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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생각하고 메모하고 글을 쓰다

1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12/06
    전철안 풍경(3)
    쩡열 :)
  2. 2010/12/06
    알바하며 끄적인 글들.(2)
    쩡열 :)
  3. 2010/05/19
    안개
    쩡열 :)
  4. 2009/12/16
    전철
    쩡열 :)
  5. 2009/11/28
    그들이 말하는 행복한 미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쩡열 :)
  6. 2009/11/28
    미심쩍은 사회
    쩡열 :)
  7. 2009/11/28
    청소년활동모임 푸른달이 뜨다
    쩡열 :)
  8. 2009/11/28
    모난라디오 돌아보기(1)
    쩡열 :)

전철안 풍경

날짜 모름.

 

구로에서 탄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는 우물쭈물 서있다. 잠시 뒤 전철이 출발하자 곧 팔에 든 노트북을 살짝 닫아두고 자신을 단편영화 감독이라고 소개한다. 뒤이어 자신이 찍고싶은 장편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찍는데 5억이들고, 20억이 만들어질 거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너무 방법이 없어서 여기까지 나왔다며 죄송해하는 그 남자는 말을 더듬고 있다. 여전히 어쩔줄 몰라보이는 모습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하는 이야기는 저에게 관심이 있으신 분은 명함을 드릴테니 손을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지하철 안에 싸한 분위기가 맴돈다. 그남자가 터벅터벅 다음칸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괜히 눈물이 핑돈다. 그남자의 서툼에 어색함에 그런 것에.

 

어떤 아저씨는 전철을 기다리면서부터 욕을 하고 있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욕이다. 끊임없이 욕을하다가 전철을 탄다. 그리고 다시 욕을 한다. 같은 칸에 탄 나는 괜한 겁을 먹고 있다. 곧 내 앞에 어떤 아저씨가 선다. 머리속의 하얀 살들이 보일정도로 젤을 바른 그 아저씨는 내 다리켠에 자그마한 캐리어를 세운다. 전철에서 물건을 파는 가방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가방이다. 그 가방을 세워놓은 아저씨는 기모레깅스를 꺼낸다. 시중에서는 12000원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그 레깅스는 아저씨의 손에서 장미란이 강호동이도 입을 수 있다는 말에 대한 증명으로 쭉쭉 늘어나며 탄력성을 선보이고있다. 시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4중기모로 된 그 레깅스는 내 다리에도 같은칸의 다른 여자들의 다리에도 이미 신겨져 있다. 듣다보니 그 레깅스의 장점은 탄력성도 4중기모도 아니었다. 음이온이 마구 뭐 통과되기 때문에 신경통과 관절염에도 아주 좋다는 레깅스. 그렇구나. 레깅스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 도 있었구나. 한켤레를 구입했다. 4천원. 이번에도 눈물이 핑 돈다. 그냥 음이온이 통하는 레깅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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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하며 끄적인 글들.

1. 

 

집에 가고싶습니다.

 

갇혔다. 이 순간부터 10시까지는 돈이라는 실로 꽁꽁 묶여있다. 혹여잡다한 심부름이 있지 않다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말이다.

 

분명 나를 못나가게 막는 물리적인 힘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내가 앉아있는 카운터 바로 옆의 유리 출입문과 번화가가 내려다보이는 유리창은 왠지 나를 갑갑하게 만든다.

잠시만이라도 바깥의 공기와 하늘을 보고 싶다. 1층까지는 계단 23개로 1분도 채 안걸리겠지만 막상 나가려 할 때마다 찾아오는 마음의 묘한 욱신거림은 도대체 뭘까?

 

떨림. 두근거림. 탈출욕구. 무서움. 벗어남에 대한 두려움. 양심일지 복종일지.

 

이 한줄 끄적이는 사이에도 새로운 손님은 들어온다. 나는 다시 일어나 평소와는 너무도 다른 소프라노의 음색을 띄는 목소리를 낸다. "어서오세요. 편하신 자리 앉으시면 됩니다." 물론 이순간의 나는 '방긋' 다른 많은 서비스업 종사자들과 같은 그 미소를 내보이고 있다.

 

 

2.

 

호전적인 프랑스인들과

뛰어다니는 사장의 딸과

사장의 부인이었던 첫날 나에게 일을 가르쳐 준 언니와

해방되고싶은 나와

무신경한 남자친구와

무료영화티켓은 왜 함께 있는 걸까?

 

동양계 ( 아니 어쩌면 저 머나먼 아메리카에 살던 원주민들과 닮은 것 같은)여자와 백인 여성 둘, 아랍계 남자 하나. 톡인지 더를 발음하고 싶던거였는지 모를 성질의 말.

 

 

3. 

 

카운터 바로 옆의 음료기계가 돌아가는 소음이 가게 전체를 울린다. 마치 그 소리를 시작으로 공장이 돌아가듯이. 기계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후덥지근한, 몸에 절대 좋아보이지 않는 그 열기조차 공장과 닮았다. '짤랑' (카운터가 닫히는 소리와 닮은) 그 소리와 함꼐 손님이 들어온다. 그 순간도 무언가의 시작이 된다.

 

나와 함께 일하는 다른 알바는 물을 꺼내고 피클을 덜고 토스터기앞으로 선다.

나는 주문지를 들고 펜을 쥔채 그들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손님은 주문을 하고, 나는 주문을 적고, 사이다 한잔을 부탁하고, 포스에 받아넣고, 주문을 부엌에 넣는다.

