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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val Noir

나만 볼 수 있는 글이 첫 화면으로 뜨는 건

여간 꿀꿀한 게 아니군.

밀어내기를 위한 포스트.

 

사슴벌레님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 트랙백.

 

 

더 많은 작품을 보시려면. 단, 일본 사이트라 무지 느림.

근데 도대체 이 사람이 그리고 싶은 게 뭐야. 검은 말...

 

 


이러다 member서버를 mp3로 다 채우는 게 아닐까.

♪ B.T. - Namist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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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jineeya차마 두눈 뜨고 볼 수 없었던 하늘...- 영화 [엘리펀트] 관람기 -에 트랙백.

 

보고 싶었던 영화 "엘리펀트"를 드디어 관람.

일반적으로 영화를 먼저 보고 영화평을 읽는 것이 순서인데,

이 영화는 "볼링 포 컬럼바인"과 비교한 영화평이 눈길을 끌어

영화평을 먼저 보고 대략의 스토리까지 알아버린 후 보고 말았다는.

 




이미 대략의 줄거리를 알아버렸기 때문에

영화의 시작과 함께 과연 누가 총을 쏜 사람일까...를 찾는

마치 미스테리 스릴러를 보는 기분이 되어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첨엔 첫 부분에 나오는 "존"과 "일라이어스"가 그 "두 명"인 줄 알았다.

지금도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잖아;;;)

 

하지만 이런 기분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는데,

아마도 되도록 담담하면서 자세하게 드러나는 학교의 일상과

마치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와 "메멘토"를 합친 것 같이

개별적으로 진행되면서 중첩되는 시간과 인물-사건 구조,

결정적으로 치밀하게 연출되었다고 생각되는 주위의 섬세한 소리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영화에 몰입하게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로 매우 감명깊게 보았던 것들은

인물들의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따라다니는 카메라,

(스크린에 꽉 차게 배우 옆 얼굴이 나오는 건 그리 흔하지 않은데)

인물에 대한 극단적인 포커싱을 하다가

순식간에 아웃포커스하면서 주위의 일상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연출 기법,

비슷한 효과이지만

학교의 일상을 다 표현하려는 듯 섬세하게 들리다가

역시 순식간에 인물에게 집중되는 소리들,

"엘리제를 위하여", "월광 소나타",

그리고 그 "두 명" 중 한 명의 방에 그려진 "코끼리" 그림.

(이 장면에서 "아 그렇군~"하는 느낌이 후훗)

 

구스 반 산트의 전작인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와 비교하면

휴머니즘적인 시각을 제외하고 너무 스타일이 달라

영화를 보고 나올 때 필모그라피를 보면서 약간 놀랐다.

 

사실 이 영화에서 클라이막스와 결말은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나타나는 학교 안 인물들의 일상이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더욱 가슴아프게 하는 듯.

그들이 "평범했기에" 더더욱.

 

근데 그 "두 명" 중 하나가 말한 "참으로 더럽고 화창한 날이로다"란 말은

어디선가에서 인용한 건지 궁금하네. 왠지 낯이 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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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방, 단상, 정리되지 않은

진보네, 토론방과 트랙백 디렉토리에 대한 트랙백.

 

* 솔직히 토론방에 대해서는 널널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 일단 블로그에서 특정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일 공간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미디어참세상 토론방과의 M&A가 추진되면서 그 쪽으로 넘기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쉬엄쉬엄 올해 내로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관망하던중, 공지가 떠 버렸다.

 

* 블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블로그에 더 어울리는 것은 트랙백 디렉토리다. 블로그의 가장 큰 특징인 "트랙백"을 적극 활용해서 주제에 대해 글을 모으는 것인데, 비계층적인 논의가 가능하고 보다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공지에도 나와 있듯이 "집중적인 토론"을 하려면 토론방이 있는 게 낫긴 하다. 트랙백 디렉토리는 트랙백의 성격상 논의가 모인다기 보다 확산되기가 쉬울 것 같다. 따라서 "집중적인 토론"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토론방은 별도의 공간으로 존재해야 한다.(개인적으론 "집중적인 토론"의 필요성을 잘 모르겠지만)

 

* 이전 토론방을 만들면서 잘못 생각했던 점들이 너무 많다. 일단 "기획"이 거의 없었다는 점. 가장 처음으로 시작한 작업이라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기능"과 "성능"의 문제에만 치중했었고 정작 어떤 식으로 토론이 이루어질지에 대한 고민이 전무. "블로그"에서 "토론"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가장 무난한 계층형 게시판 형식으로 토론방이 만들어졌다.

