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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인권론'은 진실한가

 

 

그들의 '인권론'은 진실한가
[손석춘 칼럼] 목소리 높아가는 '대북 인권공세'
텍스트만보기   손석춘(ssch) 기자   
▲ 지난 17일 유엔본부 제1회의실에서 열린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이 찬성 84, 반대 22, 기권 62로 통과됐다.
ⓒ 연합뉴스 김계환

사람을 잡아먹는 악어. 식인악어다. 서양의 전설이 전하는 특별한 악어가 있다. 이집트 나일강의 악어다. 사람을 잡아먹은 뒤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단다.

그래서다. 악어의 눈물. 그것은 위선, 아니 거짓의 눈물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을 들먹이는 윤똑똑이들을 보며 새삼 떠오른 '눈물'이다. 유엔총회가 대북인권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인권론자들의 눈물은 더 호소력을 지니게 되었다. 보라.

"위태로운 인권 상황, 특히 상당수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육체적-정신적 발달에 지장을 받고 있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유엔 총회가 채택한 '결의'의 일부다. 물론, 유엔의 결의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부터 유엔 인권위의 '연례행사'다. 문제는 대북인권결의를 총회가 채택한 데 있다. 나라 안팎에서 '인권론자'들의 목소리가 무장 커져갈게 틀림없다.

나라 안팎에서 '대북 인권론자'들 활개

당장 6자회담 앞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미국의 호전적 세력에게 '인권'은 얼마나 좋은 명분인가. 그 뿐인가. 어김없이 이 땅의 한나라당도 흥분했다. 짝을 이루는 수구언론도 부르댔다. 한나라당은 곧장 선언했다.

"대한민국은 인권국가이기를 포기했다."

찬찬히 톺아볼 일이다. 인권결의에 온 세계가 나선 게 결코 아니다. 유럽연합이 제출한 결의안의 표결 결과는 찬성 84표에 반대 22표다. 압도적 표차로 보이지만 기권이 62표다. 반대와 기권을 합치면 찬성표와 같다.

중국만이 아니다. 이집트와 쿠바도 미국과 유럽을 비난하며 강조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잣대(double standard)다."

실제로 그러하지 않은가.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은 지난 시기 친미국가에서 일어난 대량 인권침해에 침묵했다. 중남미에서 일어난 숱한 정치적 학살을 돌아 보라. 아니 수백 명을 학살한 이 땅의 '오월'에 유엔은, 아니 미국은 무엇을 했는가. 미국은 되레 학살의 공범 아니었던가.

한나라당 또한 마찬가지다. 인권국가이길 포기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차라리 연민을 느끼게 한다. 그들 스스로 대한민국의 인권을 유린한 자들 아닌가. 대한민국의 인권을 유린하거나 방조한 자들은 되레 공격한다.

"왜 박정희와 싸우며 인권을 주장하던 진보세력이 북의 인권에 침묵하는가?"

유행처럼 '수구좌파'라는 딱지를 살천스레 붙인다.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은 갈수록 목소리를 높여간다. 하여, 진정으로 묻고 싶다. 바로 그대들이 아니었던가. 남쪽의 인권운동을 펴던 사람들에게 '북과의 연계' 운운하며 탄압하던 자들이.

조금이라도 논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자문하기 바란다. 북쪽의 인권운동을 지금 남쪽에서 편히 살고 있는 그대들이 펴는 게 과연 도움이 되겠는가.

'제국주의 악어'가 흘리는 눈물의 본질

미국의 눈물 또한 위선이다. 진정으로 평양 어린이들 인권이 안타깝다면, 거듭 명토박아 둔다. 미국이 할 일은 따로 있다. 대북경제 제재를 풀고 수교에 나서라. 북핵문제는 그 순간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할 때다. 인권을 들먹이는 미국의 제국주의 세력은, 그리고 그에 용춤추는 국내 일부 수구세력은 숨기지 않고 있다. 스스로 호전적임을.

저들의 인권론을 '악어의 인권론'으로 규정하는 까닭이다. 실제로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 눈물샘의 신경과 입을 움직이는 신경이 같아서다. 먹이를 삼키기 좋게 침을 섞는 행위, 그것이 악어의 눈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다. 저 악어의 인권론도 그 연장선에 있지 않을까. 다른 나라를 잡아먹는 악어, 그렇다. 전설이 되어 가는 서양의 특별한 악어, 제국주의 악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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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도올 김용옥 "교원평가는 우리 사회 기층 도덕의 파괴"

 

 

이 땅의 스승들이여, 들으시오!
교권은 존엄, 평가대상 될 수 없다
[특별기고] 도올 김용옥 "교원평가는 우리 사회 기층 도덕의 파괴"
텍스트만보기   도올 김용옥(news)   
교원평가제 강행을 둘러싸고 정부(교육인적자원부)와 교원단체(전교조, 교총 등)의 갈등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다. 여기에 학부모단체들도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도올 김용옥 순천대 석좌교수가 기고를 보내왔다. 도올은 교권의 존엄성은 유교적 가치의 핵심이라면서 이를 깨뜨리는 교원평가제 실시를 적극 반대했다. <오마이뉴스>는 이 글에 대한 반대 입장의 글도 환영한다. <편집자 주>
반대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이수일 전교조 위원장은 교원평가 강행에 반대하며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철야·단식농성을 벌였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회오리바람이 일고 있다. 광풍노도처럼 대지를 쓸어버릴지, 떠도는 낙엽을 휘감으며 소리없이 스러질는지, 그 전망이 불투명한 채 회오리바람은 우리의 심연(心淵)에 파문을 던지며 떠돌고 있다.

그 바람에 휘감긴 자들은 개혁의 의지를 불태우기도 하고, 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또 자신의 판단의 이중성 때문에 수치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는 자신의 투지에 대한 정확한 의미부여를 보류한 채 방황키도 하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 삶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확고한 가치판단이 결여된 탓이다.

그 가치판단의 보편타당성을 운운하기 전에 그 가치판단을 밑받침하는 자신의 주체적 체험의 절박성과 정당성에 대한 당당한 외침이 없는 것이다. 외칠 수 있으려면 철두철미한 삶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티끌 하나라도 전 우주의 거울에 비춰볼 수 있는 전체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 해방 후 우리의 교육은 교사들에게 이러한 인식의 바탕을 마련해주기에는 너무도 빈곤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요즈음 세간(世間)의 모든 쇄사에 침묵으로 일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말이 들릴 리도 없고, 들릴 수도 없고, 들려야 할 까닭도 없는 세태가 스스로의 관성에 의하여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쇄사에 대한 잡언(雜言)이 대간(大幹)을 휘어잡을 까닭이 없으니 나 도올은 방관 속에 흘러가는 역사를 방치할 뿐이다.

유교윤리의 핵심, 교권의 존엄성

그러나 '교원평가제'라는 이 한마디에 대해서만은 나는 침묵을 지킬 수가 없었다. 나는 여태까지 한 회갑의 생애 동안 교육자로서 일관된 가치관을 유지해왔다. 내가 이 땅의 후학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사명에서 일순간도 떠난 삶을 산 적이 없다. 나는 교육에 관한 한 봉사와 헌신으로 일관해왔다. 그러한 삶의 역정의 축적이 나에게 던져준 강인한 신념을 지금 이 순간 이 땅의 모든 스승들과 공유코자 하는 것이다.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칼 맑스(Karl Marx. 1818∼83)는 정치·법률·문화 등 상부구조라 부르는 사회적 의식형태의 토대에는 물질적 생산력과 생산관계라고 하는 하부구조가 있으며, 그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단순한 도식을 역사발전 법칙으로 표방하였다. 이러한 경제사관적 교조주의나 경제결정론과는 아랑곳없이,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오히려 인간의 경제적 행위의 토대에는 지배적인 정신적 가치가 있다는 종교사회학적 주장을 폈다. 서구적 자본주의의 성공의 배면에는 프로테스탄트윤리라고 하는 정신적 가치가 그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상부구조니 하부구조니 하는 따위의 말은 원래 건축용어에서 온 것인데 지상으로 드러난 건축의 외관만을 보아서는 그 건축의 구조를 제대로 알 수 없으며, 반드시 지하에 숨어있는 토대를 알아야만 그 건물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일면적 타당성은 상식에 속하는 것이지만, 인간사회의 네트웤이라고 하는 것은 건물처럼 상하로 완벽하게 이분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하가 상을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단순한 도식도 유치한 발상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하부구조가 물질이어야만 할 필요도 없고 정신이어야만 할 필요도 없다. 상하의 이원론이나,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이 모두 화엄(華嚴)철학의 원융(圓融)한 관계론을 망각한 지난 20세기의 유치한 발상들이다. 그런데 베버는 서구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의 필연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형성에 실패한 동양의 유교적 윤리를 그 반증의 예로서 상술하였다.

