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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4
    노무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9)
    구르는돌
  2. 2009/05/18
    광주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하여 - 황석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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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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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파업] MB언론악법 당장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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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12/22
    근현대사 교과서 논쟁, 기대 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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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

1/
 
전국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분위기로 숙연하다. 그런데 나에겐 추모의 분위기에 마음이라도 보태고 싶어지면서도 망설여지는 일들이 보인다. 그런 모습 때문에 여러 고민이 들어 또 이렇게 짧지 않은 글을 쓰려 한다.
 
많은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은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분이고, 그래서 그의 개혁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그와 대립각을 세워오던 진보정당들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검찰조사 등으로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으나, 대통령 재직중에 정치개혁의 초석을 놓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진보신당 논평) 심지어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이런 사태가 오기까지 침묵해온 자신들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단다. 이건 웬 고해성사인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나누고 애도를 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재임기간 내내 그의 경제개혁은 물론이고 정치개혁에 있어서도 진정성 없음을 비판해 왔던 진보세력에서 갑자기 이런 태도로 돌변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나는 이런 태도가 ‘애도’와는 하등 상관 없는 것이라고 본다. ‘애도’라는 것은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남아 있는 다른 생명들 곁을 떠나감을 슬퍼하는 것이지,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핑계로 또는 그 죽음의 억울함에 기대어 결국엔 그가 옳았음을 인정하는 ‘고해성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2/
 
한편 나는 지난 주말 많은 이들의 추모 분위기 속에서 조금은 다른 종류의 슬픔을 느꼈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까 봉하마을을 찾아온 조문객들이 조중동 등 언론사들의 왜곡보도를 규탄하면서 하는 말이 "당신들, 어디 노무현 같이 훌륭한 대통령을 이 나라에서 다시 만나 볼 수나 있는 줄 알아?"였다. 2004년 탄핵사태 때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비극적인 방식으로 ‘메이저 보수세력’의 희생양이 된 '마이너 보수세력' 노무현은 점점 시민들 사이에서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인의 최대치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나왔던 많은 시민들이 결국 4.15총선 투표장으로 가서 민주당 후보를 찍을 것을 종용받았던 것처럼,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많은 시민들도 그런 반복되는 역사의 순환 속으로 복귀할 것을 강요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3/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니 이런 말이 있더라.
 
"인간 노무현의 특이성은 ('도덕성'의 붕괴라는) 이 사실을 '수치'(shame)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었다. 그만큼 그의 주이상스는 한국 사회의 평균을 넘어서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죽음은 한국 부르주아의 위선을 외설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 이택광 블로그  (http://wallflower.egloos.com/1909217)
 
내가 대학을 다녔던 딱 그 기간만큼 대통령직에 있었던 그의 정책 대부분에 반대했던 나이지만,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위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자살을 그만이 가진 도드라진 자존심 때문이라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물론 성격을 파악하는 문제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진실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노무현이 이명박, 전두환과 대립적으로 보이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비자금 수천억원을 챙긴 놈은 떵떵거리면서 골프치러 다니고, 전과 14범에다가 성매매를 일삼는 비서관을 청와대 내에서 거느리고 있는 대통령도 고개 뻣뻣이 들고 다니는데, 그에 비하면 노무현이 뭐 그렇게 잘못을 했냐는 항변, 나올만도 하다.
 
 
4/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무현 지지자들은 노무현을 죽인 ‘공범’들을 색출해 내 분노를 쏟아내려는 듯 하다. 그런데 한승수, 박근혜, 정몽준 등의 조문이 저지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동영의 조문이 저지된 것은 나로선 좀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동영이 임기말의 노무현 대통령을 많이 씹기는 했지만, 정적(政敵) 수준은 아닌데 굳이 막을 필요 있나? 그런 생각이 들던 와중에 프레시안에 실린 다음 글을 보고 노무현 지지자들의 심성 밑바닥에 있는 사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대통령직에 계실 때 그 수모와 고초를 당하시고도 당당한 의지를 보이셨기에, 언제까지나 꿋꿋하시리라 믿었습니다. 진보라는 사람들이 허망한 몽상을 쫓느라 님을 공격하고 등을 돌려도 희망을 간직하시기에, 늘 저희 곁에서 등불이 되어 주실 줄만 알았습니다. (...)
대통령님을 괴롭힌 모든 인종들을 지목해서 조목조목 비난하고 싶습니다만, "원망 마라"고 하신 당부를 지금은 따르겠습니다. 검찰이 법으로 사람을 잡는 인간사냥개 노릇을 한 것이 아닌지도 지금은 따지지 않고, 얼치기 진보들의 자기방어용 결벽증이 대통령님께 얼마나 부담스러웠을지도 지금은 들춰내지 않고(...)
 
권위주의적인 표현인 ‘각하’라는 표현을 김대중 대통령때부터 쓰지 않는게 관례가 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에게 ‘각하’라는 극존칭을 써가며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노무현을 공격했던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여기에 맞장구를 치려는 듯, 일부 네티즌들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타살에 진보/보수를 막론한 모든 언론사와 정치세력들도 공범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단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분위기는 분명히 진보냐 보수냐, 또는 개혁이냐 수구냐 같은 이념논쟁이 아니라, ‘노무현’이냐 ‘非/反노무현’이냐 라는 대립구도를 띠고 있는 듯 하다.
 
 
5/
 
노무현의 죽음이 현 정권의 정치보복에 의한 타살이라는 점을 백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루된 이번 사건 또한 이전 정권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권력형 비리의 한 사례라는 것이다. 물론 액수로 치자면 군사정권 시절에 비자금 조성한 놈들과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분명 그들 사이에도 64억이라는 돈이 오갔다. 검찰의 강압적, 저인망식 수사의 문제점을 염두에 둔다 하더라도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피해자일 뿐이라고 하는 건 순 억지일 뿐이다.
 
또한 노무현의 도덕적 결벽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그래봤자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평균적인 도덕성이 심각하게 하향평준화된 상황이라 상대적으로 그의 도덕성이 높아보이는 것일 뿐이지만), 처음부터 그를 둘러싼 민주당 세력이 부패했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이다. 2002년 대선 때 민주당이 불법대선자금 119억여원을 모금했고, 그 중엔 삼성에서 받은 30억원도 있었다.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참여정부가 태생부터 거대 기업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 그래서 참여정부의 부패실상은 암흑 세력의 유혹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씨앗 자체가 부패의 토양에 심어졌다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참여정부’라는 이름도 삼성 구조조정 본부에서 만들어준 이름이라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개인의 카리스마적 정치 스타일과 탈권위주의적 언행 등은 대중들에게 이런 미묘한 차이를 커다란 간극인 것으로 이해되게 했으며, 이런 차이에 기반해 결집한 ‘노사모’등은 이른바 ‘3김정치’에 후속하는 패거리 정치를 만들어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터진 (그들의 상징적 존재인) 노무현의 죽음은 급기야 지금과 같은 악무한적 원한과 분노의 정치로 귀결되고 있다. 나는 바로 이것이 고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번 사건이 낳은 가장 비극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시민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노무현이냐 이명박이냐’하는 양자택일식 선택지 안에서 한계지워질 것이고, 이명박도 노무현도 아닌 제3의 길을 추구해 왔던 진보운동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억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사건은 당연하게도 표면상으로는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을 살해한 사건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죽은 정치인의 유령이 산 정치를 지배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6/
 
소중한 생명의 죽음을 앞에 두고 너무 매정한 말만 쏟아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다른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바로 ‘소중한 생명의 (억울한) 죽음’이기에 애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에게도 ‘정치인 노무현’이 훌륭해 보일때가 있었다. 대통령 후보시절, 모 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반미 좀 하면 어떠냐’는 발언으로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장면을 본 고3시절의 나 또한 함께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웹서핑 중에 발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파업중인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앞에서 행한 연설문을 보고 왠지모를 생경한 감동이 느껴졌다.
 
“여러분! 이번 여러분의 파업은 법률상 위법입니다. 그런데 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저 산동네의 철거민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도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해서 따뜻하게 등 눕힐 수 있는 구들장이 필요하고 그 사람 자식들도 밥 먹던 상이나마 행주로 닦아 책 놓고 공부할 수 있는 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법에 위반되었다고 무허가라고 집을 뜯어버립니다. 노점상들도 그렇습니다. 입에 풀칠을 하려고 나와 있는 노점상들을 도로교통법을 걸어 목판을 차버립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집에 불이 나 다섯 가구가 몽땅 타버렸는데 피해액이 백만 원도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목판 하나는 전 재산입니다. 밥 못 먹게 하는 법, 그것은 법이 아닙니다. 
여러분! 헌법에는 노동3권을 명시해놓고 방위산업체는 안 된다고 합니다. 입만 열면 안보, 전쟁 위협을 하면서 비행기로 3분 거리에 있는 서울에 왜 63빌딩을 짓습니까? 방위산업체 쟁의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을 콱 밟아버려라 이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합니다. 또 말로만 하지 말고 악법은 국민의 손으로 철폐시켜야 합니다. 노동자가 놀면 온 세상이 멈춥니다. 그 잘났다는 대학교수, 국회의원, 사장님 전부가 뱃놀이 갔다가 물에 풍덩 빠져 죽으면 남은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세상을 꾸려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노동자가 모두 염병을 얻어 자빠져 버리면 우리 사회는 그날로 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 경제, 사회관계 등 모든 것을 만들 때 여러분이 만듭니까? 그게 바로 오늘 한국의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사회를 위해 우리 다함께 노력합시다.“
 
많은 이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법안을 만들어 수 많은 이들을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고, 한 평생 땅에만 의지해 정직하게 살아온 평택 대추리 농민들을 내쫓아 미군기지를 들여오고, 게다가 컴퓨터 게임하듯 소중한 생명들을 짓밟았던 미국의 이라크 학살동맹에 참여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여전히 나에게 비판의 대상일 뿐이다. 또한 나는 그가 ‘민주화된 시대에 분신이라는 낡은 투쟁 방식을 고집한다’고 비판했던, 그의 재임기간에 죽어간 수많은 열사 노동자들을 그곳에 가서 꼭 만나뵙고 그들에게 사과하길 바란다.
 
