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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예를 들면 나는 어느 때 눈보라가 치는 밖에서 철로 위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노동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몸이 너무 얼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열심으로 철로에 자갈을 쳐넣고 있었다. 순간 나는 숨을 돌리기 위해서 일을 멈추고 허리띠를 늦추려고 했다. 그 순간 운 나쁘게 감시병이 나를 보고 있었다. 물론 나는 위법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나에게 있어서 -- 이미 증대해진 무감동에도 불구하고 -- 고통스러운 것은 무슨 설교도 아니었고 매질도 아니었다. 이 감시병은 간신히 인간의 모습을 상기시키는 이 말리 빠지고 누더기를 걸친 인간에게 조소의 말조차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시부렁거리며 땅에서 돌멩이 하나 줍더니 나를 향해 던졌다. 마치 무슨 동물에게 던지듯이. 구타를 당할 때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구타에 따르는 조롱이다. (48p)

 

 

 

직접 생명 유지에만 집중한다는 심리적인 상태와 필요성의 압력 밑에서는 전 정신생활의 현상이 원시적인 단계에까지 끌어 내려진다는 것은 용이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 따라서 죄수 가운데 정신 분석에 흥미를 가진 동료는 때때로 수용소에 있어서의 인간의 퇴행에 대하여 즉 심리적 생활의 보다 원시적인 단계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이런 소망이나 노력의 원시성은 죄인의 전형적인 꿈에 있어 분명했다. 수용소의 죄수가 자주 꾸게 되는 꿈은 어떤 것일까? 죄수는 빵이나 과일이나 담배나 따뜻한 목욕탕 등을 꿈꾸는 것이다. 가장 소박하고 원시적인 욕구 충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가장 원시적인 소망의 꿈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가 잠이 깨어 다시 수용소의 현실에 직면하고 그리고 꿈에서 그리던 화녕오과 수용소의 현실과의 놀라운 콘트라스트를 느꼈을 대 꿈이라는 것이 꿈을 꾼 사람에게 어떤 기분을 안겨 주는 가는 상상 밖이었다. 아뭏든 나는 다음과 같은 일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밤, 나는 내 곁에 자고 있던 동료가 분명히 놀라운 악몽 때문에 큰 소리로 외치면서 딩굴고 있는데 잠이 깨었다. 나는 원래 어떤 불안한 망상 관념이나 어떤 꿈에 나타나난 것으로 해서 괴로와하는 인간에 대하여 특별한 동정을 느끼는 인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는 이 가련한 악몽으로 괴로와하는 친구를 막 흔들어 깨우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행동에 깜짝 놀라 흔들어 깨우려고 뻗었던 손을 도로 오무렸다. 왜냐하면 그 순간 어떠한 꿈도 이를테면 가장 무서운 꿈이라 할지라도 수용소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현실에 비하면 아직도 낫다는 것이 강렬하게 나의 의식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54-5pp)

 

 

 

영양 부족의 결과 수용소 생활에 적응한 제2단계의 죄수의 원시적충동성은 식욕을 의식의 면전에 드러내 놓았으나 다른 한편 영양 부족은 성욕이 일반적으로 없어졌다는 사실까지도 무서울 정도로 설명해 줄 것이다. 최초의 자극적인 시기를 제외하면 남성의 집단 학대 속에 있어서의 심리학자의 눈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쉽사리 밝혀졌다. 즉 다른 장소(이를테면 군대 생활)에 있어서의 집단생활과는 반대로 이 곳에서는 남자들끼리의 성적 장난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죄수의 꿈에서까지도 성적인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 정신 분석의 의미에 있어서 '목적을 저지당한 노력'이, 곧 사랑에 대한 깊은 동경이나 보다더 자상하고 높은 요구가 꿈 속에서 자주 나타났던 것이다.  (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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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 후기.

서울시장 토론회는 11시 15분에 시작했는데도 끝까지 보는데 졸려 죽는 줄 알았는데, 경기도지사 토론회는 아예 12시 30분에 시작을 하더라. 뭐 어젯밤에는 그래도 그렇게 피곤하지 않아서 제대로 집중하고 보긴 했는데, 이렇게 늦은 시각에 하면 누가 토론회를 보나... 어제 했던 '후+'같은 프로그램은 그냥 하루 쉬고 토론회를 일찍 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여하간에...

어제 토론회는 인정하기 싫지만, 유시민의 판정승이다. 유시민이 TV토론회에 나와서 얘기하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 그래, 대한민국에서 이빨까는건 니가 짱이다!!

 

아쉬운건 심상정이다. 물론 심상정 자리에 한명숙 같이 얌전빼는 후보가 와서 앉아 있었으면 유시민-김문수 양자대결 구도에서 쩌리신세를 면치 못했을 판인데, 심상정은 나름 적제적소에서 김문수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리며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아, 심 후보님... 그래도 토론회 나올 땐 토론진행방식에 대한 기본적인 숙지는 하고 계셔야죠..ㅠ.ㅠ 어제 토론회는 사회자도 그런 프로그램 처음 맡아본 사람 같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토론 진행도 많이 미숙했고, 후보들도 우와좌왕 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런데 심상정의 실수는 너무 결정적인 것이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1) 모두발언

모두발언을 보면 심 후보가 뭔가 발언을 준비해 오긴 했는데, 말하다가 까먹어서 중간에 중요한 부분을 잘라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토론시작 전에 MBC에서 준비한 세 후보의 인연에 대한 영상이 나갔는데, 그 얘길 이어가면서 여전히 그 때 신념을 유지하며 진보의 길을 가고 있는 건 자신뿐이다, 라고 말하더니 잠깐 침묵. (아마도 여기서 뭔가 중요한 말을 까먹은듯.) 그러더니 갑자기 "이번 선거는 양극화세력과 복지세력의 대결이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바란다"로 넘어갔다. 이 '양극화세력'이라는 규정은 '참여정부+MB정부'를 싸잡아 몰아넣는 개념일텐데, 침묵하던 그 순간에 유시민과 김문수가 사실상 제도권 정치 입문 이후 양극화라는 같은 길을 갔다는 얘기를 했어야 했다. 이 말이 빠지니 말의 앞뒤가 좀 안맞는 느낌...

 

2) 김문수 공약토론

김문수는 경기도의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경기도 전역을 30분만에 오갈 수 있는 GTX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심상정은 지금 경기도내에 지하철들이 매우 많고, 이들간의 환승 시스템을 잘 조정하면 그런 사업 안해도 충분하다고 맞받았는데, 내가 듣기엔 뭔가 말이 매끄럽게 흐르지 못하고 '그런 사업 굳이 할 필요 없다'는 쌩까기 모드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삽질하겠다는 사람에겐 삽질을 할 이유가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다. 나는 김문수가 이 때 너무나 뻔뻔스럽게 CEO처럼 '사업 설명'을 하는 걸 보고 쫌 뜨악했는데, 김문수의 이런 자세를 비판하는 심상정의 방향타가 좀 어긋나지 않았나 싶다.

