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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과 정종권

이 둘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 아니고, 오늘 본 이 두 사람의 글에 대한 짧은 평을 적어보려는 거다.

 

 

 

1/ 김규항의 글 : "오류와 희망" (한겨레 칼럼, 06.16)

 

말은 다 맞는 말인데 좀 진부하다. 그냥 논리가 너무 도식적이고 뻔하다는 느낌? 게다가 노회찬이 토론을 통해 오세훈을 조롱하기만 했을 뿐, 한명숙과 차이점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하는 건, 그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좀 오바한다는 생각이 든다. 현직 시장이 출마한 상황에서 서울시의 현재를 분석하고 시민들에게 대안을 내놓는 과정에서 당연히 현직 시장 비판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 '한명숙 때리기'에 집중하는건 후보로 출마하지 않고 신문 칼럼이나 써서 논평하는 것보다 나을게 없다.

 

진중권에 대한 비판은, 적절하다고 본다. 사실 예전에 민주당쪽에서 비지론 내걸고 나와 민노당 후보 사퇴하라고 말할때 진중권은 거의 육두문자에 가까운 비난을 날렸다(고 한다. 사이트 돌다보니 누가 그러더라. 나는 그런 기사 본적이 없어서 그냥 인용투로... ㅋㅋㅋ) 그런데 이번엔 잠잠하다. 게다가 선거 끝나고는 심상정 징계하라고 요구하는 당원들에 맞서 그녀를 감싸고 돌았다. 이쯤되면 진중권이 유시민, 심상정등과 친분(서울대 학벌?)이 있어서 인정상 그렇게 비판 못하는 거라는, 전혀 검증할 수 없는 주장들에도 귀가 솔깃해지기도 한다.

 

노무현-심상정의 한미FTA 논쟁이 진보신당 역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유일한 사건이었다는 지적에도 왕 동감한다. 그랬던 심상정이 지금 이렇게 나오니 뒷골이 땡기는건 당연한 일 아닌가?

 

 

 

2/ 정종권의 글 : "선거의 교훈과 반성" (진보신당 당게, 06.17)

 

"노무현 시대의 정치를 누군가 일컬어서 ‘정치의 사법화’라고 규정하였다. 정치가 기본적으로 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얻는 행위라고 할 때, 정치적 쟁점과 의제는 국민과 대중을 주인으로 하여 논쟁하고 갈등하고 국민과 대중이 결정하게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을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의 사법적 판단에 맡기는 것은 정치의 퇴행이고 타락이라고 비판한 것을 본 기억이 뚜렷하다. 심상정 등의 문제제기는 사법적 징계대상이 아니라 당원과 진보적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논쟁과 격론의 과정을 거쳐 해결해야 하는 정치적 의제이다."

 

이 말이 엄청 그럴싸해 보이지만, 매우 비겁하게 자신의 논리적 궁지를 해결하려는 태도다. 내가 진보신당 당원도 아니고 그래서 그 당의 규약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에서 징계받으면 무슨 재산 가압류라도 하나? 선출되지 않은 국가의 사법권력이 정치적 행위에 처벌을 하는 것과, 정당이 당원의 어떤 행위에 대해 판단하여 징계를 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해 있다. 후자의 것은 전자의 것처럼 기술관료적 행위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정치적 행위이다.

 

또한 당기위는 해당행위에 대해 처벌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정치적 행위도 해당행위가 될 수 있다. 만약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심상정이 정치적 판단에 의해 한나라당 지지선언을 하면 당기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당기위의 '판결'과 사법부의 '판결' 방식은 달라야 할 것이다. 후자가 밀실에서 관료적으로 결정해 버리지만, 전자는 당원과의 열린 토론 과정에서 하면 된다. 더군다가 진보신당의 당 규약은 애매모호한 것이 많다던데, 그렇다면 더욱 당원들의 '당 강령'에 기반한 토론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될 문제다.

 

물론 징계보다는 정치적 행위에 대한 토론이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징계'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채 논의하는 것도 당사자들에게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것 아닌가? 이런식의 논리라면 지난번 노동관련법 처리에서 추미애 의원의 직권상정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한 민주당의 처사도, 개인적인 결단에 대한 것이었으니 괜찮은건가? 그러나 최소한 사건직후 민주당 내에서는 추미애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 개인적 결단이니 정치적 토론으로 해결하자는 얘기는 적었다.

 

사실 이러저러한 분란을 잠재우고 제대로된 당 내 토론을 하고 싶으면, 심상정이 다른 건 접어 두고라도 당내 민주주의의 문제를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사과하고, 이용길 전 부대표가 그런 것 처럼 스스로 당기위에 회부되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렇게 지저분한 것을 먼저 털고 나야 심상정 스스로가 토론에 임하는데도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일단 심상정은 언론 인터뷰부터 좀 자제하고... 물론 당기위 논의 사항에서 정치적 토론의 여지가 있는 부분(즉, 연합정치냐 진보대연합이냐)은 논외로 치는 게 맞겠다.

 

누구 말대로 "책임은 묻되 감정적 격앙으로는 해결책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대원칙이고, 여기서 무게중심을 책임을 묻는 것에 약간 더 둬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단순화시킨다면 민주노동당과의 관계가 문제가 될 경우에는 분당한 때가 언제인데, 민주노동당이 전혀 변화하지 않았는데 등등의 논거로 단일화와 협력 자체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 또는 민주노총의 역할과 주장이 쟁점이 될 경우에는 민주노총에 대한 감정적인 거부감과 편향된 태도를 문제 삼는 경우가 많았고, 5+4협상과 같은 국면에서는 민주당과 어떻게 연합이나 공조를 논할 수 있느냐는 근본주의적 태도가 당 한켠에서 강하게 제기되었던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독자성의 옹호라고 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고립주의적 편향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이 부분은 앞에 인용한 것보다는 일리있는 말이지만, 왠지 부대표로서 어울리지 않게 책임 떠넘기기란 생각이 든다. 이런 타 조직에 대한 감정적 거부를 비판할 수 있으려면, 얼마 전까지 극단적으로 갈등했던 민주노동당, 민주노총과 어떻게 다시 융합할 수 있을지 근거와 목표 등이 명확해야 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진보신당이 내걸고 있는 '진보의 재구성'이란 과제와도 관련 있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 이들과 다시 연합하겠다는 것은 '도로 민노당'하는 것보다 못한 거 아닌가?