그러나 20세기를 지난 오늘날, 발전된 사회학·역사학·인류학의 제반성과가 입증하는 것은 유교윤리(Confucian ethics)야말로 아시아적 자본주의 성취의 핵을 이루는 정신가치라는 것이다. 유교윤리는 자본주의 정신과 근원적으로 상치하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가 우리 생활세계(Lebenswelt)를 침식하면서 발생시키는 비인간적 제반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합리적인 규범윤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 유교윤리의 핵심에는 바로 '교권의 존엄성'(the Dignity of Teacher's Right)이 자리잡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단언컨대 교원평가제란 넌센스요, 어불성설이요, 망국의 근원이다. 그것은 관료주의의 안일한 타성이 빚어낸 소치일 뿐이며, 일고의 가치조차도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21세기라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시대에서 과연 우리 조선문명이 지닐 수 있는 장점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역사의 키를 장악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부표하게 될 것이다.

동그라미 색칠식 수량적 직접평가는 아니된다

찬성 '합리적인 교원평가 실현을 위한 학부모·시민연대'는 8일 오전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원평가제 시범실시 수용을 촉구했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첫째, '교원평가'라는 것이 가능하면 좋겠는데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 평가라고 하는 것은 객관화될 수 있는 수량적·계량적 기준을 말하는 것인데, 교사라는 인격체는 그러한 방식으로 평가될 수도 없고, 평가되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19세기 중엽의 조선의 사상가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인정>(人政. 사람의 정치. 1860년작)이라는 저술에서 이미 측인(測人. 사람을 헤아림)의 방법으로 '감평(鑑枰)'이라는 계량화된 점수표를 제시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방법의 한계를 절절이 논구하고 있다.

현재 대학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교수평가 설문지만 하더라도 하등의 의미가 없다. 우선 학생들이 설문지에 진지하게 응하질 않는다. 진지하기에는 너무도 그 설문의 내용이 하찮은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그 평가가 반드시 교수의 정신세계에 대한 공정한 기준이라고 볼 수가 없다.

예를 들면, 한 교수의 점수가 예외없이 60점 이하로 나온다면 분명 문제가 있겠지만, 한 80점에서 100점 사이의 경우 그 사이에서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참으로 구차스럽고 추저분한 것이다. 내 체험으로 말하자면, 요즈음 대학분위기에서 학생들에게 95점 이상의 점수를 따는 교수가 85점 정도의 평가를 받는 교수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희귀하다.

오히려 낮은 점수를 받는 교수가 더 무게있고 더 진실하고 더 실력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식의 경쟁체제는 교수에게 '인기영합'이라는 부담을 주며, 교수방법의 다양성을 말살시키며, 자기가 아가페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식게 만들며, 또 교수 동료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심기를 조장시킨다.

내가 다닌 하바드대학에서도, 물론 학기초에 모든 강의에 대한 평가가 담겨있는 책자가 발간된다. 그런데 그것은 학생회에서 자체적으로 위원회를 조직하여 만드는 것이며, 그 강의를 가장 잘 이해한 학생이 수강소감을 문장으로 써서 타인의 수강신청자료로 활용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무지막지하게 획일적인 동그라미색칠 식의 수량적 직접평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강의의 장·단점이 인간적이고 격조높은 언어로 잘 기술되어 있다. 교육이란 교육자나 피교육자나 자율을 원칙으로 삼는 것이다. 그 자율의 인격적 관계를 타율적 기준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아무리 일시적 긍정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미치는 구원한 부정효과에 비한다면 너무도 사소한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판사의 판결보다 더 권위 보장받아야

나 도올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 나의 사상의 자유와 학생들의 배움의 자율과 교권의 불가침의 권리를 사수하기 위하여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대학강단을 떠났다. 나는 그 뒤로 교수로서의 나의 권위를 한치도 양보한 적이 없다. 도산서원이라는 배움터는 기본적으로 퇴계를 흠모하는 학생들이 그의 학문을 배우기 위하여 모여들어 형성된 장(場)이다. 도산서원이라는 영역 속에서 이퇴계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녀야 한다. 그는 학생으로부터 평가되어서는 아니 된다.

나는 대학으로부터 끊임없이 강의의 권유를 받는다. 그때마다 내가 내거는 조건은 나의 강의에 대한 일체의 제도적·수량적 평가가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나는 내 강의의 주재자요 신(神)이다. 그러한 프라이드가 없이 강의를 한다는 것은 비굴이요 아첨이요 굴종이요 생계수단으로의 하락이다. 최근에도 중앙대학교에서 이러한 조건으로 내 강의를 설강하여 크게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교육은 다양한 가치의 함양인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당신은 너무도 지고한 교육철학과 존경받을 수 있는 실력과 자존의 바탕을 가지고 큰소리치는 것일 뿐 일반적 교사에 대한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잠깐 공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자!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나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述而>)

여기 '세 사람'이라 함은 실제로 3명의 인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하고 같이 가도 그들이 모두 다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주자의 집주(集注)에 "세 사람이 같이 간다 함은 그 중에 한 사람이 나이니, 나를 제외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선하고 한 사람은 악하다는 뜻이 되니, 결국 두 사람 다 나의 스승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곧 배움을 얻는 스승이라 함은 반드시 최선의 인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요, 불선한 사람이라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선한 스승을 보고도 나의 잘못을 고칠 수 있게 되니 그것 또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육이란 합리적 커뮤니케이션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합리의 용인이나 비합리의 대비 속에서도 합리성의 추구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잘난 선생이 있으면 못난 선생이 있게 마련이다. 또 못난 선생이 있기에 잘난 선생이 돋보이게 마련이다. 내가 학생들의 평가를 거부한다는 뜻은, 내가 실력있는 교수이기에 항시 학생들의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암묵적 기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기대를 근원적으로 단절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봉사와 헌신에 대하여 좋은 평가를 기대하는 순간 이미 나는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상실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 했으니, 교육자와 피교육자간의 끊임없는 교감으로 이루어지는 다이내믹한 변증법의 세계인 것이다. 그것을 매학기 매강의마다 수량화되는 기준으로 즉각적으로 평가하여 고정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우행일 뿐이다. 지금 한 학생의 의식세계 속에서 불만스럽게 보이는 선생의 세계가, 성장하고 난 20년 후에 지고한 교훈으로서 자리매김될 수도 있는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근원적으로 일시점적·수량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피고나 원고가 판사의 판단을 평가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평가에 의해 판사의 판단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다면 그 사회의 질서가 무너질 것이다. 내가 생각키엔 스승의 가르침은 판사의 판결보다도 더 지엄한 권위를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다.

공자의 수제자는 안회(顔回)였다. 매우 이지적이고 과묵하고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머리가 잘 돌아가고 수완이 좋은 자공(子貢)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공자가 자공을 독대했을 때 이와 같이 물었다: "너와 안회, 누가 더 나으냐?"(女與回也孰愈?) 그러니까 자공이 대답하였다: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넘보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뿐이옵니다."(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래, 너는 안회만 같지 못하다. 그래, 나와 너, 두 사람 모두 안회만 같지 못하다."(弗如也. 吾與女弗如也.) 여기에 스승인 공자의 정직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스승이라 할지라도 제자만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훗날 안회는 공자를 평가하여 이와 같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어볼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봄에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도다."(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우리나라 '스승의 노래' 가사의 출전이 된 이 안회의 말은 결국 사제지간의 호상겸손과 존경의 염을 표현한 것이며 유교적 덕성의 전범을 나타낸 것이다. 공자는 <술이>(述而)편에서 자신의 배움의 세계를 가리켜, "나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안 자가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며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자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고 하였다. 스승의 세계도 결코 일시에 잘날 수 없는 것이며 끊임없는 노력을 통한 배움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교원평가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