한편 유시민은 사실 심상정이랑 그렇게 다른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뭔가 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즉 뭔가 주요한 팩트들을 나열하면서 이 사업의 공사비 타당성의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서 무력화하는 방식이 주효했다. 그러나 끝까지 김문수는 'GTX 반대하는 사람은 당신들이 처음이다'라는 뻔뻔 모드로 나가긴 했지만...

 

3) 유시민 공약토론

이 부분에서 유시민이 정말 토론 구도를 잘 잡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여 실개천 살리기를 강조했는데, 아마 같은 진영의 한명숙이었다면 그런 구도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한명숙은 환경부 장관하면서 한나라당 정책에 대해 찬성하는 말을 한게 좀 있어서 역공의 여지가 있지만, 유시민은 자기가 직접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니어서 그런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4대강과 실개천관련 토론은 거의 난타전 수준.

그런데 여기서 심상정의 질문타임으로 넘어가는데, 분명 이 질문타임은 유시민 후보 공약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 후보는 한나라당의 4대강 사업 비판에 몰입해 있어서 그런지 김문수 후보 비판하는데 첫번째 질문시간을 다 써버렸다. 그러니 유시민도 당황하여 "지금 저한테 질문하셔야 하는 건데..."라고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물론 이번 한강 대운하 사업은 건설 토목사업에 미쳐서 그런것도 있지만, 대형 리조트를 유치하려는 것에 문제점도 있다는 꼭 필요한 얘기도 있었지만, 그 얘기는 간단히 하고 유시민 비판으로 빨리 넘어가야 했다. 사실 심상정이 한 얘기는 대부분 앞에서 유시민이 다 한 얘기다. 토론 구도상 같은 얘기 반복해 봐야 득될게 없다.

두번째 질문 기회때, 지금 야당이 4대강은 반대하지만 참여정부때 새만금을 비롯한 반환경정책을 폈다는 비판을 수경스님의 발언을 인용하여 했는데, 이건 괜찮았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앞의 질문기회까지 이용해서 좀 더 풍부하게 깔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남더라... 사실 새만금 말고도 얼마나 많은가? 천성산, 부안 핵폐기장 등... 물론 유시민이 그 정책의 담당자는 아니었느니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갈 수는 있었겠지만, 어차피 그 토론회가 각 정당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나와서 벌이는 난타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여정부의 실정을 유시민에게 독박씌우는(?) 토론방식이 그리 나쁠 이유는 없었다.

 

4) 심상정 공약토론

나 스스로가 요즘 핀란드, 핀란드 해대는 유행이 그렇게 맘에 드는게 아니어서 좀 그랬지만, 토론 자체는 잘 한 것 같다.

 

5) 주제토론

주제가 '경기도 규제완화와 경쟁력 강화 방안'이었는데, MBC에서 아예 난타전을 위한 판을 깔아줬다. 워낙 유시민이 능구렁이여서 자기 입장은 '규제 완화'에 무게 중심이 가 있으면서도 김문수와의 차별점을 용케도 형성해 내는 모습이 정말 기가 막힐 뿐이었다. 하여간 이빨은...

여기서는 심 후보가 우회로를 타지 않고 정공법으로 김문수를 공략하며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유시민 자리에 한명숙이 와 앉아 있었다면 심상정이 고공 플레이하면서 둘 다 날려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유시민이 워낙 판을 잘 짰다는 생각 밖에는...

 

6) 후보간 상호 자유토론

이 자리에서는 김문수의 천안함 공세가 '단연'(?) 돋보이는 자리였다. 김문수는 4번의 질문 기회를 천안함 얘기로 다 써버렸는데, 아무래도 3-40대 표는 포기한 것 같아 보였다. 어제 잠깐 공무원 아저씨들과 천안함 사태에 대해 얘기해 본 바로는 '정부에서 얘기하는데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한데 뭔가 찜찜하다'라는게 대세였다. 그 와중에 몇몇 분은 여전히 한미합동훈련 와중에 어떻게 잠수정이 레이더에 안 잡힐 수 있냐고, 정말 '상식' 수준에서 의심을 품고 있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김문수의 발언은 그런 청장년층의 상식과 배치는 것이었다. 그런식의 색깔공세, 국가관 공세가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득표력 확장에는 도움을 못 줄듯 싶다.

여기서 또 심상정의 실수가 있었는데, 심 후보는 주어진 두 번의 찬스기회를 같은 얘기하는데 다 써 버렸다는 것이다. 심 후보는 김문수에게 주택정책 부재를 비판하면서 3번의 질문을 쓰고 나서 (이 부분은 참 잘 했다. 김문수의 '경기도가 집 구하기 제일 좋은 곳이다'라는 말에 아연실색 -_-;;) 남은 한번을 유시민에게 "복지정책에 신경을 많이 쓰긴 했는데 한미FTA등 그 자체로 복지를 파괴하는 정책에 대한 수정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비판을 했다. 이에 유시민은 노무현의 <진보의 미래>를 인용하면서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리였다'는 말을 했는데, 심상정이 찬스를 썼을 때 공격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대통령이 진보를 이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리였다면, 서민과 진보를 참칭하면서 대통령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거나, 그렇다면 당신들은 백날 집권해도 한나라당과 다를게 없다거나... 뭐 이렇게 직설적인 비판이 필요했는데... 갑자기 윤증현의 의료민영화 얘기를 하더니 그게 유시민이 복지부 장관 할때 다 만들어진 것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질문 자체야 좋았지만, 타이밍이 별로 안 좋았던 것 같고, 말을 깔끔하게 맺지 못해서 질문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그래서 뭔가 아쉬웠는지 다음번 찬스 쓸때도 또 의료민영화 얘기를 했는데, 사실 첫번째 찬스 쓸 때랑 똑같은 얘기였다. 아, 아까운 찬스 두 번을 그렇게 날려버리다니...

의료 정책 관련 토론에선 유시민이 정말 무서운 놈이란 생각을 하고야 말았는데, 지가 복지부장관 재직할때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파스모아서 생계에 보태쓰는것도 아까워서 수급권도 축소했던 놈이 경기도지사 선거 한다고, 예방 중심의 의료공급 체계라는 '안성생협'사례까지 꿰고 앉아서  심상정의 의료분야 공약을 '치료중심의, 병원 많이가게 조장하는 공약'이라고 공격했다. 심상정 또한 적절히 맞받아 치면서 빠져나갔지만, 이미 유시민 스스로가 개혁적 복지전문가 이미지를 세운것을 막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        *        *

 

 

여하간 어젯밤 토론은 근래에 보기 힘든 쟁쟁한 토론이었다. 그런 판에서 김문수는 오세훈처럼 공격형 토론을 할 여지를 만들지 못한 것 같고, 심상정은 선전했으나 유시민의 거짓 이미지 구축을 무너뜨리는데는 역부족이었던 듯 하다. 토론 진행 방식 숙지만 제대로 했어도 좀 나았을 것을....

