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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공포로 변해버린 금융허브의 꿈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공포로 변해버린 ‘금융허브의 꿈’
ㆍ1부 - (1) 아이슬란드를 가다

싼이자로 빌린 외국돈이 재앙의 부메랑으로
건설업체 줄도산 신축건물 대부분 공사중단


아 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북쪽의 항구 근처에서 지난 12일 바라본 대규모 빌딩 건설 현장. 아이슬란드는 지난 몇년간 부동산 거품을 타고 주택과 빌딩 신축이 활발했으나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몰리면서 곳곳에서 공사가 중단된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 김재중기자>

지난 7일 자정 무렵 아이슬란드 유일의 국제공항 케플라비크 공항에 도착한 기자를 차에 태운 현지 가이드는 “상황이 어떠냐”는 첫 질문에 “엉망이죠”라고 짧게 답하고 시동을 걸었다. 수도 레이캬비크로 향하는 왕복 4차선 고속도로는 부슬비에 젖어 가로등 불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 외신을 통해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취재일정 중 그런 곳을 찾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가이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환율이 폭등하면서 물가가 엄청나게 뛰었지만 아직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외국 돈을 빌려 집을 산 사람들과 부동산 업자들은 다 죽게 생겼습니다.”

레이캬비크 외곽지역의 한 쇼핑몰에서 전자제품 액세서리 가게를 하고 있는 피욜라(37·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남편과 그는 지난 4월 큰 맘먹고 2400만 크로나(당시 환율로 약 4억8000만원)를 대출 받아 집을 샀다.

실제로는 크로나화가 아닌 미국 달러, 일본 엔, 스위스 프랑, 유로 등 네가지 외국 돈을 섞어서 받았다. “1년 전부터 집 살 돈을 빌리기 위해 은행을 찾아가 상담을 하기 시작했는데 외국 돈을 빌리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하다고 조언을 해줬어요. 크로나화는 금리가 무척 비쌌지만 이자율이 싼 외국 돈들을 소개해줬죠.”

대화 도중 손님이 찾아오자 상냥한 미소로 맞이하던 그녀는 손님이 나가자 이내 심각해졌다. “그런데 지금 집을 판다고 해도 처음 대출 받았던 금액은 그대로 남아요.” 두딸을 키우고 있는 피욜라가 갚아야 할 대출금은 현재 4100만 크로나로 부풀었다. 거의 두배가 된 것이다. 매달 상환할 대출금도 두배가 됐다. 그러나 4000만 크로나에 산 집의 가격은 40% 가까이 떨어졌다. “일단 생활비를 4분의 1로 줄이기로 했어요. 처음엔 될까 했는데 어떻게 살아지긴 하더군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북유럽 민족 특유의 회색 섞인 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환율! 환율!

금 융위기 이후 아이슬란드는 순식간에 반토막이 돼 버린 크로나화 가치의 공포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누구든지 몇마디만 나누면 환율과 통화 이야기부터 했다. 금융위기 이전 1달러 당 65크로나 정도 하던 환율이 순식간에 137크로나로 폭등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에 따르면 2008년 4월 현재 아이슬란드 가계부채의 23~24%가 외환대출이다. 금융위기 이전 2100억 크로나이던 아이슬란드 전체 가계의 외환대출 규모도 현재 3300억~3500억 크로나가 됐다.

