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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쿠바 혁명 : 카스트로 전략과 게바라 전술
제8장. 카스트로는 어떻게 승리하였는가(딕키 채플레)
(163쪽)
** (카스트로 군대의 세 가지 공격적 행위)
“카스트로 군대는 세 종류의 공격적 행위를 취했다. 전장정찰, 습격, 그리고 포위였다.
정찰대는 단순히 적의 병력․전력 상황을 탐색하는 임무만이 아니라 적에 대한 공격의 전위로서의 임무도 맡고 있었다. 우리의 경우는 두 소대로 구성되어 주로 야간에 활동하였다. 무기로는 소총, 토미포, 한두 정의 LMG를 휴대했다. 한 정찰소대는 81mm 5연발 박격포를, 다른 소대는 파손된 쿠바 정부군 항공기를 고쳐 만든 20mm 대포를 끌고 다녔다. 대포의 탄약은 우리가 직접 제조한 것이었다.
혁명군들이 습격이라고 부른 전술은 일방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전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혁명군 지휘 장교가 병력을 이끌고 야음을 이용하여 이용 가능한 은폐물 가까운 곳에 매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나서 적의 출몰시 생포하거나 사살하는 것이다. 따라서 습격대는 진격하거나 대형 폭탄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전술로 마야 요새에서 17일 동안 525명을 생포했다. 다른 곳에서도 우리는 14일 동안 버티다가 150명의 바티스타군의 항복을 받을 수 있었다.
혁명군 공격전술 중 세 번째의 것은 포위 공격이었다. 이 전술은 바티스타 정부군들의 집결지나 요새를 5~6명의 게릴라로 편성된 소단위 부대들이 사방을 둘러싼 다음 각기 <치고 빠지는> 전술을 활용하여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이다. 바티스타 요새에 대한 이같은 포위공격은 결정적인 치명타를 적에게 가했다.”
제9장. 체 게바라의 게릴라 전술론(F.M.오상카)
(168쪽)
** (쿠바 혁명이 남긴 세 가지 전제)
“쿠바 혁명은 남미의 혁명운동의 역할에 대하여 세 가지의 근본적인 전제를 제공했다.
1) 민중의 힘은 정규군과 맞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2) 혁명의 모든 조건들이 충족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민중봉기 자체가 그것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남미의 저개발국가에서 무장투쟁의 영역은 농촌지역이다.”
(169쪽)
** (게릴라전의 원칙)
“게릴라전은 정규전을 위한 시작, 혹은 준비단계에 불과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게릴라 세력의 성장과 정규전에로의 전투양상의 변화 가능성은 각개전투와 충돌을 통해 적을 패퇴시킬 수 있는 가능성들만큼이나 다양하다. 이 때문에 각개전투와 충돌에서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기본적인 원칙이다.”
** (게바라와 모택동의 유사성)
“게바라는 게릴라전에는 통상적인 정규전과 같은 유형의 군사적 목표가 없다고 지적한다. 산악지대이건 도시이건 목표물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게릴라가 공격하는 모든 세려을 섬멸하는 것만이 목표이다. 모택동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군사작전의 모든 실행원칙은 예외 없이 최대한 자체의 힘을 보존시키고 적의 힘을 해체시킨다는 한 가지의 기본원칙을 따른다.””
--> 정치에 대한 전쟁의 우위를 강조하는 말이다. 또한 공격전쟁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방어전쟁 역시도 제한전쟁의 성격에서 절대전쟁의 성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가지는 아포리아와 동일한 아포리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170쪽)
** (게릴라전의 한계)
“게릴라전투는 그 자체로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할 수는 없는 전쟁의 일정한 국면이다. 그것은 해방전쟁의 주요 국면들 중의 하나이며, 게릴라 군이 정규군의 성격을 획득해 감에 따라 끊임없이 그 중요성을 더해 간다. 게릴라 군은 정규군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서 적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 준비를 하게 되며 승리를 확보할 것이다. 비록 정규군의 뿌리는 게릴라 군이었지만, 그 승리는 언제나 정규군의 산물인 것이다.”
(170~171쪽)
** (게릴라 전략에 대한 이해)
“…전략이란 전체적인 군사적 상황에 비추어 달성 가능한 복적과,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가용한 행동노선을 분석함을 의미한다.
게릴라 군이 따라야 할 전략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위해서는 적이 이용할 수 있는 행동방식을 깊이 분석해 보아야 한다. 게릴라는 적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 병력, 이동능력, 대중적 지원, 무장, 그리고 지도력을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게릴라는 적의 군대를 패퇴시킨다는 최종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자체의 전략을 도입해야 한다.”
(171쪽)
** (게릴라의 전략 목표들)
“초기 단계에서 게릴라의 우선적 목표는 자신이 파괴되지 않도록 돌보는 것이다. 게릴라 부대들은 적의 파괴부대로부터 탈피하는 과정에서 점차로 비교적 용이하게 새로운 생활방식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일단 이 목표가 달성되면 게릴라는 거점을 확보하고 적은 이를 공격하기가 점점 어렵게 될 것이다. 게릴라 군이 점차로 증강되면 적은 약화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약화과정은 우선 게릴라 군에 대한 활발한 전투가 진행되는 장소에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발생하게 된다. 이후 약화과정은 적의 영토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침투할 수 있고, 게릴라들은 총력을 기울여 적의 통신망과 작전기지들에 대하여 타격과 피해를 입힐 것이다.”
“끊임없는 공격이 행해져야 한다. 작전 지역에서 적군이 잠자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야전진지들은 체계적으로 공격하고 파괴시켜야 한다. 항상 적에게 그들이 완전히 포위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이는 정찰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역 상황에 대한 완벽한 파악뿐만 아니라 민중의 전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가 게릴라들이 항상 유의해야 하는 필수적인 요인들이다.”
“지금까지 비교적 덜 위험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왔었던 잘 조직화된 집단들은 이제 사보타지에 동원될 수 있다. 사보타지는 전군과 전지역의 생활을 위협할 수 있는 가공할 만한 무기이다. 만약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전투부대를 포함한 적의 사기는 약화될 것이다.”
(143쪽)
** (모의 게릴라의 특성)
“게릴라가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집결과 산개, 그리고 끊임없는 위치이동 같은 것들이다. 일반적으로 게릴라부대는 작전하기 위하여 흩어진다.”
(144쪽)
** (모의 대규모 게릴라전의 5가지 기준)
“1. 적군이 넓게 확장하여 방어를 하고 그에 대항할 만한 충분한 병력이 집결될 수 없을 때, 게릴라는 산개하여 쉴새없이 적을 괴롭히면서 적의 사기를 저하시켜야 한다.
