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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의 고고한 자태

 

1.

새벽 5시 30분, 추위에 눈이 떠졌다. 파카를 얼굴위로 덮는다. 좀 더 자고 씻고 나와 보니 여관 앞에 아침을 파는 노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한 노점에 앉았다. 푸른 빛을 띠는 쌀 죽, 짠지, 계란을 앏게 부친것등이 메뉴다. 계란이 식어서 인지 맛이 별로다. 한 남자가 조금 먹다 안먹고 가버린다. 또 한 남자가 먹더니 나에게 이게 량콰이(이원)이라 귀뜸해준다. 다 먹고 내가 2원을 내며 량콰이하니 스콰이란다. 중국 숫자발음중 4인 쓰와 10인 스~우는 구별하기 힘들다. 10원이란다. 내가 꾸어러(비싸다)며 5원을 내밀었다. 3-4명의 아저씨 아줌마가 합세해 10원 받는 거라며 내가 계란 두장 먹었지 앉나며 물러서지 않는다. 난 나름데로의 결정타를 먹였다. 베이찡-이것-먹는시늉-량콰이(2원) 결국 7원으로 합의를 보고 웃으며 짜이지엔(감사합니다 또 올게요)했다.

 

2.

정저우에서 소림사 숭산까지는 한 3시간 거리란다. 역앞에 미니버스가 있다 했는데 보이지가 않고 버스터미널의 노선표를 보니 소림사가 있다. 21원이다. 정저우란 도시는 바로 빠져나가게 생겼다. 나의 루트는 정저우-소림사 숭산- 뤄양- 서안이다. 어느덧 내가 탄 버스는 도심을 지나 고속국도로 들어선다. 소림사 48키로 1시간 남짓 거리다. 고속도로는 이렇게 시간을 단축시켜나간다. 사람들은 여기에 익숙해진다. 버스 앞쪽에 티비에서는 중국 올림픽 선수 환영쇼를 대형 운동장에서 하고 있다. 선수들이 인사하고 노래부르고 중간 중간 가수가 나오고 선수가 나올때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하다. 큰 운동장이 작은 오성홍기로 가득찬다.

 

3.

창 옆은 계단식 논들이 이어진다. 난 버스 앞에서 3번째 자리에 앉았는데 내 앞의 남녀는 벌써부터 연신 부비고 난리다. 중국사람들의 애정표현이 훨씬 자연스럽고 과감하단다. 인터넷의 중국 여름 여행기를 보면 공원이나 거리에서 짧은 핫팬츠와 미니스커트가 정말 많다 한다. 여기에 눈돌리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사람이라 하는데. 중국여성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도 다 자전거를 탄단다. 속옷이 보이는데 머 대수냐는 식이이다. 중국사람들은 이에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하기야 어제 그 복잡했던 북경서역 대합실 한 복판에서도 키스를 하는 남녀를 보았다. 티비에서는 이제 대형 홍기가 입장한다. 크라이막스인가. 중국에서 홍기 참 많이도 본다.

 

4.

거의 도착할때가 되었나 보다. 거리마다 무술학원들이 눈에 띈다. 종점에 내리니 소림사 입구가 아니라 숭산 등산로 입구이다. 몇 명이 다가와서 어디가냐고 묻는다. 샤오린스(소림사)라고 하며 내 발을 가리키니 소림사는 여기서 걸어서는 못 간단다. 30원에 작은 봉고차를 타고 소림사로 향했다. 운전사는 연신 나에게 어디서 잘 거냐며 내가 소림사를 걸어갈 수 있는 곳(사오린스 두거두거두거)했더니 이배이(100원)에 잘 수있다. 거기서 소림사 두거두거란다. 입구에 있는 빈관은 량베이 보시(250원)이란다. 가자고 했다. 숙소는 티켓을 끊고 안쪽으로 들어와서 형성되어 있었다. 100원을 치루고 방에 들어왔더니 침대 3개짜리 방에 나 혼자 묵게 되었다. 누구의 연결로 방을 구하면 그 사람의 커미션이 있기에 싼 방을 구할 수 없다. 소위 삐끼없이 스스로 찾아가야 싼 방을 요구할 수 있다. 이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5.

방 열쇠를 받고 이제 소림사로 가 볼까하고 내려오는데 할아버지가 식사를 하고 계셨다. 나에게 밥 먹었냐는 식의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한 식당에 나를 데려간다. 그래 먹고 올라가보자. 또 책과 프린트물을 꺼내어 마파두부, 시금치데침, 밥을 시켜먹는데 주방장 남자가 관심을 보이며 옆 자리에 앉는다. 식구가 다섯이란다. 직업이 요리사 호하냐 물었는데 좋아한단다. 케이블가 둥둥둥둥 얼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앉은 동그란 탁자 밖에는 산이 바로 보인다. 햇살이 따사로이 비춘다. 이제 소림사로 가봐야 겠다.

 

 

6.

인도에서온 달마대사가 9년동안 면벽수행 했다는 소림사. 우리에겐 쿵푸로 유명하고 전 세계적으로 쿵푸때문에 여행객들이 소림사를 찾는다. 소림사 안은 공사소리가 요란하다.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소림사 바로 위쪽 역대 소림사 승려들의 묘지가 탑으로 세워져있는 탑림이 볼 만했다. 소림사라는 이름은 숭산의 두 산줄기인 태실산과 소실산중 소실산의 기슭인 소림에 절이 세워졌기 때문이란다. 탑립을 나와 산으로 걸었다. 재미없게도 길이 포장이 되어있다. 정상은 걸어서 2키로라 하는데 사람이 안보인다. 론리중국에선 혼자서 산길을 걷지 마라고 소림사 스님들이 충고한다고 나와있다.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잘한일이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은 단조롭고 엄청나게 힘든 길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 부근에 내려 걸어가니 음 이곳이 숭산이로군 할 정도로 가파를 벼랑과 시원한 구비구비 전망이 나타난다. 깎아지는 벼랑 중간에 난간을 죽 이어놓았다. 입장하는데 30원. 마치 반지의 제왕 1편에서 겨울 산 벼랑을 아슬하게 지나는 그런 길이었는데 여긴 난간이 있었다.

 

7.

성스러운 산이라 불리워지는 숭산, 예전 도교사람들이 목화토금수 오행에 가장 걸맞는 산을 찾다가 토가 상징하는 중심의 산이 이곳 숭산이라고 결론을 지었다한다. 그래서 숭산을 중악이라고도 부른다한다. 내 사주 오행 중 토가 제일 많기에 약간의 관심이 더해진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다 화장실에서 처음 문없는 칸막이를 보았다. 이 동네는 화장실들이 문제군 내가 묵은 숙소도 더운물도 안나오고 화장실을 가기 싫을 정도다. 저녁을 먹자. 다른 식당을 가 봐야지. 회화책과 프린트물을 꺼내어 닭고기 요리 하나 시키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식당으로 모여든다. 중국에서 식당은 사랑방의 역할을 하는 거 같다. 일제시대의 역사극이 나오는데 당하는 사람이 한국인인가 보다 한 사람이 나에게 티비를 가리키며 한궈랜(한국인)이란다.

 

8.

한 사람이 자기는 산스류우, 한 서른 대여섯살 인데 난 스물여섯정도로 보인다. 몇 살이냐고 묻는다. 내 출생연을 종이에 쓰니 약간 놀라는 눈치다. 동갑나이인거 같다. 자기는 결혼했고 아이도 있다며 아이키를 손 대중으로 말해준다. 이 중국인가 종이에 팔괘를 그린다. 그리고 한국태극기가 팔괘를 응용한 것이라는 의미의 말을 한다. 내가 태극기를 그린다. 사방을 3 4 5 6 획의 괘의 위치가 맞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숭산 중앙 토 등등 좀 아는 척을 했고, 그는 지도에서 남한과 북한을 가리키며 뭐하고 한다. 알아듣지 못했는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말일까? 내가 무겁게 가져간 론리플레닛 중국, 중국 회화책, 기행문, 프린트등이 중국사람들을 만나는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좋고 세련된 식당보다 허름한 일반 동네 식당에 들어가면 쉽게 중국사람과 인사하고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화에서 나의 회화수준이 드러나고 안타까운 면이 있다. 첫 여행에 이정도가 어딘가. 주방장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국돈 100원 동전을 주었다. 몇 명에게 가져간 카피믹스도 주었다. 

