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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 천년의 나무 - 길위에서 길을

017 - 천년의 나무 - 길위에서 길을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존귀하다.

 

 

오후 늦게 빠이(八一)에 도착하였다.

 

빠이는 원래 '라르가(拉日伽)'라고  하는 작은 부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51년 중국인민해방군이 주둔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한

린즈(林芝, 닝트리)지역의 중심도시이다.

그래서 이름도 중국인민해방군의 창군기념일(8월 1일)을 따서 八一로 불린다.

린즈는 원시삼림 지역으로서 나무가 빠른속도로 자라고 질이 좋아서

목재산업이 발달해 있다.

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숙소에 방을 잡고 택시를 탔다.

'천년의 나무'가 있다는 곳을 가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택시비는 담합을 하였는지 일률적으로 30원을 부른다.

깍으려해도 안된다. 거리가 꽤되려나. 지도상으론 얼마 안되는데...

채 10분이 안걸렸다.

허 참....

'세계백수왕원림(世界柏樹王園林)'이란 곳이다.

입장료는 15위안이다.

비교적 늦게 도착하여 폐장시간을 물어보니..

관리인이 참 걸작이다.

'24시간' 언제나 가능하단다. 시간에 구애 받지 말고 천천히 보란다.

참 맘 좋은 아저씨...

수천년을 버텨온 나무들을 관리해서인지 통 한번 크다.

그 이름에 비해 입구는 소박하다.

바이수(柏樹)는 측백나무과의 나무로 원산지는 중국이며, 중국에서는 소나무와 함께

사찰이나 묘지에 많이 쓰이는 나무이다.

린즈에 있는 바이수는 중국 최대, 최고의 바이수이다.

해발 3040미터 주변에 10헥타르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것은 중국최대로 높이 57미터, 직경이 5.8미터, 추정 수령은 2600년이라고

입장권에는 안내가 되어 있다.

 

그런데....이건 뭔가...????

 

이 표지석의 설명에는 높이는 50미터, 수령은 2500년으로 나와 있다.

갑자기 키가 7미터, 나이가 100년이 줄어버렸다.

아니면 이 표지석은 이 나무가 50미터 정도, 2500살쯤일 때 세워진 것일까?

적어도 표지석이 100년 전 것이란 애긴가? 그럼 100년 동안 7미터 컸다는 이야기인데...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다. 아직은 여러가지 것들이 정확히 정리되지 못한 측면 들이 많다.

수천년을 모진 풍상을 겪으며 버티어온 역사 앞에서 100살이 많고 적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미 단순한 나무를 넘어 '생명의 나무'로 숭배의 대상이 되어 경배되고 있는 마당에...

나무가 크고 오래되어서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 잘 보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바이수 주변에는 수 많은 하닥(흰 비단천 : 티벳인들의 존경과 경의의 표시로 바치는 것)이

이 걸려 있었다.

경배의 대상이 된 다바이수(대백수 : 大柏樹)를 한 컷으로 담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대백수왕 ,ㅎㅎㅎ 어감이 그렇다. 나의 삶의 적지 않을 부분을 지칭한 말이기도 하다.

백수,... 친근하기도 하고 좀 거시기 하기도 하고,,,,,

아래부분

윗 부분

줄기 부분,,

다바이수왕 옆에는 사당 비슷한 것도 있다. 이미 주변에는 땅거미가 갈리고 있었다.

주변은 한 30여분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각양 각색의 나무들은 수천년을 지켜오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군락을 이루었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굳건히 내린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경외감을 갖게 한다.

비록 그 줄기가 잘리고 갈리엇다 해도 생명의 연속성마저 귾을 순 없다.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그 자리를 지켜 내고 있었다.

저 멀리 어둠이 밀려와 여행자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자연에 비해 인간이 하는 짓이란 때론 이 정도 밖에 안된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고 싶을까?

하지만 저 나무는 그 상처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또 몇 천년을 버티어 낼 것이다.

낡은 표지판이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 너의 행동이 좋으면 그많큼 경치도 좋다 "   - 정확한가...ㅎㅎㅎ

오늘 밤에도 타르초는 낮은 울림으로 바람결에

'인간의 행복'을 위해 경전을 외고 있을 것이다.

 

올 때 받았던 명함을 이용 택시를 불렀다. 돌아가는 것 역시 30위안..

입구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진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시절 집안에 잔치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돼지를 잡을 때 듣던 그 소리다.

주변을 둘러보니 군용 트럭에 군인들이 농가에서 돼지 두마리를 잡아서 실고 있는 중이다.

오늘 저 부대원들 '회식"하는 날인가보다.