2. 적에게 포위 당했을 때, 게릴라는 후퇴하기 위하여 산개한다.
3. 지상의 조건이 활동을 제한할 때 산개하라.
4. 작전이 보급에 의해 제한받을 때 산개하라.
5. 넓은 지역에 걸쳐 이동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산개하라.”
(152쪽)
** (모의 게릴라의 전술적․전략적 기동성)
“혁명은 직선적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혁명은 어떤 때는 빗나가기도 하고 우세한 힘 앞에서는 후퇴하기도 하며, 전진의 여지가 있을 때에는 전진을 하면서 무한한 인내력을 요구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부대가 교전을 하게 되는 것이 불리할 때가 있다. 그러한 경우 부대는 즉각 이동해야 한다. 사태가 심각할 때, 게릴라는 물이 흐르듯이 바람이 불듯이 이동해야 한다. 그들의 전술은 적을 기만하고 유인하고, 혼란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적으로 하여금 그들이 동쪽과 북쪽에서 공격할 것처럼 믿도록 유도하면서, 실제로는 남쪽과 서쪽에서 적을 쳐야 한다. 그들은 기습을 한 후 신속히 분산해야 한다. 그들은 야간에 이동해야 한다.”
(125쪽)
** (중국의 상황과 지형에 적합한 모 자신의 개념과 그 대책의 특성)
“따라서 전쟁의 상황에 있어서의 차이점은 전쟁의 주도적인 법칙에 있어서의 차이점(시간, 공간, 그리고 성격의 차이)을 결정한다.”
“역사적 단계, 특성, 장소 그리고 국가 등이 서로 상이한 여러 전쟁의 법칙들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그것들 각각의 특성과 발전과정에 주목해야 하며, 전쟁의 문제점에 대한 단순한 기계적 접근은 지양해야만 한다.”
(둘 다 모택동의 『선집』 제1권에 실린 「중국 혁명전쟁의 전략적 문제들」 중에 있음)
(125~126쪽)
** (모의 게릴라전의 기본원칙들)
“게릴라전의 기본원칙들은 중국 공산군의 그 유명한 구호로 요약되어 있다고 모택동은 강조한다.
1. 적이 진격할 때, 우리는 퇴각한다.
2. 적이 주춤할 때 우리는 교란시킨다.
3. 적이 지칠 때, 우리는 공격한다.
4. 적이 후퇴할 때 우리는 추격한다.
모택동은 그의 『선집』 중 제2권에 수록된 「항일 게릴라전의 전략적 제문제」에서-시간과 장소 그리고 성격 등이 주는 영향을 포함하여- 이러한 구호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글은 항일 전쟁에 연관된 노력의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지 게릴라전의 일반적인 규칙을 세우기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다.”
(126쪽)
** (모의 항일 게릴라전의 6가지 특수한 전략적 문제들)
“1. 우리에게 주도권이 있을 경우에는 융통성을 가지고 계획에 따라, 방어전에서의 공격을 지구전에서는 빠른 결단에 의한 전투를, 내선(內線) 작전 내에서의 외선(外線) 작전을 수행할 것.
2. 정규전과 결합시킬 것.
3. 근거지를 확보할 것.
4. 전략적인 방어와 전략적인 공격을 기도할 것.
5. 기동성 있는 전쟁(운동전)으로 발전시킬 것.
6. 지휘계통을 명확히 할 것.”
“모는 이 논문에서 이러한 여섯 가지의 특수한 문제들을 서술․전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반원칙을 밝히고 있다.
1. 게릴라전에 있어서의 보수적인 경향은 배타되어야 한다.
2. 자신을 보호하고 적을 섬멸한다는 원칙은 모든 군사원칙의 기본이다.
3. 게릴라전은 오직 정도와 표출의 형태에 있어서만 정규전과 다르다.
4. 게릴라전의 기본원칙은 공격적인 것이어야만 하며, 그것의 공격적인 특성은 정규전의 공격적인 특성보다 훨씬 두드러진다.
5. 공격은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최선책일 뿐만 아니라 적을 전멸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반면 방어나 후퇴만 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단지 일시적이며 부분적인 역할밖에는 할 수 없고, 적을 전멸시키는 데 있어서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127~128쪽)
** (항일전의 성격)
“항일전은 중국 공산당의 관점에서 보면 순전히 방어적인 전쟁이었으며, 공산측은 분명히 일본보다 약세였다. 공산주의자들이 그런 조건 아래서 공격적인 접근을 채택했었더라면, 진지방어를 택하든가 아니면 일본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는 둘 중의 한 상황이 나타났을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공산주의자들의 정치적․군사적 계획에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모는 게릴라전과 정규전의 협력 문제를 항일 전쟁에서의 시간과 지역에 관한 특수한 문제로 보았다. 초기 상황에서는 연합할 만한 정규전이 없었다. 그러나 후반기에 들어 게릴라전이 기동전(mobile warfare)과 정규전으로 변형되었을 때, 이레 연합할 게릴라전은 없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규전과 게릴라전의 동시적 공존은 그러한 통합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근거지 확립은 언뜻 보기에 게릴라전(보다 엄밀히 말해 유격전)이라는 개념과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는 근거지 없는 게릴라들은 떠돌아다니는 폭도와 같으며 토착주민의 정치적 열망과는 아무런 관련도 맺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모의 이론의 철저한 정치적인 성격은 이러한 개념적인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근거지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한편, 분명히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이용된다. 모택동이 평야지대를 제외시킨 것은 아니지만, 근거지들은 뚜렷한 군사적인 이유 때문에 대개 산악에 위치해 있었다. 오파(吳波) 산악지역에 관해 언급하는 가운데, 주덕은 근거지의 군사적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의 정규병들은 휴식과 보급품과 재훈련을 위해서 그러한 근거지로 돌아갈 수 있다. 게릴라 병력과 대중들도 그곳에서 훈련 받을 수 있다. 거기에는 작은 조병창과 학교, 병원, 그리고 조합 및 행정기구들이 모여 있다. 우리는 일본군 주둔지, 요새 전략기점, 탄약보급소, 통신시설, 그리고 철도를 공격하기 위해 이곳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한 목표물들을 파괴한 후에야 우리 부대는 모습을 감출 수 있고 또 다른 곳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게릴라들에게 전략적인 방어와 전략적인 공격을 실행하라는 충고를 함에 있어, 모택동만이 게릴라들이 어떤 때는 공격을 하고 어떤 때는 방어를 해야 하는 교대적인 기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동전으로 발전시키라는 충고는 모의 개념의 핵심이다. 그는 게릴라전을 정규전의 서곡으로 보았다. 게릴라들은 정규군사로 변화될 것이다. 가장 마르크르주의적인 관점에서 모는 수(數)가 증가하고 질이 개선됨으로써, 게릴라들은 “기동전을 펼 수 있는 정규군”으로 자신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29~130쪽)
** (모의 전쟁이론)
“모의 전쟁이론은 “모든 공산주의자들은 진리를 파악해야만 한다. ‘정치적 역량은 총열로부터 나온다’”는 진술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중국에서 무력투쟁이 없다면, 프롤레타리아나 공산당은, 그들이 설 자리를 쟁취할 수 없으며, 어떠한 혁명과업도 성취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비정규전에 대한 그의 개념은 이러한 가정으로부터 발전된 것이다.”
