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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3/10
    [새만금속보]끝물막이공사 진행될 듯.. 방조제 입구 돌망태로 봉쇄중
    수진감자
  2. 2006/03/08
    서해어민 방조제 습격사건-농성2일째(2)
    수진감자
  3. 2006/02/06
    멀리서 바라본 방조제(1)
    수진감자
  4. 2005/06/14
    매실따러 댕겨왔음...
    수진감자
  5. 2005/05/26
    하늘을 나르는 도마뱀~~(3)
    수진감자
  6. 2005/05/01
    토막난 산...
    수진감자
  7. 2005/05/01
    등을 보다(1)
    수진감자
  8. 2005/04/23
    비둘기를 묻다!(2)
    수진감자
  9. 2005/04/08
    전기를 쓰지않는 도구를 이용하기...(6)
    수진감자
  10. 2005/03/20
    나에게 하는 고백(6)
    수진감자

[새만금속보]끝물막이공사 진행될 듯.. 방조제 입구 돌망태로 봉쇄중

속보 동영상, play를 누르세요.



오늘 오후 5시 경 가시철조망을 가득 실은 트럭이 방조제 안으로 들어갔다. 철조망의 용도가 방조제 공사와 관련이 없을것이라는 판단과 그 철조망을 옮기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방조제 안으로 트럭을 따라 들어갔다. 하룻만에 들어온 방조제의 풍경은 이틀전 그날과 180도 달라져있었다. 어민집회가 있었던 곳은 이미 돌망태를 3층으로 쌓아 진입을 막은 상태고, 끝물막이 공사 D-day 는 D-17에서 D-8일로 바뀌어 있었다. 단 이틀만에 변화된 상황이다. 철조망은 지난 화(7일)요일 어민들이 뚫고 들어갔던 곳에 이동되었고 이는 어민습격을 봉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5시 30분 경부터 농성장에서 100m 전방에 있는 방조제 집입로에 덤프트럭이 방조제 안에서 돌망태를 옮겨와 입구를 완전 봉쇄하기 위해 돌망태로 벽을 만들고 있었다.

어민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경찰, 정부, 농촌공사, 현대건설이 대책반을 운영하여 주민들의 투쟁을 봉쇄하기 위한 공작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어제 저녁 뉴스에 보도된 방조제 입구 봉쇄를 전격적으로 단행한것이다.

새만금 갯벌의 생존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 8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D-17 일에서 이틀만에 D-8일로 바뀌었다. 3월 17일 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가력도 배수관문으로 들어가는 방조제 2공구 입구에 쌓아놓은 돌망태



방조제 1공구 입구를 봉쇄하기 위해 쌓아놓고 있는 돌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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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어민 방조제 습격사건-농성2일째

어제 끝물막이 저지 결의대회를 갖고 이틀째를 맞았습니다. 경칩이 지났지만 새만금 바다에 부는 바람은 여전히 겨울을 살고 있는듯 매섭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제,군산,부안에서 모인 어민들은 이틀째 집회를 가졌습니다. 트롯트가 투쟁가로 불리 우고, 마지막 물막이를 막겠다는 어민들의 호소와 절규는 어민들의 발걸음을 방조제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전경차 9대가 들어오고 경찰과 대치한 상태에서 어민들은 또다시 자신들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와 끝물막이 공사를 막아야 한다는 신념을 밝혔습니다. 여성어민들과 몇몇분들이 저지선을 뚫고 방조제 끝으로 가던중 경찰이 제지하고 그러면서 몇분은 바닥에 누워 절절하게 호소했습니다. 왜 이분들이 이곳에서 이렇게 누워서 외쳐야만하는지 새만금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그들을 들어야 하고 알아야 할것입니다.

차라리 죽여라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진행하는 투쟁결의대회

어민의 절절한 심정과 노래가 함께 이어지고

집회후 방조제로 방조제로~~ 이어지는 어민들의 발걸음

끝물막이 공사 D-17...건설현장에 붙어있는 저 표식 끔찍하다.

방조제 위에 모인 사람들..

고은식님...

방조제 위에서 진행하는 집회

방조제 끝으로 들어가려는 주민들과 경찰과의 대치..

경찰과 대치한 할머니

경찰과 대치한 할아버지..

