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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3
    요즘(5)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7/07/19
    기억력(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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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7/07/04
    노조 게시판에 올린 글(11)
    손을 내밀어 우리
  4. 2007/07/02
    2000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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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6/26
    [가문비] 문자메시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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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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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6/1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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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06/05
    아침밥상 위에서 과학기술정책을 논하노라?(2)
    손을 내밀어 우리
  9. 2007/06/05
    나도 이벤트에 되는구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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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7/05/23
    공짜 전화기(4)
    손을 내밀어 우리

요즘

1. (반찬)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뭘 먹이지 하는 게 고민이다.

냉장고나 김치냉장고, 뒷베란다의 선반에는

갖가지 밑반찬과 음식재료들이 저장되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취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아주 까다로운 반찬을 원하는 것은 아니니까 다행이기는 하다.

두부, 감자, 김치, 계란, 때로 생선이나 쇠고기, 돼지고기를

간단하게 조리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이 된다.

 

문제는 같은 반찬을 두번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끼니마다 새로 만든 반찬을 한두가지씩만 먹는다.

아침에 아무리 맛있게 먹었던 반찬도 점심때면 손사래를 치고,

된장찌개나 국은 처음 끓였을 때만 먹는다.

 

적어도 점심은 학교급식으로 해결하는 평소와는 달리

방학은 하루 세끼 반찬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말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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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내용은 덧붙여서 쓰거나 기분 내키면 따로 쓰거나....

 

2. (복지센터  비정규직 투쟁)

 

3. (가칭) 충청노동뉴스

 

4. (우리 노조 선거)

 

5. (당 내부경선)

 

 



2. (복지센터 비정규직 투쟁)

반찬 못지 않게 고민이 되는게 이것이다.

나야 고민만 하는 것이지만 담당한 사무처 동지들은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들 하고 있어서

미안하기까지 하다.

집행부도 없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겠는가.

 

사연인 즉은,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라는 곳이 있고 그 부설기관으로 복지센터라는 곳이 있다.

전민동과 도룡동 두 곳에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고 보육사업(어린이집)도 하고 있다.

이곳에는 우리 노조 지부가 있고 그 지부는 정규직과 계약직(어린이집 교사 포함)

60여명이 조합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봄부터 스포츠센터에서 일하던 강사들이 우리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찾아왔다.

비정규직 조합원은 해당 사업장지부로 조직한다는 것이 우리 노조의 방침인데,

소위 정규직지부가 비정규직 강사 조합원들을 책임질 수 없다고 본부로 떠민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이 비정규직 강사조합원들은

(수영강사, 헬쓰강사, 스쿼시강사, 골프강사....)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복지센터분회라는 긴 이름으로 조직되었고,

사측의 이른바 경영합리화 방안에 맞서서 투쟁을 본격적으로 벌이게 된다.

 

이들의 노동조건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자.

 

"저희는 지난 수년간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에 대해 무지하게 살아왔습니다.

 

매달 바뀌는 급여일 때문에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것이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하루에 12시간, 일주일에 60시간 가까운 힘겨운 노동시간을 수당 한번 받지 못한 채 지내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생리기간 중 물속에 들어가고, 체련장을 오가면서도 그것이 여성노동자라면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남들이 일하는 월요일에 휴일을 갖고, 휴일은 당연히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근로계약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사소한 실수로 옆의 동료가 쫓겨나가도 그것이 부당하다고 말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욕설과 인격을 모독하는 언사에도 그저 침묵하고 참아왔습니다.

 

연구단지 다른 연구소의 경우 수개월만 일을 해도 가입되어 있는 고용보험은 물론이고,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사용자는 마치 자랑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 강사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통보받지도 못했고 그래서 모든 것을 자비로 처리하기가 일쑤였으며, 어쩌다 사용자로부터 소액의 돈을 지급받는 것도 미안해해야 했습니다. "(6월 26일일 복지센터 기자회견문)

 

이런 강사조합원들에게 복지센터 소장(허태정)은

스포츠센터의 적자운영구조를 개선하고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강사들 전원(33명)을 아웃소싱하겠다고 했는데,

그러한 사측의 방안이 마련된 날짜가 지난 6월 4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추진일정이 가관이다.

