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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0/21
    사랑의 위대함
    흑무
  2. 2009/10/21
    지배자
    흑무
  3. 2009/10/21
    익숙한 사이
    흑무
  4. 2009/10/21
    미워하기에는 너무 짧다
    흑무
  5. 2009/10/21
    친밀함
    흑무
  6. 2009/10/21
    좋은 사람
    흑무
  7. 2009/09/21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흑무
  8. 2009/09/18
    결혼과 인내
    흑무
  9. 2009/09/04
    홍세화의 수요편지 - 자유인인가, 마름인가
    흑무
  10. 2009/09/04
    눈물 속에 잠이 들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흑무

사랑의 위대함

사랑의 위대함

그대가 지금 육중한 운명의 바퀴 밑에
깔려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큰 그릇이 될 인물에게는
반드시 큰 시련을 먼저 주는 법이니,
기꺼이 감내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숙성시켜라.

그러면 언젠가는
그대를 짓누르고 있는 운명의 바퀴를
그대 스스로 내던질 수 있는 힘을 배양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또 다른 운명의 바퀴 밑에서
신음하는 자들을 구출하고
만인에게 사랑의 위대함을 증거하는
역사(力士)로 성장하게 되리라.


- 이외수의《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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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자

지배자


인간은 내적으로 자유롭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있으면,
즉 자기 중심을 가지고 서 있으면,
어느 누구에게서도 상처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어느 누구도 그를 지배하지 못한다.


- 안젤름 그륀의《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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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사이

익숙한 사이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가 중요하고, 사람을 사귈 때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누구나 다른 사람이 침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선을 넘으면'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익숙해질수록 상대방을
새롭게 바라보고
배려해야 한다.


- 사이토 시게타의《유쾌한 카리스마》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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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기에는 너무 짧다

미워하기에는 너무 짧다


절대 내놓지 못하겠다며
움켜쥐고 있는 것은 없을까?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미워하는 사람은 없을까?
절대 질 수 없다며 질투하고 경쟁하는 대상은 없을까?
한여름밤에 꾸는 짧은 꿈일지도 모르는 생.
미워하기에는 너무 짧다. 욕심만 채우며
질투하고 경쟁만 하며 살기에는
너무 짧다.


- 송정림의《명작에게 길을 묻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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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

친밀함


나는 타인과의 친밀함을 좋아한다.
그것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그 동안의
말 못할 상처들로부터 해방되고, 나 또한 누군가의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 주는 친밀함.
비록 상처를 준 사람이 바로 당신일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는 믿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함'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 곽효정의《페페의 필름통》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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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좋은 사람


영국 중세문학의 최고 권위자이며
유명한 석학이었던 매클레인 선생님은 답사에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자신이
이제껏 들은 그 어떤 찬사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말이라고
했다. 아직 이십대였던 나는 그때 '좋은 사람'의 의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좋은 사람'은 특징 없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나는 새삼 '좋은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누구의 마음에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지 깨닫기 시작한다.


- 장영희의《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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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바라보기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때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이 겪고 있는 행복이나 불행을
남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행복과 불행에
휩쓸리지 않고 물들지 않습니다.


- 법정의《일기일회(一期一會)》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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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인내

결혼과 인내


결혼은 사실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십자가를 지는 체험이지요.
나는 당신이, 자신을 압박하는 필연적인 운명에
대항해서 싸우기보다는 인내를 배우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당신은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 융C. G. Jung의《사랑에 대하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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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의 수요편지 - 자유인인가, 마름인가

젊은 벗에게,

   일곱 명의 고대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이 내려진 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수구신문들은 교수들을 ‘감금’한 학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은 당연한 일이라는듯 주장하기도 했습니다만, 방송을 중심으로 ‘감금’한 게 아니라 ‘붙잡거나’, ‘앞을 막았다’라고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감금’이든(구체적으로 어떻게 감금했는지?) ‘붙잡거나’ ‘앞을 막았건’, 학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이 학교 당국의 자발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

   19세기에 자유정신의 확산을 우려한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대학을 폐쇄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엔 그럴 필요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대학은 산업’이 되었고, 대학 당국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마름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중고에서는 여전히 국가주의 이념에 충실한 마름이어야 교장, 교감이 될 수 있는데, ‘산업’이 된 대학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마름이어야 총장이 될 수 있고 또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주의 이념의 마름이든, 신자유주의의 마름이든, 교육자이기를 포기한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마름의 속성은 ‘자발적 복종’에 있습니다. 16세기에 18세의 젊은 나이로 ‘자발적 복종’이라는 문제작을 쓴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다. 이에 비하면,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

   저도 개인적으로 대학에서 제명 처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학적부에서 ‘이름을 없앤다’라는 뜻의 ‘제명’ 처분과 ‘출교’ 처분이 거의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침묵을 강요당했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독재 권력에 항거하자는 내용이 담긴 선언문을 작성하여 교내에 뿌렸다는 이유로 검거되고 중앙정보부와 대공 분실에 ‘감금’되어 조사받은 뒤에 풀려났는데, 곧 학교 당국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저에 대한 제명 처분을 알려주려 함이었습니다. 그 때 학교 당국자는 제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학교는 권위주의 독재 권력의 요구를 거역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자발적으로 학생들을 억압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의 말을 인용한 이유가 이 점에 있습니다. 과거보다 오늘날의 마름들이 ‘자발적 복종’에 더 적절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민주화된 시대’는 신자유주의와 결합되어 ‘마름들의 시대’가 된 듯합니다. 마름들이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대상이 자유인입니다. 고대생들에 대한 출교 처분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내면화한 마름들이 자유인들을 억압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다시금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의 말을 인용해 봅니다.

   “많은 선 가운데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 있다. 그것은 자유이다. 우리가 만약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곳곳에 악이 창궐하며 남아 있는 다른 선에서도 어떠한 맛과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자발적 복종’은 모든 것을 망가뜨리며 자유만이 유일하게 선을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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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정리하다 발견한 2006.05.24자 [홍세화의 수요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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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속에 잠이 들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눈물 속에 잠이 들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눈물 속에 잠이 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존재들이 나를 위로하고
즐겁게 해주어서, 나는 늘 새로운 기분과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괴테)


- 스티븐 라버지의《루시드 드림》중에서 -

 

요즘 꿈을 너무 많이 꾼다. 자고 일어나면 잠을 안잤다고 느껴질 정도.  왜 그럴까.

예전에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연금술사에 보면, 꿈이나 기타 등등 으로 우리에게 영감 혹은 길을 보여준다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자꾸 외면하니 결국에는 그 영감이나 반짝임이 사라지는 거라고 하잖아. 궁금해, 외면 안하면 뭘 보여줄지.. ' 라고 했었는데 그 뒤로 겁내 꿈을 꾼다. 겁이 많은 나는 '내가 그렇게 말해서 그런가.. ㅠ_ㅠ 자꾸 뭘 보여주려는 건가...' 하며 겁내하기도 하지만..

 

내일부터 만나는 꿈 속 주인공들을 다시 살펴봐야겠다.

 

참, 내 후배의 이야기. 그 친구는 늘 피곤해했다. 왜 그리 피곤할까.. 하다 늘 피곤한 이유 중 하나로 우리는 꿈을 꼽았다. 매일매일 꿈을 꾸는데 꿈이 우주전쟁, 지구전쟁이란다. 그래서 힘들단다.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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