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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을 그어버린 아이

거의 4년만에 한 친구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20대의 학생운동 조직활동가였던 이 친구는

해군 소위가 되어 다시 눈 앞에 나타났고

군에서 자신의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토로하다가

결국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친구가 사라진 후 술자리에서는

그 친구에 대한 품평(...을 가장한 뒷담화)이 이어졌는데

(역시 술자리는 끝까지 남고 봐야 한다-_-)

저 자식은 술만 먹으면 저 얘기만 한다는둥

거기서 성질은 못 내면서 여기와서 이러는 게 이해 안된다는둥

보나마나 군에서는 모범생임이 틀림없을 거라는둥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충분한-_- 여러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난 대단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말았는데

작년인가 (아마도 연애문제로 인해) 그 녀석이 손목을 긋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의 분위기상

이런 종류의 이야기조차도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_-

미친 거 아냐로부터 시작해 아마도 쇼였을 거라는 얘기까지

즐거운 뒷담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살면서 죽고싶단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만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렇게이렇게 죽어야지 하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나도 진심으로 손목을 그어보고 싶단 생각을

이제까지 단 한 번 한 적이 있었는데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오른쪽 손목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그어버려야겠다는 (지금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그 필요성은 생각만으로 그쳤지만

죽음이라는 존재가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순간

그 때까지 가지고 있던 온갖 관념적인 죽음의 이미지들,

편안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뭔가 구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들은

벌어진 손목의 틈 사이로 배어나오는 검붉은 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제외하고는 모두 날아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뭔가 이상한 놈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_-

여튼 손목을 그어버린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로 한 판의 장렬한 쇼였는지 지금와서 알 수 없지만

피투성이가 된 손목을 바라보게된 절실함만은

아마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해라는 방법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자신의 몸을 학대하여 타인에게 가하는 아이러니한 폭력.

그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는데...

 

오랜만의 허클베리핀이어요. :)
♪ 허클베리핀 - 갈가마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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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FEVER>

박희정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머리 속에 새겨진 것은 (이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호텔 아프리카>보다 <피버>의 영향이 크다. 영화를 볼때도 그렇지만 나의 경우 배경이 외국인 작품에는 쉽게 자신을 동일화하기 힘들어 한다. 아직 제대로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긴 하다만, 캐릭터나 스토리 상으로 <호텔 아프리카>가 현재까지의 <피버>보다 훌륭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호텔 아프리카>에서 <피버>만큼의 강렬한 동질성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호텔 아프리카>가 감동적이지 않은 작품이란 얘긴 아니란 거...알고 계시겠죠? ㅎㅎ)

 

 


<호텔 아프리카>가 제목 그대로의 "호텔 아프리카"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스토리였던 것처럼, <피버>역시 "피버"라는 대안학교에 찾아오게 되는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초반의 스토리는 "형인"이 "피버"로 찾아오게 되는 과정이 중심이 되었으나, 현재는 "지준"이 "아립"과 "아인"과 맺는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실 스토리만 보면 <피버>는 질풍노도의 시기-_-를 보내는 틴에이저의 이야기로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을 수도 있다. 다만 <피버>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데에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코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사소한 대사들이고 사소한 아이템들이고 스토리 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닌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것들이 작품 전체에 퍼져 특별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 대사에 난 200% 공감한다. @_@

 

<피버>의 가장 큰 장점은 절망 속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발견하는 방식을 경쾌하지만 진지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여기 나오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우울한 인생들이지만 어떻게든 의미를 발견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작품 밖에서 바라보는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스스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피버>는 분명히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덕분에 바나나우유를 좋아하게 되었다.

 


<호텔 아프리카>의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쿨함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이, <피버>의 캐릭터들도 쿨한 인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초반부의 <피버>는 그런 쿨한 관계보다는 솔직하고 디테일한 관계가 많이 보인다. 사실 나에게 있어 영화나 애니, 만화 등에서의 쿨함은 더이상 새롭지도 못하고, 그런 관계에서 별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솔직한 감정과 이야기들에 감동을 받고 좋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단 생각이다.
"형인"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한편으로 매우 부럽기도 했지만,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3권 이후부터 "지준"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그런 맛이 조금 떨어졌지만, 어쨌든 <피버>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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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rror

   
Zwierciadlo / The Mirror

 

이런 날은 정말 싫다.

회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질색인데.

강요된 업무와 강요된 일정과 강요된 야근과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의 쏟아지는 졸음.

(러시아워를 피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하고 싶었던 해야 했던 일들은 내일로 내일로 미뤄지고

편안하고 달콤하고 쉬운 것만 찾게되는.

 

"영화보고 싶다..."