 

9.

소림사에 밤이 저문다. 머리도 못감도 샤워도 못했다. 뭐 하루 이틀 안할 수도 있지...

 

 

041205 여행10일차

(잠) 13000원(100원)

(식사) 아침 910원(7원)

          점심 2600원(20원)

         저녁 술 1950원(15원)

               식사 3640원(28원)

(이동) 정저우-숭산 버스 2730원(21원)

         숭산 - 소림사 봉고차 3900원(30원)

(입장) 소림사 숭산 입장료 5200원(40원)

         숭산케이블카 왕복 7800원(60원)

         숭산 절벽 난간입장료 3900원(30원)

(간식) 고구마 520원(4원)

          물 260원(2원)
..................................총 46,41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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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09:38 2004/12/09 09:38

정저우에서 호객하는 아줌마에게 이끌려 차길 앞 침대방에 묵었다. 영수증. 긁어서 뭐가 나오면 할인도 해준다하는데 꽝이었다

 

1.

오늘 첫 여행지인 북경을 떠난다. 내가 갈 정저우, 뤄양, 카이펑은 명 청이전 중국 제 나라의 주요 수도 였던 곳이다. 우리가 삼국지에서 아는 낙양이 뤄양이다. 11시쯤 숙소에 나와 깔끔한 중국식 패스트푸드 밥집에 겨우 한 자리가 나 한 두시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식당으로 모여든다. 특이한점은 앞에 딴 사람이 앉았든 말든 자기가 한 자리라도 나면 앉는다는 것인데 중국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모르는 사람과 잘 앉아있는다. 북경서역 가는 버스를 1원 주고 탔다. 이 버스의 종점이 북경서역인데 겉보기에도 어마어마한 크기다. 중국 중남부의 주요도시의 출발지점이 북경서역인데 안에 들어가보니 사람들의 물결이 정말 인산인해다.

 

2.

내가 타는 열차는 6번 홈에서 출발한다. 6번 홈 그 넓은 대기소에 앉을 자리가 없다. 그래서 조금 한가한 9번 홈으로 가서 자리를 하고 앉았다. 난 침대칸이라 지정 좌석이 있지만 양손에 큰 푸대자루에 짐을 한가득 넣고 가는 사람들은 입석인가 보다. 충칭가는 기차 번호가 뜨자 벌써부터 사람들이 줄을 빼곡히 서기 시작한다. 지금은 2시 충칭가는 기차는 4시 30분 출발인데 벌써 저렇게 앉을 자리도 없이 줄을 선다. 한 여성 역무원이 소리를 지른다. 아마 지금부터 줄을 서면 통로가 막히고 어떻게 하냐는 거다. 사람들은 웃기도 하고 거동이 없다. 전족으로 상징되는 중국 근대 여성 그때는 한국보다 여성 비하가 더 했으면 더 했을 시기였다. 60년대 말 문화대혁명 이후 확 바뀌었다 한다. 출발시간이 15시 17분인데 6번 홈으로 가보니 15시 43분에 출발한단다.

 

3.

열차가 달린다. 서남쪽 300여 키로 정저우가 도착지점이다. 서울에서 부산 어릴적 기차를 떠올려본다. 그땐 그 거리가 굉장히 멀게 느껴졌었다. 난 3층 침대의 2층 칸이다. 사람들은 복도 옆 창가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가 한다. 2층에 누우니 발이 복도로 빠져 나온다. 대각선으로 몸을 누이고 침대에서 창가를 바라본다. 저쪽창이 서쪽, 내가 떠나온 곳. 24시간 배를 타고 다시 총알택시로 북경으로 다시 서남쪽으로 내려간다. 이곳이 위도상으로 목포쯤될까? 눈을 감고 머리속에 지구본을 떠올린다. 내가 이만큼 왔어.

 

4.

정저우에 도착했다. 깜깜한 밤, 가려고 했던 여관을 찾을 수 없다. 계속 달라붙는 호객하는 사람들. 하루밤에 100원, 한 사람을 따라갔다. 공교롭게 큰 도로 앞이다. 창가로 바람이 숭숭들어온다. 다행이 화장실은 안에있고 더운 물이 나온다. 정저우의 도로가에서 잠을 청했다.

 

041204 여행9일차

(잠) 13000원(100원)

(식사) 점심 1950원(15원)

(이동) 북경서역- 정저우 20600원(159원)

          버스 130원(1원)

(간식) 물 과자 감 말린것 1630원(12.5원)

...........................................총 37,31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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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09:35 2004/12/09 09:35
  1. 자일리톨
    2004/12/28 13:09 Delete Reply Permalink

    중국은 은근히 차비가 비싸군요. 전통적인 먹거리는 저렴한 편인 것 같은데, 차비는 거의 남한수준인 것 같네요. 암튼 기록해주시는 물가는 나중에 중국여행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듯 싶네요.


1.

오늘은 유스호스텔의 마지막 밤이다.  기차역에서 표를 끊어야 한다.  시안으로 바로 갈까 정저우로 가서 거쳐서 갈까. 정저우로 가기로 했다. 어제 밤 광저우 중국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아침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투마로우 그리고 아침이란 중국 간체자 손으로 찍고 먹는 시늉을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같은 방을 쓰던 멕시코 친구는 아침일찍 중국 남부로 떠났다. 멕시코 제2의 도시인 과달라다하에 살고 중국 남쪽에서 스터디를 한다나, 내가 어제 밤 대화중에 세계 지도를 펴보이며 17세기에는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가 멕시코 땅이 아니었느냐, 맥시코 치아파스 주 지역을 가리키며 히어 플레이스 사파티스타 라고 하니 놀라는 눈치다. 나보고 그걸 어떻게 아냐고 하길레 그냥 인터레스팅 흥미로워서라도 대답했다.

 

2.

아침 광저우 친구와 근처 식당에 나갔다. 서민들의 식당에 아침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자오쓰 만두와 밀가루 꽈베기, 찐 계란 2개 그리고 나는 순두부국 광저우 친구는 스프 비슷한 걸 먹었다. 옆테이블에서 상차이를 넣은 만두국을 보고 내가 상차이 하니 그가 상차이 좋아하냐고 묻는다. 내가 한 두 번 먹어봤다(원 투 이트). 이 상차이 만두국을 하나 더 시켰다. 유쾌하게 아침식사를 먹고 계산하려 하니 그가 내겠단다. 모두 780원(6위안)이 나왔다.  

 

3.

광저우 친구와 헤어지고 북경역으로 갔다.  한바퀴 죽 돌아보고 입구로 들어가 2층을 아무리 돌아도 외국인 전용 창구가 안보인다. 그래서 일반 표파는데서 사보자. 8위안을 주고 기차 시간표 책을 하나사고 날짜 시간 가는 방향, 침대 하 등을 노트에 적어 1층에 내려오니 외국인 창구가 보인다. 중국 기차 침대 상중하중 하단은 없단다. 중간 침대를 선택하고 표를 끊었다. 이제 북경을 떠날 준비는 끝났다.

 

4.

지도를 보고 전철로 천안서문역에 내렸다. 중국공산당 인민대회당으로 갔다. 입구를 찾아 헤메다가 찾았다. 입장료 30위안, 사진을 찍어도 좋지만 짐은 보관해야 한단다. 2위안. 큰 대회장은 연대대강당 정도로 보였는데 책에서 보니 좌석이 만석이란다. 대회당 한 의자에 앉았다. 천장에는 소용돌이 치는 장식과 그 중간에 붉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천안문으로 들어갔다. 천안문앞에 붙어있는 모택동 사진을 뒤로하고 문을 통과하니 자금성 입구가 나온다. 누가 중국 10년의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를 가고, 600년 역사를 보려면 북경을 둘러보고, 3000년 역사를 보려면 서안으로 가라했는데 명 청 600년여의 도읍지 황제의 궁궐이었던 곳이 자금성이다. 입장료 40위안, 전자한글설명기 빌리는데 40위안이었다. 설명기를 귀에 꼽고 자금성으로 들어갔다. 건물 건물마다 전자감응으로 설명이 자동으로 나온다. 이 걸로 전체를 둘러보려면 한 3시간 코스란다. 나중에 한 한국 여행사에서 한 30명의 한국인들이 보인다. 나도 옆에 따라다니며 조선족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좀 더 이해가 된다.