6월 13일 직원설명회

6월 20일 근로자대표 간담회

6월 27일 외주업자 사업설명회

6월 28-29일 외주업자 선정

7월 업무인수인계

8월 1일 외주업자 업무개시

 

허허허, 아웃소싱 계획을 마련하고 직원설명회를 개최한 후 불과 15일만에

외주업자를 선정하겠다는 이 광랜속도의 구조조정 계획이라니!

 

3천여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일제히 반대서명에 참여하고

복지센터분회는 중식집회와 선전전을 중심으로 투쟁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감행된 외주업자 설명회는 자발적인 회원들(주로 주부들) 150여명이 몰려가서

사실상 복지센터 사무실을 마비시킴으로써 무산되었고,

급기야 7월 12일에 충남지노위의 중재로

"사용자는 강사조합원의 고용문제(아웃소싱)를 포함한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한다.

 단, 교섭은 주1회 이상 실시한다"는 합의서를 작정하였다.

 

그래서 단체교섭은 잘 되었느냐?

7월 20일 1차 교섭: 교섭원칙 합의, 노동조합의 요구안 제출. 사용자측 아웃소싱부터 논의하자.

7월  23일 2차 교섭: 교섭기간중의 일방적인 근무변경지시로 논란.

7월 27일 3차 교섭: 이른바 경영합리화방안의 근거에 대한 토론을 벌였으나 사측은 노조측의 추궁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도 못하면서 아웃소싱 강행의지를 피력함.

7월 30일 4차 교섭: 사측은 아웃소싱에 대한 노조의 동의만을 요구했고, 교섭 결렬.

 

7월 31일에 충남지노위에 조정신청을 하였고, 17명 조합원 전원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한 상태이다.

 

문제는,

현재의 우리 노조 (임시집행부)상임위원장은 이 기간 동안에

정규직 지부의 입장에 서서 강사조합원들의 투쟁을 좌초시키려 시도하였고,

복지센터정규직지부는 사실상 사측의 입장에 서서 강사조합원들을 탄압해 왔다는 것.

특히 교섭과정에서 정규직지부의 전직 지부장이 사측의 교섭위원으로 들어와서

강사조합원들의 아웃소싱계획에 대해서 정규직지부가 이미 사측과 합의해주었기 때문에

합법적이라고 강변까지 하더라는 것.

그리고 파업을 앞둔 지금

정규직지부의 부지부장이 우리 노조 선거에 사무처장으로 전격 출마했다는 것,

이러한 일련의 난맥상으로 인하여

복지센터 강사조합원들의 투쟁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소수만의 투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사조합원들의 투쟁열기는 대단히 높고(도중 이탈자가 있기는 했지만)

파업에 들어가면 전민동 수영장은 그대로 마비될 정도로 일정한 파괴력이 있고,

주부 회원들의 지원과 격려,

우리 노조 일부지부일망정 열심으로 함께 하는 동지들 여럿 있고,

지역의 장기투쟁하는 동지들의 연대가 큰 힘이 되고 있으니,

절대로 호락호락하게 사측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내가 이 투쟁에서 맡은 역할은 교섭위원이고,

집회의 단골참가자이며,

강사조합원들과 술벗이 되고 말벗이 되는 것 정도이지만,

날마다 고민하고 또 배우고 하고 있다는 얘기올시다.

 

사진 포함해서,

현장의 시시콜콜한 얘기들은 틈틈이 소개하도록 하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나머지 주제들은 시간나는 대로 이어가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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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

우리 동네에서는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우연히 조합원들이나 사용자들을 만나는 일이 다반사이다.

 

예전에는

얼굴만 봐도 어느 지부의 아무개 조합원이라고

이름을 곧바로 기억해내고

그 이름을 부르며 목례를 하거나 악수를 하곤 했는데

요즘은

일단 인사부터 하고 나서

자리에 앉아서야 비로소 그의 이름을 찾아낸다.

 

마음은 아직도 성장이 더딘데

몸은 나이를 성큼성큼 먹고 있다는 건지,

내 삶이 이전보다 치열함을 잃고 있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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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게시판에 올린 글

지난 3월 27일에

과기노조와 연전노조가 통합해서 공공연구노조가 출범했다.

