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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06
    류미례, <엄마...>(6)
    레니
  2. 2004/11/03
    디스코디아(7)
    레니
  3. 2004/10/24
    엑설런트 어드벤쳐(9)
    레니
  4. 2004/10/12
    우리들의 노래(2)
    레니
  5. 2004/10/09
    인력자원부(4)
    레니
  6. 2004/09/05
    엘리펀트(6)
    레니
  7. 2004/07/31
    화씨 911, 마이클 무어
    레니

류미례, <엄마...>

드디어!!!

"하이퍼텍 나다"에서 알엠님의 신작-_- <엄마...>를 봤습니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지만 동숭아트센터는 너무 오랜만에 가는 거라

평소대로-_- 길을 잃는 바람에 겨우 영화 시작에 맞춰 들어갈 수 있었죠.

6시 50분에 시작하는 것을 보고 연달아 최양일의 <피와 뼈>를 봤는데

다 보고 나오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요.ㅎㅎ

 

일단 영화를 보고 나서 놀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영화가 재미있었다는 점!

사실 별로 재미는 기대하지 않았었는데(핫 알엠님 쏘리~)

여러 번 관객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야옹이님도 언급하셨던 "푸른영상" 관련 부분에서는

어떤 단체-_-가 생각나서 계속 혼자 좋아하며 웃었죠.ㅋㅋㅋ

 

산오리님과는 좀 다르게 가족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한 가족을 중심으로 가족사와 함께 다큐가 진행되긴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어머니와 딸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언니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뤄지게 된 것은

셋째 언니가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자신과 자신의 딸들 사이의 관계와 중첩시키면서

동질성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구요.

알엠님이 하은이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이끌어가야 하면서도

육아라는 무거운 책임을 동시에 져야만 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와

어머니는 어머니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적으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결핍을 느끼는 딸의 감정이

알엠님이 느끼고 있는 현실이며,

이러한 모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엄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알엠님, 맞나요? ㅎㅎ)

 

영화 끝 부분에서 셋째 언니는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 자신과 딸들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눈물짓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도 하마트면 눈물 나올 뻔 했어요.

어쩌면 저는 느끼지 못할 관계이지만

왠지 셋째 언니가 말하려는 바가 무척이나 와 닿아서.

 

영화관을 나올 때에는 정말 잘 만든 다큐라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답니다. :)

알엠님, 담에 만나면 싸인 해 주세요.ㅋㅋㅋ



<엄마...>를 보면 다들 그렇겠지만

나의 가족이 생각났다.

 

난 지금 외할머니와 여동생 부부-_-와 함께 살고 있다.

부모님은 외국에 나간지 4년쯤 되어서 현재 멤버는 4명이다.

 

어릴 적에는 나와 정반대로

동생과 엄마는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에 포스트를 쓴 적이 있지만

동생은 어릴 적에 오빠인 내 존재로 인해 많은 것을 희생당한 경험이 있고

그것에 대해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도 역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이후 동생과 나의 권력 관계는 역전되었고

지금와서는 그렇게 엄마에게 서운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나와 동생을 키울 때 엄마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회상할 때가 많으니-_-

 

그러고보니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였었는데

출산 이후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었다.

2년 전인가에 엄마한테 일 포기한 거 후회하지 않냐고 물어봤었는데

확실하게 후회한다고 얘기하지는 않았으나

말 속에서 뭔가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다.

 

외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외할아버지를 잃고 그 후 계속 혼자 지내셨다.

혼자의 힘으로 엄마와 외삼촌을 키워내고

지금은 나름대로 풍요로운 노년 생활을 보내시는 듯 하다.

외할머니는 노인정과 게이트볼 모임, 교회 등의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데

가끔 정체모를 할아버지에게 걸려오는 전화에서 작업-_-의 포스-_-를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남자친구 아니냐고 할머니를 놀리는데

뭔가 남사스럽다고 생각하는지 극구 부인하시곤 한다.

할머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을 굉장히 어색해 하고

그럴 때마다 너무나 안타깝다.

 

가끔 부모님이 한국에 들어오실 때

외할머니-엄마-동생이 모여앉는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들 세 모녀가 둘러앉으면 서로 잔소리를 하며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속에 들어가 있으면 정말 재미있다.)

그러다 이 그룹에 아버지가 참여하게 되면

발언권은 아버지에게 넘어가고

대화의 중심은 아버지가 꺼낸 화제로 정리된다.