앳된 병사의 얼굴들에는 오늘 밤에 있을 만찬을 기대하며 안색이 밝다.

집떠나, 애인과도 떨어져,,,얼마나 외롭고 힘들 것인가....

  

하지만 2008년 오늘은

그 때 보았던 병사들이 티벳 전역에서 티벳인들을 학살하는 도살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 젊은 병사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총 칼을 쥐어 내보내서 학살을 명령하는 자들이고,

이를 방조하는 자들이다.

 

이밤도 앳된 병사들의 밝은 얼굴이 간직되어지기를,

티벳의 자유와 평화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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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 린쯔(링트리)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016 - 천장남로 - 닝트리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길을 가다 보면 갈 길을 막는 것은 다양하다.

 

때로는 폭우나 폭설로 길이 막히기도 하고,

돌더미가 굴러서 오도가도 못하게 한다.

 

또한 멎진 풍광이 여행자의 시선과 발길을 멈추게 하고,

새로 사귄 친구가 손을 붇잡고 잠시 머무르기를 청한다.

친구가 머무르기를 청하는 것은 가장 최상의 길막음이다.

 

길막음 중 가장 최악은 보내기로 한 돈이 제 날짜에 오지 않아

여행자의 행보를 막는 것이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거나 걷는 수 밖에 없다.

 

빠이(八一)로 향하는   길을 막은 것은

내가 사랑하는 놈이었다. 그것도 잠시 막은 거지만...

 

그 녀석이 없었으면 중국 여행 하는 동안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많은 인민들에게 닭과 함께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니까..

 

바로 이녀석이다.

 

 

그 내딛는 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급 할 것도 없었다. 사방천지가 자신의 영역이었다.

 

굳이 누구의 소유라고 표할 필요도 없고, 우리에 가 둘 필요도 없는 듯햇다.

스스로 돌아 다니며 먹다가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예전 고향집 암소가 생각났다.

어릴적 논갈이가 끝나면 늙은 암소를 그냥 풀어 놓는다.

그러면 제 스스로 논둑, 밭둑을 따라 풀을 뜯다가 저녁이 되면 주인보다 먼저 집에 돌아가

있었다. 시골 동네에서는 뉘집 소라는 걸 잘알기에 도난의 우려도 없었고,

비록 짐승이라지만 수년을 함께 살아온 덕에 제 집을 잊을리 없었다.

영특하게도 인간이 사용 할 식량에는 눈 길 한번 주지 않고 스스로 먹을 풀을 찾기까지 한다.

 

아마도 우리의 길을 막고 섰던 이 녀석도 이 동네에선 그런 존재인가 보다.

 

하지만 또 다른 녀석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었다.

용맹함은 늑대와도 겨룰만하고 변치않는 충성심을 겸비한 녀석이었다.

 

요즈음은 중국인 부유층에게 사치품으로 인기가 높다는 티벳의 개였다.

 

    

 

빠이로 가다 보면 티벳식 명칭은 잘 모르겠으나 중국인들이 중류지주(中流砥柱)라 불리우는

것이 나타난다.  이름 그대로 강 중간에 있는 돌기둥이다.

 

관광객들이 몇이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아마도 매일 그곳을 지나치는

우리의 운전사 아저씨는 잠시 쉬기는 거녕 속도조차 늦출 생각이 없었다.

 

수만년을 그자리에서 한결같이 버티었을 것인데, 그냥 획 지나가버렸다.

아쉬어도 어디 항변 할 것은 못되었다. 속된말로 운전사 맘대로 아닌가....

 

 

 

그렇게 획 지나가버렸다...ㅎㅎㅎ

 

 

 

하지만 그 길의 풍광은 사뭇 변화무쌍하였다.

 

 

정처없이 길 떠나는 베가본드(vagabond)에게는 하교길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잠시나마

떠나온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오늘 도착하게 될 빠이는 저 설산 너머에 있는 걸까?

눈이라도 올 듯 심상치 않다. 

 

 

 

저 설산 너머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는 여행자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길가에 차를 세운다. 왜 섰는지 언제 출발할지 별 말도 없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버스에서 내린다.

아하 생리적 현상을 해결 하라는 것인가 보다. 여기저기 흩어진다.

 

그런데 한참이 지난후에도 출발할 생각이 없다. 일부는 주저 앉아 있다.

이유를 물어보니 2006년 천장공로에서 다수의 외국인을 태운 버스가

전복되어 사상자가 많았다고 한다. 천장공로를 가다보면 사고가 않나는 것이

오히려 신기 할 정도로 험악하다.