“모택동은 결코 게릴라전을 가장 바람직하다거나 영속적인 전쟁형태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빈번히 그리고 거리낌 없이 게릴라전을 낮게 평가했다. 1936년에 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게릴라의 이러한 성질은 적을 쳐부수기 위한 우리의 독특한 모습이며 강점이자 수단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질을 버릴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것을 버릴 수 없다. 언젠가 이러한 성질은 분명히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며, 따라서 결국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매우 귀중하며 굳건히 간직해야만 한다.”
** (그런데 정치적 동원은 군사전술에 직접적으로 의존한다!)
“정치적 동원은 오히려 군사전술에 직접적으로 의존한다. 모는 두 가지 정치․군사적 위험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첫째는 너무나 팽배해 있는, 그가 일컫는 바 무법천지의 영웅주의적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너무 일찍 포기하려는 (패배주의적) 의도이다.”
--> 이는 클라우제비츠의 경우처럼 정치가 전쟁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모의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 전쟁은 적의 사악한 영향력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불순성을 정화시켜 줄 수 있는 일종의 항독소이다.”(103쪽)
(104쪽)
** (게릴라전의 일반적 특성)
“게릴라전은 군사전략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제공해 준다. 게릴라 작전은 군사 기계 장비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방심할 수 없는 작전 형태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값싼 전쟁 중의 하나이다.”
(104쪽)
** (모의 게릴라전의 특징)
“모는 자신이 많은 저적들 속에서 한 가지의 중심된 문제를 여러 방법으로 다루고 있다. 그 문제는 분산과 집중을 결합시키는 일이었다. “창과 새총으로 무장한” 지방반란군은-이 점이 중국혁명의 <특이한 양상>이었다-정규 중국공산군과 결합되어야만 했었다. 지방군은 분산되어 있음으로 해서 적을 분산시킬 수 있었고, 정규군은 분산된 적을 각개 격파할 수 있었다. (……) 그렇게 함으로써 맑스가 역사의 유형을 구성했던 것처럼, 모도 전쟁의 과정을 정(正), 반(反), 그리고 승리를 얻는 합(合)의 과정으로 구성하였다.”
(105~106쪽)
** (모의 삼 단계 전략론)
“모에게 있어서 미래의 패턴은 과거의 패턴과 마찬가지로 가혹할 정도의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지구전은 승리하기까지 세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세 단계 중에서 첫째는 적인 전략적인 공세를 취하는 단계인 바, 모는 그가 일컫는 <전략적 수세>에 처하게 된다고 본다. 두 번째 단계는 일정의 교착상태로서 공산주의자들은 그 속에서 주도권을 잡을 준비를 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전략적인 공세로 전환하며, 적을 전략적인 수세로 몰아넣고 궁극에 가서는 전쟁을 종식시키게 된다.”
“첫 번째 단계와 관련해서 모는 몇 가지 가정을 내리고 있다. 첫째는 적에게 있어 생산수단의 상실이 곧 전쟁에서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는 적인 속전을 전개할 것이며, 가능한 총력으로 공격하리라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 모는 접전을 기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주로 후퇴를 예상하기도 한다.”
“첫 번째 단계는 상호의존적인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두 번째 단계로 전이된다고 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적군 가운데서는 물론, 많은 사상자와 전쟁비용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악화일로에 있는 적의 후방에서도 전쟁이 쉽게 끝날 것도 같지는 않다는 생각과 헛수고라는 일종이 무력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러한 징조를 통해서 공산주의자들의 사기는 높아지기 시작한다. 전쟁이 평형상태에 도달할 때, 제2단계 즉 전략적 교착상태가 이루어진다.”
“점증하는 정규 공산군의 기동성 있는 전투에 의해 지원을 받은 게릴라전의 확대는-패배주의나 악조건, 그리고 협력자들의 파괴활동에도 불구하고-제2단계를 거쳐 제3단계로 이전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단계가 절정에 달할 때 게릴라전은 보조수단이 되고, 정규전 형태의 전투가 다시금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 모의 삼 단계 전략론은 헤겔의 절대정신에 의해 닫혀 있는 변증법의 형태와 아주 비슷하다. 지방의 모든 게릴라들은 결국 최종적으로 공산당의 구현체의 공산당 정규군대로 지양된다. 다시 말하자면 공산당 정규군대의 통제와 지휘를 일방적으로 받으면서 정규군대의 보조적 수단으로 머물게 된다. 헤겔이 절대정신(보편으로서의 세계사 또는 세계민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내전(전쟁)이 필수적인 것, 즉 필요악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 과정에서 통제와 억압, 더 나아서 전쟁은 필수적인 것이 된다. 그리하여 모든 의사소통 내에서의 갈등과 진통은 결국 전쟁으로 해소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치는 전쟁에 종속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전략론은 『자본』의 가치형태의 전개 과정과 닮아 있다. 단순한 가치형태→전개된(전체적) 가치형태→화폐형태로 나아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① 단순한 가치형태 ≒ 모의 삼 단계 전략 중 첫 번째 단계
<적의 정규군대 = 공산당 정규군대>
처음 적의 정규군대를 맞았을 때 공산당의 정규군대는 전적으로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시간을 끌면서 되도록 직접적인 접전을 회피하고자 한다. 이때 적의 정규군대는 자신과 대적할 만한 등가형태로서의 상대로 공산당 정규군대를 넘어서게 된다. 그리하여 지방의 여러 무수한 게릴라들을 자신의 상대로 맞이하게 된다.
