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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잠시... 홍석만 글...

[논설] 신(新)브레튼우즈 체제라는 신기루

과잉자본 청산없이 국제금융질서 구축 불가능

홍석만(논설위원)  / 2008년11월24일 18시07분

최근 경제위기 상황이 확산되자 국제적으로 신(新)브레튼우즈 체제가 얘기되고 있다. 신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한 논의는 첫째, 국가간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강화. 둘째, 금융기관의 자본건전성 수단으로 사용됐던 BIS비율, 바젤1·2 등이 최근 대형 은행들의 도산에 따라 이를 대체할 새로운 관리기준의 마련. 셋째, IMF와 세계은행의 기능 재편(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브레튼우즈체제를 대체하는 개념으로서 신브레튼우즈체제는 자본이동 규제와 자본감독 기능의 강화를 초월하는 개념이다. 미국과 달러중심의 금융질서인 브레튼우즈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신브레튼우즈체제라고 명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신브레튼우즈체제는 확립될 수 있을까?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각국은 꽤 신속하게 공동대응 했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동시에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통화스와프를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지난 15일 워싱턴에서 G20 정상회담을 열고 자유무역에 대한 옹호, 금융규제의 확대에 대한 각국의 공감대를 확인하였다. 이어 23일 폐막한 APEC 정상회담에서도 ‘세계경제에 관한 정상성명’이라는 특별성명을 채택했다. “향후 12개월 내 서비스와 상품 무역 및 투자에서 새로운 장벽을 추가하는 조치 등을 자제키로 한다”며 보호주의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G20 정상회의를 지지하며, 금융시장에 대한 더 효과적인 규제와 감독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도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런 각국 정상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브레튼우즈 체제는 요원해 보인다. 여러 문구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없다. 문구의 거품을 빼고나면 미국 등 주요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설 것을 우려해서 (최소 1년간이라도) 자유무역을 유지해 달라는 호소(!)와 금융규제에 대한 ‘공감대’ 뿐이다.

 

이런 상황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신흥시장국의 힘겨루기 정도로 상황을 왜곡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미국이 양보하면 새로운 국제금융질서가 확립될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브레튼우즈 체제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하고 금본위제도가 붕괴했다. 2차대전 말기 1944년 미국 브레튼 우즈에서 주요국가들이 모여 순금 1온스=35달러로 금태환을 유지하고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데 합의했다. 그리고 미국 달러에 각국 통화를 고정시킨 고정환율제도를 형성하고 IMF와 세계은행을 설립하여 국제금융질서를 확립해 나가게 되었다. 이것이 브레튼우즈 체제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는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말미에 특수한 상황에서 형성된 국제금융질서다. 1929년 이후 10년간의 대불황이 세계대전으로 발전하였다. 최근 폴 크루그만 교수가 인정했듯이 루스벨트의 공황탈출은 뉴딜로 성공한 정책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과 전후 재건과정을 통해서 극복되었다. 2차 대정 중에 미국은 대부분의 전쟁 군수품을 생산하였고 이를 금으로 거래하며 유럽에 군수물자를 공급하였다. 그 결과 미국은 전체 금 시장의 72%를 보유하게 되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생산과 자본스톡의 엄청난 축소 그리고 미국의 금 보유를 바탕으로 한 기축통화로의 인정 속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지금 신브레튼우즈체제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형성될 당시와 단 하나의 조건이라도 만족하는 것이 있는가?

 

전례없는 위기만큼이나 전례없이 확장된 파생금융상품은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른다. 추측키로 파생금융상품 총액은 약 6백조 달러에 달한다. 전세계 총GDP의 1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신용부도스와프(CDS)만 하더라도 90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엄청난 규모의 자본을 어느천년에 ‘금융규제’만으로 청산시켜 나갈 수 있는가? 2차대전후 세계경제가 수 십배 넘게 확대되었는데 미국이건 유럽이건 중국이건 그 어느 나라가 과연 금태환을 조건으로 기축통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 금태환같은 조건없이 화폐만을 믿고 기축통화로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60년전 브레튼우즈 체제 논의당시 케인스 주장대로 세계중앙은행을 만들어 단일통화체제로 개편할 것인가? 이 구상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세계중앙은행은 ‘상호 합의’ 하에 통화를 어떻게 분배할 수 있을까?

 

현재 과잉자본과 과잉생산이 일정규모 이하로 청산되지 않는 한, 자본이동의 규제를 강화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는 꿈도 꿀 수 없다. 이 청산은 각국별로 노동자에 대한 공격임과 동시에, 국가 간에는 총성없는 전쟁과도 같은 대결이다. 게다가 지금은 불황의 초입일 뿐이며 이 대결은 상당기간 벌어질 전망이다. 보호무역에 대한 끊임없는 우려는 거꾸로 이런 상황에 대한 (암울한) 암시적 전망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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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구르는돌님의 [지금 한국 증시만 상승세인 이유가 뭔가?] 에 관련된 글.

