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Rain

 

누군가가 "레니는 어떤 계절을 좋아하죠?"라고 물어본다면

(이런 질문을 받은 기억은 한 번도 없지만)

"여름, 비오는 밤요"라고 대답할 듯 하다.

(당연히 이런 대답을 한 기억도 없지)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계절의 모든 것을 다 좋아할 수는 없잖아.

 

비오는 여름날 밤이라

그냥 자기에는 좀 아깝다.



♪ Cowboy Bebop OST - Rain ♪



I don't feel a thing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and I stopped remembering
그리고 난 기억하는 것조차 멈췄지.
The days are just like moments turned to hours
순간 같은 날들은 시간으로 변해갔지.

Mother used to say
어머니는 말하곤 했지.
if you want, you'll find a way
네가 바란다면, 너의 길을 발견할거라고.
Bet mother never danced through fire shower
하지만 어머니는 퍼붓는 총탄 속에서 춤춰보진 않았겠지.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in the rain
빗속을 걷는다, 빗속을, 빗속을.
I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난 빗속을 걷고 있어. 빗속을.
Is it right or is it wrong
그것이 옳은가? 아니면 틀린가?
and is it here that I belong
그리고, 내가 속한 곳이 여기일까.


I don't hear a sound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
Silent faces in the ground
침묵이 땅에 깔리고
The quiet screams, but I refused to listen
조용한 비명, 하지만 난 듣길 거부했지.


If there is a hell
만일 지옥이 있다면
I'm sure this is how it smells
난 이것이 그 냄새라고 확신해.
Wish this were a dream, but no, it isn't
이것이 꿈이길 소원하지만, 아냐, 그건 아냐.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in the rain
I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Am I right or am I wrong
and is it here that I belong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in the rain
I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Why do I feel so alone
왜 나는 이렇게 외로움을 느끼는 걸까.
For some reason I think of home
그건 내가 돌아갈 집을 생각하기 때문일거야.

 

 - 출처 : 네이버 지식인;;;; 내 멋대로 약간 고침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케, 여기까지

요즘 회사 식당에서 밥에 약을 타는지

도무지 12시를 넘길 수가 없다. 신데렐라도 아니면서;;;

요즘 같이 비오는 여름은 좀 늦게 자 주는 것이 예의일텐데

생각할 시간도 없고 포스트 쓸 여유도 없다.

주말에라도 밤에 비왔으면...

 

"시작이 반이다"

그렇긴 하다. 일을 시작하는게 어렵단 뜻이겠지?

준비기간이란 것도 필요하고 조사도 해야 하고 아직 익숙하지 않아 헤매기도 하고

그러면서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겠지.

그래도 뭔가를 시작하면

일단 재미가 있다.

평소에 생각해 오던 것이든 지하철 타고 가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든

전화선을 타고 매트릭스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오듯

일을 진행하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은

잠 못 자고 주말을 희생하고 가끔은 원없이 스트레스 받더라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특히, 일을 일단 벌여놓고 보는 피곤한 습관을 가진 나로서는

시작은 반의 반도 안되는 가치밖에 안될 거다.

 



"마무리는 전부다"

난 마무리하는 것이

모든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시작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진다면

지친다. 지겹기도 하고.

적절한 시기에 가지를 쳐 줄 필요가 있다. 깔끔하게.

그리고 이후에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만나서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면 좀 곤란하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발전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한 개인부터 시작하여 소규모의 조직까지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신나게 준비하고 진행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끊고 다시 흩어져 활동하다가

다시 적절한 타이밍에 모여 보다 발전적인 프로젝트를 하는

나선형의 해후.

가장 재미있으면서 지치지 않고 서로 성장해 가는 활동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마무리는 중요하다.

관심도 없는 얘기를 끝도없이 무한 반복하여 떠드는 사람 앞에서

"(미안하지만) 오케, 여기까지", 끊을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어렸을 적 코미디 프로그램 중 쓰리랑(아리랑이었나?) 부부란 코너가 있었는데

(아마 김한국과 김미화가 나왔었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이 정신없이 떠드는 와중에 코너가 끝날 시간이 되면

국악하던 북치는 아주머니가 마지막에 "마무리 마무리"를 외치고

마무리 동작과 함께 코너가 끝났던 기억이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 그리고 이런 식의 마무리는 약간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그래도 마무리는 중요하다.

프로젝트든 활동이든 관계든 아니면 연애든.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고, 다행히 이번에는 적절한 수준에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나선의 끝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

 

(다시 읽어보니 이 포스트는 산만하기가 서울역에 그지없다.

