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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깎기

미리 말해두지만

난 과일을 잘 깎지 못한다.

 

다른 가사노동은 자취 생활 및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웬만큼 하게 되었는데

이 넘의 과일깎기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오늘 진보넷 사무실에 갔더니

미디어참세상의 뉴저오프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은 molot님의 포스트를 보고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지만

우연히 참가하게 된 척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더군.ㅡㅡ;;

 

여튼 행사가 시작되어 회의실을 빠져나와 부엌으로 갔는데

랄라 기자와 정책국의 또 한 분이 감을 깎고 있었다.

전라도 지방 유지 집안이라는 소문이 있는ㅡㅡ;;

모 영상기자의 집에서 보낸 감인데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여튼.

천만 다행히도 칼이 두 개밖에 없어서

난 옆에서 다 못 먹은 밥을 마저 먹으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랄라 기자가 행사장에서 호출을 받아

칼을 놓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경우에는 칼을 들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제가 도와드릴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눈치없어 보이는(흐흐) 정책국의 또 한 분.

1초도 생각하지 않고 "네"라고 하시더군.

결국 나의 과일깎는 실력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불운을 겪게 되는가 싶었는데

역시나 천만 다행히도 랄라 기자가 곧장 돌아오는 바람에

다시 칼을 양보하게 되었다.



내가 과일을 잘 못 깎는 이유는

천부적으로 칼 쓰는 재주가 없다거나

칼에 대한 공포감이 있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많이 해 보지 않았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먹는 행위에 있어서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편이라

자취하면서도 과일을 잘 먹지 않았고

집에서는 어쩌다 칼을 뺏아 과일을 깎는다 하더라도

어머니와 할머니의 구박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이 역시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가사노동이 그렇듯이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고

익숙해지는 임계를 넘으면 그 때부턴 매우 쉬워진다.

 

그 과정에서

게으름과

못한다고 쏟아지는 주위의 구박 및 핀잔과

사회적 편견과

결국은 가사노동을 제공받는 것에 익숙해짐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고

"좀 못하면 어때"라는

약간의 뻔뻔함도 필요한 듯 하다.

 

과일깎기의 길이 멀고도 험하겠지만

좀 더 용기를 내어 연마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오늘의 교훈. :)

 



♪ Def Leppard - A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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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 지하철에서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엔터테인먼트 자본 블리자드 때문에
회사에 나가게 되었다.

내 방도 아닌 곳에서 고작 4시간 자고 나와
정신은 하나도 없는 와중에
불행중 다행으로 지하철에 자리가 널널했기에 앉아갈 수가 있었다.

한 정거장 지나 열차가 삼각지역에 도착했는데
여긴 환승역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꾸역꾸역 타기 시작해
결국은 객차 안의 자리가 모두 차 버렸다.
비어있던 내 옆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4-5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를 데리고 있는 어떤 아저씨였는데
남은 자리가 그 곳 하나밖에 없어서 꼬마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한참 졸다가 약간 이상한 포스에 눈을 떴는데
아무리 꼬마라지만 내 가방보단 훨씬 무거울 것이 분명한 하중을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옆에 앉은 아저씨의 표정이 상당히 안좋아 보였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였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보고 판단한 것이라
나의 분석이 옳다고는 장담 못하겠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임에도
"내가 저 아저씨라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정말 1mg의 쓸모도 없는 상상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동기에 의해 시작된 상상은
열차가 사당에 도착할 때까지 다음과 같은 결론을 토해냈다.

1. 일단 견뎌본다.
뭔가 액션을 취하기 번거로운 상황이라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럴 만도 하지만
이 결론을 채택하기 위해 잠보다 상상을 택한 건 분명 아닐 것이다.

2.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
가장 단순하게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인데
자신의 안락과 평화를 위해 어린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주위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3. 내가 일어서고 아이를 앉힌다.
자신이 희생한다는 액션을 취함으로써 주위를 감동시킨다.
잘하면 옆자리에 앉은 진짜 "나"에게서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나"는 아저씨들에게 잘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서서 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4. 양보를 요구한다.
이것이 내가 꼽은 가장 베스트 솔루션이다.
과정이 중요한데
일단 아이를 앉히고 자신은 일어선다.
몇 정거장 가서 다리가 너무 아파 안되겠으니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진짜 "내"가 양보를 거절하면
자발적으로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데다
정당한 양보 요구를 거절했다는 주위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므로
자리를 양보받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정말이지
가장 최종적인 결론은
잠을 더 자는 것이 현명했다는 것일테지. (에휴)



♪ Green Day - Wait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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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d

 

 

가면 속의 얼굴

위장된 친절함

걱정하는 척하기

습관적인 사과와 반성

returns nothing

 

근데 이런 말들은 너무 진부하잖아? :)

 

요즘 이런 글쓰기 방식에 아주 재미를 붙였군.ㅡㅡ;;
♪ RadioHead - Paranoid Android ♪

 

 

ps. 스트라이프에 대해서 변명을 하자면

     잠을 4시간밖에 못 잔데다

     토요일 오전부터 회사에 불려나가

     20대나 되는 서버를 돌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반복작업을 하다보니

     일종의 환각상태에서 글을 쓴 듯.