 

 

...근데 뭔가 진지한 채로 오래있기 힘들군 . (  −┏)y-~

   한 때는 나름대로 진지한 인간이었는데!

 


♪ Yanni - Nostalgia

(from Live at the Acropolis)

 

여기서 퀴즈!

이 포스트를 관통하는(그림 + 글 + 음악) 주제어가 하나 있는데...

무엇일까요?

2005.03.25 11:20, 힌트를 몇 개 추가했습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미류님이 얘기해 주신대로 정답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입니다.

러시아 출신의 영화감독으로서

<거울>(1975), <노스텔지아>(1983), <희생>(1986) 등의 작품을 감독했습니다.

빨간색 단어들이 제시되었던 힌트들 되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Stasys Eidrigevicius의 <거울> 포스터입니다.

미류님... 대단하십니다.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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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s on Parade


♪ RATM - Bulls On Parade ♪

 

 

간단하지만 명료한 메시지

직관적이지만 거칠지 않은 이미지

복제되고 변형되고 퍼져나가지만 결국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셈이지.

 

아무리 그렇더라도

빨강/검정의 깃발을 들고 등산하는-_- 장면은

너무 진부하잖아~

 

ps. 요 며칠간 좀 오바했나보다. 포스팅이 귀찮아지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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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계란 아저씨다 :)

 

어제 낮에 쓴 포스트로 인해

거의 일주일 포스팅을 다 한 느낌이다-_-

계속 그림하고 음악을 올리고 싶었었는데.

 

 

역시나 사슴벌레님이 전에 올렸던...
♪ Smashing Pumpkins - Never Let Me Down Again ♪

(from Depeche Mode tribute album)

 

이건 원곡. 확실히 느낌이 많이 다름.

♪ Depeche Mode - Never Let Me Down Ag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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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했는가

포스트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분명하게 해 둬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레니라는 인간은 진보네트워크 기술국 자원활동가이며, IPLeft 및 정보공유연대와 직접적인 연관은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IPLeft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과 10분 이하의 대화를 몇 번 나눠본 것이 연관성이라면 연관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_-

 

이전에 내 블로그에도 정보공유라이선스의 "영리불허/개작허용"을 명시적으로 채택하고 있었지만, 개편이다 뭐다 하면서 그만 표시가 날아가버렸다-_- 하지만 지금도 기본적으로 나의 컨텐츠는 영리적인 목적이 아니고 출처만 명시한다면 누구나 수정할 수 있고 배포할 수 있다.

 

Creative Commons Korea의 출범 임박 소식이 떠돌고 있어서인지, 갑작스레 CCL과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한 소동에 휘말리게 되었다.(marishin님의 글이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나의 경우에는 CCL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었으므로, CCL 사용자들이 중심이 된 문제제기들에 대해서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님이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제시한 두 개의 글(#1 #2)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정보공유연대 측에서 CCL과의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CCL 사용자들은 자신이 CCL을 채택한 이유에 대해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앞의 아르님의 글 #1, a77ila님의 글 중 "내가 CCL을 쓰는 이유" 이하, 눈크님의 글 등) 다만 앞에서 소개한 분들의 경우 자신의 컨텐츠를 무단 도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판단되는 반면, 내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한 것은 이와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

 

나는 라이선스의 구체성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CCL이 13종류의 라이선스를 제공하던 또 다른 라이선스가 등장하여 130가지의 라이선스를 제공하던, 내 관심사는 오직 "영리불허"와 "개작허용"에만 있다. 즉, (만일의 경우) 다른 블로거가 내가 쓴 글이나 내가 그린 그림, 내가 찍은 사진, 내가 편집한 비디오 클립 등을 무단으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나의 의도를 심각하게 곡해하지 않는 이상 별로 문제제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상업적인 용도로 나의 컨텐츠가 사용되어 현금화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매우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또한 난 라이선스의 채택을 결정하는 요인이 반드시 라이선스의 내용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Lawrence Lessig 교수를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현재의 저작권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그다지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CCL이던 정보공유라이선스던 대안적인 라이선스 시스템은 현재 저작권 질서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보공유연대는 이번 저작권법 개정 사태와 연관지어 정보공유라이선스를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현실적인 운동을 전개하고 있고 그럴 수 있는 기반이 있지만, CCL은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나는 CCL은 국제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기력하다고 생각한다.(CCL과 정보공유라이선스의 저작권에 대한 입장 차이는 mentaless님귤님이 잘 설명해 주셨다.)

 

물론 이런 라이선스 채택을 하는 기준은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 다른 의미로 라이선스를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아르님의 글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듯 보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패권적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보공유연대가 현행 저작권법에 반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이상, 정보공유라이선스를 CCL 대신 사용하겠다는 의미는 나에게 있어 충분하다.