 

그래서 당국은 운전사들의 과속을 막기 위해 구간구간을 정해서 출발시간과 도착 시간을

지정해준다고 한다. 1초라도 빨리 목적지(검문소)에 도착하게 되면 약 800위안 정도의

벌금을 물린단다.

 

그렇다고 운전수가 저속으로 다니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목적지에 다다를 쯤 적당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라도 운전사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니 사고는 어느정도 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잘하는 일 없는 당국이 그나마 잘한 일중의 하나 인것 같다.

 

티벳지역을 여행하다보면(버스 이용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구토를 한다.

아마도 평소 장거리 여행을 자주하지 않아서 그런것 같다.

 

큰 맘먹어야 장거리 여행을 하니 버스타는 일이 익숙치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멀미약을 구비할리 만무하고,,,,,

 

힘들어하는 티벳탄에게 좀 진정이 될까 싶어 생수를 건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그녀의 가족들이 과자며 이것 저것을 답례로 건넨다.

이렇게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어디를 가냐, 어디서 왔냐..자기집이 남가파와봉 근처인데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다들 관심을 표했다.

 

 

어떤 휴게소 보다 아름다운 휴게소였다.

 

주변엔 강도 있어 금상첨화였다. 

 

천장공로는 고개를 넘으며 강을 따라 가는 길이기도 했다.

 

  저 물길 처럼 나도 어딘론가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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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 천장남로(라싸에서-빠이) -길위에서 길을

< 최근 벌어진 티베트인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지지와 경의를 표하며,

  무력으로 탄압하는 중국정부에 대한 항의를 보냅니다. >

 

자신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정치적 권리는 그 어떤 이름으로도 억압되거나 파괴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행중에 만난 티벳인들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015 - 천장남로(川藏南路) -라사에서 빠이 - 길위에서 길을

여행자는 언제나 짐을 쌀댄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며칠이라도 머물렀던 곳은 여행자에게는 이미 익숙함과 안도감을 주게 마련이지요.

새로운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셀레임을 주는 것과 비례하여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두려움이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익숙한 것을 털고 일어날때만이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갈수 있습니다.

2007년 10월 22일 라싸를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초모랑마와 카일라스, 그리고 시가체, 간체

나무쵸, 데뽕스 등을 아쉽게 못 가보고 라싸를 떠나려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사천 등지를 돌기로 계획한 나의 여행 일정에서 더이상의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음을 기약해 봅니다. 그러나 그리 오랜산 인생은 아니지만

어쩌면 다음이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른 아침(6시) 짐을 사고 채크 아웃을 하고 택시를 탔읍니다. 숙소 앞에는 아침 일찍 떠나는

여행자를 기대하며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사방은 어둠이 깔려 있었습니다.

라싸 북부버스터미널에서 빠이(八一)행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대형과 중형 두대가 있었습니다. 대형은 130원이었습니다.

대형버스의 운전석 옆의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형버스 손님이 다차면 옆에 있는 중형버스에 손님을 태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소형버스가 더 빨리 간다고 합니다. 늦게 출발해도 먼저 간답니다.

급할 것 없는 여행자인지라 그냥 허허 웃고 말았습니다.

라싸에서 출발한 지 150여 km를 달리자 미라설산(米拉雪山 : 미 라 쉐 싼, Manxung_la, 4900m)이 앞을 막고 있었습니다. 굽이굽이 정상을 올라가자 햇볕이 비치는 곳은 늦가을의 정경이,

음지에는 한 겨울의 정경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가을 단풍과 눈 꽃이 동시에 눈을 아름답게 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차가 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사진은 찍기 어려웠습니다. ㅎㅎ

그리고 고도가 오천미터에 육박하는 것이라서 멍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멍한 기분을 순간 일깨운 것은 정상에 다다르자 버스안 일행들이

갑자기 지르는 함성이었습니다.

창밖을 향해 온갖 색종이를 날리며 무사히 고개에 다다른 것을 감사히 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역시 정상에는 타르초가 나부끼었습니다.

마치 여기가 정상이다라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이런 의식은 매번 고개를 넘을때마다 행해졌습니다.

아주 어릴적 마을밖 성황당에 이르러 돌무더기에 돌 한줌 더하는 우리네 옛 풍습과 비슷합니다.

삶의 조건이 열악할 수록 신에게 안녕과 축복을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집니다.

험난한 자연 앞에서는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될 뿐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의 가호가 절실한 모양입니다.

미라쉐산을 넘어서부터는 숲의 연속이었습니다.

척박한 티벳의 창탕고원과 라싸 주변을 보다가

울창한 숲지대를 보자 당혹스러웠습니다.