 역시 회사 식당에서는 밥에 약을 타는 것일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금 이 모습을 CEO가 본다면

토요일은 거의 포스트를 쓰는 날이군.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블로그에 로긴해서

지금까지 뭉개고 있다.

 

CEO가 이 모습을 본다면

사장의 마지막 대사를 한다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껄. 흐흐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만화잡지

jineeya (님을 붙이려니 너무 어색해요)의 "[허브] 잘되기를 부탁해!"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여동생의 영향인지 순정만화를 많이 봅니다.

대부분 단행본으로 구해서 보긴 하는데

그 중 "윙크"라는 만화잡지만은 한 달에 두 번 꼬박꼬박 보고 있죠.

 

 

 

 

(흐흐, "궁"은 안 보는 만화이긴 합니다만...)



윙크에서 "사각사각"을 연재하던(지금은 끝났습니다만) 김나경이란 작가가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타이틀 페이지에 "만화를 당당하게 사서 볼 권리"라는

주제의 캠페인 배너(?)를 요.(하핫 무의미한 링크;;;)

이 캠페인의 주 타격 방향은 만화대여업소와 그 고객들(?) 입니다.

단행본이나 잡지를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만화방에 가거나 /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 사서 보는 것인데,

만화를 사서 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경험적으로도 잘 알 수 있죠.

따라서 만화가에게 직접적인 수익(인세)이 돌아가는 구조를 방해하는 요인인

만화대여업소에 대해 직접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운동들이 넷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대표적인 것이 반(Anti)청보법 운동과 함께 반(Anti)대여체제 운동을 하고 있는

"자유의 검은 리본"입니다.


 

 

이 논쟁은 mp3 및 소리바다에 대한 논쟁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지금와서 음반업계는 음반시장의 불황을 얘기하면서

대부분의 책임을 mp3 공유에 돌리고 있습니다.

이 얘기가 너무도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음악적 가치보다 상품적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고려하고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여 음반을 팔아온 음반업계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스스로 음악의 유통 구조를 허약하게 만들었고

지금 그 결과가 돌아온 것 뿐이죠.

 

그렇다면 만화시장에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음... 저 자신도 대여업소를 통해 만화잡지를 빌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행본으로 산 만화의 대부분은 일본만화입니다.

한국 만화가들의 수익에 전혀 기여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만화대여점이 없어진다해도 저는 윙크를 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 한국 작가들의 단행본을 구입하게 되겠죠.

그러나 박희정을 제외한 한국 작가의 매력은

제가 좋아하는 몇몇 일본 작가의 매력에 비해 떨어지므로

그 우선순위가 한참 밀릴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결과적으로 못 보는 만화가 많아질 뿐이란 얘기가 되는군요.

 

일본에서는 만화가 종합적인 문화 컨텐츠로 인식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만화가 그러한 힘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음반 시장에서 항상 미국이나 일본의 예를 드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무조건 구입해야만 문화 컨텐츠가 소비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음악보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화의 매체 특성상

독자층을 현저하게 줄일 것임이 분명합니다.

 

차라리 만화방이나 대여업소와의 빅딜을 통해

적절한 수입분배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어떨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단행본 값은 나름대로 부담되는 값인데

여유가 있는 사람이 문화 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면

이 또한 부당한 일이고,

수입의 많고 적음이 만화사랑의 척도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무조건 사서 봐라. 빌려보는 놈은 도둑놈.

뭐 이렇게 얘기한다면 에잇, 안보면 그만이지.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아서

약간은 자기 변명적으로 포스트를 쓰게 되네요.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여동생과 할머니

사슴벌레 님의 "도시락 반찬에 관한 안좋은 추억"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옛날엔 어땠는지, 또는 외국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오빠-여동생이 있는 가족에는

대부분 권력 관계가 전형적입니다.

오빠에게 가족들의 모든 기대와 지원이 전폭적으로 쏟아지고

여동생은 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자기 것을 챙겨야 하는

빈익빈 부익부의 관계.

그래서 그런지 남매 사이가 좋은 가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더군요.

거기에 할머니/할아버지 같이 전통적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는 연장자가 있으면

이 관계는 더욱 분명해 집니다.

 

저희 가족 역시 이러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인정하고 동생도 인정하는 바

저와 여동생 간의 관계는 다른 가족들과 많이 틀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동생하고 매우 친하게 지냈고

(싸웠던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때에도 말이죠.)

신기하게도 대화가 매우 잘 통하여(이건 정말 드문 일이더군요)

아마 제 인생 중 가장 얘기를 많이 나눈 상대가 제 동생일 겁니다.