 

 

자금성 입장권. 앞에 보이는 계단의 돌들이 무거운 그 돌이다

 

5.

특히 가장 큰 성의 지반과 계단을 50키로 떨어진 곳의 돌을 가져다 썼는데 무게로 따지면 수십톤의 돌을 옮기는데 겨울에 바닥에 물을 뿌려 얼게 만들고 수천명이 밧줄로 돌을 끌었는데 50키로 가는데 26일이 걸렸단다. 황제가 거하는 침소는 같은 침대가 스물몇개가 있어 모두 커튼을 쳐 두어 자객에 대비했다고 한다. 한 황제는 너무 시녀들은 못살게 굴어 17명의 시녀가 황제가 잠들때 목에 밧줄을 묶어 졸랐는데 매듭이 잘 못 풀리게 되어 황제가 비명을 지르고 경호병에 의해 바로 17명의 궁녀가 난자당한 사건등등...

 

6.

자금성 북쪽으로 나와 서쪽으로 걸으니 한 공원이 나온다. 알고보니 북해공원이었다. 황제의 놀이터였던 북해공원 이 인공호수에 큰 배를 띄워 놀았다한다. 현재는 남녀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는데 한겨울에는 호수에서 스케이트도 탄단다. 공원 꼭데기 라마교 형식의 묘한 느낌의 탑이 인상적이다. 공원을 나와 자금성 서쪽으로 죽 걸었다. 2원을 주고 중국식 햄버거 하나 사먹고 젊은이들의 거리인 시먼역까지 걸어갔다. 중국어영화하나 볼까 하다. 아냐 경극을 보자하며 가이드 북을 보니 전문안 시장 통에 있다. 또 한 전철역 3정거장을 걸어 시장통을 헤메는데 안 보인다. 이러다 일을 냈다. 한 손에 작은 배낭메고 한 손에 론리플레닛에 나와있는 지도 보며 헤메는 나의 모습이 딱 표적이었나 보다. 먼가 이상하고 쏴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는데 벌써 없다. 내 파카 호주머니의 카메라도 없어지고...

 

7.

차라리 홀가분해 졌다. 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어디 글에서 여행가서 소지품 하나 잃어버리는게 여행의 묘미라면 묘미다라는 글도 읽었겠다 오늘 자금성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나 자신이 별로 였었다. 내 마음속에 상을 담아야지 메모리 카드에 담으면 뭐하나. 바로 옆에 카메라 파는 골목이 나왔지만 카메라를 사지 않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왔다. 두명의 룸메이트는 이젠 없다. 샤워를 하고 조금 있으니 여자 두명이 들어온다. 한 명은 일본여성인데 직장다니다 3일간 휴가를 내고 오는 거란다. 영어를 잘하는 싱가포르여성은 남편 가족 전체가 모래 북경으로 오는데 먼저 왔단다. 내일을 쇼핑을 한다고 한다. 자기는 스키를 좋아한다고 한국에도 스키장 있냐고 묻는다. 있다고 대답했다. 일본 여성과 대화를 하다 저녁을 안먹었단다. 나도 변변하게 먹은게없어 같이 오늘 아침 광저우 친구와 갔던 곳으로 갔다. 버섯과 채소를 담백하게 볶은 요리, 탕수육 비슷한것에 다가 밥을 먹었다. 일본여성은 자기는 일이 재미 없단다. 그래서 내가 여행이란 돌아보는것 돌아가서 일을 재미있게 하기 위한 것이란 말을 아주 어렵게 영어로 했다. 오늘은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로군. 게다가 영어도 써먹고... . 숙소로 돌아와 각자의 침대에서 자려 하는데 일본인 여성이 그 자리에서 옷을 그냥 갈아입는다. 별 스스럼없이. 난 약간 게면쩍었는데 그 건 내가 살던곳에서의 관념인가?

 

041203 여행8일차

잠 : 7800원(60원)

식사 : 3300원(25원)

간식 : 물 260원(2원)

         햄버거 260원(2원)

         중국거리음식 - 큰 판에 밀가루 앏게 부치고 그위에 계란 풀고 다익으로 한번뒤집어 양념과 상차이 풀을 넣어 2 3 번 접어 토스트 같이 먹는 음식 260원(2원)

이동 : 지하철 2번 780원(6원)

                   1번 390원(3원)

입장 : 인민대회당 3900원(30원)

             짐보관료 260원(2원)

         자금성입장료 6500원(50원)

         전자한글해설기 5200원(40원)

.....................................................총 2894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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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8 23:27 2004/12/08 23:27

* 서안에 도착해서 숙소 인터넷으로 치는 것임

 

1. 그동안 써 놓은 여행일기와 사진을 한 번 올려볼까. 일단 한국 유학생 거리인 오도구 거리에 전철 타고 갔다. 여기서 방법을 물어보자. 오도구 전철역 바로 옆 오픈한지 얼마안되는 한국유학생이 주고객인 피씨방이었다. 가격은 한시간에 8원 즉 1000원 돈이다. 이곳은 한국과 물가가 거의 비슷하다 한다. 보통 중국인 왕빠는 시간당 2-3원 정도라는데 거기로 가봐야 겠다. 한국인 직원에게 제어판에서 한글쓰기 방법을 배웠다. 그런데 만만치 않을 수가 있다고 한다. 컴에 따라서 윈도우 프로그램 씨디를 넣으라는 컴도 있다 했다. 오도구의 피씨방이지만 한국에 비하면 예전 전화선으로 피씨통신하는 속도다. 사진 하나올리는데 왜 이처럼 더딘지...

 

2. 저녁이 되었다. 3위안짜리 중국 사발면을 하나 사먹었다. 여기서 파는 신라면큰사발은 5원이었다. 10시 30분정도 어제까지 올리기를 끝내고 계산하니 모두 90위안이 나왔다. 아니 11시간을 했단말인가? 전철역으로 가니 문이 닫혀 있었다. 방향감각은 세웠겠다 베이징 2호선 가까운 전철역으로 택시를 탔다. 택시는 10원 부터 기본요금이 시작되어 14원이 나왔다. 전철을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041204 여행 7일차

잠 : 7800원(60위안)

식사 : 아침 만두 순두부국 390원(3위안)

         저녁 사발면 390원(3위안)

간식 : 중국식 검은 빵 350원(2.6위안)

이동 : 택시 1820원 (14위안)

         지하철 2구역 650원(5위안)

                   1구역 390원(3위안)

기타 : 피씨방 11700원(90위안)

     ..........................................총 234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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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8 22:41 2004/12/08 22:41

1

바램 : 중국 사회주의자와 문화혁명에 대해 논하고 싶다

현재 : 물건 살때 얼만지 겨우 알아 듣는다

 

2

5인실 도미토리 208호 방에는 나말고 두 사람이 묵고 있다.

한 사람은 맥시코 젊은 친구, 또 한사람은 중국 남쪽인 광저우에서 의류디자인을 전공하고 지금은 의류세일즈 일에 뛰어든 친구다. 맥시코 친구는 처음 만날때 영어로 몇 마디 나누었다.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거 같다. 중국인 친구는 나보다 훨씬 영어를 못한다. 거의 못한다고 봐야겠지

마치 내가 바둑 7급이라면 그는 9급정도 되는 거 같다. 하지만 그는 중국인이라 중국어 주로 하며 영어를 섞어서 겨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중국인 친구에게 좀 난위도 있게 꿈이 머냐고 물어보았다. dream이란 표현을 썻더니 머리 속을 손으로 가리킨다. 옥편을 찾아가며 전망 등등을 쓰니 겨우 이해하는 눈치다.

어제 밤 빨래거리를 10위안에 맏기고 인터넷으로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려 했는데 하여튼 한국어 쓰기를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외국에서 인터넷 하는 여러방법을 써서 갔지만 소용이없다.

오도구 한인 피씨방에서 방법을 알아야겠다.

 

3

오늘은 만리장성에 오르자.