ⓒ2003 오마이뉴스 권우성
둘째, '교원평가'에 대한 학부형의 지지가 그러한 평가를 통하여 좀 저질스러운 교사를 솎아내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주안점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기대는 근원적으로 부적절한 것이다. 아무리 평가를 많이 한다 해도 그것은 저질적 교사의 징계에까지 이르는 법적 효력을 발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력을 수반하지 않는 평가는 결국 교육의 장에 불필요한 잡음과 불신과 교육적 열의나 신바람의 냉각만을 초래할 것이다.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헛지랄'만 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헛지랄에 교육부공무원들의 번문욕례가 기생하고 이간질을 통한 원격조정의 계책이 있다고 한다면 결국 국력만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원평가의 근원적 목적이 저질적 교사의 퇴출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교원조직과 교육부 사이에서 어떤 법적·제도적 투쟁의 문제가 되어야 하며, 피교육 당사자인 학생이 연루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스승과 학생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인격 대 인격의 도덕적 관계가 되어야 하며 계량가능한 지식전달의 효율로써 평가되는 관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초·중·고등교육의 주된 가치는 지식전달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향후 바른 지식을 추구할 수 있는 바탕과 인격의 함양에 있는 것이다. 숙명여고의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돌리며 조사해본 바로도, 학생들 대부분이 자기들이 배우는 선생을 곧바로 평가한다는 문제에 대하여 도덕적 부당성이나 제자로서의 어색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요즈음의 어린 학생들은 어른보다도 더 어른스럽고 사태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교원평가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새삼 숙지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학교 다니던 60년대만 하더라도 서양에서는 토론식 교육이 이루어지는 데 반해, 동양에서는 권위주의적 주입식 교육이 주류라서 낙후되었다는 통론이 휩쓸었고 그래서 세미나적 교육방법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대만대학에 유학갔을 때 세계적 대석학이신 나의 스승 황 똥메이(方東美. 1899∼1977) 교수가 강의시간에 동양의 서원전통 교육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일갈을 하시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서양에 가서 강의를 해보면 쓸데없는 질문이 많다. 그리고 학생의 질의가 타인의 학업을 방해할 때가 많다. 교수란 제한된 시간 내에 더 많은 학생에게 더 많은 학문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토론이란 강의 후에 학생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은 있는 성의를 다해 그 시간에 모든 학생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지혜를 짜야 한다. 명강의란 주입식교육 만큼 더 좋은 딴 방법이 없다. 주입식이라지만 학생들은 항상 교수를 평가하며, 선생이 전달하는 정보를 끊임없이 취사선택한다. 주입식이라 해서 생도들의 자율적 권한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선생을 평가한다. 되돌아서면 학생들끼리 수군거리고, 별명으로 평가하고, 걸어가면서도 토론하고, 시험 보면서도 학습내용을 비판하고, 선생의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그것은 무언으로 축적되어 보이지 않는 전통으로 후배들에게도 전달된다.

그리고 요즈음은 학생이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객관적으로 부당한 사례에 직면했을 때는 인터넷에 올리거나 다양한 게시판을 통해 사회화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정보가 일방적으로 통제될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웤이 형성되어 있는 나라다. 따라서 교원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토론식이니 주입식이니 하는 것도, 교육방법의 효율성과 다양성에 관한 문제일 뿐이며, 우열의 문제는 아니다.

훌륭한 부모들이야말로 침묵하는 대중

넷째, 교원평가제에 관하여 학부형들은 모두 찬성하고 있고 교사들만이 저항하고 있다는 여론은 근원적으로 매스컴의 정보조작에 의한 호도된 인상일 수가 있다. 학교교육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부모일수록 학교교육을 망치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자녀를 3명이나 키웠지만 자녀들의 문제로 학교에 가본 적은 한번도 없다. 참으로 훌륭하게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훌륭한 자신의 사회적 삶에 열중하여 자녀들에게 바른 가치관의 모범을 보이지, 학교교육에 일일이 참견하지는 않는다. 훌륭한 부모일수록 학교교육의 자율적 특성을 신뢰하며, 불필요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훌륭한 부모들이야말로 침묵하는 대중이다.

그런데 이런 부모들은 학교에 가서 설치는 부모들의 참여를 바람직하게 생각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유한(有閒) 족속이 될 삶의 여가가 없다. "학부형들 모두 찬성-교사들 모두 반대"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교원평가제에 관한 논의를 밥그릇싸움이나 이권싸움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원평가제에 관한 교사들의 반대의 근원적 모티브에는 참교육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우리는 믿어주어야 한다. 2천여 년의 유교전통을 지닌 우리나라의 교육자의 양심과 양식이 아직 그런 수준에까지 변질되어 있지는 않다.

다섯째, 여태까지 우리가 우려했던 중고등교육의 부정한 실태는 근원적으로 교육제도의 문제이며 교원의 내면적 도덕성에 관한 문제는 아니었다. 교사가 시간에 들어가도 학생들이 다 졸고 있었고, 또 교사가 그런 학생들을 질책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이나 권한이 주어져 있질 않았다. 학생들이 저녁에 과외로 사교육에 에너지를 쏟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학입시제도가 수능위주에서 내신성적 위주로 전환됨에 따라 그러한 현상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지금도 고교 2·3학년 반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집중하지 않지만, 1학년 반에 들어가면 조는 학생도 없고 놀라운 집중력을 보일 뿐 아니라, 학생들이 날카로운 질문공세를 편다. 학교 강의시간에 충실하는 길이 대학입시의 첩경이라는 생각이 생도들에게 편재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조차 촌음을 아껴 예습·복습을 하며 점심시간에도 영어독해책을 놓고 씨름하는 광경을 목도하는 선생의 눈에는 오랜만에 감격의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다. 이와 같이 제도적 변화가 학습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이지 학생과 교사의 도덕적 심성의 우열의 문제가 그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원평가제를 강행하려는 자들의 발상의 근저에는 수능위주에서 내신위주로 전환됨에 따라 교원자질의 향상이 교육계의 주된 테마가 되어야 하므로 교원을 채찍질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깔려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우선 타이밍이 나쁘다. 최소한 내신위주의 긍정적 변화를 2·3년이라도 지켜본 후에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문제지 지금 당장 교원평가제를 도입하여 변화를 꾀한다는 것은 졸속한 발상이요, 하릴없는 공무원들의 생색내기 작전에 불과한 것이다.

노자의 말에 '위자패지, 집자실지'(爲者敗之, 執者失之)라는 말이 있다. 자꾸 뭘 쓸데없이 하려고 하면 더욱 그르칠 뿐이요, 자꾸 잡으려고 하면 더욱 놓치게 될 뿐이라는 뜻이다. 쓸데없이 세금낭비 하느라고 보도블록을 뒤집는 짓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끝나고 말 수가 있다. 교원평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교사들의 충심의 협조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분란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더더욱 중요한 것은 교원평가제는 수능위주가 내신위주로 전환하는 것과도 같은 그러한 제도적 변화와 동일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원평가제는 제도적 문제가 아닌 교권이라는 인격의 도덕성과 실력에 관한 문제이며 그것은 결코 단순한 제도적 장난으로 달성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자의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다언삭궁'(多言數窮)! 말이 많을수록 자주 궁색해진다는 뜻이다. 교원평가제를 운운한 공무원님들이시여! 이제 그만 입을 다무시는 것이 어떠하실런지요.

교권의 자기부정과 자기반성도 필요

여섯째, 제도의 문제가 거론된 김에 일갈을 가하자면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문제는 99%가 중고등학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문제라는 것이다. 대학입시제도의 여하에 따라 변질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입시제도의 문제는 곧 대학교육의 전체체제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대학의 서열화와 사회진출의 학벌패거리의식이다.

이러한 문제의 핵심에는 서울대학교라고 하는 암적 존재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학에 못들어갔다는 피해의식 하나로 평생을 그늘진 의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은 서울대학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서울대학을 없애버린다는 것이 관악캠퍼스를 폭파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서울대학을 현금의 대학이 아닌 프로펫셔날 스쿨의 집단인 상위개념의 대학원대학으로 승격시키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학병의 핵을 보다 창조적인 국가에너지로서 진화시키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서울대학교를 대학원대학으로 만들어버리고, 나머지 국립대학들을 현금의 서울대학교 수준의 국립대학으로 통폐합하면 우리나라 교육의 절반은 해결된다. 그런데 이러한 대학교육 체제개선에 관한 다양한 논의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다 수용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철저히 묵살하고 있다.

왜냐? 우리나라의 모든 체제를 서울대학교 출신들이 보이지 않게 장악하고 있고, 이들이 암암리에 이러한 논의 자체를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황당한 무계지언으로 취급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근원적 체제개선에 관한 정직한 논의가 없이 일선 교사들만 닦달치는 말엽적 논의는 벼룩 하나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홀랑 태워버리는 짓거리와 똑같다. 본(本)을 개선치 못할진대 말(末)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지어다. 군자는 무본(務本)이요,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일지니.