 

다만 앞에서 잠깐 지적한 바와 같이 정보공유연대에서는 CCL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라이선스의 통합까지는 생각할 필요 없겠지만, 적어도 호환 정도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으며, 이 작업은 정보공유연대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할 문제라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정보공유라이선스 배너는...조만간 달도록 해야겠다-_- (구차니즘의 압박-_-)

참, 그리고 라이센스가 아니고 라이선스라고 쓰는 거였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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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 vs 정보공유라이센스

뭔가 복잡하기 짝이 없는 논쟁이 진행 중.

 

Creative Commons Korea의 출범이 임박해서인지

정보공유라이센스와 CCL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어떤 라이센스를 선택할 것인지, 등등

거기에 예의-_-의 문제니 뭐니 참 어수선하다.

 

이에 대해 뭔가 코멘트를 붙일 여력은 지금 없고.

그냥 간단히 메모.

 

 - 편가르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 "CCL은 국제적이기 때문에 정보공유라이센스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

 - 라이센스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 그냥 자신이 원하는 라이센스를 알아서 쓰면 안되나?

 

 

관련글들

 

아르님

http://archum20.egloos.com/888687/

http://archum20.egloos.com/1089979/

 

a77ila님

http://www.koreanjurist.com/drupal/?q=node/134

 

mentalese님

http://www.mentalese.net/blog/index.php?pl=263

 

marishin님

http://blog.jinbo.net/marishin/?pid=128

 

ps. 블로그식 토론의 "기본적인 예의"라는 말을 어디선가 봤는데

     "예의"라는 도덕적인 단어... 누가 규정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이런 허접한 메모글은 굳이 트랙백을 날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기에

     위의 포스트 모두에게 따로 트랙백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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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body


 

역시나...
블로그에서만 알았더라면
왠지 무서워했을꺼야. :)

지쳐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슴벌레님이 언젠가 올렸었던...
Veruca Salt - Somebody

(from Depeche Mode tribute album)

 

 이것도 원곡. 사슴벌레님의 요청에 의해. :)
♪ Depeche Mode - Somebody ♪



Somebody

by Veruca Salt

 

I want somebody to share
Share the rest of my life
Share my innermost thoughts
Know my intimate details
Someone who’ll stand by my side
And give me support
And in return
HeShe’ll get my support
HeShe will listen to me
When I wantlike to speak
About the world we live in
And life in general
Though my views may be wrong
They may even be perverted
HeShe will hear me out
And won’t easily be converted
To my way of thinking
In fact heshe’ll often disagree
But at the end of it all
HeShe will understand me

 

I want somebody who cares
For me passionately
With every thought and with every breath
Someone who’ll help me see things
In a different light
All the things I detest
I will almost like
I don’t want towanna be tied
To anyone’s strings
I’m carefully trying to steer clear
Of those things
But when I’m asleep
I want somebody
Who will put their arms around me
And kiss me tenderly
And things like this
Make meyou sick
In a case like this
I’ll get away with it

 

lyrics from lyricsfre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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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슈아님의 블로그 이름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하려면"이다.

난 저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을 이해하려면

논쟁이나 대화, 활동으로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와는 별개로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잘 알 수 없는 일도 있다고 생각한다.

 

포스팅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처음에는 쉽게쉽게 써내려 가다가 그만

마치 과속방지턱에 덜컥 걸린 것처럼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상태.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갈 수 없으면

"나만 볼래요"를 체크하고 저장해 버린다.

 

미류님의 기술에 대한 포스트에 트랙백을 하려고 포스팅을 하고 있었다.

난 기술을 알고 있는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점점 알아야 할 지식이 많아지더라도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기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기술을 익히는 과정을 요리를 배우는 과정과 비교하면서

나의 경험을 통해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젤루핀님의 포스트를 만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젠더에 의해 기술에 대한 접근을 차별한다는 것은

분명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라디오를 분해하다 고장내도 칭찬받는 남자아이(나)와

리모콘을 뜯어보다가 들켜 혼나고 마는 여자아이(동생).

컴터를 뜯어 만지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 여자후배.

 

하지만 이 이상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사실 자신이 없다.

여성들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어설픈 지식, 어설프게 겪은 경험, 어설프게 이해했다는 생각으로는

나의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하지만 입을 봉인하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너무나 분명하다.