할머니도, 엄마도, 동생도

이런 관계가 너무나 일상적이라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 같단 느낌이다.

이럴 때에도 너무나 안타깝다.

 

동생은 올해 취직을 했다.

아직 가족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는 아이를 가질 것이 분명하다.

그 때 동생은 어떤 선택을 할 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엄마...>에서 보여주는 고민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아마 주저없이 <엄마...>를 보라고 추천해 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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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디아


캐나다의 자유주의적 전통이 어떤 것인지 보인다.
XP나 위키위키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캐나다에는 자유주의자들이 넘쳐난다.
초반부터 논쟁의 화두가 되었던 "자유로운 연설의 권리"부터 시작하여
(아론은 이 권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
건물 로비 곳곳에서 얼굴을 들이밀며 논쟁하는 학생들과
자유롭게 부스를 설치하고 정치활동을 펼치는 자치조직들을 보면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를 쉽게 드러내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는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학생회는 임원 회의로 보여지는 회의를 소집하여
단 한번의 표결을 거쳐 "힐렐"을 "활동정지"시키고 "자금동결"을 의결한다.
이 처사가 대내외에서 비판을 받자 학생회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내부의 의견 대립을 드러내는 결과만을 낳았다.
"팔레스타인인권연대"의 사미르는 TV 출연을 결심하지만 결국 이용당한다.
"힐렐"은 매우 "어른스러운" 방식의 대중정치를 수행한다.
활동정지가 결의된 이후.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게 된다.
유대교 축일 등을 이용해 유대인들의 단합의 계기를 만들고
학생회를 고소하여 법정으로 싸움을 몰고 간다.

그리고 탈정치화된 대중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엄청난 빅이벤트를 맞아 격렬한 논쟁과 대립이 있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우려한 것은 "대학의 이미지 실추"로 인한 피해였다.
학생회를 이끌던 "좌파"("lefty"라 나오는데. 사회주의자는 아니다)가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도
결국 이런 학내 분위기에 있었다.
콩코디아 대학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학생회 선거에 참여한 투표자 수는
30,000명이 넘는 학생 가운데 불과 5,000명이다.

또한 정치는 여전히 남성들의 몫이다.
학생회의 회장은 사빈느라는 여성인데.(이 이름을 찾느라 한참 뒤졌다)
당연히 화면에 많이 잡히고 중요한 위치의 인물로 그려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실제 카메라의 초점은 세 주인공에 맞춰져 있고
사빈느의 생각과 의견과 행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자치조직은 남성들에 의해 활동이 이루어지고
정치에 무관심한 학생들을 인터뷰할 땐 의례 여성이 등장한다.

인종주의는 당사자가 아니고서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유대인들의 자긍심. 팔레스타인인들의 증오.
텔아비브에서 터지는 폭탄과 가자 지구 상공에 뜬 헬기는
서로 바라보는 거울과 같다.

서로가 서로의 상을 만들어내고 이 상은 무한히 반복된다.
왜 그들은 다른 민족을 증오하는지. 왜 서로를 용서할 수 없는지.
당사자가 아니라면 정말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참 그러고 보니

노암 촘스키가 다큐 중간에 등장한다.

근데 무지하게 뻔한 말을 느릿느릿하는 바람에

약간 실망(뭘 기대한거야)

덧붙여.
Buck 65라는 힙합 뮤지션이 참여한 사운드트랙을 링크하려고 찾아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오피셜 사이트로 보이는 http://www.nfb.ca/discordia/index3.html
이 곳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단 전부 플래시로 된 사이트라는 점을 주의하시라. :)


* 덩야핑님의 텔아비브 폭발로 5인 사망 30인 부상에 뒤늦게 트랙백~

* 시와님의 {[sidof2004] 이스라엘을 '느낀' 두편의 영화}에도 아주 늦게 트랙백~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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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설런트 어드벤쳐

아주 어릴 적(초등학교 다닐 무렵?)엔

난 문화적인 혜택을 꽤 못 받고 자랐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에서 그런 면이 컸었는데

그래서인지 당시 못보고 지나갔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언제나 있었다.

 

애니메이션이야 요즘 구해서 본 것들이 많지만

당시 상당히 유행했지만 결국 보지 못한 영화는 몇 개 있다.

물론 지금와서는 거의 다 잊었지만

아직 기억하는 영화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피라미드의 공포"라는 호러 어드벤처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엑설런트 어드벤쳐"이다.


