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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7/28
    도덕성과 권력
    하늘소-1
  2. 2005/07/22
    이거, 아주 엽기스럽다.
    하늘소-1
  3. 2005/07/22
    나 같은 사람이 많네
    하늘소-1
  4. 2005/07/19
    정치적 표현
    하늘소-1
  5. 2005/07/18
    도덕성과 저항에 관해
    하늘소-1
  6. 2005/07/12
    없이 산다는 것
    하늘소-1
  7. 2005/07/07
    도끼로 제 발등찍기(1)
    하늘소-1
  8. 2005/07/05
    '연정'(2)
    하늘소-1
  9. 2005/07/04
    심심해서 퍼온 거.
    하늘소-1
  10. 2005/07/04
    익숙해 지기.
    하늘소-1

지방지 만평작가와의 대화

# 내가 보낸 메일(7/29)
 

안녕하세요.

저는 민주노동당대전시당에서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민병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뜬금없이 메일을 드리게 되어 겸연쩍은 면은 있으나 펜레터라고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7월 28일자 충청투데이에 실린 만평을 보았습니다.

저의 뇌리를 스쳐가는 무엇인가가 느껴지더군요.

물론 평소에도 화백님의 만평은 하루도 빼지 않고 잘 보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신문을 구독하거든요. ^-^)

 

그날 만평에 더욱 관심을 가졌던 것은 얼마 전 비슷한 내용을 글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인데 마르쿠제의 '해방론- An Essay on Liberation)입니다.

 

그 중 한 부분을 첨부해 봅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016-574-9881 입니다.

 

 

 

이 사회는 숨 막힐 정도로 많은 상품들을 생산하여 요란하게 내보이면서도 그 희생자들로부터는 생활의 필수품마저 대대적으로 빼앗는다는 점에서 외설적이다.


이 사회는 그 호전적인 영역에서는 모자라는 식량에 독을 넣고 불을 지르면서 그 자신과 자신의 쓰레기통은 꽉꽉 채워 넣는다는 점에서 외설적이다. 이 사회의 정치가들과 연예인들의 말과 웃음, 이 사회의 기도하는 자들, 이 사회의 무지, 그리고 이 사회에 기생하는 지식인들의 지혜도 외설적이다.


외설이란 기존 사회의 어휘에 속하는 도덕적 개념이다.


기존 사회는 고유한 도덕성의  표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이 말을 적용하면서 뜻을 오용한다. 실제로는 음모를 드러낸 채 발가벗고 있는 여자의 사진이 외설적인 것이 아니라 겹겹이 껴입은 제복 위에 전쟁을 통해 수여받은 훈장을 드러내고 있는 장군의 사진이 외설적이다.


또한 히피의 의식이 아니라, 전쟁이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교회 고위 성직자의 선언이 외설적이다. 언어의 치료는 도덕적 기준을 기존 질서로부터 그것에 대한 저항으로 옮길 것을 요구한다. 동일하게 사회학과 정치학의 용어들도 급진적으로 새로운 형태를 취해야 한다. 즉 잘못된 중립성으로부터 탈각되어야 하며, 거부의 관점에서 방법론적으로 또 도발적으로 도덕화되어야 한다.


도덕성은 필연적으로, 원초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다. 비도덕적인 사회의 면전에서 도덕성은 정치적인 무기가 된다. 즉 민중으로 하여금 징병 소환장을 불태우고 국가 지도자들을 비웃으며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교회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펼치도록 몰아가는 효과적인 힘이다.


- 마르쿠제, An Essay on Liberation.

 

# 000의 답 메일(7/30)

 
졸작에 대한 관심 감사합니다.
 