 

 

 

지난 주 초,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안의 통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 증시가 불안한 하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한국 증시가 상승세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난 이틀간 20포인트를 넘나드는 하락세로 그간 상승폭이 상쇄되긴 했지만, 외국의 엄청난 하락세에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젯밤, 미국 정부와 의회간의 합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000억 달러 구제금융안은 공화당의 다수 의원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부결되었다.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 경제 논리보다 미국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계산법이 우위에 섰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황당한 결과였다. 그리고 쓰리세븐. 미국 다우지수는 777포인트나 급락하며 사상 최대의 낙폭을 기록했다. 나는 이제 한국 증시도 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추석 연휴 이후 리먼 파산이 여파로 90포인트가 급락했던 결과가 다시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리고 오늘 아침. 주식시장이 개장하자마자 대략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시작은 거의 70포인트 급락. 정말 후덜덜 할 만한 수치이다. 지난 19일에 아버지는 나의 강력한 주장을 받아들여 주식을 다 팔아치웠는데, 지난 주 계속 증시가 올라서 나는 집 안에서 어깨를 못 펴고 다녔었다. 그런데 이제 어깨가 다 뭐냐? 거실에 대자로 누워서 잘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니 그런데, 지금 오늘 주식시장 거래가 마감된 상황에서 낙폭은 겨우 8.30포인트. 오전만 해도 불안해서 치를 떨던 경제뉴스들이 다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뭐 한국증시가 이제 성숙한 투자 문화를 갖게 되었다나? 경제가 망하길 바라는 것만 같아 이런 생각하면 안되겠지만, 이미 주식을 다 빼버린 우리집 상황에서 주식이 조금 떨어지는 것은 나에게 반가운 사실은 아니었다. 그래서 또 다 뒤져봤다. 왜! 도대체 왜!!!??? 한국증시만 상대적으로 조용한 것이냐?

 

 

답은 의외로 빨리 찾아졌다. (이게 경제학적으로 정확한 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며칠 동안 경제기사에 붙어 살았던 나의 지식을 총 동원해서 내린 답은 이렇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은 증시보다는 환율이 먼저 타격을 받고 있었다. 환율은 며칠동안 계속 오르더니 이제 급기야 1300원대를 노리고 있단다. 이런 식의 위기는 세계적으로도 금방 가시지 않을 것 같은데, 혹여나 7000억 달러 구제금융이 된다고 하더라도 밀려들 달러 약세를 어떻게 버틸 것인가? 보통 원화 환율은 달러와 연동되는 추이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란 예상을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그렇담 증시는 왜? 온갖 언론에서 떠들어 댔던 것처럼 최근 공매도 금지 계획이 발표된 것이 한 몫을 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듯. 그것은 기껏해야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이지 순매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증시 당국은 매도 우위를 상쇄할 수 있는 다른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바로 기관매수와 자사주 매입!

 

포털 사이트를 통해 이런 기사를 접하고 나서, 결국 정부가 또 다시 도박장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기관매수는 주로 연기금을 통해 이뤄졌다고 한다. 아니, 연기금과 노동부의 주식투자로 인해 손실된 금액이 몇 백억에 이른다는 기사가 나간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또 연기금을 주식에다 쏟아부어? 주식시장의 침체를 막기 위해 우리의 피같은 노후 자금을!!?? 금융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해 우리의 노후가 또 파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뿐이냐? 자사주 매입은 전형적인 거품 만들기 작전 아닌가? 자기 회사 주식을 자신들이 사들여 회사 가치를 뻥튀기 하는 것. 어차피 이런 식으로 부풀려진 거품은 시세 차익을 남겨먹기 위해 환매가 몰리는 순간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금융위기를 불러 올 예고편을 작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겨우 8.30하락으로 끝났지만, 위기는 이제부터다. 대체 어쩔려구 이러냐 맹박아! 일단 자통법부터 그만 두고 다시 시작하면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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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금융위기가 우리집에 미친 영향

내 블로그에는 일기장에나 적을만한 사적인 이야기들은 적지 않으려 했는데, 이건 뭐 지금 내 심리적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이 얘기는 적어야 겠다.

 

지난 주,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세계 증시가 곤두박질 치고, 약 4일에 걸쳐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면서 많은 투자자들을 멀미나게 만들었었다. 평소에 주식, 아니 그 뿐만 아니라 돈 문제와는 담을 쌓고 있었던 나 조차 이것 때문에 올 해 들어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물론 이정도 가지고 내 인생의 최대의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뭐니 뭐니 해도 내 인생 최대의 위기는 06년 평택 투쟁 갔다가 연행된 사실이 집에 발각된 것이었으니... 그거에 비해면 이건 그나마 견딜만 하다.)

 

 

스토리는 이번 달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시작할 수 있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가족들을 다 불러모으셨다. 보통 아버지가 가족들을 불러 모을때는 아주 무서운 표정을 하고 누나와 나를 번갈아가며 혼쭐을 내 줄때나 부르셨는데, 이번에 달랐다. 나름의 가족회의를 소집하신 것이다. 문제는 바로 주식이었다.