 

더 많은 소통과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고민과

일상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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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디스크의 저주-_-

분명히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물건에도 생명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주위에 있는 물건을 집어던진 적이 한 번도 없고 (던지면 아플까봐-_-)

웬만한 물건은 잘 버리지를 않아서

서랍은 항상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으며

집에 있는 인형들-특히 큰 인형들-을 무서워해서

밤에 화장실 가거나 할 때 눈길을 슬슬 피하곤 했다.ㅋ

 

이런 생각이 커서도 이어지는 건지

가끔은 컴터도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갑자기 컴터가 버벅거리거나 부팅이 느릴 때면

'오늘 기분이 안 좋나 보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곤 하는데

이런 생각은 부품으로까지 이어져

컴터 부품을 살 때에는 가격대 성능비보다

뭔가 나와 잘 맞는 부품을 고르려고 하는 것이다.

 



다운받아놓은 애니와 영화 때문에 하드를 확장할 계획이었다.

원래는 120G 정도 더 확장하면 충분하겠단 생각이었으나

이런 종류의 일엔 욕심이 개입하는 법이라

200G까지 가격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것을 보고

200G를 사려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하드는 소음문제 때문에 시게이트를 선호하는데

얘는 맥스터나 웨스턴디지탈보다 1-2만원 정도 비싸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시게이트 200G 하드를 골랐는데

사진을 보는 순간 뭔가 나와 안맞을 것 같다는 필이 들었다.

 

바로 얘가 시게이트 200G(8M 버퍼) 하드

 

하지만 하드 용량의 극심한 압박을 견디다 못해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그만 냉큼 구입을 하고 말았다.

 

원래 LBA 인터페이스에서 137G까지밖에 하드를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바이오스와 칩셋이 48bit LBA라는 인터페이스를 지원해야하고

윈도2000에서 인식시키려면 레지스트리를 별도로 수정해 줘야 한다.

여튼 인터넷을 뒤져가며 알아낸 지식으로 하드를 컴터에 붙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드디스크의 용량제한에 대해서는 이 강좌를 참고하시어요)


문제는 도스에서 포맷을 하는 것이 보다 빠른데

도스에서 인식이 안되기 때문에 '윈도 디스크 관리'에서 포맷을 해야만 했다.

아침에 포맷을 눌러놓고 출근을 했는데 퇴근해서 돌아와보니 70% 진행 중이었다-_-

결국 새벽 3시쯤에 끝났다-_-

 

그래도 하드를 사용할 준비는 마친 셈이다.

이젠 용량 압박없이 풍족한 공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지만

웬일인지 하드를 새로 붙이니 컴터가 지나치게 느려져 버렸다.

특히 영화나 애니를 볼때의 끊김 현상의 압박이 장난아니고

급기야는 서핑을 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라디오헤드가 랩을 하는 듯한-_- 끊김 현상을 들었을 땐 웃음이 나왔다는-_-)

 

전문가-_-에게 이 현상을 문의해보니

하드디스크가 사용하는 전력에 의해 CPU에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다소 허무하기 그지없는 답변을 들었다.

 

결국 하드를 떼고 외장형으로 붙이기로 마음 먹었다.

다행히도 별도 전원으로 돌아가는 외장형 케이스가 있어서

하드를 떼고 외장 케이스에 붙이려고 했는데

원래 들어가 있던 CD 라이터를 떼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모서리에 손가락을 찍히는 바람에 살이 움푹 파였다-_-

 

베이자마자 손가락을 들어서 봤는데

아주 깊이 베인 것 치고는 피가 나오지 않아 매우 신기했다.

...고 생각한 순간 오른손이 피바다가 되었다-_-

'피도 많이 나오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구나'-_-하는 이상한 생각도 하고

갑자기 추워지길래 '영화에서 피흘리며 죽어갈 때 춥다고 하는 게 진짜구나'-_-하는 생각도 하고

오른손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길래 '내일 휴가나 낼까'-_-하는 생각도 하면서

허둥지둥-_- 빨간약하고 밴드를 찾아 빨리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이려고 했는데

피가 도무지 멎질 않는 것이다.

'아아 이대로 죽으면 너무 허무할텐데'-_-라고 생각하면서

컴터를 부팅하고 이 억울한 사연을 블로그에 올려야겠단 의무감으로

오른손을 휴지로 칭칭감고 간만의 독수리 타법-_-으로 이 포스트를 쓰고 있다.

 

다행히도 포스트를 쓰는 중간에 피는 멎어서 출혈과다로 죽지는 않을 듯 하지만

쓰고 싶은 포스트도 못쓰고 이런 포스트나 써야 하다니.

뭔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여튼 지금은 책상위에 올라와 아무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앉아있는

이 하드디스크와 잘 지내봐야 할텐데. ㅡㅜ

 


♪ Evanescence - Haunted (Live Ver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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