     지금보니 너무너무 진부하다.ㅡㅡ;;; 부끄러울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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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휴식




여유로움
편안함
안락함
그리고 권태로움



뭐 그렇다고 놀겠단 얘긴 아니고. :)
♪ Blur - Coffee And T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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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난 상당한 마이페이스형 인간이다.
이게 좋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나쁘다고 할 수도 없지만
확실하게 말한 수 있는 건
마이페이스란 매우 "편리"하다.는 사실이다.

회사에서 일할 때 이 편리함은 매우 두드러진다.
아마 이런 경향을 띠게 된 것도
회사라는 조직에 있으면서 배운 것일 수도 있겠는데.
기본적으로 업무량을 자신이 잡거나 조절하게 되고
이것이 실패하면 뒷감당 역시 자신이 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짐을 덜어주기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마이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하고 싶어하는, 또는 해야 하는 일을 할 때
마이페이스는 결코 좋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같은 공동 작업을 하더라도
공동 작업자의 과부하를 나몰라라 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적절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해진다.

게다가 회사에서 매일 있는 일일업무회의 때
무슨 구라를 쳐서 일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일까.하며
오전 내내 고민하는 나에 비해
공동 작업자들은 평균적으로 훨씬 바쁘기 때문에
마이페이스로 일을 끌고 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시간이 매우 많이 주어지거나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하거나
이건 불가능한 가정이지만 차라리 돈이 매우 많거나 하면
여유를 가지고 나름대로 즐겁게 뭔가를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상황은 길가다가 램프라도 줍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을테니.

일단 가장 필요한 것은
집나간 여유라도 어떻게든 귀가시키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즈망가대왕"의 오사카. 이 표정을 보라.

 

비 온 뒤의 테크노는 좀 안어울리지만
♪ Crystal Method - Busy Chi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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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끊어진

 

마음 속의 무엇인가가

한순간 끊어졌음을 느낄 때

기타를 치다가

갑자기 끊어진 줄에 맞은 듯한

그런 아픔

 

사슴벌레님이 포스트를 안쓰시니. 짝퉁이라도. :)

 

 


♪ RadioHead - No Surpris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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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r Is A Gift

논쟁이나 토론을 할 때 어떤 사람들은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시점에서 감정을 드러내거나 하면
불필요한 것을 논의에 개입시킨다고 비난받기 일쑤고
심지어는 감정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논의를 계속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분출이 논쟁의 지속을 막는 경우는
분명 존재한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뜨거운 논쟁이
결국은 뒤집어진 탁자와 나뒹구는 의자들, 날아다니는 술잔과 함께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될 때. 이건 물론 극단적인 경우지만.
또한 분노 게이지가 높아지면서 상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하여 "감정은 이성을 마비시킨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게 별로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이런 근대적인 이분법이 언제나 적용되긴 힘들다.
매우 흥분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차분함 속에서도 분노를 드러내며 설명이 가능하다.
이들이 드러내는 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언어로서 드러나는 말 이면의 진실을 설명해 준다.
왜 이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생성되고 차이를 넘어설 수 있을지.
논리로는 평행선을 달릴 운명이지만. 감정을 이해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감정을 드러낼 때 보다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와 말하는 바가 분리될 수 없단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똑같은 결론을 똑같은 논리로 똑같은 설명방식을 빌려 이야기 할 때
두 이야기가 받아들여지는 바는 서로 다를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논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논리와 마찬가지로 말하는 그 사람의 일부이고
그 사람의 논리 전개 과정과 논리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감정에 공감하거나 만약 공감할 수 없다면 감정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분명 아니지만)
성매매특별법 등의 논쟁에서 여성들이 보여주는 분노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하자"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완전한" 제3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큐브 밖에서
관망하며 예측하고 나름대로 상상하여 결론을 내릴 수는 있겠지만
큐브 안의 현실 속에서
얽히고 섥힌 문제들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과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을 쓰는 것이 너무나 힘든 게 사실이다. 언젠가 스트라이프를 그을지 모르겠군.)

오히려 제대로 분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제대로 분노해 본 적이 있던가라는 의심이 들기도 하고
어쩐지 내가 서 있는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누구나 분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전에 "Freedom"을 올려버려서.ㅡㅡ;;; 
♪ Nirvana - You Know You're Right ♪

ps. 역시나 조금 지쳐 있는건지
      요즘 쓰는 포스트들은 하나같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군.
      내가 봐도 재미없다. ㅡㅡ;;

      하긴. 언제는 또 재미있었냐만은. :)

 

ps2. 글을 쓰고 다시 보니까

      빽빽한 글자의 압박이 장난아니다.