② 전개된(전체적) 가치형태 ≒ 모의 삼 단계 전략 중 두 번째 단계
적의 정규군대 =
이때 무수한 지방 게릴라들을 자신의 상대로 하는 적의 정규군대는 분산되면서, 그리고 자신의 공격력이 쇠약해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적만을 상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때 공산당은 적의 정규군대의 공격력이 최대로 약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③ 화폐형태
적의 정규군대 =
= 중국 공산당(정규군대)
적의 공격력이 거의 무력화될 즈음에 게릴라들을 대신하여 게릴라들의 대표체로서 공산당의 정규군대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 공산당은 이제 전쟁이 끝난 후에도 보편자, 동일자로서의 등가형태의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만일 어떤 게릴라들이 또는 다른 누군가가 이 등가형태의 자리를 원하게 되면 가차 없이 내전의 형식을 빌어 이들을 숙청하고자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공산당의 독재가 형성되며 노동자 계급을 동원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때 당은 <이성의 화신>으로서 물신(物神)으로서의 화폐와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공산당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가 된다. 보수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화합, 조화, 대동단결이라는 수식어 쓰기를 좋아하며 남발한다. 이는 비단 중국 공산당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소련 공산당에게도 해당된다(우리나라에서는 민노당의 주사파들이 여기에 딱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5장. 모택동의 전략․전술론에 대한 현대적 평가.
(111쪽)
** (모의 전쟁관)
“모는 자신의 전쟁이 최후의 정당한 전쟁 다시 말하면 전쟁들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쟁이며, 그 전쟁 이후에는 어떠한 전쟁도 찾아 볼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새로운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가 온통 공산주의화되기 전까지는 “영원한 평화와 영원한 빛의 새로운 시기”를 위한 이 전쟁이 끝날 것 같은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너무나 헤겔적인!!
(112~113쪽)
** (모의 전략이론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가정)
“모의 이론도 어느 이론과 마찬가지로 일련의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구성은 이론의 기초만큼 튼튼하지 못하다.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모의 전제는 인내심을 모나 모처럼 생각하는 사람만이 독점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러한 독점성은 결국에는 필연적으로 승리하게 된다는 모의 교리 속에 설정된 융통성에 의해 편리하게 보호 받는다.”
“동남아시아에서 모의 이론이 복음처럼 전파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만이 인내심을 독점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첫 번째의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는 두 번째 전제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자들은 빨리 승리를 거두려 할 것이며, 따라서 장기전을 바라지 않고, 또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에서의 교착 상태가 미국 본토의 여론에 미친 영향, 그리고 인도차이나에서의 장기전이 프랑스 국민에 미친 영향 등은, 1930년대 모가 특히 일본을 지칭하면서 글을 쓸 때 그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의도를 잘 예증해 준다.”
“전쟁의 첫 단계에서 겪는 전술적인 희생이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대가라고 모가 믿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이 과정을 지속시켜 주는 촉매제는 초반기의 후퇴 기간 주에도 주도권을 유지하는 일이다. 작전상 이 말은 부분적인 승리가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더욱이 중국과 인도차이나에서의 전쟁은 그러한 전쟁에서, 군사적인 주도권이 기술적인 우위와 상관이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점은 세 번째의 가정과 연관된다. 즉 공산주의자들은 군사적, 그리고 정치적인 견지에서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의 엄격한 훈련 하에 작전을 펼치는 <인민의 전쟁>이 매우 적응성 있는 병기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주 잊혀지는 사실이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에게 적응성을 주는 것은 병기고에 있는 무기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능력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먹으면서 유선 방송 영화 채널에서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았다.
한 세 번 정도 보았는데...
그때마다 뭘 써야지 하면서도 게으른 탓에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늘은 짤막하게라도 써야지 하면서...ㅋㅋ
아마도 아주 짦을 것 같다. ㅋ~~~
천하장사와 마돈나...
그 결합이 참 부조화다.
아주 속되게 이만기와 마돈나를 합치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처럼...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죽 한 그릇에 자신을 파는 에셔>처럼 자신을 자본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처럼
마돈나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천하장사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모습...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 팔기 위해서 처절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처럼,
마돈나 역시 천하장사가 되기 위해 엄청난 고난(멸시와 폭력)을 겪는다.
이는 영화에서 천하장사 마돈나의 아버지가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결국 일하게 해 달라고 사장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런데 끝내 천하장사 마돈나는 천하장사를 통해 마돈나가 된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팔아서 노동자 계급이 될 수 있을까?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그 아버지는 진짜 노동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여운을 영화는 남기는 것 같다.
진짜 노동자, 노동자 계급이 되기 위한 계급투쟁은 마돈나-되기(여성-되기)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감독이 의도했던, 안 했던 그냥 나의 생각일 뿐이다)
덧니 : 류덕환이라는 배우, 아직 어리지만 싹이 있는 배우인 것 같다.
지켜볼 만한 배우인 것 같다.
(88쪽)
** (나치 독일군의 반 게릴라전에서 얻은 게릴라의 특성)
“두 가지 사례, 즉 카민스키의 민병대와 차이코비치 분대 그 어느 것도 게릴라 운동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사례들은 상당히 중요한 하나의 사실, 즉 게릴라들은 식량보급과 활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지역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으며, 이 사실은 주로 서방의 침략군대에 의해 악용되었다. 즉 침략지의 비애국적인 주민들을 매수하여 괴뢰적인 지역민병대를 조직하거나 그에 유사한 방식으로 반(反) 게릴라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92쪽)
** (효과적인 반게릴라 작전)
“효과적인 반게릴라 운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침략군대 지휘관들이 적군의 물리적 측면에 정통해야만 하며 또 그 고장 주민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그 지휘관들은 주민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게릴라들의 민중적 기초를 빼앗아야 하는 것이다.”
--> 구사대
@ 제 4장 모택동의 혁명 전략 @
(97쪽)
** (모택동이 전쟁을 보는 관점)
“그는 하나의 시각, 즉 전쟁은 혁명의 산파이고 혁명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으로 확인 가능한> 과정을 따른다는 관념을 빌어온 것이다.”
--> 그는 맑스, 엥겔스, 레닌, 클라우제비츠, 손자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과 중국의 고유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의 영향을 종합한(물론 일관되게 맑스주의 틀을 유지하면서) 전술론(또는 3단계 법칙)을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다. 이 3단계는 한편으로 맑스주의의 과학적 방법론인 구체-추상-구체의 방법을, 다른 한편으로 클라우제비츠의 방어 전쟁(적의 공격을 아군 진영 종심으로 깊숙이 끌어들임-적의 예봉을 꺾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 적의 전투력을 급속하게 약화시킴-최후의 공세를 펼침) 단계를 원형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나올 모택동의 전투의 삼 단계와 비교해 보자.
(99쪽)
** (모택동의 전쟁에 관한 첫 번째 원칙)
“모택동이 초기 시절 1927년 중국 남부에서 농민조직가 및 선동가로 싸우면서 전쟁을 할 때 세운 첫 번째 원칙은 단순한 생존 그 자체였다. 모택동은 시간에 대한 정치․혁명적인 감각을 군사작전 계획의 초석으로 여겼다. 서양의 군사가들이 거의 일생을 두고 제때에 병력을 집중시키는 문제에 골몰하였던 반면, 모는 어떻게 시간을 벌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일생을 보냈다.”