 

사실 가족회의가 소집되기 며칠 전에 나는 집에서 아버지의 주식투자 실적표를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었다.

한 평생 그야말로 '육체노동자'로만 살아오셨던 우리 아버지가 벌어들인 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금액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보다 꽤 많은 금액이었다는 거다. (물론 평균적으로 봤을때는 그거 가지고는 돈 있다고 말할 껀덕지도 안되는 거다. 그 돈가지고는 서울에서 4식구 살 변변한 전세집 하나 얻기 힘들꺼다.)

 

그런데 최근에 주식이 많이 떨어지면서 불안해 지셨는지, 가족들을 모아 대책을 묻기 시작하셨다.

그 즈음에서 나름 최근 금융위기를 중심으로 한 금융세계화 문제를 공부하기 시작하고 있던 나는 줄곧 자신있게 말했다. "빨리 빼세요."

 

내가 주식투자를 해본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행의 시기를 준비하는 남한 사회운동의 일원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던가? 07년 서브프라임 위기로 시작된 주식시장의 불안이 한국으로까지 덮칠 위험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하는 거고, 그러면 주식에서 손을 때는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거라 생각했다. 엄마나 누나도 같은 생각을 이야기 했고, 아버지 또한 원금 까인 것이 아깝긴 하지만, 대체로 동의했다. 아버지의 대답. "알았다. 그럼 좀 지켜보면서 순리적으로다가("천천히"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우리 아버지가 자주 쓰는 용어다.) 빼는 것으로 하자."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나는 아버지의 '순리적으로다가'라는 말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문맥상으로 그 말은 곧 "너희들의 의견은 참고사항으로만 해 두고 내가 알아서 결정하겠다"라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추석이 지나고 지난 주 터진 미국發 금융위기...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 코스피 지수 90포인트 급락...

 

그날 부터 나는 아버지를 닥달하기 시작했다. "왜 빨리 안뺐어요? 지금부터 위기가 시작이라는데... 그러니까 추석전에 뺐어야 돼요..." 나는 그래서 조금 지켜 보고 조금 오르면 바로 주식을 다 빼자고 얘기했다. 아버지도 내 말의 취지는 이해했으나, 그것이 이미 잃어버린 원금에 대한 아쉬움을 누를수는 없었다. "야, 그래도 좀 지켜보자. 지난 해 처럼 다시 높은 지수로 회복될지 누가 아냐?"

 

그러나 그런 말은 내 상식선에선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쏟아지는 기사들만 봐도,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종말이 다가왔느니, 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라느니 하는 소리가 팽배한데, 어떻게 그런 낙관적인 말씀을 하시는지...

 

결국 17일 37인트 이상 회복되었을 때도 돈을 안 찾으시더니, 결국 다음날 또 다시 32포인트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 때부터 나는 이성을 잃었다. 미국 정부의 AIG구제금융의 약발도 하루밖에 못가는 최악의 위기이다. 그런데 보아하니 아버지는 아버지의 재산을 관리 해 주는 펀드매니저의 말에만 기대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번주 안에 돌려놓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19일) 다시 종합 주가 지수가 50포인트나 상승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난 그때 약간 미쳐있던게 분명했다. 사실 나는 좌파 경제학자들이 쓴 책에 나오는 "미국의 이중적자로 인한 세계 금융위기 가속화가 진행중" 이라는 말과 최근 금융위기가 비가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정도만 이해하고 있었을 뿐, '투자'의 기본도 모르고 있는 '투자 문외한'인데, 학력이 낮은 아버지보다 뉴스에 나오는 말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그걸 따라서 지껄일 수 있는 정도만 가지고 건방지게 굴었던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그 날 오후 2시경에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 몇개의 주식만을 빼고 모두 매도하셨다.

 

 

그런데...

 

 

 

그 전까지 차분하게 나와 대화를 나누다가 주식 매도를 결정하신 아버지가 펀드 매니저와 전화를 끊고 나서 표정이 굳어지셨다. "X발, 그 돈을 벌려면 내가 몇 년을 더 일해야 되는데..." 그 한마디를 남기시고는 잠이 드셨다. 그리고 5시경에 밖엘 나가서 소주 한잔을 하고 들어오셔서는 완전히 태도가 돌변하셨다.

 

그날 밤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말씀은 굳이 적지 않겠다. 간단히 얘기하면 잃어버린 원금에 대한 아쉬움이 결정을 내린 후에 갑자기 밀려왔던 것이고, 그것에 대한 불만의 화살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너 다음주에 주가 오르면 어떻게 할래? 넌 그런 경우까지 생각해 봤어 임마!!"

 

그 말을 듣고 나 또한 갑자기 불안해 지기 시작했고, 주말 내도록 인터넷에 올라오는 경제기사들만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미 재무당국이 RTC를 만들어 부실 채권 정리에 나서겠다고 하는 한편,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금요일에도 그런 류의 기사가 간간히 뜨긴 했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AIG구제금융에 850억 달러를 갖다 부어도 겨우 이틀도 안 되서 다시 폭락했던 장세였다. 이제 정세는 미국이 무슨 짓을 해도 안통하는 정세라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전 세계 증시가 그 여파로 이틀 연속 급등세로 변했단다. 물론 금요일에 63포인트 상승한 것도 그 영향이 있었겠지만, 나는 그게 다음주가 되면 흐물흐물 해질 것으로 봤다. 그런데 외국 증시가 이틀 연속 급등세라니...

