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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5/11
    동네에 온 새 식구...(6)
    수진감자
  2. 2007/04/30
    어미닭과 병아리(4)
    수진감자
  3. 2007/04/25
    암탉이 알을 품고 있다. ->그새 병아리가 나왔어*^^*(6)
    수진감자
  4. 2007/04/24
    아침 버스 풍경
    수진감자
  5. 2006/08/23
    [펌]카트리나 1주기 맞이해 기후정의를 위한 전세계 27개 도시에서 진행될 critical-mass
    수진감자
  6. 2006/08/09
    신혼여행기(1)
    수진감자
  7. 2006/07/28
    에코토피아 함께 갑시다..
    수진감자
  8. 2006/07/27
    loose change 상영안내...(2)
    수진감자
  9. 2006/07/26
    ....
    수진감자
  10. 2006/07/25
    [기고글]올 여름휴가 에코토피아에서 어떻습니까?(3)
    수진감자

동네에 온 새 식구...

어제 우리동네에 베트남에서 새색시가 시집을 왔다.

아침 나절 남은 고추모종과 수박을 심고 집에 들어오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새 고운 옷을 차려입고 아랫마을에 가신다.

어디가시냐고 물으니, 새색시 구경간다고 하신다.

드디어 온다던 사람이 왔구나 싶어 그 분들과 잔치집에 동행했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온후 동네에 여러번 잔치가 있었다.

잔치집에 가면 늘상 어머니들과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기 일인양

음식 준비를 돕고, 이런저런 수다를 늘어놓는다. 나도 이젠 이런 상황이

익숙해진걸까? 부엌에 가 부침개 부치는 걸 돕고, 새색시와 인사를 나눴다.

그의 이름은 꾸엉. 나이는 25세.

 

마을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덕담이 이어지고, 소박한 국수잔치상에 소주한잔

곁들이며 피곤한 농사일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이어지는 여러가지 이야기들...

새신랑의 청으로 내 남편도 이집에 내려와 술잔을 기울이며 잔치를 도왔다.

 

꾸엉은 정말 예뻤다. 내가 보기엔 한국의 여느 미인의 대열에 들만큼 외모가

탁월했는데, 말도 안통하는 분위기에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마을 분들의 칭찬은 잔치내내 이어지고, 난 나의 인기가 곧 하락할것을

예감하며 ㅋㅋ 할머니들께 어리광을 피웠다. 할머니들 왈 "외모는 중요한게 아니여,

마음이 중요하지.." 헉~~~ 이 말이 더 충격(ㅠ.ㅠ)

 

여튼 잔치에 다녀와서 꾸엉을 생각하며 여러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 결혼한 외국사람에 대해 나름대로 관대하다. 그러나 문제는 적응과 실제

살아가는 것일진데, 과연 잘 살 수 있을지 많이 걱정되고 염려되고 그랬다.

그 밝은 표정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음 하는데, 어찌될른지....

 

마을 어른들이 내게 꾸엉의 한국말과 글의 지도를 부탁하셨다. 겉으로는 '네'하고

대답은 했지만, 잘할 수 있을지 염려도 된다. 여튼.. 꾸엉이 내 시골 삶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듯하고, 나도 그녀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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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닭과 병아리

 

병아리와 어미닭

 

얼마전 태어난 병아리들이다.

15개의 알중에서 7개가 병아리로 태어났고, 1마리가 쥐의 습격으로 피살되었다.

 

병아리에 대한 어미닭의 보살핌이 너무도 극진하다.

21일동안 단 한번도 알을 품는 걸 게을리 하지 않은 어미닭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 받았다.

그리고 이토록 아름답고 순수한 병아리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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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알을 품고 있다. ->그새 병아리가 나왔어*^^*

동네 아주머니로부터 장닭과 암탉을 분양받은지 지금으로부터 두어달~~

 

그로부터 한달후~~

우리집 암탉이 4월4일부터 알을 품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모아둔 알 15개를 고스란히 품는 암탉!!

 

조금의 미동도 없이 온몸으로 알을 품는 모습에

하루하루 감동 먹는다. 그리고 절대 닭대가리란 말을 쓰지 않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도 생겼다.