-->이것은 모의 군사적 시간 개념이 서양 제국주의(자본주의)의 군사적 시간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모는 생존을 위해 시간을 질질 끄는 방식을 취했다면, 자본주의에서 시간을 질질 끈다는 것은 낭비이며, 비효율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는 시간을 공간으로 바꾸는 반면에, 자본주의는 공간을 시간으로 바꾸려 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모의 시간론을 노동운동 진영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임금을 낮추더라도 시간적으로 자본의 생산성을 낮추면서, 낮추어진 자본의 생산성만큼 공간적으로 노동자의 자기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될 것이다. 사용가치의 공동구매와 공동소비, 이를 통한 여성의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 그리하여 하나의 공동 생활권을 만들 수 있는 물질적 기초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종의 진지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99쪽)
** (서양 자본주의의 시간 개념)
“서양에서 시간 개념은 시간이나 날, 달, 년 수의 관점에서 파악된다. 이러한 용어 중에서, 특별히 비축되지 않은 시간은 낭비된 시간으로 간주된다. 특히 미국의 군사적 관점에서 시간을 절약한다는 것은 교범에 제시된 원칙, 즉 병력의 절약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진다. 다시 말하면, 미국식의 군사계획에 있어서 병력을 증강시키는 경우, 군사적으로 최소로 필요한 만큼이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것은 남북전쟁 이후 현재까지 지녀온 작전상의 원칙이었다. 소모전-다시 말해서 시간이 아니라 병력을 절약해야 하는 원칙이 우선시되는 전쟁-은 이제까지 전쟁의 한 보조형태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100쪽)
** (모의 시간 개념)
“모는 시간이 기술을 격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무한정의 시간은 무엇보다도 무제한의 공간에 달려 있다. 서양의 저자와 달리 모는 하나의 전쟁을 빨리 종식시키는 문제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그의 문제는 전쟁을 지속시키는 일이다. 그는 거듭 이 주제로 되돌아온다 : “우리의 저항 전쟁은 단시일 내에 결판날 수 없다. 단지 지구전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장거리 여행을 통해서 말(馬)의 능역을 시험해 볼 수 있고, 장기간의 업무를 통해서 사람의 성격을 증명할 수 있듯이, 게릴라전은 장기간의 험난한 전쟁을 통해서 그 무한한 힘을 심증할 것이다.””
“모의 중요한 군사 저작들이 씌어졌던 1930년대에 서양의 군사적 관심은 산업문제, 즉 산업의 동원 및 그 전환 또는 산업의 파괴 등에 관한 문제였다. 서양의 모든 연구가들은 산업화가 전략에 미치는 충격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두에(Douhet)와 미첼(Mitchell) 같은 몇몇 연구가들은 산업의 심장부를 폭격함으로써 산업을 파괴시키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다른 사람들, 드골(De Gaulle)이나 풀러(Fuller), 그리고 구더리안(Guderian)과 같은 전차병들은 도로나 철도, 또는 산업국가의 동맥을 차단함으로써 동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군의 경우 많은 전쟁의 문제는 수로를 봉쇄함으로써 천연자원이 산업적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시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심지어 해군까지도, 제한된 공간의 관점에서 생각하였다. 반면 모택동만은 그렇지 않았다.”
(100~101쪽)
** (군사적인 용어로서 <공간> 개념)
“군사적인 용어로서 <공간>은 사용 가능한 통신망을 제외한 사방면적에 장애물들을 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방 10마일의 산악 정글지역은 사방 수백 마일의 기복진 평야에 해당되며, 이것은 또 도로와 철도로 누벼진 사방 수천 마일의 면적과 동일한 것이다. 중국에서의 바로 그러한 공간이 시간, 혁명조직, 정치적인 응집력, 그리고 승리를 낳게 할 수 있었고 이 점은 모가 지닌 낙관론의 근거였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그러면 어떻게 모는 공간이 시간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101쪽)
** (모의 전쟁철학 : 물질보다는 인간 우선론)
“모는 힘의 비율을 재평가해 본 것을 근거로 처음으로 전쟁철학을 창출하였다. 투쟁의 초기에 총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는 어쩔 수 없이 ‘혁명에서 무기만이 효과적인 도구는 아니다’라는 명제를 설정하였다. 그는 “무기는 전쟁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지 물질이 아니다”라고 쓰고 있다. 군사적이거나 경제적인 수단이 없던 모는 “<힘의 비율>(the ratio of strength)이라는 것이 군사적․경제적인 힘의 비교뿐만 아니라 인력이나 인간의 정신을 비교하는 것”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2쪽)
** (모의 <대체이론>)
“모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대체이론>이다. 총은 선전으로 대체하고, 공군력은 파괴로, 기계는 인간으로 대체하며, 기계화는 공간으로, 산업의 동원은 정치적인 동원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매일 매일의 실행 속에서 직관적으로 형성되며, 나아가 반성을 통해 전쟁이론으로 성숙된다.”
(102~103쪽)
** (모의 이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동원의 중요성)
“모는 초기의 발표를 통해서 두 가지 점을 강조했다. 첫째는 정치교육의 필요성이고, 둘째는 <민주적인> 군대의 필요성이다. (……) 모가 믿기에 정치적인 동원은 전쟁을 이기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다 : “인민은 물과 같고 군대는 물고기와 같다. 평범한 인민을 전국적으로 동원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바다를 만들 수 있고 적을 그 속에 익사시킬 수 있다.” 모는 진정한 이데올로기적인 의미의 정치적 전환의 동반물로서 군사적인 구원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48~49쪽)
** (빨치산, 게릴라의 역할)
“1년도 못돼서 독일군 전선의 후방에서 싸우는 (소비에트) 빨치산 전투대는 수송을 저지하고 통신을 차단했으며, 또 비축 보급물자를 파괴하고 상당수의 독일군을 사상했다. 이러한 <비정규군>의 활동은 극히 효과적이었으므로, 10만이 넘는 독일 군대도 전선으로 통하는 동맥과도 같은 보급로는 지킬 수는 없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동맥은 노동자 계급의 임노동이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과의 직접적 투쟁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게릴라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즉 자본의 형성 보급로를 차단,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게릴라로서 노동자 계급은 자본에게 포획되지 않으면서도 정규군으로서의 전면전을 실시해야 한다. 이 전면전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게릴라전은 자본에게 전멸 당하거나 포획되어 자본의 진지를 강화시키고 그 속으로 잠적한다. 이 전면전은 토대(비임노동자로서의 노동자의 자기 생산)-상부구조의 전 차원에서 보급이 끊긴 자본을 포위 공격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전면전을 통해 노동자 계급은 모든 반자본 투쟁 영역의 투쟁 주체가 되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 자본 : 공격, 노동 : 방어
자본을 노동 진영 깊숙이 어떻게 끌어들여서 보급로를 차단하도록 할 것인가, 그리하여 노동은 최종적으로 어떤 시점에서 방어에서 최후 공격으로 나아갈 것인가?(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따라서)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현 상황에서는 답이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 진영이 자본을 깊숙하게 끌어들일 만한 진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릴라로서 노동자 계급을 안전하게 보위할 만한 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진지 속으로 숨어들어가서 자본에 대한 다음 공격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 진영으로 숨어들어가 거꾸로 자본을 위한 게릴라가 되어 버린다. 노조의 어용화는 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58쪽~59쪽)
** (게릴라 형성의 두 가지 조건)
“러시아인들은 성공적인 게릴라 부대가 들어설 수 있는 필수적인 두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다. 즉 엄격한 규율을 받을 수 있는 용감하고 강인한 인민과, 빨치산 활동에 이상적인 엄폐물을 제공해 주는, 도로가 거의 날 수 없는 늪지대와 숲과 언덕지대가 그것이다.”