 

왠만한 기사들은 낙관론으로 변해 있었다. 지난 한 주간의 불안한 장세를 끝내고 당분간 증시가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다. 신용 위기의 불안 요소가 남아있긴 하지만, 투자 심리를 꺾을 타이밍은 아니다. 이와 함께 뒤늦게 (정말 뒤늦게!!) 개인 투자자들을 위한 투자 조언을 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대부분은 지난 주 급락세에 휘둘려 한꺼번에 매도를 하면 손실을 확정 짓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의 정석을 지켜라. 10월 초 중국 펀드의 만기가 도래하는 시점에 갑작스런 환매가 몰려들 것이므로 일단 지켜보는 것이 좋다는 둥...

 

 

그런 기사들에 둘러쌓여 주말을 보내면서, 나의 섣부른 행동에 대해 자책하고, 괜히 어설픈 지식을 현실에 응용해 보겠다는 자만심이 아버지 뿐만 아니라 나의 심리적 상태까지 공황에 몰아넣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문득, "다음주 월요일부터 계속 증시가 상승하면 어떻게 하지? 아, 그럼 난 죽었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주말을 우울하게 보내고, 오늘 아침.

젠장!! mbn뉴스를 보는 순간 나는 TV를 부셔버리고 싶었다. 개장한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 24포인트가 오르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1시를 넘긴 지금 시각 현재 상승 폭은 5~6포인트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그나마 안심.

 

 

곧 있으면 미국의 주택시장, 고용지수 경기 지표가 발표된다고 한다. 나는 그 지표가 완전 개차반이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적절한 시기에 주식을 팔았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 수 있도록... 주식이 더 떨어졌으면 좋겠다. 아, 명박이도 계속 헛발질만 해주렴. 지금도 미분양 주택이 쌓여있는데 주택을 더 공급하시겠다고? 좋아좋아. 그러면 주택버블을 더 키우고, 주택담보대출 위기를 가속화시키시겠지...  그렇게 해서 내가 집에서 역적으로 몰리지 않도록 해줘라~~~

 

 

정말, 이렇게 전 세계 금융 위기가 나에게 가까이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아, 정말 위기는 위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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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들은 어서 특종을 보도하라!

어제 명박이가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TV까지 접수를 해서는 '국민과의 대화', 아니 '국민에 대한 협박'을 했다. 그건 분명 협박이다. 공기업 선진화 협박, 그린벨트 해제 협박, 비정규직 협박(정규직 전환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 주겠다고 말했다던데, 이제 그런말 한번 더 들으면 귀에 딱지 생기겠다.)...

 

그리고 바로 그 전날, 나는 우연히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갔다가 경악할 만한 게시물을 보았다. 사복경찰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길가에서 괴한도 아닌 (아, 그쯤 되면 괴한보다 더 하다고 해야겠지...) 인근 지역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조계사를 지키고 있던 3명의 안티이명박 회원에게 칼부림을 했다고...

 

내가 본 게시판의 글은 너무 단편적인 내용을 급박하게 올린 것이라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어 네이버를 뒤져보기로 했다. 이 정도 기사라면 언론에게 있어서는 대박 특종감이라고, 나는 너무 순진하게도 믿어버렸다.

 

나는 당연히, 이 정도 사건이면 네이버 초기화면 뉴스란에 뜰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 근데, 바로 어제까지 네이버 초기화면을 장악한 것은 정부의 종교차별 논란, 환율과 주가하락 문제 정도였다. 나는 그래도 믿었다. "초기화면에 안 뜨더라도 기사 검색하면 좀 나오겠지." 그런데 이게 왠걸... 내가 "조계사 테러"라고 검색하니까 나오는 뉴스들 중 가장 최근 것이 9월 7일 기사더라.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다시 인터넷에 들어가 봤다. 참세상에는 해당 기사가 메인으로 떴고, 민중의 소리에도 뜬 것 같다. 그러면 일간지들은 어떠한가? 그 때까지 관련 내용 보도한 주요 언론은 경향, 한겨레, 뉴시스 정도였다. 조중동이야 기대도 안했지만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 아마 안티이명박 카페 회원이 돌맹이 하나만 집어 던졌어도 대서특필 했을 것이 분명한 이 썩을 언론들이 시민들이 칼부림을 당하는데도 기사 한 줄 안써주다니...

 

옛날에 임금님 행차하실 때에는 더러운 것, 보기 싫은 것, 추한 것들은 다 치우고 입 밖으로도 발설하지 말라고 했던가? 이명박이 방송을 싸그리 장악해 국민에 대한 협박을 하기 바로 전날 이런 일이 일어났고, 이에 대해 주류 언론 어느곳에서도 기사 한줄 안 써보냈다는 것에 모종의 커넥션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언론은 들어라. 니들 좋아하는데로, 특종을 좀 찾아다녀라.
이 정도면 대박 특종이다. 언론은 제발 독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특종을 보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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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코포라티즘을 넘어서자.