 

많은 것들이 소리로 시작된다. 위잉거리는 소음. 돈소리와 닮은 짤랑.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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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하루종일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꽤나 피곤해진 정신과 몸뚱아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내 너무나 피곤했지만 꾹 참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잘못 내리게 되지 않도록 그 틈새조차 나에게 주지 않고 덜컹임과 함께 집에 도착해 근처 정류장에 내렸을 때에, 순간 너무나 커다란 이질감에 발걸음을 멈추어버렸다. 

 

원인은 안개였다.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도 축축한 공기와 희뿌연 시야가 가져오는 이질감은 꽤나 커다란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 안개속으로 다시 발을 한걸음 내딛었을 때에 세상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냥 하얀 막이 하나 쓰워졌을 뿐.

다시 버스를 탔다. 좌회전과 우회전을 한번씩 하며 2정거장쯤 지나서 도착한 우리동네에 내린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보랏빛 세상이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겁먹지 않고 타박타박 걸어 집으로 향한다. 고작 하얀 막이 하나 씌워졌을 뿐인데 모든 소리가 먹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막이 모두를 하나하나 따로 감싸안아버려 서로가 고립된 듯한 느낌에 짧게 몸서리를 친다.

집까지 걷는 길은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가는 내내 괜한 불안감과 음습함에 종종걸음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또 다시 발걸음을 멈춰버렸다. 그리고 이 안개가 꽤나 무섭고 음습하고 외롭고 불안하게 만들지만, 꽤나 포근하기도 하다는 걸 깨닳았다. 그걸 깨닳으니 여전히 외롭지만 한편으론 포근한 안개속을 사락사락 헤치고 집으로 쏙 들어와서 숨을 잠시 돌리고 침대에 폭 파묻힌다.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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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전철 2009.12.16.Wed AM 1:20

전철,
그것은 아마도 괴물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죽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 편으론 모두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나는 전철 타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물론 예전에는 집이 서울이 아니기에 서울에 올 때 늘 전철을 타고 다녔고, 서울 지리를 모르기에 한두 정거장도 걷거나 버스를 타지 못하고 늘 전철을 탔었다. 서울에 거의 매일같이 와야 하는 나로서는 전철을 안 타는 게 오히려 불가능한 이야기였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전철이 싫다. 자리가 있을지 없을지도 불확실한 것도 싫고, 전철에서 출구로 나가거나 갈아타려면 힘들게 계단을 오르내리고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것이 싫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그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조금이라도 앞서가려고 아등바등하는 그 대열이 두려웠다. 이건 내가 교복을 입은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이유와도 비슷한 것이겠지.
교복이야기라는 건 난 등하교 시간에는 거의 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는다. 특히 학교 주변이라면 말이다. 어느 날, 급히 나가다가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같은 머리를 하고, 그들 사이의 유행을 따라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정말 인도를 꽉 채워 그들이 걸어오는 길을 걸어가다 마주친 이후로는. 어쩌면 동경일지도 모른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나에게 소속감을 가진 것 같아 보이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난 그런 개성이 말살되고, 사람으로서 가져야만 하는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학교라는 공간에 묶여 있지 않아' 라는 오만하고도 위험한 생각. 하여간에 나는 아직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떼로 몰려오면 순간 두렵다. 그들 안에 내가 먹혀버릴 것 같아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전철 이야기를 하자면, 그래 나는 전철이 두렵다. 전철을 잘 타지 않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앞서 이야기 했던 것도 한가지 이유고 말이다. 또 다른 건 아마도 서울에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서울과 집을 오간지 꽤나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더 잘 알게 된다는 것과 비슷하게 쓰이니까.
예전 같으면 전철을 탔을 코스도 이제는 2-30분 거리라면 충분히 걸어 다니게 되었고, 혹은 어느 정도 익혀 둔 버스노선을 기억해서 다니게 됐다. 그 뿐 아니라 집과 서울을 오갈 때에도 빠르지만 힘든 전철에 비해 조금은 오래 걸리지만, 의자도 편안하고, 자리도 거의 확실하고, 내리자마자 갈아타기를 한두 번만 하면 곧 집에 도착하고, 또 사람들 틈바구니에 부대껴 가면서 갈 일이 거의 없는 버스로 집과 서울을 왕복할 방법을 찾았다. 어느새 전철은 내가 많이 늦거나 러시아워인데 멀미할 것 같은 그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러터져 맛도 모양도 상해버려 나를 두렵고 손이 안 가게 만드는 과일들처럼 쓸데없이 입맛이 까다로운 나와는 점점 멀어져버렸다.

나는 그러면서 서울의 이곳저곳을 더 많이 알아갔다. 처음에는 공연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구경을 다니고, 일하던 곳인 서교동, 동교동으로 시작됐던 나의 서울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마포구가 되었고, 마포구에서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서울의 지역들이 하나둘씩 더 붙어 불어나기 시작했다. 종종 가게 되는 사무실들이 있는, 그리고 날이 하나도 안 풀린 2월부터 1달 가까이 사람들과 일제고사 반대로 농성을 했던 서대문, 충정로가 붙었고, 병원에 다녔을 때 가야했던 여의도가 생겨났고, 자주 놀러갔던 집들이 있는 화곡동이 생겼다. 한동안 알바를 했던 명동, 연애하며 자주 가던 돈암동과 안암동, 그 외에도 딱 한 곳뿐이지만 (예를 들어 집에 가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그 어딘가?) 같은 곳들도 기억 속에서 하나 둘씩 불어나 나의 서울은 커졌다. 커진 만큼 더 익숙해졌다. 조금 더 많이 알아갔다. 반면 나의 서울이 커진 만큼 두려웠다. 괴물이 되어간다. 내가 아는 곳이 늘어날수록 나에게 서울은 멀리 떨어져있는 것들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괴물이 되어간다. 나의 많은 생활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서울이라는 곳을 이곳저곳 기워주는가 싶지만 어쩌면 관통하고 헤집고 상처내고 있는 것은 바로 전철이었다. 버스도 아니다. 전철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연결해서 나의 서울을 만들어 준 것도 전철이다. 어쩌면 전철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이 아닌 전철이. 언젠가 부터 사람들을 서울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시작하더니 사실은 아무 곳도 갈 수 없게 만들었다. 전철과 같이 전체 노선도를 보여주지 않는 버스가 어려워지게 만들었다. 높으신 분들이 만들었을 역 이름만 기억할 뿐, 그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외선순환행 전철 3-2에 타고, 핸드폰을 켜서 최단경로검색을 해서 나온 40분이 정확히 소요되어 2호선 '잠실'역 3-2에서 내렸더라도 그곳은 어쩌면 잠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 아닐 것이다. 잠실이라고 꾸며놓은 노원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곳은 서울이 아닐 확률이 높다.