그런데 아직 정상적인 집행부가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뜬 소문들이 난무하고

의도했건 아니건 동지들끼리 서로 상처를 입히고 있다.

 

그동안의 내 고민도 많았는데

오늘 노조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골치도 아프고, 산오리님 사는 일산에나 가야겠다.^^;;



 

1. 떠도는 말들과 표류하는 노동조합

여기에 떠도는 말들이 넘칩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떠도는 소문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누군가 생산하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어서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상식으로 보자면, 어떤 사람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이 있을 경우 그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해 보면 최소한 균형잡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여기에서는 그런 시도조차 없습니다. 발없는 말은 천리를 간다지만 기실 현장 조합원들에게까지도 가지 못하고 상층으로만 떠돌고 있습니다. 떠도는 말들에 등장하는 당사자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상처는 깊이 그들의 심장을 파고듭니다. 하지만 그 생산자들은 반복해서 그것을 퍼뜨리고 그것이 진실인 양 조직의 안팎을 갉아먹습니다. 조직을 위해서나 그 당사자들을 위해서나 불행한 일들이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저는 지금 차분하게 그와 관련된 얘기들을 풀어갈까 합니다.


일단 우리 공공연구노조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옛 과기노조와 옛 연전노조가 통합한 것이 3월 27일입니다. 그리고 100일 가까지 지났습니다. 통합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옛 과기노조의 위원장이 중앙위 결정에 따라 복직한 이후 새로 출범한 공공연구노조의 초대 임원진 선출은 난항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통합 초기의 어려운 과정에서 현장의 간부들이나 조합원들까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열렸다면 현재의 조직적 어려움은 상당히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공론을 형성하는 우리 노동조합의 각급의 회의체계는 지금 사실상 마비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예를 보면 한 달에 평균 2회는 열렸던 중앙집행위원회는 5월 29일에 마지막으로 열렸습니다. 임원과 전체 지부장들을 성원으로 하고 있는 중앙위원회는 통합 이후 지금껏 3차례 열렸고, 그나마 3차 중앙위원회(6/21)는 성원 부족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노동조합의 사업은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허구로 밝혀지고 연구현장에서 수년간 묵묵히 일해오던 많은 비정규직 연구원들이 2-3년 내로 대거 해고되는 상황으로 들어서고 있는데도 맞대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기획예산처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내세워 연구현장에 대한 상시적 구조조정계획을 추진하고 있어도 겨우 30여명의 간부들만 집회에 참가할 뿐입니다. 87년 이후 20년동안 민주노조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임하는 우리 노동조합이 민주노총과 공공운수연맹과 그 지역조직들의 지침이나 협조요청에 대해 아무런 호응을 하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습니다. 각 지부마다 발생하는 긴급한 현안에 대해서는 각 지역의 지부장들이 연대하여 응급처방을 하거나 아니면 사무처 수준에서 간신히 불만 끄고 있는 형국입니다.


요컨대, 우리 노동조합은 표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그 고민을 털어놓고 동지들과 함께 토론해보려고 합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들이든 견해를 달리 하시는 동지들이든 이 게시판을 통해서 얘기를 나눌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지금 물밑에서만 흐르고 있는 무성한 논의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소문들이 자연스럽게 걸러지기를 바랍니다. 게시판이 총회나 대의원대회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 노동조합을 살리는 풍성한 담론들이 여기에 넘치기를 희망합니다.


2. 저는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습니다

늦었지만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성우라고 합니다. 옛 과기노조에서 3대와 4대(1996-2000), 6대(2003-2004) 위원장을 맡은 바 있고, 2005-2006년에는 옛 공공연맹(지금은 공공운수연맹)의 사무처장을 맡았습니다. 지난 3월 이후 본부 전임자로 복귀했지만 3월 27일 공공연구노조의 출범 이후 초대 임원선거가 난항을 겪으면서 우리 노조에서는 아직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옛 공공연맹의 청산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서 남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고, 시민참여연구센터의 운영위원장을 맡아서 진행하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 노동조합의 지침에 따라 각종 집회나 투쟁현장에는 당연히 참가하고 있습니다.