일곱째, 교원평가제를 주장하는 모든 사람의 심령 속에는 궁극적으로 교원의 자질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염원이 깔려있을 것이다. 자질이란 전공과목에 관한 학구적 실력과 도덕적 인격의 양면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도 결코 교원평가로서 이루어질 수가 없다. 평가가 자질을 향상시키지는 않는다.

일요일 저녁마다 KBS에서 방영하는 고교생들의 골든벨 퀴즈 프로를 나는 곧잘 보곤 한다. 그곳에서 항상 영어문제가 하나 출제되는데 출연한 고교의 영어선생이 나와 그 문제를 읽고 학생들과 영어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충격을 받은 사실은 내가 본 수십 번의 프로그램 중에서 영어발음이 제대로 된 선생을 만나본 적이 별로 없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씨부렁거리는 영어의 수준이 매우 천박한 회화수준에 그치고 있다.

뿐만 아니다. 학생들이 나와서 하는 쇼를 보거나, 그들의 조크를 보거나, 천편일률적인 몸짓이나 천박한 언행밖에는 없다. 그런 행동거지도 귀엽게 봐줄 수도 있으나 문제는 보다 고상하고 기발한,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아가 빈곤하다는 것이다. 그냥 단순한 웃김 패턴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감정처리가 대부분 한국인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어색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학생들의 선생에 대한 평가나, 교사들 상호간의 평가, 학부모들의 평가로서 개선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영어발음과 회화가 그 수준인 사람이 아무리 평가해도 달라질리 만무하다. 다시 말해서 교원양성의 교육과정과 선발과정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이는 교사들의 자질개선은 이루어질 길이 없다는 것이다.

더이상의 구체적 논의는 삼가겠지만 결국 우리사회 변화의 추세가 폐쇄 시스템(closed system)에서 오픈 시스템(open system)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언급하여 둔다. 오픈 시스템으로의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고수해야 할 것은 교권의 존엄이지만, 나의 논의는 교권의 자기부정과 자기반성의 촉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학생에게 평가받아야만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

▲ 도올 김용옥 교수가 상명고등학교에서 특강하는 모습.
ⓒ2005 통나무 출판사
여덟째, 교원평가제에 관한 나의 논의는 결국 우리사회의 미래모습에 대한 총체적 블루프린트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서구사상사적으로 말하면 근대성(Modernity)의 논의와 관련되어 있다. 근대성은 항상 합리성(Rationality)과 관련되어 있다. 나는 우리사회가 지금 많은 좌절이나 인기없는 듯이 보이는 정치판세의 엎치락뒤치락 속에서도 꾸준히 합리성의 증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시스템의 복잡화, 권력의 분권화, 가치의 다변화와 더불어 생활세계의 합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합리성이라 함은 리(理)에 합당(合當)하다는 뜻인데, 이때 리가 반드시 서구에서 말하는 계량적 이성, 도구적 이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리(理)는 정(情)적인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것이다.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한 퇴계·율곡의 모든 논의가 서구적 이성(Reason)에 관한 것만은 아니며 그것을 뛰어넘는 어떤 도덕적 주체의 총체적 책임의식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유교적 윤리라는 것도 협의의 언어중심적인 진위체계의 진리를 넘어서는 매우 총체적인 몸(Mom)의 커뮤니케이션을 포괄하는 것이다. 나의 몸철학적 논의는 근대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 서구인들이 근대를 초극하려는 모든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과를 포괄하는 논의로 이해되어야 한다. 초월적 실체의 전제나, 개인의 자율적 가치의 묵살이 없이 어떻게 간주관적 공공세계에 규범윤리적 합의를 도출하느냐 하는 문제이며, 서구인들이 근대성의 벼랑 끝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모든 가치가 이미 우리 실존에 내재되어 있다는 우리 사회의 강점을 회상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민족의 교육을 효율성과 계량성의 장으로서만 오인하는 현금의 모든 교육계 동향은 깊게 반성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은 동질적 장의 연속체일 뿐이다. 학생이 결국 교사가 되며, 또 교사는 학생을 생산한다. 그러한 연속의 순환체계가 우리나라의 문화를 형성해가는 것이다.

도구적 이성의 장으로서 기업의 합리성의 증대는 당연한 추세이지만 그러한 기업의 합리성의 가치가 우리의 생활세계를 식민지화시켜서는 아니 된다. 기업이 타국이 아닌 자국민의 생활세계까지 식민지화해 버리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학의 운영이 모두 기업의 합리성과 경쟁성의 모델을 따라가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결론을 모두가 반성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의 장점의 근저에는 유교적 합리성의 성과가 자리잡고 있다. 교육에 대한 열정, 근면, 공검, 절약, 대의를 위한 헌신, 초월적 세계의 부정, 인간의 정감에 대한 배려, 재빠른 판단력, 예의바름 등등의 미덕이 기업을 구성하는 성원의 인격의 바탕이 되고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유수기업의 위용에 대한 과신 때문에 교육의 장마저 그러한 효율성과 계량성의 장으로 만들어버리면 그러한 기업은 미래에 다시 탄생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회적 질서의 도덕적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게 될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의 장이다.

내가 하바드대학에 유학하던 시절, 나는 군사독재정권과 투쟁하며 캐나다에 망명하고 계시던 장공(長空) 김재준(金在俊. 1901∼1987) 목사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우리나라 자유신학·해방신학의 근원이며, 간도 용정에서부터 규암 김약연(金躍淵. 1868∼1942) 선생의 지도하에 민족정기를 키우신 장공 선생, 나는 한국신학대학에서 그로부터 동양사를 배웠다. 그때 장공 선생께서 나에게 건네주신 글씨가 있다.

"일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고, 십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고, 백년의 계획은 사람을 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하나를 심어 하나를 얻는 것은 곡식이다. 하나를 심어 열을 얻는 것은 나무다. 하나를 심어 백을 얻는 것은 사람이다."(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百年之計, 莫如樹人. 一樹一穫者, 穀也; 一樹十穫者, 木也; 一樹百獲者, 人也.)

내가 학생에게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비굴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면 차라리 나는 가르치기를 포기하거나 죽음을 택할 것이다. 물론 교사들에게는 나와 같은 선택의 여지가 주어져 있지를 않다. 나의 학문, 나의 사상은 자유를 구가한다. 때로는 만길 절벽 위에 우뚝 선 사자처럼 포효하고, 때로는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때로는 광인처럼 깔깔대고, 때로는 실연한 연인처럼 눈물을 흘려도 나의 학생들은 나의 그러한 모습 속에서 자신들의 영혼의 비상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획일적 잣대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교육에 관하여 심중한 절기라고 판단될 때마다 발언을 계속하여 왔다. 이미 20년 전에 중고생을 위하여 <철학강의>를 썼으며, 전교조가 최초로 구성될 때에도 교육자의 행위가치는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규정될 수 없다고 권면했으며, 네이스(NEIS)에 관해서도 치열하게 반대하였다.

나의 입장은 일관된 것이다. 그것은 보수나 진보의 잣대로 평가될 수 없는 근원적인 것이다. 우리는 네이스투쟁을 통하여 학생들의 인권을 지켰다. 이제 우리 스승들! 이 땅의 40만 교사들은 일치단결하여 교원평가라는 저질적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 우리 스승들의 인권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것은 스승들의 삶의 이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민족의 백년대계의 운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외친다. 유교적 가치의 핵심은 교권의 존엄이요 지엄이다.

2005년 11월 14일
새벽 3시 20분
낙한재(駱閒齋)에서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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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도올, 시대를 거스르는 궤변은 그만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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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안병직 70년대도 그랬듯 지금도 현실감각 없어”

한편 이하... 쓰레기 글은 안단다

 

 

진중권 “안병직 70년대도 그랬듯 지금도 현실감각 없어”
고뉴스 칼럼 “안 교수 비판 얼마나 건전한 논증 위에 서 있는지 궁금”
입력 :2005-11-11 15:38   김유정 (actionyj@dailyseop.com)기자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노무현 정부는 국내 정치는 물론 국제 정치에서도 아무 하는 일 없는 건달정부”라고 말한 것과 관련,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가 “안 교수의 문제는 70년대 사회를 식민지반봉건 사회로 바라보던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전혀 현실 감각이 없다는 데에 있다”며 안 교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진 씨는 8일 인터넷 언론 ‘고뉴스’에 올린 칼럼에서 이같이 밝히고 “안병직 교수가 현 정권을 ‘건달정부’라 부를 자유는 내가 그를 ‘건달교수’라 부를 자유만큼 소중하지만, 문제는 그 비판이 얼마나 건전한 논증 위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에 대한 안병직 교수의 비난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말한 그는 안 교수가 뉴라이트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정권을 그냥 두고 통일하자는 것은 남쪽이 김정일 정권 밑으로 들어가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 내용을 인용했다.