서울이 아닌 우주 어딘가의 별일지도 모른다. 그 별은 이미 바오밥나무가 무성해져 자취를 감춰버린 어린왕자가 살던 소혹성 B-612호가 있던 곳 근처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르는 외계생명체 '기스부에루'들이 살고 있는 다른 혹성 N-893호일 것이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그 희귀한 에너지가 아니면 살 수 없게 되었거나, 그 곳에 전쟁이 일어나서 그 에너지가 급히 필요해진 기루(줄여서 보통 그들은 자신을 기루라고 한다.)들은 서울에서 그 곳에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나사(NASA)에 몇몇이 침투해서 지구에 퍼트린 후, 사람들을 우주에서 일하게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집이 우주에 있지만 서울이라고 속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속고 있는 수 밖에는 없다. 우린 그 곳에 살고 있는 기루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희귀한 에너지를 만들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속아주는 것만큼 맘 편한 것도 없다. 무엇이던 간에 누군가를, 무엇을(그게 우리 집 부엌에 열을 지어 기어 다니면서 음식 찌꺼기를 찾아 헤 메이던 개미 한 마리 잡아온 것을 숨기기 위해서이더라도!) 속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다. 거짓말이 들통 나지 않기 위한 거짓말들과 변명, 거짓증거, 연기 그리고 그것을 뒤 바침 해 줄만한 연기, 거짓증거, 변명 또다시 거짓말…. 힘들다. 속아준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것이 없다면 그냥 속고 만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혹성 N-893호에 살고 있을 기루들에게 에너지를 빼앗기고 또 빼앗기고, 그것에 계속 반복된다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서. 어쩌면….

한밤중에 한강에 세워진 야경이 멋진 다리 위에서 그 야경을 더 빛내 주며 나타나는 사람들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전철의 속에 들어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살아있는 게 맞나 싶은 무기력하게 '이동'하는 사람들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역에 왈칵 토해내고, 하지만 각자가 전혀 다른 그 사람들을 또 삼키는 괴물 같은 전철.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다면,  전철을 더 이상 타지 않는 것이 '답'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 전철을 계속 타지만 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를 고민하며 우리는 ‘이동’이 아닌 ‘생각을 하며 이동’하는 그런, 살아있다는 것을 기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과연 답이라는 게 있을 수 있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

 

 

사실 늘 밤에 버스를 타고 올 때에 한강다리위를 지나는 아름다운 야경을 완성하는 전철을 보며

무섭다, 는 생각을 매번했었어

사람을 삼키고 토해내고 삼키고 토해내고

그안에는 '이동'하는 사람들

터키갔다와서 내가 살아있지 않은 것 같아. 라고 생각했었을 때도

전철안의 사람들을 보면서였지

가장 살아있는 장면같으면서 가장 죽어있는 장면같은 그런거..

 

잘 모르겠다

그냥 중간에 갑자기 내용이 산으로 가더니

음모글이 되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왠지 쪽팔린데 재밌었다.

나다 회의 끝나고 청소하고 밥먹고 KMC가서 치킨에 맥주한잔 먹고

집에 오는 내내 쳐댔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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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는 행복한 미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그들이 말하는 행복한 미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나는 탈학교 청소년이다. 흔히 말하는 '홈스쿨러' 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공부를 하진 않고 있으니까, 그냥 학교를 뛰쳐나온 '탈학교 청소년' 이라고 불리는 게 더 좋다.



얼마 전 나는 일제고사 투쟁에 함께 했었다.

나는 비록 학교를 다니지 않고, 시험을 보지 않지만 안 그래도 끔찍한 경쟁사회에 일제고사가 미칠 파장들이 너무 눈에 보여서 함께 했던 것이다. 청소년 농성을 하기도 하고, 성적으로 줄 세우겠다는 일제고사 통계자료를 찍어서 망치자는 청소년들의 오답선언을 받기위해 선전전을 뛰기도 하고, 등교거부를 준비하며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면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왜 경쟁에 반대 하는 건데?' '경쟁 어느 정도 필요한 거 아냐?' '내 점수 알면 더 분발할 수 있잖아!'라는 이야기 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무한경쟁을 믿으면 행복한 미래의 기회가 자신에게도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탈학교 청소년으로 살아 온 이야기


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안학교에서 정확히 1학년을 마치고 그만 두었다.

왜 대안학교를 갔고, 또 왜 대안학교를 그만 두었는지를 물어본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중학교에 대한 생각이 많이 암울했다.