 

그로부터 오늘이 22일째 되는날~~

어제 그제 집을 비운터라 불안한 마음에 닭장부터 찾았다.

닭은 여전히 알을 품는다.

오늘 모습은 더욱 애처롭다. 온몸을 부풀려 15개나 되는 알을 품고

그 온기로 마지막 힘을 기울이는 듯 하다.

 

(잠시 10여분이 지났음)

앗!!

동네 아줌마가 병아리 깠냐고 전화를 하시더니 금방 다녀가셨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난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면 알아서 밖으로 나오는줄 알았는데

엄마품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오늘 병아리는 예정대로 나온거구~~

난 무지해서 암탉을 들고 살필 생각조차 못하고 만것이다..

 

여틋 넘 신기하고 신비롭고 감동적이다.

현재까지 15개 알중 5개에서 병아리가 나왔다.

오늘밤과 내일 새벽 이들 중 얼마가 더 나올것 같다..

완전 흥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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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버스 풍경

일주일에 한번 서울에 올라온다.

자전거를 타고 차부에 오는 길이 꽤 상쾌하다.

마을에 있으면 집근처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없다.

2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차부까지 너무 오랫만인게 낯설다.

 

오늘은 필리핀에서 시집와 살고 있다는 젊은 엄마를 만났다.

한글을 배우러 간단다. 8개월짜리 아이를 안은 엄마가 참 밝아 보여서 좋았다.

 

내가 사는 곳은, 요즘 한창 거름내고 밭갈고 비닐깔고 고추심을 준비가 한창이다.

오늘아침 버스에는 할머니들이 가득하다. 밭일을 어제까지 마치고 몸살난 몸을가지고

병원에 가신단다. 근 20여명의 할머니들이 정류장마다 서서 버스에 오른다.

 

평생 농사일하고 그렇게 얻은 병.. 자식들 다키우고 농사를 줄였다지만 여전히 그 양은

만만치 않아보인다. 그리고 틈틈히 병원 주사와 약으로 망가진 몸을 달랜다.

오늘아침 버스에 가득탄 노인들은 모두 병원으로 향한다.

 

마음이 찡하다.

시골은 노인복지가 아니라, 몸이 덜 상하는 대안의료가 필요한게 아닐까 절실히

느낀다. 집집마다 쌓여있는 약봉지가 이분들의 시름을 더 크게 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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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카트리나 1주기 맞이해 기후정의를 위한 전세계 27개 도시에서 진행될 critical-mass

올 여름의 무더위는 작년하고도 다르고 재작년하고도 달랐다. 자꾸 이런식으로 생각해서 인지 아니면 진짜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어서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건 확실한것 같다. 더위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밤이 되면 시원해 질꺼라는 기대를 해보지만 낮동안 데워진 집안의 열기가 밤이되도 식을 줄 모르고 새로운 아침을 맞는다. 그러면서 보낸 3~4주. 이대로 지속되다가 노인들이나 지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큰일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얼마전 TV에서 남태평양 도서국가 투발루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해발 1m인 도서국가인 투발루는 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섬나라다. 2002년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찾은 기사에서 투발루가 물에 잠기고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당시 투발루 당국은 호주에 난민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시 뉴질랜드로 신청을 해야했다. 1년에 75명씩 뉴질랜드로 갈 수 있다. 현재는 7개의 섬중에 4개의 섬에만 사람들이 산다고 한다. 지하수는 지대가 낮아지면서 소금물이 나와 더이상 먹을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태풍이나 바람이 불기만 하면 해안가 지대는 온통 쑥대밭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삶에 대한 더이상의 의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그들은 자동차를 많이 이용하지도 전기를 어마어마하게 쓰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상기후의 재앙은 그들의 땅에 도달했고, 서서히 그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억지로 꿰어맞추는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플로리다의 뉴 올리언스 지역도 비슷하다. 낮은지대에 살고 있는 수십만명의 가난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재산을 잃었으며, 가족도 잃었다. 인간의 활동이 불러일으킨, 개발과 성장이 동시에 생산해내는 온실가스와 기후변화는 이렇듯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더이상 지속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우연히 아래 기사를 보게되었는데, 북미에서는 카트리나 1주기를 맞아 자전거 행동을 한다고 한다. 이 사람들의 행동과 소리에 누군가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겠지만, 그 속도가 더이상 늦지 않길 바란다.