천장공로의 시작

버스안의 승객은 대부분 성지 라싸을 다녀가는 순례객들이었습니다.

일부는 일때문에 오고가는 것 같았습니다.

외국인 여행객은 나 한사람뿐이었습니다.

길은 끝이 없었고 이미 대지는 황금색이었습니다.

붉은색과 황금색 멀리는 설산도 보입니다.

운전기사 옆자리에 앉아서 서로 담배도 주고 받으며 피우다가

이른 아침 출발한 관계로 피곤도 하여 좀 졸다가 눈 앞에 나타난 풍광에 취하다가

다시 담배한대 피우는 그런 버스여행이었습니다.

,

저 멀리 야크를 방목하는 티벳 유목인의 거처도 보입니다.

작은 차가 앞질러 가기도 합니다.

길은 사람과 차의 통로이지만 이쪽과 저쪽을 구분짓는 경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길을 경계로 느끼는 것은 사람만이 그럴뿐입니다.

풀을 뜯는 야크는 이쪽 저쪽 경계없이 넘나듭니다.

차가 와도 여유만만입니다. 차 또한 급할것 없이 기다립니다. 야크가 건너기를....

멀리 보이는 집들은 지붕이 색다릅니다.

새마을 운동이라도 한 모양인듯 새롭게 페인트칠한 양철지붕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그것도 보라색 붉은색, 파란색 동네마다 약간씩 다릅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정차한 길가 마을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길가 마을에 차를 세웁니다.

라싸에서 아침 일직 출발하면 점심쯤에 다다르는 마을입니다.

자연스럽게 식당들이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버스타고 가다가 밥 먹는 것이 익숙해저 맘 편히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킵니다.

 

 

혼자 식사할때는 간편하게 면 종류를 먹습니다. 10원입니다.

야크 고기로 고명을 얹은 국수입니다.

점심을 먹은 식당입니다.

식당에서 먹거나 혹은 각자 준비한 음식으로 요기를 한 다들 여유로운 휴식을 취합니다.

 

식당 뒤편에서 스레기 더미를 뒤지는 야크를 보았습니다.

까마귀도 함께 쓰레기를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다시 출발하면서 본 풍경은 매우 변화가 많았습니다.

노오란 단풍이 절정을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성지 라싸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휴식 모습도 보입니다.

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오랜 오체투지의 순례라서

다들 지쳐 보이고 행색이 초라하지만 라싸가 가까워서인지 행복으로 충만한 듯 여겨집니다.

순례자들과 나의 여행이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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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 암드록쵸 (中) - 길위에서 길을

암드록쵸 (中)

암드록쵸는 해발 4,250m에 있는 티벳의 4대 성호(聖湖)중의 하나이다.

일부는 암드록쵸 호수라고 하는 데 티벳어에 "쵸"라는 것이 호수란

뜻이 있어 역전(驛前)앞이라고 하는 꼴과 같다.

 

암드록쵸는 몇 마디 말로 설명하느니 보다 실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럴땐 '지름신'의 유혹을 받곤한다.  그저 똑딱이만 들고 다니는 나에게

멋진 풍광을 볼 때마다 좀 더 좋은 카메라가 있었으면 하는....

하지만 마음에 담지...더 멋진 사진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온전히 풍광에 집중하자..뭐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암드록쵸의 다양한 모습이다.

 

 

 

 

 

 

 

 

 

저 공안은 뭘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걸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암드록쵸에 와서 전망대에서만 보고 돌아가는데

반드시 암드록쵸 아래로 내려가 한바퀴 둘러 보기를 권한다.

 

호수 주변에서 보는 풍광은 암드록쵸의 진면목일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기사에게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였다.

그러자 앞의 사진에서 보는 경관은 기사에게 신분증 확인과 몇가지를 적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가 아래로 내려가서 둘러 보는 동안 다른 차량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차량은 전망대에서 그냥 돌아갔단 말인가?

개별적으로 일정을 조정할수 없는 단체관광이라면 몰라도

차량을 대절하는 바오쳐라면 반드시 내려가자.

전망대 기념품 노점상

호수 아래로 내려가자 아름다운 마을과 전혀 예상치 못한 풍광이 나타났다.

길도 포장이 갈끔하게 되어 있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고맙게도 입장료는 없었다.

 

 

 

 

 

 

 

 

호수만 바라볼게 아니라 등뒤로 돌아서면 이런 모습도 있다.

 

 

 

하지만 그 날의 풍광은 호수 안으로 들어감에 따라 날이 개이고

강렬한 햇빛과 터키석 색의 짙푸른 호수면과 설산의 조화가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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