한 때 불자였고,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불자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요즘 MB정권이 휘둘러 대는 종교편향 행위에 적지않은 불만을 갖고 있고, 그래서 이번 불교계의 총궐기에 적극적인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교계의 대응에 약간의 불만 또는 불만족을 느끼면서 몇 마디 적어보고자 한다.

 

지금 불교계의 외도(!!)가 얼마간 전국민적인 동의를 얻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건 딱히 불교계가 잘해서라기 보다는 MB가 너무 못해서이다. 얼마 전 화물연대 파업이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이 노동운동이 잘해서라기 보다는 MB의 고유가 정책에 모두들 불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대중적인 반이명박 정서. 현재의 대중 이데올로기는 이런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거리로 뛰어나오는 모든 대중들의 행동을 승인하는 아주 보기드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나름대로의 호조건이 아니었다면, 불교계가 이 정도로 힘을 쓸 수 있었을까? 사실 따지고보면 불교계도 소망교회로 대표되는 기독교계 못지 않게 부패와 권력의 상징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MB가 워낙 기독교 라인으로 권력의 줄을 형성하다보니까 불교계가 위축되는 것처럼 보일 뿐... 웬만한 사람들은 예전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문제로 전국의 승려들이 조계사에 모여 몽둥이 들고 싸움질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굳이 이렇게 불교계의 '흠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더라도, 불교가 그 동안 한국사회의 진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말하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나 주저할 것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욕을 먹고 있지만, 기독교는 그래도 그 내부의 건강한 분파가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 기여했던 측면이 많다. 7,80년대 성행했던 노동야학 등은 대부분 '교회'에 기반을 둔 것이지 않는가? 천주교 또한 도시빈민 사목회 등을 통해 빈민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등 종교의 양심을 '실천'으로 보여준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 그에 비하면 '실적'이 한없이 미미하다. 지율스님 단식 투쟁을 통해서 환경문제에 두각을 보였던 것 외에는 한국 사회의 진보적 역할에 있어서 불교의 이름을 찾는 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랬던 불교가 아이러니하게도 반이명박 전선의 선두에 서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떤 주간지 기사를 보니 불교계의 투쟁을 80년대부터 불교계 내에서 민주화운동, 사회운동과 관계를 맺고 있던 단체들이 주도를 하여 조계종 총무원을 견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측면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지금 불교계를 둘러싼 정세의 핵심은 '불교 코포라티즘'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개별 노동조합의 존립을 지키고, 임금과 근로조건만을 가지고 정부, 기업을 압박하며 그 성과로 협상을 따내려고 하는 것처럼 현재 불교계의 행동도 현 정권의 종교차별을 막기 위한 '종교차별금지법' 제정에 방점이 찍혀 있다. 종교차별을 막는 것이 하찮은 일은 아닐테지만, 그간 정권과 밀월관계로부터 그닥 자유롭지 못했던 불교계가 정부와 법제화에 합의한 이후 투쟁을 소강시키는 시나리오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지금이야 주요 요구안에 '어청수 퇴진'이 들어가 있어 냉각국면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이것이 '불교 코포라티즘'을 넘어서는 요구라고는 할수 없을 것이다. 사실 '어청수 퇴진' 요구의 주요한 이유는 경찰이 얼마전 조계종 총무원장의 차를 불심검문한 데에 대한 불만의 표출인 것이고, 여타의 사회운동과 촛불에 대한 탄압에 대한 분노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 종교에 대한 차별에 분노하는, 그래서 사찰 밖의 차별과 폭력(예를 들면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와 같은)에 둔감한 분노와 저항이라면, 이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란 장담은 할 수 없다. 대공장 남성 노동자들의 임금투쟁에 사람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이 불교계의 '대사찰 이기주의'로 향하지 말란 법도 없다.(들리는 얘기로는 불교계가 소유한 재산은 기독교 버금가는 수준이라더라. 얼마라고 계산도 불가능할 만큼...) 불교계가 정말 제대로 이명박 정권의 정책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사찰 지명 표기가 누락된 것에만 분노할 것이 아니라, 전국의 유구한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자연 환경을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하는 개발정책에 대해 종교적 양심을 걸고 싸워야 할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소수의 탐욕을 위해 다수의 노동 대중을 희생케 하는 비정규직에 대해 분노하고 싸워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바로 5년 전에 이라크에 한국 군대가 파병을 한다고 했을 때, 지금 시청 앞을 가득 메운 스님들은 다 어디에 계셨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언젠가 꼭 불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이 땅의 불교가 사회적 양심을 대변하는 종교가 되길 바란다. 그것만이 진정한 '성불'(成佛)의 길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불자'(佛者)들이여! 불교 코포라티즘을 넘어, '성불'(成佛)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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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독재 투쟁은 시효만료?

