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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치과 두번째... (9) 2007/04/24
  2. 난생 처음 치과병원... (7) 2007/04/17
  3. 북한산 진달래... (8) 2007/04/16
  4. 몇가지 불만... (5) 2007/04/13
  5. 월출산, 유달산.. (8) 2007/04/09
  6. 사고... (21) 2007/04/05
  7. 북한산 넘어 시청까지... (4) 2007/03/26
  8. 유기수를 왜 안내보내주는 것이야... (9) 2007/03/20
  9. 자전거...북한산... (6) 2007/03/19
  10. 아웃백.... (18) 2007/03/16

치과 두번째...

from 단순한 삶!!! 2007/04/24 16:51

오늘 치과병원엘 갔다.

잇몸에다 마취 주사를 놓고, 간호원이 약간의 청소를 하더니,

의사가 와서는 뭔가를 벅벅 긁어대는데 아프지느 않은데,

영 기분이 떨떠름했다.

그렇게 긁어대더니, 의사선생께서,

"안쪽 두번째 이에 충치가 좀 있네요, 시면 신경치료 받으러 오세요"

'그렇겠지, 어딘가 벌레먹은 놈이 있긴 할거야... 신경치료도 받아야 하는구나...'

 

치료 끝나고,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신경치료는 서너번 받아야 하고, 그 이빨은 결국 죽이는 거라 위에 뭘 씌워야 한단다.

치과 병원에 간 김에 어릴적에  빠지고 벌어진 앞니의 틈은 어케 해야 좋겠냐고 했더니,

두개를 좀 갈고 그기에 붙여서 두개를 크게 만들면 되겠단다.

그건 두번의 병원 방문으로 가능하단다. 비용은 한개당 35~45만원쯤.

말할때 바람도 새고, 보기에도 그런데, 이번에 아예 그것도 막기로 했다.

 

이제 돈좀 들어가게 생겼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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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4 16:51 2007/04/2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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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겨울이 오면서 찬물을 머금으면 왼쪽 어금니가 좀 시리다가 괜찮기도 해서,

그려려니 했는데,

이즈음에는 목욕탕 가서 소금을 한입 물면 그쪽이 아려 오고,

자주 불편함을 느끼는가 했는데,

음식을 먹거나 껌을 씹을때면 거의 오른쪽으로만 씹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위에서 들어온 풍월이 '치과병원은 무섭고,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었기에

감이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쩌랴, 한쪽으로만 씹고, 한쪽은 계속 불편하거나 아프다면

아픔과 돈을 무릅쓰고라도 찾아가 봐야 할 거 같아서 오늘 오후에 치과병원에 갔다.

태어나고 처음이다.

 

이리저리 불을 비춰 보고, 사진도 찍어보더니,

일단 스케일링을 하고 잇몸치료를 좀 하잖다.

이빨은 괜찮은 거 같은데, 치석으로 잇몸이 좀 내려 갔고, 그래서 염증이 있을수 있다는 것이다.

 

드러누웠는데, 얼굴에 입 부위만 뚫린 파란 천을 덮고서는

스케일링 해본적 있느냐고 묻는다. 처음이라고 했더니, 조금 아프고 불편하겠지만 참으란다.

그리고 한번에 깨끗하게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채석장에서 돌을 갈거나 자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빨과 잇몸이 만나는 곳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시큼함과 기분나쁜 아픔이 묻어난다.

두세 개 갈고 지나가니까 이런정도는 견딜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몸에 힘을 빼고 긴장을 풀고 편하게 있으려 하는데 그게 안된다.

약간의 시큼함이 스치기만 하면 가슴으로 목으로 움츠리고 긴장하는 바람에

수시로 상체가 뻣뻣해지는 걸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한쪽을 다 갈고서는 파란 천 걷어내고 양치하라고 해서 입에 물한모금 머금었다가 뱉었더니

시뻘건 핏물이 한입 쏟아지고, 모래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입안에서더 느껴지다가 개수대에 쏟아진다.

다시 반대편쪽...