전경뒤에 써져있는 끝물막이란 글씨를 보라..

새만금 바다를 막을 돌망태들.. 저 돌망태위에 한 어민이 깃발을 꽂으셨다..

주민 단식농성 2일째.. 계화 어민 한분이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안 새만금 전시관 1호방조제 입구에서는 3월 6일부터 농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틀에 이어진 큰 집회가있었고, 곧바로 지역 어민들은 농성장을 차리고 농성을 진행중이십니다. 그리고 계화 어민중 한분이 3월6일부터 단식을 시작하셨습니다. 며칠후 다시 큰 집회를 준비중입니다. 방조제 공사를 막아내고, 물꼬를 트는 그날까지 모두 함께 제대로 싸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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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본 방조제

 

변산의 야산에서 바라본 새만금 방조제다. 남아있는 2.7km 구간이 우연히 잡혔다. 바다를 가르고 있는 저 욕망의 벽앞에서 망연자실 할말을 잊는다. 방조제 바깥쪽에는 밀물썰물 그 섭리대로 자연스레 드나든다. 그러나 방조제 안은 병든 노모처럼 힘없이 갯바닥만을 드러낸다.

 

우찌할꼬.. 우찌할꼬.. 인간들의 험하고 무모한 결정을... 멀리 새만금 바다를 바라보면서 가슴에선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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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따러 댕겨왔음...


 

경남 하동 악양면으로 지난 연휴와 그 이후 쭉~~ 해서 머물다 왔다. 들녘에는 모내기가 한참인데 아직 보리타작을 하지 않은곳이 많아 묘하게도 황금들판과 어울어져 있다. 내가 머문곳은 매실농사를 짓는 농가.. 78살이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이 매실농사, 차밭농사에 나물도 엄청 심으셨고, 논에 밭에... 두사람이 절대 할 수 없을 만큼의 농사를 짓고 계신다. 잠시 머물다가려던 내가 그곳에 조금 더 오래 있었던 이유는 두 노인만을 두고 오기가 싶지 않아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잔차가 있는 덕에 읍내까지 다녀오는 심부름을 독차지 했다. 덕분에 할머니 할어버지의 수고가 많이 덜어지신것 같아 마음은 편했다. 농약을 치지 않는 매실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정은 남달랐다. 가지치기 하나에도 정성에 정성을 기울이신다. 하지만 문제는 인력부족... 청매실을 따야 하는데 사람이 부족해서 한주만 넘겨도 매실은 누렇게 익을지도 모르고.. 세벽 4시부터 저녁 8시까지의 고된 노동으로 잠시도 쉴 겨를 없이 몸을 놀리신다. 천하의 게으름뱅이는 왜이리 벌레에 잘물리는지 결국에는 텐트를 치고 잘 수 밖에 없었지만 낯선 나에 대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따뜻한 배려가 참 고마웠다.

 

매실을 따다가 나무위에서 할머니의 음성이 들려온다.."살구사소~~살구! 살구사소~~ 살구!" 엥? 무슨 소리지? 할머니께 여쭈었더니 "응.. 옛날에 살구장수가 살구를 파는데 너무더워 살구사고~ 살구 소리를 질렀더니 바람이 불었대" 하는 거다. 근데 할머니의 외침이 3번쯤 지나서 매실나무 사이로 바람이 분다. 그 후로 동네 아주머니들도 매실나무 위에서 흠뻑 젖은 땀에 겨울땐 이 소리를 외친다..

 

농촌!! 곧 농촌이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흙과 농촌의 희망을 죽이는 농업정책이 농민들의 분노를 끌어내고 만것이다. 평생 흙에 묻혀 사신 분들의 희망의 끈이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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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르는 도마뱀~~

잔차타고 동네를 지나가는데 전봇대에 이런게 있더군요.

저 도마뱀은 어디를 향해 페달을 밟는걸까?

외발 자전거의 비상일까? 아님 그저 꿈꾸는 이의 꿈과 현실의 절묘한 표현일까?(전봇대에

매달린게 왠지 안쓰러워 보이기도 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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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난 산...