중학교 가면 두발규제도 있고, 교복도 입어야 되고, 언니오빠들 보면 엄청 세게 맞기도 하고, 더군다나 내가 사는 안산은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이기 때문에 뭔지도 모르겠는 '내신' 이란 것에 목숨 거는 사람들을 간간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중학교 가면 시험도 자주보고, 시험 때문에 친구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 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아마 엄마의 영향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을 좋게만 보진 않았던 것 같다.


뭐 이런 이유들로 대안학교에 가게 되었었고, 대안학교를 다니면서는 경쟁은 없었지만 그래도 학교는 학교라는 답답함으로 그만 두었다.


그 뒤에 가 봤던 대안교육을 이야기하는 곳들도 결국 경쟁을 유도하기도 하고, 권위주의로 학교를 형성해 버린다는 생각에 이제는 가지 않는다. 어떤 곳들에서는 숙제를 내주고, 잘해 온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아니면 벌을 주는 식으로 경쟁을 만든 곳도 있었고, '교사'라는 역할로 '그들'이 청소년들에게 무척 권위주의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며 규칙을 지키라고 화를 내는 곳도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규칙은 청소년들이 함께 이야기해서 만들었던 것이 아닌 '그들'이 만들고, 너희가 여기에 왔다면 지키라고 하는 것들이었고, 그렇다면 그것은 학교에 있는 교사들의 태도와 전혀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 되었다. 다른 곳의 '교사'가 내주었던 숙제 같은 경우는 독후감 쓰기, '대학(大學)'을 외우라는 것 같은 이걸 왜? 외워야하는지, 책을 읽고 독후감을 꼭 써야하는지에 대해 내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일반 학교와 다를 것 없이 우리와의 소통이 단절된 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이었다. 독후감을 잘 써오는 사람에게 상으로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경쟁을 요구 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 것이었고, 대학구절을 외워오지 못하면 끝나고 남겨서라도 외우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주입식 교육 아닌가?



청소년 활동에 발을 딛고 생각한 경쟁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내가 지금 활동을 하고 있는 교육운동단체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까지 들어볼 수 없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거기서 들었던 수능에 왜 목숨을 거는가? 경쟁이 좋은 것 인가? 선생이 필요하긴 한 거냐? 라는 질문들은 나를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구나.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찝찝함'들이 내가 이유 없이 하는 반항이 아니라 정말로 말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찝찝했던 것뿐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청소년 활동이라는 새로운 곳으로 한발 두발 발을 뻗기 시작해서 지금은 한번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2008년 9월 즈음 처음 활동이란 것을 시작했을 때에도 일제고사 투쟁으로 시작했었고, 잠시 쉬다가 올해 3월 돌아와서 뛰어 들었던 것도 일제고사 투쟁이었다. 나는 그러면서 더욱더 무한경쟁 이라는 것에 반감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지들이 뭔데 우리들을 점수로 줄 세워 버리겠다는 거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서 기뻐하는 것이, 또 그렇게 만드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아까 말 했듯이 내가 사는 안산은 비평준화 지역이라 고등학교를 내신과 연합고사점수로 간다. 작년에 16살 연합고사를 볼 나이인 학교를 다니는 친구랑 했었던 이야기가 있다. '시험점수는 나만 잘 나와야 된다고, 애들 다 잘 보면 내신이 안 올라' 라고 하는 친구에게 '그런 생각 너무 무섭지 않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놀라있는 나를 보며 무언가 민망한 표정으로 하는 말은 '어쩔 수 없다고. 내신 높은 고등학교 가야되고, 대학 잘 보내는 학교 가야된다고,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잘 가야지 나중에 먹고 산다'고 이야기 하는 친구를 보며 나는 학교에 있는 경쟁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 이었구나 라는 것을 뭐랄까? 정말 처절하게 느꼈었다. 이 친구가 나를 볼 때 자주 했던 자신의 내신으로는 인문계에서 제일 안 좋은 C고 밖에 못 간다는 이야기와 어디학교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잘 보내느냐며 나에게 던지는 물음들에 내가 알 리가 있냐며 모른다고 답했지만, 이런 말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만 커져가는 '사람들은 왜 대학에 목숨을 거는 걸까?' 라는 의문이 있다. 그리고 나는 대학이라는 것이 경쟁을 권장하는 이 사회에 가장 큰 악순환이라고 생각된다.



대학을 가야만 하는 거야?


대학이란 것은 청소년들에게 환상이다. 그 환상(혹은 허상)은 '비청소년'들도 굳게 믿고 있고, 사회가 끊임없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비청소년'들은 청소년들에게 '좋은 회사 취직하는 행복한 미래를 위해 지금은 공부나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라'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나와 다른 청소년 활동가들도 주위에서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곤 한다. '활동도 중요하지만 우선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가서 높은 자리에서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라는 말들. 이런 말들이 만들어내는 암시 같은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모두의 머릿속에 심어져 버리는 것인가 보다.


난 한 때 '왜 다들 대학에 가야만 한다고 하는 걸까?', '대학에 가게 된다면 좋은 게 뭘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나는 대학의 필요성도 못 느끼고,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저 돈을 내가면서 경쟁에 파묻히고 싶지도 않다. 내 주위에는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한번은 내가 대학에선 뭘 하는지 모르겠어서 주위의 누군가에게 대학에 가면 무얼 하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들었던 대답은 웃으면서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노는 거라고, 와보면 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한 사람으로 대학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물어보았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대학에 가면 무얼 하기에 다들 가라고 이야기하면서 가서 뭘 하는 지는 막상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한참 고민을 하다가 내 나름대로 결론 까진 아니어도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놈의 대학이 뭔지도 모르겠고, 대학을 가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행복한 미래라는 것도 내가 보기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서 더 좋은 대학에 가서 더 좋은(돈 많이 벌고, 안정된) 회사에 취직해서 그냥 그렇게 죽을 때까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인생. 도대체 어디가 행복하다는 건지 난 전~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돈을 들여서 대학이란 것에 가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꿈은 조금 다르니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미래, 꿈


사람들은 꿈이란 것을 생각할 때 보통 직업을 생각한다.