 

89년작이었는지 오늘에야 알았다.

아 이 넘쳐나는 촌스러움;;;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사람의 꿈")



지난 일요일. 간만에 집에서 쉬게 되어

소파에 뒹굴거리며 리모컨을 이리저리 눌러대던 중

케이블 TV의 한 채널에서 "엑설런트 어드벤쳐"를 발견했다.

 

운좋게 처음 부분에 캐치하게 되어 거의 전체를 다 보게 되었는데

어릴적 환상이 그런 면이 좀 있지만

내용은 위의 포스터만큼이나 촌스럽기 그지 없었다.

 

약간 바보스러운 빌과 테드. 이들은 밴 헤일런과 밴드를 같이 하길 꿈꾸는 고딩인데

낙제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역사 수업 발표을 앞두고서 운좋게도(!!!)

공중전화박스ㅡㅡ;;;의 가면을 쓴 타임머신을 얻게 되고

과거 여행을 하면서 자기들이 아는 역사적인 인물들을 현재로 데려온다는 내용이다.

결국은 이 유명 인사들의 도움으로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는 해피 엔딩인데.

스필버그만도 못한 이 뻔한 스토리는 논외로 하더라도

몇 가지 흥미가 가는 점이 있었다.

 

일단 이 영화. 지나칠 정도로 건전하다.

나름대로 틴에이저 영화인데 그 흔한 "F" word 하나 안 나온다.

기껏 한다는 얘기가 "Exellent !!!"ㅡㅡ;;

게다가 역사 수업의 발표를 위해 모험을 한다니.

감동이다. 그 시대 고딩들은 다들 그렇게 건전했나?

 

아이들은 건전하지만 감독의 사상은 제국주의적이다.

빌과 테드가 납치해 오는 역사적인 인물들 중에 아시아인이 단 한 명 있다.

바로 징기스칸인데. 이 인물에 대한 묘사가 거의 선사시대 원시인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을 때 하고 게다가 얼마나 호전적인지.

당연한 얘기지만 말도 안 통하는데

나폴레옹이나 프로이드 등이 자국어를 하는 것에 비해

징기스칸이 하는 말은 언어가 아니라 "소리"다.

참. 징기스칸을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뭐하더군.

 

이들의 우정은 정말 놀랍다.

첨 보는 애들이 나타나 다짜고짜 이상한 기계에 태워 역시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는데

금새 친구가 되어 빌과 테드의 발표를 도와준다.

타임킬링 영화를 보면서 스토리의 개연성을 따지는 건 물론 사치지만

홍콩 느와르에 나오는 "우정"의 황당함만큼

이들의 우정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아 80년대의 우정이란.ㅡㅡ;;;

 

여담이지만

주인공 중 하나인 테드의 얼굴이 왠지 낯이 익어

영화 시작부터 누구지누구지 하면서 봤는데

앗 키아누 리브스가 아닌가;;;

키아누 리브스의 바보 연기. 꽤 자연스럽다.

"스피드" 찍기 전에 고생 많이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

 

 


역시나 간만에 들어보는 이름 :)
♪ Van Halen - Ain't Talkin' 'Bout Lo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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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노래

주의 : 스포일러성 포스트입니다.

 


 

역시나 지후님의 영화 소개를 통해

봐야겠다고 결심한 작품.

(어느 정도 신뢰가 생긴 상태라 말이지ㅡㅡ;;)

 

역시나 영화평은 지후님의 글만큼 쓰진 못하겠고

개인적인 감상이나.



미국, 그것도 뉴욕의 브룩클린.

세 명의 유색인종 소녀들의 이야기.

학교에서 석면이 검출되어 폐쇄되게 되고

그들이 속해있던 학내 브라스 밴드인 재키 로빈슨 밴드의 퍼레이드를 마지막으로

세 소녀들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인력자원부"와는 다르게

이 영화에는 결정적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순간은 없다.

하지만

세 소녀들이 같이 어울려 다니다가

마리아가 미혼모로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하고

역시 미혼모로서 아이를 키우던 엘레노아가

아이와 함께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라니샤는 다른 학교에 다니기로 결정하고

결국 서로의 가야 할 방향이 갈라지게 될 때까지.

 

매 순간, 장면마다 그들의 감정이 충실하게 느껴지는 것이

"인력자원부"와 다른 이 영화의 특징이다.

 

 

이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마리아가 아이의 아버지격인 터렐에게 임신한 사실을 알리고

그 문제에 대해 같이 얘기하려 하는 장면이다.