 

오늘 어쩌다 은평을 재보선에 출마한다는 사회당 금민 후보의 정책을 봤는데, 진보진영 내부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기본소득 슬로건만 빼면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기본소득 주장이 약간의 이론적 갈등소지만 정치적으로 봉합한다면, 보편적복지에 무게중심을 두고 이를 주장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투기 불로소득 중과세와 탄소세 도입 등을 통해 기본소득을 전면적으로 확대해 나갑니다" 라던지, "모든 파생금융상품의 시세 차익에 대해 연 30% 과세: 금융 투기 근절" 또는 "탄소세 도입으로 지하철과 버스를 무료화합니다" 같은 것들... 최소한 진보신당이 연합정치 비슷한 것이라도 다른 세력과 함께 논의할 생각이 있으면 이 정도의 구체성과 이념적 명확성은 가지고 압박해야 맞는 거 아닐까? 지방선거라는 특수성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 진보신당에겐 이런 거 비슷한 면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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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메모.

 

 

어제 ITQ 엑셀과 액세스 시험을 봤다. 시험 보러 온 인파의 절반이 초딩들이다. 물론 초딩들은 주로 파워포인트 시험을 봤지만... 여튼 초딩들 사이에 끼여서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이런 시험 보려고 한달동안 하기 싫은 공부를 꾸역꾸역 했던 내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고, 이런 일로 소일 하는거 외에는 시간 때울 방법이 없는 내 처지가 우습기도 하고... 뭐 그랬다.

 

시험 끝나고 전날 밤 부터 징징대는 석돌이에게 갔다왔다. 집에 돌아가면 또 멍때리고 있다가 시간을 다 보낼 것 같아 밥도 안 먹고 바로 기차를 탔다. 편안하게 집에서 있는 것보다는 덜컹거리는 기차 안이 살짝 긴장감을 주기도 하고, 책도 잘 읽힌다.

 

 

요즘 읽는 책

 

기차 안에서 일주일 내내 끼고 있었던 서영표 교수의 <런던코뮌>을 대충 다 읽었다. 지역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줄 만한 좋은 책이다. 물론 런던광역시의회의 급진적 실천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이론적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은 좀 어렵기도 하고 또 서술과정의 굴곡도 좀 있는 것 같아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만큼 가치는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작년 말에 손호철-조희연 사이에 있었던 논쟁들이 생각났다. 사실 그때 서영표는 조희연의 편에 서서 손호철의 경직성(?)을 비판했는데, 그 논쟁 이후에 서영표가 줄곧 냈던 입장들이나 이 책을 보면, 왠지 그가 논쟁 과정에서 포지션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손호철-조희연의 차이는 08년체제를 인정할 거냐 말거냐의 대립이었는데, 서영표는 조희연의 편에 서면서 사실상 딴 얘기를 했다. 이를테면 그가 <런던코뮌>에서 줄곧 강조했던 (E.P Thomson식의) 대중/민중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던지, 생활정치가 중요하다던지 하는 그런 얘기들... 나는 서영표의 그런 강조점이 중요하고 또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조희연이 주장하는 역동적 연합정치 같은 것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는 듯 하다.

 

그래서 작년 서강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도 내가 서영표에게 "사람들의 일상과 삶의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08년 촛불집회라는 우연적 계기를 통해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우연적인' 방식으로 제기되는 문제라면 대체 08년이 체제로 규정될 이유는 뭔가? 체제라는 것이 그렇게 예측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해 규정될 수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내가 자신의 주장을 오해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뭐가 오해냐?"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해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오해를 생산했던 것은 서영표 스스로가 자신의 입장과는 무관한 포지션에 서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방선거

 

지난 며칠간 나온 지방선거 분석 글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분석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엄기호의 글이다. (<20대는 왜 민주당을 찍었나?>) 경기도에 살고 유시민을 지지한다는 우리 매형과 얘기를 해 보면서 느낀 건데, 확실히 안보논리는 더 이상 젊은 층에게 안 먹힌다. 좀 더 넓게 잡아보자면 40대 초반 정도 유권자의 상식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건 구청 공무원 나으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느낀 거다. 거기다가 엄기호의 말대로, MB님은 항상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시니 꼴깝스러워 보일밖에...

 

물론 나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서 딱히 요즘 세대가 냉전 세대보다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인 부류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21세기의 상식의 패러다임을 한나라당이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MB가 한나라당 쇄신파의 입장을 수용해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자멸의 길일 것이다. 그런 류의 상식을 수용할 수 있는 세대는, 정말 생물학적으로 소멸중이다. 문제는 MB가 자신이 당선되면서 그런 상식까지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인데, 엄청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유권자들은 그를 경제살리라고 뽑아줬지, 북한 혼내주라고 뽑아주지 않았다.