이어 “금강산 관광이 이루어지고, 개성공단의 경제협력이 계속되고,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이어지고, 심지어 한나라당에서마저도 휴전선에 경제특구를 건설하자고 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이런 발언을 하는 이들도 있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진 씨는 또 “이런 시각을 갖고 있으면 앞으로 대북관계에서 할 일은 전혀 없을 것”이라며 “게다가 그의 말대로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켜 놓으면 그 다음엔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안 교수는 이제 와서 현 정권을 민족주의적이라 비난하지만, 운동권 일각의 민족주의적 성향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준 게 바로 안병직 교수”라고 꼬집으며 “70년대 한국의 사회구성체를 식민지반봉건사회로 규정한 그의 논리는 이미 80년대에 폐기처분됐다"고 말했다.

“안 교수의 머리를 끝까지 사로잡은 것은 한국의 자본주의가 외세 때문에 발전을 못 한다는 민족주의 이념이었는데, 식민지라는 한국에서 자본주의는 계속 발전하기만 했다”고 진 씨는 진단한 뒤 “한국사회를 부당하게 식민지라 규정해 놓았으니 그 속에서도 경제발전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기적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한편 진 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은 9일 뉴라이트 홈페이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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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두산 불구속기소, 이건희 위한 사전포석”

 

 

진중권 “두산 불구속기소, 이건희 위한 사전포석”
국제상업회의소회장 이유로 불구속… “강정구엔 막강했던 검찰, 재벌엔 쩔쩔” 냉소
입력 :2005-11-11 08:40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가 두산그룹 사주일가와 관련된 검찰의 불구속기소와 관련해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건과 비교하며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진 씨는 11일 오전 자신이 진행하는 ‘진중권의 SBS전망대’ 칼럼을 통해 “힘없는 교수 앞에선 막강했던 검찰, 재벌 앞에선 사이즈가 확 달라진다”며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라는 노래가사를 인용했다.

그는 “장관의 지휘를 거부하며 구속수사를 고집하던 검찰의 호기는 어디로 갔을까”라며 “강 교수의 경우에는 도주나 증거의 인멸의 경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구속수사를 고집하며, 총장이 사퇴를 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고 비꼬았다.

또 “횡령사건의 경우에는 당사자들이 서로 말을 맞춰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 그 동안 구속수사를 하는 게 관행이었다”며 “그런데 검찰은 정작 구속수사가 필요한 사안은 불구속으로 처리해 버리다”고 지적했다.

진 씨는 “천 장관은 재벌 봐주기가 아니라며, 이번 사건을 자기가 천명한 불구속수사의 확대로 푸는 모양”이라고 말해 강 교수 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대립각을 세웠던 천정배 법무부장관에게도 쓴소리를 던졌다. 하지만 결국 진 씨의 주요 공격대상은 검찰이었다.

그는 “검찰에서 불구속수사의 확대라는 장관의 원칙을 받아들인 걸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그렇다면 이제라도 강 교수 건에 관해 자신들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강 교수에게는 구속수사를, 재벌들에겐 불구속수사를 결정한 검찰의 반성을 촉구했다.

“그런데 그러기는 싫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기껏 내놓은 변명이 박 회장이 국제상업회의소 회장이라는 사실을 고려했다는 겁니다. 국제상업회의소 회장이면 횡령을 해도 된단 얘긴가요? 그 자리가 어디 중세에 교황청에서 팔던 면죄부인가요?”

마지막으로 진 씨는 이번 두산그룹 사주일가의 불구속기소를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했다. 그는 “불구속기소가 될 경우 대부분 집행유예와 같은 가벼운 형을 받게 된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이 사건의 결말은 안 봐도 뻔하다”며 “이 사건 뒤에 삼성이 걸려 있으니 미리 ‘형평성’ 핑계될 근거를 만들어두기 위함인가”라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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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창과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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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DJ 화해 단초는 '대연정'에서 비롯됐다

 

 

YS-DJ 화해 단초는 '대연정'에서 비롯됐다
[정치 톺아보기 107] YS가 위문전화 걸기까지, 그 막전막후
텍스트만보기   김당(dangk) 기자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 병문안을 한 것이 정가의 화제다. 두 사람의 화해가 현재의 정치구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관측마저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는 현재의 정치질서가 87년 이른바 '양김'의 분열로 인한 90년 3당합당에서 비롯되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6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 동교동 자택으로 전화를 걸어 병문안을 했다. YS는 병문안 전화를 한 뒤 측근들에게 "(DJ가) 병원에 입원도 하고 했다던데 가보지 않다가 (통화를) 하니 마음이 편하다"고 소회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YS는 또 조만간 직접 동교동을 방문해 병문안 하는 것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지난 70년 '40대 기수론'을 기치로 내걸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맞선 이후 지난 35년 동안 선의의 경쟁과 반목을 되풀이했던 두 사람의 관계 복원에 관심이 쏠린다.

물밑 주선 김상현·정대철과 숨은 주역 신상우·박지원

두 김씨의 관계 복원은 동교동과 상도동으로 상징되는 반독재·민주세력의 화해와 통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범여권에서 세(勢)를 확대하고 있는 '민주개혁세력 대통합론'과 연결짓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런 관측의 배경에는 두 김씨의 화해를 물밑에서 끈질기게 권유한 '중매장이'들이 두 김씨와 가까우면서도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정치인들이라는 공통점이 자리잡고 있다.

두김씨와 두루 가까운 '마당발' 김상현 전 의원과 '적이 없는' 정대철 전 의원, 그리고 특히 주도면밀하게 '화해공작'을 펼친 신상우 전 국회의장과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숨은 중매장이들이다. 물론 먼저 전화하는 '결단'은 YS 본인이 직접 했지만, 그런 환경을 조성한 것은 중매장이들의 몫이었다.

특히 신상우 전 부의장과 박지원 전 실장의 숨은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순조롭게 풀리기보다는 닫힌 세월의 앙금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더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이자 후원회장을 지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은 연초에 동교동에 신년하례를 갔을 때부터 '참여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두 김씨의 화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화해공작'을 준비했다.

신 부의장은 일단 DJ에게 안부를 전하고 평통 수석부의장 지낸 경험을 살려 남북문제에 대한 대담을 하면서 "두 분이 악수 하시죠"라고 슬쩍 운을 뗐다. DJ는 묵묵히 신 부의장의 얘기를 주로 듣기만 했다.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서 비롯된 화해의 단초

별다른 진전이 없는 가운데 지난 6월에는 민주계 출신의 정의화 한나라당 의원과 YS 비서 출신의 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 그리고 동교동계 출신의 한화갑 민주당 대표 등으로 구성된 '민족대통합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이 '민족·지역·국민 통합을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며 두 김씨의 화해를 위한 중재에 나서 공개적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지적한 대로 '직관과 단행의 지도자'인 YS가 토론회나 세미나에 의해 마음이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다. 정작 나중에 YS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DJ의 입원이었다.

'결자해지'라고 했던가. 결국 두 사람의 문제를 풀 사람은 YS 본인이었다. 그러나 주위에서 '손 잡으라'고 건의한다고 해서 그 말을 들을 YS가 아니었다. 그 계기는 엉뚱하게도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신 부의장은 처음에는 대연정을 반대했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에 상당히 집착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지만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역통합 화두가 다시 퍼뜩 떠올랐다. 신 부의장은 YS를 찾아가 "대연정의 의미는 지역통합에 있다"면서 "이제 그만 DJ와 악수 합시다"라고 말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할 것을 다시 권유했다.

그리고는 YS의 차남 현철씨와 DJ의 복심인 박지원 전 비서실장을 만나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두 분의 화해를 시키자"면서 호텔 같은 데서 두 김씨의 식사를 주선하는 각본을 짰다. 이에 대해 박 실장은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두 분 사이에 앙금이 워낙 크다"며 크게 자신은 못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신 부의장은 YS와 DJ, 그리고 노 대통령과의 화해를 위해 8·15 광복절에 현철씨를 사면복권 시켜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현철씨는 사면복권 되면 미국에 가서 공부하기로 약조를 받았다.