하지만 나는 ‘인간’ 노무현을 추모한다. 발톱이 빠질 정도로 고문당한 부산지역 운동권 대학생들을 변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노동자 파업에 함께 나서 이 땅에 ‘법’이 가야할 길이 어딘지를 고민했던 ‘변호사’ 노무현을 추모한다. 그런 ‘인간’ 노무현은 2009년 5월 23일 보다 훨씬 전에 죽은 것이 분명하지만, 오늘 우리가 추모해야 할 노무현은 단연 후자라고 생각한다.
 
 
7/
 
고인의 죽음을 진정 애도하는 길은 무엇일까?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이들을 고인의 무덤 앞에 제물로 갖다 바치고 ‘나야말로 진정한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다’라고 외치는 신앙고백은 올바른 애도의 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땅의 ‘정치’ 자체를 죽음으로 내모는 길이다. 모르긴 몰라도 고인은 이 땅의 ‘정치’까지 자신의 동행자로 만들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남긴 유산을 올곧게 평가하자. 그것이 진정 한 생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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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하여 - 황석영 비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광주를, 그리고 5.18을 생각할때마다 떠오르는 책의 제목이다. 수많은 동료시민들의 죽음에 대한 광주의 슬픔은 그 자체로 시대의 어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둠 속에서도 끝없이 뜨거운 횃불을 피워올리며 어둠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지금 우리의 기억 한 가운데에 와 있다. 이제 30년이 다 되어가는 광주에 대해 이런 정도의 기억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그 당시 광주의 주체들이 이 사건을 단지 소외된 지방 도시의 우울증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민중 전체의 아픔과 공감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자신의 환부를 드러내는 모노드라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같은 책도 소설가 황석영이라는 배우의 입을 빌어 발화되는 광주항쟁 생존자들의 자기 독백이었고, 우리는 그 연극의 비장함과 아픔의 크기 때문에라도 관객으로 끌려나올 수 밖에 없던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기꺼이 광주의 아픔을 전해주는 확성기 역할을 했던 황석영이 얼마 전 광주항쟁(아, 그런데 그는 이를 신군부의 언어인 '광주사태'라고 표현했다!!) 같은 일이 영국에도 있고 프랑스에도 있고 때가 되면 다 있는 일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이명박을 '중도'라고 치켜세우며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했다는 점에 대한 불만은 여기서 굳이 하지 않으련다. 이 정도 발언은 어떠한 분석도 필요 없는 노망난 늙은이의 망언이라고 해두고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통과의례, 또는 성장통이라는 말인가? 어디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이고 무엇이 되기 위한 성장통인가? 그런데 나는 이렇게 황석영의 발언 심연의 의도를 따지기 이전에 짚고 넘어가고 싶은게 있다. 그래 좋다, 백번 양보해서 광주와 같은 아픔이 영국에도 있고 프랑스에도 있는 일이라고 치자. 두 나라 모두 엄연히 지배계급의 압제에 맞선 민중들의 혁명과 반란의 역사가 있는 나라이니만큼 그런일이 없을리 없겠지. 그러나 대륙의 양 끝에 자리잡고 있는 서로 다른 나라의 민중들의 경험이, 흙이 되어버린 망자들의 뼛가루와 그들의 관을 태극기로 씌워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산자들의 고동치는 혈관 속에 오롯이 각인되어 있는 아픔의 기억을, 어떻게 그런 쉬운 한마디로 하향 평준화 시킬 수 있는가? 나는 광주의 아픔이 파리와 런던의 민중들이 겪었던 아픔보다 더 값지고 숭고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건 비교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거다. 오히려 다음의 사례가 말하는 것과 같이 황석영의 발언이 "광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저그런 '지옥'의 하나였을 뿐"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4년 초, 포위 상태에 놓여 있던 사라예보에서 일 년 이상 거주해 왔던 영국의 포토저널리즘 작가 폴 로우는 절반 이상이 파괴되어 버린 어느 미술관을 빌려 자신이 찍어 왔던 사진들을 전시했다. 그 당시까지도 파괴되어 가고 있던 자신들의 도시를 찍은 새로운 사진을 간절히 보고싶어 했던 사라예보 주민들은 소말리아의 사진들이 포함된 데에 적잖이 언짢아했다. 로우는 소말리아의 사진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전문 사진작가이며, 그저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두 개의 작품을 전시했을 따름이었던 것이다. 사라예보 주민들로서도 언짢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타인들의 고통과 나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사라예보가 겪은 수난을 그저 [잔악행위의] 또 다른 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양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어느 지옥이 더 나쁜가?)이었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후, 165-166pp)
 
광주의 아픔은, 광주의 기억은, 그것이 한반도 민중, 나아가 세계 민중이 함께 아파해야 하고 함께 공감해야 하는 그런 보편성의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하는 것과 정확히 동시에, 다른 종류의 아픔으로 환원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호남의 특수한 아픔과 고통으로 기록되어져야만 한다. 광주의 그것을 파리와 런던 등 다른 도시들의 상흔과 같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 봐, 광주도 별거 아니잖아. 다른 나라에서도 다 겪는 일인데 뭘. 그것도 프랑스,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말이야. 그러니 우리가 그런 고통을 겪는 것 쯤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 거쳐가야 할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면 돼."라고 말하는 것처럼 광주를 모욕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이런 발언은 또 광주의 상처를 한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아픔으로 승화시키는 척 하면서 한국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는데 일조한 부품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그것도 대륙 반대편 끝에 있는 다른 나라의 '부품'과 비교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가 민주국가로 발돋움 하는데 기여한 것처럼 광주항쟁도....." 그렇게 정상국가화에 기여한 부품이 되어버린 광주항쟁에서는 이제 윤상원이라는 이름도, 김남주라는 이름도, 그리고 도청을 사수하며 신군부와 맞선던 수많은 용감한 시민들의 이름도 사라지고 없다.(그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단지 '수많은'이라는 형용사로 덮어버리고만 나의 무지함을 망자들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란다.) 그것 스스로는 고통을 느낄 수도, 고통을 나눌 수도 없는, 그 누구의 이름도 아닌 '국가 유공자'만이 남게 된다.
 
왜 '국가 유공자'는 고통을 느낄수도 나눌수도 없는가? 그것은 옛날 일이기 때문이다. 옛날 일이고 그 가해자들의 주범은 이미 10년도 더 전에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았다. 가해자는 처벌 받았고, 피해자는 금전상의, 명예상의 보상도 받았다. 그러니 잊어라! 굳이 필요한 기억이 있다면(어떤 기억이 필요한지는 비로소 '정상상태'가 되신 국가께서 친히 선정하신다) 박물관으로 보내버려라! 이제부터 기억은 박물관이(즉 '국가'가) 압수한다! 그 박물관 입구에서는 친히 '정상국가'의 경찰들이 치안을 맡아주겠다. 그러므로 이 박물관이 허락하지 않은 기억을 다시 되살려 박물관의 벽을 허무는 행위는 '정상국가'의 '정당한' 공권력으로 철저히 응징하겠다! 이것이 오늘날의 '정상국가'가 광주를 화석화시키는 방식이다. 그들이 볼 때 광주의 고통을 느끼고 나눈다는 것은 피해망상증에 걸린 환자가 이를 전염병으로 발전시켜 SI처럼 퍼뜨리는 행동쯤으로 보일 것이다. 치사하게 돈도 다 받아 처먹고서!!!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김상봉 교수가 오늘(2009.05.15) 아침 라디오 인터뷰에서 황석영을 비판했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김상봉 전남대 교수, “황석영의 자기망각, 굳이 변절로 표현하기도 꺼려져”>>, CBS 라디오) 그는 "다른 나라에도 시민이나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발포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 당시의 신군부라는 건 합법적인 국가권력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도대체 이 한반도 땅에 김상봉 교수가 말하는 의미의 합법적인 국가권력이 세워진 사례가 있는가?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 권력이 노동자와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권력의 합법성은 뿌리에서부터 부패되기 마련이다. 오히려 나는 그 국가권력이 정상적이었기 때문에 '발포'할 수 있었다고 본다. 광주의 유공자들에게 보상도 했고, 명예회복도 시켜준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바로 '정상국가'이기 때문에 백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짓밟는게 아닌가? 이건 정상국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은 만들어질때부터 공(空)문구였기 때문에 국가존립 여부를 여기에 기댈 필요는 없는 거고, 다만 인민주권을 끊임없이 기만하고 위장할 이데올로기만으로도 국가는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물론 그 정당성을 인정한 것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래서 1980년의 전두환, 2009년의 이명박 모두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준 그 '소수'에게 보답을 해야 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 국가의 정상적 정치행위 아닌가?1)
 
나는 여기서 갑자기 평생 학교와 병원 등 근대 문명 시스템을 비판하는데 지적 노력을 쏟아냈던 이반 일리히의 주장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박홍규 역, 미토, 2004. 원제는 >)에서 현대 의료 시스템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가한다. "현대 의료의 종사자들은 인내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이 환기하는 의문 부호를 인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한 건의 서류 속에 모을 수 있는 불평의 목록 속에 떨어뜨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160쪽)  현대 의료의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최소한 그것을 '동정'이라도 하려는 노력도 내팽겨친 채, 고통을 인위적인 분류 속에 밀어넣고 고통받는 주체와 '고통'을 끊임없이 분리시켜 '고통'을 '삭제'하려 한다. 그 결과 환자는 의사에게 점점 타율적인 존재가 되고, 스스로 고통을 인내하는 힘을 상실하게 된다.2)
 
일리히가 말하는 현대의료의 의사와 환자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광주항쟁의 생존자로 치환시켜 생각해 보자. 지난 몇 년간 국가폭력의 가해자였던 '국가'는 어느샌가 군복을 벗고 피해자들을 치료하는 의사의 까운을 입고 나타났다. 의사가 된 국가는 매년 5월 항쟁의 그날이 되면 고통의 환부를 제거하기 위한 집단 의료행위를 벌인다. 그러나 고통은 제거되기는 커녕 항쟁 이후의 지난 30년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부호를 던진다. 민주주의에 대해, 온전한 해방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 부호는 그러나, 끊임없이 국가에 의해 마침표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2003년부터 병원장에 취임한 노무현 원장은 '비정규직'이라는 커져만 가는 의문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몸에 불을 붙인 이용석 열사 등을 향해, "민주화된 시대에 낡은 투쟁방식을 고집한다"는 진찰결과를 내놓았다.(결국 피해망상에 빠졌다는 말 아닌가?) 그 진찰결과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생각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환자들은 결코 병원에 입원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80년 광주는 단지 비극일 뿐이고 매우 우발적이며 비정상적인 사태일 뿐이라는 그들의 생각으로는 고통은 제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상봉의 말마따나 국가와 민중의 항시적 전쟁상태였던 우리 근대사에서 광주는 필연이었다. 진정 고통의 종식을 바란다면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항복을 강요하고 치료받기를 요구할 게 아니라, 고통을 인내하면서도 전쟁상태에서 끝내 승리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empowerment), 그리고 연대(solidarity)가 필요했다.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이와 같이 생존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연대해 줄 것을 호소한 실천적 문학의 상징이었다.
 