 

그런데 어쨌든 이런 판으로 가면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젊은 층 표는 유시민이 다 가져갈 것 같다는... 아무래도 정책 상의 비교 검증이 될 수 없는 선거판이다보니 좀 상식이 있다는 젊은 층은 이빨까는 것만 보고 뽑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래 링크는 그 여실한 증거물...

 

http://yhhan.tistory.com/entry/펌-어느-진보신당-후보와-유빠-친구와의-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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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 후기.

오늘 아침 출근하자 마자 진보신당 당게, 아고라, 프레시안, 레디앙, 네이버 검색 등등을 뒤져보며 어제 토론회 관련 내용들을 훑어봤다. 난 어제 토론회를 보고 사실상 노회찬-오세훈의 대결이었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오마이뉴스 기사가 떡하니 이렇게 떠 버렸다.

 

서울시 '복지 전쟁' ... 돋보였던 한명숙-노회찬 공조

 

오마이야 그렇다치고, 프레시안도 비슷한 논조였다. (MB 찌르고, 盧 공격하고…서울시장 TV토론 '난타전') 결국 이들의 논점은 이번 토론의 주요 쟁점은 '노무현 대 이명박'의 대결이라는 것이고, 여기서 노회찬은 화려한 말빨로 한명숙을 지원사격했다는 것이다.

 

이건 원 토론회를 똥구녕으로 보지 않는 이상 이딴 결론이 나올 수 없다. 심지어 아고라에 죽치고 있는 노빠들은 노회찬이 막판까지 선거운동을 계속하면서 오세훈 때리기로 한명숙을 지원하고 결국엔 단일화를 할 것이라는 변태스런 상상들을 하고 계신다. 이거야 원 개혁 대 보수라는 자신들의 환상 속에 사로잡혀 있는 노빠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씨알이 먹혀들질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어제 토론회의 순위를 매겨보자면 노회찬>오세훈>지상욱>한명숙 순이다. 중요한 것은 한명숙이 지상욱보다 심각하게 떨어지는 토론능력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건 단순히 말빨이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낼 정책이 사실상 부재했고 상대방의 공격에 대한 대처가 불가능할 정도로 이전의 정치행보들이 오락가락 했다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질 없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상욱 후보는 '자율형 시민건강보험'이라는 독특한 정책(타당성에는 의문이 가지만)과, 도시공학 전문가라는 장점을 내세워 오세훈의 도시정책에 대한 그래도 '들어줄만한' 비평을 가했다.

 

한명숙의 어제 토론에서 가장 돋보였던 말은 '거짓말이다' 뿐이었다. 자기가 국제고 유치에 발벗고 나섰다는 오세훈 후보의 공격에 대해 "사실 왜곡이다, 그런 거짓말 하시면 안된다"는 생때쓰기를 해댔다. 졸려서 제대로 집중을 못해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런 얘기하려고 소중한 찬스타임까지 날려먹었다.

 

반면 한명숙의 오세훈 공격은, 다음 아고라에서 5분만 죽치고 있으면 나올만한 주장과 단어를 배열해 놓은 정도의, 딱 봐도 영양가 없는 얘기들만을 늘어놓았다. 시청광장 봉쇄, 일제고사, 사교육비 증가 어쩌구 저쩌구... 그런 얘기를 하면 오세훈 입장에선 한 두번 들어본 얘기도 아닌데 당황 할리가 있겠는가? 최소한의 팩트를 바탕으로 한 공격과 비판이 없었다. 심지어 자유토론 타임에는 지상욱 후보에게 "디자인 서울 정책에 대해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싶다"라며 결정적인 뻘타를 날렸다. 지지율 2위의 유력 후보면 후보답게 그런 문제점은 전문가에게 안 물어봐도 자기가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무능 무능 무능. 정말 무능한 후보다.

 

우리 누나네 부부는 성남에 사는데 매형은 이번에 유시민을 찍고 싶어하는 눈치다. 이유는 '말 잘하는 사람 뽑아야지'라는 거다. 또 우리 누나는 지난 대선때 말 잘해서 문국현 뽑았단다. 이렇게 민주진영 후보들의 주요 지지층은 '말 잘하는 사람 뽑아주고 싶어하는' 2-30대 젊은이들인데, 그런 시각으로만 봐도 한명숙은 낙제다.

 

노회찬 후보의 토론을 보면서 느낀 것은, 진보진영에게 미디어를 활용할 필요성은 바로 이런데에 있는게 아닐까라는 새삼스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노회찬식 토론의 장점은 단순한 말빨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꾸로 타는 보일러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복지가 거꾸로 간다는 얘기는 처음이다.", "루이비통 명품관을 강북에 짓는다고 강남북 격차가 해소되느냐? 강남북 부자들의 격차만 해소될 뿐이다.", "전임 시장으로부터 유산상속 받을 것을 자기 치적으로 내세우지 말라."같은 돋보이는 언변은 내가 볼땐 그냥 양념이다. 그 양념 맛이 제대로 나기 위한 알맹이가 탄탄했다. 오세훈의 실정에 대해서도 가장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공격했다. 이걸 한명숙에 대한 지원사격으로 보는 오마이와 노빠들의 의도적 착시현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의 특화된 공약이라 할 수 있는 착한기업 우대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인센티브제 등은, 약간 상품성을 가미한 정책이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정책이었고, 이에 대한 오세훈의 비난에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주장하는 모습이 좋았다.

 

어쨌든 어제 토론회에 대한 총평은... 노회찬에게 가는 표는 미래 진보정치를 위한 씨앗은 되겠지만, 한명숙에게 가는 표는 그야말로  사표라는 것. 무슨 희망을 위해 한명숙과 민주당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 혹여나 한명숙이 당선이 되도 그건 사표다. 자신의 색깔이 없고, 정책적 확신이 없는 후보가 당선되면, 노무현이 그랬듯이 자본권력을 가진 이들의 입김에 휘둘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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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후 진보신당은?

공화주의 시민운동님의 [실망스러운 진보정당운동] 에 관련된 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결과는 사실 눈에 보이는 바. 그렇다면 진보신당은 예정된 패배의 뒷수습을 해야 할 텐데, 그 첫번째가 나는 지난 2년 반 동안의 진보신당 활동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함께 노회찬 심상정의 2선으로의 후퇴라고 생각한다.

 

평가라 함은 물론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유주의 야권세력과의 (단기적 수준을 넘어선) 연대 압력에 굴복하며 대안정당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세워내지 못했다는 점에 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사실상 1기 진보신당을 이끌어온 장본인인 두 사람이 2선으로 후퇴해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현재 진보신당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의 책임을 온전히 이 둘에게 뒤집어 씌울수는 없는 문제이겠으나, 지도부의 상징인 두 사람이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 당의 새 출발을 각오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두 사람은 지금 단병호가 하고 있는 것처럼, 지역으로 내려가 다시 '씨 뿌리는 노동'에 전념해야 한다.