 

최근 정연주 KBS사장이 검찰조사를 받는 등 MB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한층 가속화 되는 상황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쟁점이 다시 부각되는 느낌이다. 아, 물론 정연주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촛불의 등장 그 자체가 우리(흔히 자칭 타칭으로 '좌파'라고 호명되던 사람들)에게 아픈 기억과 함께 그 '쟁점'을 다시 불러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독재냐 민주주의냐(반독재)'라는, 흔히 87년 항쟁의 부정적 성과물로 인식되던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쟁점은 이미 좌파들 내에서는 김대중-노무현 두 신자유주의 '개혁' 정권의 등장과 함께 시효만료되었다고 판정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독재정권 물러나라'라고 외쳤을때, 고등학교 정치과목 시간에나 대충듣고 말았던, 그래서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외쳤을 때... 아마 기존 운동판에 발을 담그고 있던 사람들 중에 그런 당황스러움을 느끼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그래서였을까? 5월 말, 촛불 집회가 피크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시점에 참여연대 류의 논자들과 최장집 부류의 인간들이 '정당정치의 위기인가, 직접민주주의의 제도화인가' 따위의 논쟁을 하고 있을 때, '계급적 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엄청난 지지율의 이명박 대통령을 두번이나 사과하게 만들고, (집회 자체에서 전면적으로 한미FTA반대의 구호가 내세워지지는 않았지만) 한미FTA 비준 흐름에 브레이크를 거는, 당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정치적 성과를 내고 있던 시점에, 소위 '데모꾼'들은 손가락빨고 있었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기분은 나쁘겠지만 사실관계상 틀린 얘기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 민중언론 참세상에서는 그런 시기에 '대중은 진보적인가'와 같은 칼럼을 게재하면서, 글이 의도했던 안했건 간에, 현 정세속에서 촛불대중 진출의 의미를 폄하하는 엉뚱한 행동을 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상당한 시차가 있긴 했지만, 좌파가 촛불집회에 지속적으로 결합해 오면서 '민주주의'를 둘러싼 투쟁의 첨예한 공간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어제 배성인의 "촛불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칼럼에서 강조한 '프로젝트의 복원과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주장은 촛불투쟁 속에서 좌파가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지적해 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바로 그 며칠전에 올라온 유영주 기자의 기사, "KBS 구성원들 '독재-반독재'프레임 넘어설 수 있을까"는 솔직히 실망스러움을 다시 반복하게 만든다.


빵구라닷컴님이 말했던 것처럼 2004년 탄핵 때 만들어진 독재(=한나라당) vs 반독재(=민주당 또는 노무현)이라는 왜곡된 전선은 남한 사회운동에 있어서 성가신, 아주 성가신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KBS, 공영방송, 민주주의) 그 당시 철이 덜 들었던 나는 광화문에서 '탄핵반대 민주수호'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홍위병'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좀 차분히 생각해 보자. 누구 말마따나 '모든 반역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이를 조반유리(造反有理)라고 불러왔다. 2004년 탄핵 반대 촛불에서도, 2008년 쇠고기 수입반대, 공영방송 장악 반대 촛불도 다 이유가 있다. 이걸 배성인처럼 '진짜같은 가짜'라고 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부분을 비롯해서 배성인의 글은 그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말 중요하고 절대 패배해서는 안되는 싸움이라는 사실이 방송장악 반대 투쟁이 가짜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난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촛불과 함께하기 위해 내걸었던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을 철폐하자!”라는 구호에 동의한다. 그러나 참세상의 많은 기사들, 그리고 많은 좌파들이 이 구호를 가짜 아닌 진짜는 ‘반-이명박’ 투쟁으로 상징되는 ‘반독재’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 투쟁이라는 식으로 억지부리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투쟁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 이명박에게 가장 사활적인 과제는 공기업민영화를 추진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조정해 줄 언론을 꽉 쥐어내서 전방위적인 사회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기륭전자 같은 비정규직 문제는 사실 이런 사안이 완성된 다음에는 정말 수두룩 뻑뻑하게 많이 나올 것이다. 지금 전자에 해당하는 투쟁을 이끌어가고 있는 주체들(언론노조, PD협회, 각종 시민단체와 촛불 시민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87년 식의 독재-반독재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이유로 그 투쟁의 중요성을 부차화시키는 건 정말 아니라는 거다. (어떤 좌파단체에서는 방송장악 저지 투쟁이 소시민적 쁘티 부르주아적 투쟁이라고 까지 하더라.)


문제는 변화된 정세를 읽고 있지 못하는 우리가 아닐까? 지난 5년간 독재-반독재와 같은 투쟁 방식이 문제였던 것은 집권세력이 민주주의라는 담론을 신자유주의적으로 포섭하고 변용하면서 정치에 대한 대중적 환멸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좌파의 무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의 등장과 함께 정당 정치 - 대의민주주의 일반이 위기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고, 대중들은 어떤 식으로든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예전에 모 좌파 단체에서 냈던 성명서 제목이 생각난다.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아니면 대체 어쩌자는 건데?)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보인 적이 있는가?