그랬던 황석영이 이번에 국립병원 의사로 취직했는가 보다. 그리고는 외친다.  "내 서류가방을 찾아보니까 너네가 겪고 있는 고통의 증상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있던 사례더군. 그러니 뭐 특별한 것은 아니고, 우리 정신과에 와서 치료를 받도록 해."
 
 그래서 나는 감히 이렇게 주장한다. "광주를 그 스스로 말하게 하라! 광주의 기억은 국가의 것이 아니다. 그 아픈 기억을 낳은 환부를 간직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이들과 소통하면서 상처를 치유하려고 연대하는 이들의 것이다. " 역사 속에 상처로 남은 우리의 모든 기억들은 이제 병원에서 퇴원하라. 그리고 아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모두가 아팠던 2008년 5월 처럼, 모두가 광주의 상처를 안고 가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그러나 나의 이런 언급이 한편으로는 국가는 경제적, 계급적 관계의 반영일 뿐이라는 표출론적 국가관을 표출론적 국가관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그런 오해를 낳을 수도 있는 언급을 한 것은 내가 표출론적 국가관을 지지해서라기 보다는 김상봉 교수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쓴 비유적인 궁여지책일 뿐이었음을 밝힌다.
 
2) 이와 같은 일리히의 현대 의료 비판에 대한 분석이 이 글의 주제는 아니므로 그의 주장에 대한 옳고 그름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여기서는 단지 그의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대한 비유만을 빌려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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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혹, 가장 현실적인 드라마.

무슨 개소리냐구?

 

아, 나도 아내의 유혹이 막장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시청자들을 우롱한다고 느끼며 매일 저녁 분노를 표하고 있지만,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오늘 발견하고야 말았다.

 

뭐냐구?

 

이 드라마는 엄청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다.

남편이 부인을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 하고,

사기쳐서 건설회사를 빼앗으려고 하고,

뭐 기타 등등....

 

극악무도한 사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 많은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경찰'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나온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신애리가 만취한 민소희를 한강변에 냅다 버리고 온 사실을

구은재, 민회장, 민건우 등이 알았을 때,

경찰이 한 일이라곤 고작 이들에게 민소희가 한경변에서 머리를 크게 다친 채로 발견됬다는

사실을 알린 것 뿐이다!!

 

그리고 범인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은 오로지!!!

자기들이 직접한다!!!

이들의 감정상태는 가희 원초적이다.

민소희 주머니에서 정교빈 명함이 나오자 꼭지가 돌아버린 민건우는

정교빈에게 냅다 달려가서 멱살잡이를 한다.

(실제로 정교빈은 그 사건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증거라고는 예전에 천지건설 사장일때의 명함이 발견됐다는 것 뿐인데도!!!)

 

구은재가 바다에서 죽지않고 살아났을 때도 경찰에 바로 신고하지 않고

복수하겠다며 제2의 인생을 산 것도 그렇다.

 

이것만으로는 이들이 경찰을 신뢰하지 못해서 직접 행동에 나선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떤 순간에도 경찰은 처음에 수사하는 척만 하다가 어느순간 사라져버리는

기가막히게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푸코의 말대로 근대 권력이 국민을 '살게 만들고 죽게 놔두는' 것이라 했을 때,

이 놈의 경찰들은 죽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쓰고 오로지 가족들에게 정보전달자 역할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한다!!!!

 

아, 뭐 이렇게 지극히 현실적인 드라마가 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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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1) 더 생각해 볼 점 하나.

 

가만 보면 이 드라마, 정상적으로 사는 인간이 없다.

대사만 봐도 거의 2/3 이상이 악다구니다.

신애리만 그런게 아니라, 민소희, 구은재, 정교빈, 민건우, 민회장.... 할 것 없이 다 소리지르고 집어던지면서 "복수할꺼야"를 외친다.

 

하지만, 단 한사람만이 '복수'를 말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며 산다.

누구냐고?

바로 얼마전 구강재(구은재 오빠)와 결혼한, 극중에서는 정신연령이 심히 딸리는 장애(이걸 장애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를 가진 것으로 나오는 정하늘(오영실 분)이다.

 

그녀는 가족들이 복수심을 품고 있는 어떤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은재, 그리고 은재 오빠 구강재를 열열히 사랑할 뿐이다.

그리고 가끔 교빈이 아들 민호랑 장난감 놀이하면서 논다.

요새는 강재식구들과 떡볶이 장사도 한다.

 

그래서...

결국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악다구니 쓰지 않고 정상적인 감정상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정하늘 뿐이라는 거다. 그 사람이 장애를 가지고 있든 아니든 간에. 오히려 그녀가 정신연령이 낮기 때문에 미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지도 모르지...

 

 

 

덧붙임2) 더 생각해 볼 점 둘

 

이 드라마에서 가장 '쎈' 캐릭터는 뭐니뭐니해도 신애리다.

모든 사건은 신애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신애리로 끝난다.

따지고 보면 이 드라마 인기의 최대 수혜자는 장서희가 아니라 김서형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신애리의 악다구니의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극이 결말로 치달아가면서 정신나간 정교빈은 다시 은재를 자기 마누라 삼겠다고 설쳐대면서 애리를 떨쳐내려고 하고, 시어머니도 그녀를 빨리 나가주기만을 고대하는데도, 신애리 꿈쩍도 않는다. 오히려 아주 강한 귀소본능을 보인다. "난 누가 뭐래도 천지건설 며느리야!"

 

이야~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며느리도 아니고, 천지건설 며느리랜다.

자본의 인격화된 숭상화!!! 님 좀 짱인듯!!!

그래서 본인은 바라지도 않는데, 정교빈은 다시 천지건설 사장 자리에 앉혀 놓고야 말겠단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며느리 자리로 돌아가고... 그게 원래 자기 자리라는 거다.

 

근데 이상하다.

신애리는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세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뭐가 아쉬워서 자기 싫다는 집에 며느리로 굳이 남겠다고 바득바득 버팅기는 걸까?

 

이유는 단 하나, '민호' 때문이다.

그녀는 민호를 아빠 없는, 또는 엄마 없는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게다가 민호만 함께 있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적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쩌면 민호가 이 드라마의 결말을 좌지우지하는

최종적인 지배자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이 드라마는 '민호'라는 상징으로 대표되는 정상적, 그리고 부르주아적 가족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신애리의 욕망이 극한에 치달으면서 주변인물들과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그린, 아주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막장' 드라마라고 부를 만큼 거부하고 싶은 현실을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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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당원 모임을 시작하며....

다시 학생운동을 고민한다

- 대전시당 학생당원 모임을 시작하며

 

 

 

 

1. 우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나를 법적인 '성인'으로 인정해 준 그 순간부터 유기체적 사회관념을 가지신 높으신 분들의 눈으로 보기에 이 사회의 암세포 같은 일들만 골라 해왔다. 주로 복무해 온 분야는 '학생운동'. 작년 이맘때쯤부터 암세포의 세포분열이 난관에 부닥치자 암세포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2.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얼마 전 사무처장님의 제안으로 학생당원모임의 초동주체를 하겠단 결심을 했다. 이 모임이 그냥 학생'모임'인지, 학생'운동'모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정당에서 20대 학생당원들이 모여서 뭔가를 하겠다는 모임이라 했을 때, 그 모임의 모습이 (내가 해 왔던 암세포질과 반대되는) 정상세포의 활동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그간 내가 해 왔던 고민이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나는 여기서 학생당원모임이 학생운동을 하는 모임이라 했을 때, 그것이 가져야 할 올바른 방향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3. '88만원세대'의 소심한 변명

 

 

작년 촛불집회 이후 전 사회적으로 세대담론이 폭발했다. 주된 화두는 역시나 '촛불소녀'로 대표되는 10대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었지만, 이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얘기는 항상 "동생들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20대 대학생은 대체 뭐하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여론은 "몇날 며칠을 토익책을 끼고 도서관에서 씨름해야 하는 88만원세대들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라는 소심한 항변으로 맞섰다. 즉 취업을 비롯한 경제적인 문제가 대학생들을 옥죄고 있기에 너무 힘들다는 것.

그러나 이런 변명을 '이해' 할 수는 있으나, 100% '동의'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88만원세대를 386세대와 비교 하면서, 386세대의 대학생활은 졸업이후 안정적인 취업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경제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운동에 뛰어들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80년대의 경제적 상황이 비교적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근거에서인가? 게다가 따지고보면 386세대라고 말하는 집단은 사실 그 시절 20대 전체라기 보다는 일부 엘리트 대학 재학생을 지칭하는 것인 반면, 88만원 세대는 20대의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는 작금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20대 전체라고 볼 수 있다. 흔히들 '3저호황'같은 말로 80년대의 경제적 상황을 특징짓지만, 이것도 80년대 말에 가서 나타난 특징일 뿐이고, 오히려 80년대는 79년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사실상 한국에서 최초의 신자유주의 개혁이라 할 수 있는) 경제안정화종합시책의 자기장 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한 피해는 오롯이 (최근의 88만원 여성에 비견되는) 여성 노동자 등 하위계층들이 짊어졌고, (그 명칭 자체에서도 대학입학년도가 들어가 있는) 386세대는 이런 위기비용 전가를 피해간 극소수에 해당할 뿐이다.