 

 

 

 

출처.. indymedia climate에서

 

http://www.climateimc.org/?q=node/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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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기

 
생각만 해도 설레는 여름휴가. 자동차 여행도 이젠 식상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빠름 속에 놓친 느림의 풍경이 있는 자전거 여행은 어떨까요. 10주 연속기획 '자전거는 자전車다-자동차와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 다섯째 주에는 자전거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제안합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호흡하는 섬진강과 강화도 기행, 대전 도심에서 즐기는 짧은 여행, 자전거 타고 떠나는 신혼여행까지…. 지난 7월 9일부터 15일까지 태풍과 집중호우를 뚫고 경북 오지로 자전거 신혼여행을 떠난 '대담한' 신혼부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 자전거 축제처럼 열린 우리들 결혼식. 서울에서 결혼식장인 부천까지 자전거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 이수진
 
나 이수진과 최교현은 지난 7월 8일 결혼했다. 평생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만나 연애하고, 동거하고 그러다 결혼식(?)도 치르게 되었다. 우리에게 결혼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책임과 사랑에 대한 약속을 만천하에 알리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규제하는 원칙들을 허무는 행위에 좀 더 가까웠다.

우리가 서로 알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이었다. 그러나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은 3년 전 '발바리'(매달 한 번씩 열리는 떼거리 자전거 대행진) 모임에서였다. 서로 자전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냥 아는 선후배 사이가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전거처럼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아야 앞으로 나아간다. 두 사람이 함께 자전거를 탈 때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속도를 맞추기도 하고 때로는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자전거는 늘 현재진행형이고, 내 몸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자전거의 속도는 늘 내가 지나치는 곳의 경치를 살피게 한다. 주변을 느린 속도로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자전거의 속도는 부담스럽지도 지루하지도 않으며, 바로 나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이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과 닮아 있고, 연애나 사랑의 기술과도 닮은 듯하다. 어쩜 우리 부부는 운이 참 좋은 사람들이다. 자전거가 가르쳐준 그 철학을 느끼며, 관계와 사랑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태풍 예보 속 출발] 동해안은 스페인 북부 지형을 닮았다

 
▲ 우리는 결혼식을 마치고 다음날 출발했다. 너무 거창했던(?) 결혼식 피로연 때문. 출발하기 전 풍경이다.
ⓒ 이수진
어디를 가든지 자전거를 이용하는 우리는 신혼여행도 당연히 '자전거로 간다'고 생각했다. 굳이 의논하고 말고도 없었다. 자전거를 탄다는 게 우리에겐 너무나 자연스런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2004년 6개월간의 유럽 자전거 여행 후, 우리는 너무도 오랜만에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전거 안장에 올랐다. 장마와 태풍이란 기상예보에 산악용자전거(MTB) 대신 언제 어디서든 쉽게 펴고 접어 버스나 기차에 실을 수 있는 미니벨로를 선택했다.

갈아입을 옷 몇 벌과 비옷, 자전거 공구, 모자, 카메라, 코펠과 버너, 지도 그리고 작은 노트북이 여행 짐의 전부였다. 여느 때 같으면 침낭, 텐트, 매트리스가 필수 목록이었겠지만 이번은 신혼여행이란 핑계 삼아 조촐하게 짐을 쌌다.

신혼여행지는 오지 중의 오지, 경상도 속의 강원도인 '경상북도'로 결정했다. 지금껏 유일하게 안 가본 지역인 데다가 귀농할 장소로 점찍은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바다와 산, 계곡과 사람들을 만나는 우리의 여행은 7월 9일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7번 국도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동해안이 태풍 영향권 안에 들면서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동해안은 스페인 북부 지형과 매우 닮아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해안국도는 지형이 높고 조금은 험한 산악지형에 가까운 반면, 눈앞에 펼쳐지는 경치는 자전거 페달을 멈추게 만드는 강렬한 매력을 가진 것 같다.