** <전국토의 전장화 전술(burnt soil tactics)>
“히틀러는 <전국토의 전장화 전술>에서 절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전술이 신중하게 고안된 전투방식이었다는 사실은, 총통 자신에게는 아닐지라도 곧 독일국방군에게는 분명히 인식되었다. 스탈린이 하달한 명령은 러시아 군대가 퇴각한 지역들에서 빨치산 대원들이 활동하기 위한 포괄적인 계획을 규정해 주는 기초가 되었다. 그 명령은 적에게 유용한 모든 재산의 파괴, 첩보 활동망과 선전망의 확보, 새로운 빨치산 단체의 조직, 지속적인 게릴라 활동에 필요한 은폐된 거점의 구축 그리고 낙오병들과 수용소에서 탈주한 전쟁포로들이 다시 모일 수 있는 장소의 지정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 노동자 계급 자신이 용감하고 강인한 인민으로 어떻게 생산될 것인가? 그리고 자본의 도로가 날 수 없는, 다시 말해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뽑아내는 데 있어서 별로 투자하고자 하진 않는 늪지대와 숲과 언덕지대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곳들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 실마리가 풀려야만 <전국토의 전장화 전술>이 가능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이 투자하고자 않는 부분은 바로 노동자 계급 자신의 노동력 재생산과 새로운 창조적 노동력의 생산,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노동력 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바로 자본의 아킬레스건이며 동맥을 차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60쪽)
** (게릴라의 조직 체계)
“빨치산운동의 (중앙조직인) 중앙참모부(central staff)는 (……) 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지라도, 그것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및 붉은 군대의 최고사령부와 동등한 지위를 누렸다.
중앙참모부 아래에는 최전선에 배치된 주요한 붉은 군대의 사령부에서 작전수행을 하는 지역참모(regional staffs)들이 있었다. 이 사령부들도 최전선 너머에 있는 빨치산 부대의 전략적 활동을 통솔했으며, 게릴라 활동과 붉은 군대의 대등한 협력관계에 대해 책임을 졌다. 그 다음으로 낮은 빨치산 조직 체제는 작전 집단(Operational Group)으로서 전투선 건너편에 위치하면서 각 지역에 일반전술을 하달했다. 상위 사령부와의 통신은 무선기나 연락비행기 또는 적군의 전선을 꿰뚫고 다니는 정보원들을 이용하였다.”
--> 게릴라로서 노동자 계급과 그 계급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영역과 부문의 조직은 노동조합 또는 당 그리고 여타의 조직들과 대등하면서도 독립적인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자 계급의 재생산과 새로운 생산 부문과 직결되는 여성해방 조직은 이른바 노동해방을 위한 조직의 하위 조직이 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며 차이를 인정하는 동등한 조직체로서 위치되어야만 한다.
(64쪽)
** (빨치산 부대의 방어 기본 이론)
“빨치산 부대들은 방어 시 가능한 한 공격목표 대상이 되지 않거나 그 대상권을 벗어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최대의 안전도와 공격력을 보유하기 위해 전개(展開)(군사용어로서 종으로 집중된 부대가 공격을 행하기 위해 종횡으로 공격대형을 전개함)되었다. 수은방울처럼 게릴라 부대들은 단일한 임무를 위해 신속하게 대부대로 결집될 수 있었으며 또 독일군이 반격을 취할 때에는 마찬가지로 재빠르게 십여 개의 분대들로 분해되어 흩어질 수도 있었다. 방어의 기본 이론이란 통상적인 전력 비교에 따라 적과의 접전을 피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동성과 유연성이 빨치산 대원들의 가장 강력한 전술적 특성이 되었다.”
--> 노동자 계급은 수은방울처럼 자신의 관계 형성을 끊임없이 바꿔 나가면서 자본의 공격을 무화시켜야 한다. 노동자 계급이 노동자, 특히 임노동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고정시킨다면 그것은 ‘가만히 있을 테니 때리시오’와 같은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은 가타리가 말했던 것처럼 ‘되기(becoming)’, 즉 소수자 되기의 전술을 통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특히 이 소수자 되기의 토대는 바로 ‘여성-되기’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은 ‘소수자 되기’의 기동성과 유연성이라는 핵심전술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해방은 없을 것이다.
(75쪽)
** (반 빨치산 작전)
“모든 반 빨치산 작전에 있어서 핵심적인 전술은 독일어로는 선명한 사냥용어인 몰이사냥(Kesseltreiben)으로 알려져 있다. Kessel은 주전자나 원(圓)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냥의 제일 목표는 먹이를 에워싸는(encircle) 것이라는 말이다. Treiben은 쳐부수는 것(to beat)을 뜻하는 것으로, 사냥감을 위협해서 함정으로 몰아넣고 그 다음에는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것을 의미한다.”
--> 이것은 자본이 노동자 계급을 공격할 때 쓰는 기본적 전략이다. 노동자 계급을 개별화, 원자화를 통해 고립시켜 포위 공격한다. 이는 제3자 개입 금지법을 통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75쪽~76쪽)
** (나치 독일군에 대항하는 데 사용된 러시아 빨치산 전술의 개요)
“뚜렷한 정치적 목적이 없으면, 게릴라는 비록 능수능란하게 전투에 임한다고 할지라도 일시적인 성공만을 거둘 수 있을 따름이다. 영구적인 성과란, 오로지 게릴라의 공적들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군사력과 정치역량이 강력할 경우에만 기대될 수 있는 법이다.”(『게릴라들-추격대에 대한 지침』(Guerrillas-Hints for Hunting Units) 중에서)
--> 여기서 뚜렷한 정치적 목적이란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 사회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과의 관계, 인간간의 사회적 관계를 통한 ‘~되기’가 현실화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 ‘~되기’가 현실화되는 것이 바로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며 노동자 계급이 게릴라로서 모든 반자본 투쟁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영구적 성과>란 바로 끊임없는 이러한 <~되기>라고 할 수 있다.