따라서 두 집단의 단순비교는 불가능하다. 분석의 대상은 <386세대 vs 88만원세대>가 아니라 <80년대 20대 vs 2000년대 20대>로 대체되어야 한다. 분석의 대상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과 다를 바 없이 경제적인 불평등과 억압이 존재했던 20년 전에는 사회변화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게다가 '학생운동'의 주축이 될 수 있는 '학생'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금, 학생운동이 이렇게 왜소한 이유가 무엇인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먹고 살기 힘들기는 386세대를 뺀 나머지 80년대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경쟁을 강요하는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 때는 경쟁 이데올로기보다 더 무시무시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이러한 모든 통속적인 설명은 항상 2%, 아니 20%는 부족하기 마련이다. 나는 이 비어있는 20%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4. 2000년대의 대학사회와 학생운동의 역사적 기원

 

 

내가 통속적인 설명이라고 부른 것들은 대부분 사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경제적 상황, 사회적 분위기 등등. 그러나 여기서 빠진 20%는 바로 대학과 대학사회 그 자체, 또는 더욱 구체적으로 학생운동 그 자체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변화의 출발점은 당연히 80년대이다. 2000년대 대학 현실에 대한 원인을 80년대에서 찾는다고? 오해는 금물, 뭐 내가 족보를 따지고 올라가서 학생운동사의 명인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역사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나는 학생운동이 전체운동의 기능적인 일부분, 즉 시스템 전체에서 하나의 부품으로서가 아니라 전체의 운영원리에 귀속받으면서도 능동적으로 그 시스템에 역반응하는 독립적인 체계라고 했을 때, 그것이 대학과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변화시키려 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 대학의 현실은 정확히 90년대 학생운동의 부정적 성과물, 그 자기장 안에 머물러 있다. 90년대 학생운동은 소멸했지만, 그 부정적 효과는 여전히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고, 그것이 지금의 학생사회를 질식하고 있는 한 축이다. 이를 굳이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반지성주의'라고 할 수 있다.

 

 

 

1) 또 다른 지식의 세계를 만들어 낸 80년대

 

 

한국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을 배제하고 생각해 본다면 대학이라는 공간은 이념형적으로나마 '지식'의 세계를 통해 민주주의를 약속하는 공간이다. 지식의 광대한 세계에 접근함을 통해 시민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겠다는 것은 체계가 약속하는 유토피아를 실제로 획득하겠다는 각 개인들의 의지가 실현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실속의 대학은 그러한 약속을 수시로 배반하는 공간이다. 오히려 지식의 위상을 그것을 차지하여 계층상승 욕구를 실현하려는 것으로 추락시킨다. 이러한 약속과 배반의 순환은 프랑스 혁명이 약속했던 보편적 시민권의 약속이 역사속에서 지배층에 의해 끊임없이 배반당했던 순환과 정확히 맞물린다.

대학에서 '생산'되어 사회로 '유통'되는 지식이 보편적 시민권이 부정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대학생은 지식의 보편성, 지식의 진리성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그 끊임없는 의심의 결과, 그들은 대학 그리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지식의 세계 외부에 또 다른 지식의 세계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우리의 80년대가 바로 그랬다. 광주항쟁은 모든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배우는 지식이 학살당하는 민중들의 현실을 조금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고, 그래서 그들은 다른 지식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 다른 지식의 세계의 중심에 바로 맑스-레닌주의가 있었고, 그들은 맑스-레닌주의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바꿔 나가려 했다.1)

다른 지식들은 교수가 강단에서 지휘하는 강의실에서가 아니라 학회와 써클을 통해 유통되었다. 학회가 1,2학년 학생들의 적극적인 '의식화의 장'이었다면, 써클은 3,4학년들이 또 다른 지식세계를 대중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이런 움직임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 바로 '위장취업', 즉 학출 노동자가 되는 것이었다.

80년대의 이런 활동구조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존재한다. 교조적인 이론체계의 답습, 폐쇄적인 조직문화,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는 인텔리적 습성 등등. 그러나 이런 비판을 어느 정도 수긍한다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은, 이들의 실천이 '국가공인 지식공장'인 대학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그 지식생산에 균열을 내고자 했으며 그들 스스로 만들어냈던 독자적인 지식체계를 대중들에게 돌려주면서 민중의 힘으로 사회를 변혁 할 수 있다는 맹아적 가능성을 발굴해 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들을 지탱했던 이론과 이념의 힘이다.

 

 

"저기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단식하며 싸우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매일 쌀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창피해" (SBS드라마 <모래시계>중에서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을 보고 흐느끼는 한 여대생의 대사)

 

 

"현장에 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고등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를 태우는 일이었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정리하는 것처럼 했지만, 사실 내용은 과거의 나와 결별하는 것이었다." (김원, "잊혀진 이름, 학출노동자" 중의 인터뷰 내용 발췌, <고대문화> 08년 10월호)

 

 

마음껏 쌀을 먹을 수 있다는 자신의 존재근거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결국엔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노동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게 개인의 순수한 마음으로 가능한 일일까? 게다가 통계로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많은 대학생들이 집단적으로 그런 결심을 한다는 것이 말이다.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준, 그들 스스로 만든 이론과 이념의 힘이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2) 90년대 운동의 몰락, 이념의 과소결정

 

 

그렇게 뜨거웠던 열기가 왜 이렇게 쉽게 냉각되어 버린 것일까? 집회와 투쟁, 자유, 행복, 정치적 충만감의 경험, 슬로건과 노래, 말의 격류 ― 누구의 말대로 ‘혁명의 마법’에 취해 있었던 이들은 왜 그렇게 빨리 마법에서 깨어났던 것일까? 이제 다시는 그 ‘광기’(狂氣)의 시대는 오지 않을 거라는 자기부정은 그들 세대를 넘어 지금의 88만원세대들에게 까지 이어져 지금의 세대에게 그런 상상의 기회조차도 거세시키고 말았다.

자기부정은 80년대 말 90년대 초 부터 시작되었다. 흔히들 사회주의권의 붕괴, 91년 투쟁 패배, 3당합당을 통한 보수 대연합 등의 이유를 들지만, 이런 것들도 다 외인론일 뿐이다. 그런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어쩌면 그렇게 쉽게 무너져 내렸단 말인가? 그것을 가능케 했던 내적인 이유가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86-87년을 경과하면서 운동진영은 5공과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래서 규모있는 대중동원이 가능한 학생운동의 힘에 많이 의존했다. 그래서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 학생운동은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86년 NL노선이 대두하여 학생운동의 주류로 성장한 것을 한국 학생운동이 왜곡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보는 견해는 옳지 않다. 학생회 중심 운동이 먼저 제기되고, 사후적으로 NL의 대중노선, 사람중심 사상이 이에 적합한 운동론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의 사상 자체라기 보다는 그것이 실제로 작동해온 과정에 있다. 그 전까지 학회활동을 하던 학생들은 2학년이 되자마자 각급 학생회의 활동가들로 충원되고, 이들은 자기조직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조합조직으로서 학생회의 임무와 정치투쟁체로서의 학생회의 임무를 동시에 책임지게 된다. 기존의 ‘학회-써클’이라는 지적공동체가 ‘학회-학생회’라는 틀로 대체되자 그들 스스로 생산해 낸 급진이념은 조직이데올로기 차원으로 제한된다. 학생회 간부가 된 활동가는 학생회의 조직 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봉사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념 자체의 역동성은 감소하게 된다.2)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3, 4학년 때 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면서 나는 90년대 초반 선배들이 만들었던 선거 자료집, 팜플렛까지 다 뒤져보곤 했다. 그 속에서 그려진 선배들의 활동 모습은 나에겐 거의 로망이었다. 첫 페이지부터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세계 재패전략’을 비판하고, 중간쯤 가면 타 선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학생의 정치활동이구나! ‘학우들이 무서워서’ 그런 말을 쓰는걸 두려워 했던 나를 포함한 당시 나의 동료들에게 그런 자료집을 보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기억한다. 대략 50페이지 안팎 되는 자료집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씨뻘갰던 정치색은 조금씩 옅어지고, 등록금 투쟁, 매점과 식당 개선, 강의평가제 개선 등 학우들의 구미를 당길 공약들이 보물상자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것을. 그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세계 재패전략’을 비판하는 것과 식당 밥 개선하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것이었다. 결국 요런 자료집을 맨날 끼고 앉아있던 나는 4학년때 치룬 선거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해 가려진 성균관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자’는 멋들어진 총기조를 뽑아놓고는(그래서 선본이름이 'Zoom In'이었다) ‘셔틀버스 무료화’라는 강력한 복지공약을 전면에 내거는 코메디를 연출했다. 이러한 지적 교조성과 정서적 대중성의 묘한 공존은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지만, 물과 기름처럼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중 중심 사상이 불러온 기이한 역설인데, 사실 이는 대중의 지식인화가 아니라 지식인-대중의 분담 관계를 전제한 뒤 그 안에서 둘의 유대를 추구한 NL 주류 사상의 심층의 문제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를 비판한 좌파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들은 NL에 비해 학생회 상층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세력재편 구상의 중심을 두었기 때문이다.3)

결국 문제는 학생회라는 자조직의 재생산을 중시하는 체계가 ‘학회-써클’이라는 지식공동체를 질식시키면서, 대항 지식인 주체 형성이 중단되고 대학내에 반지성주의의 토양이 확산되었다는 데 있다. 혹자는 80년대 이후 학생운동이 대중과 제대로 융합하지 못하고 쇠퇴한 데에는 과도한 이념에 대한 집착, 즉 이념의 과잉이 문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념의 과소화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외형적으로는 자조직의 이념에 집착해 그것을 확대재생산한 듯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이념 그 자체가 아니라 이념의 잉여적 결과물인 대학생 하위문화에 대한 집착이었다.4) 9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대학생 하위문화인 신세대 문화를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5)이 나온 것도 90년대 학생운동의 이념의 과소화에 따른 변종일 뿐이다. 나는 그래서 ‘이념의 시대’가 종결되었다고 선언된지도 이제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고리타분하게 다시 ‘이념’이 중요하다고 주장할 참이다.

 

 

 

3) 2000년대, 반지성주의 그리고 대중의 역습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나는 1학년때 같이 하숙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에게 조롱을 받으면서도 학생운동을 부여잡고 6년을 버텼다. 그래서 이 시절의 운동이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가슴아픈 기억이지만, 최대한 냉정하게 이 시절을 평가하려 한다.