터렐은 처음에 졸업하기 전에 "결혼"은 안된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내" 아이를 지우는 것은 안된다고 잘라 말하고 대화를 단절하는데

뭐라 쉽게 얘기하긴 어렵지만

임신이나 출산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에 대한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없이 아이를 키우면서 또 한 아이를 임신한 엘레노아가

투신자살하게 된 사건(직접 나오지는 않는다)도 인상적이었다..

아파트 앞에 놓인 영정(이 단어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앞에서

꽃을 바치는 세 소녀와 어느새 몰려든 몇몇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러한 죽음에 대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아픔에 공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밴드부의 활약상이 스토리의 중심이지 않을까 했는데

비록 그건 전혀 아니었지만

퍼레이드에서 보여지는 밴드의 흥겨운 연주와

함께 즐거워하는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쩐지 낙관적으로 보여 괜히 기분이 좋았다.

 

음.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땐

어떤 내용으로 포스트를 써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쓰고 나니 뭔가 많이 나오네.

 

참 특이하게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새삼 흐흐.

스페인어만 번역되어 자막으로 나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

 

이번엔 잊지 말고.

지후님의 our song / 짐 맥케이에 트랙백을 던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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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자원부

주의 : 스포일러성 포스트입니다. :)

 

 

솔직히 첨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후님의 영화 소개를 보고

특히 켄 로치와 비교한 내용이 흥미를 끌어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하게 되긴 했는데.

일단 들었던 느낌은 "브래스드 오프"와 비슷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탄광 노동자의 일상 속에서 나름대로의 감동을 그려내는

뭐 그런 내용.

 

그래서

입사한 이후 아마도 처음으로 팀에서 가장 먼저 퇴근을 해서

서울아트시네마로 향할 때에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에 대한 평은 지후님의 글 이상 쓸 자신이 없고

그냥 개인적으로 느꼈던 감상만 늘어놔 보면.

 

감동적이다.ㅡㅡ;;

"브래스드 오프"의 감동이

작위적이고 싸구려라 생각되었던 것과 다르게

가슴이 찡하고 눈물 날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사실 대단한 연출 기법을 쓴 것도 아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반복적으로 페이드인/페이드아웃 되면서

줄거리대로 흘러가는 평범한 영상임에도

캐릭터나 주변 인물의 사소한 동작 하나에서도

강하게 느낌이 온다.

와. 연출을 잘한다는 게 바로 이런거로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특히 주인공 프랑크가

노조가 주도하여 파업에 대해 논의하는 체육관에 들어서려다

뒤돌아 나가 우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뻔. 크으;;;

 

영화에서 나오는 프랑스(아마 서유럽이겠지)의 조합운동의 현실이

우리와 너무 달라 보여서 이질감이 가끔 들기도 했지만

파업을 결의하고 공장점거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힘은 역시 감동적.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이면서 순종적인 노동자인 장 클로드와

관리자 견습생으로 들어왔다가 졸지에 노조 활동가가 되어버린 프랑크의 설전이

(사실 설전이라기보다 프랑크가 일방적으로 쏟아붇는 형국이었지만)

더욱 찡한 장면이었다.

 

사실 좋았던 것만큼이나 별로였던 것들도 많긴 한데

(평면적인 캐릭터들, 가부장적인 노동자 가족 문화, 개연성의 부족 등)

이런 결점들을 다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 감동이다. 한 번 더 보고 싶을 정도로.

 

아아 "우리들의 노래"도 보고 싶어져 버렸다.ㅡㅡ;;

체력이 허락한다면. 이번에도 결의를 세워봐야지 흐흐.

 

자꾸 트랙백하는 걸 잊어먹네;;;

지후님의 인력자원부 / 로랑 캉테에 트랙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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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jineeya차마 두눈 뜨고 볼 수 없었던 하늘...- 영화 [엘리펀트] 관람기 -에 트랙백.

 

보고 싶었던 영화 "엘리펀트"를 드디어 관람.

일반적으로 영화를 먼저 보고 영화평을 읽는 것이 순서인데,

이 영화는 "볼링 포 컬럼바인"과 비교한 영화평이 눈길을 끌어

영화평을 먼저 보고 대략의 스토리까지 알아버린 후 보고 말았다는.