전문쪽 관광버스는 50위안에 기념품가게에 들려야 한다. 일반버스타고 가기로 했다.

919번 버스가 있는 전철역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두번 돌면 919번 정류장이 나온다고 했는데 안나온다. 돌아가려 했는데 저쪽편으로 호수 같은 것이 보인다. 죽 걸어서 들어가보니 유원지인가 보다. 소박하지만 경치가 멋졌다. 몇 명 아저씨 아줌마들이 부채춤을 배우고 있다. 우아해 보였다.







 

4

아 처음에 보았던 그 성이로구나

이제 위치에 대한 감을 잡았다. 로타리 근방에 서민 식당이 보여 들어갔다. 1원짜리 순두부 고기국과 깨찰빵 두개를 주문했다. 모두 2위안 2마오(280원) 순두부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깨찰빵 하나를 들고 919번 버스를 타려고 하자 차장 남자가 그거 어디서 샀나며 농담같은 걸 건네는거 같은데 잘 못 알아들었다. 그냥 만리장성 사진을 가리켰다. 차가 출발했다. 외국인은 나혼자 였다. 그 동안 다니면서 한국인을 만난적이 없다. 한편으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의아해진다.  


 

5

만리장성 입구인 빠다링에 못내릴 뻔 했다. 탄 사람들 대부분이 내릴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한 5명정도. 40위안을 주고 티켓을 끊었다. 건전지를 사러 한 상점에 들렀다. 두라셀 건전지 4개를 가리켰다. 이 아줌마가 120위안이라고 전자계산기에 숫자를 찍어준다. 120위안이면 15000이 넘는 돈이다. 건전지 4개에. 결국 조금 질 낮은 도시바 건전지 4개를 처음 40위안인가 60위안 부르는것은 10위안(1300원)에 샀다.

만리장성에 올랐다. 진시황 시절 만리장성이 있고 후대에서의 만리장성이 있는데 보통 빠다링을 거쳐 오르는 만리장성은 후대의 것이다.

벽을 쌓는 일. 역대 중국왕조들은 무얼 그리 쌓을 일이 많았을까?

하기야 장성이 막는 역할 만이 아니라 성위의 길의 물자의 유통로가 되기도 했다지만 동원된 인부들은 추위와 싸우며 이 벽을 만들었을 것이다.



 

 

6

바닥에 앉아 중국 기행책과 론리 플레닛 중국을 읽고 있는데 한 중국인이 책에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책을 보여주며 같이 발음도 해 보았다. 한국인이라 하자 금세 3 4명이 모인다. 아마 청소하는 역할의 노동자들인가 보다. 회화책에서 직업이란 단어가 나와 빗자루를 들고있는 사람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머쓱하며 웃는다. 그들과 헤어지고 조금 있으니 한국말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여온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여수 모 사업장에서 왔고 우수사원 견학이라 하는데 누가 또 뒤에서 웃는다. 다들 사진 박을려고 정신이없다. 전무님 앞으로 한발 나오시고 위원장님 같이 서시고 오호라 이게 뭔가 혹시 이곳이 노사화합의 자리가 되려는 걸까?


내가 보고 있는 책에 관심보인 중국인


 

7

3시쯤 내려와서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919번 버스는 다양한 크기의 버스가 있고 타고 온 녹색버스가 고속도로노선이고 작은 버스들의 소로 (작은길)이란 표말을 붙이고 있었다. 금방 출발한다 베이징 간다는 말에 17인승 919번 버스를 탓다. 역시나 한 40분을 기다리고 사람들은 거의 태운 다음에야 출발한다. 가다가 걸어가는 사람만 보면 흥정을 한다. 그래서 건설일하는 노동자 5명이 타고 4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5명이 앉았다. 고속도로가 뚫린뒤의 작은 도로, 7위안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쾌적한 919 녹색버스와 2배나 시간이 걸리고 발을 뻗기 힘든 10위안 짜리의 작은 919 버스. 벌써 사람들은 작은 919버스를 타지않으려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한번 탈까. 젊은 운전사와 차장의 상술은 놀라울 정도다.

40분을 기다리게 하는데 가만두지 않는다. 마치 바로 갈 것처럼 수영복 입은 여성들이 그냥 음악에 춤을 추는 비디오 cd를 틀어주고 또 갈 거처럼...

한 3분의 2쯤 갔을까 차가 선다. 앤진 과열인거 갔다.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이제는 덤덤하다. 벌써 며칠 지났다고 여유가 생긴걸까. 다행이 큰 919가 와서 차장이 나와 한 학생과 한 묶음으로 둘이 5위안내라고 한다. 그래서 3시간만에 좀점이 성앞에 도착했다. 아침에 먹던 식당에 다시가 소고기국물 면 을 3위안에 밀가루 부침을 8마오에 사 먹었다.

숙소로 들어가기전에 북경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왕푸징거리에 들리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시먼거리도 구경했다.

또 하루가 지나고 있다.


왕푸징거리


유명해진 노점거리

 

 

041201 여행6일차

 

(잠)

유스호스텔 7800원(60위안)

 

(식사)

아침 280원(2위안 20전)

저녁 480원(3위안 80전)

 

(간식)

일본식 꼬치 520원(4위안)

물 3병 780원(6위안)

귤 4개 240원(2위안)

 

(이동, 입장)

만리장성 입장 5200원(40위안)

버스 2200원(17위안)

지하철  1170원 (9위안)

 

(기타)

건전지 12개 10원12원8원 3900원(30위안)

 

...........................................................총 2457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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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22:21 2004/12/02 22:21
  1. 슈아
    2004/12/03 00:01 Delete Reply Permalink

    저도 99년에 중국에 갔었는데..그때가 막 생각이 나네요. 중국어는 정말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그냥 바디랭귀지로 모든 것을 해결했어요. 가끔 한자도 써가면서 그래도 역시 통하더라구요. 하하...정말 가고 싶네.

  2. 허경
    2004/12/04 03:39 Delete Reply Permalink

    허성호하고 노힘사무실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황정일의 퀵보드가 보이네.
    지금은 느릿느릿 대륙을 걷는 황정일, 그의 '퀵'보드라...
    여행 중 종종 만납시다.

  3. 나름
    2004/12/04 11:46 Delete Reply Permalink

    형! 웬일이야! 생각보다 빨리, 게다가 자세하게 올리고 있네!
    사진은 안찍는다더니 결국 찍고있군! 좋아! 굳럭!

  4. 사막은
    2004/12/05 02:56 Delete Reply Permalink

    음 만리장성은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해도 훌륭하군..
    그 만두가 질리는 날이 곧 올거같은데 메뉴 좀 바꾸지. 암튼 참 잘 먹고 다니는군.. 건강하시고

  5. ljh1976
    2004/12/06 22:44 Delete Reply Permalink

    주식보다 비싼 간식을 먹었네~사진안찍는다며 찍었구만요~암튼 건강하게 여행잘해요~~

  6. 허성호
    2004/12/07 23:13 Delete Reply Permalink

    가니까 좋냐?
    황정일답지 않군!

  7. 자일리톨
    2004/12/24 17:59 Delete Reply Permalink

    핫.. 오늘은 여기까지...
    중국여행기 너무 재미나요.
    내일 또 읽어야지.:)


1

8시에 일어났다.

9시경 카운터로 내려오니 영수증을 보여달란다. 숙박의 경우 영수증을 잘 보관해야 할 것 같다.

배낭을 짊어매고 어제 아침 만두먹었던 식당으로 다시 갔다. 나를 알아보고 어제 먹었던 만두 한 판을 그냥 내 준다. 만두 먹을 거 아니었는데... 일단 먹었다. 주변을 쳐다보다 뒷 사람이 먹고 있는 계란국을 주문했다. 이거(중국말로 저거) 계란국에 풀이 많이 들어있는데 먹어보니 이게 상차이란 풀인거 같다. 유학생 말로는 나프탈랜 맛이다. 여행팁에서도 중국음식시킬때 상차이를 빼고 주문해라 하는데 꼭 극복해보고 싶었다.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먹을 만했다. 독특한 향

상차이. 보통 서민들이 국에 같이 먹는 깨찰빵도 하나 먹었다. 만두 2.5위안 계란국 2위안 빵 5마오 모두해서 5위안(650원)이었다.


