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펌]일본 SF에 대한 글

[특집2] 확산과 침투의 30년 - 일본 SF를 돌아본다 2008.05.07


지난해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한국 대형 서점의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었다. 이 짧은 소설 혹은 우화는 사뭇 쉬이 읽히는 청춘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일본 SF의 동향을 조금 아는 독자라면 작가 츠츠이 야스타카가 일본 SF의 3대 거장에 드는 거물 작가이며, 부담 없고 모던해 보이는 이 소설이 이미 1967년에 발표한 주브나일(청소년) SF의 고전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소개하는 SF 소설이 주로 서구에 국한된 터라 일본 SF의 활발한 유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권 최고의 SF 강국이며 그 저변과 역사는 우리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본 SF계는 1954년에 이미 최초의 SF잡지 《성운》*을 발간했고(비록 1호로 끝나긴 했지만), 잡지 《SF 매거진》*은 1960년 창간 당시 이미 아서 C. 클라크, 필립 K. 딕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따끈따끈한 신작을 게재했다. 일본 SF계는 ‘성운상’*을 통하여 해외 SF 작품에 자국의 상을 수여하기도 하는데,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말에 겨우 번역 소개된 J.G. 발라드의 뉴웨이브 SF 《크리스털 월드》가 작품을 발표하고 몇 년 후인 1970년에 제1회 성운상을 수상했다.* 이때 일본과 서구 SF의 체감 시차는 3,4년 정도로, 반세기 전의 거장들조차도 아직 제대로 소개가 안 된 한국에 비하면 당시에도 거의 실시간으로 서구 SF를 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본격적으로 서구 SF가 유입된 것은 패전 이후이며, 아시아권이 서구 팝 컬처의 영향을 받는 일반적인 경로가 그렇듯이 미군 기지에서 흘러나온 페이퍼백이 장르 독자/작가를 양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처음부터 SF가 인기 장르로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에 간헐적으로 발간된 SF문고들은 대체로 오래 가지 못했고, 당시만 해도 ‘SF에 손대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957년 하야카와 서점*에서 영미 SF를 중심으로 발간한 ‘하야카와 판타지’ 시리즈는 순조롭게 증쇄를 거듭했으며, 1960년 하야카와 서점은 잡지 《SF 매거진》을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SF의 태동에는 잡지 《SF 매거진》이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잡지 하나가 모든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일본 SF의 1세대’라고 할 만한 작가들이 이 잡지의 지면에서 데뷔하거나 하야카와 서점의 SF 공모전에 입상하며 등장한 사실은 분명하다. 비평가이자 작가인 모리시타 카즈히토는 <일본 SF의 발자취>라는 글에서 1962년을 일본 SF의 시작으로 잡은 적이 있다. 이해에 고마츠 사쿄, 히라이 카즈마사, 미츠세 류 등이 《SF 매거진》을 통해 데뷔하고 츠츠이 야스타카, 도요타 류, 한무라 료 등이 제2회 공상과학소설 콘테스트*에 입선했기 때문이다. 1세대의 주요 작가들이 한 해에 집중해서 데뷔하거나 창작에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이 작가들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어지는 기사 <일본 SF의 대표작>을 참조하자. 그래도 이후 《일본침몰》로 일본 SF를 대중 엔터테인먼트의 첨병 자리에 올려놓는 고마츠 사쿄나 슬랩스틱 SF로 시작하여 특유의 독설과 풍자 정신으로 순문학과 장르문학 사이를 거침없이 오가는 츠츠이 야스타카의 이름 정도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SF 쇼트 노벨(초단편)의 명수 호시 신이치는 이때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며 지명도를 넓혀가고 있었다. 이들 고마츠 사쿄, 츠츠이 야스타카, 호시 신이치는 일본 SF 여명기의 3대 거장*으로, 이들이 한 시기에 모여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62년이다.