지방지에 만평을 연재하는 입장에서 미처 중앙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을 건들여가면서 철저히 저만의 정체성을 세워나가려고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가 않고, 이러저러한 작가의 인지도상에서의 핸디캡이 있어 때로는 외롭고 때로운 답답하기도 하답니다.
근래, 하이닉스 메그나칩등의 일련의 노동운동이 언론보도상에서 소외되고, 항공사 노조의 파업을 '귀족노조의 땡깡'으로만 치부시켜 분위기를 몰아가는 유력중앙지들의 일련의 행태를 보면서 안타깝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이것이 만평에까지 영향을 미처 '정말 사태의 본질을 파악이나 하고 그리는 것인가' 싶은 만평들이 진보를 자처하는 작가들의 지면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있습니다. 물론 조종사들의 진정성을 우리가 100%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언론이든 만평가든 노조운동을 접근하는 부분에 있어서 '고액연봉/귀족노조'쪽으로만 화두를 잡고 몰아쳐 가는 것을 보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저보다는 님이 더 사실과 본질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것을 아예 그리질 않았습니다. 1%의 오류가 두려웠기 때문이죠. 더구나 지방에서 나날이 터지는 이슈 다루는 것도 다급했구요. 잡설이 길어지는 군요.
님의 메일에 힘을 많이 받았고, 기회가 된다면 쇠주라도 한잔 하면서 외로움을 덜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서울지사 소속으로 근무하면서 서울에서 마감하고 있습니다. 겸사겸사 대전본사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전화한번 드리겠습니다.  
*마르쿠제의 글 잘 읽었습니다. 책도 꼭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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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과 권력

충청투데이 7월 28일자 [설인호의 투데이만평]저게 진짜 음란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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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주 엽기스럽다.

"여성 예비군소대 창설 신고합니다"


(당진=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충청권 첫 여성 예비군 소대가 22일 충남  당진에서 창설됐다.

    전업주부 등 당진지역 여성 45명으로 구성된 당진군 여성 예비군소대가 이날 당진실내체육관에서 창설식을 갖고 본격적인 지역 방위활동에 들어간 것.

    여성 예비군 대원들은 앞으로 연간 6시간의  향방작계훈련(안보교육,  사격훈련 등)을 받으며 향토방위지원 임무와 유사시 응급환자 처치, 기동홍보반, 편의대 운용과 함께 재난발생시 구조지원, 환경보호활동 등 각종 사회보호활동을 맡게 된다.

    이들은 향토예비군 설치법 시행령에 의거 2년 동안 의무복무를 하며 희망시에는 복무를 연장할 수 있다.

    초대 소대장 문선이(47.여)씨는 "대원 대부분이 30-40대 전업주부로 그동안  경찰 포순이 봉사단으로 활동하는 등 지역봉사에 앞장선 이들"이라며 "앞으로  후방지역 안보의식 고취와 함께 해안초소 장병위문 등 향토방위태세 강화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민종기 당진군수도 창설식 축사를 통해 "오늘 창설된 여성 예비군소대가 앞으로 우리 예비군의 전투력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강한 한국', `위대한  당진시'  건설에 전체 당진여성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좋은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현재 여자 예비군 부대는 직장예비군 소대가 창원시청 등 3개 지역에  지역예비 군 소대가 춘천시 남면 등 2개 지역에, 해병대 소속 여자예비군 부대가 백령도와 대 청도에 각각 설치돼 있다.

    cobr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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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사람이 많네

1. 영화 정보사이트 시네티즌(cinetizen.com)을 운영하는 디지털랩이 네티즌 422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76.5%가 자신의 벨소리나 진동이 울린 것 같은 환청을 들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경험은 남성(68.9%)에 비해 여성(82.5%)이, 30d대 이상 성인들보다 10~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2. 전화를 집에 놓고 온 경우 불안한 마음에 다시 가지러 들어간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70.6%가 그렇다고 답해 잠시라도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간이 나면 아는 사람에게 특별한 용무 없이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낸다’고 답한 사람도 30.9%나 됐다.

 

-  이상은 '다음'에서 퍼 온 글

 

나는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이 들때가지 평균 5~6통의 걸려오는 휴대전화를 받는다.  