아프지 않은 쪽은 훨씬 편하다. 아픈쪽은 어딘가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30-40분쯤 걸렸나 보다.

 

다른 치료는 없느냐고 했더니, 다음주에 다시 오면 잇몸치료를 하겠단다.

아픔은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불편한 아픔이긴 했지만...

돈은 치료비 17,300원 - 일단은 비싸지 않았다.

 

몸도 보수공사를 할 곳이 생기는 모양이다....

인간들은 너무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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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7 21:31 2007/04/17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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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고 궂은 날씨 계속 되다 토요일 오전에 활짝 개었다.

금요일날 당게시판에 산에 갈사람 같이 가자 했는데, 아무도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아침 일찍(6시 30분) 산에 가자 하니까 그럴수도 있겠다.

당의 정경화 부위원장은 저번에 일찍 산에 가면서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오후가 남게 되니까 하루가 길어져서 좋다고 했던가..

산오리는 늦게 가면 오르며 내리면서 사람들한테 치여서

아침 일찍 가는게 좋다.

 

차를 몰고 삼천사 아레에다 놓고, 7시가 안되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계곡으로 올라 갔지만, 이번에는 삼천사 턱밑의 능선을 오르기로 했다.

이게 응봉능선인가..



해가 의상능선 어느 봉우리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주위에는 온통 진달래가 흐드러지게(이거 적절한 표현 아닌듯 싶다) 피었다.

눈 돌리지 않아도 보이는게 모두 진달래 뿐이었는데,

지금이 진달래 꽃의 절정인 모양이다.

 

마지막 사진은 진달래가아니구나.. 이놈은 문수봉 아래서 찍은 거다.

 

 

바위위에도 진달래가 피었더라..

 

날씨는 종았다지만, 역시 하늘은 그리 맑아 지지 않았다.

이 봄날 파란 하늘을 기대하는 것은 역시 무리인가 보다.

멀리 삼각산의 모습이 보였는데, 구름인지 안개인지 가려서 개운하게 보이지 않는다.

 

능선을 계속 타고 올라가서 도달한 곳이 비봉능선의 사모바위.

사모바위에서 문수봉으로 갔다가 의상능선을 타고 부왕동 암문에서 삼천사계곡으로 빠졌다.

여기서부터는 여유 만만하게 놀면서, 진달래 꽃도 한줌 땄다.술담으려고..

 

산밑에 내려오니 1시....하루가 길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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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6 11:38 2007/04/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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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불만...

from 단순한 삶!!! 2007/04/13 17:04

1. 발주처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물론 술은 산오리의 주량을 초과해서 많이 마셨다. 가끔 발주처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하면, 점심으로 하는 건 어떠냐고 하지만,저녁을 먹어야 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요즘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밥 굶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을에게 밥을 얻어 먹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을이라고 특별히 돈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팀원 6명이 쓸수 있는 업무추진비라나 판공비라고 해야 연간 100만원 남짓인데, 그들에게 밥 두어끼 사줄 정도 밖에 안되는데 말이다.

갑의 요구가 무리하거나 판공비를 초과하게 되면 개인돈을 쓰거나 편법을 동원할수 있는 개연성이 있고, 실제로 언론에서 크게 우리 회사를 홍보시켜줬던 허위출장 건도 그런 것과 관련이 많은 듯하다.

하튼 이렇게 밥 사주고 얻어 먹는건 빨리 사라져야 할 관습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유구하게 전통은 이어져 오고, 이나라에서는 결코 사라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데 절망한다. 회사 다니고 싶지 않을때가 이럴때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산오리도 상당히 큰 규모의 일에서는 갑의 위치에 있기도하다. 그런데, 을이 와서 밥사겠다고 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그참 신기한 일이다. 산오리가 지켜야할(?) 갑의 지위는 도대체 누가 뺏어간 것이야?