조합원이면 누구나 피선거권이 있는데 당신이 불출마 선언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조직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하고 질타하는 동지들이 있다면 우선 양해를 구합니다. 저는 공공연구노조의 초대 임원선거에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성우가 공공연구노조의 초대 위원장이 되려 한다, 사무처장이 되려 한다, 하는 소문들이 임원 선출을 위한 정상적인 소통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연맹 사무처장의 임기를 끝내고 우리 노동조합으로 복귀하면서 주변의 동지들에게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더 이상 노동조합 위원장 노릇은 하고 싶지 않다. 좀 더 실질적인 일을 하고 싶다. 과기노조와 연전노조가 통합하여 조합원 7천여 명의 공공연구노조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운동의 영역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데, 과기노조가 담당해 왔던 역할을 계승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과학기술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과학기술위원회를 설치하여 과학기술 정책역량을 강화하고 대정부 투쟁력을 높이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말하자면, 나는 내 경험을 최대한 살려 과학기술(노동)운동과 과학기술자운동을 하고 싶다. 그래서 통합된 공공연구노조의 위원장은 내가 맡을 일이 아니다.”


여전히 제 생각은 위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저와 함께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몇몇 동지들까지 들먹이면서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저 한번쯤 흘러가는 얘기이겠거니 하면서 일축하고 말았지만 제가 침묵하고 있는 두어달 동안에 얘기는 왜곡에 과장을 더하여 이제는 저와 얘기 한번 제대로 나누지 않은 낯선 지부장들까지 모든 문제의 근원이 저로부터 비롯된 것인 양 오해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제 애정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저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저는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공공연구노조의 초대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선거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다만, 앞에서 말씀드린 과학기술운동의 영역에서 제가 할 역할이 있다고 판단하면 (상근)부위원장이든, 상설위원회 위원장이든 위원이든, 사무처의 국장이든, 그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맡을 것이고 성실하게 수행할 것입니다.


3. 공론의 장을 열어 토론을 활성화하자

옛 과기노조의 경험으로 보면 자천 타천의 후보군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집중하여 지금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임원들을 선출했습니다. 그러나 공공연구노조의 임원선거에서는 색다른 풍경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조직적인 경로를 거쳐서 유력한 위원장 후보가 부상되면 곧바로 그 후보를 음해하고 비방하는 말들이 퍼뜨려집니다. 우리 노조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던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자유게시판 11386번 게시물(지금은 경선 중)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3월 20일에 게시된 이 글의 내용은 “일부 지부에서 너무 오랫동안 지부장을 했고 본부에서 감투까지 썼던 사람이 이번에 또 출마를 하려고 한다던데, 새로운 얼굴 참한 얼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고 특정한 동지의 이력을 은근히 왜곡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이 동지는 지부장 경력 4년째이고, 과기노조 초기에 국장과 부위원장 역할을 반전임으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본부의 임원 역할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마치 이 동지가 본부 임원자리에 집착하여 새로운 인물의 출마를 막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산별노조의 본부 임원의 역할과 지부의 간부 역할은 현실적으로 크게 다르다는 것을 위 글에서는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7천여 조합원들의 요구를 모아 우리 노조의 조직적 요구로 만들고, 조합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노동 및 과학기술정책에 맞서 투쟁하고, 79개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장의 사용자들에 대한 교섭과 투쟁을 일상적으로 지휘하는 일은, 참으로 고된 역정이며 상당한 고민과 결단을 수반하는 일입니다. 지부의 간부를 여러 차례 역임하고서도 막상 본부의 간부 역할을 맡는 것을 주저하는 동지들이 적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지부장을 몇 번 했다거나 예전에 본부의 직책을 맡았다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공공연구노조의 임원을 맡는데 결격사유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6월 12일에 있었던 2차 중앙위원회에서는 마지막 안건으로 선관위를 구성하려 했지만 성원 부족으로 유회되고 말았습니다. 중앙위가 유회된 상태에서 현장에 남아 있던 중앙위원들은 초대 임원선거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공공연구노조 초대 집행부 구성을 위한 소위원회(이하 “소위원회”)>의 활동보고를 들었습니다. 소위원회는 위 11386번 게시물에서 거론된 동지를 위원장 후보로 추천하였고, 현장의 의견들은 추천된 동지를 중심으로 그동안 거론되었던 동지들까지 두루 아울러서 초대 임원진 구성을 할 수 있도록 다함께 더욱 노력하자는 것으로 모아졌습니다. 그러나, 이 게시물이 올라온 다음날(3/21) 열릴 예정이었던 3차 중앙위원회는 아예 성원조차 되지 않아서 다시 선관위 구성은 무산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일부 지부장들이 사전에 의도적으로 중앙위 불참을 조직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참고로 소위원회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지난 4월과 5월, 3차례의 공공연구노조 임원선거공고에도 불구하고 입후보자가 없어서 선관위까지 해산되고 난 후에, 5월 29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소위원회를 구성해서 임원후보를 발굴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소위원회의 구성원은 모두 6명이고, 과기노조와 연전노조 출신의 중집위원과 중앙위원이 각 3명씩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소위원회에서는 5월 29일 중집위 이후 6월 12일 2차 중앙위 전까지 자천, 타천의 출마예상자들을 인터뷰하고 중앙위원회에 추천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소위원회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 후보를 모두 추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소위원회의 활동 과정이나 그 동안 지부장들이 자발적으로 가졌던 일련의 공식, 비공식 모임을 통하여 거론된 후보 동지들이 있고, 또 스스로 임원을 하겠다고 나선 동지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흐름들이 공론의 장으로 모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정상적인 집행부를 구성해야 하고, 더 늦기 전에 2007년에 해야 할 교섭, 투쟁, 사업들을 신속하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하여, 저는 지금 임시집행부를 맡고 있는 분들에게 요청합니다. 중집위와 중앙위, 필요하다면 대의원대회를 절차에 따라 조속히 소집해 주십시오. 그리고 작금의 현안문제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결과를 전체 조합원들에게 알려주십시오. 그리하여 공공연구노조가 더 이상 파행의 길을 걷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7천여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동지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활발한 토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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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58