동해안에서의 이틀 밤은 간간이 자전거를 탄 것 빼고는, 비에 젖은 바닷소리를 들으며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회와 대게 그리고 소주 한 잔 걸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서울이라는 거대한 자동차 지옥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마음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구주령 넘어 영양군] '개발공화국' 대한민국이 아직 넘보지 못한 땅

 
▲ 구주령을 오르기 전 자전거 두 대를 세우고...
ⓒ 이수진
 
태풍과 바람이 잦아든 3일째 되는 날, 울진 후포항을 출발해 백암온천을 거쳐 구주령에 올랐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경상북도의 지형은 끝도 없는 골짜기와 계곡 그리고 초록의 빼어난 절경으로 이어진다. 굽이굽이 골짜기를 지나 나오는 마을들은 전라도와 다르고 강원도와도 다른 이국적 정취를 품고 있었다.

작은 시골마을들이 4~5km마다 나타나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울진은 유기농으로 꽤 알려진 지역이고, 지나치는 논에는 어김없이 오리들이 살고 있었다.

해발 0m에서 시작해 해발 600m의 구주령을 오르는 순간, 겹겹이 쌓인 산 너머로 동해바다가 펼쳐졌다. 희미하게 섬 하나가 떠있는데 그것이 바로 울릉도란다. 세상에 내가 울릉도를 육지에서 보게 되다니 묘한 흥분이 심장을 파고 돌았다.

구주령을 넘어 시작되는 곳은 경상북도 영양군이다. 영동에서 영서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태풍이 지난 터라 계곡마다 물은 가득하고, 그 소리와 절경에 지칠 줄 몰랐다.

한국에서 개발이 가장 안 된 곳 중 하나인 영양은 인구밀도가 낮아서인지, 어느 곳에서도 난개발을 찾아볼 수 없었다. 꽤 오래전에 놓인 국도가 여전히 대부분 지역민들의 이동통로이며, 산을 구비구비 넘어야 하는 고개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터널 하나 볼 수 없었다.

 
▲ 영양에서 귀농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 부부(왼쪽), 영양가는 길에 먹은 새참 라면(오른쪽).
ⓒ 이수진
 
개발공화국 대한민국이 아직 넘보지 않는 곳이 있다니 한편으론 너무 다행이라 느꼈고, 한편으로 씁쓸했다. 농번기에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불편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영양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그날 밤 우리는 귀농한 부부의 환대 속에 시골 정취 서린 훌륭한 저녁식사에 포근한 잠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경북 오지 여행] 자전거를 세운 '새만금 여전사'의 비보

다음날 우리는 봉화로 향했다. 경북 오지의 양대 산맥, 영양과 봉화. 개발의 세례를 덜 받은 곳을 여행하는 건 자전거 여행객들에게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국도 변은 자동차의 통행이 적을 뿐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길이 나 있어 대부분 마을과 마을이 연결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경치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니벨로 네 바퀴가 경북 자연의 품속에서 달리는 동안 우리는 자전거 여행의 맛을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봉화로 향하는 길에 우리는 갑작스런 비보를 전해 들었다. 새만금 연안에 살고 계신 언니 한 분이 아침 갯일을 나가셨다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7월 11일 오전 갯고랑에 빠져 익사한 계화도 사람 류기화씨. 오종환 감독이 새만금 방조제 공사 저지에 앞장선 그의 모습을 담아 <갯벌여전사>를 만들었다).

우리 결혼식에 참석했던 언니가 4일 만에 변을 당한 것이다. 나와 내 남편은 여행을 중단할 것인지 계속할 것인지 의논해야 했고, 결국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영주로 가서 자동차를 빌려 전라북도 부안을 다녀온 후 다시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비보를 접하고 우리는 11시간 만에 부안에 도착했고, 죽어가는 새만금에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온 젊디젊은 새만금 여전사의 영정 앞에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영주로 돌아와 자전거 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만 30시간 만에 돌아온 여행길이었다.

