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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5
    동반자
    흑무
  2. 2009/07/08
    재물무상 - 경향 09.07.07
    흑무
  3. 2009/07/08
    이삭줍기- 경향 09.07.07
    흑무
  4. 2009/06/30
    예배당 가는 길-문송면 君을 기억함
    흑무
  5. 2009/06/29
    2009.3월 말 산업재해 발생현황 - 노동부통계
    흑무
  6. 2009/06/29
    행복한 하루
    흑무
  7. 2009/06/26
    어떤 백혈병 - 한겨레
    흑무
  8. 2009/06/26
    성평등의 경제학 - 09.06.25 경향
    흑무
  9. 2009/06/25
    배려
    흑무
  10. 2009/06/25
    멋진 공동체
    흑무

동반자

동반자


동반자와 함께 출발하려면
동반자의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찡찡대는 사람, 습관적인 염세주의자,
무원칙한 동정주의자, 자의식이 강한 사람,
유행을 좇는 사람은 동반자로 적합하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여행을 지루한 고행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현실적이고 열린 가슴을 지닌 사람을 동반자로 택하라.
현실적이면서도 열린 가슴!
이는 당신도 꾸준히 키워가야 할 미덕이다.


- 롤프 포츠의《떠나고 싶을때 떠나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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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무상 - 경향 09.07.07

[여적]재물 무상 


 김태관 논설위원

 

의롭지 않은 재물은 끓는 물 위에 뿌려지는 눈(雪)과 같다고 한다. 그것으로써 누리는 영화는 아침에 이는 구름, 저녁에 지는 꽃처럼 허망하다. <명심보감> 성심(省心)편에 보이는 표현이다. 재물은 무상(無常)하다. 땀흘려 쌓은 부라고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 부자가 삼대 가기 어렵다고 하지만 당대에서 몰락하는 경우도 숱하다. 재물이 얼마나 뜬구름 같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옛 이야기가 있다.

120간짜리 사랑채를 쓰며 떵떵거리던 부자가 죽어서는 꽃상여도 못타고 떠나갔다. 기막힌 몰락의 주인공은 일제시대 때 전남 강진 출신 갑부 김충식이다. 4만석의 재력가인 그는 1930년대 경제계를 쥐락펴락했던 걸물이었다. 당시 세간에서는 “조선의 돈줄은 두 식(植)자가 쥐고 흔든다”고 입방아를 찧었는데, 화신백화점의 박흥식과 김충식이 그들이다.

김충식의 재운(財運)은 타고났던 것 같다. 미두와 골동품, 토지, 증권 등 손을 대는 대로 족집게처럼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가 거부를 일군 것은 운 덕분만이 아니었다. 무학(無學)인 그는 20세 때 상경하여 종이장사를 하며 한푼 두푼 모으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학교 대신 시장에서 몸을 굴리며 이재에 눈을 뜬 것이다. 돈이라면 그는 동물처럼 달려들었고, 남들과의 송사도 마다 안했다. 일단 돈을 쥐면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얼마나 구두쇠인지 “정월 초하룻날 엽전 한 닢을 손에 쥐면 그 이듬해 초하룻날까지 쥐고 있더라”는 풍문이 떠돌 정도였다.

그렇게 모은 재산이지만 잃는 데는 한 세대도 걸리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때 쌀을 매점해 일제에 밉보인 탓이 컸다. 첫 아내와 사별한 뒤 네번이나 안방주인이 바뀐 가정의 불행도 한몫했다. 말년에 무의무탁한 김충식은 객지에서 병사해 상여조차 못타고 저승길로 떠났다. 고래등 같았던 120간짜리 집은 6·25 때 불에 타 사라지고 재산도 구름처럼 흩어졌다.