自繩自縛. 2000년대 학생운동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난 망설임 없이 이 단어를 선택하겠다. 2000년대는 90년대가 만들어놓은 반지성주의라는 척박한 토양을 걷어내지 못하고 학생회라는 비료와 화학약품에 의지해 연명하다가 수시로 ‘대중의 역습’을 받은 시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억나는 사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에선 거의 악몽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인 ‘00년도 사태’. 2000년에 당선된 총학생회가 등록금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한 달 가까이 대학 본관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총학생회는 여기서 학교 당국의 학생회와 비판적 성향의 교수에 대한 시찰문서를 발견하고 폭로한다. 이에 학교 당국은 점거사태가 계속되면 삼성재단이 대학에서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재단 철수에 반대하는 일부 학생들은 ASA(Anti Student Association)를 결성하여 총학생회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총학생회가 삼성재단 퇴진을 주장한다는 거짓선전을 하기에 이른다. 이에 학우들 여론이 뒤숭숭해지고, ASA의 총학생회 퇴진 서명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터진 총학생회 사무국장의 공금횡령사건. 결국 이 사건 이후 성균관대에선 총학생회에 운동권이 영영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입장은 대체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운동권 총학생회의 극렬 투쟁방식이 문제라는 입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ASA라는 조직은 학교에서 사주한 어용단체라는 입장. 나는 두 입장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의 원인은 이미 학생운동 내부에서 싹트고 있었다. “청년좌파여, 일어나라”라고 외치는 선본 자료집에서 쌩뚱맞게 식당 개선 공약이 튀어나올때 부터 말이다. 부실한 이념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조야한 대중성으로 대중을 현혹하여 수권한 세력(이건 어떤 특정 정파를 일컫는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운동세력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이 결국 대중과의 약속을 기만했을 때, 대중의 역습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가능성이 부정된 상황에서 여전히 그 ‘낡은’(즉 대중의 사상이 되지 못하고 그들만의 조직 이데올로기로밖에 기능하지 못하는) 사상에 기대어 학생회를 통해 자조직을 재생산하려는 세력에게 신뢰를 보내줄 대중은 어디에도 없었다. 맑스-레닌주의가 퇴각하고 생긴 일시적인 이념의 진공상태 이후 온갖 다양한 포스트주의 담론들이 자본주의 상품화와 기묘한 동맹관계를 형성해 대중의 의식을 지배해가기 시작했고, 대통령도 선거로 갈아버릴 수 있게 된 마당에 한 학교의 총학생회쯤을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렇게 이념이 깨끗이 청소된 이후에 남은 것은 모든 종류의 저항적 정치행위에 대한 거부와 악무한적 비난 뿐이었다. 그렇게 학생사회는 앙상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 하나는 버스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고려대학교의 05년 이건희 철학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 이 사건은 당시 워낙 언론을 많이 타서 유명한 것이긴 하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05년 5월 2일, 그러니까 노동절 집회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 고려대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 수여식을 진행하려 하고, 이에 반대한 운동권 학생들이 행사장 정문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인다. “노동탄압에 앞장 선 이건희가 무슨 철학박사 학위냐?” 시위는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아니 그 반응은 차가워서 더 뜨거웠다. “너희들 때문에 삼성 취직 못하면 책임질래?”, “운동권이 학교 이미지 다 깎아먹는다.”는 내용이 인터넷 게시판을 달궜고, 운동권 학생들은 당황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시위 참가 진영 중 일부는 “학우들과 소통이 미흡했던 점 사과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고, 이 성명 때문에 참가자들 내부에서 몇 달에 걸친 게시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이 때 당시 우리를 괴롭혔던 가장 큰 문제는 삼성 당국과 보수언론의 역공이 아니라 대중들의 역습이었다. 대중들에게 사과성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노동탄압의 전도사에게 철학박사학위는 안된다는 상식적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독한 반지성주의. 자신의 취업과 스펙쌓기에 방해되는 어떤 이념도 용서할 수 없다는 무(無)이념, 아니 반(反)이념의 이데올로기. 그렇다고 우리가 대중들의 그런 반(反)이념 공세에 어떤 분명한 이념으로 맞선 것도 아니었다. 철저한 무방비 상태에서 우리는 이념의 해체를 요구받았다.

 

 

 

4) 기이한 출현, 촛불집회

 

 

이렇게 정치와 이념 전반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는 동안, ‘새로운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들이 출현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집회부터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까지, 역사는 2000년대를 촛불의 시대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작년 광우병 촛불은 쟁점이 끝없이 확장되어 대운하, 민영화, 교육 문제까지 뻗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 또한 촛불의 민주주의를 한껏 기대하게 되었다. 정치는 혐오받는데 민주주의는 칭송되는 기이한 현상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글이 촛불집회의 성격과 전망을 논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자면, 정치에 대한 혐오와 촛불의 민주주의에 대한 칭송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었다. 촛불은 끊임없이 자신을 정치와는 거리를 둔 순수성의 영역에 안주시키려 했고, 그것은 ‘촛불소녀’라는 캐릭터의 이미지, 유모차 부대 등 여성적 이미지를 통해 재현되었다. 여성의 정치적 진보를 표현하는 듯이 보였던 촛불 속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촛불의 비정치성, 순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6)

나는 물론 ‘촛불’이 ‘횃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촛불이 꺼진 지금 촛불이 비추지 못한 ‘우리 안의 타자’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이들에게까지 빛을 비추기 위해 더 많은 촛대와 연료를 모아올 고민을 할 ‘정치’와 ‘이념’의 문제를 우리 앞에 다시 불러오는 문제가 여전히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 학생운동,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그래서 학생모임이 될지 아니면 그저 ‘청년학생사업’만 하다가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모임에 대해서 내가 너무 잔소리가 많았던 것 같다. 운동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나와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기에 이 글이 마치 나 개인의 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경제위기에 청년들이 모여서 뭔가 해보겠다고 모였으면 무라도 자를 칼 정도는 갈아야 구색이 맞지 않겠나? 사업의 세부적인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중요한 논의는 이런게 아닌가 싶어서 괜한 종이와 잉크 낭비를 해 봤다.

앞에서도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초유의 사태에 적합한 정치이념을 다시 사유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루한 이념’은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시켜야 하는 것이다. 학생회 중심주의라는 왜곡된 질서가 질식시켜버린 대항 지식인 주체 형성이라는 학생사회 고유의 기능을 다시금 확인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시 ‘운동’을 재개해야 한다. 나는 이를 편의주의적인 방식으로 사고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를테면 대학생이라고 그들이 당면한 문제에 초점을 맞춰 등록금 투쟁이나 심지어 학자금 무이자 대출운동에 집중하자는 주장은 학생운동을 ‘중산층 운동’화 할 뿐이라고 본다.7) 학생운동은 당연히도 지식의 세계의 체계적 배반에 맞서 전후방 가릴 것 없이 억압받는 민중을 대변하는 역할을 다 해야 한다. 나는 이를 위해 필요한 이념의 무기가 바로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그리고 생태주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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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최근에 알게 되어 깜짝 놀란 사실이 있다. 요즘 대학생들이 토익이네 토플이네, 거기다가 JPT네 하면서 외국어 공부에 열을 올린다고 하지만, 사실 7-80년대 대학생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외국어 공부의 목적이다. 요즘엔 취업 또는 심지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자막 없이 보기 위해서 외국어 공부를 한다하지만, 옛날에는 일본어 등으로 된 자본론을 읽기 위해 외국어 공부를 했단다. 아, 너무 수준차이 나지 않나?

 

2) 장석준, 「필요한 것은 운동이다 : 90년대 학생운동의 비판적 회고와 전망」,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中, 이후, 1998

 

3) 장석준, 같은 글

 

4) 김원,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이후, 1999

 

5) 이동연 외,『대학문화의 생성과 탈주-새로운 대학문화운동론을 제안한다』, 문화과학사, 1998

6) 이상길, 「순수성의 모랄 - 촛불시위에 나타난 ‘오염’에 관한 단상」, 『당신은 왜 촛불을 끄셨나요』中, 산책자, 2009

7) 이런 운동에 메몰되면서 어떻게 임금투쟁에만 메몰되어 조합주의화 되는 민주노총을 비판하고 혁신시킬 수 있겠는가? 특히나 그것을 자기 과제라 안고 있는 진보신당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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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강령 전문(前文) 예찬!!

 

 

 

 

 

 

 

 

 

1. 참된 자유와 만남이 실현된 나라를향해 현실 국가를 끊임없이 지양하는 활동이 정치이다.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형성할 때, 나는 자유이다. 하지만 나는 오직 너와 만나 우리가 될 때에만 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삶의 진리는 만남이요, 자유는 본질에서 사회적이다. 나의 자유는 그 만남의 공동체가 확장되는 만큼 넓어지고, 그 만남의 온전함만큼만 오전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로운 삶을 위해, 너와 내가 평등하게 만나 서로 주체로서 우리가 되고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이 바로 정치이다.

사람들의 수많은 만남이 정해진 범위와 형식 속에서 하나의 전체를 이룬 것인 나라이다. 그리고 나라가 역사 속에서 사회적 실체로서 실현된 것이 국가이다. 이처럼 국가는 나라의 현상인 한에서 언제나 불완전하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존하는 국가는 참된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부정되고 지양되어야 한다.

국가는 그 형식에서 모든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모든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 실질에서, 국가는 모든 시민을 위한 사회공화국으로서 평등과 평화, 공공성과 사회연대에 기반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만남의 최종적 전체가 아니므로, 더 큰 전체인 인류공동체를 향해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의 참된 만남을 위해 생명의 터전인 자연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

 

 

 

2. 오직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만 인간의 참된 자유와 참된 만남의 공동체가 가능하다.

 

우리가 나의 자유를 너와의 만남에서 찾지 못할 때, 자유의 주체는 고립된 개인이 되고 객체는 사물이 되며, 둘의 관계는 강제와 폭력이 된다. 사람이 그렇게 홀로 자유의 주체가 되려 할 때, 다른 이를 평등한 주체가 아니라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사물의 욕망에 눈멀어 남을 도구화하는 자는 결국 자기도 사물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 아래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자본의 노예이다. 자본이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노동자는 오직 노동력을 파는 것 외에 다른 생존수단이 없는 사회에서노동은 자본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끊임ㅇ벗는 이윤추구를 통해 자기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상품화하고, 자연조차 수탈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 ...)

우리는 이 위기를 오직 자본의 지배 자체를 극복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 인류가 이 문제를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개척 또는 군사력으로 해결하려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기다리는 것은 인류 문명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전쟁과 죽음밖에 없다.

 

 

 

3. 사회연대와 공공성 대신 경쟁의 원리만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는 지옥이다.