금융위기전 아이슬란드에서는 집값의 100%까지 가능했던 은행돈을 빌려 새 집을 짓거나 사는 게 유행이었다. 레이캬비크 외곽의 경우 고급주택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부촌’으로 지도가 바뀌었고, 시내 중심가 곳곳에는 사무용 빌딩 신축 붐이 일었다. 레이캬비크에서 3개의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는 올라브르 토르파손(57)은 “당시 20년도 안 된 집을 허물고 더 고급스러운 집을 짓는 게 유행이었어요. 미친 짓이었죠”라고 말했다. “하기야 당시엔 그게 미친 짓이 아니었어요. 2004년부터 레이캬비크의 주택가격은 매년 20~30%씩 뛰어올랐으니까요.” 주택뿐 아니다. 대학이나 동네마다 있는 실내체육관 건물도 지어진 지 2~3년밖에 되지 않은 새 건물 냄새가 났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 이사인 에르나 지슬라도티르는 “건설업계는 모두 끝났고, 다른 기업들도 절반이 살아남는다면 천만다행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내 곳곳에는 타워크레인이 우뚝한 건물 신축 현장이 쉽게 눈에 띄었다. 물론 대부분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10일 초저녁 레이캬비크 중심가 레이가베구르 거리의 한 레스토랑 앞에서 독일인 모녀 관광객 2명이 메뉴판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이슬란딕 퓨전 메뉴’라는 부제가 달린 메뉴판을 꼼꼼히 살펴보던 이들은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어깨를 으쓱인 뒤 길 반대편 레스토랑 쪽으로 사라졌다. “크로나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는 하지만, 지금 전세계가 위기인 상황이라 그리 만만할 것 같지는 않다”라는 토르파손의 말이 생각났다.

전통적으로 실업률이 1%대에 머물던 아이슬란드에서 실업의 공포는 서서히 검은 심연을 드러내고 있다.

시장점유율 12%의 자동차 수입회사 ‘비앤엘(B&L)’의 현대차 담당 매니저 브자르니 시구르드손을 11일 만났다.

시민 쇼핑카트엔 우유만 두팩뿐
실업 대란 예고 전국민의 1% 실업자 될판
살인적 물가에 “자본주의 끝났다” 탄식도


그 는 컴퓨터 마우스를 몇번 클릭하더니 모니터를 보여줬다. 현대차 판매 추이였다. 모니터 중간쯤에 그어졌던 선이 10월을 기점으로 곤두박질쳤다. “현대차를 한달에 60~100대가량 팔았지만 지난달엔 겨우 16대가 나갔습니다. 회사는 40% 감원계획을 세웠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시구르드손은 대답 대신 사무실 유리창 너머 번쩍이는 새차들로 가득차 있는 매장으로 시선을 보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회사 80여곳에서만 모두 3000명을 감원한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노동인구가 아닌)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의 1%가 거의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슬란드 노동법은 해고전 3개월의 여유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나 내년 초쯤 되면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의 사무실을 나오자 지난달 국유화된 글리트니르 은행의 지점이 눈에 띄었다. 창구에 있는 중년의 여직원에게 은행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상냥했던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노”라는 답이 돌아왔다. 일주일 내내 은행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매번 이런 식이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들 기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한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은행과 은행 경영진들, 정치인들은 금융위기를 불러온 주범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중앙은행의 지슬라도티르 이사가 말했다. “금융은 아이슬란드의 문화를 바꿔 놓았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비린내 나는 수산업을 과소평가하는 대신 높은 임금을 주고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은행들을 칭송했죠. 이제는 사고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이 깨달음이 한발 늦기는 했지만요.”

아이리쿠르 다그비아르트손(43)은 레이캬비크 남서쪽에 있는 조그만 수산도시 그린다빅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수산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아이슬란드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 그는 6년 전까지 선장으로 배를 탔었다. “수산업계는 지난 10~15년간 작은 업체들을 사들이며 외국 돈을 빌려다 썼고 그 결과 우리의 재무구조도 은행과 비슷해졌습니다.”

12일 퇴근길에 대형매장 ‘보누스’를 찾은 오타 오스프 욘스도티르(40·여)는 두바퀴째 돌았는데도 쇼핑 카트에는 우유만 두 팩뿐이다. 그는 과일 코너를 가리키더니 “두 달 전까지만 해도 1㎏에 150크로나였던 사과가 359크로나, 159크로나였던 바나나가 268크로나가 됐어요”라며 도리질을 했다. 그를 따라 매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계란, 통조림, 밀가루 등 순식간에 올라버린 식료품 값에 대한 ‘증언’이 계속됐다. 그는 268크로나 하는 밀가루 봉지를 보더니 “저게 전에는 100크로나였어요”라고 말했다. 현재 아이슬란드 물가는 연초 대비 15~20% 올랐지만 중앙은행은 최대 30%까지 뛸 것으로 보고 있다.