 

요즘 연합정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여기서 한나라당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연합정치든 독자노선이든 선택하는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 만약 한나라당이 계속 이딴식으로 노인네 정서만 붙들고 있는다면? 민주당은 2012년 총선/대선도 손 하나 까닥 않고 대박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도 그 옆에서 바람잡이 역할 하면서 10년 소수정당의 설움을 떨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네들도 짱구가 있는 이상 그렇게 할까? 지난 정권들에서의 양상을 보면 정권 레임덕이 오면 항상 여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왕따시키는 경향이 있었는데, 현 정권에서 아무리 큰 집 영향력이 세다고 해도 이런 경향성에 따른 힘을 억제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이번 천안함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정성으로 주가가 떨어지자, 펀드로 먹고사는 수도권 3-40대들이 대거 야당에게 표를 던졌다는 항간의 분석들이 실증성있게 받아들여진다면 한나라당의 쇄신은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자신들도 그 '경제적/동물적 감각'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 결론은 이거다. 빨갱이사냥으로 나타나는 대북문제 등 한나라당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정치쟁점들은 인구학적으로 소멸될 수밖에 없는 쟁점이고, 그러니 보수니 개혁이니 하는 구분이 대북문제를 기준으로 형성되는 것은 늦어도 2012년 대선이 마지막일 것이다. 북한 문제야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언제나 따라오겠지만, 지금 같은 색깔론으로 재생산되는 상황이 종결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동일성은 더욱 가시화 될 것이다. 이런 경향성을 인정한다면 특수한 상황에 따른, 또는 정세에 따른 민주당과의 연합정치를 넘어선 전략적인 반MB연대라는 것은 죽음의 전략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너무 두서 없이 써서 매끄럽지 못한데, 나중에 다시 제대로 정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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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패인에 대한 수치적 분석 (부제: 노회찬 까지 마라!)

한명숙 지지자들이, 노회찬 때문에 진 거라고 하도 입으로 똥을 싸길래, 득표수를 가지고 한번 분석해 봤다. 아래는 서울 25개 구에서 각각 구청장 선거와 시장선거, 민주당 득표수와 한나라당 득표수의 차이다.

 

서울시장 선거 전체 투표인 수 : 4,426,182

자치구명

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득표수 격차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과 오세훈의 득표수 격차

강동구

40379

-11097

강북구

25977

6884

강서구

21217

5607

관악구

45407

35260

광진구

12476

3671

구로구

20375

8820

금천구

15145

7749

노원구

19250

5036

도봉구

11478

195

동대문구

20048

1496

동작구

27503

8945

마포구

15477

10615

서대문구

21813

8019

성동구

8324 

518

성북구

5331 

7409

양천구

8181 

-1078

영등포구

3091 

-1017

용산구

3427 

-8579

은평구

24685

9929

종로구

4190 

1434

중구

1956 

-238

중랑구

-513

940

서초구

-37577

-43820

강남구

-33984

-59296

송파구

-10435

-23814

합계

273,221

-26,412

 

 

 

위 자료를 근거로 하여, 만약에 구청장 득표수로 시장 선거를 결정하게 된다면

민주당은 2,223,786표 득표로 50% 득표율

한나라당은 1,950,565표 득표로 44% 득표율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평균적인 민주당 지지세로 보자면 6%차이로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이 가볍게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민주당 지지세가 한명숙의 서울시장 선거로 넘어오면서

무려 299,633표를 까먹어 버린다.

이 정도면 전체 투표자 수의 6.7% 정도를 까먹어 버린 것이다.

 

한명숙이 선거운동을 통해서 민주당을 지지할 투표층만 잘 챙겼어도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충분히 이기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한명숙이 이렇게 날려먹은 표에 비하면 노회찬의 143,459표(3.26%)는 절반 밖에 안된다.

노회찬을 탓하기에는 한명숙의 실력이, 정말 중간도 못가는 정도의... 최악의 후보였다는 결론밖에 안나온다.

 

민주당이라는 거대 기획사가 뒤에서 아무리 빵빵하게 지원해 줘도 후보가 서울시 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몇 명인지도 모르고, 서울시가 쓰는 한 해 복지예산이 얼마인지도 모르니 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지...

 

 

_____________ 

 

뱀발) 그런데 유시민의 경기도 패배로 패닉에 빠진 국참당 내부에선 7월 은평을 재보선에 유시민을 출마시켜서 재기를 노려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지? 대구, 경기, 은평 까지... 패배의 망신살 전국투어를 하려고 그러나? 선거 중독자도 아니고 정말... 이런식으로 노빠당의 속살이 드러나는건 쳐다보는 사람도 다 민망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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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전태일 평전> 중에서

나와 마주보고 삽질을 하던 그 배가 사장배 이상으로 앞으로 쳐지고 키는 1.7m나 될 사람이 어디서 얻어쓴 건지 기름에 쩔은 운전수 모자를 쓰고 바지는 군복바지에 흰 고무신을 신었네. 런닝샤쓰는 구멍이 벌집처럼 뚫린 것을 입고 오른손엔 목장갑을 끼었는데 손가락은 다섯 개가 다 나오고 손바닥 부분만 장갑구실을 하는 것일세.

얼굴은 일을 할 때나 쉴 때나 꼭 마도로스가 지평선을 바라보는 그런 표정일세. 그저 무의미하게 사물을 판단하지 않고 사는 사람 같았네. 삽질을 하나 점심을 먹으나 시종 무표정일세. 만약에 그 기름에 쩔은 운전수 모자를 벗겨버린다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바보가 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네. 그만큼 그 모자는 그 사람을, 그 돌부처 같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잇는 그 사람 전체를 육체의 맨 꼭대기인 머리 위에 서서 감독하면서 그를 속세의 사람과 같이 만들어버리고 있었네. 지금 현재 삽질을 하고 있으니 말일세

사실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그 때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걸세.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얼마나 불쌍한 현실의 패자(敗者)냐!

얼마나 몸서리치는 사회의 한 색깔이냐!