재물은 하늘이 잠시 내게 맡긴 것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맡겨졌던 재산 331억원이 사회에 돌려졌다. 본래 내 것이 아닌 재물을 내 것인 양 움켜쥐려는 것은 부질없다. 갑부 김충식은 엽전 한 닢도 놓지 않으려 했지만 하늘이 거둬가니 도리가 없었다. 재물을 부둥켜안으면 재앙이 앗아간다. 이것은 옛날 얘기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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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줍기- 경향 09.07.07


[손홍규의 로그 인]이삭줍기


요즘 같은 시절에 관에서 하는 말을 믿고 수돗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분들은 없으실 게다. 수돗물만 그런 게 아니다. 몇 해 전부터는 고향에서도 지하수를 그냥 마시지 않는다. 마을 뒷산 중턱에 아스팔트 도로가 생기면서 수질이 심각하게 나빠진 탓이다. 그게 아니었더라도 수십 년 동안 스며든 농약 때문에 이쯤이면 그리 되었으리라. 서울생활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생수를 사먹는 걸 보고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물을 사먹다니! 지금은 나도 사먹는다. 그보다 놀라운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때마다 차림표를 유심히 살피곤 했다. 어딜 가나 공기밥 추가에 1000원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를 테면 4000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으면, 그 가운데 밥 한공기가 3000원, 나머지 찌개며 반찬 따위가 1000원쯤 될 거라고 셈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억울했다. 4000원 가운데 겨우 1000원이라니. 어린 시절 추수가 끝나도 나는 들판을 떠나지 못했다. 밀레의 그 유명한 그림처럼 허리가 똑 끊어질 때까지 이삭을 주웠다. 더는 낱알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사위가 어두워져서야 들판을 떠날 수 있었고 그때 내가 손에 쥔 이삭은 한 줌에 불과했다. 밥 한 톨이라도 흘렸다가 주워 먹지 않으면 밥상머리에서 한참이나 보릿고개 운운하는 훈계를 들었다. 반발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삭 좀 줍지 않는다고, 밥 한 톨 흘린다고 굶어죽는 건 아니잖은가. 그러나 막상 내가 벌어 내 돈으로 밥을 사먹어야 할 때가 되자, 앞선 세대의 두려움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듯싶었다. 밥 한 공기 추가에 1000원일 뿐인데도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살다보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어느 도의 교육위원이란 분들이 급식비를 삭감하셨던 모양인데, 그렇게 폭력적으로 세상살이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게 된다. 이삭을 줍고 살아도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걸. 당신들이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 배워왔듯이. 모질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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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가는 길-문송면 君을 기억함

예배당 가는 길-문송면 君을 기억함

 

                                    박현덕

 

빗방울이 얼굴 때린다 만장도 훌쩍거리고
장의차에 실려진 소년의 마지막 모습
모두들 회사 정문에서 노제를 지켜 본다

 

 

온도계부 수은 주입실 굵은 가래 내뱉으며
흐릿한 연기들이 빠져나가는 잠깐 동안
뜨끈한 사거리 국밥집과 야학 교실을 떠올린다

 

 

일요일 아침 철야하고 예배당 가는 길
신나 취해 가랑잎처럼 흔들흔들 걸어간
소년의 축 처진 어깨 성경이 끼어 있다

 

 

예배당 구석 앉아 풋잠을 자다가 문득
전신을 도려내는 통증에 고개 드니
툭, 툭, 툭 한 세상 아픔이 물음표를 던진다

 

 

출처 : 노동 현장의 시조, 김주석, 오마이뉴스, 2007.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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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3월 말 산업재해 발생현황 - 노동부통계

1. 산업재해 발생현황

○ 총 괄

구 분

2009.3월말

전년 동기

증감

 

증감율(%)

○ 사업장수(개소)

1,500,284

1,407,569

92,715

6.59

○ 근로자수(명)

13,389,954

12,944,059

445,895

3.44

○ 재해자수(명)

21,509

22,343

-834

-3.73

․업무상사고자수

19,746

19,815

-69

-0.35

․업무상질병자수

1,763

2,528

-765

-30.26

- 사망자수

540

636

-96

-15.09

업무상사고 사망자수

340

365

-25

-6.85

업무상질병 사망자수

200

271

-71

-26.20

○ 재 해 율(%)

0.16

0.17

-0.01

-5.88

○ 사망만인율

0.40

0.49

-0.09

-18.37

- 사고 사망만인율

0.25

0.28

-0.03

-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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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하루

행복한 하루


살아보니 행복이란 별난 게 아니었다.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아껴주는 누군가와
기분 좋은 아침을 맞는 것, 이것이 진짜 행복이다.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하라!
행복한 아침은 행복한 하루,
행복한 하루는 행복한 일생이 된다.