골프용품점을 운영하는 시구르 기슬리(57)는 매장 뒤편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요청에 “그 재미난 얘기를 들으러 왔습니까”라고 농담을 하더니 커피를 권했다. 그의 둘째 아들은 노르웨이의 대학에서 유학중이다. “한달에 9만크로나를 부치고 있는데 내가 보내는 돈은 그대로이지만 애가 받는 돈은 반토막이 됐습니다. 애가 일자리를 구해본다고 하는데, 안되면 잠시 들어와 있으라고 할 생각입니다.”

기슬리는 점원 야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친구 주장처럼 이제 자본주의가 끝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련 공산주의가 끝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나는 자유시장경제가 맞다고 봐요. 그렇지만 이전과 같은 모습은 안됩니다. 뭐랄까, ‘규제되는 자본주의’여야 한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를 떠나기 전날인 13일 기자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구드문드손은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아이슬란드의 온천이나 자연경관에 대한 사진이 필요하면 언제든 e메일로 요청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명예한국총영사다. 관광지 사진 얘기를 몇차례 더 하기에 “취재목적이 관광지 소개가 아닌 줄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는 밍크고래 고기 한 조각을 집으며 말했다. “잘 압니다. 하지만 당장 아이슬란드가 기댈 곳은 수산업과 관광산업입니다.” 이것이 금융 허브의 신기루가 사라진 아이슬란드의 알몸이었다.

<레이캬비크·그린다빅(아이슬란드) | 김재중기자 hermes@kyunghyang.com>

아이슬란드 경제의 몰락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슬란드 경제학자들은 감시·감독 없는 금융의 과대성장을 경제붕괴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들은 “이 위기가 언제 끝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환율·금리 정책실패가 위기의 원인”

■ 토르올브르 마티아손
아이슬란드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위기의 시발점은 어디인가.

“1996~2003년 은행들이 차례로 민영화됐다. 2001년엔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중앙은행은 물가가 목표치보다 높을 경우 이자율을 올렸다. 이자율이 오르자 일본 엔화를 비롯한 외국 자본들이 몰려왔고 크로나화가 강세를 띤 게 위기의 시작이다.”

- 현재 외환시장 상황은 어떤가.

“외환거래가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다. 금융허브로 불리던 아이슬란드가 외환거래에 있어 북한과 비슷한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한국 정부도 금융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한국이 자국 통화 대신 일본 엔화를 선택할 수 있겠나. 그게 아니라면, 엄청나게 많은 외환을 축적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허브를 시도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규모의 통화를 가지고 금융부문이 과대성장하면 결국 붕괴한다.”

“이 위기는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몰라”

■ 올라브르 이슬레이프손
레이캬비크 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왜 은행을 민영화했나.

“정부가 은행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서는 은행이 민영화될 당시 큰 비난을 받았다. 정치권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 은행이 넘어갔고, 은행 경영이 전문성이 없는 젊은 사람들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과도한 금융자유화가 문제라고 지적되고 있다.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은행소유주와 관련이 있는 기업들에 많은 돈이 대출되면서 은행을 약화시켰다.”

- 위기가 언제 끝날까.

“반대로 내가 물어보자. 세계적인 위기가 언제 끝날 것인가. 현재로선 세계적인 위기가 언제 끝날 지 전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지 않은가. 아이슬란드도 오히려 위기가 심화되는 조짐만 보이는 상황이다.”

-금융허브의 꿈은 살아날 수 있을까.

“금융허브의 꿈은 악몽으로 끝났다. 그 대가는 비싸다.”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 김재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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