 

*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블로그와의 연동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고 보여진다. 포스트가 토론글이 될 수 있고 토론글끼리 자유롭게 연결 가능한 구조...가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의 계층형 게시판의 구조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다. 블로거들이 보다 자유롭고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 포스트를 쓰는 행위가 토론 제안이나 토론에 대한 의견, 의견에 대한 답글이 될 수 있는 구조가 내가 생각하는 토론방의 이미지이다.

 

* 토론방의 사용자는 블로거 뿐만 아니라, 여타 진보넷 회원, 또는 외부 방문객일 수도 있다. 이들도 토론방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토론방이 일반적인 형식을 가져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려면 정말정말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이건 매우 어려운 일일 것 같고) 일종의 딜레마가 되지 않을까.

 

* 토론방의 기능, 위치야 어떻든 간에 토론에 참여하기 쉬워야 하고 토론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가) 토론방에서 토론이 언제나 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매우 우발적인 계기로 시작될 수 있고, 토론 내용을 외부에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 확실히 형식이 내용을 제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형식을 통해 문화가 발생할 수는 있고, 이것이 구조와 형식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위의 단락에 포함되었었으나 따로 분리)

 

* 아무리 그래도 토론방 만들기는 트랙백 디렉토리 만들기보다 재미없을 것 같아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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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순환

드디어

나쁜 순환이 시작되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작은 단순한 것에서 출발한다.

얼마전 종로에서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DVD를 6000원에 팔길래

째쑤~를 외치며 내냉큼 사버렸다.

한 동안 폭주의 결과물들 사이에 끼어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지 못하다가

월요일에서야 비닐 포장의 껍질을 깨고

장 피에르 주네가 마르크 카로와 함께 할 때

얼마나 빛을 발하는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확실히 영화는 주말에 보는 게 좋다.

 

화요일부터 회사에서 졸음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간 잠잠하던 광고 서버가 이번 주 들어서 장애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유지 보수 업무가 원래 개발 일정과 합체하면서

(유지 보수! 개발 일정! 크로스~)

졸리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정신없는 일과를 보내게 되었다.

...물론 하루 10잔에 가깝게 마셔대는 커피의 힘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미 어제가 되어버린 오늘,

한 주 동안 마실 커피를 벌써 다 마셔버린 기분으로

무기력하게 컴터 앞에 앉아있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이 문장 왠지 친숙한데)

몸은 아주아주아주 노곤해서 마치 내 몸 같지 않고

머리를 바닥에 대기만 해도 잘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충만한데

막상 잘려고 누우면 말똥말똥해지는.

결국 뒤척이다 새벽 3시나 되어야 잠이 들고

자면서 몇 번이나 깨다가 간신히 아침에 부시시 일어나

회사-커피-크로스-박카스-다시 노곤해 지는

반복을 거치는 듯.

 

너무 직장인스러운 생활 사이클도 저주스럽진 하지만

이렇게 뭐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나쁜 순환은 불행이다.

자려고 마음먹으면 잠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새삼 부러워지는 요즘.

 



♪ 델리스파이스-키치죠지의 검은 고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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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믿어요

뭔가를 정신없이 하다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어.

마치 늦은 밤 종로 거리를

넋을 잃고 목적없이 걸어갈 때처럼.

 

한참 빠져있을 때에는 잘 모를거야.

가야 할 곳이 쉽게 보이지 않아도

성냥 불빛에만 의존해 찾아야만 하더라도

그 순간이 즐겁고 재미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을 지도 몰라.

 

불빛이 꺼지고 여운처럼 알싸한 냄새와 함께

어둠 속에서 생각하게 되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이 곳은 어디인지.

다시 그 때처럼 타오를 수 있을지.

 

영원한 건 없다고 해도

그 순간이 거짓이라 생각하진 않아.

단지 지금은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일거야.

그 때 그 순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 푸하하. 뭐냐 이건;;;

 

 


니넨 말은 좀 하지 말고       
노래나 열심히 하는게 어떨까. :)

♪ 언니네이발관 - 순간을 믿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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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얼마전에야 이름도 거창한 보르헤스 "전집" 중 한권을 가까스로 다 읽었다. 내가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절대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 소설은 읽어왔던 소설에 비해 좀 특이하다. 허구와 사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놓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건 뭐 그렇다고 치자. 소설이란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고대 로마, 아랍, 중세 유럽, 당연하지만 남미를 오가며 역사적 사실에 구체적인 장소까지 들먹이며 주석이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는 소설을 읽고 있자면, 하, 뻥 한 번 제대로 칠려고 이렇게까지 지적인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나. 하는 약간은 허무한 생각이 든다. 뭐 그래도 재미있긴 재미있다.