이밖에 미츠세 류는 ‘우주 연대기’ 시리즈를 통해 서정성과 종교적 테마를 중시한 우주 SF 장르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작가 마유무라 다쿠는 그 전해에 데뷔를 마치고 이해 첫 장편을 집필 중이었는데, 이후 관리 조직 속의 인간에 주목하는 ‘인사이더 SF'라는 독자적인 주제 의식을 발전시켰다. 이들과 《SF 매거진》의 초대 편집장 후쿠시마 마사미, 도쿄 대학에서 최초의 SF 강좌를 연 이시카와 타카시는 창작과 함께 평론 작업을 도맡았다. 여기에 더하여 서구 SF를 번역하고 소개한 이토 노리오, 노다 마사히로, 야노 테츠 등이 ‘일본 SF의 1세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SF는 아직 ‘소수의 엘리트들이 향유하는 문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 SF의 여명기는 저마다 “일본에 SF를 전파하자”는 열의로 가득했다. 비평가와 작가, 번역자들은 SF란 무엇인지, 일본에서 SF는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여나갔다. 풍부한 인재와 열의로 인해 일본 SF는 1970년대에 활짝 피어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을 읽은 독자라면 1970년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 만국박람회*가 일본인에게 어떤 모습이었는지 조금은 전달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기의 상징이었고, 패전 이후 일본 번영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과학’은 시대의 테마가 되었다.
1970년대에 일본 SF가 전성기를 맞은 까닭을 찾으려면 과학기술의 발전과 국가의 미래, 경제 성장의 자신감이 혼재된 사회 분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속에 SF를 일본의 ‘새로운 문학 방법론’으로 전파하기 위한 평론가와 작가들의 분투가 쌓였고, 작가와 평론가, 번역자 등 1세대의 활동을 팬의 입장에서 응원하던 이들이 ‘2세대’로 데뷔했다. 구세대가 활약하고 신세대가 더해지는 이 시기, 고마츠 사쿄의 《일본침몰》(1973)이 발간되고 같은 해 말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며 일본열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른다.
모두가 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을 때 일본열도의 침몰 가능성을 과학적 설정으로 묘사해낸 《일본침몰》은 국민적 주목을 끌 수밖에 없는 소재를 채택하고 ‘일본이 침몰할 위기에 처했을 때 타국은 일본을 도와줄 것인가’라는 국제 정치 관계를 소상히 반영하여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치부되던 SF를 국민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게 했다. 이처럼 일본인과 긴밀하게 관련된 상상을 전개하는 방식은 이후 일본 SF의 특징으로 확고히 자리잡는다. 《일본침몰》은 일본 SF를 서구 SF의 영향 아래에서 탈피시킨, ‘일본인 전용 SF’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또한 1974년에는 SF 애니메이션 《우주 전함 야마토》가 방영되면서 국민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이 시기야말로 일본 SF가 아서 C. 클라크나 아이작 아시모프 등 서구 SF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닌 자국 엔터테인먼트의 첨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1970년대에 1세대인 히라이 카즈마사는 일본식 초인 변신물인 ‘울프 가이’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었고, 라이트 노벨로 이어지는 일본 SF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무라 료는 일본 자위대가 사무라이 시대로 간다는 대체역사물 컨셉트의 《전국자위대(戰國自衛隊)》를 발표했는데, 1979년에 영화화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이러한 자국 SF로서의 대체역사물은 국내에서도 상당히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다). 한무라 료는 또 《돌의 혈맥(石の血脈)》으로 흡혈귀와 초고대사를 결합한 일본식 팩션인 ‘전기(傳奇)소설’의 효시가 되었고, 도요타 아리츠네는 미래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몽고군의 세계 지배를 막으려 한다는 내용의 《퇴마전기(退魔戰記)》를 발표했다.