 

이제 진보신당은 유명인을 앞세워 당 이름 알려보려는 약은 술수를 집어던져야 한다. 어쩌면 진보신당의 패착은 지난 08년 총선때 각 지역구 후보들이 노회찬, 심상정과 함께 찍은 사진 내걸어서 홍보하던 때부터 시작된게 아닐까? 이런 작태는 사실상 국참당이 노무현 사진 박아놓고 '노무현처럼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거나, 자유선진당 후보들이 이회창과 함께 찍은 사진 같이 내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노동자운동, 진보운동이 특정인의 권위를 빌어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버리자. 이미 그게 아무 효과가 없다는 건 다 드러났다.

 

그리고 부산시당 등 민주당과 선거연대를 한 지역에 대한 분명한 징계가 있어야 한다. 뭐 징계야 자기들 당규에 따라서 줄 일이지만, 이번 기회에 분명히 민주대연합과 선을 긋는다는 분명한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 가끔 레디앙 댓글같은데서 보면, 김석준 후보의 심정을 이해해 달라, 부산에서 오랫동안 힘들게 진보정당운동을 이끌어온 김석준을 욕하지 말라 뭐 이런 내용이 보이는데, 이건 솔직히 논리상으로 보자면 재벌 총수들 비리로 구속됐을 때, 정부에서 "경제발전에 끼친 공이 크기 때문에" 사면해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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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의 답답한 짓거리...

민주노동당의 민주당 쫄따구 짓거리가 본격화되었다. 서울의 이상규 후보는 한명숙과 단일화를 한답시고, 오늘 후보 등록을 포기했다. 이게 무슨 단일화냐? 한명숙 옹립식이지... 이 양반들은 정당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는 모양이다. 정당 대 정당의 후보를 단일화 하는 거면 최소한 여론조사든 뭐든 절차를 거쳐야지... 물론 이상규의 지지율이 심각한 수준으로 초라하여 여론조사 같은 걸 하면 너무 쪽팔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안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아예 정당 간판을 내려야 한다. '민주노동당'에서 '노동'이란 단어를 당장 빼라.

 

민노당이야 그렇다 치고, 문제는 진보신당이다. 이번 선거에서 인정상 지역에 출마하는 진보신당 후보들에게 표를 찍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이런식으로 닭짓을 계속하면 그 마음도 싹 달아날 판이다.

 

초반 10% 지지율을 오가던 노회찬, 심상정 등이 최근 단일후보 바람에 밀려 1~3%대로 지지율이 밀려났다는데,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이건 온전히 자신들이 자초한 일이다. 오늘도 보니 심상정은 정책경쟁하면 단일화 할 수 있다고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는데, 어떻게 이런말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가? 개인자격으로 후보가 된게 아니라 공당의 후보로 나선 것이라면 중앙당에서 결정한 당론에 따라 말해야 한다. 진보신당의 당론은 '진보대연합'이다. 그런데 유시민이 진보대연합의 대상인가? 이런식으로 떡밥을 던지니 민주당/국참당 쪽에서 계속 진보신당 물어뜯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고, 그러니 사람들은 "아, 언젠가 얘네도 단일화 하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니, 심상정 당신을 지지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다.

 

손호철이나 박상훈 같은 사람들은 5+4회의에 들어간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까지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보신당 입장에서 물밑에서 논의되던 선거연합의 상 중에서 최초로 가시화된 테이블에 발도 안담근다는건 공당으로서 위험부담이 있었으리라 본다. 오히려 현재 김세균 교수를 필두로 한 진보정당 외부의 '진보대연합' 주창파들이 왜 5+4가 나온 뒤에 뒷북을 쳤는지를 따져물어야 한다.

 

물론 진보신당에 대한 이해심은 딱 여기까지인거고, 레디앙 기사에서 인용한 한 관계자의 말처럼 잠정합의안에 싸인하지 말고 나왔어야 한다. 아니, 언제 나왔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거길 들어가서 무슨 얘기를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현재 5+4를 박차고 나간 진보신당에게 남겨진 이미지는 무엇인가? "수도권에서 노회찬, 심상정 둘 중 하나라도 단일후보 자리를 줘야 하는데, 민주당이 양보를 안해서 나왔다." 딱 이정도 수준이다. 진보신당 스스로도 그런 자세를 취하지 않았나? 이런 식의 자세는 자기 당 살려고 남의 당 이용하는 민주당의 태도와 그리 다르지 않다. 정치적으로 주판알 튕기기 하다가 수지타산이 안맞으니 나왔다고 이미지가 남으면 타 정치세력도 그렇고, 대중들도 그렇고 진보신당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보신당은 5+4에서 자신들이 이번 선거에서 내세우는 정책과 전략을, 혹여 답답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우직하게 끝까지 밀어붙였어야 한다. 비정규직, SSM, 재개발문제, 대체에너지 등 진보신당이 독자적으로 고민해 오던 다양한 정책들을 토나올 정도로 제시하고 안 받으면 판 깨고 나간다고 위협했어야 한다. 이게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거대한 소수' 전략 아닌가?

 

그러나 어느 순간엔 민주당이 조장한 자리 나눠먹기 싸움에 뒤섞이더니, 어느 순간엔 비정규직 쟁점에 있어서 민주당에게까지 밀리는 경우도 있었다. TV토론도 물건너가려는 이 마당에 노/심이 이제와서 정책경쟁하자는건 그야말로 뒷북이다. 노회찬은 자신의 선거사무실 개소식 연설(가히 명연설이었다!!)에서 서울지하철공사 사장은 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의 추천을 받아 뽑겠다고 말했는데, 이 얘기 왜 5+4회의에서는 안했나? 협상의 예의를 지키려고? 예의는 노동자들한테만 지키면 된다. 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갑용이 <길은 복잡하지 않다>에서 쓴 것처럼 임단협이든 뭐든 협상을 할 때는 언제든지 판을 엎을 준비를 해야 한다. 때론 깽판치는걸 전담할 사람을 지정해서라도. 우리의 원칙 중 일부는 양보할 수 있다는 떡밥을 이런식으로 흘려대서는 힘의 우위에 있는 저들에게 언제든지 밀리지 않겠나?

 

그렇게 하고 나왔어야 내부적으로 당원들에게 체면도 서고, 외부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다. 그게 자신이 없었으면 손호철, 박상훈 말대로 진짜 처음부터 들어가질 말았어야 한다. 그래서 지난 달 까지만 해도 사실상 파토났다고 여겨지던 야권 후보단일화가 이제 와서 불씨가 살아난 건, 일정부분 진보신당이 기여한 바(?)가 있고, 그 피해는 온전히 진보신당이 다 뒤집어 쓰게 생겼다.