 

보르헤스 "전집"(백과사전이냐)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특이하다 생각한 것은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불사"를 추구하는 사람("죽지 않는 사람들")이나 "절대적"인 동전("자이르"), 재규어의 무늬로 나타난 "신의 암호"("신의 글"), "알렙"("알렙") 등. 신비주의적인 소재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결국 이렇게 절대적인 가치들을 찾거나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결말은 항상 허무하다. 종종 비참해지기도 하고. 어쩌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눈빠지게 보르헤스를 읽고 난 느낌은 그다지 깔끔하지가 못하다. 누구나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그게 뭔지 설명하긴 아주아주 힘들지만), 보르헤스를 읽고 나니 뭔가 허무해 진다고나 할까나. 뭐 혼자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긴 소설이 삶에 활력을 주는 경우는 아주아주 드무니까. 일단 재미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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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블로그. 단상. 정리되지 않은.

* 진보 블로그가 정식으로 운영된지 벌써 한 달이 넘었네. 와. 시간 빠르다.

 

* 블로그가 점점 싸이처럼 되는 것 같은 느낌. 오프라인 인맥은 온라인으로, 온라인에서는 새로 인맥이 형성되고.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지만. 아직 관계가 확장되기에는, 블로그의 수가 너무 적은 걸까. 아니면 블로거의 다양함이 적은 걸까.

 

* 블로그의 2대 주제. 개인화, 네트워크. 블로거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표현하고 싶어하면서 동시에 다른 포스트들과 연결되고 싶어하겠지. 전자는 포스팅, 스킨이겠고, 후자는 피드백 활동과 블로그 탑일꺼야. 블로그 구독은 후자의 행동이지만 성격상 전자와 가깝다고 생각해. 이 둘은 분명 충돌하는 주제가 아니고 상호작용하는 것임이 분명한데, 난 왜 자꾸만 대립한다고 생각되는지 모르겠어.

 

* 다른 포탈 블로그도 그러한지 모르겠는데, 역시나 포스트를 자주 쓰는 블로거들은 따로 있는 것 같애. 블로그 만들어 놓고 아직 한 개의 포스트를 쓰지 않은 블로거도 있고. 아무래도 포스트에 대한 피드백이 좀 더 가열차게 포스팅하게 하는 동력 중에 하나가 되는 것 같아. 다른 이의 포스트에 좀 더 쉽게,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은데. 현재 블로그 탑으론 아무래도 좀 부족하지.

 

* 쓰다 보니 든 생각. 이 포스트를 등록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 이걸 본 후, 내가 쓴 글에 가로줄 쫙쫙 긋고 자기 생각을 밑에 덧붙인다면, 별로 기분 안 나쁠 것 같아. 오히려 시원할지도. 특정 포스트를 위키처럼 쓸 수 있도록 하는 옵션도 재미있지 않을까? 만들기는 좀 어려울 것 같긴 해. 물론 가로줄 그어놓고 "즐" 한 마디 써 놓으면 후회되겠지만. 후훗. 그 점에 있어서는 블로거들을 믿는 수밖에.

 

* "와 끝났다"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잠깐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시작인 것 같아. 가능성을 일단 믿어보고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나아갈 수밖에. 언젠가 제대로 후회할 날이 올 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않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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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

문제의 시작은 예상치 못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였다.

 

천성산 살리기 선전전에 갔다가 옆에 있는 교보문고를 들렸다.

전에 국어교사를 하는 후배를 만났다가

보르헤스 단편집을 들고 있길래 재미있냐고 물어보니

재미있다고 하면서 같이 추천해 준 작가가 마르케스였다.

이 얘기가 떠올라 마르케스의 소설을 찾아보니

"외국소설" 코너에 몇 개가 검색되더라.

이 중 "칠레의 모든 기록"을 사기로 마음먹고 탐험을 떠났다.

성격상 일단 혼자 다 뒤져본다음 정 못찾을 것 같으면 점원에게 물어보는 편이라

"외국소설"의 전 서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교보문고의 교묘한 상술에 놀아난 건지

"외국소설" 코너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일본소설".

눈길을 주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만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하나씩 집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비극의 서막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난 일본 소설은 웬만해서 두 권 연속으로 읽지 않는데,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서 습관처럼 그렇게 한다.

일본 소설을 두 권 샀으니 마르케스 이외의 책을 한 권 사야 한다.

이런 강박관념에 싸여 보르헤스를 하나 더 샀다.

(아직 마르케스는 못 찾은 상태. 이미 본말이 전도된지 오래다.)

 

대충 마음의 평정을 찾고 마르케스를 뒤지는데,

이건 신의 장난, 또는 악마의 장난이라고 할까.

"눈먼 자들의 도시"가 하필 검색 중에 발견되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는 조금 심각하게 갈등이 되더군.

1-2분 정도 그 자리에 서서 생각해 보았다. 이걸 사도 되는지 아닌지.

역시나 생각을 오래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속삭인다.

"이봐, 니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앉아있지? 단순하게 생각하라구."