 

2. 회사의 징계위원회가 있었다. 이 회사에서는 징계위원회가 열릴때마다 인사위원을 별도로 위촉한다. 산오리는 두번째인가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으로 위원회에 들어갔다. 물론 산오리는 상주는 것도 그렇지만, 벌도 확실하게 줘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별로 친분이나 개인 사정을 들어보면 당연히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조직은, 국민의 세금을 쓰는 회사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지 않았더라도 산오리의 주장대로 되지 않은 것은 정해진 것이었고, 또다시 절망한다.

그렇게 한 직장에 있는 사람들끼리 고강도의 처벌을 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징계의대상이 된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벌도 좀 당당하게 받으면 안될까...

 

3. 셋째동생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셔서 상가집에 가면서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외출(?)을 했다. 출발할때부터 부의금을 얼마를 줄거냐고 해서 얼마를 줄거라고 했더니 그렇게 많이 할 필요 없다고 줄이라고 해서 실갱이를 벌이다 결국 아내의 의견을 수용했다. 그리고 오고가는 두시간의 차안에서 아내가 한 얘기는 주로 남편 주변의 사람들이 마음에 안든다거나, 나태하다거나, 일도 제대로 안한다거나, 능력이 없다거나 이런 거였다. 듣다 듣다 산오리가 한마디 한 건 "그냥 남편이 마음에 안든다고 하지, 주위 사람들까지 거론할거 뭐 있나?"고 해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함께 외출하면 항상 싸우는게 공식이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싸우지는 않았지만, 다시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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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3 17:04 2007/04/1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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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병원에 누워 있었지만,  놀러 가는 거야 빼 놓을수 없지..

 

6일밤 KTX를 타고 목포로 갔고,  목포에서 택시비 3만원주고 구림이란곳으로 갔다. 12시 반이나 되서 도착했다. 그전에는 도갑사 입구 무슨 호텔 앞에 민박집에서 잔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민박을 안한다고 했단다. 구림마을에서 남도민박집이라고 운영을 하는데, 멋진 기와집의 너른 방을 빌려 주는데, 값도 쌌다. 4만원.

단 한가지 온돌은 아니고 전기패널을 깔았다는 걸 빼고는 그 분위기 하며, 아주 멋진 민박집이다. 

홍성친구들이 먼저 와서 이 집을 잡아 놓았다. 



천황사 입구로 이동해서 월출산을 올랐다.

절을 다시 짓고 있는 천황사지를 지나서 구름다리를 건너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올라 천황봉에 올랐다.

사람들이 많아서 천황봉 정상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고, 그 아래서 점심을 먹고 향로봉을 향했다.

날씨가 문제였다. 햇살은 밝고 따뜻하다 못해 더웠지만, 뿌연 안개인지 구름인지는 걷히지 않았고, 시계가 그리 멀지 못했다. 멀리 보인다면 남도의 파릇파릇한 들판을, 그리고 먼 바다를 볼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봄은 역시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산의 색깔도 가을만큼 되지 못했고, 바위모양은 기기묘묘했지만, 주위의 풍광은 그걸 받쳐주지 못했다고나 할까....

 

점심먹고 출발하자 한 공주가 어지럽다고 했는데, 바람재까지 가서는 도저히 도갑사까지 가는건 무리일거 같아서 경포대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바위나 계단이 그리 많지 않았고, 사람들도 드물어 오히려 호젓했다. 거의 다 내려와서 계곡물에는 산오리가 잘하는 계곡물에 몸담그기를 한번 했더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경포대에서 한 아줌마를 다른 관광버스에 올려 보내고, 나머지는 월출산 온천에 가서 다시 뜨거운 물에 담갔더니, 온천물이 좋은지 안좋은지 모르는 산오리야 그저 물에 담그기만 해도 피로가 확 풀리듯이  좋더라. 저녁에 다시 갈곳 없어서 다시 그 구림의 민박집으로 찾아와서는 잠자고...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서 밥 해 먹고는 목포로 오는 길로 나섰는데, 왕인박사 유적지인가 하는 곳이 바로 민박집 옆이라 길거리에서 실컫 벗꽃구경했는데, 영암에서 목포로 오는 그길이 모두 벗꽃터널이라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벗꽃길이 백리에 이른다니, 벗꽃터널을 계속 달려 왔다.