      아 어쩐지 토할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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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관계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서로에게 힘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나 반갑다.

 

자기 할 얘기 외에는 도통 관심없는 사람들은

이미 지겹게 만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전부터 얼굴은 알았지만

첨으로 얘기를 제대로 나눠본

한 영상기자가 이런 반가운 케이스다.

 

현실과 비전에 대한 지식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과

가장하지 않는 솔직함과(이것은 상대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서로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참을성.

 

단잠을 깨운 드릴 소리와 쓰잘데기 없는 트랙백으로 시작한

정말 지지리도 운없는 하루였지만

거의 유일하게 즐거웠던 한 때였다는 점에서

하루동안 지켜봐준 악마에게 감사할 따름이다.ㅡㅡ;;

 

알엠님의 방문자 이벤트에 당첨된 것도

너무나 큰 행운이지.

축하해요! 레니. (자축모드)

 


♪ Blur - End Of A Centu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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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The Mysteries of the Horizon, Rene Magritte, 1955

하루종일 뭔가 바쁘게 움직인 것 같은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날.
오늘의 기억은 전부
피곤함과 나른함으로 컨버팅되었나 보다.
뭐 그런 날.


지구가 멸망하면 다 미국인들 탓이다. :)

 

근데 뭐 이런 쓰잘데기없는 포스트가 다 있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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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디아


캐나다의 자유주의적 전통이 어떤 것인지 보인다.
XP나 위키위키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캐나다에는 자유주의자들이 넘쳐난다.
초반부터 논쟁의 화두가 되었던 "자유로운 연설의 권리"부터 시작하여
(아론은 이 권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
건물 로비 곳곳에서 얼굴을 들이밀며 논쟁하는 학생들과
자유롭게 부스를 설치하고 정치활동을 펼치는 자치조직들을 보면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를 쉽게 드러내는 자유주의적 전통이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는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학생회는 임원 회의로 보여지는 회의를 소집하여
단 한번의 표결을 거쳐 "힐렐"을 "활동정지"시키고 "자금동결"을 의결한다.
이 처사가 대내외에서 비판을 받자 학생회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내부의 의견 대립을 드러내는 결과만을 낳았다.
"팔레스타인인권연대"의 사미르는 TV 출연을 결심하지만 결국 이용당한다.
"힐렐"은 매우 "어른스러운" 방식의 대중정치를 수행한다.
활동정지가 결의된 이후.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게 된다.
유대교 축일 등을 이용해 유대인들의 단합의 계기를 만들고
학생회를 고소하여 법정으로 싸움을 몰고 간다.

그리고 탈정치화된 대중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엄청난 빅이벤트를 맞아 격렬한 논쟁과 대립이 있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우려한 것은 "대학의 이미지 실추"로 인한 피해였다.
학생회를 이끌던 "좌파"("lefty"라 나오는데. 사회주의자는 아니다)가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도
결국 이런 학내 분위기에 있었다.
콩코디아 대학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학생회 선거에 참여한 투표자 수는
30,000명이 넘는 학생 가운데 불과 5,000명이다.

또한 정치는 여전히 남성들의 몫이다.
학생회의 회장은 사빈느라는 여성인데.(이 이름을 찾느라 한참 뒤졌다)
당연히 화면에 많이 잡히고 중요한 위치의 인물로 그려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실제 카메라의 초점은 세 주인공에 맞춰져 있고
사빈느의 생각과 의견과 행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자치조직은 남성들에 의해 활동이 이루어지고
정치에 무관심한 학생들을 인터뷰할 땐 의례 여성이 등장한다.

인종주의는 당사자가 아니고서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유대인들의 자긍심. 팔레스타인인들의 증오.
텔아비브에서 터지는 폭탄과 가자 지구 상공에 뜬 헬기는
서로 바라보는 거울과 같다.

서로가 서로의 상을 만들어내고 이 상은 무한히 반복된다.
왜 그들은 다른 민족을 증오하는지. 왜 서로를 용서할 수 없는지.
당사자가 아니라면 정말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참 그러고 보니

노암 촘스키가 다큐 중간에 등장한다.

근데 무지하게 뻔한 말을 느릿느릿하는 바람에

약간 실망(뭘 기대한거야)

덧붙여.
Buck 65라는 힙합 뮤지션이 참여한 사운드트랙을 링크하려고 찾아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오피셜 사이트로 보이는 http://www.nfb.ca/discordia/index3.html
이 곳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단 전부 플래시로 된 사이트라는 점을 주의하시라. :)


* 덩야핑님의 텔아비브 폭발로 5인 사망 30인 부상에 뒤늦게 트랙백~

* 시와님의 {[sidof2004] 이스라엘을 '느낀' 두편의 영화}에도 아주 늦게 트랙백~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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