너희는 꿈이 뭐니? 라는 '나이 많은'사람들의 진부한 질문들에 다들 '변호사', '의사', '선생님', '공무원' 이런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이야기하지 '어떻게 살고 싶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어떻게 살고 싶다는 것인 것 같은데 다들 왜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인지 물어보면 그저 '안정된 직업이니까', '돈 많이 버니까' 뭐 이런 엄청 사회에 찌든 대답들이 튀어나온다. 그렇지만 절대 저렇게 이야기하는 청소년들을 비난할 수 없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이야기 하게 되는 것은 청소년기부터 끊임없이 경쟁을 가르치고 누구보다 잘하고 누구보다 높이 올라서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는 사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는 (노력을 안 해서 여전히 글은 못 쓰지만) 그 때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중학생이 되고서는 뭐 그냥 스쳐 지나간 순간순간의 바램들이지만 '직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요리사', '번역가' 뭐 이런 식의 적어도 나중에 먹고 살 정도는 벌어야지 라며 돈을 벌 만하면서 내가 재밌을만한 일들 말이다.


그러나 활동을 시작하고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비청소년기에 들어섰을 때 돈을 벌 생각을 해가며 '직업'을 골랐다면 지금은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모른 척 하며 나만 잘 살아가고 싶진 않아', '세상의 아픔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조금 힘들고, 배고파도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어'라는 바램들을 가지고 있다. 이게 나의 꿈이고, 조금 힘들지는 몰라도 내가 선택했다는 것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의 미래인 것이다. 우리 집이 돈을 안 벌어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형편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더 이상 돈이란 문제는 그리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다.

 

아직 어려서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서 돈 많이 벌어 안정된 삶을 사는 것 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 내가 선택한 일을 하고 싶다는 나의 꿈과 행복한 미래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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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5월인가 사람에 난다대신 썼던 글 ㅋㅋㅋㅋ

근데 작은책에도 올라갔어 ㅋㅋㅋㅋㅋㅋ

 

그나마 좀 낫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쪽팔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어려서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서 돈 많이 벌어 안정된 삶을 사는 것 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 내가 선택한 일을 하고 싶다는 나의 꿈과 행복한 미래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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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쩍은 사회

미심쩍은 사회

 

나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탈학교 청소년이다.

 그리고 인권활동이며 여러 활동들을 시작한지 그리 오래된 것도 너무 열심히 한 것도 아니지만 뭐 좀 해보고싶다는 마음만은 듬뿍 담긴 청소년 활동가이기도 하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과 활동가라는 지점에서 조금은 특수하지만 어쨌튼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청소년으로써 (공감이라는걸 전혀모르는 것만 같은) 2MB가 대통령이 된 후 있었던 ‘광우병 쇠고기’‘일제고사 등의 막장교육’‘삽질 대운하’‘비정규직 투쟁’‘용산참사’‘언론탄압’등의 너무 화가나고 말도 안되는 일들이 많지만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단 내가 함께 했던 (보통 교육 관련  문제들) 일들 에서 느꼈던 미심쩍은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더 낳을 것 같아서 이 사회에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하고, 어쩌면 보려고조차 하지 않는 문제이지만 수상하고 미심쩍게 느껴지던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촛불집회의 멋지고도 찝찝함느낌


  작년 5월, 모두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학생은 공부나 해!’라는 사회적 주문에서 스스로 풀려난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촛불에 처음에만 함께했을 뿐 명박산성이 세워지던 즈음 부터는 함께하지 못했다.

그 전에는 아직 광우병 문제에(어쩌면 사회문제들에) 관심을 많이 두고있진 않았기에 촛불문화제 라는 것에 두어번정도 그리고 어쩌다보니 가게됐던 처음으로 물대포가 등장하던... 내 생에 처음의 밤샘집회에 한번 참여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너무 멋지고 모두가 자랑스럽다’라는 감동과 ‘그치만 이건 좀 뭔가....’ 하는 찝찝한 이상한 감정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다. 뭐 내가 착한 어린이라 집회에 처음가봐서... 불법집회라 혼날까봐.... 이런 이유 때문은 전혀 아니지만 집에와서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멋진 상황에서도 뭐가 그렇게 찝찝한 것이고 미심쩍은 것일까? 라며 고민을 해보니 다들 좋아하던 부분에서 나는 불편했다는것을 깨달았다!


  우선 비청소년들이 청소년을 하나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아이들이 무슨죄냐 어른들이 지켜주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보호주의를 발동시켜버려서는 ‘무한경쟁’‘학교체벌’ 그리고 ‘등교거부라던지의 권리’같은 건 전혀 보호하지 않으면서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는것에 대해서는 ‘10시 이후 청소년 귀가’‘부모 동의서 받고 나오기’이런 식으로 청소년이 목소리를 낼 권리를 무시하고 아이들은 사회문제에서 함께 싸울수 있는 동지가 아니라 지켜줘야만 할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시니 그에 반대한 우리는 ‘어른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종이 피켓을 들고 나가기도 했었다.(도대체 어디서 지키겠다는 건지... 아마도 비청소년 그들의 권력이랄까? 그들의 권리만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일 뿐) 이건 반쯤은 농담이지만‘미성년자 석방하라’라는 구호들 피켓들 물론 연행된다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청소년은 연행당할 권리조차 없는 것인가?’이런거다ㅋㅋㅋㅋ.