산이 깍기었다. 오랫만에 귀농한 선배의 집에 다니러 무주에 내려갔다. 서울에서 무주는 2시간 30분.. 차안에서 한잠자면 도착이다. 아마도 쭉쭉 잘 뻗은 도로 때문인것 같다. 내가 가는 도로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인듯..(잘은 모르지만) 그 도로도 건설된지 얼마안된것 같은데 이도로 옆으로 새도로가 생기고 있다. 산이 잘려나가고 논과 밭이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에 가려 이젠 더이상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산은 더이상 산이 아닌것 같다. 토막나고 찟겨지고.. 속도의 환상이 너무 많은 절개면을 만든다.  그 절개면이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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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보다

우리 동네에는 큰 절이 하나 있다. 2주 전부터 그절 옆에 있는 큰 창고에서는 밤늦도록 등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앞을 지날때마다 거대한 등을 수많은 사람들이 만드는걸 보게 되었다. 정성스레 철사를 잇고, 한지를 붙이고, 그림을 그리고...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서 하나부다 생각했다. 그모습이 너무 좋아 좀전에 사진 한장 찰칵^^ 은은한 등의 빛이 한지를 적시며 심하게 눈부시지도 않으면서도 심하게 화려하지도 않게 어둠을 비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이 사람의 손으로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들고 정성스레 가꾸는 일과 사랑에 빠졌다. 장인이 아니더라도 프로가 아니더라도 인간 내면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표현과 표출의 자유로움이 안과 밖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정성스레 등을 만드는 저들의 마음도 늘 지금 이 순간같으면 참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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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를 묻다!

어제 당진에 갔다가 오늘 돌아왔다. 안양역 터미널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섰다. 비둘기들이 한무리다.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은 차소리에도 사람소리에도 별로 반응하지 않는 걸 보니 많이 둔감해졌나보다. 아님 이렇게 사는것에 익숙해졌던가.. 그렇게 그렇게 비둘기들을 지켜보며 신호를 기다리는데 승용차 한대가 슝~~ 달렸다. 그리고 비둘기 한마리를 치었다. 팔딱거리던 비둘기가 피를 흘렸다. 신호가 바뀌었고, 난 비둘기 앞으로 가 순간을 서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고 모두 흩어졌다. 이렇게 두다간 비둘기가 완전히 뭉개질것 같았다. 신문을 주웠고, 차들을 세웠고, 쓰러진 비둘기를 신문에 올려 안았다. 그리고 나서 그 녀석이 눈을 감았다. 내가 비둘기의 임종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난 뒷산으로 죽은 비둘기를 데리고 가서 땅속에 묻어주었다. 다시는 도시에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봄햇살에 흙이 따뜻해서인지 비둘기 무덤을 양 손으로 폭 덥고 있는데 온기가 올라왔다. 마치 살아있는 몸이 뿜는 따스함처럼...

 

난 눈을 감는 순간을 처음보았다. 사람도 동물도... 죽은 사람을 본적은 있고, 죽은 동물을 본적은 있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은 처음이었다. 그 처음이 비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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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쓰지않는 도구를 이용하기...

몇일전 다큐를 봤다. end of suburbia 이라는 건데 석유시대의 종말에 대한 경고 같은 것을 다룬 거다. 그 영화를 보고 밤새 석유가 만든 문명과 경제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침에 주섬주섬 챙겨 집으로 오는 전철에서 경제 신문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건 '고유가 시대에 살아남기'라는 꼭지로 무려 지면 네 페이지를 꽉채운 기사였다. 전날밤 이야기 했던 위기? 어쩜 성장의 시대에 대한 종말에 대한 경고 같은걸 유순하게 옮긴 대중 실천 지침같은 걸 포함했다.  여러모로 아찔함과 동시에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순간을 경험했다.. 유가의 폭등, 경제 마비, 화석연료에 의존해 고도의 성장시대를 이루어온 것들이 폭삭 망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내게 종말의 의미로도 느껴지기도 했고 아주 잘된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대안은 무엇인가? 지금의 에너지 시스템에서 벗어나 사는 수밖에는... 노동집약적 자급자족 사회를 만들던가, 내가 그렇게 살던가!! 전기를 쓰지 않는 미싱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석유시대 종말을 준비하는 한가지 내 방식이다.. (에궁.. )