- 차인태의《흔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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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백혈병 - 한겨레

   [세상읽기] 어떤 백혈병 / 이계삼

»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8년 전의 일이다. 내가 담임을 맡은 반에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늘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개인용 식판을 따로 썼다. 큰 병을 앓는 아이를 둔 집안들이 그러하듯 몹시 가난했다. 감기만 걸려도 아이는 응급실로 실려 갔고, 무균실에 며칠씩 갇혔다가 회복되면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는 정이 그리웠으므로 마스크 뒤에서 언제나 웃으려 했고 늘 아이들에게 뭔가를 주려 했지만, 자주 외면당했다. 이 아이를 우리 반의 일원으로 자리 잡게 하려는 어설픈 노력으로 알게 된 것은 열네 살 소녀의 생에 깃든 깊은 슬픔이었다. 이를테면, 아이가 품고 다니는 연필 스케치 그림 속 소녀들은 무균실에서 함께 지내다 죽은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백혈병이란 드라마에 나오듯, 머리에 뒤집어쓴 털모자 하나로 표현되는 외상 없는 질병이 아니라, 집안 살림을 결딴내는 어마어마한 치료비와 항암 치료, 구토, 탈모, 응급실과 무균실,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의 지옥 같은 초조함 따위의 캄캄한 기억의 덩어리들이다.

황유미, 이숙영, 황민웅, 이 세 사람의 이름을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들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였고, 모두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죽었다. 10만명에 3.7명꼴로 발생한다는 이 희귀한 병이 한 기계를 놓고 짝꿍으로 일했던 20대 초반의 두 여성과 그 라인의 유지 보수를 담당한 엔지니어에게 발병했고, 이후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에 접수된 발병 사례만도 22건이다.

재발한 병으로 몸도 못 가누면서도 억대에 가까운 치료비로 노심초사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던 황유미씨는 결국 스물셋에 죽었다. 투병중이던 황민웅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코 둘째의 출생신고를 했고, 얼마 뒤 죽었다. 지난 5월19일, 이들 세 사람을 포함한 삼성 백혈병 피해 노동자와 유가족들이 집단으로 제출한 산업재해 신청은 전원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그들이 작업중에 들이마시는 수십 종의 화학물질의 존재도, 내과학(內科學) 교과서에도 나온다는 백혈병과 화학물질의 명백한 상관관계도, 직접적 증거 없이 간접적으로라도 ‘상당인과관계’가 성립되면 산업재해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소용없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은 우연이었다. 억대의 치료비도, 죽음 앞에 선 자의 산더미 같은 고통도 슬픔도 결국 각자의 책임이었다. 산재 신청을 하겠다는 황유미씨의 아버지에게 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님, 삼성을 이기려고 하십니까? 이길 수 있으면 이겨보세요”라고.

그리고 열흘 뒤인 5월29일,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지던 바로 그 시간, 연매출 200조원대의 거대 기업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고작 16억원의 세금밖에 내지 않은 기상천외한 사술은 대법원에 의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모든 것이 절묘했다. 6 대 5의 아슬아슬한 판결, 태산 같은 사퇴 압력을 버텨내시고 끝내 그 한자리를 지켜 주신 신영철 대법관님, 그 판결이 끝나고 나니 슬슬 신 대법관에게 물러나라는 뜻을 내비치시는 이 사건 1심 재판 삼성 쪽 변호인 출신의 이용훈 대법원장님.

나는 이 글을 야간자율학습이 한창인 우리 반 교실에서 쓰고 있다.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땅으로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도덕, 최소한의 정의마저 쓰레기통에 처박힌 나라에서, 아이들은 이 가파른 삶의 한쪽 벼랑에라도 뿌리내리고자 환한 불빛 아래 공부라는 것을 한다.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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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의 경제학 - 09.06.25 경향

[정태인칼럼]성 평등의 경제학

 

 

 

“참 많은 반대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설득을 하셨나요?” 심상정 전 의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노르웨이 ‘아동 성 평등부’ 아르니 홀레 국장의 활기찬 설명으로 방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출산 전후에 부모 합쳐서 52주의 휴가, 그것도 월급의 80%를 지급하는 조건의, 부럽기 그지없던 법률도 그새 바뀌어서 7월1일부터는 56주란다. 과거에는 휴가를 준다고 해도 외면하던 젊은 남성들이 이젠 95%가 10주의 ‘출산휴가’를 즐기고 덕분에 출산율은 1.96으로 뛰어올라서 대체율(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로 노르웨이에서는 2.1)에 거의 다다랐다.