오도구 지하철역

 

2

오도구 지하철역으로 왔다. 내가 가려는 전문역을 가리켰더니 5원이란다. 서울지하철로 치면 2구역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12호선을 타고 다시 2호선을 갈아탈때 입구를 빠져나와 다시 들어가는 방식이라 약간 애를 먹었지만 지하철 타기는 쉽다. 전문쪽의 방을 구할까하다 거긴 한국사람이 너무 많아 좀 더 가서 베이징 유스호스텔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운 전철역에 내려 걸었는데

안보인다. 다시 돌아가서 위치를 확인해보니 으리으리한 베이징 호텔 위치가 거기다. 호텔 카운터로가 유스호스텔 한문을 가리키니 가까운 곳에 있다며 소개 팜플렛을 준다. 다시 카운터에가 도미토리(여러명이 한방에 묶는 절약형 숙소) 방이 있는지 전화해달라고 했다. 영어로 했다.

방이 있다고 했고 40분뒤에 차가 온다고 한다. 차가 왔는데 그냥 승용차다.

하루에 60위안. 한국돈으로 7800원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4일을 묵기로하고 돈을 치뤘다. 키보증금 100위안도 냈다. 방에 들어가니 2층침대2개 1층침대 1개가 있고 그런데로 잘 만했다.


4일간 묵게 될 베이징 유스호스텔 입구

 

3

짐을 풀고 천안문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전철로 3정거장정도의 거리다. 이쯤이야

환전한 1000위안이 별로 남지않아 중국은행에 들어가 처음엔 여행자수표 100달러를 바꾸려 대기표를 들고 앉아 있으니 내 차례가 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같다. 여기서 100달러는 아무것도 아닌 거 같다. 사람들이 100위안(13000원)짜리 지폐뭉치를 한 손으로 못들정도로 들고 다닌다. 이화원앞에서 실패했던 자동인출기계에 다시 삼성 아멕스 카드를 집어넣었다. 돈을 뽑았다.

알고보니 최저 한도가 1200위안에서 2500위안으로 오른것이다. 2500위안이면 3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조심해야지. 돈을 4군데 분산시켜 다니고 있다.

 

위안화 돈 뽑은 중국은행

 

4

전문 즉 천안문 광장앞에 도착했다. 우선 전문 맞은편쪽 상가에서 멀 좀 먹어야지하며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유명한 재래시장 골목이다 큰 길에는 전취덕 본점이있다. 오리통찜구이 요리점이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골목 안 끝자락에 마음에 드는 곳으로 들어갔다. 어린 소저(메뉴판들고 서빙보는 여성)에게 한국사람이라 했더니 한국사람을 처음 만난다는 느낌으로 놀랜다. 주방에서 남자 둘이 튀어 나오고 인사를 했다.

오는은 채식으로 먹자. 프린트해온 자료를 보며 감자채쓸어서 볶다가 식초에 버무린 요리 4위안

마파두부 7위안 밥 1위안 칭다오 맥주 3위안 총 15위안(1950원)어치를 시켰다.

주방일 보는 남자가 내가 보더 회화 책에 관심을 보이며 좀 보잔다. 할머니 아빠 엄마 아버지 발음을 해 주었다. 내가 할머니 하며 옆 테이블 할머니를 가리키니 모두 웃으며 할머니라 한다.

가지고 있는 아몬드 초콜릿을 몇개 내밀었다. 한국거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 놀라며 누군가에게 가져다주고 사진도 찍었다. 유쾌한 식사였다.





 

5

식당을 나와 천안문 광장으로 걸었다.

광장 깃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유명하다는 시골에서 한번 북경에와 보는게 소원이라는 국기하강식을 보러 모인사람들이다. 사람들의 모습은 설레임에 차있는 듯 하다. 그 옆에는 사진찍어 코팅해주는 상인, 기념품 파는 상인들이 분주하다. 이윽고 저 주석궁 쪽에서 있는 폼없는 폼 다잡으며 수십명의 기수가 한 치의 스탭 오차없이 걸어온다. 10차선에 가까운 앞길도 잠시통제다. 기수들이 깃발앞으로 정렬하고 다시 몇 명의 기수가 깃대 앞으로 온다. 오성홍기가 서서히 내려온다. 한 기수가 그 동안 모든 폼을 합쳐놓을 만한 폼으로 깃발을 접어나간다.

기수들은 접은 깃발은 들고 다시 주석궁 쪽으로 향한다. 기수들의 모습이 사라질 무렵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한다.

어제 본 소학교에서의 국기계양식, 오늘 본 천안문 광장에서의 국기하강식.

무엇일까? 전통적인 중국 왕조문화의 잔재인가. 삶의 불안함을 기대감으로 표현하는걸까. 아님 오성홍기의 정신을 새기는 걸까?

 







 

041130일 쓴 돈

(잠)

베이징 유스호스텔 7800원(60위안)

 

(식사)

아침 650원(5위안)

저녁 1950원(15위안)

 

(간식)

물 260원(2위안)

주스 580원(4.5위안)

 

(이동)

지하철 2번 1040원(8위안)

................................................총 122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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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20:46 2004/12/02 20:46
  1. 슈아
    2004/12/03 00:06 Delete Reply Permalink

    향차이 좀 낯설죠. 그래도 나중엔 그거 안 넣으면 음식 맛이 안나서 그냥 넣어서 먹었어요. 익숙해지면 나름대로 맛나죠.



 여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었다

 

1

이 여관에서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이 곳은 북경의 북쪽으로 북경대 청화대와 황제의 휴양지 원명원 이화원을 도보로 왕복할 수 있다. 7시에 눈을 떳다. 우풍때문에 기침은 좀 나지만 속도 괜찮고 한 20키로 걷는 것은 도보 여행준비 한 답시고 일산에서 서울역까지 한 7시간 걸어본적도 있으니 문제없을 것 같다.

회화 책을 들고 카운터로 가서 단어 짚어주며 하루 더 연장하겠다고 했다. 알아듣고 숙박비를 치루었다.

 

2

여관을 나와 이화원쪽인 서쪽방향으로 쭉 걸으니 철길이 나오고 갈레길이 나왔다. 왼쪽은 큰 건물 길 오른쪽은 옛 길 이다. 오른쪽을 선택했다. 좀 가다보면 철길넘어가는 길이 나오겠지. 결국 안나왔다. 왼쪽 편으로 죽 늘어선 중국 식당이 보였다. 어디서 아침을 먹을까? 몇 군데 망설이다

한 군데 들어갔다. 입구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만두가 먹음직했다. 들어가며 만두를 손으로 가리키자 한 통 가져다준다.

아 맛있다.

어제 먹었던 만두와 비교할 수 없이 포근한 입의 감촉이 좋다. 한 열두개쯤 될까

다 먹고 소액 뭉치돈을 꺼내 아줌마를 처다보니 얼 콰이 ~ 라 한다. 아 2위안

1위안짜리 2개를 내미니 아니란다. 5마오를 더 달라는 거였다.

나 한국사람 (워 한 꿔 랜) 이라 말하고 5마오 더 주고 짜이지앤(다시 또 올게요)라 말하니

밝게 웃는다. 누가 중국사람들을 무뚝뚝하다 했는가 

 

2위안 5마오(330원)짜리 맛있는 만두



만두먹었던 중국식당

 

3

식당을 나와 죽 걸었다.

길의 왼쪽은 옛 변두리 지역, 길의 오른쪽은 북경과학기술대학 신축건물, 아파드등 길의 좌우가 확연히 구분되어졌다. 계속되는 자전거 행렬들 식당들, 변두리 지역 중간중간에 골목길에는 작은 시장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70년대 재래시장과 같은 풍경들...

좀 더 걷다보니 중국 공안경찰들이 재래길쪽 가로정비를 한답시고 식당 밖으로 나온 튀김 솥 등을 식당안으로 넣으라고 한다. 40분정도 걸었을까

다시 되돌아가기로 했다.


변두리쪽 지역의 큰 골목길

 

4

오다가 한 골목끝에 아이들이 모여있는 광경이 보였다.