 

목포역에서 차표를 사고, 유달산에 올랐다. 목포도 처음이거니와 유달산도 당연처음이다. 3백미터 높이가 안되는 산이라지만, 막상 올라가보니 계단에 경사도 제법 되고 걸을만한 산이었다. 물론 한쪽으로는 목포시가지가 다 내려다 보이고, 반대쪽에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산이었는데, 역시 날씨가 멀리 보기에는 좋지 않았다.

쉬엄쉬엄 두어시간에 걸쳐 유달산 종주(?)를 하고 북항으로 가서 회한접시 먹고 낮술에 취해 목포역 광장에서 따뜻한 햇살 받으며 낮잠을 즐기다가 기차타고 돌아왔다. 

이틀밤을 잤던 남도 민박이다... 대궐같은 집에 겨우 두팀이 머물렀다는...

 

그야말로 바위산 뿐이네..바로 위에 보이는 봉우리가 천황봉이다.

구정봉 근처의 바위들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얼레지와 동백꽃이 수두룩하더라..

 

벗꽃축제는 끝났지만, 아직도 꽃은 절정이다.

유달산  꼭대기의 동백이다.

일등봉과 이등봉이다....봉우리 이름하고는...

 

북항근처의 유달산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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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9 22:03 2007/04/0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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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from 단순한 삶!!! 2007/04/05 09:19

지난 28일 저녁...

국선도를 하고 약속장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좌회전하려고 서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쾅하는 소리가 나고,

고개를 들어보니, 차 한대가 내 앞으로 밀려 오고 있었다.

차를 뒤로 빼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으나 그건 생각뿐이었고,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꽉 잡고 그냥 버텼다.

그리고는 밀려오던 그 차는 내 앞을 들이받았고,

왼쪽의 반대편 차로로 돌아가서는 멈췄다.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비가 온데다 제법 쌀쌀했다)

밤 늦게 잠간 만나려던 사람들의 얼굴을 봤고,

다음날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바쁜 일들을 해치웠는데,

오후가 되면서 슬슬 목과 어깨 가슴이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가서 사진찍고 입원하겠다고 했고,

그날부터 어제까지 7일간 병원에 있었다.

 



병원에 드러누워 있으면 쉬기 좋은 것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름대로 병원생활도 바빠서,

아침에 링거에,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 했고,

오전오후로 물리치료 받고,

정시에 맞춰 주는 맛없는 밥을 해치워야 했고,

옆의 동거인들이 켜 놓은 텔레비전을 봐야 했고,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환자침대에서 잠을 자야했기에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회사일을 잊어 버렸고,

인터넷에 접속할 일도 없었고,

머리 써야 할 일이 없었기에 편한한 날들이었다.

겨우 소설책 서너권 봤구나.

 

텔레비전에서 연일 떠들어대는 에프티에이 소식을 보고

짜증을 내긴 했지만,

병원에 있다는 이유로

집회 한번 가지 않아서 미안함이 크더라.

 

회사 동료들은 점심 같이 먹자고 와서 밥도 사줬고

사고를 알게된 가족들과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해줘서

한편으로는 똑같은 얘기 설명하는게 귀찮기도 했는데,

그보다는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며... 

 

차 몰고 다니면서 신호도 잘지켜야 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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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5 09:19 2007/04/0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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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집회에 가는데,

그냥 오전에 맹숭맹숭하다가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당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북한산 넘어 집회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갈 사람은 연락달라고...



한 명도 같이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는거..

 

어쩌랴. 아침 7시에 집을 나와서 구파발에 8시쯤에 도착,

바로 버스 타고 삼천리골로 들어섰다.

 

혼자 등산은 잘 안하는 편이지만,

혼자 산길을 걷는 것이 어쩌면 가장 편하고 좋다.

우선 누구를 신경쓸 일도 없고,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면 된다.

그기다 아무데서나 샛길로 빠져서  혼자 놀다 가면 된다.

 

덕분에 자주 간 삼천리골이지만,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전날 비가 내린 덕분에 물도 제법 있었다.