여러날 동안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20만번째 방문객이 소리소문없이 다녀갔다.

 

20만번째 방문객을 위한

이벤트나 해볼까 했던 것은 물 건너 갔고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누구를 위한 것이든

번개라도 한 번 쳐야겠다.

 

우선은

불로그에서도

세상살이에서도

좀 더 부지런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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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 문자메시지

요새 가문비가 잘 때 술취해서 자거나 밖에 있는

불량 아빠님!  큰딸 작은딸은 이제 잔다~! 굿나잇

 

6월 모모일 새벽 1시 57분에 온 문자메시지이다.

 

블로그가 너무 썰렁해서 남겨 본다.

오늘은 일찍 귀가할 수 있나 모르겠다.

저녁무렵 간단한 회의도 하나 있고,

7시부터는 성평등 교육 받으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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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고문

6월 8일, 서대산에서

한국해양연구원지부 창립 17주년 기념등반대회가 있었다.

산이 밋밋해 보여서 아무 생각없이 올라갔는데

비탈과 능선은 보기보다 가파랐고

전날 넘치게 마신 술탓인지

오랫동안 산이라고는 가지 않은 탓인지

몹시도 힘이 들더라, 숨 헉헉 몰아쉬며 간신히 올랐다.

 

그러다가 정상 가까운 골짜기에서 만난 경고문 하나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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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술

6월 13일 술, 술, 수울

6월 12일 술

6월 11일 술, 술

6월 10일 술

6월 9일 술, 술

6월 8일 수울, 술, 술, 술, 술

6월 7일 술, 술

6월 6일 술

6월 5일 술, 술

6월 4일 술

.....................................

......................

 

일과 사람들은 계속 바뀌었는데

한결같이 이어지는 술, 술, 술.........

 

뭔가 결단이 필요한 때가 되었나 보다.

 

-오랜만에 연맹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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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상 위에서 과학기술정책을 논하노라?

노보에 글 하나씩 쓰기로 했는데 그럴싸한 주제가 없나 찾다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관련해서 꾸준하게 모니터링 좀 하기로 했다.