갑자기 터진 X파일 사건, '화해 이벤트' 연기 불가피

외면 지난 2월 24일 빌 클린터 전 미국 대통령의 출판기념회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축사를 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앞을 지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런데 엉뚱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난데없이 불법도청 X-파일 도청사건이 터진 것이다. 당장 현철씨는 사면복권은 커녕 출국금지까지 되는 일이 생겼다. 또 안기부와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는 점에서 도청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두 전직 대통령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도청 사건으로 두 전직 대통령의 이미지가 훼손된 상황에서 '화해 이벤트'는 연기가 불가피했다.

그런 상황에서 DJ가 지난 8월 기력저하 등의 이유로 갑자기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당시 휠체어를 타고 퇴원했던 DJ는 지난 9월에도 폐부종과 고혈압 증세를 보여 재입원을 했다가 퇴원했다.

이후 DJ는 광주 DJ컨벤션센타 개관식 등에 참석하며 건강을 과시했으나 11월 3일로 예정된 영남대 강연 및 명예박사학위 일정 등을 취소하자 정치권에서는 DJ의 건강이 몹시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추측들이 쏟아졌다.

때마침 정대철 전 의원이 출소한 것을 계기로 신 부의장은 김상현 전 의원과 함께 상도동을 찾아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세 사람은 YS에게 "그러지 않아도 국민들이 기쁜 일이 없는데 두 분이 말년에 친하게 지내면 국민들도 즐거워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화해를 권유했다.

3인은 또 "1987년 대선 때 양김 후보단일화가 무산되면서 지역감정이 심화됐다"며 "도의적 책임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나 화해한다면 한 국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의 매듭을 푸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권유했다.

이전 같으면 일언지하에 말을 잘랐을텐데, YS가 그때는 웃기만 하고 가타부타 말을 안했다고 한다.

또 다음날에는 이수성 전 총리가 재임 시절 장관들의 모임인 '민우회' 회원 장관 10여명과 함께 YS를 찾아가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자리에서도 DJ의 건강문제가 화제가 올라 "두분 중에 누가 얼마나 장수할지 모르지만 두분의 화해는 본인들의 문제를 떠나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말들이 오갔다.

이와 관련 신 부의장은 "민주화세력끼리도 화합을 못하면서 어떻게 대연정을 하고 북한을 껴안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런 권유에 대해 YS는 "그래?" 하고는 별다른 말이 없었으나, 대만 방문에서 돌아온 다음 바로 DJ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민주화세력끼리도 화합 못하면서 어떻게 대연정 하고 북한 껴안을 수 있겠냐"

그런데 '기분파'인 YS의 마음을 움직인 데는 최근 노 대통령의 1천억원 발언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10월 30일 출입기자들과 산행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강삼재 전 의원이 무죄판결을 받은 이른바 '안풍'(安風) 사건과 관련 YS를 '멋진 사람'으로 묘사해 눈길을 끌었다.

"그 이전에는 선거잔금 다 감춰놓고 더 걷어서 감춰놓고 해서 사고가 나고 했는데, 김영삼 대통령, 그 돈(1천억원) 선뜻 당에 쓰라고 내놓은 것만 해도 훨씬 다르잖아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엄청난 정치자금이지만 그 시점에서 보면 멋진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우리 역사가 발전해온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은 지난 7월 28일 대연정을 제안한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90년 3당 합당 이전의 정치질서로의 복귀를 강하게 주장했다.

"저는 87년 대통령선거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폭력배들에게 테러를 당해가면서까지 공정선거 감시활동을 한 보람도 없이 지역대결 때문에 군사정권이 연장되는 현장을 지켜보며 분노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13대 국회 1년을 지나고부터는 정치를 포기한다고 마음먹고 야당 통합운동에 나섰다. 그러다가 90년 3당합당 이후부터는 반독재 투쟁하던 심정으로 지역주의에 맞섰다. … 지역구도 극복은 언젠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다.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명령이다. 3당 합당으로 헝클어진 정치질서를 복원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13대 국회 당시 YS의 민주계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90년 3당 합당으로 거대여당이 된 민자당에의 합류를 거부하고 통일민주당에 잔류했다가, 97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DJ 진영에 합류했다. YS는 노 대통령에게도 독설을 퍼부어왔다.

그런 점에서 YS가 DJ에게 건 한통의 전화는 두 김씨의 화해보다는 문민·국민·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전·현직 대통령 3인의 화해로 범위를 넓혀보는 시각이 오히려 더 정확한 진단일 수 있다.

문민·국민·참여정부 대통령 3인 화해의 의미

노 대통령과 DJ 지난 2003년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얘기를 나누며 행사장을 나오고 있다.
ⓒ2005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 대통령과 YS 지난 2002년 4월 30일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노무현 후보가 김영삼 전 대통령 상도동 자택을 방문, 김 전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렇다면 정국의 풍향에 밝은 '연청' 출신의 염동연 의원이나 학생운동권 출신의 임종석 의원 등이 최근 '민주개혁평화세력의 대통합'을 내세워 민주당과의 통합과 한나라당 일부 개혁세력을 흡수하는 '헤쳐 모여'를 주장하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두 김씨의 화해가 민주개혁평화세력의 '헤쳐 모여'식 정개개편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상우 부의장은 "처음부터 결단은 YS의 몫이었다"고 전제하고 "YS가 동교동으로 병문안도 곧 가실 것"이라며 "두분 사이의 '골'이 메워지면 정치가 한 단계 더 성숙하는 쪽으로 발전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것이 또한 노 대통령이 바라는 3당합당 이전의 정치질서를 복원하는 '결자해지'라면 정치적 상상력이 너무 나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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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한나라 지지율 40%는 체온 40도, 병원에 가야”

 

 

노회찬 “한나라 지지율 40%는 체온 40도, 병원에 가야”
노하우21 토론회서 “2007년이후 지역주의 정당들은 도태될 것”
입력 :2005-11-09 08:38   신재우 (withwit@dailyseop.com)기자
▲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자료사진)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한나라당, 2007년 이후에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8일 정치웹진 ‘노하우21’ 초청 토론회에 참석, “시간이 지나면 정당들은 정책중심으로 재편된다. 3김 시대에 만들어졌던 지역주의 정당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고 이런 정치적 지형은 2007년, 2012년 대선에서 급속도로 벌어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노 의원은 현 정치의 모순은 정책중심의 정치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지역주의 정당들이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한나라당은 정책적 특징이 있든지 말든지 3김 시대의 영남당 그대로”라고 말했다.

민주당, 자민련, 국민중심당 역시 지역주의 정당이며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정당은 아니지만 3김 시대 정당으로부터 분화돼 어중간하다는 노 의원은 “지역주의 정당은 도태되어야 하고 그럴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또 한나라당 지지율이 40%가 넘은 것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잘해서 지지를 받는 게 아니다. 40%를 넘었다는 것이 40℃를 넘었다는 것처럼 들린다. 인간이라면 병원에 가야 할 상황”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노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힘을 합칠 것으로 예상되는 ‘뉴라이트’에 대해서는 “두번의 대선에서 패하고 또 실패가 예견되니까 망해가는 올드 라이트를 구해보겠다고 나선 세력”이라며 비판했다.

뉴라이트를 ‘울트라 라이트’라고 지칭해 좌중에 폭소를 안긴 노 의원은 “자신의 왼편에 있는 모든 것을 좌경 좌파라고 생각하고 자기 오른쪽에는 절벽 밖에 없는 이 세력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어진 토론에서 노 의원은 정치 경제 노사 문제에 대한 견해를 솔직하게 밝혔다.

노 의원은 먼저 ‘민노당이 노동부 장관 입각을 요청받는다면?’이라는 질문에 “나는 굉장히 바쁘고 약속이 많아서 장관하기 어렵다”며 좌중에 웃음을 유발했다. 그는 민노당이 입각하는 문제는 현재로서는 어렵지만 정책에 참여할 수는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어 노 의원은 참여정부의 성장정책에 대해 “4% 남짓한 성장은 괜찮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 정책에 큰 무리가 없다”면서 정부가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성장을 인위적으로 촉진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분배정책과 관련해서는 “현정부가 과거정부에 비해 전향적이지만 극심한 양극화 때문에 빛을 못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 의원은 사회양극화 현상에 대해서는 “복지 시스템의 부재가 양극화를 촉진한다”며 정부재정규모 확대를 통한 복지예산 증대를 주장했다.

이어 세금과 관련해 노 의원은 세수 증대도 중요하지만 ‘세금은 어디에 쓸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대후 위암판정을 받고 사망한 노충국 씨 예를 들면서 “군인들이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면 750억원이 드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도입하기로 돼 있는 공격형 헬기 두 대만 안사면 된다”고 말했다.