이처럼 1970년대의 일본 SF는 장르의 사회적 위상과 대중적 위상을 동시에 드높이고 있었다. 이런 흐름은 엔터테인먼트의 선두에 SF를 자리하게 만들었고 팝 컬처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5년 츠츠이 야스타카가 ‘제14회 일본SF대회’의 모토를 ‘침투와 확산’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소설 일본 문단(大いなる助走)》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문단에서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잘 팔리기 때문에’ 갑자기 대접받는 SF작가의 울분이 희극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붐은 붐이었던 것이다.






1977년 영화 《스타워즈》가 등장하면서 SF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소위 ‘카도카와 상법’이 등장한 것도 역시 1970년대였는데, 이것은 서적을 서적만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를 동반한 상품으로 취급하여 마케팅/판매하는 기법이다. 출판사가 단지 서적만을 출간하는 회사가 아니라 영화화 등에 주체적으로 관여하는 거대 미디어 회사로 변신한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SF는 매스미디어에 적합한 장르 소재로 크게 각광받기 시작한다. 잡지만 해도 1970년대 말 《기상천외》 《SF 어드벤처》 《SF 보석》* 등이 잇달아 창간되고 더욱 많은 작가들이 데뷔했다. 일본 SF는 1980년 한 해에만 작품수 369점을 기록하는데, 이것은 10년 전의 4배, 20년 전의 123배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1980년대는 각종 멀티미디어에 흡수되어 일본 SF소설의 정체성이 점차 사라져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볼륨은 커졌지만 한편으로 소설보다는 ‘건담’ 시리즈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같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언급하는 것이 더 편리해지는 시기가 된 것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히트한다고 판타지 독자가 느는 것은 아닌 것처럼 SF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이 인기를 끈다고 SF소설 전체의 팬이 느는 것도 아니었다. SF식 아이디어는 만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팝 컬처 어디에도 등장했지만, 1980년대 말이 되면서 SF붐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잡지들도 거의 사라지고 《SF 매거진》 하나만 남았다.

이처럼 팝 컬처 속에 SF 요소가 거리낌 없이 쓰이고, 순수문학 작가가 SF 컨셉트의 작품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되었지만, SF만의 영토는 오히려 축소, 1990년대에는 “일본 SF가 사라졌다”는 결론을 내려지기에 이르었다. 현재 일본 SF는  ‘침투와 확산’의 시기를 거쳐 ‘투명화’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SF의 지난 흐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가치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일본 SF는 침투와 확산이라는 명제에 성공한 것 같다. 라이트노벨과 같은 대중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SF식 아이디어(사이보그, ESP, 평행우주, 나노머신,  등)를 활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 진지한 SF 독자들의 눈에 이러한 일본 SF는 지나치게 ‘연성화’되었다고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즉 모험활극 줄거리의 설정 자원으로 활용되고는 있지만, SF만이 줄 수 있는 과학적 경이감이나 성찰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미 저 작품들은 SF 장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현재 일본의 팝 컬처에서 활용되는 SF의 자원은 일본 SF 소설계가,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독자들이 수십 년 동안 쌓아놓은 역량과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이 ‘본격 SF’는 그만두고라도 SF라는 핵심 용어*조차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SF 소재’를 극중에 등장시키는데만도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간단하게 치부할 문화 역량이 아니다. 국내 SF팬으로서 이 정도까지만 되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에 비하면 국내 SF신은 아직 시작 단계이며 ‘지적 엘리트의 전유물’ ‘마니아들만의 읽을거리’라는 입장을 탈피하기 위해 이제 막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단계다. 지금은 ‘확산’하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기울이는 시점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식의 ‘확산’이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움직임은 없는 듯하다. 지금은 출판사나 작가가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확산과 침투의 시기가 몇 년 후에 닥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내 SF계는 ‘팝 컬처’로서의 SF 풍토를 만들어나가는 쪽을 우선할 것인가, 혹은 ‘SF의 본성’을 지키면서 ‘단단한 숫자’를 확보하는 데 전념할 것인가. 지금 당장 급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닥쳐올 것이다. 그 순간이 닥칠 때 일본 SF가 걸어간 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