 

처음 과기노조 위원장 할 때는 이것 만들라고 외치고

나중에 또 과기노조 위원장 할 때는

민간위원과 정부위원을 같은 수로 하라고 떠들곤 했었는데

어렵사리 생겨난 것이 요즘 하는 짓거리들을 보니 참 걱정스럽다.

 

이 후로, 차근차근 내용을 뜯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글의 사족부터...(사족은 지면관계상 노보에서 짤릴 예정임^^)

 

 

사족

국과위 홈페이지(http://www.nstc.go.kr)는 일반인이 찾기가 참 어렵다. 국과위의 존재를 아는 사람만이 포탈사이트의 검색창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라고 입력하고 곧바로 찾아갈 수 있다. 과기부 홈페이지에 가면 국과위가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거기에 국과위는 없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가서 정부조직도를 클릭하면 노사정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등 정부의 각종 정부위원회 이름이 줄줄이 나오고 클릭만 하면 해당 위원회 홈페이지로 가게 되어 있지만, 거기에도 국과위는 없다. 왜 그러냐고 과기부에 전화를 걸었더니 국과위는 기구가 아니라 회의체라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회의체라, 예산권도 없는 회의체라,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위상치고는 참 초라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말이 나온 김에 더 하자. 국과위 본회의가 아침 7시 30분에 열린다고 해서 과기부에 전화를 걸었다. 조찬회의로 하는 거냐고 했더니 왜 그러느냐 신분부터 밝히라고 한다. 참 딱딱하고 불친절한 말투였지만 참고 신분을 밝혔더니 그제서야 조찬회의가 맞다고 인정했다. 한 가지 더 물었다. 최근에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적은 없지요? 과기부 공무원은 그건 왜 묻느냐, 함부로 얘기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아니 그게 무슨 기밀사항이라고 그러느냐, 내가 홈페이지만 찾아봐도 금방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인데, 하고 말했더니 그럼 그렇게 하라면서 퉁명스레 되받았다. 제발 열린 마음으로 민원인의 전화를 받으라고 충고하고 끊었다. (사실은 상급자한테 항의전화를 한번 더 했다. 그리고 궁금한게 있어서 전화를 또 했더니 그제서야 좀 순하게 받더라.)


황우석씨 얘기도 해야겠다. 황우석씨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국과위 민간위원이었고 2005년 8월에 연임했다가 그해 12월경 줄기세포 사건의 책임을 지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렇다고 해도 황우석씨가 국과위 민간위원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국과위 홈페이지 역대 민간위원 명단에 황우석씨의 이름은 없다. 황우석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갖은 특혜를 퍼부었던 청와대나 국과위가 늦게나마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한 것일까, 아니면 황우석씨라는 이름이 국과위 민간위원으로 회자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일까, 자못 궁금하다.

 

 



 아침밥상 위에서 과학기술정책을 논하노라?

-제23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열려-


조찬회의

제23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가 지난 4월 30일 오전 7시 30분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오전 7시 30분에 열리는 회의라면 통상 조찬회의를 의미한다. 모여서 아침밥 먹고 식사가 끝나면 부리나케 제각기 출근하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을 아침밥 먹으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준으로 처리하다니 기막힌 일이다. 기록을 찾아보았다. 국과위는 매년 3회 정례회의를 갖는다. 1999년 4월 1일 첫 회의를 가진 이후 지난 9년 동안 국과위 본회의는 23차례(2002년과 2004년에는 2회씩만)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대부분의 회의를 청와대에서 일과 중에 위원장 주재로 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고 2년 동안 5차례의 회의를 청와대(13회 본회의는 KIST)에서 주재했고, 18회 회의(2005. 8. 29)를 끝으로 국과위 본회의 의장 역할을 더 이상 맡지 않았다. 2005년 8월이면, 황우석씨가 5월에 난치병 환자로부터 줄기세포를 배양했다고 세계를 놀라게 한데 이어서 8월초에 그토록 어렵다던 개 복제에도 성공했다고 발표함으로써 과학자로서의 명성이 정점에 도달해 있을 때였고, 그 때 황우석씨는 국과위 위원이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라고 하는 국과위는 과학기술부 장관(부총리, 국과위 부위원장)의 주재로 17회, 19-22회 본회의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그리고 23회 본회의를 신라호텔에서, 조찬회의로 열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National Science & Technology Council)는 재차 강조하지만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다. 국가과학기술정책 사업의 수행주체가 다원화되고 투자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김대중씨가 대통령을 맡고 있던 1999년 1월에 발족하였고 그 해 4월에 첫 회의를 가졌다. 국과위는 김대중씨의 선거공약이기도 했지만 그 수년 전부터 우리 노동조합을 비롯해서 과학기술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사항이기도 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던 시기에 우리 노동조합의 핵심간부가 그를 직접 만나서 국과위 설치와 출연연구기관의 안정화를 위한 방안 등 주요한 정책요구에 대해서 설명했던 일도 있다.