 

이번 문제의 핵심이 부산시당이 있는 것 같은데, 부산의 야권연대 논의과정이 어떠했는지 나는 모르기때문에 많은 얘기는 못하겠지만, 단 하나 이건 집고 넘어가야 한다. '당원의 권력'에 의해 시장후보로 뽑혔고, 시당 위원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무슨 권리로 두 번이나 부결된 사안을 다시 논의해 달라고 선대위에 압력을 넣는지 모르겠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진보신당 광주시당은 민주당의 기초선거구 쪼개기에 반발해 지역에서 '反민주당연대'를 제안하고 나섰는데, 광주시당에서 '반대'하는 민주당과 부산시당에서 '연대'하는 민주당은 서로 다른 당인가? 이게 과연 정상적인 당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태냔 말이다.

 

하여간 답답한 노릇이다. 내가 예비 대학생이던 2002년 대선 당시엔 최소한 가족들에게라도 '부유세'공약으로 팍팍 치고 나가던 민노당 찍자고 떠들어댈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의 진보신당을 가지고 그런 얘기를 하기는 참 민망하다. 며칠 전에도 엄마한테 '무조건 7번 찍자'고 말했는데, 말하는 나 자신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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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구조조정 고민중...

 

나는 그냥 송준기 아냐고 물어보려고 전화한건데, 그 후배녀석은 또 나에게 떡밥을 던졌다. 며칠전 우연히 배우 송준기가 내가 졸업한 학교 학생인 걸 알고 인터넷을 좀 뒤져봤더니 눈에 익숙한 학회실에서 찍은 사진들이 나오기에... 심심해서 물어보려고 전화한건데... 그러고 그냥 빠이빠이 하려고 했는데...

 

아 놔, 그 학교 구조조정안 발표된걸 나더러 대체 어쩌라고?....................?

 

라는 기분이 들다가 계속 머릿속에 이러저런 잡 생각들이 돌아다녀서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___________

 

그 놈이 나에게 알려준 구조조정계획이라는 것은 대략 이렇다. 현재 계열제로 나뉘어져 있는 모집단위를 문리대학으로 합쳐서 그 안에 인문, 자연, 사회과학 등의 학부를 집어넣는다. 그래서 지금 2학년 올라가면서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을 3학년 올라가면서 선택하는 것으로 하고, 선택한 전공도 특정 학과가 아니라 자신이 과목을 선택해 자신에게 맞는 커리큘럼을 직접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란다.

 

이 얘기를 듣고 문득 떠오른 것은 얼마 전에 읽었던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Descholling Society>에서 제기한 내용들이다. 이 책은 탈학교론의 대표적인 저작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억압적 학교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일종의 '교육 바우처'이다. 나는 처음엔 '바우처'라는 말만 보고도 경기를 일으켜 '이거 완전 미친놈일세'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심성보의 역자해제에 따르면) 교육학자 마이클 애플도 그의 이런 주장을 교육을 슈퍼마켓에서 상품 고르는 것의 일종으로 전락시키는 시장주의의 또 다른 판본이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란 느낌도 든다. (물론 이건 나의 잠정적인 생각일뿐이지만...)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 각각 서울과 경기에서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곽노현, 김상곤의 대담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곽노현은 그 자리에서 방통대 교수답게 자신의 평생교육 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21세기의 교육은 주입식이 아니라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배양시키는데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주장은 일리히의 '교육 바우처' 주장과도 어느정도 상통한다.

 

물론 교육 바우처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자 밀턴 프리드먼도 주장한 바 있는 것이고, 평생교육 철학은 90년대 후반후터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교육개혁과 함께 밀려들어오면서 사실상 21세기의 한국형 '자기계발 주체'의 탄생의 공을 세웠다는 점(이에 관해서는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중 특히 1,2장 참고)에서 둘 다 '훌륭한 대안'이라고 치켜세울만한 것은 못된다.

 

 

 

 

 

중앙대의 경우처럼 눈에 띄게 시장주의적인 대학개혁의 모습이 드러난다면(그런 면에서 중앙대의 구조조정 방식은 너무나 투박해 보임.) 강력한 행동으로 저항의 움직임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학생들의 자율적인 학습능력과 창조성 등을 강조하면서 세련된 방식으로 나온다면 그 구체적인 내용을 잘 분석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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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 발췌독

교육기회를 평등화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바람직한 일이며, 실현 가능한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을 의무취학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영혼의 구제와 교회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학교는 근대화된 무산계급의 세계적 종교가 되고 있고 과학기술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영혼을 구제해 줄 것을 약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약속이 결코 실현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국가는 학교를 이용하여 전 국민을 각기 등급화된 면허장과 결합된 등급 지어진 교육과정 속에 의무로서 끌어들이기는 했으나, 그것은 지난날의 성인식의 의례나 성직자 계급을 승진시켜 나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근대국가는 자국의 교육자의 판단을 선의의 결석학생지도관이나 최직조건을 통해 국민에게 강요해 왔으며, 그것은 마치 스페인의 국왕들이 신학자들의판단을 중남미의 정복자나 종교재판을 통해 피정복민족이나 국민에게 강요했던 것과 꼭 같은 것이다.

(27쪽)

 

 

현재 학교는 교육을 위한 재정을 대부분 독점하고 있다. 학교교육에서 받는 데 드는 것보다도 비용이 들지 않는 반복연습에 의한 교수법은 이미 부유하게 되어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자(의무교육을 받지 않고 홈스쿨을 할 수 있는 자)나 현지훈련을 받기 위해 나간 군대나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자만을 위한 특권이 되고 있다. 미국이 교육의 탈학교화를 서서히 진행하는 계획을 추진할  경우 처음에는 이와 같은 반복연습에 의한 훈련에 대해 배당되는 인재나 자금이 한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일생 중 어느 때나 수백을 헤아리는 기능 중 어느 것인가를 선출해서, 그것도 공비에 의해 배우게 된다면 아무런 장애도 없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에는 조금밖에 되지 않으나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나이든 사람들에게 어느 기능센터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교육구매카드(바우처제도를 말한 듯 함)를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러한 것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출생했을 때 부여하는 교육의 허가증 또는 '교육신용카드'의 형태를 가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매년 주어지고 있는 보조금은 젊었을 때 쓰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교육구입권리증entitlement'을 비축해 놓고 나중에 사용할수 있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대개 학교에서보다 더 잘, 더 빨리, 더 싸게, 그리고 달갑지 않은 부작용을 더 줄이며 자기에게 편리할 때 가장 수요가 많은 기능을 습득할수 있게 될 것이다.