이명박 정권은 분명 독재정권이다. 물론 박정희-전두환과 똑같이 유비시키면서 ‘군사독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잠정적으로 ‘자본독재’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적 담론을 둘러싼 투쟁을 87년, 04년의 흉부를 드러내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 것으로 받아 안을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문제는 ‘독재-반독재’ 프레임을 벗어나는게 아니라, 강화하는 것이다. 반독재, 민주주의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이를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 프로젝트로 확장해 나가는 것.



(아, 너무 중언부언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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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선거 패배, 그러나 다시 시작이다!

다들 곧 디스토피아가 몰려 올 것처럼 난리들이다. 그렇다. 분명 암흑과 같은 공포가 밀려올 것이다. 미친교육은 한층 더 힘을 받을 것이고, 강남 학부모들의 입김은 더 세질 것이다. 다들 절망에 빠져 있다. 이 대통령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교육감 선거를 계기로 공기업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한다. (대체 교육하고 공기업 개혁하고 무슨 상관이길래? 초중고등학교가 기업이냐?) 갑제형이 기뻐 날 뛸 상황은 너무 보기 싫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우울해 하기만 하는 것이 능사인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지만 패배의 원인, 그리고 그 패배 속에서 우리가 얻은 성과와 앞으로 나아갈 바를 정확히 따져보자.

 

여러가지 분석이 난무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때 공정택 승리의 핵심 포인트는 (당연한 얘기이지만) 반전교조 기치하에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분석과는 다르게 보수세력의 결집이라는 것은 이 반전교조 기치가 노린 부수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목표는 다른 데에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탈동원화 전략'인 것이다.

사실 선거 초반에는 (물론 교육감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인지도는 매우 떨어졌지만) 나름의 분명한 정치/정책적 쟁점을 가지고 대중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이는 바로 주 후보와 촛불운동이 노렸던 것과 같이 '이명박 정권의 미친교육 심판'이라는 구호로 집약되었다. 대중적으로 만연한 반이명박 정서를 구체적인 정치일정에 녹여내고 스스로 조직화하기 위한 실천들이 이어졌다. 바로 이 때까지, 정확히 얘기하면 KBS와 MBC토론회가 있기 전까지는 이 구도가 먹혔던 것 같다. 이는 실제 여론조사에서 주후보의 지지도가 더 높게, 그것도 적극 투표의사가 있는 층에서는 더 큰 폭으로 높게 나온 것에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KBS, MBC 합동 토론회에서 공정택을 위시한 모든 후보가 '주경복=전교조 후보'라는 마녀사냥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매니페스토니 뭐니 하는 것들은 끝난 거다. 반이명박 프레임을 반전교조 프레임으로 돌려놓기 위한 보수세력의 필살의 무기. 사실 보수 후보 단일화도 쫑난 듯한 마당에 이런 전통의 무기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전략이 거둔 대중적 효과는 무엇이엇을까? 나는 다음의 글이 지금의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2004년 총선에서 부시의 공화당이 보여준 격렬한 선거기법은 ‘탈동원화와 네거티브 전략’이었다. 전통적인 선거 전략은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유일한 방법이 후보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온건하게 제시해서 부동층의 환심을 사는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러한 외부적 확대보다는 내부적 자기강화를 선택했다. 대다수의 대중이 특정 정당에 대한 안정적 지지층이 아닌 것이 현실인 마당에야 공화당을 지지할 가망성이 높은 특정집단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더욱 명료한, 즉 극단적인 정치메시지를 전달하고(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등등), 나머지 집단에서 대해서는 탈동원화 전략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즉 비방광고(네거티브 캠페인)나 추문을 통해 대중의 정치적 혐오를 확산시켜서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일반적으로 억제하거나, 상대방 후보를 선호할 것 같은 집단의 투표 참여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 사회화와 노동 387호, "인민주의 정치의 휘발성과 뉴타운의 폭발력"

  

 

사실 따지고 보면 이번 선거운동 기간 동안 공정택은 자기가 잘났다는 얘기를 하나도 한 게 없다. 솔직히 할게 없기도 하다. 그나마 자랑한 '교육노벨상'에 해당한다는 상훈도 UN등록단체가 준 것을 산하단체가 줬다고 허위 기제했고, 지난 그가 재임했던 3년간 서울시 교육청의 청렴도는 전국 꼴찌였다. 그가 공약으로 내건 우열반, 0교시, 야간 자율학습은 촛불 운동을 통해서 이미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상태다. 결국 남는 것은 비방전 뿐이다. 시쳇말로 선거를 과열, 혼탁 양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색깔론은 여기서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렇게 되면 교육정책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명박 교육정책은 안되겠다 싶어 투표하려던 사람도 이런 더러운 선거판에 발 담그고 싶지 않아서 투표를 포기하는 것이다.