부안에서 돌아와 영주에 살고 계신 남편의 외할머니와 친척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의 미니벨로는 중앙선 기차에 실려 충북 단양으로 향했다. 단양 기차역을 나오자 역 앞을 흐르는 남한강에는 수십 미터 높이까지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는 충북의 산천을 가로지르고,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하루를 한 달처럼 보낸 우리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단양 지나 괴산] 몸이 힘드니 자연스레 자전거를 탓한다

 
▲ 남한강 물안개가 곱게 덮인 단양읍내.
ⓒ 이수진
 
단양역에서 단양시내까지는 3~4km 정도인데, 강 따라 그 모양이 길게 늘어진 도시는 특색 없는 한국 도시들에 대한 이미지를 확 깼다. 단양은 마늘축제로 한창이었다. 농민들이 장터에 마늘을 쌓아놓고 며칠 후에 있을 주말 장터 채비로 분주했다.

단양 시내로 들어올 수 있는 자전거 길은 남한강을 따라 이어졌고 그 길은 단양과 남한강을 느낄 수 있는 재미난 곳이지만, 지역 자전거 정책과는 무관하게 관광지 냄새가 너무 짙은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고수동굴을 지나 천동동굴이 있는 천동계곡의 한적한 민박집에 머물렀다. 보기에는 평지이나 가다 보면 오르막인 업힐(Up-hill) 구간이다. 산이 많은 지역의 특징인 것 같은데 이런 길은 내게 쉽지 않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다음날 계곡을 내려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밭에서 한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 밭 옆으로 즐비한 서양식 펜션들을 보고 이 할머니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 속리산 속으로
ⓒ 이수진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충북 괴산. 단양에서 버스를 타고 충주호를 지나 살미면에서 내렸다. 괴산을 향해 가려는데 드디어 미니벨로 한 대가 말썽을 부린다. 지금까지 잘 참았다 싶었는데 작은 바퀴가 몸무게와 험한 길, 습기를 못 이기는 것 같았다. 페달 안쪽 나사가 계속 풀리는 문제였는데 해결이 쉽지 않았다.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자전거를 수리하고 괴산으로 향했다. 괴산은 옥수수 축제를 하고 있었다. 지역마다 농산물축제로 한창이지만, 손님 없는 잔치라고나 할까? 단양 마늘이 그랬고, 이곳 옥수수가 그런 것 같다. 마음이 아팠다. 친구는 속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송면이라는 동네에 산다. 그곳에 가려면 속리산을 종단해서 소금강과 쌍곡구곡 길을 넘어서도 20여km를 더 달려야 한다.

속리산은 신기하게도 산 한가운데를 종단하는 길이 2차선 지방도다. 국립공원에 도로가 있어 당황했지만 충주와 문경 그리고 상주를 이어주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옛길이었던 것 같다.

쌍곡구곡 역시 완만한 경사가 끝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며칠간의 고된 여행 때문인지 몸이 맘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힘드니 난 자연히 미니벨로를 탓했고, 가엾은 내 미니벨로는 주인의 핀잔을 반항 하나 없이 듣고 있어야 했다.

[충북 괴산에서 서울로] 그야말로 달콤함 우중 산속 생맥주 맛

 
▲ 소나기를 피해 산속 생맥주집으로...
ⓒ 이수진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나기가 몰려올 기세여서 우리는 산속에 있는 호프집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우중 산 속 생맥주 맛은 그야말로 달콤하고, 피곤함을 적실만큼 충분히 감동이었다.

속리산 내 지방도를 따라 꼭대기에 이르니, 거기에서부터 다운힐(Down-hill)이 펼쳐졌다. 내가 힘든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한 신나는 내리막길이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서 우리는 귀농한 친구 집에 도착했다.

다음날 드디어 서울행이다. 산에 둘러싸인 분지지형인 이곳에서 괴산읍까지는 25km 정도 되는데 넘어야 할 고개가 2개나 되었다. 지도상 표시된 길로 가니 비포장도로가 펼쳐졌다. 국도 중 비포장은 처음 만났다. 비포장 길을 한참 오르는데 그 길 옆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알고 보니 새 도로를 만들고 터널을 뚫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길이 있는데 바로 그 옆에 새 도로를 내다니 이해가 안 되었다.