(32-3쪽)

 

 

기능 교수자의 성패는 학습자에게 표준적인 반응을 발전시키게 하는 환경을 정비하는 것에 달려있다. 교육의 지도자, 즉 교육자는 학습을 조성할 수 있기에 알맞은 친구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미해결 문제를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개인들을 만나게 해 준다. 기껏해야 그는 아동들에게 문제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해 주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을 확실하게 해주기만 하면 아동들은 그와 같은 동기에서 같은 시간, 같은 문맥 속에서 같은 문제를 탐구하려고 하는 상대방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8쪽)

 

 

가장 근본적으로 학교에 대치될 수 있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현재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해 같은 관심과 그것에 관한 학습 의욕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생각할 기회를 평등하게 주는 서비스망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0쪽)

 

 

나는 최근 한 학년 진급하는 것에 반대하는 항의운동을 조직한 일단의 중학생들에게 이야기를 걸어 본 일이 있었다. 그들의 슬로건은 '모방'이 아니고 '참가'였다. 그들은 이러한 일이 오히려 교육을 더 적게 받으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데 대해 실망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100년 전 칼 마르크스가 아동노동을 금지하려고 했던 고타강령 중의 한 구절에 반대했던 저항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이 제안에 반대한 것은 젊은이를 위한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젊은 사람을 위한 교육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노동의 최대의 성과란 노동에서 얻는 교육이며, 또 일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타인을 교육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갖는 기회라고 한다면, 교육적 의미에 있어 현대사회의 소외는 경제상의 소외보다도 한층 더 나쁜 것이다.

(47쪽)

 

 

학교에서 습득하여 마침내는 제도화되어 버린 가치는 수량화된 가치를 뜻한다. 학교는 인간의 상상력을 포함해서, 아니 인간 그 자체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측정될 수 잇는 세계로 젊은이들을 인도해 들어간다.

그러나 사실, 사람의 성장은 측정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련된 자기주장의 성장이며, 어떻나 척도나 교육과정을 가지고서도 측정할수 없는 것이며, 타인의 업적과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학습은 상상력이 풍부한 노력에 의해서만 타인과 경쟁할 수 있으며, 또 타인이 도달한 것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걸어간 길에 도달할수 있는 것이다. 내가 존중하는 학습은 측정할수 없는 재창조를 말한다.

(74쪽)

 

 

학교는 학교교육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학교교육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신념을 결합시킨다. 그 기대는 소비자의 의견으로 나타나고 신념은 의례로 나타난다. 학교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적하물 숭배'(조상의 영혼이 배로 돌아와 백인들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는 신앙)가 예배의식의 한 여태로 나타난 것이다 .적하물 숭배는 나에게 1940년대의 멜라네시아군도 전체에 걸쳐 행해졌던 하나의 제식을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열광적인 신자들에게, 만약에 그들이 옷을 입고 있지 않은 맨몸에 검은 넥타이를 매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기선을 타고 나타나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냉장고, 바지, 재봉틀 등을 운반해 준다고 믿게 했던 제식이었다. (...)

인간은 자신의 구세주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술자가 되어버린 것이며, 인류가 번영하고 있는 한 진보하는 공학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과학이 가져다주는 무한한 보상이 약속된다는 것이다.

(82-4쪽)

 

 

만약 우리들이 가치 있는 지시근 특정한 사정 하에서 소비자에게 강제 해도 상관없는 상품이라는 전제에 도전하지 않으면, 사회는 점점 사악하고 그릇된 학교와 정보를 전면적으로 관리하는 자에 의해 지배당할 섯이다. 교육적 치료자는 더 잘 가르치기 위해 그들의 학생에게 더 많은 약을 먹이고, 학생은 교사로부터의 압력이나 증명서를 따내기 위한 경쟁으로부터 구제되기 위해 더 많은 약을 먹게 될 것이다. 더 많은 관료들은 감히 교사로서의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학교교사의 말은 이미 광고 종사자들에 의해 원용되었다. 지금 장군이나 경찰관은 교육자를 가장해서 자신의 직업에 위엄을 주고자 한다. 학교화된 사회에서 쟁을 하는 일이나 국민을 억압하는 일도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교육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이라는 양식의 교육적인 싸움은 사람들에게 끝없는 진보라는 것이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가르치는 유일한 방법으로 더욱 정당화될 것이다.

(90쪽)

 

 

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학교를 처음 봤을 때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는 끊임없이 신임장을 갱신하는 자에 한해서만 방되고 있다. 학교는 근대적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몸에 익히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이동하는 데 필요하다면 고속도로를 위해 현재 부담하고 있는 정도의 연간 지출은 필수적이라는 인상을 고속도로에서 받는 것과 같다. 우리들은 앞에서 고속도로는 자가용에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것이 허울 좋은 공익사업임을 폭로했다 .학교도 마찬가지로 학습은 교과과정을 배운 결과라는 것을 허울 좋게 보이기 위한 가정에 입각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기동성에 대한 욕망과 필요를 자가용차의 수요로 전환시킨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학교는 사람들이 성장하고 학습하려고 하는 자연적인 경향을 교수의 수요로 전환하는 것이다. 타인에 의해 성장하도록 만들어진다는 것은 제도된 상품을 구하는 일보다도 좀더 많이 자발적인 활동 의욕을 상실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는 제도 스펙트럼 상에서 고속도로나 자가용차보다 더 우측에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도 제도 스펙트럼의 우단에 있는 총괄적 보호수용소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학교는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포기시킴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자살을 하게 만든다.

(10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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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프레이리, <페다고지> 발췌독

타인(혹은 다른 생물)을 완전히 지배하는데서 느끼는 쾌감은 사디즘적 충동의 본질이다. 이 점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사디즘의 목적은 사람을 사물로, 활력 있는 것을 무기력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완전하고 절대적인 통제를 받게 되면 살아 있는 것은 자유라는 삶의 한 가지 본질적 요소를 잃어버린다.

- 에리히 프롬, [인간의 마음] 中

 

사디즘적 사랑은 왜곡된 사랑이며, 삶의 사랑이 아니라 죽음의 사랑이다. 따라서 사디즘은 억압자 의식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자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 시체에 성적 충동을 느끼는 성 도착증)의 세계관에 해당한다. 억압자의 의식은 생명의 큰 특징인 활력과 창조력을 찾으려는 충동을 포기하고 지배를 추구하므로 결국 생명을 죽이게 된다. 게다가 억압자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과학과 기술을 강력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조작과 억제를 통해 억압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대상이자 '사물'이 된 피억압자는 오로지 억압자가 그들에게 명령한 것 이외에 다른 어떤 의도도 가질 수 없다.

(74-5쪽)

 

 

은행 저금식 교육은 인간을 대상으로 보는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프롬이 말하는 '바이오필리'(biophily; 생명체에 대한 사랑)를 촉진하지 못하고 대신 그 대립물인 '네크로필리'를 낳는다.