그렇다! 저주받아야 할 불합리한 현실이 쓰다 버린 쪽박이다! 쪽박을 쓰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부서지지 않게 잘 쓰든지 아니면 아예 쓰지를 말든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저 무자비하게 사회는 자기 하나를 위해 이 어질고 착한 반항하지 못하는, 마도로스 모자를 쓴 한 인간을, 아니 저희들의 전체의 일부를 메마른 길바닥 위에다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렸다. (1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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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동,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 발췌독

민족 '말살'은 물질적 폭력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야만적 폭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자원의 수탈을 1차적 목적으로 삼는 원시적 폭력이 폭력적 지배를 당하는 이들에게는 마음 편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차적이고 물리적인폭력에 대해서는 폭력을 수용하는 방법 이외에 달리 선택할 수단이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때리는 자에 비해 밪는 자가 오히려 편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폭력보다 더욱 가공할 폭력은 동일화라는 폭력이다. 타자를 자신과 동일화화련느 것은 물리적으로 절멸시키는 행위보다 타자에 게 더욱 근원적인 고통을 줄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외부의 강제로 변해야 하는 상황을 사람들은 더욱 참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동일화정책은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단계에 이르면, 일정한 수준에서 '국민주의'적 지배 형식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징병, 곧 혈세를 강요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식민지 피지배민에게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에게 의무교육의 조속한 실시를 약속하고, 참정권을 부여하겠다는 의지를표명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일본인과 조서닌이 동일하다는 점을 두드러지게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인의 내면은 분열하게 된다 .도일화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식민지 동화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처럼 식민지 동원 체제는 식민지 주민에게 피지배자의 역할과 타자에 대한 침략을 동시에 요구했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그야말로 '한 몸으로 몇 겹의 삶을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렇듯 식민지 동원 체제는 식민지 지배자로부터 인간적 모멸을 어떤 방식으로든 견딘 식민지 조선인에게 자신이 겪은 모멸감을 또 다른 그 누군가에게 강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근대의 야만'이었다.  (27-9쪽)

 

 

 

서구에서 생산한 근대관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방식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 바로 '식민지 근대'라는 발상이다. 서구는 항상 식민지를 대상화하고 이를 자신들의 근대관 속에 편입시켜 사고해왔다. 식민지를 제외한 채 서구 근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식민지는 언제나 서구 근대를 대상화하지 못하고 자신의 외부로서 추종해 따라잡아야할 목표로 간주해왔다. 이런 방식의 서구 근대 이해에서 서구 근대란 식민지 자신 속에 내재화되어야 할 외부이며, 이에 따라 언제나 외부화될 수 없는 내부이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는 식민지에서 서구 근대를 대상화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서구 근대는 식민지에 언제나 내부화되어 있지만 항상 외부화될 수밖에 없는 내부로서 사유하고자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전유하고자 하는 발상을 식민지 근대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식민지 근대'의 발상은 언제나 서구 근대를 사유의 틀 속에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내부화된 서구 근대를 언제나 대상화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비판적으로 서구 근대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구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는 문제의식에 의해서만 그 본질이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식민지 근대'를 사유할 때 식민지와 근대를 분리하거나 더욱이 이를 대립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명-야만의 이항대립적 근대 설정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 근대란 '식민지성'과 '근대성'이 결합한 것일 수는 없다. 언제나 근대는 위계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즉 식민지 근대를 포함하여 어떤 맥락 에서의 근대든 모더니티(근대성)의 존재 여부로 근대의 존재나 성격이 결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 근대적 기준이 아닌 새로운 근대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원적인 근대사을 제시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구적 근대성으 억압성에 저항하기 위한 시도로서 곧 서구 근대를 비판하기 위해 근대의 다양성을 상정하는 것, 다시 말하면 '비유럽적 근대' 또는 '다원적 근대'를 설정하는 방식으로는 순환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식민지 근대가 근대 비판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타당한 것이다. 근대 비판으로서의 식민지 근대 설정은 '새로운 근대'를 설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아니다. 그리고 식민지 근대를 서구 근대(제국주의 근대)의 '대항 개념'으로 설정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모더니티의 배치 문제로서 '식민지 그대'는 성립할 수 있고, 서구 근대와 맞물려서 돌아가는 근대의 한 양상으로서만 '식민지 근대'라는 문제 설정이 가능한 것이다. '식민지 근대'란 '이식된 근대'의 합리화된 체계를 적대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서구 근대의 합리화 과정의 도구성에 맹목적이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69-71쪽)

 

 

 

그렇다면 다시 '식민지 근대'란 무엇인가? '근대'란 한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란 일종의 제도이기도 하고 동시대와 연관된 생활양식, 태도, 자세 등 일종의 에토스(ethos)이다. 또한 근대의 에토스란 도구적 합리성에 기초하는 것으로, 월러스틴의 분류에 의하면 양면적 근대의 한쪽 측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기술의 근대'와 '해방의 근대' 중 '기술의 긘대'가 바로 그것이다. '기술의 근대'는 외부 강제에 의한 산물이지만, 식민지민의 열망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식민지 근대성'은 '잡종성'으로 표현되며, '식민지 근대'가 잡종화할 운명은 '제국주의 근대'의 잡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식민지 근대'와 '제국주의 근대'의 잡종성은 근대의 역사적 특성을 구성한다.

이런 상호작용의 관계는 식민지민의 존재가 문화의 교류를 전제로 한 것이라면 당연히 문화변용(acculturation)의 방식을 문제 삼게 한다. '기술적 근대'의 '도구적 합리성'은 일종의 모듈로서 외부로부터 강제되었으나 스스로 학습하고 변용하여 내면화함으로써 식민지 근대의 특성을 이루는 것이다. 비록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이것은 정당한 문화 융합의 한 모습을 이룬다. 이런 측면에서라면 해방운동의 저항성이라는 것도 제국주의적 근대의 모방이나 그 변용과 다르지 않다.

또한 기술의 근대는 해방의 근대의 토대를 이루기도 한다. 식민지하의 전통(비근대)이란 대개의 경우 근대의 입장에서 재단된 변하지 못한 잔여 부분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지만 간직해야 할 어떤 가치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기술의 근대에 의해 재단된 전통은 해방의 근대로 귀속되어야할 그 무엇으로 전용되기도 하지만, 해방의 근대에 귀속된 전통은 역으로 해방의 근대 그 자체의 성격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79-80쪽)

 

 

 