 

시대의 위기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가 대응할 때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유된 이상에 따라 사회공화국을 형성하는 것 자체가 미완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혈연적 유대를 지양하고 보편적 이념에 따라 자유로이 결속할 수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부장적 족보는 신성시되어도, 아무런 공동의 이상도 없는 이 땅에서 국가는 모두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 특정 집단에 의해도구적으로 장악된 권력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날 식민통치와 남북분단 그리고 전쟁의 비극이 모두 그런 공화국을 건설하지 못한 것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국가는 자본증식의 도구가 되고, 권력은 독재로 기울며 인간의 자유와 기본권은 억압된다. 그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민중을국가가 적으로 삼아 공격할 때 나라는 내부적 전쟁 상태에 떨어지고, 민중의지지 대신 외세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려 할 때 나라는 외부적 식민 상태로 전락한다.

연대와 공공성의 원리는 사라지고 경쟁 원리만이 지배하는 곳에서 사회는 양극화되고, 약자는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되며, 소수자는 박해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 도처에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빈민들은 생존의 곤간에서 쫓겨나며,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 만남과 형성의 기쁨 대신 낙오의 공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민중은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무한 경쟁의 지옥에서 자본의 먹이로 전락한다. 

 

 

 

5. 우리는 한국 역사 속에 이어져온 항쟁의 전통 위에 국가 전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민중은 왕조시대부터 식민지 시대를 거쳐 독재 시대를 살아오면서 치열한 항쟁을 통해 자기를 억압과 차별에서 해방시켜왔다. 동학농민전쟁과 3.1운동은 물론 해방 공간에서 통일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각지에서 일어난 민중들의 투쟁 그리고 4.19혁명과 부마항쟁, 5.18 광주항쟁 및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2008년 촛불항쟁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근현대사는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고 안으로는 국가폭력에 맞서 줄기차게 싸워온 역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독재의 사슬을 끊어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으며, 우리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임을 안팎에 증명했다.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노동자, 농민운동 그리고 기층 민중운동은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공공성을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여러 시민운동 및 소수자운동은 인권의 지평을 넓히고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을불러일으켰으며 문화적 다양성을 북돋웠다.

그러나 6월항쟁 이래 한 시대가 지난 지금, 그 모든 진보적 성과가 자본의 폭력 앞에서 전면적으로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민중의 피맺힌 항쟁으로 얻어낸 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의 통제받지 않는 착취의 자유로 전도되었다. 고삐 풀린 자본은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언론, 교육, 문화예술 가릴 것 없이 온 사회를 총체적으로 장악하여 국가를 한갓 수탈기구로 만들었다. 인간을 착취와 억압에서 구하고 생명과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부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새로 세우는 것이 절박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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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스포츠화? - 대중정치에 대한 소고

좀 전에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보는데, <무한도전>에서 '전국 돌+아이 선발대회'라는 걸 하더라. 얼마 전에 1차 예선을 했고, 오늘은 본선이라던가? 여튼 뭐 전국에 노홍철틱한 사람들 다 모아놓고, 그야말로 '또라이'들의 축제를 벌이더라.

 

나도 거의 정신을 놓고 국가대표 또라이들의 '또라이짓'을 넋놓고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저 넋을 넣고 볼 수만은 없는 장면들이 보였다. 약간 쌩뚱맞지만 이 얘기를 시작으로 오늘 날 남한사회에서의 대중정치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한바탕 또라이짓이 끝나고 장면이 방송국 스튜디오로 바뀌더니 이제 '전국 돌+아이 연합회 창립총회'를 하겠단다. 총재는 노홍철. 양 측면에 연합회의 전국회원들이 각자의 개성에 따라 '돌+아이'짓을 하며 총재님을 연호한다. 창립총회의 사회를 보던 유재석은 총재님의 기념사가 끝나자 귀빈으로 초대된 박명수에게 축사를 부탁한다. 그런데 박명수 왈, "저는 지금 이 행사가 맘에 들지 않아요. 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런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네요. 이런 1%의 사람들을 위해서 전파를 낭비해서 되나요? 이 1%를 제외한 대다수의 저와 비슷한 보수층들은 이 행사를 원치 않아요!" 박명수식 호통개그로 받아친다. 이에 노홍철 총재는 회원들에게 야유를 선동한다. 일순간 모든 회원들은 보수논객 박명수를 향해 팔뚝질을 하며 "물러가라"를 외친다.

 

그리고 이어진 전진과 정형돈의 축사. 우선 전진이 선빵을 날린다. "저는 박명수 의원(?)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이 행사는 참 뜻깊은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톤을 이어받은 정형돈 왈, "저는 여러분들이 진정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발언에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물론 다 웃자고 하는 짓인거 안다. 덕분에 나도 주말 저녁에 밥먹다 말고 실컷 웃었다. 그런데 위에서 보여진 장면에서 출연자들이 얼핏 드러낸 보수와 진보(='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물론 출연자들이야 별 뜻 없이 한 소리겠지만) 나에게 밥 숟가락을 놓을 때까지 밥알을 씹는 횟수만큼 '정치'의 의미를 곱씹게 만들었다. (우선 미리 전제를 깔아두자면, 여기서 내가 주장하는 위 장면에 대한 해석은 그저 상징분석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발언 의도 같은거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이다.)

 

 

*      *      *

 

 

여기서 돌+아이 연합회 회원들은 노홍철에게 광기어린 신앙을 보여준다. 정형돈은 이들을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고 찬사를 전한다. 그리고 박명수는 이들은 단지 1%에 불과한 소수일 뿐이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 듯 하다. 작년 5월, 수십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이명박 탄핵을 외쳤고, 이명박은 이들은 그저 소수의 사람들, 또는 그들에 의해 선동된 '정신나간' 사람들로 보았다. 아마도 이명박 눈에는 군중의 행동이 마치 노홍철과 그의 신도들이 벌이는 것과 같은 '돌+아이'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 '집단광기'라고 말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정형돈이 그런 것처럼 이 집단광기에 찬사를 보냈다.

 

물론 작년 그 찬란했던 촛불에 대해 '집단광기'라는 말로 일갈해 버린다면, 조갑제 일당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은 나는 '집단 광기'라는 말에 대해 별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물론 '돌+아이'짓 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 내가 좋아하는 연구자 중 한 사람인 김원씨는 그의 책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에서 졸버그의 표현을 빌어, 80년대 남한 대학생들의 학생운동을 '광기의 역사'였다고 표현한 바 있는데, 나는 그 표현에 잠시나마 전율을 느낄만큼 감동했었다. 뭐 더 고상한 표현을 찾자면야 그 당시 대학생들만이 공유했던 집단 지성의 문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 또한 분명히 폭압적 근대로의 전환을 겪었던 8년대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던 '이성'의 스케일로는 도저히 포용 불가능한 비이성의 사건, 즉 '광기의 역사'였던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종류의 광기에서건 '광기와의 거리두기'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비록 지나간 역사이지만 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 찬사만이 존재하지 않고, 반성적 거리두기 또한 존재하는 것일테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런 반성적 거리두기가 지나간 역사에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이 곳에서의 대중운동이 그저 '광기'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도 '광기'와의 아슬아슬한 거리가 요구된다. 그 팽팽한 긴장의 간격을 유지해 주는 것이 바로 지성과 이론의 힘일 것이다. 그 지성과 이론의 인력이 혼돈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려는 광기의 관성의 힘을 끄잡아내어 '역사의 정방향'을 찾아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 나가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우리의 80년대 이후의 역사가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수줍게라도 '민주주의'라는 말을 꺼낼 수 있게 한 것일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년 5월은 물론이고, 아직 촛불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금에도 이런 '비판적 거리두기'의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광기의 귀환'만을 목을 놓아 기다리고 있을 뿐이고, 반대로 이명박과 그의 일당들은 충격요법으로 머리를 백지상태로 만들어 버려 정신병을 치료한다는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마냥 양 손에 전기충격기를 들고 항시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광기'와 그것에 반대하는 '광기'의 대립.

 

그런데 여기, 이 두 '광기' 사이를 비집고 욕먹을 각오하고 이론의 얼굴을 내민 자들이 있다. 저자들에게 들은 바는 없지만, 이들은 분명 '욕먹을 각오'를 했음이 틀림없다. 원래 흥분한 상태에서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잰채하며 깍쟁이마냥 바른 소리 하는 사람들은 양쪽으로부터 모두 공격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그런 말을 한다. 쫌 용감하다. 바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2009)의 저자들이다.

 

 

 

 

당대비평 기획위원회의 주도로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들은 "촛불을 통해 '지금 우리는 어떤 식으로 정치를 사유하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조망"하고자 한다. 그래서 " '웹2.0세대의 민주주의', '다중과 직접민주주의의 장엄한 출현'등 인상적 비평과 비난에서 벗어나, '기억의 자리'로 물러난 듯 보이는 촛불을 다시 혹은 전혀 새롭게 반성"하자고 말한다.

이 책에서 앞서 언급한 나의 주장과 가장 일맥상통하는 것은 바로 백승욱 교수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다.

 

“…촛불집회를 분석하는 이론들이 보여주는 ‘낙관주의’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론은 촛불집회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자율성의 낙관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그 자율성이 넘어서지 못하는 경계들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그 한계를 드러내는 입장을 채택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론은 늘 오히려 ‘비관주의적’이어야 하며, 대중에 대한 상찬으로 가득한 이론적 낙관주의는 결국 대중 스스로 환상에 빠져들게 하고 정세의 엄혹함을 회피하게 만드는 알리바이에 불과할 수 있다. 더욱이, 정세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해, 절망 속의 대중들이 표출하는 탈정치화의 전망을 대중적 봉기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시점에 등장하는 이론적 오해는 대중에게 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      *      *

 

 


백승욱 교수의 이 발언이 담긴 글의 제목은 "경계를 넘어서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다"이다. 그런데 나는 '경계를 넘어 연대로 나아가는' 문제는 일단 살짝 미뤄두고 생각해 보고 싶은 문제가 따로 있다. 그가 여기서 말한 '경계'라는 것은 촛불 내부에 그어진 경계, 그러니까 촛불을 든 순수한 시민과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또는 운동권을 비롯한 온갖 단체 회원 등을 가르는 경계를 말한다. 만약 그 경계를 꼭 넘어서야만 하는 것이라면,  촛불은 왜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그래서 다음 기회에는 꼭 그 경계를 넘어서도록 디딤돌을 놓아주어야 한다. (혹시라도 촛불은 그 경계넘기에 실패했으므로 앞으로 벌어질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운동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촛불에게 안녕을 고한다면 이보다 더 무책임한 행동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소위 '대중없는 사회주의자'의 전형적인 태도이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딱 한가지, 한국사회의 아주 '개성있는' 정치문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여기서 내가 겪은 사례 하나를 더 얘기해야 겠다.