그가 이어 “그거 사서 어디를 공격하려 하는가? 광주를 공격하려고 하나?”며 특유의 화법으로 국방정책에 냉소를 보내자 토론회장은 일순간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노 의원은 “우리가 무기로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없다”면서 신무기 도입 비용이 복지비용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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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라이트나 뉴라이트나 담배는 담배, 금연효과 없을 것”

 

 

진중권 “라이트나 뉴라이트나 담배는 담배, 금연효과 없을 것”
참여정부가 좌파정권?… 한나라당보다 더 근본적인 뉴라이트 한계 지적
입력 :2005-11-08 09:39   이기호 (actsky@dailyseop.com)기자
“라이트나 뉴라이트나 담배는 담배, 그러니 금연 효과까지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진중권 중앙대 교수가 8일 오전 자신이 진행하는 ‘진중권의 SBS전망대’를 통해 보수세력의 집합체인 뉴라이트 전국연합에 대해 “한나라당보다 더 근본적”이라며 쓴소리를 던졌다.

진 교수는 “어제 한국의 보수세력들이 모여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건설했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는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들이 모두 참석해 연대를 표했다”고 말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여기에 기성정당이 젖줄을 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일단 우호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내 “원래 뉴라이트는 한나라당이 대선과 총선의 연이은 패배로 위기에 처하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서 발생한 한나라당 쇄신운동”이라고 설명하고, “그런데 지지율 40%를 넘으면서 한나라당 쇄신의 절실함도 함께 사라진 느낌”이라며 서서히 비판의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뉴라이트는 구체적인 정책을 갖고 있다기보다 일종의 사상운동으로 시작했다”며 “문제는 그 사상이 어떤 면에서는 한나라당보다 더 근본주의적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근본주의는 20세기 초 자유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미국 개신교에서 시작된 보수파 신앙운동이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빈 라덴, 하마스, 지하드, 팔레스타인해방민주전선(DFLP) 등 이슬람 무장조직을 먼저 떠올리게 사실.

뉴라이트를 근본주의로 규정한 대표적 사례로는 참여정부에 대한 이들의 시각을 꼽혔다. 진 교수는 “노무현 정권의 정책은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적이라 평가받는다”며 “그런데 뉴라이트에서는 현정권을 과감하게 ‘좌파정권’으로 규정한다”고 꼬집었다. 또 “여기서 이들의 시각이 얼마나 오른 쪽으로 치우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에 대한 뉴라이트의 시각도 마찬가지로 매우 근본주의적이다. 진 교수는 “한나라당에서도 휴전선에 경제특구를 만들자고 하는데 이번에 ‘건달 정권’ 발언을 한 뉴라이트의 안병직 고문은 북한의 김정일 체제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더라”며 혀를 찼다.
 
진 교수는 “이런 냉전적 시각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새롭게 다가갈지 모르겠다”며 “이러니 라이트가 올드 라이트, 달라지기 이전의 한나라당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말했다.

진 교수의 촌철살인은 마지막 대목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뉴라이트가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않는 한, 낡은 담배를 ‘뉴’자 하나만 더 붙여 시장에 그대로 내놓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며 “금연효과까지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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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총리, &quot;훈계 들으러 나온 것이 아니다&quot;

안택수-장윤석 검사-이방호 쓰레기 연속

 

 

이해찬 총리, "훈계 들으러 나온 것이 아니다"
대부도 문제로 고성과 감정섞인 말싸움 벌여
 김윤상(bigjaw) 기자   
오마이뉴스
2005.10.25
2분 11초
273Kbps
이방호 의원은 이해찬 총리와 이른바 '대부도 땅 문제'를 놓고 감정 섞인 설전을 벌였다.

이 의원은 이 총리의 대부도 땅과 관련한 여론 조사를 했다며 이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 총리가 대부도 땅을 취득할 당시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상에 영농경력을 15년으로 기재한 것에 대해 "고의로 속였다"는 응답이 51% 였다.

또 "영농목적으로 대부도 농지매입은 거짓말"이라는 응답이 72.3%, "이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52.1%였다. 그러나 이 의원은 여론조사의 시기와 조사 대상자 숫자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내용을 국회 본회의장 양쪽의 대형 전광판을 통해 보여주자 이 총리가 상당히 강하게 반발했다. 이 총리는 "이미 여러 번 설명했다"며 자신의 입장을 말하면서 "이 의원이 돈까지 들여 여론조사를 했는데 가치 있는 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비꼬았다.

감정이 상한 이 의원은 발언 시간을 초과해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 "어떻게 의원 발언을 그렇게 폄하 하나?"라며 "반성하는 기미가 있어야지…"라고 반발했다.

"훈계 들으러 나온 것이 아니다", "누가 훈계했다는 것이냐"는 등 이 총리와 이 의원은 서로 고성을 지르며 감정 섞인 말싸움을 5분 정도 벌였다.
(글 - 김태경/유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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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의 '세가지 문제'와 한국전쟁

극우수구 또라이들이 무신 말이 필요한가

 

강정구 교수의 '세가지 문제'와 한국전쟁
텍스트만보기   이재봉(pbpm) 기자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글 한 편으로 온 사회가 참 시끄럽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는 것을 직접 듣기도 한다. 그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강 교수의 글을 직접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보면 아니란다. 대학교수들을 비롯해 이른바 여론을 주도한다는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별로 길지도 않은 그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극우 정치인들과 수구 신문들의 억지와 선동에 놀아나는 꼴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이다.

강 교수의 글에는 적어도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그의 글은 너무 쉽다. 대학교수들의 글은 대체로 영어와 한자가 많이 뒤섞여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쉬운 내용도 어렵게 써야 권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미국에서 오랜 동안 공부한 사람이어서 심오한 이론을 끌어다가 어려운 영어를 섞어 글을 쓰면 웬만한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을텐데, 글을 너무 쉽게 쓰는 탓에 극우 정치인들이든 수구 언론인들이든 무식하거나 바쁜 사람들조차 그의 글을 대충 읽으면 시비를 걸 수 있게 된다.

둘째, 주장이나 결론이 너무 명확하다. 글을 쉽게 쓰더라도 주장이나 결론은 에둘러 표현하거나 다소 애매모호하게 처리하면 될텐데, 민감한 부분까지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쓰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쉽게 공격을 받게 되는 듯하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처럼 과정만 제대로 설명하고 결론은 독자들에게 맡기는 식으로 글을 쓰면 탈이 덜 생길 것 같은데, 그는 '비겁한 글쓰기'를 굳이 거부하는 것이다.

셋째, 글투가 점잖지 못하다. 나이 60의 대학교수라면 화가 나더라도 감정을 어느 정도 숨긴 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을텐데 거친 말들을 그냥 쏟아낸다. 예를 들어, 학술 논문에 부시 대통령을 '황야의 무법자'라고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면, 북한이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서는 학술 논문에서든 신문 기사에서든 '깡패 국가'나 '폭군' 등의 거친 말을 주저없이 쓰면서 왜 미국에 대해서는 거친 말을 쓸 수 없느냐는 식이다.

강 교수는 이처럼 '고지식하게' 글을 쓴다는 것을 참고하면서, 그가 지금까지 연구하고 발표해온 한국 전쟁의 성격에 관해 얘기해본다.

(1) 전쟁의 명칭: '한국 전쟁'과 '6·25 사변'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이름짓는데 날짜를 포함하기 좋아한다. '3·1절' '4·3항쟁' '4·19' '5·16' '5·18' '8·15' 등으로 말이다. 나는 이게 좀 불만스럽다. '3·1절' '5·16' '8·15' 등과 같이 어떠한 일이 일어나 그 동작이 지속되지 않고 하루에 끝났다면 이런 명칭에 이의를 달기 어렵겠지만, '4·3항쟁' '4·19' '5·18'에서처럼 운동이 지속되었다면 어느 특정한 하루를 잡는 게 애매하기 때문이다.

'6·25'는 더구나 몇 달도 아니고 몇 년 동안 계속된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 6월 25일 갑자기 시작된 것도 아니다. 미군이 이 땅에 발을 디딘 1945년 9월부터 1950년 6월 이전에 남북 사이의 이념 갈등과 투쟁 과정에서 약 10만명이나 희생되었는데, 전쟁이 6월 25일 갑자기 시작되었다고 얘기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남쪽 안에서 일어난 이념 갈등은 빼더라도, 1949년부터 38선 일대에서 남북의 군대가 격렬하게 충돌한 적이 적지 않았다. 남침도 있었고 북침도 있었다. 또한 1953년 7월 정전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수백만 명이 죽었는데도 이 과정을 모두 '6·25 사변'이라고 부르는 게 바람직한가.