들어가보니 한 소학교의 아침국민의례 같은 거였다. 공산당가 일까 아이들모두가 손을 머리위에 들고 오성홍기 계양식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저 다섯개의 별중 어느별을 꿈꾸고 있을까? 소자산가를 아니 독점대자산가를 꿈꾸지는 않을까?

소학교에서 옆쪽길로 가다가 한 5살쯤 될까 장난감 플라스틱 칼을 가진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나에게 칼을 겨누었다. 나도 팔을 죽 뻗으며 지나쳤다. 몇 초 뒤 다시 뒤돌아보니 아이는 나를 쫒아오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아쉬움이 밀려왔다.

가지고 있는 아몬드 초콜릿도 주고 눈을 더 마주치고 갈 걸...


돌아오던 길 한 골목 소학교가 보인다

 


오성홍기에 대한 경례

 

5

다시 큰 길가로 나왔다.

아까 그 공안들 내가 2원 5마오에 맛있게 사먹었던 그 집앞 근처까지 왔나 보다. 서둘러 밖에 내놓았던 책상을 들이는 당황하는 아줌마 얼굴이 보인다. 공안 3명이 봉고차에 내려 그 식당으로 향한다. 미처 치우지 못한 화로를 공안 하나가 걷어찬다. 일글어지는 아줌마의 얼굴. 나에게 환학게 미소지어주던 그 아줌마였다.

통제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 왼쪽 옛날 집들 그 집들을 부시고 아마 고층 빌딩을 짓겠지 몇 년안으로 분명히 일어날 일이겠지. 가로정비는 사전 훈련 정지작업 이겠지.

길 오른쪽 지역의 미래는 분명 흥해보인다.

길 왼쪽 지역의 미래는 어두워지고 있다.

 

 

이화원가는 736번 버스

 

6

다시 갈림길에서

왼쪽 방향으로 트니 중국상업은행이 보였다.

ATM 자동 인출기에서 돈을 뽑으러 들어갔다. 여기는 내국인용이라 안되었다.

계속 걸을까 하다. 일단 이화원까지 버스타고 가서 거기서 걸어오자.

여관 카운터에서 375번을 타라해서 탔다. 그래서 론리플레닛의 이화원 지도를 가리키니

안간단다. 이럴 수가. 나중에 알고보니 원명원까지만 가는 버스였다.

차장은 1원을 달라고 하면서 영수증에 726이라는 숫자를 써준다

청화대학 서문쪽 정류장에서 726번을 탓다. 차장에게 이화원이라 쓴 중국어 간체자를 쓴 수첩을 보여주고 5위안을 내미니 고개를 끄덕이며 영수증과 4원을 거슬러 준다.

이화원입구에 도착했다.

이화원의 길이가 728미터라는 장랑. 복도의 천장과 난간에는 각기다른 그림들이 그려져있다.

 

7

론리 플레닛 이화원설명에는 728미터의 장량이 최고의 볼거리라 한다. 일본의 사학자 진순신의 기행문에선 이런 표현이 나온다. 서태후라는 어리석은 여자 한명때문에 평범한 중국인들이 얼마나 어려움에 처했는지 그 긴 복도의 중심에서 느낄 수 있다라는 표현이었다. 예전 필리판 이멜다의 구두가 2천 켤레라는 소식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리석은 여자는 손을 꼽지만 어리석은 남자는셀 수 없겠지. 시안의 진시황 병마총에서 확인해 보아야 겠다.

황제의 오페라 극장 안의 한적한 곳을 지나는데 한 중국 여성이 자기 카메라를 주면서 사진 좀 찍어달란다. 찍어주고 나도 찍어달라고 했다. 내가 한국사람이라 하자 놀라는 눈치다. 거의 나는 중국인에 가깝게 생겼나보다. 그거보다는 인민군 모자의 덕인가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750원(5위엔)짜리 닭다리 튀김 하나 사먹었다. 먹을 만 했다.

 

 


이화원

 

8

한 3시간쯤 보았을까. 청화대학을 가려고 726번을 다시탔다

한 세정거장 쯤 가다가 보니 저기에 시장이 보였다. 바로 내렸다.

중국은 철망으로 쳐 놓은 곳이 많다. 여기도 그랬는데 철망을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 바뀌 죽 돌았다. 완전 재래시장이었다. 호두파는 곳에서 1300원(10위안)어치 호두 한 봉지를 샀다.

좀 손해 본 느낌이다.

다시 나와 원명원 쪽으로 걸었다. 청나라시절 이화원보다 먼저 생긴 황제 여름 휴양지가 원명원이다. 영불연합군이 중국을 공격했을때 약탈해가서 지금은 터와 건물기둥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버스에서 중간에 내린 재래시장입구


원명원 입구


청화대학입구.

 

9

원명원 바로 옆이 청화대학 서문입구였다. 일군의 자전거 무리와 사람들이 빨간 불인데도 태연히

길을 횡단한다. 나도 따라했다. 어제 만난 유학생의 말로는 엉망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사고가 안난다고 한다. 길에는 사람이 중심이라 차들이 알아서 비켜준다고 한다.

청화대학 얘기는 여행을 준비하며 읽었던 책중 뉴욕타임즈의 모스크바 특파원이 70년대초 문화혁명직후에 중국을 방문했던 기행문에서 문화혁명의 격전지로 다루어지는 곳이다. 인상적인 대목은 홍위병이 전국을 휩쓸고 다닐때 청화대학에서도 홍위병이 위세를 떨쳤는데 말기에 들어 청화대학 홍위병이 두패로 갈라서 한패는 대학 본관에 또 한패는 과학관 건물에 진을 쳤다고 한다. 과학관 쪽이 화학재료로 폭탄을 제조하기에 유리한 지형이라 폭탄 만들고 서로 총을 겨눠 쏘아 몇 명이 죽고 이 상황을 말리려 노동자 3만이 왔는데 이 대오를 돌파하려다 노동자 5명이 죽고 이런 일들이 청화대에서 있었다는 취재내용이었다.

문화혁명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더해진다. 하지만 어떻게 물어보나

캠퍼스 안은 정말 공부 할 만하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학생 하나에 자건거 하나일거 같은 엄청난 자전거가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청화대학은 내가 묵던 숙소와 가까운 거리였다.

 

 10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양배추 요리와 닭과 땅콩을 조린 요리 두가지 시키고 밥과 맥주 한병을 시켰다. 가격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2600원(20위안)이었다.

 

041129일 쓴 돈

 

(잠)

북림빈관 26000원(200위안)

 

(식사)

아침 만두 330원(2위안 5마오)

점심 닭다리 650원(5위안)

저녁 2600원(20위안)

 

(이동, 입장)

이화원 5200원(40위안)

버스 3번 390원(3위안)

 

(간식)

크랙커 350원(2위안 7마오)

사과 3개 260원(2위안)

 

(기타)

주머니칼 520원(4위안)

볼팬 250원(2위안)

..............................총 36550원

 

 

041129일 사진

 


이화원 입구 버스정류장

 


장량 위의 그림


언덕에서 바라본 호수

 

 


중국에는 엄청난 숫자의 청소부가 있나보다. 그렇게 내 버리지만 길은 깨끗하다. 호수의 오물을 걷어내는 청소부


용의 미끈한 허리놀림을 보라


내 집 창문 밖이 이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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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18:37 2004/12/02 18:37


탠진 탕구 신항

 

1

예정보다 한 두시간 일찍 중국 탠진 탕구신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오늘은 6시에 눈이 떠졌다. 활동할때 극히 드물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원래 계획은 저녁에 항구에 도착하면 하루자고 다음날 천진 북경으로 천천히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탕구항에 내리면 7800원(60위안)에 베이징 위쪽인 언어문화대학앞에 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고 해서 무리하지 말고 일단 베이징까지 가기로 했다.

 

2.