 

투표가 있기 며칠전에 한국일보에서는 "투표율 25%면 보수, 15% 이하면 진보 유리"라는 기사를 냈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촛불민심이 그나마 지지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투표율이 낮을 수록 진보진영이 유리하지만, 투표율이 높다는 것은 보수세력의 위기감이 작동한 결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보수 쪽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예측은 투표 결과가 말해주고 있기도 하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투표율이 15%대 밖에 되지 않는데도 강남, 서초를 중심으로한 보수표는 결집세를 보였다. 반면 촛불 민심은? 촛불 민심도 나름 결집했다. 그러나 그것은 강남벨트를 누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여기서 촛불 운동의 자발성의 공백을 발견하게 된다. 촛불민심이라는 것은 사실 '산수'가 안되는 부분이다. 쉽게 말해 표계산을 할 수 없다. 무정형적이고, 강제성이 없고(이는 다시 말하면 조직적이지 않다는 말과 같다) 그저 선거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고라에 '[경복궁]' 머릿말 달아서 글 올리는 것 정도가 최대치다. 반면 보수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말하는 보수세력이라 함은 '재향군인회'로 표상되는 전통적인 수구세력이 아니라, 학교 선생님과 학원가를 쥐고 흔드는 강남 학부모와 그들을 선망하는 일부 강북 학부모들이다. 이들에게 '반전교조' 프레임은 전교조의 평등교육이 우리 애들이 남들보다 좋은 대학 가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식으로 이해되게 만들었고, 이런 이데올로기는 학급 운영위를 통해, 과외정보를 공유하는 부모들의 연락망을 통해, 그리고 최종적으로 '교회'를 통해 전파되어 갔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처음 실시된 거소투표인지 뭔지 때문에 교회에서도 투표할 수 있었다는 점은 아마 공정택 승리의 견인차 중에 하나로 꼽힐 것이다.)

 

결국 7월로 넘어오면서 촛불과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촛불의 조직화'의 문제가 다시 확인되는 셈이다. 보수세력들은 '반전교조' 프레임 하나로 결집할 수 있었던 반면, 진보세력들은 상대적으로 반이명박 정서를 교육감 선거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강남 학부모를 앞장세운' 보수세력들은 그 내부적으로는 상대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을 수 없는 경쟁관계에 있지만,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표출해야 하는 선거라는 국면에서는 부동산 가격과 일류 대학이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강고하게 연대한다. 그렇다면 촛불은? 쇠고기 재협상을 넘어 촛불이 정치화될 가능성, 연대의 새로운 매개지점은 어디인가? 많은 이들이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이번 교육감 선거가 '보수-학부모 연대'를 깰 수 있을 정도의 매개고리로 작동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시급히 촛불민심을 담아낼 연대의 새로운 형식들 - 계급정치적 성격을 분명히 한 - 을 창출해 내지 않으면, 이후 또 다시 '반전교조' 프레임 같은 서민층 떨궈내기 전략에 다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38.3%라는 지지도는 무시할 수 없는 성과라고 생각하며 이는 앞으로 촛불운동이 일보 전진해 나갈 소중한 자산이다. 패배는 인정해야 겠지만, 잃은 만큼 얻은 것도 많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미련과 왜 더 잘하지 못했나 하는 원망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선거 종반에 치달으면서 주 후보 측이 공 후보의 네거티브전에 말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주 후보는 '이명박의 미친교육 심판'이라는 전략을 초심을 잃지않고 꿋꿋하게 밀어붙이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공정택을 리틀 이명박으로 규정하고 정책적인 대비를 확실히 하는 게 필요했다. 특목고/자사고 반대, 평등교육, 인성교육과 그에 반대되는 이명박의 교육정책.... 그런데 초반에 "부모님의 걱정을 주경복이 덜어들이겠습니다." 같은 뜨뜸미지근한 구호가 달린 선거 플랑이라던지, 후반에 흑색선전 맞공세라던지... 결국 공정택의 탈동원화 전략에 말린 셈이다.

그러다보니 후반에 가서는 약간 수세적인 자세도 드러났다. '교원평가 반대'를 비판하는 타 후보에 대해 '난 교원평가 반대한 적 없다'는 당췌 뒷 감당 안되는 소리를 한 것은 나 같은 지지자들도 당혹케 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간에 2주 동안 수고하신 주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 손으로 이명박 정권의 교육 반역자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주 후보가 공정택과 박빙의 접전을 벌이면서 공정택 교육감의 성격 규정을 명확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그를 '강남 교육감'으로 부르자. 그리고 17개 구에서의 1위를 통해 보여진 '경쟁교육이 아닌 평등교육'에 대한 열망을 새로운 정치의 공간에서 조직해 나가자.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하재근씨의 말처럼 교육감 선거가 '노명박의 독사과'이고, 신자유주의 교육 분권화의 산물이긴 하지만(레디앙 기고글 클릭!), 이번 교육감 선거를 통해 이명박 경쟁교육에 맞서는 평등교육이라는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각시킨 것은 분명한 결실이다. 그런 구도 속에서 당선된 공 교육감은 앞으로 1년 8개월이 매우 고달플 것이다. 멈추면 안된다. 공정택을 괴롭혀야 할 시간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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