# 현대 게릴라전 연구 (오상카 외 지음, 편집부 편역, 세계, 1985) #
(38쪽~40쪽)
** (텍스트 내용의 핵심요지) 비정규군(게릴라)의 탈 중앙집권제의 위험성에 대한 레닌과 트로츠키의 지적.
--> 이에 관해서는 영화 <랜드 앤 프리덤>에서 무정부주의자와 품의 군사조직이 스탈린 군대에 의해 강제적으로 해산되는 장면을 참고하면 되겠다. 이는 프랑코와 그를 원조해 주는 제국주의 정규군대에 맞서기 위해서는 일사불란한 정규군대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는 일면적으로 타당하다. 각각의 게릴라 소부대가 서로간의 의사소통 관계(유기적 관계) 없이 각 소부대가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상대방의 정규군에게 각개격파 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커다란 특성인 원자화, 개별화와 관련이 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이나 소집단은 개별화, 원자화되어 있고 이 개별화, 원자화되어 있는 개인들이나 소집단들을 자본이 관계 맺게 하며, 만일 노동조합처럼 자본에 대항하는 경우 각개격파하여 궤멸시킨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탈 중앙집권적인 게릴라 전의 위험에 대하여 중앙집권적인 정규군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과도하게 중앙집권적 정규군에 집중할 경우, 즉 게릴라를 정규군으로 만드는 데 집중할 경우 싸움은 백전백패를 당할 게 뻔하다. 왜냐하면 질적으로 동일한 형식(중앙집권제)으로는 양적인 것만이 승패의 요인이 되고 양적으로 불리한 정규군화된 게릴라들은 이미 지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잘 보여 준다고 하겠다. 정규군에 대한 게릴라들의 싸움의 승패는 중앙집권화를 넘어서면서도 질적으로 새로운 관계 틀이 좌우한다고 보겠다. 탈 중앙집권적인 게릴라도 아니고, 중앙집권적인 정규군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2차 세계대전 중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베트남전>의 보기를 들어서 그 싹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전력이 부족한 상태에 있는 측의 싸움 형태는 게릴라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게릴라 전이 눈부신 전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질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바로 이순신의 경우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순신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한 장수라는 것이다. 이순신의 싸움은 게릴라전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순신은 서남 해안의 물길 지형을 이용해서 치고 빠지는 전술을 택했다. 그리고 그 전술을 위한 무기도 개발했다. 이순신은 절대로 정규군들이 하는 식으로 일대일로 붙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부하에게 도망가는 적을 절대로 쫓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런데 이순신은 마지막 노량 해전 때 도망가는 적을 쫓아 관음포구로 향해 갔다. 왜 이순신은 그랬을까? 이순신은 더 이상 게릴라전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명나라 육군과 수군의 수모를 받으면서도 육지를 탈환해서 앞으로의 싸움을 진지전으로 끌어가고자 하였다. 싸움의 힘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새로이 생산할 수 있는 진지로서의 육지의 탈환! 이것이 이순신이 무리하게 도망가는 왜군을 뒤쫓던 이유였다. 진지 없는 게릴라전은 결국 패배하게 돼 있다. 해방 후 남쪽의 빨치산의 최후는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싸움의 힘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새로이 생산할 수 있는 진지를 어디서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노동자 계급이 계급투쟁의 힘을 어디서 어떻게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새로이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 (45쪽) “전시에 나온 한 전말서는 보고하기를, “그 이전 투쟁에 있어서의 게릴라 운동과는 달리…… 게릴라 부대들도 작전하기에 안전한 기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하였다.”
(46쪽)
** (게릴라전의 특성- 비 중앙집권적, 탈 중앙집권화)
“중국의 유격전 개념은(공산당의 관점에서 볼 때) 확고하게 정립된 것이었음에 비해,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빨치산운동은 탈 중앙집권화의 경향을 띠었다. 중국의 비정규군들은 모택동과 주덕이 권력 장악을 위해 만든 그들 기구의 핵을 이루는 세력이었다. 모스크바 당국의 경우에 빨치산 운동은 지원군을 조직하고자 하는 시도였던 만큼. 인민과 병사들 간의 괴리를 제지하고자 하는 시도에 불과했다. 반 중앙집권제적 비정규군 세력은 시민전쟁 기간 동안에는 모스크바 공산당 정부에 비판적이었다. 모택동이 유격전의 개념을 실행에 옮겼을 때, 중국공산당원들은 결코 중앙집권제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며, 물론 비정규군들에 대해서도 편견이 깃든 반대도 하지 않았다. 전쟁 등으로 급박한 시기에도 소비에트 인민들이 정규군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군들의 전투는 처절한 것이었다.
(46쪽) “게릴라는 전술에 능하며 창조적이고 대담하며 독립적인 만큼, 실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질들은 공산당 최고 수뇌부 아래의 여러 수준에 맞는 훌륭한 공산당원들을 양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소비에트 지도자들은 비정규군에게 호의의 자세를 기꺼이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비정규군에서 이상형을 목도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6) 피타고라스학파
피타고라스학파는 순수한 학문적 학파라기보다는 종교적 학파에 가까웠다. 이 학파는 수적 조화(황금 비율, 하나(一)와 여럿(多), 음수와 양수, 홀수와 짝수 등)와 윤회설을 믿었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다. 이 수적 조화에 의해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하학이 엄청나게 발달하였다. 이 학파 초기에는 귀족들만이 이 학파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평민은 될 수 없었다(귀족들이 대 토지 소유 귀족들이었고 그리하여 토지는 거의 대부분이 귀족들의 소유였다. 그리고 토지의 정확한 분을 통한 토지 소유는 귀족들의 관심사였고, 이것이 기하학을 엄청나게 발달시킨 주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사회 혼란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던 시기에 사회적 혼란을 종교적으로 극복해 보고자 노력한 학파가 또한 피타고라스학파였다.
이 학파 역시 <다(多)의 공존>을 꾀하였는데, <수적 조화>를 사회의 상황에 적용시켜 <사회적 조화>를 꾀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던 당시의 일반 평민에게도 이 학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다시 말해서 일반 평민의 고통을 함께 경험함으로써 그 고통을 나누고자 하였고, 따라서 사회적 조화를 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 고통은 디오니소스적 고통과 오르페우스적 고통으로 표현된다.