국과위는 매년 3회(4월, 7월, 12월) 정례 회의를 갖는다. 4월에는 전년도의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 7월에는 다음 해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의 검토 심의, 12월에는 다음 해의 과학기술발전 시행계획 수립이 주요 안건이다. 과학기술기본법을 비롯한 9가지 법에 근거하여 과학기술기본계획, 과학기술관련 예산의 확대방안 및 R/D투자권고,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의 배분 및 조정과 효율적인 운영에 관한 사항, 과학기술분야 출연(연)의 육성 발전방안 등 14개 의제들이 본회의에서 다루는 법정 심의사항이다.


그러나 국과위 설치에도 불구하고 국가과학기술정책은 여전히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정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거시적인 기획기능의 부재로 사전 정책조정에 실패했고, 객관적인 평가기구가 없으며, 법률 제정과 개정에 대한 권한이 없어 정책조정을 위한 기반이 미흡하고, 실질적인 예산 배분 권한이 없어서 정책조정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요지였다. 이러한 비판은 국과위 체제의 개편으로 이어졌다. 2004년 10월에 과학기술부 장관이 부총리로 승격되고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국과위 사무국 기능을 맡게 되었다. 더불어 국무총리실에 속해 있던 기초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가 국과위 산하로 이관되면서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지원과 육성 체계가 일원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과위의 활동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 관련 예산을 사무국(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 조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예산 기획과 조정의 전권은 여전히 기획예산처에 있기 때문에 각 부처가 국과위의 판단과 결정에 맡기기보다는 기획예산처와 직접 연구개발예산의 규모를 놓고 협상을 벌이는 형국이다. 예산을 통한 기획 조정 기능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부처 사이의 과학기술 관련 정책의 조정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부처 이기주의적인 행태는 여전하다. 그러다 보니 국과위 본회의 뿐만 아니라 운영위원회 등의 사전 심의기구에서도 부처에서 올라온 안건들이 별다른 이견없이 통과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과위가 거수기로 전락했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민간위원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고 과학기술부총리를 부위원장으로 하며, 기획예산처를 포함하여 13개 부처 장관으로 구성되는 당연직 위원과, 대통령이 위촉하는 9명의 민간위원이 국과위의 위원이 된다. 임기가 2년인 민간위원은 현재 8명이다. 2005년 8월에 연임했던 황우석씨가 그 해 말에 줄기세포가 사기로 드러나자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나서 1명이 줄어든 것이다. 우리 노동조합은 출범 초기 민간위원이 3명에 불과한 것을 비판하면서 국가위 민간위원은 전체 위원의 절반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들이 국과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출범 이래 민간위원은 주로 재벌이나 유수의 벤처기업인, 학계나 여성계에서 대통령이 선택한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어떤 조직이나 현장의 대표성을 갖는 민간위원은 현재로서는 단 1명(참여연대 소속)밖에 없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한 개인이 국과위에 참여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실 밥숟가락 들고 고개나 끄덕이는 것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23회 국과위 안건

제2차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계획(안), 융합기술 종합발전 기본계획(안), 산림과학기술 기본계획(안), 국방 연구개발 역량강화 방안(안),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 운영성과 보고(특별보고), 「이공계 전공자 공직진출 확대방안」06년도 추진실적 보고(서면보고) 등이 이번 23회 국과위 본회의 안건이었다. 이 안건들에 대해서는 이른바 참여정부 시대에 국과위에서 다룬 많은 안건들과 함께 분석하여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한다. 다만, 국가위 본회의가 조찬회의로 진행된 이후, 심층적인 검토와 토론이 필요한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결과와 같은 주요 의제가 실무위원회로의 위임이라는 명분으로 운영위원회와 전문위원회 안건으로만 상정되고 본회의에는 아예 보고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자. 앞에서 얘기했지만, 4월 본회의의 주요 안건은 전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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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벤트에 되는구나

거한님의 [급조 이벤트] 에 관련된 글.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이렸다.

