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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 - 야딩(14-야딩춘) - 길위에서 길을

043 - 야딩(14-야딩춘) - 길위에서 길을

점심때가 다되어서야 기사는 왔다.

민박집 주인장과 가족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우선 야딩춘으로 갔다.

야딩춘(亞丁村 아정촌)에는 차량 두어대만 있을뿐 한산하고 조용했다.

 

음료수와 과자 좀 사고 야딩춘을 출발했다.

다들 아침(죽)을 든든히 먹어서인지 점심생각이 별로 없다고 한다.

 

한가한 야딩춘의 모습

 

 

 

 

 

 

 

 

 

 

야딩춘의 거주 가구는 몇이고 인구는 얼마고 그런게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오래되어서인지 불명확했다.

 

 

야딩춘에서 바라본 하납다길 신산

내 똑딱이를 있는 힘껏 땡겨 보았다.

 

야딩춘에서는 하납다길 신산과 선내일 신산이 함께 보인다.

 

 

 

야딩춘은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동안 머물고 싶은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고개위에 이르자 야딩춘이 한눈에 들어왔다.

야딩을 소개하는 많은 곳에서 본 장면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른 모습의 야딩춘 아름답다는 말 이외가 필요 없다.

 

 

 

 

 

 

고개에 오르자 아래로는 아름다운 야딩춘이

멀리로는 선내일 신산과 하납다길 신산이 동시에 보인다.

 

야딩이야 말로 많은 댓가를 지불하고도 와볼만한 곳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선내일 신산

 

 

차는 산길을 굽이 굽이 돌아 나가고 있었다.

야딩에 올때는 캄캄한 새벽이어서 잘 못 보았는데,

아름다움에 비례하여  길 참 험했다.

 

 

황토빛이 아름다운 마을 모습 

 

 

야딩이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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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 - 야딩(13-농농바) - 길위에서 길을

042 - 야딩(13-농농바) - 길위에서 길을

 

이른 아침부터 시끄럽다.

가축들이 아침을 먹는다.

 

 

 

먹이를 찾고 있는 돼지

 

우선은 따오청으로 돌아 갈 차량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주인집 아들 친구가 찾아왔지만 가격이 적절하지 않은지 협상이 잘 안된다.

우리측 협상은 아마추어 사진 작가인 중국인 친구가 맡았다.

 

이 친구는 결혼사진을 찍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직업보다는 여행하며 사진찍는 것을

더 좋아한단다. 9살 딸이 있다는데 이번 여행은 미인과 중국최고로 아름다운

향촌고진(鄕村古鎭 : 옛 시골마을) 중의 하나인 단빠를 거쳐 티벳불교 교육기관이 있는 서다(色達)까지

갈 예정이란다.

 

야딩 매표소 입구까지 가서 차량을 수배해보았지만 없기는 매 한가지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첫날 이용한 따오청 숙소의 기사를 불렀다.

어짜피 다시 오는 것이기 때문에 400위안에 합의했다.

 

맨처음 왕복으로 1000위안(5명)에 계약했었는데 별도의 추가비용이 발생했다.

2007년 여름에 야딩을 방문했던 한국분(현재 난징에서 일하고 있음)에게서

1200위안에 차량을 빌렸다고 했고 청뚜에서 만난 분한테는 1주후인 11월초에는

경쟁을 붙여 750위안(이때부터는 정말 비수기)에도 왔다고 한다.

 

따오청에서 야딩까지 오는데 세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휴식을 취했다.

아침은 민박집 주인식구들과 함께 죽과 짠바(청보리 가루)를 먹었다.

이건 돈을 안받겠단다. 물론 수유차도,,,,

 

 

주인집 가족들

 

할머니와 아들 내외 그리고 손자내외, 그리고 증손자와 증손녀 이렇게 대가족이었다.

가운데가 가장인 아들, 그리고 그 옆이 그의 아들, 할머니가 업고 있는 아이는 증손녀로

머리를 짧게 하였지만 여자아이다.

 

아들과 할머니는 숙소 옆에 있는 작은집에서 기거한다.

 

 

주인집 가장이 기거 하는 집

 

 

집안에 있는 난로 겸 주방

 

 

작은 안마당에서 우린 해바라기도 하며 차를 기다렸다.

 

 

향을 피우는 곳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숙소 지붕에는 청보리를 건조시키고 있었다.

 

 

창틀에는 뿌리를 내린 들풀과 마니석이 있었다.

 

 

작은 채소밭도 있었다.

가축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천막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사나움을 자랑하는 티벳의 개

 

할머니가 어린 증손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는 증조할머니 곁을 떠나려 하질 않는다.