이 정도면 그 다지 많지 않은 통화량일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언제나 전화벨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운전을 할 때나 사무실에 있을 때나 자주 내 전화기를 들여다 본다. 혹시 전화가 오지 않았었나 하는 마음에.....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실제로 걸려오는 전화도 많지 않은데 말이지.

 

아마도, 선거때 길들여진 탓이 아닐까 한다.

선거때가 되면 하루에 밧데리 2개를 두 번씩 충전하기도 한다. 이뿐이 아니다. 사무실 유선전화 통화까지 친다면 하루 통화량이 엄청날 것이다.

그때의 습관이 선거가 끝나도 계속이어지고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니 상황이 나아질지 만무하겠지.

 

이 쯤되면 산재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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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표현

아래의 글은 하와이 주 의회가 낙태금지법을 폐지하자는 제안을 논의하고 있을 때 호노룰루 신문에 실렸던 글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낙태를 찬성하고 있을까요 반대하고 있을까요?

 

"귀하:

 

귀하께서는 저에게 낙태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지지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답변 드립니다.

 

만일 귀하께서 낙태라는 말로 의미하시는 바가 아무 방어 능력도 없는 인간을 살해하는 일이고, 이 나라의 가장 어린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고, 아무런 목적도 바램도 없는 젊은이들의 성적인 문란만을 조장하는 일이고,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를 막는 일이라면, 저는 하나님께 맹세코 낙태에 반대하는 일에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귀하께서 의미하는 낙태가 인종과 피부색과 성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일이고, 절망과 좌절에 빠져있는 여자들을 먹이로 삼고 있는 부도덕하고 사악한 제도를 폐지하는 일이고, 우리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권리를 행사는 일이라면, 저는 애국자요 인도주의자의 한 사람으로서 약속하거니와 어떠한 설득에도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저 같은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의 입장은 확고부동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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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과 저항에 관해

   이 사회는 숨막힐 정도로 많은 상품들을 생산하여 으란하게 내보이면서도 그 희생자들로부터는 생활의 필수품마저 대대적으로 빼앗는다는 점에서 외설적이다.

 

이 사회는 그 호전적인 영역에서는 모자라는 식량에 독을 넣고 불을 지르면서 그 자신과 자신의 쓰레기통은 꽉꽉 채워 넣는다는 점에서 외설적이다. 이 사회의 정치가들가 연예인들의 말과 웃음, 이 사회의 기도하는 자들, 이 사회의 무지, 그리고 이 사회에 기생하는 지식인들의 지혜도 외설적이다.

 

외설이란 기존 사회의 어휘에 속하는 도덕적 개념이다.

 

- 마르쿠제, An Essay on Liberation



기존 사회는 고유한 도덕성의  표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이 말을 적용하면서 뜻을 오용한다. 실제로는 음모를 드러낸 채 발가벗고 있는 여자의 사진이 외설적인 것이 아니라 겹겹이 껴입은 제복 위에 전쟁을 통해 수여받은 훈장을 드러내고 있는 장군의 사진이 외설적이다.

 

또한 히피의 의식이 아니라, 전쟁이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교회 고위 성직자의 선언이 외설적이다. 언어의 치료는 도덕적 기준을 기존 질서로부터 그것에 대한 저항으로 옮길 것을 요구한다. 동일하게 사회학과 정치학의 용어들도 급진적으로 새로운 형태를 취해야 한다. 즉 잘못된 중립성으로부터 탈각되어야 하며, 거부의 관점에서 방법론적으로 또 도발적으로 도덕화되어야 한다.

 

도덕성은 필연적으로, 원초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다. 비도덕적인 사회의 면전에서 도덕성은 정치적인 무기가 된다. 즉 민중으로 하여금 징병 소환장을 불태우고 국가 지도자들을 비웃으며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교회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펼치도록 몰아가는 효과적인 힘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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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산다는 것

얼마 전 한 당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새로이 직장을 옮기게 되었는데 공무원자리라고 했다.