출산율 끌어올린 노르웨이 정책

그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실천이 요원한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문제는 이미 옛이야기란다.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노동을 해도 여자·남자의 임금이 서로 다르고,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반밖에 안되는 우리 처지에서 볼 때 노르웨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은 경이로웠다.

‘평등과 반차별 옴부드’(LDO)의 모니카 혹스 자문관에 따르면 노르웨이에서는 같은 고용주 아래서 간호사와 의사가 같은 수준의 관리자(예컨대 수간호사와 내과과장)가 되었을 때, ‘동일가치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적용하는 문제로 다투고 있다. 설령 시장에서 결정된 임금이라도 여성 위주의 시장과 남성 위주의 시장은 이미 성 중립적이지 않은 상태이니 차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안은 몇가지 사례를 놓고 지금 논쟁 중이지만 그의 말대로 ‘혁명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설마 반발이 없었을까? 홀레 국장의 대답은 단 한 마디였다. ‘생산성’ 즉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 전 사회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사실로 모두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기를 “그래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통계로 노르웨이의 생산성이 미국보다 20%가량 높다”고.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두 개의 그래프가 바로 떠올랐다. 한 나라에 100명의 여성과 100명의 남성이 살고, 둘의 생산성은 똑같은 분포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여성이건 남성이건 1, 2, 3, 4, …, 100에 이르는 생산성을 가진 사람이 한 명씩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남성만 고용한다면 그 나라의 평균 생산성은 50이다. 만일 성평등의 원칙에 따라 상위 50%의 남성과 상위 50%의 여성을 고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평균 생산성은 75로 뛰어오르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생산성 높이는 여성 경제활동

그럼 아이들은 누가 볼 것인가? 그래서 1년이 넘는 유급 출산 휴가를 부부에게 주고 여섯살까지는 전문 인력이 사실상 무료로 육아를 100% 책임진다. 이런 사회복지의 재원이 바로 높은 생산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공기업 이사회의 17%였던 여성 비율을 2년 만에 41%로 끌어 올리고 이제 민간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도 같은 수준으로 높이는 협약을 맺은 노르웨이의 비결은 간단하다. 남녀 간의 생산성 분포가 동일하다고, 즉 잠재력이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또 증명한 것뿐이다. 그래서 당연히 남성들도 행복하다.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높은 생산성 덕에 전체 고용이 늘어났으니 ‘여성의 천국’만이 아니라 노르웨이 국민 스스로 자부하듯 아이들을 필두로 ‘모두의 천국’이 된 셈이다. 우리의 난제 중 난제인 출산율 저하와 교육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다행히 우리의 여성 교육 수준은 이미 세계 최고다. 우리의 미래는 여성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괜한 삽질 좀 그만 하고….

<정태인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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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배려



당신에게 선의를 가지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 백이 있어도
그대 맘을 알아보고 그대에 맞게 배려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랑이 아니라면
당신은 그들의 사랑에 상처 받으리.


- 유성용의《여행생활자》중에서 -

---- 아쿠. 그림이 예쁘다. 나도 이렇게 그림을 그릴줄 알면 좋겠다. 쓸 곳이 매우 많을 것 같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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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공동체

멋진 공동체


어렸을 때
아주 멋진 공동체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공동체에 들어가 그곳의 일부가 된다.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육체적, 감정적,
정신적인 부분을 응원하고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만약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그들은 나의 짐을
함께 져줄 것이다.


- 엘리너 와일리의《내 인생과 화해하는 법》중에서 -

 

------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이 공간, 이 공동체가 나와 다른 동지들을 응원하고 지탱하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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