 

 

뿌리채 뽑힌 나무는

 

놀며 놀며 문수봉을 올랐고, 대남문을 거쳐서 가보지 않은 보현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성곽을 따라 올라 가다가 성벽을 넘어서 내려 섰는데,

처음에는 약간 길이 보이는 듯 하더니, 금새 바위로 가로 막혔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길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길도 모르는 바위로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나만 바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위로 올라가는건 포기하고, 우회 하기로 했는데,

아랫쪽으로 내려와 봐도 역시 길은 없다. 그 바위위로 사람 몇이 내려오는게 보이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배가 고파서 따뜻한 바위에 걸터앉아 김밥과 컵라면을 먹고

경사가 급한 곳을 기어 내려와서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정릉이나 북악터널에서 대성문으로 가는 넓은길...

 

북악터널로 가는 길은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길이라 새로운 기분으로 내려오는데,

올라갈때와 달리 낮이 되니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부대껴서

설렁설렁 여유있게 가기가 쉽지 않다.

영불사 아래 내려와서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발 담그려 보니까 개구리알이 엄청 많기도 하더라..

 

생강나무 꽃이 노랗게 피고 있었고, 진달래는 아직 봉우리만 붉게 솓아 오르고 있었다.

 

 

북악터널 입구에서 버스타고 시청앞 광장으로..

두어시간 집회에 앉았다가 종로로 가라해서 종로를 돌아 다니다가,

6시 넘어서 부터 저녁먹고 술먹고 놀다가 집에 돌아왔다... 긴 하루였네.

 

시청앞 집회에 있었는데 앞에 앉았던 꼬마는 열심히 뭔가를 뒤지고 있었다.

애들의 호기심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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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6 12:56 2007/03/2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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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수가 감방에 갇힌 지도 반년이 넘었나 보다..

도대체 유기수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 그리 오래도 가둬놓는지 모를일이다.

유기수가 밖에 있으면 저네들에게 무슨 위험이라도 되는 것인지

그렇게 가둬둬서 저들에게 무슨 경제적인 효과나

세계화에 도움이 되는지 모를일이다....

 

22일 2심 재판이 있는데,

탄원서를 내기로했다고 해서 몇자 적었다.

 

탄원서 문제가 아니라,

법 없이도 살수있는 유기수는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

 

유기수를 석방하라!!!!!!

수를 석방하라!!!!

석방하라!!!!

하라!!!!

!!!!

 

소리지를 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ㅠㅠ



 

탄  원  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곳곳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 지고, 점심시간에 햇살 아래 나서면 언제 겨울이 있었냐 싶을 만큼 성큼 봄이 다가와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기운이 남아 일교차는 크다고 합니다. 환절기에 재판장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과학기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연구관리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곽장영이라고 합니다. 대학 졸업하고 2년여 지난 후에 이 직장에 들어와서 내년이면 20년을 근무하게 됩니다. 20년 세월동안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막상 되돌아 보면 해 놓은 것이 없다는 게 보입니다. 세월이 화살과 같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느껴지는 요즈음입니다.

언제 얼굴을 뵌 적도 없고, 성함 조차도 모르는 재판장님을 향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재판을 받고 있는 유기수가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그리고 노동자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재판장님의 관용과 선처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저는 유기수와 처음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만났습니다. 웬 시커먼 사람이 투박한 시골아저씨 같았는데, 실제로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도 시골아저씨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을 향한 애정이 넘치고,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면서 노동자들의 곁을 항상 지키고 있고, 어려움에 처한 동료가 있으면 먼저 발벗고 나서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노동조합 간부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동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유기수는 달랐습니다.