(97쪽)

 

 

은행 저금식 교육관은 (아울러 모든 것을 이분화하는 이것의 경향도) 교육자의 행위를 두 단계로 구분한다. 첫째 단계에서 교육자는 서재나 연구실에서 강의를 준비하면서 인식 대상을 인식한다. 둘째 단계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그 대상에 관해 설명한다. 이때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교사가 설명한 내용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암기하는 것이다. 또한 하갱들은 어떤 인식 행위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식 행위의 목적이 되는 그 대상은 교사와 학생들 양측의 비판적 성찰을 야기하는 매개물이 아니라 교사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화와 지식의 보존'이라는 미명하에 우리는 참된 지식도, 참된 문화도 실현할 수 없는 제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102쪽)

 

 

문제제기식 교육은 억압자의 이익에 기여하지도 않고 또 기여할 수도 없다. 억압적 질서는 피억압자가 "왜?"라는 의문을 품는 것을 허용하지 낳는다.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도적인 방식으로 실행하는 것은 혁명적 사회가 되어야만 가능하지만, 혁명 지도부가 그 교육 방법을 싱행하는 데반드시 완전한 권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혁명 과정에서, 나중에 참된 혁명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도에서 당장 편리하다는 이유로 지도부가 잠정적으로라도 은행 저금식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육은 처음부터 혁명적 -- 다시 말해 대화적 -- 이어야만 한다.

(110쪽)

 

 

동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객관화할 수 없으며, 스스로 목적을 설정할 수 없고,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세계에 '침잠해' 살아가며, 전적으로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에 '내일'도 '오늘'도 없다. 그래서 동물은 탈역사적이다. 동물의 탈역사적인 삶은 '세계'속에서 완전한 의미로 나타나지 못한다. 동물에게 세계는 그 자신을 '자아'와 분리시켜 주는 '비아'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 세계는, 역사적인 것으로, '즉자존재'에게는 단지 배경일 뿐이다. 동물에게 위험이란 성찰로 인식되는 자극이 아니라 신호로써 인지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동물에게는 의사결정 반응이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동물은 자신을 헌신하지 못한다. 탈역사적 조건으로 인해 동물은 삶을 '걸고' 행동할 수 없다. 또한 '삶을 걸지' 않기 때문에 동물은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수 없으며, 삶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삶의 구성을 변화시킬 수 없다. 또한 동물은 자신의 '배경' 세계를 문화와 역사까지 포함하는 유의미하고 상징적인 세계로 확장할 수 없기 때문에, 삶에 의해 자신이 파괴되리라는 것도 알수 없다. 그 결과 동물은 자신을 '동물화'하기 위해 외부 세계를 동물화하지 못하며, 그렇다고 스스로 '탈동물화'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숲에서도 동물은 동물원에서처럼 '즉자존재'에 머문다.

그와 반대로 인간은 자신의 행동과 자신이 처한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이 설정한 목적에 맞춰 행동하며, 세계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하고, 세계에 변화 작용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독보적 존재를 세계에 투입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 달리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며, 인간의 존재는 역사적이다. 동물은 탈시간적이고 단조롭고 통일적인 '배경' 속에서 삶을 살아가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창조하고 변화시키면서 세계 속에서 존재한다. 동물에게 '여기'는 단지 낯익은 서식지에 불과하지만, 인간에게 '여기'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역사적 공간도 의미한다.

(125-6쪽)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피억압자가 혁명 과정에 참여하면서 변혁 주체로서의 역할을 점점 자각해 가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절반은 자기 자신이고 절반은 억압자의 성격을 내면화한 모호한 존재로서 혁명에 참여한다면 -- 더구나 억압 상황에서 비롯된 그 모호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면 -- 내가 보기에 그들은 권력을 획득했다고 상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의 실존적 이중성은 분파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여 관료제를 정착시킴으로써 혁명을 침해하게 될 수도 있다. 피억압자가 혁명 과정에서 그러한 모호함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 그들은 혁명주의가 아니라 보복주의로서 혁명 과정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혁명을 해방의 길이 아니라 지배의 수단으로 꿈꾸게 될 것이다.

(164쪽)

 

 

민중과의 대화는 양보도 아니고, 선물도 아니며, 지배를 위해 사용하는책략은 더더욱 아니다. 대화는 세계를 '이름짓기' 위한 사람들 간의 만남이며, 참된 인간화를 위한 근본적인 조건이다. 가조 페트로비치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자유로운 행동이란 오직 인간이 자신의 세계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행동만을 가리킨다. ... 자유의 적극적인 조건은 필연성의 한계를 알고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의식하는 것이다. ... 자유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은 개인의 자유가 더 큰 폭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면 자유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일 수 없다.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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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에게 배워야 할 것.

구르는돌님의 [서울 교육감 선거는 어찌되고 있는 건지...] 에 관련된 글.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원희룡-나경원간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나경원이 가장 오랫동안 서울시장을 준비했다는 원희룡을 눌렀는데, 원희룡은 나경원의 선대위원장을 맡았다고 한다. 나경원이 실제 오세훈을 누르고 한나라당 타이틀 받고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어찌되든간에 한나라당에서 드물게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원희룡이 되는 것 보다 그것에 반대하는 다른 사람이 되는게 좋은 것 같다. 정책에 따라 선명하게 정당을 구분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지점은 나경원의 승리가 아니라 원희룡의 패자로서의 태도이다. 원희룡은 경선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자신이 양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많이 양보했다고 하고, 패배한 이후 흔쾌히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또한 원-나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방식을 보면 한나라당 지지자 50%, 책임당원 50%라고 한다.

 

이는 서울 민주진보 교육감 경선이 100% 일반시민 여론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떠들고 있는 박명기 후보가 똑똑히 알아야 할 부분이다. 한나라당같은 '전국정당'도 당의 정체성을 위해서 일반시민 여론조사같은 것은 안한다는 거다. 100% 시민 여론조사같은 인기투표 방식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한나라당도 안다는 것이다.

 

하물며 '민주진보'후보를 뽑는다는 교육감 경선에서 100% 여론조사가 가당키나 한가? 그거야말로 책임감을 갖고 우리가 '민주진보' 후보를 뽑겠다고 추대위에 참여한 단체들을 믿지 못한다는 말인데, 그럴 거면 경선에 처음부터 왜 참여를 한단 말인가? 박후보의 문제제기는 사실상 경선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라기 보다는 '민주진보' 단체들에 대한 뼈속깊은 불신의 표출일 뿐이다. 당선이 되려면 요새 反MB연대의 대세를 쫓아 '진보후보'라는 타이틀을 걸어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거기에 모인 단체들이 아무한테다 그 타이틀을 팔아줄 만큼 바보들은 아니다. 진보진영이 요새 아무리 위축되어 있다고 해서 사람을 그렇게 얕보면 안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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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교육감 선거는 어찌되고 있는 건지...