탕구항의 규모는 음 이런게 중국이군 할 정도로 넓었다. 입항 인공 방파제를 지나서도 한 참을 지나고서야 배가 육지에 몸을 붙이기 시작했다. 내려서 선상비자를 받았다. 처음엔 주민등록증이 없어 선상비자를 어쩔 수 없이 신청했는데 영사관에 가느니 이게 편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30살 친구는 탠진에서 사업하는 친척형이 마중나오기로 했고 27살 공부하겠다는 친구와 셔틀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어제 배에서 셔틀버스 탈 사람에게 종이 한장씩을 나눠줬는데 돈내는 티켓도 아니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27살 친구가 먼저 수속이 끝나고 셔틀버스에 타려했는데 그 종이가 없다고 못타게 하는 것이 었다. 그 친구는 어제 자느라고 종이를 받지못했다. 자리도 많이 남아있고 우리 사고 라면 당연히 태워주는 것인데 종이가 없어 안된단다.

중국인 문화에 대한 어떤 글에서 중국인들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규정에 어긋나면 절대 유두리 같은게 없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상황이 그 상황이었다. 혜택이 있는것도 아닌데 굳이 해 줄 필요없고 그래본적도 없다는 얼굴이다. 아주 인상적인 상황이었다.

 

3

여행준비하면서 중국어를 좀 보기는 했는데 막상 한 마디도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당황스러움 걱정이 밀려왔다. 그 친구는 자기는 알아서 갈테니 타라고 한다. 하지만 얼굴은 죽을 상이다. 하루지만 그 친구를 혼자 보낼 수는 없는일, 같이 나서기로 했다. 중국어 좀 하는 유학생이 흥정해줘서 3600원(30위안)에 탕구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기로 했다.


터미널가는 택시에서 찍은 거리 상점. 아씨슈퍼가 보인다.

 

4

터미널로 택시를 타고 가면서 수 많은 걱정 근심이 밀려왔다.

해외여행 초자인 내가 누굴 도울 처지가 되나.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이젠 어떻게 하지...

택시는 작은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 앞의 사설 택시들. 검은색 그랜저 같은 차들이었다.

우리에게 와서 50위안 지폐를 흔들며 타라한다.

내가 싫다고 하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왔다. 직행버스의 가격은 41원이었다. 2`30분 간격으로 있다고 한다.

그 친구가 얼마 차이가 안나니까 자가용 타자고 했다. 그러자고 해서 앉았는데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2명만 태워 갈 사람이 아니구나. 이 차는 신촌에서 일산가는 총알택시와 같이 4명 채워서 가는 차였던 것이다.

젊은 친구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서 얼마면 바로 갈 수있는냐고 유학생 친구와 사설택시대빵을 핸드폰으로 연결시키고... 난 차안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애써 침착한 척 하면서 이런게 여행이야 이런게 여행이쥐하면서

중국인 두 명이 타기로 해서 드디어 차는 북경으로 출발했다.

서서히 서쪽으로 몸을 움직이겠다는 내가 중국 첫날부터 총알택시를 타게 될 줄이야


사설택시 뒷자리에서 북경가는 고속도로

 

5

나는 뒷 자리 오른쪽에 앉았고 중간에 앉은 중국인과 회화책을 펼치며 말을 걸었다. 머랄까 거의 처음 듣는 중국말이지만 이 사람이 괜찮고 순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은 한국과 대만에서 쓰는 한자인 번체자가 아니라 50년대 부터 이를 편하게 만든 간체자다. 간체자의 발음기호를 병음이라하는데 회화책에 나와있는 병음발음을 직접 해주고 내가 따라하고 그렇게 중국땅에서 첫 사람을 만났다. 이름을 회화책에 써주었는데 간체자라 옥편을 바도 알 수가 없다.그는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아직없다 3명의 누이들은 다 결혼했단다. 그가 가지고 있는 삼성 애니콜 핸드폰으로 병음기호를 치고 뭘 누르니 황이란 단어가 뜬다. 중국발음으로 내 성인 황은 후~앙으로 발음한다.

 

6

북경에 도착했다. 이 사람과 헤어지기가 아쉬워 점심 식사 함께 등등 단어를 회화책에서 찾고 있는데 그래서 점심을 먹으면서 당신의 일상생활에 대해 알고싶다. 여관비를 낼테니 집에서 좀 재워달라고 할까? 이런 저런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앞의 운전사가 먼저 내리라 한다.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한 30대 초반 쯤 되는 눈이 선한 중국남자. 북경에선 이런 기회가 쉽지 않은데 아쉽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나오기로한 유학생 친구가 나오지 않는다. 그 친구는 더 열을받고 나오지마 하면서 크게 소릴 지른다. 결국 그 친구가 돈을 내겠다 택시로 오도구라는 유학생지역으로 가자고 했고 그렇게 했다. 론리 플레닛 지도 상에는 이 정도 먼 거리가 아닌데 택시는 외각도로를 질주하고 미터기는 올라간다.


택시안에서 오도구라는 한국인 유학생 밀집지역



7

북경택시는 크기에 따라 요금이 다른데 이 택시는 1600cc짜리로 중형에 해당된다고 한다. 10000원이 넘은(79위안)돈이 나왔다. 말로만 듣던 북경 바가지 택시를 탄 것이다.내가 돈을 내진 않았지만... 초등학교 친구인 유학생 2명이 마중나왔다.

한 친구는 99년에 중국에와서 중간 군대다녀오고 다시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법을 공부한다고 하는데 중국은 매년 법이 큰 폭으로 바뀐다고 한다. 그만큼 변화가 많다는 얘기다. 베이징어연대학만 해도 7000명의 한국유학생이 있다고 한다. 세칭 일류대학인 북경대 청화대는 1000명정도의 한국유학생이 있는데 이중 졸업생은 손을 꼽는다고 한다. 한 10명내외란다.

원래 이곳이 북경의 북부 변두리였는데 한국인들이 집값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여기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10시 11시면 잠자리에 드는데 12시넘어 술먹고 크게 소리가나면 저기 또 한국인이지 라고 혀를 찬단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는 이곳에서 30분정도 떨어져 있는데 한국사람을 생전 처음본 중국인들이 잘 대해준단다. 하지만 자기들간의 대화에서는 소국이라는 말도 나오고 중국인과 깊게 친해지기는 만만치 않다고 한다. 중국에서 한류열풍은 실제로 불고 있단다. 어른들이 걱정할 정도로 한국 따라 배우기가 유행이란다.  

여기서 하루 싼 여관에 묵으려 했는데 없다. 한군데는 40000원(320위안)이 넘게 달라고 한다. 그래서 가장 싸다고 하는 북림빈관에 가서 26000원(200위안)에 짐을 풀었다.

 


내가 처음 묵었던 북림빈관

 

8

방은 침대 두개의 방으로 크고 깨끗하다. 차마시는 큰 보온병을 준다. 이제 정말 이제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도 먹어야 되고 밖으로 나왔다. 길 건너 상가쪽을 둘러보았다.

내가 묵는 빈관 1층 요리집은 요리하나에 5-6천원 정도인 최고급은 아니지만 고급 식당이다.

길 건너 상가엔 좀 더 낮은 급 식당들 요리하나에 일 이천원대의 식당들 이 곳 서민들이 나와 먹는 식당이 모여 있다. 마음에 드는 한 식당에 들어갔다. 내가 프린트해 온 먹을 만한 음식 제목과 메뉴판을 비교해보았다.

진짠로우스를 시켰다. 돼지고기를 앏게 볶다가 춘장을 넣고 파채위에 올려놓고 싸먹는 요리와 볶음밥을 시켰다. 가격은 합이 2600원(20위안)이었다. 별로 맛이 없었다.

식당오기전 슈퍼앞 과일가게에서 딸기를 650원어치(5위안)만 덜어 달라는 의도로 말을 했으나 포기했었던 그 곳에 다시가서 오랜지 2개를 집었다. 아주머니가 얼 콰이(2위안, 260원)이란다.돈을 주고 아주머니에게 고맙다 다시오겠다 (짜이지엔)이라 인사했다. 아주머니의 웃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공대 10대가수 가요제

 

9

밥을 먹고 숙소로 오는 데 숙소 바로 옆이 대학이다. 북경임오대학인가 대학안으로 들어갔다. 대학 체육관에서 무슨 공연이 있는거 같아 들어갔는데 공대 제2차 풍이형(바람은 형태를 만든다는 뜻일까) 10대가수가요제 결선이 시작되고 있었다. 기성방송 가요제의 판박이 같은 진행이었다. 조금 보다 나와 길 정류장에서 고구마 두개를 샀다. 군 고구마 두개를 내가 고르자 아주머니가 손에드는 옛 저울로 추를 맞추고 얼마라 한다. 처음엔 못알아 듣고 1위안을 내밀자 아니라 한다. 결국 2원 5마오(10마오는 1원이다)를 내고 짜이지엔 했더니 환하게 웃는다. 옛날 외할머니의 미소가 생각났다.