일제의 조선 병합 이후 이런 문명화의 열망, 즉 서구 선망=모방의 경향은 일본의 지배에 대한 저항이 강하면 강할 수록 더욱 정당화될 수 있었다. 문명-개화와 국민화의 논리적 기초는 식민지하에서 문화주의와 '민족'의 논리로 연장, 발전되고 있었고, 이런 기반 위에서 서구 선망=모방은 관념적으로 강화되고 있었다. 1920년대 문화주의-문화운동은 이방적인 서구 수용의 열망 위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이런 경향은 좌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부정된 서구 문명으로서의 사회주의 구소련은 대안적 서구 문명으로서의 좌파들의 '대안적 근대'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켜주기에 좋은 관념적 대상물일 뿐이었다.  즉 반일 민족주의와 내면화된 '식민주의'(서구 선망)는 상호 순기능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식민적 분열 증상을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식민적 분열 증상은 서구 문명(문화)이나 도구적 합리성의 수용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고, 한국인들의 독특한 근대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해방 이후 미국에 대한 선망은 이런 분열 증상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82쪽)

 

 

 

1920년대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는 적어도 다음의 여섯 가지의 사회적인 것, 하위 사회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었다. 행정 관료적 영역, 경제적 영역, 종교적 영역, 문화적 영역, 집합적 운동의 영역, 하위 지역적 영역이 그것이다. 앞의 두 개의 영역은 국가로부터의 분리가 아직은 의심스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서서히 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네 개의 영역은 1920년대 이후 명확히 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어느 영역이나 이념형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영역의 분리는 명확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처럼 식민지하 대중의 형성은 근대적 사회의 '형성'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한편 여기에서 거론된 사회적인 영역은 일상적으로는 정치적인 성격을 상실한 영역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인해 사적인 특성이 공적인 것으로 부상하는 순간 항상 '정치적인 것' 과 부딪치게 된다. 이런 정치적인 것이 부상하게 될 때 공공연한 저항의 영역과 협력의 영역이 분리되게 마련이다. 저항과 협력은 동전의 양면을 형성하는 것이며, 이런 정치적인 행위가 부상하는 과정은 사회적인 영역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성격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대중화현상은 두 가지의 재주술화를 계기로 역진하게 된다. 개인적 주체를 대중적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재주술화라고 한다면, 탈주솨의 결과를 매개해서만 재주술화는 진행된다. 이러한 재주술화는 식민지 '계몽'과 연관된 것이기도 했다. 식민지기 계몽은 대중으로 하여금 '합리화된 체계'를 구성하도록 유도했다. 대중의 합리화는 식민지 의제국가에 의해 위로부터 창출, 확대되는 사회적 합리성과 이를 통해 분리된 사회 속에서 식민지 지식인 엘리트가 수행하는 사회적 계몽의 분리 속에서 진행되었다. 둘 다 위로부터의 계몽의 기획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적 합리성의 확대라는 점은 일치하지만, 서구 근대의 초기 국면에서 양자가 협조한 것과 같은 관련을 맺니는 안핬다. 물론 기본적으로 공존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양자는 오히려 적대적인 측면을 더욱 강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식민지기 계몽의 역설 위에서 구축된 것이 바로 대중의 재주술화 과정이다. 합리화는 권력의 한 양상을 구서아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몽을 둘러싸고 권력과 저항운동은 대립한다. 이처럼 식민 권력의 합리화 과정과 식민지 지식인의 사회적 계몽은 동일한 '합리화된 체계'를 구성하고자 함으로써 가장 강력하게 대중의 재주술화를 위한 연합군을 구성하는 이데올로기 체계라고 할 수 있다. (89-90쪽)

 

 

 

유신 체제는 일정한 수준의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수준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준전시적 동원 체제하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고 있다는 점이 유신정권에 의해 지속적으로 강변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런 국민적 동의가 주권독재, 즉 국가와 민족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국민주권 이념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유신 체제의 가장 중요한 이념적 지지 기반 중 하나로 주장되고 있었다.

박정희에게 민주주의는 동태적 개념으로서 하나의 이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이것은 현실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민족국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했던 민주주의가 국민적 동의를 획득하는 메커니즘으로서의 주권독재를 옹호하고, 준전시적 동원 체제를 기반으로 대중독재를 지지하는 매개자이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현실성을 강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제약하고자 했던 '한국적 민주주의'가 이념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필연적이다.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에 저항하던 시민사회의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넘어 이념적 성향이 강한 민주주의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규정하는 거시 바로 박정희의 유신 체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약한 자유주의와 강한 민주주의로 특징지어진다는 최장집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에서 시민사회는 재산권 최우선의 원리나 시장과 경제적/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중앙집중화된 정치권력에 반하여 민주주의와 민주적 공적 영역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그 핵심 내용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약한 자유주의적 내용을 갖지만, 강한 민주주의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컨대 한국적 조건에서 시민사회의 형성에는 운동의 맥락과 전통이 매우 중요했으며, 운동으로 표출되는 공적 정신 내지는 공공선의 가치가 압도적인 내용을 갖는 것이었다.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18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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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스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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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은 내 돈 물어내라!

이렇게 추잡스러운 제목을 달게 되다니... 내 자신이 다 비참해질 지경이다.

 

오늘, 원래 난 토익시험을 보러갈 계획이었다. 원서비 39,000원.

그런데 어제 밤 자정을 넘겨 1시 40분에 잠들었고, 7시에 일어나 밥먹고 또다시 컴퓨터를 켰는데, 이게 웬걸... 불길한 예감은 정말 현실로 다가오는가?

 

이런 기분에 시험을 보러 가는 건 아무래도 시간낭비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정신이 딴데 가 있어서 시험지가 눈에 안 들어올 테니까...

 

뭐 나에게 경기도지사 투표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보신당의 선거운동을 위해 도움이 된 것 하나도 없지만, 다음주 수요일 어찌되었든 진보신당에 표를 주고자 했던 사람으로서 이 허탈감과 배신감, 모욕감은 씻을 수가 없다. 설령 심상정이 단일화를 끝까지 거부하는 다행스런 선택을 한다해도 그 감정은 오래갈 것 같다.

 

오늘 두 시. 수도권 후보들 국회에서 기자회견 있다는데 무슨 얘기를 하는지 똑똑히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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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기랄!!!