여행 중에 자동차가 다니기 좋은 길을 만드는 공사를 여러 번 봤다. '대한민국은 도로 건설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건설교통부는 자동차 도로 이외에 다른 상상력은 떠오르지도 않는 모양이다. 자동차 중심 정책에 중독된 대한민국이다. 거기엔 어디도 사람을 중시하는 도로나 자전거를 우선하는 도로는 찾아볼 수 없었다.

 
▲ 이제 서울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 괴산터미널로 가는 최교현.
ⓒ 이수진
 

동해와 경북에선 '행복', 충북 지날 땐 마음 아팠다

우리의 최종 여행 종착지는 '발바리'였다. '떼잔차질'이 있는 그날(7월 15일) 우리는 서울에 돌아왔다. 서울에는 장대 같은 비가 내렸으며, 30여명의 사람들은 폭우에도 떼잔차질에 나섰다. 자전거에 미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자전거면 충분하다'는 깃발을 휘날리며 도심 한복판에서 내리는 비를 맞고, 가르고, 두 발과 두 바퀴로 페달을 밟는 발바리 사람들. 정말 아름다웠다. 경북과 충북의 산간지방을 돌고 마지막으로 발바리에 도착했을 때 왜 우리가 도로 위에서 이렇게 달려야 하는지 더 강하게 느꼈다. 교통수단으로써 자전거의 존재를 알리는 건 바로 이 도로 위를 달리는 그 순간임을 알았다.

동해안을 달리고, 경북을 달리고, 충북을 다니며 여행의 깊이와 고민이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동해와 경북에서의 여행을 행복, 만끽, 유쾌함으로 표현한다면, 충북을 여행할 땐 가슴에 묵직한 뭔가가 생겨버린 듯하다. 곳곳에서 진행되는 도로건설과 농민들의 한숨을 만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신혼여행을 마쳤다.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동시에 이용한 퓨전 자전거 여행이 끝났다.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을 공간 이동해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에서 보냈고, 우린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자연을 만났으며, 두 바퀴를 굴렸다. 그리고 세상을 보았고, 마음이 아팠고, 그러면서도 감동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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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토피아 함께 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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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se change 상영안내...


 

우리집 앞 골목에서 진행한다..

친구들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대로 퍼 날랐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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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전 직장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전 유럽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연락이 닿았고, 여행경로는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사는곳과 여러 생태공동체와 자전거 여행 네트워크에 닿아있는 곳으로

이어졌다.

 

6년전 만난 영국 친구가 스페인 북부에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지역과 유기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를 꾸려가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연락이 닿았고,

한달여 이상을 머물수 있게되었다.

 

요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그리고 레바논 얘기가 나오면 난 그 때 그 한달이 떠오른다.

스페인에서 웬?? 이 나라들이냐고?? 그곳에는 팔레스타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 일을 하는 이들은 이스라엘 친구 2명, 팔레스타인 친구3, 레바논 친구 1명이 진행했었다. 당시 유럽사회포럼을 준비하면서 전 유럽 순회 연설 및 토론회 같은걸 이 세나라 젊은 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사실난 정치적 사안의 구체적 내용을 잘모르고, 가끔씩 저녁에 난로가에 둘러 앉아 나눴던 수다가 떠오른다. 이스라엘 친구들은 자신들의 병역거부 스토리를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들려줬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그 나라의 문화 등에 대한 얘기로 기억한다. 팔레스타인 친구들은 그 나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다큐를 보여주며 진지하게 팔레스타인 스토리를 풀어냈다. 물론 난 팔레스타인 친구로부터 그들의 전통빵을 화덕에 굽는걸 배우고 그 나라의 여성과 불과 빵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바논 베이루트가 고향인 한친구... 그 친구는 게이다. 그 친구의 패션은 내게 있던 중동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이 깨는 모습이다. 마음이 너무 여린 그친구의 키는 1미터 85를

훌쩍 넘는 아주 잘생긴 친구였다. 덩치도 좋고 키도 큰 그 친구가 내게 제일 배우고 싶어했던 것은 '뜨게질'.. 그곳에 머물면서 함께 뜨게질을 했고, 그친구는 왜 자기가 이곳에 왔고, 자신이 했던 동성애 운동에 대한 것과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심지어 내가 그곳을

떠날때 눈가에 눈물을 비출 정도로...