그런 유기수가 아직까지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번에는 유기수가 가족의 품으로, 노동자의 품으로 돌아올수 있도록 선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유기수를 더 잘 알게 된 것은 2000년 총선 때 였습니다. 그 당시에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지고, 고양시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유기수의 선거운동을 도와주면서 유기수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이 9명이나 있고, 전국적으로 조직도 있고, 당원도 10만명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유기수는 새벽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끊임없이 발로 뛰어다니며 유권자를 만나고 다녔습니다. 그의 이런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보고 많은 유권자들이 표를 주었습니다. 유권자들은 다음에 나오면 꼭 당선될 거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맨땅에서 몇 명 안되는 당원들이 2만원, 3만원씩 내서 선거자금을 만들고 저 같은 직장인들이 아침저녁이나 주말에 함께 나서주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현대중기 노동자들이 함께 선거운동을 하면서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현대중기 노동자들은 구조조정과정에서 유기수와 2년여를 동고동락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유기수를 위해 민주노동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50대, 60대 노동자들이 함께 뛰어 주었습니다. 인간 유기수를 보고 그들은 먼 지방에도 달려와서 함께 해 준 것입니다.

이런 유기수가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하니, 눈물이 나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유기수가 눈물짓고 있는 노동자들의 품으로 돌아 올수 있도록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요즈음 노동자들은 기댈 곳이 없습니다. 언론에서는 귀족노동자다, 폭력적이다 하면서 노동자들을 이방인 처럼 취급해 왔고, 이로 인해 국민들로부터도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도 엄연히 국민이고, 또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산업역군으로 충분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신다면 유기수에게 1심에서 떨어진 형량은 너무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야 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 재판장님들께서 법에 따라 가장 합당한 판결을 내렸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해 보지만, 다른 사건들과 비교해 봐도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유기수야 말로 사회에서 ‘법 없이도 살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을 것이라고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그의 성격과 소신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 싸웠다는 것이 큰 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죄로 인해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유기수는 갇혀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죄값을 치럿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유기수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노동자들의 품으로 돌아갈수 있도록 재판장님의 선처를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재판장님의 건승을 기원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2007년 3월 2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 2311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관리팀장

                                       곽   장   영    올림








재판장님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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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0 20:59 2007/03/2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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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따뜻해지니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토욜 오후에 자전거 포에 가서 앞뒤 튜브를 갈아 달라고 했다. 튜브 한개 8천원씩이란다.

근데, 바퀴를 보니 바퀴도 갈아야 될  때가 된거 같다.

97년 연말즈음에 사서는 지금까지 타고 있었으니,

앞바퀴는 고무가 갈라지고, 뒷바퀴는 땅바닥에 닿는 면이 거의 평면이 될 정도다.

그러니 아무리 밟아도 힘만들지 싶다.



바퀴 가는건 얼마냐고 했더니 만오천원이란다. 앞뒤 바퀴와 튜브 다 갈아달라고 했다.

자전거포 아저씨 열심히 바퀴, 튜브 갈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서는 자전거에 부착하는 물통을 산다.

산오리도 그 물통 하나 달아 달라고 했다. 여름에는 물통하나 필요하겠다.

계산하려고 했더니, 4만5천원 달란다...

' 더 받아야 되는거 아닌가요?' 했더니 바퀴와 튜브를 같이 갈면 2만원이란다.

 

그래도 겨울철 안타고 세워두었다가 다시 탈때는 기름칠도 좀 하고, 관리를 한 덕분인지,

바퀴 새로 갈았더니, 새자전거가 되었다. 밟으면 훨씬 부드럽게 나가기도 하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동명이 버스타고 가라하고, 자전거로 출근했다.

진짜 몇년만에 출근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오니, 기분은 좋은데, 꽤나 힘들었다.

 

 

열심히 놀고 온 이후에 비실거리면서  있었더니 산에 간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2월 태백산이 마지막이었나?

당의 정 부위원장이 일욜 시간 있으면 산에 가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9시에 구파발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그럼 일요일이 다 깨지니까 좀 일찍 만나잔다.

그러고는 정이 당게시판에 산에 가자고 올렸는데, 호응은 없다.

나중에 게시판에 들어가 봤더니 아침 6시에 구파발역으로 올렸더라...

아이구, 6시에 산에 가겠다고 구파발로 나올 인간이 누가 있겠냐??

 

그래도 이 전 위원장이 느지막히 차를 몰고 나타나서 셋이서 의상봉으로 올랐다.