미력하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한동안 연락 안하고 있던 사람 또는 별로 관심 없을 법한 사람들에게 교육감 선거 홍보 문자를 쐈다. 아, 근데... 된장... 지난번에는 번호를 1004로 바꿔서 보내서 문제 없었는데... 이번엔 깜빡하고 그걸 안했다. 제기랄!!!

 

거의 3,4년만에 문자보내는 사람도 있는데....

얼마나 황당할까?

 

아니나 다를까 한사람에게 바로 문자 왔다.

뭐 욕은 안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갑자기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ㅠ.ㅠ

 

나 오늘 정말 안습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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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정국에 대한 메모

 

 

<반MB연대, 거품 빠지나?> (레디앙)

 

사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유시민의 지지율이 김문수를 앞지르는 걸 보고 유시민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경기도지사 토론회에 나와서 하는 걸 봐도 그 쪽에 승산이 있다고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미운놈에게 쓸데없는 기대를 좀 걸어봤건만 이건 뭐 삼일천하도 아니고...

 

위의 레디앙 기사에서도 보이듯이 소위 유시민효과, 노풍 따위는 기력이 소진한 것 같다. 언론에서 주구장창 때려대는 통에 나도 잠시 혹했는데, 하지만 생각해보면 실제 유시민효과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했었는지 의문이다. 김진표와 단일화 성사 이후 반짝 반등 하면서 다른 지역 친노 후보들도 동반상승 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걸 무슨 대단한 흐름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한명숙도 검찰 조사 결과 무죄로 나온 이후 한 차례 오세훈을 지지율로 앞선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 뿐이었다. 검찰 조사 무죄, 0.06%차이의 단일화 승리. 이런 류의 소소한 이벤트의 생명력은 그리 오래 갈 수 없는 것. 아무래도 내가 잠시 혹했던 유시민의 말빨 개인기도 전체 판세를 뒤집기에는 아나쑥덕일 뿐인듯 하다.

 

이게 야당들에서 항변을 할 법한 '북풍효과'냐 하면, 위 기사가 말해주듯이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김문수의 지지율은 여전히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유시민의 지지율만 떨어진 것. 한명숙도 마찬가지.

 

그러나 주목해 볼 것은 유시민과 함께 지지율이 상승했던 충남의 안희정과 경남의 김두관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다. 최근엔 2위 후보와 10%이상 격차를 내기도 했다. 유시민, 한명숙에겐 없지만 이들에게 있는 것은 무엇일까? 기사에 따르면 이 둘은 해당 지역의 밑바닥 민심을 자극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한다.

 

안 후보 캠프는 ‘충남을 대표하는 전국적인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는 호소가 먹히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25일 “영남과 호남이라는 큰 세력 사이에서 2인자 전략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충청은 항상 3등밖에 할 수 없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종시 정책이 바뀌는 등 부침이 심했다”면서 “2등 전략을 포기하고 큰 인물을 만들자는 논리가 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나라당 독주에 대한 견제 심리를 자극하는 데 주력했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15년간 이 지역 자치단체장을 독점해 도정이 견제가 없었고, 경북 출신 대통령이 등장한 뒤 4대강 공사 수주 등에서 경남 기업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소외론’이 컸다”며 “이번에는 바꿔야 한다는 지역주민들의 바람이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석했다.  (국민일보 5/25)

 

내 생각엔 위 기사는 안 후보에 대한 분석은 정확한 것 같다. 말하자면 그는 충청도식 지역주의를 자극한 것이다. 어차피 한나라당 빼고는 다 세종시 원안 사수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선진당과 차별화하려면 그 동안 김종필로부터 이어져 내려와 지역 토호당을 자임했던 선진당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하지만 김두관에 대한 분석은 뭔가 부족하다. 한나라당 독주 견제 심리 자극은 김두관 뿐만 아니라 모든 야당 후보들이 노린 바인데, 왜 김두관에게만 통하나? 오히려 그가 진정 '노무현의 길'을 걸은게 주효했다고 봐야 한다. 바보소리 들으면서도 연거푸 부산에 출마하던 그 뚝심(?)!! 지난 몇 차례 총선에서도 김두관은 이 지역에 출마해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또 나왔다. 그게 지역주의 타파든 뭐든 간에 한나라당 텃밭인 이 지역에서 그 정도의 뚝심을 밀어붙인데 대한 지역민들의 보답(?)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유시민도 이번에 카메라 몇번 더 잡히겠다고 수도권으로 올라갈 게 아니라, 스스로 약속한대로 대구시장 선거에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방물장수 기질을 못 버리고 또 카메라를 쫓아갔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                     *                     *

 

 

어쨌든 그건 그렇고, 민주당의 북풍 맞공세는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다. 다음 기사가 현재 민주당이 똥줄타는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은데, (<2002 연평해전, 2010 천안함 ... 한나라당 두 얼굴>(프레시안)) 사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이런식의 '안보무능정권'이란 공세가 한나라당에 타격을 줄 것 같진 않다. 왜냐면 기본적으로 '안보'라는 키워드는 보수파의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계속 천안함 사태에 맞대응 하겠다고 '안보'키워드를 꺼내면 꺼낼수록 선거 전략은 어그러질 것이다. 처음부터 이들에게 선거기조가 있었는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무상급식 열풍 이후 나름 급식과 보육을 중심에 놓고 복지를 강화하는 것에 선거전의 키포인트를 잡아왔다. 그런데 '우리가 더 안보 잘 한다'는 식으로 가면, 한나라당은 그것에 맞대응 하기 위해서 강경대응에 더 목소리를 키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천안함 사태와 '안보'는 완벽한 블랙홀이다.