 

어릴적 나도 농사일에 바쁜 어머니 대신 팔할을 할머니가 업어 키우셨다 한다.

 

 

따오청 삼신산(三神山)에 경배를 드리는 할머니.

 

매일 자주 절을 올린다고 한다.

 

 

농농바 민박집에서 바라본 선나이르 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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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 야딩(12-선내일 신산)- 길위에서 길을

041 - 야딩(12-선내일 신산)- 길위에서 길을

선내일 신산(仙乃日 神山 선나이르 신산)이 관세음 보살의 현신인 것은

그 모양새에 있어서 연화(蓮花, 연꽃) 의 좌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선내일 신산 - 그 모양이 연곷 좌대(부처님의 좌대는 연꽃)

 

 

장엄한 기운의 선내일 신산 ---  그 앞에 작은 검은새(아마도 까마귀)

  

 

나뭇가지 끝에 정좌한 검은새

 

하루 일과를 마치고 거처로 돌아가기전 저녁 예불을 드리는 듯 하다,

검은 것은 더 검게, 흰것은 더욱 희게,,,,,이게 흑백이 만날때 더욱 도드라져 보엿다.

 

이미 땅거미가 내려 앉을 분위기이다.

마지막이 항상 힘들지만 많이 걸어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입구를 앞둔 충고쓰 이후는 무건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중국인 친구는 낙융목장부터 입구까지 말을 타는데 150위안(元)을 지급했다.

좀 비싸다는 느낌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하산길 마지막 구간

 

 

멀어져 가는 하납다길 신산

 

입구(매표소)에 도착하자 표를 사란다.

허걱 입장할때 표두 안팔구서(입장시간이 오전 7시, 넘 이르다) 나갈때 표를 사란다.

 

야딩이 공식적으로 출입금지되었지만 표는 판단다.

그리고 대부분 여행자가 아침 일찍 출입하는 것을 알기때문에 저녁 늦게는 업무시간이 지났지만

표 팔기 위해 지켜서 있다. 그런데 학생표는 없단다.

 

현재(2007년 10월 29일)는 공식적으로 출입이 허가가 되지 않아  학생표는 없다.

이후 공식 개장되면 학생표도 만들거라 한다.

 

표는 150위안(元)이다.

 

입구에서 혹 따오청 갈 수 있는 차량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저녁이 다되어서 실패했다 .

그럼 하루 더 묵어야지...숙소를 구하려 하는데 입구에서 만난 노인이 자신의 집으로 가잔다.

거리도 입구에서 야딩촌보다 더 가깝단다.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그 노인을 따라 나섰다.

 

 

 농농바 언덕위에 자리잡은 민박집  

 

숙박비는 1인당 하루 20위안(元)이었다.

비교적 최근(2007년 8월)에 내부를 새로 개조해서 집은 깨끗했다.

늘어나는 야딩 여행객을 상대로 숙박업을 하기 위해 무리해서 큰 돈들여 수리했는데

예상치 않게 야딩 출입이 금지되어 그동안 별 재미를 못보았단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오후에 야딩 출입구에 나가서 손님을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를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숙소가 정해져 있는 여행객이

많아서 쉽지는 않다고 한다.

 

화려하게 장식된 응접실

 

 

 

 

 

 

 

 

 

 

응접실에 불을 피우고, 우선 수유차로 허기와 피로를 달랬다.

그리고 저녁을 주문했다.

중국인 친구가 부엌에 가서 재료를 보고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거의 이틀만에 밥을 보니 시장이 반찬이라고 먹을 만했다.

저녁밥값은 30위안. (세명이니 1인당 10위안)

 

 

만 이틀만에 먹어보는 밥다운 밥,

우리셋은 거지꼴한 이몽룡이 월매한테 얻은 밥먹듯 '밥아 너본지 오래구나' 하면서

게걸스럽게 해치웠다.

 

 

적어도 20여명은 잘만한 방에서 3명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퍼졌다.

물론 비단 금침을 뒤집어 쓰고,,,,,

그런데 새벽녁 서선생(쥐)이 새벽강연을 하는지 요란을 떨었다.

 

그렇게 농농바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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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 - 야딩(11) - 길위에서 길을

040 - 야딩(11) - 길위에서 길을

 

낙융목장을 지나서도 여전히 전화는 불통이다.

이런땐 낙천주의가 좋다. 잘 되겠지...

 

 

 

한참을 걷던 데이비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잠시만 기달려 달란다.

그러더니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숲으로 들어간지 한참을 지나서야 득의(得意)한 표정으로 나온다.

편안해졌나보다.