나는 '6·25'라는 이름에 어떠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공산 괴뢰군이 쳐들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주입시키기 위한 의도 말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한국 전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한편, 한국 전쟁의 국제적 성격과 관련하여, 유럽평화대학의 요한 갈퉁 교수는 '한국 전쟁(The Korean War)'이란 이름도 전쟁의 성격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며, '한국에서의 전쟁(War in Korea)'이라고 이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전쟁이라고 부르면 남북한 사이에서만 일어난 전쟁이라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전쟁이 일어난 곳은 한반도지만 전쟁의 주체는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전쟁'이라고 불러야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이라크 전쟁 (The Iraq War)'이란 명칭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쟁에서 침략자 또는 핵심 당사자인 미국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조차 '이라크에서의 전쟁 (War in Iraq)'이라고 쓰지 않았던가.

(2) 내전인가, 국제전인가

1945년부터 시작된 한국 전쟁은 분명히 국지전이었고 내전이었다. 그러나 '6·25 사변'은 국제전으로 보고 싶다. 1948년에 남쪽과 북쪽에 각각 독립 국가가 세워져서 1950년 6월부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1950년 6월 북한이 유엔으로부터 주권 국가로 인정받지 않았기 때문에 6·25가 내전이라고 주장한다. "유엔의 승인이라는 국제적 기준에 의하면 북한이 별개의 주권 국가로 승인되지 않았으므로" 내전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유엔은 1950년 6월 25일과 27일 결의안에서 6·25를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지 않고 '평화 파괴'라고 규정했고, 10월 7일 통일 결의안 역시 통일을 전쟁 목적으로 삼아 한 나라 안의 문제 곧 내전으로 성격 규정했다. 6·25 이전에 유엔은 남한만을 38선 이남 합법 정부로 승인했지 북을 별개의 주권 국가로 승인하지 않아 침략 전쟁의 성격 규정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는 "소련이나 중국 등 사회주의권의 외교적 승인을 기준으로 하면 북한은 별개의 주권 국가로 승인되었으므로 국제법적 기준으로 침략 전쟁도 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기는 하지만, 6·25가 침략 전쟁보다는 통일 전쟁의 성격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유엔의 승인을 가장 중시하는 듯하다.

당시 북한이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 주장은 오랜 동안 치열하게 국가의 정통성을 경쟁해온 남북 사이에서 남한에 결정적 힘을 실어주는 셈이다. 극우 수구파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남한에게는 충신이요 북한에게는 역적 아닌가.

나는 그의 이러한 주장에 반대한다. 국가의 정통성을 따지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강 교수가 내세우는 유엔이나 국제 사회의 승인 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와의 연계성 여부, 나라를 세운 지도자들의 경력, 당시 인민의 지지도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국가의 정통성을 지도자들의 경력이나 인민의 지지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1948-1950년 북한의 정통성은 남한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지 않았을까. 당시 북한 정부는 일제 식민 통치에 맞서 항일 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반면, 남한 정부는 일제에 빌붙어 지내던 친일 또는 부일 세력이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해방 직후에는, 자본주의를 강요한 미군정 아래의 남쪽에서조차, 80% 이상의 인민이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원했던 반면, 10% 남짓의 인민만이 자본주의 체제를 원했다. 따라서 유엔의 승인을 국가의 정통성에 대한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북한이 주권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6·25가 내전이라는 강 교수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3) 6·25는 통일 전쟁인가, 침략 전쟁인가

이 질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비교 대상의 성격이 서로 다르거나 어긋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45년 남쪽에 들어온 미군이 "점령군인가 해방군인가" 하는 불순하고도 무식한 질문과 마찬가지다. 결론부터 말하면 통일 전쟁이면서 침략 전쟁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 침략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1945년 남쪽에 들어온 미군에 대해 미국과 미군 자신은 '점령군'이라 부르며 남한을 '점령'했지만, 남한의 위정자들은 그들이 우리를 '해방'시켰다며 '해방군'으로 불렀다. 점령군도 되고 해방군도 되는 것이다. 점령군이기 때문에 해방군이 아니라는 주장도 잘못이고, 해방군이기 때문에 점령군이 아니라는 주장도 잘못이다.

그런데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6·25를 '통일 전쟁'이라고 쓴 부분에 대해 온갖 비난과 위협이 난무한다. 2001년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6·25를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라며 앞으로는 결코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데 대해 국회에서는 북한의 입장만을 대변했다며 대통령직을 사퇴하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6·25가 통일 전쟁이 아니라면 분단 전쟁이었다는 말인가.

극우 수구파들은 6·25를 북한이 남한을 적화하기 위해 기습 침략을 감행한 전쟁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공부해왔고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주의자들 가운데는 6·25를 북침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겠지만, 강 교수나 김 전 대통령도 6·25를 북침 전쟁이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 전쟁을 6·25 사변으로 한정하지 않고 범위를 넓혀 본다면 미국이 전쟁의 원흉일 수도 있고, 남침이 먼저냐 북침이 먼저냐 따지기가 애매하거나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6·25 사변만 떼어놓고 본다면 북한이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 먼저 침략을 저지른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적화 통일은 통일이 아니고, 침략 전쟁은 통일 전쟁이 아니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통일은 여러 가지로 추구할 수 있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통일도 있고, 전쟁에 의한 통일도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녹화 통일도 있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적화 통일도 있다. 서로 다른 두 체제가 공존하며 수렴될 수 있는 통일도 있고, 한 체제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통일도 있다. 이 가운데는 바람직한 통일도 있고 꼭 피해야할 통일도 있다.

6·25는 전쟁에 의한 통일 시도였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적화 통일 시도였다. 수단과 방법이 나빴어도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고,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가 달랐어도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다. 강 교수나 김 전 대통령이 이러한 통일 시도의 방법과 목표를 바람직하다거나 다시 한 번 추구해보자고 했다면, 나를 비롯해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6·25가 통일 전쟁 또는 통일 시도라는 너무나도 뻔한 말이 도대체 왜 시빗거리가 되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4) 미국의 전쟁 개입에 관하여

미국이 6·25에 개입한 것을 미화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오래 전에 이미 미국의 유명한 정치학자에 의해 제기되었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한국 전쟁에 미군 포병 연락 장교로 참여했던 하와이 대학교의 글렌 페이지 교수다. 그는 1968년 펴낸 The Korean Decision (한글 번역본: <미국의 한국 참전 결정>) 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참전 결정을 정당하다고 주장했다가, 1977년 자신의 책을 스스로 비판하며 하나의 폭력에 대해 또 다른 폭력으로 대응한 것을 반드시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반성했던 것이다. 미국의 개입 때문에 중국까지 참전하여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남북 양쪽에서 수백만이 죽게 된 것을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는 우리의 가치관과 관련된 매우 민감한 문제다. 강 교수가 요즘 비난당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6·25가 통일 전쟁이라는 주장보다는 미국의 개입이 없었으면 전쟁이 빨리 끝났을테고 사람들이 덜 죽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부른 것 같다. 물론 강 교수는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앞 뒤 문맥으로 보아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지금은 남한이 북한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풍요롭다. 쉽게 말해 체제 우월 경쟁은 끝났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에는 그 때 수백만 명이 죽었을지라도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에 흡수되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강 교수 자신도 지금의 남북 체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남한 체제를 선호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1950년 무렵에는 그렇지 않았다. 북쪽이 남쪽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더 안정되어 있었고 훨씬 개혁적이었으며, 압도적으로 많은 인민이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원했었다. 따라서 지금의 기준이 아닌 당시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다면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막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를 바랐을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한국 전쟁에 관해 오랜 동안 연구해온 학자가 많은 사람들의 정서에 어긋나는 주장을 편다는 이유로 그에게 온갖 위협을 가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다. 그리고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인 자유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다. 서로 다른 사상과 이념을 인정하며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남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란 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악랄하게 훼손했던 박정희 유신 독재와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들을 떠받쳤던 이른바 '국가 원로'들이 국가 정체성을 들먹거리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시국 선언을 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무슨 자유이며 그들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지 궁금하다. 반공군사독재를 자유민주주의로 착각하는 게 아닐까. 반공군사독재의 망령이 하루 빨리 완전히 사라지고 어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길 기대한다.
이 글은 [통일뉴스] 및 월간 [열린전북]에도 기고한다.

* 이재봉 기자는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이며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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