약 두 달 전 쯤인가? 미네르바가 체포되고 사회 전체가 들썩일 당시, 나 또한 이 문제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MBC <100분토론>에서  이 문제를 다뤘고, 나는 근무하는 중에 한가한 틈을 타 인터넷 다시보기로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 때 내 옆을 지나가던 나보다 나이가 3살 어린 동생이 지나가면서 뭐 보냐고 묻는다. 나는 어제 방송했던 <100분토론>이라고 말해 줬는데... 그 아이 하는 말 왈, "누가 이겼어요?" 나는 이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순간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대답해줬다. "야, 토론에서 이기고 지는게 어딨어? 다 서로 다른 의견 주고받는 건데..." 그러나 그 놈은 또 말한다. "에이, 그래도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나는 며칠동안 생각했다. 분위기? 대체 이 놈이 말한 분위기라는게 뭘까? 궁리 끝에 내가 내린 답은 이렇다. 그것은 "누가 말빨이 더 쌨냐"는 거다. 분위기 상으로 누가 더 상대방에게 맹공을 퍼붓고, 누가 더 선정적인 용어 사용으로 상대를 압도하는지, 그래서 누가 더 카메라에 얼굴을 더 많이 비춰 분위기를 '주도'하는지가 이런 방송용 정치토론에 관전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      *      *

 


나는 이런 현상을 일종의 '정치의 스포츠화'라고 명명한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100분토론 같은 프로그램 보는 것이 마치 WBC 생중계를 보는 것과 별 다른 점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잠깐 방향을 틀어서 '정치의 상품화'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자.

 

87년 항쟁이 낳은 미완의 성과인 '직선제 개헌'은 많은 후과를 남겼다. 여기서 주목해 볼 후과 중에 하나가 바로 정치적 주체의 무게추가 군부세력에서 대중 그 자체로 옮겨진게 아니라 오히려 미디어로 옮겨진 것이다. 특히 2000년도 이후 선거에서는 옥회 연설회가 금지되고 미디어를 통한 선거광고가 대폭 허용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 증폭되었다. 그리고 대략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DJ가 'DJ와 함께 춤을'로 재미를 본 이후, 대중가요나 유명 연예인들의 얼굴이 선거에 적극적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선거에서 대중의 능동적 참여가 배제되고 단지 표 찍는 기계가 되어버리면서, 선거운동은 갈수록 더 많은 표를 '벌기 위한' 판촉행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상품화라는게 어딜가나 그렇듯이, 전국의 어떤 편의점에 가도 똑같은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것처럼, '정치의 상품화'로 인해 전국에 어떤 선거구에 가더라도 정책이라는 것은 어딜가나 고만고만하다. 그렇게 4년에 한번, 또는 5년에 한번 열리는 장날마다 불티나게 팔리는 상품이라는게 고작 '개발'과 '성장'이라는 신기루 같은 것 뿐이라는게 비극적인 사실이지만...

 

이로써 한국사회에서 정치참여의 가장 기본적 주체로 여겨졌던 '유권자'는 정치에 대한 '소비자'로 재포장된다. 물론 소비자라고 해도 보통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상품사회의 소비자와는 다른 점이 있다. 어찌되었던 정치상품 시장에서는 '1인1표'의 원칙, 즉 평등선거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도 따지고 보면 교과서 상에서만 통하는 얘기고, 선거날에도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태로운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은 사실상 박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공정택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휴일도 아닌 날에 시간내서 투표할 여유 있는 사람이 강남 부자들 말고는 별로 없었기 때문 아닐까?

 

이렇게 정치적 권리를 가진 시민이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권이 '투표권' 밖에 없고, (이제  1인 시위도 맘대로 못하게 하니 뭐...) 이것 마저도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관전'하는 것 뿐이다. 내가 직접 배트를 잡아보진 못해도, 내가 동일시 하는 대상이 배트를 잡고 홈런을 치면 미친듯이 열광할 권리는 있는거다. 그러나 경기는 관중이 아니라 감독과 선수가 하는 거다. 관중이 열심히 응원하면 선수들이 어느정도 힘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어느정도'까지 인 거고, 그걸 넘어서는 범위에서는 관중의 역할은 없다.

 

그렇게  관전에 매몰된 관중들이 승패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것이 정치적 장 안에서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최대치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진중권, 신해철 등 소위 '말빨 되는' 논객들의 등장은 게임의 열기를 달궈준다. 그러나 이들과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의 등장이 결국엔 관중들에겐 펜스 너머 필드에 더욱 목매게 하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관중석의 부실한 정치적 토양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는 것에 일조한다는 면에서 대중정치 발전에는 독(毒)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의 가장 부정적 인 효과는 사람들을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가둬 놓는다는 것이다. 손석희를 중심으로 양 편으로 갈라진 패널과 방청객은 진보 아니면 보수, 그 외엔 없다. 이런 게임 속에서 사람들이 정치적 문제를 다양하게 사고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봉쇄되는 것이다. 그나마 <100분토론>은 양반이다. <100분토론>을 따라잡겠다고 SBS에서 만든 토론 프로그램을 보니까 뒤에 방청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상대편 패널의 발언이 맘에 안들면 야유도 퍼붓고 갑자기 일어나 자기 얘기 막하고 그러더라. 경기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권한이 없는 관중들이 '훌리건'으로 변하듯이 말이다.

 

 

 

*      *      *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위 아고라 폐인들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집단광기를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금과 같은 한국사회에서 집단 광기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80년대 남한 학생운동이 보여준 광기와 야구장의 훌리건들이 보여주는 광기는 분명 다른 것이다. 우리가 훌리건의 광기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결국 노홍철을 교주로 삼는 '돌+아이'식의 종교적 광기로 수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즉 정치가 코메디화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전혀 웃기지도 않고 그런걸로 웃는데 시간 보내기에는 세상 살기가 너무 팍팍한 사람들은 어쩌나? 한판의 코메디가 끝나고 들려오는 것은 학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목숨을 끊은 어느 대학생의 이야기와 같은 것들 뿐이다. 진중권이 '집단적 유희'로 가둬지길 원했던 그 촛불이 꺼지고 난 바로 직후에 말이다. 어차피 촛불이 집단적 유희로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으니 이미 예상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1848년 프랑스에서의 혁명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시험무대였고, 1968년 5월 혁명이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 몰락의 예행연습"(김정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중에서) 이었던 것처럼, 촛불항쟁도 전례없는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운동의 새로운 순환의 출발점이 되려면 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상황을 넘어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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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싸이코패스인가?

사이코패시(Psychopathy)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중의 하나이다. 원인은 뇌의 전두엽의 이상이 오는것 때문으로 알려져있으며 이 증상을 앓고있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른다.

 

- 위키백과

 

 

사람들이 하도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 하길래 뭔가 해서 한번 찾아봤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난 요즘 스스로 사회성(=사교성)이 부족하고, 성격이 많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는데, 그럼 나도 사이코패스? 헉, 근데 정말 경악스러운 것은 그런 장애가 뇌의 장애 때문이라고?? 뇌의 심각한 장애 때문에 강호순이가 그렇게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는 거의 공상과학영화 스러운 이야기를 언론들이 그렇게 목이 찢어져라 하고 있었던 거라니... 헐~

 

뇌 심리학의 전문가들께서 지껄이신 소리라서 함부로 끼어드는 것이 무례한 짓거리인줄은 아나 한마디만 하자. 옛날에 뇌에 도파민의 과도 분비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인 과잉행동장애(ADHD)를 겪고 있는 한 어린이가 어린 동생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집어던져서 죽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과잉행동장애, 미국의 수영 영웅 펠프스도 어릴적에 겪었던 질환이다. 그럼 어릴적 펠프스도 살인자로서의 잠재력이 농후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거 아닌가?

 

어제 만난 친구가 전해 준 이야기는 더욱 입이 벌어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중앙일보의 싸이코패스 '신드롬' 만들기 놀이에 놀아나신 그 친구 아버지는 약간만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모두 싸이코패스라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단다. "과속하는 놈들은 다 싸이코패스야!" 뭐 요런 식으로...

 

바야흐로 불안과 공포의 시대다. 경제위기가 목을 서서히 졸라오니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악마 때려잡기에 나서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지 않는가? 살인 충동을 느끼는 특별한 뇌 구조를 가진 인간만 세상에서 제거하면 된다는 식의 참주선동은 (게다가 보너스로 그의 가족들도 낯짝 못 들고 다니게 해야 한다는!!!) 대공황 이후의 경제위기의 원인을 게르만 민족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유태인들에게 돌리는 식으로 무마하려고 했던 파시즘의 얼굴과 다를게 뭔가? 이런식의 집단 심리 구조는 조만간 강호순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잠재적 살인자로 몰아서 집단 매도하는 분위기를 만들 것이다. 옛날에 그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에서처럼 눈동자를 감식해서 잠재적 범죄자를 식별하고 미리 잡아 가두는 법도 서서히 등장하겠지... 허허허...

 

그래 다 좋다. 그렇게 할 테면 해 봐라. 근데 하나 제안한다. 일단 80년 광주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학살을 지시했던 전두환의 뇌 구조부터 검사해 보자. 그리고 얼마전 용산 참사를 불러온 살인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서울시경 간부들의 뇌구조, 그리고 이명박의 뇌구조부터 검사하자. 그들에게서도 사이코패스 증상이 나오면.... 그땐 암말 않고 인정하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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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대체 뭘 잘못했나?