(어제 좀 쓰다가 갑자기 다 날라가 버려서 다시 씀 ㅠ.ㅠ)

 

이번 지방선거, 우리 동네에선 진짜 볼게 없다. 자유선진당과 한나라당이 쿵짝 쿵짝. 그래서 이번 선거 날에는 그냥 투표소 근처에 얼씬도 안 할까 생각했는데, 그나마 찍어주고 싶은 소수정당이 계서서 시장선거, 시의원 비례대표 정도에는 투표할 수 있을 듯 하다.

 

근데 아 놔... 이번에 민주노총 대전본부에서 진보신당의 김윤기 후보를 지지후보로 결정했는데, 이걸 두고 민주노동당 중앙에서 재고 요청을 했단다. 민주노동당은 야4당 연대를 통해 민주당 김원웅을 단일 후보로 추대했는데, 그럼 민주노총 한테 김원웅을 지지하라는 얘기?

 

민노당이 금붕어들의 집합소가 아닌 이상 김원웅이 누군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 지난 17대 국회에서 통외통위 위원장을 맡아 한미FTA 비준에 앞장선 자가 아닌가? 내가 알기론 민주노총 대전본부에서 이 투쟁 건으로 콩밥 먹으신 분이 좀 있으신 걸로 안다. 물론 민주노동당도 그렇겠지. 누가 몇명 콩밥 먹었냐의 문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한미FTA가 진보진영에게 남긴 상처와 민중에게 돌아갈 그 엄청난 피폐함 등등등등에 대해 생각한다면 민주노동당이 진짜 이러면 안된다. 김윤기 후보를 지지하건 안하건간에, 적어도 똥인지 된장인지는 가려가며 스텝을 밟으란 말이다.

 

어쨌든 우리동네는 시장선거도 그렇고, 전국에서 들고 일어났다는 그 잘난 '진보교육감' 후보도 없어서 진작에 관심을 끊었다. 다른 지역도 교육감 선거 빼면 진보진영이 비빌 언덕이 별로 없어보이는데, 그래서 교육감 선거가 꼭,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서울은 08년의 패배의 경험이 있고, 이후에 공정택이 비리로 물러난 상황이라 어떻게든 이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데, (뭐 내가 그 추대위의 상황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박명기, 이삼열 후보가 하는 짓은 너무 괘씸한 거 아닌가?

 

방금 찾은 글인데, (특히 이삼열 후보를 겨냥한) 이 글은 참 명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삼열 후보에 대한 인권단체 항의 서한") 박명기 후보는 비교적 경선 초반에 이탈하기는 했지만,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추대위 단체들이 얼마나 연고주의에 기반해서 후보를 선택했는지, 그래서 그게 짜고치는 고스톱이었는지를 판단할 근거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그런 방식으로 추대위 경선을 판단하려면 심증 말고 물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박명기, 이삼열 후보의 비난은 완전한 심증만으로 추대되지 못한 불만을 감정적으로 배설하고만 있는 듯 하다. 100%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주장이 있을 수 있고, 여론조사를 무조건 배제하자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백가쟁명식으로 이런 주장이 터져 나오니 어쨌든 조정을 해야겠어서 추대위 차원에서도 기존의 입장을 대폭 완화해, 여론조사를 50%까지 늘려냈다.

 

나머지는 운영위 단체 투표 20%와 시민공천단 투표 30%이다. 어쨌든 여론조사 비중이 가장 높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곽노현 후보가 여론조사에서는 3위를 하고도 전체 결과에서 1위를 한걸로 박명기, 이삼열 후보는 공천 과정이 불공정하다고 말했다는데,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떤가? 구체적인 득표 수치를 추대위가 공개하지 않아 잘 알수는 없지만(이 부분에서는 나도 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근데 생각해 보면 지난 울산 재보선에서 조승수후보가 추대될때도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엄청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가장 비중이 높은 여론조사에서 3위 했는데 최종 결과가 1위라면 여론조사에서 1,2,3위 사이의 격차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실상 이번 지방선거는 투표용지가 총 8개고, 이에 따른 예비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 교육감' 경선에 참여하는 후보들에 대한 인지도 차이가 실질적인 변별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 아무리 경력이 빵빵하다고 해도 무작위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여론조사에선 전부 다 '듣보잡'일 뿐이다.

 

이런 변별력 없는 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느니 차라리 가위바위보를 하는게 낫다. 혹여나 눈에 띄는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그건 해당 후보의 '진보 교육감'으로서의 자질 여부에 따른 것이 아니라, 돈을 통해서든 개인 사조직을 통해서든 뭔가 구린게 있을게 뻔하다. 100% 여론조사는 민주당에서도 그렇게 한댔다가 집안을 들쑤셔 놓을 정도 문제가 많은 방식이다. 그나마 민주당은 후보들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니까 100% 여론조사도 해 볼 생각을 하는 거지만, 추대위에 나온 후보들은 솔직히 (자신들은 아주 오만하게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生듣보잡들일 뿐이다.

 

그런데도 나머지 50%에 의해서 곽노현 후보가 결과를 뒤집었다는 것은 오히려 다른 후보들이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평가해 봐야 하는 지점이다. 추대위내에는 단체별로 이념적 스펙트럼도 꽤 다양하다고 들었는데, 그런 구조 내에서 반삼성 운동을 한 곽노현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자는 분위기가 나왔을리 없다. 삼성 얘기만 나왔다 하면 입에 거품물고 달려드는 '다함께'도 곽 후보가 아니라 최홍이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이건 '다함께'가 자기네 매체에 그렇게 썼다.) 이런 판국에 박명기, 이삼열은 다양한 단체들에게 자신이 가진 교육관을 알리고 설득시킬 생각은 않고, 왠지 다른 꼼수만 생각하는 듯 하다.

 

이삼열 후보는 막판에 이부영 후보에게 단일화 제안을 했다는데, 그런 이상한 짓 안하려고 추대위가 있는 것이었을 텐데 왜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짓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박명기, 이삼열 후보가 어떤 면에서 진보 후보라고 하는지 당췌 이해가 안된다. 아, 이정도로 '진보'라는 말이 오염됐구나를 절실히 느낄 뿐이다. 그들이 약력을 보라. 박명기 후보는 그저 교육학 교수에 걸맞는 단체들에 여기저기 발을 걸쳐 놓았을 뿐, 최소한 우리 사회의 경쟁교육이나 청소년 인권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이삼열 후보는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럼에도 박명기 후보가 몇몇 여론조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걸 좀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다. 사실상 전국의 교육감 후보들은 경기도의 김상곤 후보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서울의 김상곤 아바타는 곽노현'이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선점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다른 야권 후보들과 변별점이 있어야 할텐데, 그런면에서 추대위 쪽에서 이번 전교조 문제에 대해서 더 적극적으로 행보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현재 조전혁 의원이 의도하는 '반전교조' 프레임에 걸려들 위험이 있지만, 그간 전교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수많은 교육개혁의 사례들을 무기로 한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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