 

  두번째는 촛불집회장에서는 청소년 보호주의 뿐만 아니라 여성들 역시 함께 싸우는 동지가 아니었다는 것.

밤샘 집회를 하던 날 그날 처음으로 물대포가 등장했고, 다함께 으쌰으쌰거리며 전경과 대치하던 상황이었는데 그렇다고 자신이 돕는것도 아니면서 인도에 서서는 내가 거기서 함께 힘을 더하고 스크럼을 짜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이 있었고, 가서 함께 하려고 해도 비청소년들은 나를 자꾸만 인도로 올려 보낼 뿐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등장한 예비군들은 전경과의 대치를 막으며 그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다는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왜냐면 남자니까. 여자는 약하고 청소년은 미성숙하니까 싸울 수 있는건 우리 뿐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있는 것만 같았던 그런 기분. 그 때 옆에서 친구가 예비군에게 ‘너희만 사람이냐고, 군복이 벼슬이냐? 여자랑 청소년도 같은 사람이라고, 같이 싸우면 되는건데 왜 너희가 그걸 막고있냐’며 화를 내던 장면이 나에겐 정말 인상 갚은 장면이었고, 그 이야기가 나한테 그 이후로도 많은 걸 생각하고, 깨닿게 해주었다.

 

  그리고 주최측에서 언론홍보용으로 올려세우는 것만 같았던 청소년들의 발언들은 그냥 나를 슬프게 했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감정에 호소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학교에서 말도안되는 교칙에 너무 조심스러워야만 한다는 것에 많이 슬펐다. ‘학교 허락없이 집회,시위 참여등 사회활동은 퇴학 사유’라는 말도 안되는 교칙! 물론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사실 이것이 청소년이 자기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드는 큰 문제다. 나는 해당되지 않았지만 촛불을 든 청소년들중 많은 친구들이 학교에 돌아가서 체벌과 폭언, 징계를 받는 등 겪고있는 너무나 부당한 일들을 전해 들을때마다 발언할 때 얼굴 찍지 말라는 그 들의 목소리가 계속 생각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일부 언론들에서는 신경도 안쓰고 얼굴을 다 찍어가서는 청소년들이 ‘학교허락없이 시위,집회 참여는 퇴학사유’라는 말도 안되는 교칙으로 억압을 당하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함께 청소년 활동을 하는 친구들 중 기자회견, 퍼포먼스 때 마스크를 착용하고 하기도 하는데 그정도는 우리가 이야기를 함으로서 생기는 불이익과 부당한 억압을 방지하기 위한 최대한의 방어책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것 아닌건가?


교육감은 청소년과 가장큰 연관이 있는 사람인데 우리는 출마할 수도 뽑을 수도 없다니?!


  촛불집회의 보호주의로 인한 불편함들을 나열하려면 사실 끝이 없을 것 같다 히히

혹시 아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청소년들이 서울시 교육감 투표때 출마를 했었던 일이 있었다.

에이 ‘선거법 위반이다’‘참정권도 없는데 무슨소리냐’며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거기에 반대하기에 그런 퍼포먼스를 했었었다.‘못 뽑으니까 나와봤다. 현장경험 풍부, 시험만 골백번’‘이딴 교육 받으면 2MB 된다’등등의 타이틀을 가지고나왔던 기호0번 청.소.년 ㅋㅋㅋ

사실 교육감 이라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 것이고, 그들의 생활의 거의 전부를 지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왜 우리에게는 출마할 수 있는 권리도 심지어 투표할 권리 조차도 없는게 당연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청소년들도 스스로 이야기 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묻고 싶은건 그 미성숙과 성숙의 기준은 누구의 눈으로 정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는 것 정도?


활동을 하면서도 느끼는 답답함

 

  나는 일제고사 활동에서 참여를 했었다.

그리고 그때 다른 사회단체들과 연대를 맺어 활동을 하면서도 그냥 답답함을 느껴 버렸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작년 10월 등교거부 당일 기자회견을 하는데 건너편에 ‘학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분들이 기자회견을 하시더니만 학생들은 어서 학교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난 정말이지 청소년을 학생이라는 신분에 가둬버려서 생각하는게 너무 싫다. 정말 학교를 사랑한다면 우리가 학교를 사랑할수 있게 좀 만들어 주시던지말이다. 뭐 사실 활동을 할때 머리에 피도안마른 것들이 뭐하는거냐 공부나 해라 라는 식의 이야기들은 너무 많이 들어봐서 별일 아닌 취급 할수 있다.

그렇지만 함께 활동을 하는 비청소년들의 불편한 행동들은 우리를 많이 화나게 했었다. 원래3월10일에 예정 되어있었던 일제고사에 반대하기 위해 했던 청소년 농성이 교육청 앞에서 2월 23일 부터 있었다 (정부에서 훼이크로 일제고사를 31일로 미루는 바람에 농성이 21일까지 했었다). 거리농성이라 길바닥에서 밤도 새야하고 빡센 일정이지만 첫날 기자회견 하고 시작할때 우리도 물론 정말 중요한 반대의견이기 때문에 농성이란 것을 시작한 것이었지만 적어도 다같이 있으면서 즐겁게 농성하면 좋잖아? 라는 생각에 기타도 치고 이야기도 하며 농성을 하던중 옆에 원래 있었던 농성하시던 분들과 마찰이 일어났다.