 

http://blog.naver.com/kimcg3519.do?Redirect=Log&logNo=140006926099

 

<참고로...>이영화 보실분은 아래것에서 down 받으시면 되요.. 아콤다의 토룡님이 번역을 하셨습니다.. -->아콤다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영화 

http://down.pdbox.co.kr/oub0w5_ngxt1

자막

http://down.pdbox.co.kr/hru1w5_ngx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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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는 고백

작년 7월 하던 일을 중단하고 4개월의 긴 여행을 다니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 혹은 내가 끌어안고 있는 현실로 부터 자유로운 해방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내가 내린 대안적 삶에 대한 대략적인 결론은, 자발적으로 가난해 질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며, 내 몸뚱아리를 이루고 있는 손과 발과 가슴이 원하고 말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난 아주 가뿐하게 농부가 되길 결심했고 그리고 그걸 준비하는 시간을 갖고자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의 결심은 흔들흔들, 위태위태 해지기 시작했다. 현실의 다양한 모순과 문제들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내가 의미있고 가치있다는 것의 내용이 자꾸만 다른 것들로 채워지고 그러다보니 스스로 중심을 잘 찾지 못했다. 또다시 거대한 담론의 늪에 빠져버리고 말았고, 현재 어쨌든 도시에 사니깐 뭔가 의미(?)있는 일을 시골로 가기 전까지 해야한다는 나름대로의 강박같은게 다시 생겨나게 되었다.

 

3년가량 돈을 버는 일을했고 놀고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지역운동하는 사람, 당운동 하는 사람, 대안학교 하는 사람 등 여기저기서 함께 뭔가를 하자는 제안들이 자꾸 들어왔다. 어쩜 난 아직 내가 쓸모있는곳이 있나보네 하며 기분이 좋기도 했고, 다른 측면에서는 이왕 한다면 예전에 내가 했던 그런 활동을 한번 하고 싶은 욕구도 마구마구 생겨났다. 그러면서 난 운동을 해야하는 이유보다 사실 활동을 하면서 행복했던 경험이 더 많이 떠올랐다. 이러면서 정리되었던 마음이 다시 막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거스르며 사는 건 모두가 직업운동권이 되는 문제는 아닌데, 난 다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활동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막 간절하게 생기게 되었다. 사실 그 모습과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그래서 난 내 친구에게 요구해고 그 친구를 마구 흔들었다. (그는 내게 너무도 소중한 동지다.) 그러나 내겐 허영이 있었고, 우습잖은 환상같은 것도 있었던 모양이다. 황당한 내용으로 모이작당해보자는 게 영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난 혼란스러움을 중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는 '모'환경단체에 이력서를 넣었고, 지난한 면접의 과정을 통과해서 신입으로 뽑혔다. 사실 이러한 행동과 결론에 이른것은 나의 고민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 단체에서 몇일간 진행한 연수를 통해서 아주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사실 이건 지극히 예상가능한 결론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활동을 한다는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거스르며 가난하게 살겠다는 것과도 이어지지 않고, 내 몸뚱이와 감성을 자라게 하는 일도 아니며, 농부가 되려는 그 과정에 있지도 않으며 내가 해보고 싶었던 활동과도 전혀 성격이 다르다.

 

황당한 나의 행동이 다시금 내 뒤통수를 친다. 이런 모습은 내안에 복잡하게 얽히고 정리되지 않은 가치관이 마구마구 섞어버려서인것 같다. 남들이 하면 부럽지만 내가 하면 두려운 것들이 참 많아서 였던것 같다. 남들이 돈이 없어도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부러우면서도 난 그게 무섭다. 남들이 백수로 지내면서 느리게 소박하게 사는것이 부러우면서도 내게는 잘 허용이 안된다. 남들에게는 차근차근 여유를 가지며 살아보라 쉽게 말하지만 내겐 참으로 급한 사람이다.

 

결국 난 틀과 그 틀의 밖 사이에 있는 경계선에서 나자신을 왔다리 갔다리 옮겨 두고 있다. 이제는 정리해야지 싶은데... 그래서 난 내가 지원한 그 단체의 활동을 포기할꺼고, 서른둘의 삶을 다시 쓸꺼다. 진짜 베짱이가 되는 그런 삶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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