 




이미 대략의 줄거리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영화의 시작과 함께 과연 누가 총을 쏜 사람일까...를 찾는

마치 미스테리 스릴러를 보는 기분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첨엔 첫 부분에 나오는 "존"과 "일라이어스"가 그 "두 명"인 줄 알았다.

지금도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잖아;;;)

 

하지만 이런 기분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는데,

아마도 되도록 담담하면서 자세하게 드러나는 학교의 일상과

마치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와 "메멘토"를 합친 것 같이

개별적으로 진행되면서 중첩되는 시간과 인물-사건 구조,

결정적으로 치밀하게 연출되었다고 생각되는 주위의 섬세한 소리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영화에 몰입하게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로 매우 감명깊게 보았던 것들은

인물들의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따라다니는 카메라,

(스크린에 꽉 차게 배우 옆 얼굴이 나오는 건 그리 흔하지 않은데)

인물에 대한 극단적인 포커싱을 하다가

순식간에 아웃포커스하면서 주위의 일상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연출 기법,

비슷한 효과이지만

학교의 일상을 다 표현하려는 듯 섬세하게 들리다가

역시 순식간에 인물에게 집중되는 소리들,

"엘리제를 위하여", "월광 소나타",

그리고 그 "두 명" 중 한 명의 방에 그려진 "코끼리" 그림.

(이 장면에서 "아 그렇군~"하는 느낌이 후훗)

 

구스 반 산트의 전작인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와 비교하면

휴머니즘적인 시각을 제외하고 너무 스타일이 달라

영화를 보고 나올 때 필모그라피를 보면서 약간 놀랐다.

 

사실 이 영화에서 클라이막스와 결말은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나타나는 학교 안 인물들의 일상이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더욱 가슴아프게 하는 듯.

그들이 "평범했기에" 더더욱.

 

근데 그 "두 명" 중 하나가 말한 "참으로 더럽고 화창한 날이로다"란 말은

어디선가에서 인용한 건지 궁금하네. 왠지 낯이 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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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911, 마이클 무어

 

주중에 "화씨 911"을 보고 또 한 번 느껴버렸다.

 

"화씨 911"은 마이클 무어의 전작인 "볼링 포 컬럼바인"보다 "웃기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 하나 바보 만들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마이클 무어가

이번에는 그 대상을 (잘 알려진 대로) 원수 지간인 부시로 잡았으니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잡은 反부시 정서에 근거하여 보면 매우 "웃기다".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도 그랬지만 마이클 무어의 다큐는 좀 산만하다.

주제가 이리저리 바뀌면서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데,

"화씨 911"도 역시나 가뜩이나 자막이 많아 정신이 없는데다

주제가 계속해서 필사적인 도약을 해 대니

영화관을 나올 때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도 이번엔 좀 나은 게

이미 반전이라는 주제를 알고 영화를 봤었고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나레이션까지 나와줘서

마이클 무어가 무엇을 얘기하려 했는지 좀 알 것 같다.

("볼링 포 컬럼바인"의 경우에는 마이클 무어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서로 말이 달라 토론이 벌어졌던 기억이 있다.)

 



뭐 "화씨 911"의 주제야 잘 아는 내용이라 그다지 생각을 더 해 볼만한 것은 없지만

또 다시 머리 속에 든 생각은 자본주의와 저항 간의 관계이다.

 

"화씨 911"은 상업 영화다.

물론 할리우드 거대 자본이 개입하진 않았지만

제작과 배급을 거치려면 상업적인 영화 제작 시스템을 거쳐야만 한다.

지지리도 못사는 플린트 시 출신인 마이클 무어라고 해도

자본주의적 착취에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저항의 관계에 대해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근데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RATM을 생각하면 좀 얘기가 다르다.

이들 노래는 자본들의 입장에서 신경쓰일 만하지 않나?

그럼 좀 경계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너무나 당연하게 소니-컬럼비아와 RATM은 이들 노래를 상품화하고 잘 팔아먹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저항을 상품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저항이 자본주의를 이용하는 것인지.

난 전자에 100만표를 던질 용의가 있다.

(그리고 사실 후자는 좀 말이 안된다.)

 

제니스 조플린의 "Mercedes Benz".

자본주의 물신성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벤츠는 이 노래는 자사의 CM으로 사용했다.

아무리 저항한들 자본은 이를 너무나 당연하게 상품화한다.

역시 자본에 독립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대안인가? 난 잘 모르겠다.

 

"화씨 911"을 보고 난 후 가장 안 좋았던 것은

잘 만든 저항 상품을 구입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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