디오니소스는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서 아버지는 제우스신이고 어머니는 인간이다. 어느 날 제우스는 자신의 본처인 헤라 몰래 지상에 내려왔다가 지상의 이름모를 아름다운 여인에게 반한다. 그래서 그 여인과 하룻밤을 같이 지냈는데,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디오니소스였다. 헤라가 매우 질투심이 강한 여신이라서 제우스도 함부로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 때문에 제우스는 헤라 몰래 디오니소스를 자신의 허벅지 속에 감춘다. 그러나 헤라는 제우스가 바람을 핀 것을 눈치 채고는 디오니소스의 생모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그러나 다행히 디오니소스는 헤라의 눈을 피하게 되고 자신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허벅지 속에서 크게 된다. 더 이상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클 수 없었던 디오니소스를 제우스는 디오니소스의 생모의 여동생 부부에게 맡겨져 크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라는 디오니소스를 직접 죽이는 대신에 디오니소스의 양부모(디오니소스 생모의 여동생 부부)를 디오니소스가 보는 데에서 생모처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이를 본 디오니소스는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디오니소스는 집을 떠나지만,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디오니소스는 지나가는 사람 아무를 붙잡고서 그를 도끼로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생모가 헤라에게서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그러다가 다시 정신이 돌아오면 자신이 헤라와 같은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 더해서 더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디오니소스는 결국 자살을 하게 된다. 제우스는 이런 디오니소스를 불쌍히 여겨 신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이 신이 바로 이른바 축제의 신, 술의 신인 바쿠스(박카스)이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아내인 에우리디케와 금실 좋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둘의 금실이 너무 좋아 신들의 노여움을 샀고, 결국 에우리디케는 독사에 물려 죽게 되고 하데스가 지배하고 있는 지하 세계(저승 세계)로 끌려가게 되었다. 오르페우스는 너무 슬픈 나머지 지하세계로 내려가게 되었다. 지하세계로 내려간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아내인 에우리디케를 돌려달라고 하데스에게 간청하였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의 간청을 듣고 에우리디케를 돌 주겠다고 오르페우스에게 약속하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오르페우스가 지상 세계로 나갈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상 세계의 문 앞에 거의 다 왔을 때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아내인 에우리디케가 잘 오고 있는지 궁금한 나머지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때 에우리디케는 지하 세계로 다시 끌려 가게 되었고 오르페우스는 너무나 상심하였다. 그 이후에 오르페우스는 오로지 에우리디케만 생각하고서 하프 연주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하프 연주가 너무 애절하고 아름다워서 트라키아 처녀들의 혼을 온통 빼 놓았다. 트라키아 처녀들은 오르페우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그래서 청혼을 하고자 하였으나, 오르페우스에겐 오직 에우리디케만 있었을 뿐 트리키아 처녀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트라키아 처녀들은 이에 분노하여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오르페우스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리하여 오르페우스의 몸을 갈가리 찢어 놓았고 저마다 오르페우스의 신체 일부분을 차지하였다. 남아 있는 것은 오르페우스의 에우리디케에 대한 영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머리만 남게 되었다. 트리키아 처녀들은 이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바다에 던져진 오르페우스의 머리는 바다를 동동 떠다니다가 <레스보스>라는 섬에 떠밀려 왔다. 이를 불쌍히 여긴 무우사들(음악의 여신들)이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 다시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하프 연주가 흘러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 소리는 바드를 건너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되었고 세계 곳곳의 처녀들이 이 소리를 듣고 구름처럼 몰려들게 되었다. 이 섬은 금남의 왕국인 여인들의 왕국이 되었다. 이로부터 레스비언(여인들의 왕국인 레스보스 섬에 사는 사람들, 여성 동성애자)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당시의 일반 평민들의 고통을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와 오르페우스의 고통에 비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 일반 평민들의 고통을 분담하여 사회적 조화를 꾀하고자 했던 피타고라스학파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 불평등이 하나의 종교적 단체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5) 원자론자들
파르메니데스와 같은 대 토지 소유 귀족들이 지배하던 귀족 정치 체제 아래에서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인간의 자유는 억압당함으로써 사회가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민주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민주주의자들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던 것이 데모크리토스를 위시한 원자론자들이었다(사실 원자론자도 상인이 주도적이었던 상민(常民) 계급을 대변하였던 민주주의자들이었다).
원자론자들은 위에서 말한 아낙시만드로스(아낙시만드로스도 민주주의자였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 그리하여 <물질적 요소와 그 물질적 요소들 간의 운동>이라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원자론자에게 있어 물질적 요소는 원자이다. 원자는 무수히 많은데, 이는 아낙시만드로스의 4가지 요소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초기 원자들의 속성은 크기, 모양밖에 없었다. 그러나 크기, 모양만으로는 운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후기 원자들의 속성은 크기, 모양 이외에 무게가 첨가되었다. 이러한 원자의 개념은 근대 이후의 자연과학에서의 <원자> 개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원자론자들은 원자들의 운동을 수직 자유 낙하 운동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운동을 위해서는 빈공간이 필요했는데 이 당시에는 빈공간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좌우의 운동은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빈공간은 근대에 와서야 <있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수직 자유 낙하 운동만으로는 만물의 발생을 설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물의 발생은 원자들의 결합과 분리에 의한 것인데, 수직 자유 낙하 운동으로는 원자들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자론자들은 수직 자유 낙하 운동을 수직과 거의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사선을 그리며 빗겨 내리는 자유 낙하 운동으로 수정하였다. 이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사선은 이후에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로 설명되었다. 그리고 근대 이후에는 이 자유의지의 현실태, 즉 현실적인 실천 활동으로서 노동으로 설명되었다.
그런데 <있는 것>으로 꽉 차 있는 곳에서 어떻게 수직 자유 낙하 운동이 아닌 운동이 가능한가? 예를 들어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우리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원자론자들의 답변은 물에서의 물고기의 유영(헤엄)에 비유된 것이었다. 이것은 상당히 궁색한 답변이다. 물에서의 물고기에 비유한 답변은 하나의 메타포어(비유)일 뿐이지 논리적인 답변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자론자들의 이론은 처음부터 결함이 많았다. 이는 지배 계급인 대 토지 소유 귀족들의 지배 사상인 파르메니데스 이론에 대해 대항하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자면 여전히 지배 계급의 사상이 새로운 사상을 압도할 만큼 주도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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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스가 쓴 책을 준비 중인데 남미 혁명이 많이 나와요. 나오면 젤 먼저 연락드립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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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둥> 염둥님! 감사감사감감사~~~...^^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