 

예전에 윈난에서 만난 중국인 한테 들은 이야기다.

 

신장위그르자치구를 여행하던 중 용변이 급해서 화장실을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한다.

 

지나가던 사람한테 물어보니 자기를 따라 오란다. 그런데 돈을 받는단다.

1위안이란다. (중국에서 대부분의 화장실이 유료다)

먼저 돈을 달란다. 그래서 주었다고 한다.

 

한참을 걸어 웬 허허벌판에서 그 사람 말

"여기가 내땅이니 맘대로 하라, 상관 없다 - 저쓰 워더 띠, 수이비엔"

허걱,,,일행중 여자도 있어 화장실을 찾은 건데...

 

여자도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화장실을 찾으면 우리는 항상 "수이비엔(편한대로,,,)" 그랬다.

 

 

고사목도 있었다.

 

 

 

 

 

 

벌써 그림자가 늘어지기 시작했다.

 

 

구름과 양메이용 신산

 

하납다길 신산의 여러 모습

 

 

 

 

 

 

 

 

충고쓰에 도착해서야 중국인 친구가 말을 타고 왔다.

그런데 마부의 입언저리에서 피가 난다.

고약한 말을 잡기 위해 뛰다가 뒷발질에 다쳤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별 일 없다고 한다.

 

참 낙천적이다.

성질머리 고약한 나 같으면 '말'을 그냥 두지 않았을 텐데....

 

 

충고쓰엔 결국 가보지 못했다.

 

어제 우리와 함께 왔던 두 사람은 기다리다가 이미 따오청으로 떠났다고 한다.

기사는 오늘 다시 오기는 어렵다고 한다.

 

입구나 야딩촌에 가서 차량을 구해야 할 상황이었다.

 

 

선내일 신산이 조금씩 전면을 드러낸다.

 

 

 

 

선내일 신산

 

 

 

바위에 새겨진 티벳어,,,뜻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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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 야딩(10) - 길위에서 길을

039 - 야딩(10) - 길위에서 길을

 

<요즘 2mb 땜시 미친소 먹기도 전에 미쳐버리겠다.

아무래도 끌어 내려야 겠다> 

 

 

우유해로 돌아왔지만 어쩐일인지 한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제 야딩도 비수기에 들었나 보다.(2007년 10월 29일)

 

걷기에 고통스러워 하는 중국인 친구는 낙담을 하였다.

낙융목장까지 내려가봐야 말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돌아와 본 우유해,

 

우리 셋을 제외한 단 한사람도 없었다.

 

 

작은 구름들이 신성함을 더했다.  선내일 신산

 

 

 

양메이용 신산 정상도 구름에 휘돌고 있었다.

 

 

 

한참 후 구름이 걷친 모습

 

 

 

 

우유해로 내려 가다 만난 돌무더기

 

 

하납다길 신산도 구름이 넘나들고 있었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

 

늦 가을의 단풍이 무척 고왔다.

한국의 단풍과는 다른 맛이다.

 

 

 

산행을 해본 사람들은 알지만 오를때보다 내려 갈 때 무릅이 더 아프다.

산행 속도가 무척 떨어진 중국인 친구는 잠깐씩 쉬면서 먼저 출발해 내려갔다.

 

나와 데이비드는 먼저 내려 갈수도, 그렇다고 너무 천천히 걷는 것은 더욱 어렵고

그래서 한참을 노닥거리다가 중국인 친구가 한참 멀어지면 그때서야 길을 나섰다.

 

 

흐르는 물에 땀도 닦고, 빈 물통에 물도 채우고,

물은 찼다.

 

 

드디어 낙융목장에 되돌아왔다.

다행히 마부와 말이 있었다. 그런데.....

 

 

잔꾀가 많은 말이 오늘은 휴일임을 고집했다.

마부가 고삐를 쥐려 가면 저만치 달려가서 멈추어 풀을 뜯곤 했다.

 

처음엔 저 말 귀엽네 했더니, 그게 장난이 아니다. 급기야 마부 숨을 헐덕이며

달려갔지만 비웃기라도 하듯 말은 낙융목장을 제집 안마당 삼아 뛰어 다녔다.

 

30분을 씨름해도 도대체 주인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말 잡다가 날새게 생겼다. 저 말 오늘 저녁 국물도 없겠다.

 

마냥 기다릴수 없어 나와 데이비드는 먼저 출발 했다.

 

 

낙융목장 한 가운데 놓여 있는 나무다리.

 

 

물은 맑고 투명했다.

 

 

낙융목장 한가운데에서 본 하납다길 신산

 

 

인적없는 낙융목장에 룽다가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는 길을 마다하고 낙융목장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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