순간적으로 책을 빼 들고 말았다. 이번에도 악마의 승리. 넌 정말 대단해.

 

결국 찾던 마르케스도 사고. 도합 5권의 "소설"을 한 번의 구매를 통해 얻었다.

아아 사회과학서적이여 당분간 안녕.

가을 맞을 준비는 다 끝났군.

 

난 교보문고 자본의 교묘한 상술에 놀아난걸까.

그냥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했다고 생각하는게 맘 편하겠지.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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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는 습관

 


 

 



♪ Pink Floyd - Goodbye Blue Sky ♪



살면서 장래희망은 수차례 바뀌는 것이긴 하지만

내 기억에 가장 처음 구체적으로 가졌던 장래희망은

천문학자였다.

어린 시절, "뉴턴"이라는 과학잡지를 몇 권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잡지에 실린 우주에 관한 그림/사진들이

어린 마음에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었나 보다.

아름다운 우주를 실제로 보고 싶어

부모님에게 천체망원경을 사달라고 수차례 조르기도 했지만

당시 부족한 예산 덕분에 지금까지 천체망원경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달랬었다.

언제나 서울시 외곽의 한창 개발중인 곳에만 살아서 그런지

밤엔 불빛이 거의 없었고 별도 잘 보였다.

초등학교 때, "등화관제훈련"이란 걸 가끔 했었는데,

적(북한이겠지)의 폭격에 대비하여 모든 가정의 불을 끄고

쥐죽은 듯이 한 시간 가량을 버티는 민방위 훈련의 일종이었다.

훈련 시간 중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지상은 암흑 천지인데에 비해 별들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은하수"라는 존재를 직접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어쩌면 마지막일런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입시 경쟁에 뛰어들면서

하늘은 더 이상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입시 지옥을 빠져나와 대학에 들어와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땅 위에는 관심을 가져야 할 존재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것만으로 충분했었다.

단 한 번

매우 지쳐있을때 방에 누워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그 행복은 금새 잊혀졌다.

 

다시 하늘을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은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였다.

땅 위에 더 이상 눈 돌릴 곳이 없어 쳐다본 것이 하늘이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요즘은 일 년 중 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때인 것 같다.

무수히 많은 나의 습관 중 하늘을 보는 습관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몇 안되는 습관 중 하나이다.

가끔 하늘을 쳐다보며 멍하게 있을 때면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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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덧글에 대한 생각.

 

개인적으로 덧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블로그 기획을 하면서도 덧글의 영향력을 어떻게든 줄여볼라고

아둥바둥했던 기억이 나는데

역시나 트랙백에 비해 덧글이 더욱 활발하게 달리고 있죠.

 

블로그가 커뮤니케이션 방식 중 하나인 것처럼

덧글 역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미 게시판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어떤 글에 대해 짧은 의견을 제시하는 용도로 기획이 된 거겠죠.

 

블로그에서도 덧글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또 다른 포스트의 성격을 지닌 트랙백에 비해

덧글은 특정 포스트에 종속되는 것이므로

독립적인 자기완결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공간이 아닌 곳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원활한 피드백을 기대하기도 힘들죠.

 

제가 쓴 포스트 중 몇몇에 제가 스스로 덧글을 달면서

"바보같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자신의 글에 스스로 덧글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굳이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비난/비하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그 표현은 순전히 저에게 국한된 것으로

제가 가진 영역을 벗어나서까지 그런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전 스스로 덧글을 달면서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단 느낌을 받았는데,

일단 덧글이기에 포스트로 쓰면 좀 더 명확하게 쓸 수 있을 것을

500 바이트의 압박 속에서 썼다 지웠다 하는 것이 일단 마음에 안 들었고,

특정인의 덧글에 답하는 내용의 덧글을 쓰면서

과연 그 사람이 이 덧글을 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생기는 거죠.

다른 블로거의 블로그에 덧글을 달면

저의 경우 그 사실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일방적으로 내뱉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취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간 이 사람이 내 블로그를 다시 방문해서

내가 쓴 덧글을 읽어줄꺼야"...하는 막연하면서도 일방적인 기대.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소통의 의지만큼이나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되기에

그런 기대가 싫었던 거에요.

 

이건 부차적인 이유지만, 덧글에 붙는 점수가 부담스럽기도 했었고;;;

 

별 거 아닌 내용을 장황하고 구차하게 쓴 느낌이 없지않아 있지만

제가 붙인 "바보같다"는 단어가 위험스러워 보여서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놨습니다.

 

요즘 특히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리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의 가능성이 크다고 해도

저에게 있어 가장 효과적이면서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직접적인 대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2인 또는 3인의.

말하는 이의 얼굴을 보지 않고 내 의견을 제시하는 건

언제나 불안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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