이로 판명된 강혜정이 언덕을 뛰어가다 넘어져 장면에서 사라져버리는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주는 것들.

 동막골 주민들 하나하나가 각기 개성을 지닌 인물들로 나오는데, 모두 보고 있으면 보는 사람을 웃음짓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아,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소자, 어마마마를 지켜드릴 것이옵니다"라고 또박또박 말하던 어린 세자가 어느새 커서 강원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도 묘사해가는 아역 탤런트의 모습도 꽤 인상깊었던 것 같다. "성은 스, 이름은 미스래요~"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칭찬해 주고 싶었던 것은 까무러치게 웃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울음을 자아내지도 않는 진행방식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자칫하면 심각해질 수 있는 장면들을 감독은 특유의 상상력과 영상으로 표현해냈다. 그것은 실로 그 순간 영화관 모두를 영화에 몰입할 수 밖에 없도록 관객을 사로잡았으며, 난 일순간 적막해진 순간에야 비로소 이 영화의 묘미를 깨달았다. 이때까지 훌쩍거리던 사람조차도 코를 들이쉬지 못하도록 숨 죽이며 몰입하게 만드는 능력. 그건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게 만드는 장면이 백퍼센트 개뻥은 아니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별로 머리를 굴리지 않고도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기억되면서도,

뻔한 내용과 결말에도 가슴 찡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난 것 같았다.

웰컴투 동막골, 머리식힐 때 볼만한 영화인 것 같다.

 


덧글) 음악을 하사이시 조가 맡았다니,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매이션을 좋아하는 편이긴 한가보다. 역시, 애니매이션의 세계는 대. 단.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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