놀꺼면 여기있지말고 저기 나가서 놀라고, 농성 할꺼면 제대로 해야지 이게 뭐냐며 말을 하는데 우리들은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도 절박하기 때문에 거리로 나온것인데 기왕 하는거 웃으면서 즐겁게 하고 싶어서 즐겁게 하는 방식인것인데 미성숙하다는 식으로 할꺼면 제대로하라는 비청소년들의 방식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살짝의 마찰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우리는 늘 즐겁게 농성하려고 노력했다.

무겁게 앉아만 있는 비청소년들의 방식이 있는 것이지만 바닥에 분필로 일제고사 반대 낙서도 해가며 노래도 부르고 피켓도 만들고 하는 우리들의 방식이 있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사실 청소년을 주체로 인정한다면 서로의 방식도 당연히 존중할 수 있는 것일텐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결국 함께 활동하는 단체들의 비청소년들 조차 우리를 깔아 본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는 것은 내가 비청소년들에 대해 크게 회의를 느끼게 했었다.


마지막 이야기


  흐음 내가 불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회에서 불만을 품을 수 있는건 당연한거아닌가?ㅋㅋㅋㅋ


  나는 사회가 청소년을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무조건적인 보호는 그저 우리를 무시할 뿐인 것이다. 청소년이 이 사회의 약자인건 분명한 사실이고, 약자를 배려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에 청소년이 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에 교통비를 적게 받고 하는 이런 배려들은 당연히 필요하다.


(아 그리고 내가 자꾸만 비청소년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이건 뭐야? 라는 생각이 드는 분도 있었겠지만 이건 그냥 사회에서 자꾸만 성년과 미성년. 이런식으로 청소년은 성숙하지 못하다 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처럼 우리의 입장에서 만들어낸 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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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5월에 삶창에 썼던건데

진짜 북흐럽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대박 북흐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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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활동모임 푸른달이 뜨다

청소년활동모임 푸른달이 뜨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겠지만, 나다가 이사를 왔어요. 5월 1일 함께 끙끙대며 짐을 날라서 홍대에서 합정 근처로 슬쩍 옮겨 왔답니다. 사실 그래봤자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곳이라 거기서 거기인거죠. 그렇지만 이번 공간은 참 넓고 좋아요. 옥상도 있고, 방은 세 개나 있고, 부엌에 베란다까지! 꺄호 우리 집보다 더 좋네요... 5층이라는 건물을 걸어서 오르내린다는 좀 안타까운 부분이 있지 만야 뭐 청소년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만족스러운 공간 이예요!


앗, 그리고 이사를 오면서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답니다. 교육공동체로 변화하기인데 말이죠.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청소년 자치예요. 하지만 전 이 말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들어본 적은 무지 많죠. 대안학교에서도 청소년 자치라고 하고, 대안교육 쪽에서도 청소년 자치를 이야기하고, 초등학교 때도 학급회의 자치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말이예요. 정말 이것저것 공교육이며 대안교육들을 산전수전 겪어보았던 제 생각으로는 지금까지 청소년 자치라고 해봤자 늘 뒤에서 비청소년들이 버티고 서서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도대체 자치라는 것이 뭘까? 하고 생각했던 저는 딱히 뭐 자세한 뜻.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어떻게든 사람들이 모여서 굴려가는 것이 자치라고 정리를 했어요. 거창한 회의를 해서 규칙을 정하는 것뿐이 아닌 그냥 우리가 모여 밥을 해먹고, 청소를 하고, 공간을 기획하는 그런 소소한 재미있는 것들. 정말 살아가기 위해 하는 당연한 것들도 자치라는 거죠.


하지만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던 청소년들의 자치는 비청소년들의 영역 안에서 어느 정도의 자율만 허용이 되는 상황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비청소년들이 함께하다가 그것이 어느 순간 권력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미리 방지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나다에서 어떻게든 굴려 가보며 청소년 자치라는 놈을 한번 해보겠다는 그리고 무엇이던 즐겁게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청소년활동모임 푸른달' 이예요. 그리고 지금도 나다라는 공간을 어떤 분위기로 어떤 느낌으로 사용하게 될지 고민들을 하고있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은 푸른달 이라는 이름처럼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이 들고, 조금 어려울지도 몰라요.

첫 번째 모임을 하던 날.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규칙은 없었으면 좋겠어. 우리가 같이 배려한다고 생각하자"라는 이야기가 우리가 바라는 모임의 제일 첫 번째 항목이었어요.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자율이 아닌 자유롭게 사용하고, 규칙 따위는 없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것인데. 배려라는 단어 말고는 달리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규칙이라는 것은 '여긴 우리공간이야 이곳을 사용하고 싶으면 우리가 만든 규칙에 따라서 행동해' 라고 이야기하는 폭력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나다라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꾸려나갈 것인가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어쩌면 규칙이 아닐까? 라는 고민들을 안고 있어요.


그리고 공간에 대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바깥에서의 폭력성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서로에게 그 폭력성을 표출해 내는 것이 아닌 공간 자체의 분위기를 우리가 미리 만들어 두고, 그 누가 오더라도 그 분위기에 녹아들어 함께 놀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이해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인거죠. 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두고는 그것은 절대 깨면 안 되는 것이라며 폭력성을 억제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게다가 나다의 사람들은 절대 조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면 나다 활동가들과 청소년들은 숨 막혀서 견딜 수 없을 거예요ㅠ_ㅠ) 그저 함께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쪽으로 변하게 만들 수 있는 편안하고 즐거운 그런 분위기! 아, 생각만 해도 우린 웃음이 나더라고요. 히히


우리에게 제일 고민이 되는 문제는 조금 복잡해요.