오랜만에 거한의 블로그에 들렀는데

때마침 진행되고 있던 이벤트가 있었으니,

16만번째 방문객으로 덜컥 당첨이 되어 버렸다.

 

여러 재주가 많은 거한님은

일단 원하는 그림이라면 뭐든지 그려주겠다는 것이고,

나는 지난 번에 게을러(?) 받지 못한 내 초상화 한점이면

충분히 만족하고 고마워할 것이라고, 오늘에사 덧글을 남겼다.

 

이런 재미를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느낄 기회를 주기 위해서

20만번째 방문객 맞이 이벤트라도 해야 하나?

요즘같이 들쭉날쭉 살다 보면 이벤트 관리조차 못할 것 같아

쬐금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아이디어부터 좀 모아보구 결정해야겠당~

 

다음은 증거로 남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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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전화기

작년 11월에 연맹에서 일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우리집 인터넷이 하나포스로 통합이 되었는데 전화선은 KT이니까 번거롭지 않냐

번호이동을 해서 인터넷과 통합하면 요금도 더 싸고 선물도 챙겨주겠다고 한다.

 

고속통신망이 보급되던 초기부터 우리집은

지역의 작은 업체에서 제공하는 랜을 싼값에 쓰고 있었는데

그게 버티기가 어려웠는지 작년에 하나포스와 합병을 해버렸던 것이다.

 

좀 생각해 보자고 했다가 몇번의 독촉전화를 받고는 그러자고 했다.

그리곤 습관대로 나한테 전화했던 텔레마케터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메모지에 남겨두었다.

 

그 때 선물 중의 하나가 발신자번호확인 전화기를 주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얘기를 집에다가 했더니 두어달 지나서 가문비가 한마디 했다.

-아빠, 전화기 한대 새로 올거라고 한 적이 언젠데 아직 왜 안와?

=글쎄, 때가 되면 오겠지...

 

그렇게 넘어가고 나서 또 넉달 가량이 지났다.

하나로에서 가끔 전화를 해서는 불편한 것은 없느냐 추가 서비스 필요하지 않냐

하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전화기 생각이 떠올라서 따져 물으면

그건 자기들 담당이 아니니까 106번으로 전화를 해서 받으라고 했다.

당근 그렇게 해봤지만 번번히 허사였다.

나한테 판촉을 한 곳은 직영대리점도 아니고 위탁영업소쯤 되는 모양이고

틀림없이 거의가 비정규직일텐데 에이 잊어버리자.

 

그러다가 최근에 파일을 정리하다가 문제의 메모지를 찾았다.

지 아무개, 032-328-**** 하나로통신 2006. 11. 23.

주머니에 쑤셔놓고 다니다가 오늘에야 전화를 해봤다.

-지 아무개씨 계신가요?

=오래 전에 그만 두었는데요.(그럼, 그렇지...)

-제가 작년에 거기에서 번호이동하라고 해서 했는데, 전화기를 선물로 주기로 했는데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시죠?

-대전 861-9****입니다.

=이 성짜 우짜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누락이 된 것 같은데요, 바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래된 전화기 한대와 낡은 팩스전화기 한대로 버티던 우리집에

전화기 한대가 공짜로 생기게 되었다.

내가 공짜로 받는 게 곧 나의 부담으로 돌아오거나

또다른 누군가의 돈으로 보상되는 것일테니 즐거워할 일도 아니지만

은행대출이자를 낮추는 문제든 판촉물 하나 챙기는 것이든

가만히 있는 자에게는 무심하기만 한 세상이니

따질 것은 따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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