 

요즘.. 이스라엘의 만행이 펼쳐지고 있고.. 난 다시 그때 그 친구들과의 한달이 떠오른다. 그 나라들은 그 친구들의 눈빛을 상상하며 이해되기도 하고, 투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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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올 여름휴가 에코토피아에서 어떻습니까?

올 여름휴가, 에코토피아에서 어떻습니까? 1999년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몇몇 젊은이들은 생태적인 이상사회를 꿈꾸며 탈중심적인 민주적 캠프를 상상하고 계획했다. 새로운 사회적 가치가 에코토피아의 사회적 가치로 입안되고, 삶의 방식과 생각의 패턴은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기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로 그물망을 깔아놓게 된다. 똥을 되찾자, 시간을 되찾자, 자치와 자율에 의해 구성되는 캠프, 핸드폰을 버리고, 금지하는 것만을 금지하는 자유의 최정점, 성적평등과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거대한 이상과 가치로 채워진 프로젝트가 실험되었었다. 그리고 5년간의 단절... 7년후 지금,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제안된 캠프[에코토피아]의 아이디어를 생각에서 다시 현실로 만나는 일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3-4년 동안 개인들의 자유로운 네트워크로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활동들이 다양하게 펼쳐졌었다. ‘길바닥 평화행동’이 그러하고, ‘도롱뇽의 친구들’이 그러했으며, 최근의 새만금 활동을 한 ‘갯살림’이 그러했다. 누군가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탈 중심적이며 자발성을 근거로 하는 운동방식으로 네트워크 운영의 가능성을 보여준 예이다. 게다가 이러한 활동들은 다시금 [에코토피아]에 대한 발칙한 상상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데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다.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공간이 되며, 어떤 이에게는 실험의 장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쉬어가는 시간이 되며, 어떤 이에게는 논쟁의 공간이 되며, 어떤 이에게는 만남과 교류의 장이되며, 어떤 이에게는 운동적 영감을 얻는 곳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삶을 되돌아보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그런 곳이 우리가 준비하는 캠프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 캠프에서는 개인에게는 자발성이 강조되고, 운영에 있어서는 자치와 민주주의가 그 중심에 놓이며, 프로그램은 다양성과 상호 협동이 중요하며, 회비에 있어서는 에코화폐(현물과 현금이 함께)가 쓰여 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누구에게든 참여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자 한다. 3박 4일로 진행되는 캠프는 나름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되 가능한 한 에너지를 적게 쓰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각자 캠프장소로 모인다. 전체 워크샵은 콩을 이용한 채식요리 워크샵, 자전거 동력으로 축전해서 영화보기, 한밤의 음악회가 있고 그 외에는 참가자가 개별적으로 준비해오는 개별 워크샵으로 모든 꼭지는 채워진다. 예술이 일상이고, 일상이 예술인 공간인 이곳은 참가자들이 자신만의 악기나 미술도구를 챙겨와 잃어버린 감성의 면면을 깨우는 공간이길 기대한다. 우리가 준비하는 캠프 [에코토피아]에서는 여러 가치들의 충돌이 생기거나 혹은 높은 수준의 가치를 주장하는 일들이 생길 것이다. 예를들면, 금연, 금주 등의 원칙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의 가치 충돌이 일상적이 될 것인데 이것은 가치가 가진 원칙보다 서로간의 합의를 이뤄가는 원칙이 더 중심에 놓일 것이다. 캠프의 속살을 더욱 포동포동하게 살찌우고 싶으신 분은 언제든 누구든 환영하며, 캠프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카페와 연락처로 문의 바랍니다. 날 짜 : 2006년 8월 18일~21일(3박4일, 부분참가 가능) 장 소 : 강화도 참가비 : 현물+현금(아직 미정) 연락처 : 02-3141-6950(대항지구화행동), 011-9898-9520(화숙) 카 페 : http://cafe.naver.com/campecotopia.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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