아침 일찍 갔더니, 너무 호젓하고, 사람들이 없어서 좋더라.

의상봉 코스를 가는건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다, 바위도 꽤 타야 해서 아침부터 땀 좀 빼고...

문수봉까지 가서는 펼쳐 놓고 노닥거리고 놀다가, 산성계곡으로 내려왔다.

7시 좀 안되서 출발해서 아래 주차장에 닿은건 1시 20분....

 

집에 오니 겨우 2시.. 한숨 퍼져 자고도 시간이 많이 남긴 했다.

또 내려오는 길에는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고 있어서 혼잡스러웠다.

좀 귀찮더라도 담부터는 아침일찍 산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봄을 느끼기에는 아직 일렀다. 진달래가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유심히 들여다 봐야 했고, 다른 나무와 풀들은 보이지 않게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계곡에는 지난주의 비 때문인지 맑은 물이  많이 흘렀기에 봄이 오고 있다는 걸 느끼게 했고,

아랫쪽에 다 내려오니까 나무의 파란 잎새가 나오고 있었다.

햇살 따뜻했지만, 하늘 색깔은 그리 파랗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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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9 12:49 2007/03/1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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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백....

from 단순한 삶!!! 2007/03/16 15:55

이름이야 들어서, 가끔 지나가는 길에 간판을 봐서 알지만 처음 갔다.

 

이 팀원이란 인간들이, 새해가 들어서 석달이 되어 가니까 같이 밥이나 한끼 먹자고 했는데,

밥이라기 보다는 저녁에 소주라도 한잔 마시자 했는데,

도무지 시간 맞추기 어렵다고 오늘 점심을 같이 먹잔다.

그러자고 했는데,

또 한 팀원은 오후 휴가내고 일찍 가버리는 바람에 5명이 점심을 먹었다.



우리 팀의 가장 이쁘고 나이 어린, 그리고 유일한 여성이고 아줌마인 엄지의 몫인데,

잡은 곳이 아웃백이란다..

 

나머지 네명의 아저씨들은 한마디씩 하면서 우거지 상을 한다.

'이럴때 아니면 언제 우리가 아웃백을 가보겠어?' 산오리가 한마디 보태서 겨우 갔다.

 

점심특선인가 뭔가 해서 야채랑 커피랑 다 주는걸 각자 하나씩 시켰는데

그것도 2만원씩은 된다.

 

아웃백이나 빕스나 이런데는 음식 만드는 주방장이 없는 햄버거집이나 다를바 없다,

이런 걸 왜 이렇게 비싸게 돈주고 먹는지 모르겠다,

30대 이상의 남자가 이런 데 가는 사람 있겠느냐?

20대라도 여자가 가자니까 할수 없이 끌려 가는거 아니겠냐?

 

온갖 불평과 불만을 다 쏟아내서 음식점을 정한 엄지를 무안하게 만들었는데,

그래도 엄지는 꿋꿋하게,

'비싼 거 사주면, 그리고 그게 내돈 내는 거 아니면 사람이 싫어도 따라간다'고 한마디...

 

야채 샐러드가 나와서 다들 들고 있는 포크와 칼은 산오리에겐 왜 안주냐고 했더니,

그 손수건 같은데 싸여 있었다는 것....

 

어쨌든, 공짜로 준다는 빵만 몇개를 더 시켜 먹고는,

막상 시킨 음식 나온거 는 다 먹지도 못하고(배부른건 둘째 치고 느끼해서 다 먹기 힘들더라)

나오는데, 팀 카드 갖고 왔냐고 물었더니 엄지가 안가져 왔단다.

팀 회식으로 업무추진비로 쓰려고 했더니, 카드 안가지고 왔으니,

산오리가 그 비싼 밥값 냈다.....

 

맛도 없는데다 비싸기 까지 한데, 그거 생돈까지 내고 나니,

뱃속에서 소화는 안되고  속이 더부룩하다,,, 아직까지... 

 

다음에는 절대로 가지 말아야지,, 이런 음식점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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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6 15:55 2007/03/1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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