이 공간을 청소년들이 정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싶고, 내 공간 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챙기고 싶어지게 만들고 싶어요. 그렇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청소년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고요. 게다가 공간을 소비하러 오는 것이 아닌 함께 공감하고 무언가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러 오는 것이 되게 하고 싶은데 말이죠. 좀 어렵네요... 공간을 소비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에는 말이 짧아서 되지도 않고, 우리끼리도 서로 명확히 정리가 된 상태는 아니거든요.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할지는 몰라도 우선 부딪혀 보려고 해요. 지금까지 청소년은 주체성이 없다고 무시당하던 기억들이 있기 때문에 그냥 간단히 우리가 공간을 관리하고, 그들에게 공간을 대여하는 그런 손쉬운 방법을 사용하진 않을 거예요. 지금껏 당해왔던 억울하고 말도 안 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기는 부끄럽잖아요?! 앞으로 열심히 부딪히고, 깨지고, 변해가면서 우리는 청소년 자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 말을 계속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우리는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테니 많이들 기대해주세요.


(우리가 학교를 보고 느낀 건데 애들을 열심히 잡으니까 애들이 선생 말을 잘 듣더라? 근데 우린 애들 열심히 안 잡을 거잖아? 우린 아마 안 될 거야... 응?! 우린 절대 학교처럼 안 될 거라고~)


쩡열 | 요즘 나다의 활동가들을 노예로 부려먹는 뉴제너레이션 크크

해솔 | 쩡열의 횡포에 슬쩍 묻어서 함께 부려먹는 뉴제너레이션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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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어느새 지나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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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라디오 돌아보기

정말 별거 없이, 같이 모여 수다 떨다가 툭 튀어나온 한마디로 시작되었던 모난라디오.
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재밌을 것 같아서, 그리고 정말 방송을 시작하면서는 청소년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 중간에는 슬럼프도 빠졌었지만 이젠 다시 애정을 모락모락 키워가며 어느덧 5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우리들. 쉬어가는 이 시간이 되서야 모난라디오를 만나서 내가 변한 점이 뭘까? 하는 물음표를 던져보았을 때 나는 사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이곳저곳 헤매다 작년부터 이제야 내가 마음에 드는, 나와 맞는 곳인 것 같았던 이쪽(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음,,, 청소년 인권활동판?)에 도착하고 난 뒤 부터는 난다 말처럼 늘 내가 변해가거나 변해야하는 것들이 정말 우르르르 쏟아져 내렸기 때문일테지. 되돌아보면 내가 모난라디오를 통해서 변했던 부분이 무언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무엇을 얻었는지는 단순하게 뭐 책임감을 얻었습니다. 이런 것이 아닌 내가 앞으로 남은 몇 년을 청소년으로 여전히 삐쭉빼쭉 모나면서도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살아나가기 위해, 그리고 아마 계속 계속 내가 이 세상을 지구마을의 한 주민으로서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해나가야 하는 고민들을 얻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평가 기간이었나? 아마도 그 때 즈음이 모난라디오도 한참 뭔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던 참이고, 나 스스로도 불안불안 위태위태 거리던 시점이었는데, 처음에 청소년 활동판에서 여성들끼리 모여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내어보자 라고 이야기 할 때 가졌던 소중함, 즐거움 등등의 반짝이던 감정들이 내 코너에서 보호주의, 남성우월주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늘 다른 에피소드에서 비슷한 이야기로 흘러가버린다는 매너리즘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이 쌓이고 쌓이더니 귀찮음, 막막함, 재미없음 이런 식으로 퇴색해버렸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의 상태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다시 애정이 샘솟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코너 개편의 두근거림이 아닐까 싶다. 내가 방송을 하면서 갇혀 버렸던 매너리즘은 아마도 늘 새롭고, 또 고민 하는 게 아닌 습관, 일정이 되었다는 것이었는데 조금은 무책임하지만 즐거운 일은 열심히 빤짝거리는 나로서는, 그리고 내 마음이 즐거운 일을 하고 싶은 나는 앞으로도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현재에 안주하고 변하지 않는 것 이겠구나 라는 걸 무언가 은근하지만 조금 강하게 마음속에 박혀버렸다.

"앞으로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커다란 화두도 머릿속에 꽉 박혀버렸고 말이다. 아마도 이 화두는 나뿐만이 아니고, 모난라디오 뿐만 아닌 지구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일 테니 나는 너무 조급해 하진 않으려고 한다. 천천히 살아가면서 고민해가며 변해가야 할 문제일 테니까.

이제 몇 주 뒤에 막혀버린 고민들을 위해 잠시 쉬었던 모난라디오를 다시 시작 하게 되면, 지금까지 모난 것들이 함께 우왕좌왕 거렸던 것들 역시 빠짐없이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조금 더 나아진 거? 그런 거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서로가 자꾸만 소중해지는 우리 모난 것들은 앞으로도 함께 만나가면서, 고민해가면서, 이렇게 또 막막해지면 잠시 쉬기도 하고, (나름)막내인 내가 20살이 되어 우리 모두가 청소년들이 아니게 되면 그 때엔 20대 라디오로, 어쩌면 라디오가 아닌 그 어떤 방식으로라도 '세상과의 소통' 이라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해 나갈 테니까. 난 그렇기에 모난라디오가 자꾸만 삐걱거린다고 걱정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우리가 즐겁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라디오가 삐걱거린다고 함께 보는 것이 즐겁지 않지도 않고, 또 그런 고민들을 같이 해나가는 것도 우리의 즐거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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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포럼때문에 써야되는건데 아 너무 늦게 썼어ㅠㅠ

그래도 응 정리가 좀 되네 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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