 

그렇다고 북풍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야당이 처한 곤란한 상황이다. 지금과 같이 남북간에 벌어지는 치킨게임을 최소한 '보류'라도 시킬 수 있는 논리는 거대 양당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듯이 '안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논리에 있는 것인데, 누구도 이를 '전쟁 날 것 같다'는 불확실한 공포에 사로잡힌 대중 정서를 붙잡을 수 있도록 여론지형 상에 실물화시키지 못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진보신당은 또 안습이 되어버렸다. 반MB와 선을 긋고 독자행보를 해 나가려는데 천안함 사태때문에 이른바 '범야권'이 벌여놓은 비상시국회의라는 판에 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여기에서도 진보신당의 기조 중 하나인 '평화'의 내용이 잘 드러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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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 <대한민국을 사색하다>

 

 

오랜만에 서평.... 이라기보다는 몇 가지 코멘트를 달을 수 있을 만한 책을 읽었다. 주대환의 글은 예전에 그가 우파 잡지 <시대정신>에 기고했다고 하여 논란이 된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유명한...)를 대충 보고, "이건 뭥미?"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어제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심심하던 차에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예전에 서점에서 대충 본 적이 있긴 한데,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그냥 훑어보던 중에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만 부르자>(131쪽)라는 아주 도발적인 제목을 발견하고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실 나도 요즘 비슷한 고민으로, 어지간하면 앞으로 '동지'나 '민중'같은 단어는 쓰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의 말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하 임진곡)과 같은 민가나 '동지', '민중'하는 단어들은 "그 곡조와 가사의 지나친 비장함은 일상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고, 그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설고 닫혀 있다는 느낌을"(132쪽) 주기 때문이다. 이제 껍데기만 남은 '운동권 하위문화'와는 단절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좀 하고 있던 터였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부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이 꽤 있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1.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말자?

 

그에 따르면 우리가 80년대적 운동권 동창회 정서를 버리지 못하면 이른바 '토종좌파'(그는 칸트적인 합리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경험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토종좌파'라는 말로 개념화한다. 그가 대표적 토종좌파로 칭찬하는 사람이 제주대 이상이 교수다.)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토종좌파라는 말이 한국적인 정세와 조건에 맞는 운동을 하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을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의 말에 백번 동의한다.

 

하지만 그게 '임진곡'을 버려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때 이 노래가 청와대에서 불려졌다는 말을 듣고, 이런 자유주의자들과 같은 부류로 엮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임진곡'을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나는 더 열심히 임진곡을 부를 것이다. 그가 그렇게 애타게 찾는 한국적 '토종좌파'는 단순히 맑스-레닌의 교조주의에 빠져있지 않다고해서, 외국이론에 심취해서 현실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하는 먹물적 근성을 버린다고만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게 아니다. 철저하게 우리의 지난 저항운동의 역사에 근거해야만 한다. 그 스스로가 그것으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았을, 518을 잊고서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진정한 의미의 저항운동도 시작할 수 없다. 518에 대한 해석이야 다를 수 있지만, 그 저항현장의 상징인 노래를 폐기하자고 하는 것은 감정적인 대응일 뿐이다. 물론 나도 그로부터 연유한 운동권 하위문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운동 전반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질식시켰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80년대 저항운동이 앙상한 운동권 하위문화로 귀결된 것이 유일하거나 필연적인 경로는 아니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이미 그렇게 형성되어져 버린 조건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조건들 속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조건들 속에서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마치 악몽처럼 살아 있는 세대들의 머리를 짓누른다."(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2. 토지개혁 때문에 대한민국의 출발은 진보적이었다?

 

우리는 지난 저항운동의 역사가 남겨놓은 한계와 가능성을 명확히 하고, 그 가능성을 중심으로 계승해 나가야 겠지만, 그렇다고 맘에드는 것만 골라서 이어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면에서 여운형과 조봉암을 치켜세우며 "대한민국은 진보적인 시대에 건국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찍이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역사에 대한 '편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두 명의 훌륭한 정치인이 해방을 전후하여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었고,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이란 점에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실제 이들이 현재의 대한민국 '체제'를 긍정적으로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느냐 하는 문제로 오면 그리 대답할 만한 게 없다. 실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포부를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타살되었고, 그러니 그들이 역사에 남긴 것은 말과 글, 즉 '사상'뿐이다.

 

주대환의 말대로 해방 직후 유력한 정치인(김일성, 박헌영, 여운형, 김규식, 김구, 이승만) 중에 좌우 양극단의 두 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타살되면서, 한반도는 사실상 극우와 극좌의 나라가 되었다. 적어도 50년대 남한은 '이승만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텐데, 토지개혁 하나만 가지고 이 나라가 조봉암의 업적 위에 세워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해도 비약이 너무 심하다. 이에 더해 (그것이 북한과의 체제경쟁 과정에서 출현한 정책이었다는 점을 제외한다해도) 토지개혁을 현재 대한민국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논의는 문제가 많다. 이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주대환은 자신이 아무리 신좌파를 외치고 다녀도 구좌파적 사고방식, 즉 단계론적/진화론적인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그는 남한의 토지개혁을 치켜세우면서, 그것은 집단농장으로 전락한 중국 공산당의 토지개혁이 아니라 79년 덩샤오핑 체제 하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이 남한의 그것과 견줄만 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농민들에게 자기 소유의 땅을 쥐어주고 "모두 부자가 되라!"라는, 우리나라 모CF의 "부자 되세요~"와 견줄만한 지상명령을 제시한다. 이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으로 잘 드러나는데, 이것을 보통 중국의 자본주의로의 전환에 있어 첫 기점으로 삼는다. 주대환에게 이것은 한국의 토지개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하자면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소농의 나라였습니다. 토지 개혁으로 조그만 땅뙈기를 갖게 된 수많은 자영농민들의 자발적 중노동과 창의력이, 그 말릴 수 없는 교육열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기적을 만든 에너지의 원천입니다."(226쪽)

 