 

 



권력관계 역시 매우 재미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때 까지는 전형적인 권력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제나 제 동생은 제가 쓰던 참고서들을 그대로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참고서에 연필로 글씨를 써야 했죠. 나중에 지워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 관계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달라졌습니다.

동생이 엄청난 우등생으로 변신한 것이죠. :)

저도 그렇게 공부를 못한 편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기 때문에 신뢰도가 많이 하락했습니다.

(중학교 땐 고스톱;;;열풍이 불어서 친구 중 집이 비는 일이 있으면

그 집은 하우스;;;가 되어 밤새 음주와 도박을 즐기곤 했죠.

하루는 부모님께 미행을 당하여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후후)

그리하여 저에게 오는 관심과 지원이 동생에게 분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이후론 완전히 역전되었죠.

 

나중에 동생과 얘기를 나누다가

동생이 우등생으로 변신하게 된 동기 중 하나로

부모님의 관심을 들더군요.

또 초등학교 때 참고서를 물려받아 쓴 것이

큰 한으로 남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방적인 지원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이후 적절히 분배되었기 때문에

동생과의 관계가 계속 좋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중학교 이후 적절히 논 것이

아주 잘 한 일 같기도 하군요. :)

 

참 메뚜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저희 할머니도 어렸을 적 메뚜기 튀김을 가져와

강제로(!!!) 먹인 일이 있습니다.

사실 먹어보면 고소하고 나쁘지 않은 맛인데

메뚜기의 험악한 인상 덕분에 먹기가 꺼려지는 면이 있죠.

뭐 할머니의 강제로 먹이기 놀이;;;땜에 지금도 많이 싸우긴 하지만

새로운 맛의 세계를 알게된 점도 많아

전 그리 원망스럽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단 거죠.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신입사원연수

신입사원연수를 1박 2일간 다녀왔다.

역시나 이놈의 회사는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

약간은 세련된 마인드를 가지긴 했다.

소통과 관계에 대해 일종의 문화코드로 명쾌하게 단언한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고

교육하는 사람들 역시 명확한 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지만.

뭐 진의가 어떻든 해석이야 어떻든 간에

나로서는 모자 뒤집어 쓰고

Red Hot Chili Peppers 요상한 그림의 티를 입고 교육장에 나타나도

별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인생의 가장 무의미한 시간 베스트 5 안에 들어갈 만한 시간이었다.

 

 


 

강의 도중 끄적거린 낙서들. 기념이다.

훗 나의 집중력이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카피레프트, 그리고 스크랩

pure님의 Copyright? 와

rmlist님의 카피레프트? 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트랙백을 걸기 전엔 제목이 이렇게 비슷한 줄 몰랐는데...

 

카피레프트는 확실히 나에게 있어 어려운 주제다.

이전에 정보운동관련 세미나라도 할라 치면

항상 카피레프트 부분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의 소유권부터 시작해 상품, 가치, 자본 등

근본적인 개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가

이를 자본론대로 명료하게 분석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논쟁은 언제나 극한 대립의 상태로 마무리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카피레프트의 정확한 의미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단지 나의 사고와 지식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정보는 나눌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는 명제를 긍정하고

나의 저작물에 대해 카피레프트를 붙이는 것.

(뭐 그리 대단한 저작물 따윈 없지만 말이다)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카피레프트의 전부이다.

 

 




그래도 확실히 문제의 소지는 있다.

상업적 의도가 없다고 치더라도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저작물의 일부로 넣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일부 포탈 블로그에서 제공하는 스크랩 기능을 사용하면

아주 손쉽게 이 일을 할 수 있고,

이 기능을 경멸(!!!)하는 블로거들도 꽤 있는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카피레프트를 표방한다고 해도

나의 저작물을 인용하는 사람이 있다면(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저작물의 출처를(링크라도) 밝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는 개인의 명예욕... 이런 걸 떠나서

하나의 저작물, 저작물의 일부가 인용되었을 때

그것만으로는 쓰여지게 된 맥락을 이해할 수 없고

전체적인 저작물, 또는 저작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생각이나 지식이 자신만의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것을 종합하고 표현하는 것은 개인이고,

그 경계는 개인성만큼이나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글을 무단으로 퍼 갔을 때 생기는 불쾌감,

이것은 단지 명예욕의 소산이고 어두운 인간 (이 말은 쓰기 싫은데) 본성 중 하나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포탈 블로그의 스크랩을 진보넷 블로그에는 도입할 예정이 아직 없다.