 

10

숙소로 올라와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양치질을 하러 비닐에 싸이 물컵을 드는데 컵이 비닐 밑으로 쑥 빠지면서 깨졌다. 안 깨지는 플라스틱 컵을 비치해도 될텐데 유리컵을 고집한다고 한다. 티비를 켜고 고구마를 먹으며 중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041128 여행3일차 쓴 돈

(잠)

북림여관 26000원(200위안)

(식사)

아침 백반 6000원(47위안) 어제 맥주 얻어먹어 1명에게 사줌

저녁 2600원(20위안)

(간식)

중국 요플레 조금 큰 통 4개 780원(6위안)

오랜지 2개 260원(2위안)

포테토침 300원(2원 3마오)

燕京王연경왕 맥주 420원(3위안 30마오)

고구마 2개 320원(2원 5마오)

(이동)

탠진에서 북경 터미널 총알택시 6500원(50위안)

(기타)

집 전화 시도 650원(5위안)

치약 380원(2위안 9마오)

........................................총 44210원

 

 

041128 여행3일차 사진

 

 


북경 신항

 


탕구 버스 터미널에서. 사설택시 중국인이 찍어주겠다 하여 포즈를 잡았다

 



묵었던 여관의 티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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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15:42 2004/12/02 15:42
  1. NoMad
    2005/01/09 17:05 Delete Reply Permalink

    시작이 늘 순조롭지 않죠?^^...뭐 이런 해프닝도 있어야 여행하는 맛이 난다고 할까?, 적당히 긴장감도 떨러뜨리지 않으며...



 

11월 28일 새벽 배 갑판에서 본 내가 살아왔던 곳

 

(11월 28일 새벽)

1

28일 새벽 갑판에 나왔다.

이 배는 정확히 서쪽으로 향해가고 있다.

20시간 가까이 지나온 길

주변에 육지는 보이지 않는다.

배의 프로팰러가 남긴 하얀 자욱을 보며

내가 36여년동안 살아온 자욱을 떠올려 본다. 

그 순간들

그 기억들

나는 내가 살아왔던 그 곳으로 돌아간다.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난다.

 

2

갑판에는 중국 아줌마 다섯과 중국 남자 하나가 나와 아침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바지런한 운동 습관을 엿볼수 있었다.

 

3

핸드폰을 바다에 버렸다.

핸드폰은 출발하기 직전에 정지 신청을 했다.

019의 경우 한달에 4400원을 내야 한단다.

좀 씁쓸하지만 핸드폰 번호도 인연이다 싶어 두기로 했다.

무엇을 버려야 할까? 저 바다 깊숙이...


그동안 정들었던 내 핸드폰. 수장시키기 직전이다.

방 친구가 중국가서 팔라했지만 그냥 빠뜨리기로 했다.

사실 액정이 나가버려 문자메세지를 보질 못한다.

 

 

(041226 여행 1일차)

4

눈이 내린다

어머니와 일산 마두역에서 헤어졌다.

버스를 타고 부평역으로 여기서 동인천역으로 택시로 국제여객터미널로 간다.

부평역에서 디카 싼거 하나 살까 말까 망설이다.

200만 화소 니콘 쿨 픽스 2000 중고를 메모리 32M합쳐 6만원에 샀다.

사진찍는데 욕심버리고 그냥 상황상황만 툭툭 담자.

가장 낮은 사이즈 640 480으로 설정하니 300장 가까이 찍을 수 있다.

 


인천 제2국제여객터미널 청사안 액정광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5

7시 출발 3시간전인 오후 4시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항운측에서는 파도때문이라고 5시까지 기다려 보란다.

건전지를 사며 매점 아저씨에게 이런 일이 간혹 있느냐고 물었는데

자기가 2년 매점하면서 이런일이 없었단다.

5시에 방송이 나왔다. 내일 10시까지 다시 오라고

무거운 짐을 매고 다시 일산까지 갈 수도 없고

비행사에선 이런 경우에 호텔잠자리를 제공한다는데

항운사 직원은 잠자리가 없단다.

택시를 타고 가까운 여관골목에 데려다 달라하고

인터넷이 되는 여관을 무려 3만원 주고 묵었다.

이 돈이면 중국에선 며칠동안은 잘 수 있다. 

덕분에 짐정리한번 제대로 하지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배낭이 한 짐으로도 모자라 보조가방도 가득찬다

 

6

 041126일 쓴 돈

(잠)

여관 30000원

(식사)

있는 것으로 해결

(간식)

음료수 700원

(이동)

택시 2번 4000원

버스 일산-부평역 2000원

지하철 800원

(기타)

다이얼 열쇠 3000원

건전지 4개 1200원

............................ 총 41700원

 

 

(041127 여행 2일차)

내가 탈 진천항운 배다. 2만 5천톤급으로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컸다.

 

7

우여곡절끝에 배에 올라탔다.

이코노미 4인실 201호

30살 무역업 준비하는 친구

27살 중국유학오려는 친구

이렇게 3명이서 24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방 배정때 한국인과 중국인을 분리하는거 같았다.

어쨌든 방 친구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면서

저녁에는 중국식 만두도 사먹도 칭다오 맥주도 사먹고 그랬다.

 

8

중국돈 100원(한화 13000원)은 여기서는 큰 돈이다. 그래서 배안 슈퍼에서 머 하나 사먹고 잔돈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매점 점원은 이를 눈치채고 잘 안바꿔줄려고 했다. 어쨌든 나는 성공했다.

밤에 식당에서 별식 만두 먹으면서 서빙하는 여성에게 물었다. 이게 중국식이냐고 못알아 들어 다시 물었다. 차이나 스타일, 코리아 스타일. 영어 못한다는 대답이다. 먹어보니 양고기가 들어있는 중국만두였다. 말보다 입이 바로 대답해준다.  

 

9

041127일 쓴 돈

(잠)

(식사)

점심 된장찌게 4000원

저녁 육게장 4000원

(간식)

전지현 광고 음료수 700원

칭따오 맥주 2000원

(이동 수속)

여관-터미널 택시 2000원

터미널 이용료 2100원

선상비자(20달러) 21000원

(기타)

 건전지 4개(10위안) 1300원

............................ 총 37100원

 

10

사진들

나의 배낭들 큰 배낭은 여관에 두고 주로 작은 가방메고 움직였다


여관에서 셀프카메라


이코노미 4인실 테이블이다. 여기서 마작 카드 고스톱등을 할 수 있다. 이 테이블에서 두 친구에게 내가 가져온 러시안 집시카드를 가지고 카드점을 보여주었다.

 

 




코카콜라 사먹을까 이거 사먹을까하다 물병대용으로 쓸려고 이걸 샀는데 옛날 주스가루 탄 맛이다.

 


두터운 입술 어색한 포즈

 


나는 너의 등불이 되리~


심연 미지의 저너머의... 길들여진 나를 부르는 소리

 

 


배는 3 40노트의 속도로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옆의 객실은 식당이다


201호 친구들과 한 컷. 얼굴이 작게 나왔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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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12:25 2004/12/02 12:25
  1. rivermi
    2004/12/02 12:39 Delete Reply Permalink

    정일님 미경입니다.
    중국여행중이라는 사실을 어제 진보네 기념회에서 노힘분들에게 들었어요
    우와~~진짜 부럽슴돠~~
    여행기 기대할께요! 건강~

  2. NoMad
    2005/01/09 16:29 Delete Reply Permalink

    떠나는 자의 설레임이 묻어나네요.근데..아무리 봐도 절대 초보로 보이지 않으니...표정도 여유만만...10년을 쏘다닌 제자신을 다시 돌아보게되네요. 디카 중고는 정말 싸게 잘샀어요! 참 부러워라, 사진도 잘나오고...나도 제작년 연말 인도 떠날때 면세점에서 비싸게 장만하느라 허리휘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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