정리하자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토지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로의 발전과 번영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고, 대한민국은 이런 '위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낡은 NL과 PD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보면 제2인터내셔널 당시 자본주의의 성숙이 자동적인 사회주의로의 진화로 나아가게 한다고 말한 일부 '정통 맑스주의자'(주대환이 따르는 베른슈타인류나 그가 반대하는 스탈린류나 모두 여기에 속한다)들의 사고방식과 뭐가 그리 다른지 궁금하다. 게다가 '자발적 중노동'이라니!! 이런 식이라면 인클로저 운동 당시 도시로 내몰린 빈민들의 노동도 '자발적'이었고, 먼지 소굴 평화시장에서 어린 여공들의 일을 대신해주기도 했던 전태일의 노동도 자발적인 것이다. 어쩌면 주대환의 생각은 작년에 광주항쟁에 대해 '선진국에서도 다 그런 과정을 겪더라'라며 통과의례쯤으로 발언했던 황석영의 관점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월러스틴이 말했듯이, 서양의 부르주아 혁명은 신흥 자본가계급의 출현이 아니라 기존 귀족계급의 '환상변신'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근대로의 진화'라고 보는 관점은 옳지 않다. 한국의 50년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조선 말기와 일제 식민지 시기에 봉건 지주였던 놈들이 반민특위를 짓밟고 자본가계급으로 '환상변신'을 했다는 것은 굳이 월러스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상식이 아니던가?

 

 

3. 전쟁은 '평등주의'다!?

 

나아가 내가 주대환을 다음의 인용문을 근거로 '주전론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억지일까?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두어 차례 전선이 밀려 내려오고 밀고 올라감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다니고, 월남 또는 월북함으로써 뒤섞이는 사이에 신분 질서와 귀족의 생활양식, 전통문화는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고급문화를 대중이 따라하여 전반적으로 문화적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모두가 어떤 가식도 핑계도 없이 노골적으로 돈과 힘을 추구하는 천민이 된, 위대한 천민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 ...)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평등하기 때문에 위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나라, 대한민국이 평등하다니요? 그렇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평등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의 평가는 상대적입니다. 건국 당시의 대한민국이 평등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평가가 아니라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222-3쪽)

 

한국전쟁이 기존의 신분관계를 청소해서 대한민국은 모두가 천민인 나라, 평등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원래 자본주의 자체가 천한 것이니 한국식 천민자본주의가 부끄러울 이유도 없고, 지금의 대한민국 발전을 이끌어 온 엄청난 교육열도 이 '천민적 평등주의'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위대하신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팔할이 전쟁이었다. 오 전쟁이시여~ 뭐 이런건가?

 

이런 식의 주장은 사실상 종말론적으로 읽힌다. 모든 것이 파괴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새로 지을 수 없다는...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대전이 전지구적 경제성장의 기회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것을 앞에서 지적한 그의 '자발적 중노동'이란 표현과 연결해 생각해 보면, 전쟁으로 피폐화된 상황 속에서 한국은 근대적 평등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얻었고, 이로써 근대화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일제의 식민통치와 세계대전 참전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현재 전쟁을 겪고 있는 중동지역 시민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축복의 폭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4. 여전한 남의 것에 대한 맹목적 추종

 

이에 대해 나의 과잉해석이라고 말한다면 인정하겠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일때 한 쪽 눈엔 블라인드를 쳐버리는 습관은 여기서 그치는게 아니었다. 이를테면 "마찬가지로 뒤집어 보면, 한국이 OECD에 가입했다는 사실 역시 때로는 고맙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하게 OECD에 가입해서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하는 외환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과연 OECD가 한국의 가입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엄두를 내었겠습니까?"(230쪽) 같은 구절 말이다.

 

한국 정부가 언제부터 그렇게 국제기구의 말을 잘 들었다고 공무원노조 탄생의 공을 OECD로 넘기는지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주대환은 자기가 그렇게 부르짖는 '토종 좌파'로서의 자질이 매우 부족하다. 그는 대한민국을 긍정하자고 말하면서도 그 근거를 대한민국 내부가 아니라 항상 외부에서 찾는다. 대한민국 최초 헌법이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도 사실상 서구문물에 대한 찬양이다. 그가 여운형, 조봉암을 존경하는 이유도 그들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을 좋아하는 것도 그들이 '서구적' 국가관료제도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식민지 시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저항운동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모조품으로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것이다.

 

진보신당 상상연구소의 장석준은 주대환의 이런 주장을 두고 역사 속에서 어떤 기원적 사건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정통성의 계보를 작성하는 것은 전형적인 주자학자들의 역사관인데, 주대환의 주장이 딱 그 꼴이라고 비판했다. (장석준, <진보좌파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시민과세계 2008 하반기호) 여기에 덧붙이자면 주대환은 한국 땅에서 한 번도 자리를 잡은 적 없는 서구형 민주주의/복지국가를 대한민국 정통성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면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대중들의 저항행동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긍정해야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장석준이 말하듯이 "민주공화국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넘어서야"한다. 그런 방향으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써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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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글을 읽는 것은 나로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앞서서 운동했던 대표적인 분이 이렇게 매력없는 글로서 사람을 실망시키니 후배의 마음은 찢어진다. 한 논평자의 말처럼 주대환의 이런 선회는 이미 90년대초 '신노선'을 선언할 당시의 선택이 "주어진 선택지들 중에서 선택한 무엇이 아니라 '더는 이대로 돌파할 수 없는 한계선'을 맞닥드리며 어쩔 수 없이 포기하며 좌파에게 남은 기획을 '새로운 기획'이라 믿고 또 다시 헌신해온, 좌파의 총체적 위기와 기획의 빈곤 위에서 싸워온 우리 운동과 우리 자신의 현실적 자화상"(최윤식, "사민주의가 대안일 수 없는 이유", 레디앙, 08.09.08)인 것처럼 예정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어차피 좋든 싫든 주대환류의 역사적 효과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우리의 미래도 이렇게 예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운동의 혁신'이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난 운동의 결과들과 단절을 선언하는 것 밖엔 길이 없지 않는가?

 

부탁드린다. 어린 놈이 더 이상 이런 절망스러운 결론에 다다르지 않도록 선배님들이 지난 운동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좀 더 성실하게 해 주시기를... 그래서 그것이 '대안사회'로 불리든 '진보한국'으로 불리든, 그것을 이뤄나가는데 미력한 지성을 보태는데 망설일 이유를 만들지 않게 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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