일단 스크랩이라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블로거도 있으며(나 포함 ;;;)

트랙백이 주는 "링크"라는 확장 가능성을 막을 수 있으며

개인이 쓰는 포스트들의 관계를 무시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단지 무단 스크랩을 불허한다고

카피레프트 정신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유권과 명예욕에 집착하는 치졸한 행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크랩 대신 트랙백을 걸거도록 강제하거나

글을 긁어 복사해 갈 때 출처를 남겨달라고 하는 것이

풍부한 소통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되진 않을 것이다.

소통의 방식도 소통과 마찬가지로

어느정도의 공감대와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열정

난 열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그리고 그 열정에 최소한이라도 공감을 할 수 있을 때,

매우 행복하다.

반면에 어떠한 공감도 할 수 없는

그러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되면

매우 불행하다.

 

오늘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고 답답했던 것이

아마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라 생각되는데

그래서 하기 싫고 좀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하려 하는데

왜 그들은 자신들의 열정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고.

 

제길. 차라리 머리를 비우자.

 

 



♪ B.T. - Satellite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더워

덥다. 불쾌지수도 높고.

너무 더워서 그런지 mp3p에 그린데이와 오프스프링을 꽉꽉 채워 다닌다.

 

네트는 광대하고 사람은 종류별로 다양하니

항해하는 동안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겪기도 하지만

명바기 만큼이나 보고만 있어도 짜증이 분출되는 인간을 만나는 불운도 있다.

 

난 후자의 경우

상처 받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자아를 어떻게든 나타내 보려고 악의적인 표현도 서슴치 않는 이가 쓴 글을 보고

나만 상처 받으면 왠지 억울하잖아.

 

그래서 보통의 경우는

...생깐다.

잘 안되면

...곤란하다. ;;;

보통은 한심하다고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다.

어쩌겠는가. 그렇게 살겠다는데.

 

다행히도 나에겐 오프스프링이 있는걸.

 

 



♪ The Offspring - Come Out Swinging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기술적인, 너무나 기술적인

난 개발자라는 일군의 무리 중 하나다.

개발자 무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특히 열정있는 사람과)

종종 기술이 밝은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

기술결정론-내지는 기술우위적태도-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라는 문제는

이들에게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로 작용한다.

 

기술의 가치중립성, 기술의 사회적 사용.

지겹도록 듣던 얘기이고, 공대를 다니다 보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같은 기술을 적용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어떤 목적에서 만들었는가, 어떤 사람들이 사용하는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진보넷 블로그는 블로그가 새로운 소통수단으로 등장한 시기에 비교하면

매우 늦게 준비되었고, 사실 그 전까지 블로그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그 사이에 설치형 블로그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접했으며

상업 포탈과 여러 회사들은 블로그 서비스를 개시했다.

블로그라는 소통 기술을 받아들인 시점이 너무 늦은 것이다.

 

그래서

이미 늦어버렸고 "서비스"도 다른 블로그들에 비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보넷 블로그를 사용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나?

"서비스"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대체재가 충분하다면

굳이 진보넷 블로그를 사용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면

블로그 기획자들과 개발자들은

멋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진보넷 블로그를 만들었나?

다른 사람들의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훌륭한 "서비스" 따위는 관심없다.

(솔직히 조금은 관심이 있다...;;;)

난 오히려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이유를

소통의 목적을, 그 내용을, 그리고 그 방법을

블로거들과 포스트를 쓰면서 트랙백을 걸면서

확인하고 기획하며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물론 진보넷이 자본이 깔아놓은 인프라를 사용하고

이를 사용하는 이상 검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이 있다고 해서

"북한"과 "핵"이란 단어를 포스트에 넣으면

창문을 깨고 특수요원들이 침투해서 자루에 담아 어디론가 실어가나?

검열의 결과가 현실 세계에서 영향력을 미치려면

이에 대한 헤게모니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이 싸움은 기술적인 것과 별개로 정치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투쟁은 유효하고 유통기한이 없다.

(이것이 정보운동이 일면 수세적으로 보이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즉, "이미 검열기술은 우리 모든 것을 검열 가능하게 한다. 피할 수 없다."

이런 소리 늘어놓고 있는 시간동안

정보인권, 검열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전선에는

누군가가 기술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고 있다는 말이다.

 

기술적으로까지 훌륭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부족하면

제안하고 같이 기획하여

진보시켜나면 되지 않은가.

하긴,

이미 "이용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훌륭한 "서비스"를 바라는 고객이 되어버리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