사실 난 미네르바가 썼다는 글을 한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충 요새 나오는 증시나 환율과 같은 경제위기와 관련된 글들이 넘쳐나고 있고 딱히 그의 글이 엄청나게 대단한 분석을 했을 거라는 기대같은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항간을 떠도는 온갖 '위기설'들은 굳이 미네르바와 같은 네티즌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겨레, 경향 같은 신문만 조금 봐도 다들 하는 얘기 아닌가? 게다가 루비니 같은 미국 교수들이 시나리오까지 제시하면서 세계경제 대공황을 예견하는데, 내일이면 당장 정부에서 달러매수를 금지할 것이라는 둥의 이야기가 뭐 그렇게 대수인가 싶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데 그의 글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사실 나 같이 돈 한푼 없고 그래서 어디에 투자한 돈도 없는 사람들은 정부가 내놓는 각종 단기 경기부양책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 (그런 만큼 별 기대도 안한다.) 그러나 당장 목돈을 주식이나 달러에 투자해서 mbn뉴스에 나오는 숫자놀이에 눈을 처박고 있는 사람들은 사정이 다르겠지... 또 자식 중에 누군가를 어학연수나 유학을 보내서 환율에 똥줄 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사람들에겐 "조만간 정부가 달러매수 금지를 내릴테니, 빨리 달러를 준비해 두셔야 할 겁니다." 등의 경고는 "곧 산불이 날 것이니 대피하십시오" 정도로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미네르바가 뭘 잘못했는가? 정부는 그가 뭐 양치기 소년 쯤 된다고 생각하나? 자기가 하는 말 빼고는 다 뻥이라고 생각하는 명박이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지. 걔네들 생각처럼 아직 늑대가 나타나진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쪽 산 너머에서 늑대가 때거지로 달려들고 있는건지 아닌지 너네도 모르잖아. 혹시 모를 불안에 대비하라는 것이 허위사실 유포면, 97년 IM위기 직전에 캉드쉬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엔 경제위기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조중동 패거리들은 대체 왜 가만 냅두냔 말이다. 진짜 위기가 닥쳤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위기 아니라고 씨부려서 위기에 대한 대처도 못하게 만든 것이 더 큰 허위사실 유포 아니냐?

 

그리고 방금 전에 동아일보 기사 보니까, 전여옥이가 또 한 건 했더라. 미네르바가 신정아랑 비슷하덴다. 전문대 출신 주제에 명문대 출신에 금융회사에서 근무한 적 있다고 뻥친게 학력위조해서 교수된 신정아랑 비슷하다는 거다. 이런 정신나간 입방정을 보게나... 그렇게 해서 신정아는 교수가 되서 '부당이득'을 취했지만, 미네르바라는 사람은 30세의 무직이다. 그가 가짜 이력을 내세워서 얻은 '이득'(??)은 겨우 인터넷 상에서 '경제대통령'칭호를 받은 것 뿐이다. 그것도 명예라면 명예인가? 키보드 워리어의 제왕... ㅠ.ㅠ

 

사족이긴 하지만 덧붙이자면, 어떤 면에선 미네르바의 전문대 졸 학력은 지탄받을 일이 아니라 대단하다고 칭찬받아야 할 일 아닌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식민지 주구들이 판치는 이 나라 경제학 판도에서 일반인들이 경제학에 관한 기초적 상식만이라도 갖추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기껏해야 주식시세 정도 따지는 수준이지... 그런데 그는 혼자서 맨큐 경제학을 독학했단다. 나도 대학 2학년때 교양과목으로 경제학 원론 시간에 맨큐를 가지고 공부했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맨날 수업시간에 도망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성적은 C를 받았다. ㅋㅋㅋㅋ 보수 언론들은 어려서부터 경제  교육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그렇게 떠들어 대면서 이렇게 혼자서 열심히 경제를 독학한 사람에게 무슨 자격으로 침을 뱉나? 그가 완전 헛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여전히 한국 경제에 논란이 되는 사안을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짚어낸 것 뿐인데...

 

아, 한 마디만 더하면... 작년에 SERI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기업 부설 경제연구기관들이 경기예측이 거의 빗나갔다고 한다. 주식시장 분석은 거의 0점에 가까웠다. 이거 완전 국민들 상대로 한 대형 사기극 아닌가? 게다가 이들은 전문대 출신도 아니고 다들 한가닥 하는 대학들에서 경제학 박사까지 하신 분들 아닌가? 검찰은 빨리 이들부터 잡아들이길 바란다.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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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파업] MB언론악법 당장 철회!!

나도 함께 하겠소...

덤으로 일제고사도 그만 뒀으면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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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교과서 논쟁, 기대 이하다...

요즘 나는 넘쳐나는 시간을 이용해 그 동안 못했던 공부들을 차근차근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중 요즘 가장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분야가 바로 '한국 근현대사'다. 역사공부가 모든 운동에 있어서 기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있고, 게다가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변변한 역사 세미나 한번 한 적이 없어서 더욱 역사 지식에 배가 고팠던 터였다.

 

그런데 요즘 서울시 교육청의 고3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현대사 특강, 교과부의 현대사 교과서 수정 지시 등을 보면서 내 공부에 가속도가 붙었다. 하긴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공부' 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MBC 100분토론에서 했던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논란에 대한 토론을 인터넷 재방송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런데... 100분토론을 통해 통쾌함과 환희를 느껴 본 적은 지난 광우병 논란 때 송기호 변호사, 우석균 정책실장 등의 달변을 통해서 받았던 것 외에는 한 번도 없었지만, 근현대사 교과서 관련 토론은 정말 기대 이하였다. 물론 미천한 지식이기는 하나 내가 최근에 공부한 현대사 지식으로 평가하자면, '기대 이하'라기 보다는 '수준 이하'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토론자로 나온 사람은 총 4명이었지만, 내 눈에는 거의 2명의 토론만 들어왔다. 한나라당의 신지호와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 책임지필자라는 교원대 교수.

 

당연히 내가 '기대 이하'라고 지목한 사람은 후자다. 물론 신지호야 골수 운동권 출신으로서 후일에 뉴라이트로 전향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이력이 있는, 좌우파의 논리를 다 꿰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나라당의 브레인에다 달변가이니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문제삼는 것은 신지호에게 밀린 '말빨'이 아니다. 토론의 구도 설정 자체가 틀려먹었다.

 

교수님은 줄곧 교과서 수정 지시의 비민주성, 절차 무시, 독단성만을 물고 늘어졌다. 이에 대해 신지호 (그리고 함께 나온 교과부 담당자)는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때에도 비슷한 수정 지시가  있었는데 그 때에는 왜 문제제기를 안하다가 이제와서 난리냐고 맞받아 쳤다.

 

아, 이 따구로 토론하는데 누가 관심을 가져주겠나? 교과서 수정 지시가 언제 부터 시작되었고, 공문을 몇차례를 보냈으며, 언론에서 처음으로 문제제기가 된 적은 언제이며, 이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어땠으며... 이런건 당사자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문제 아닌가? 또한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정부는 나름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수정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설령 그 과정에서 규정을 벗어난 행위를 했다고 한들, 뭐 문제 되겠는가? 2MB정권이 하는일이 다 그런데... 사실 이제 절차상의 비민주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난 광우병 사태 이후 정권 차원에서도 이골이 난 일이라 아주 내성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백이면 백 헛수고로 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지호가 아주 민감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치고 나오기 시작한다.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헌법정신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 허나... 그런데...

 

내가 재미없어서 중간도 채 보지 않고 꺼버려서 못봤는지는 몰라도, 이 교수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있는 답변 한마디를 못하신다. 계속 반복하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비민주성,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 왜곡... 역사교과서 논쟁에서도 반MB전선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혹시 이 교수님은 정말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정통성을 부정하시는 것일까?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이 양반을 좋게 봐서 좌파라고 한다해도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 만드는 일에 사회주의자 또는 아나키스트를 고용하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 교수님이 노무현 정권과 궤를 같이한 사람이라면 기껏해야 자유주의자 아니겠는가? 사상이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앉았었더라면 아래와 같이 말했을 것 같다.

 

 

뉴라이트는 그 긍정의 대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뉴라이트의 도식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긍정은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전 정권들에 대한 긍정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어쩌면 이것이 더 핵심적이다. 아무리 추상적인 수준에서 “나는 자유민주주의자요”라고 해도 뉴라이트에게는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 찬다. 반드시 ‘국부’ 이승만, ‘중흥조’ 박정희에 대한 입장이 따라붙어야 한다. 그들을 존숭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

 
역사 속에서 어떤 기원적 사건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정통성의 계보를 작성하는 것은 전형적인 주자학자들의 역사관이다. 주자학자들에게 지금 이 시대의 올바름은 과거 역사 속 올바름의 계보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 계보와의 연관성 속에서만 이 시대의 올바름도 판가름할 수 있다.
 
(...)

 
이승만-박정희 전 정권의 계보와 대한민국 역사를 동일시하고 전자에 대한 긍정만이 대한민국의 현재에 대한 긍정이라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과연 이러한 17세기 조선 주자학자들의 역사관과 얼마나 다른가? 뉴라이트 역시 이승만의 건국 행위라는 기원적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박정희의 산업화, 작금의 세계화로 이어지는 어떤 정통성의 계보를 그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이 계보의 연장선 위에 서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단으로, 즉 대한민국 안의 반(反)대한민국 분자(‘친북좌익’)로 몰아붙이고 있지 않은가? 300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정신적 근친성은 참으로 놀랄만하다.

- 장석준, "진보좌파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시민과 세계> 2008년 겨울호 中

 

 

대한민국 60년 역사동안, 헌법은 얼마나 많이 바뀌었으며, 또 그 배 이상으로 사람들의 생각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가? 그렇게 대한민국은 '지배계급의 통치단위로서의 국가'라는 생각을 잠시 가려놓고 생각하면 얼마나 변화무쌍한 조직이던가? 또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그 변화를 위해 몸을 바쳤던가? 그렇다면 그런 몸부림들, 어떻게든 통일된 해방국가를 만들어 보겠다고 몸부림 쳤던 김구, 여운형 등을 암살하고 잘려진 나라를 만들었던 이승만은 얼마나 대한민국적인가? (허술하고 급조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노동자/농민의 권리와 민주적인 국가운영을 얼마간 보장했던 제헌헌법을 허물어 뜨리고 개발독재를 위한 헌법을 만들었던 이승만, 박정희의 행위는 또 얼마나 대한민국적인가?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정적으로 굳어진 유일한 형태가 아니라 대중의 열망과 투쟁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그래야 하는 체제라고 말하면 안되는 것이었나? 우리는 그러는 한에서 대한민국을 긍정한다고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기만 한 토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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