그래서 탈당을 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그분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었는데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니

그 공무원 자리라는 것이 시에서 운영하는 시설의 경비원자리였다.

 

탈당을 시켜달라는 내용을 듣고 있자니 '아직도......'라는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 분의 입장에서는 어찌되었건 시에서 운영하는 곳에 시에서 직접 발령을

받아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공무원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하다. 그리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별정직 공무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한다.

 

또, 예전에 공무원이면서 민주노동당 당원인 것이 들통(?)나 면직된 다른 지역의

경우를 얘기하시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후원을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없는 서민이

민주노동당 지지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이틀 전인가에 중앙당 홈페이지에서 본 기사 중 민주노동당 당우라는 이유로

해직된 분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 생각이 난다.

 

아직도 강고한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

아직도 신분과 경제적 상황에 따라 정치적 신념과 활동에 억압을 받는 상황.

아직도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못한 현실을 반증해 주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현실.

아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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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로 제 발등찍기

누군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쓰려고 로그인을 했단다.

 

그런데, 로그인이 되지 않아 옆 자리 사람에게 안되는 이유를 물었다.

 

옆 자리 사람은 회원가입을 먼저 한 후 로그인을 하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회원가입을 하고 로그인을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번에는 글쓰기 권한이 없다고 한단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다시 옆 자리 사람에게 물었다.

 

옆 자리 사람은 게시판 관리자가 글쓰기 권한을 올려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열을 내기 시작한다.

 

로그인 하면 되지 무슨 글쓰기 권한은 왜 필요하냐고 성질을 부린다.

 

그런데 그렇게 하자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목에 핏대 세워가며 주장했던 이가

 

바로 그 '성질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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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

노무현이 한국정치도 연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시기도 아주 묘하다.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 국방장관 해임안 반대처리를 하고,

방위사업청이라는 것을 만든 직후 나왔으니,

이를 두고 '오비이락 -烏飛梨落 '이라고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민주노동당내에의 의견을 언론에 나온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연정불가'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심상정의원의 말과 비교해서 노회찬의원의 발언은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이 느껴진다. 비록 노회찬의원이 여당에서 받을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연정불가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라고

누군가 말을 했다지만 내가 받는 느낌은 두 사람의 발언이 다르다.

 

예전에, 2002년 대선 직전이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이번 대선에서 최소 9% 정도만 얻어도 민주당쪽에서 연정을 제안해

오지 않겠나, 최소한 노동부장관 하나는 떼주지 않겠어!'라고......

 

그 때의 기억을 상기한다면 글쎄.........

당내에 연정가능론자들이 아주 없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 발언을 했던 사람은 당시 당내에서 주요당직을 맡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연정이라는 말을 제대로 쓰려면 내각제가 되어야 할 것인데

그렇잖아도 행정수도 이후 개헌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예전과 같이 '대통령제 고수'로 갈 것인가 아니면 '내각제 개헌'으로 갈 것인가?

 

궁금해 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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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퍼온 거.

오늘자 '스포츠칸'에서.....

 

73년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미래를 위하는 방법이다.

 

별 탈 없이 잘 놀았던 장소가 좁게 느껴지니 변화를 주어야 하는 시점이다.

 

♠ 애정○ 금전× 건강△



예전에는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거의 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힐끗힐끗 처다보기도 하고

특별히 심난한 날은 자세히 들여다 보기도 한다.

 

사회주의 운동한다는 사람이

변혁운동한다는 사람이

그런 통계스럽지 않은 통계를 들여다 보며

마음의 안식을 찾거나 다른 구멍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지

 

그리고 얼마나 현실을 치열하게 살지 못하면

다른 생각을 하고 무엇인가에 기대려 하겠는가 하는 자책도 든다.

 

그래도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된다.

 

요즘 내 마음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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