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하루 메콩강 페케지 여행하는 날이다. 버스 점심 배삯 포함 7불이다. 혼자가서 배를 탈려면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훨씬 많은 돈을 주어야 한단다. 버스는 남쪽으로 달려 미토란 곳까지 간다. 생각같아서는 5시간 거리인 수상시장 마을에서 며칠 머물고 싶지만 그럴려면 비자를 연장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냥 하루로 만족하자.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다. 일산 살때 밤 늦게 술먹고 심야 좌석버스 맨 앞자리에서 자유로를 달릴때 그 느낌이 떠오른다.

 

2.

버스는 처음엔 잘 나가다 곳곳에서 막힌다. 아직 베트남 남부 메콩 삼각주는 도로개발이 덜 되었나 보다. 내가 서울에서 읽은 베트남 글 중에 원래 이 지역이 베트남 땅이 아니라 크메르 족의 땅이었는데 예전 전쟁중에 베트남이 포로로 잡은 크메르인 수천명을 홍수가 날때 그냥 묶어두어 수천이 물에 익사했다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8시 반쯤 출발한 버스는 11시가 되어 도착했다.

 

3.

한 3-40명 규모의 중간급크기의 배로 갈아탔다. 배가 넓다란 메콩강을 가로지른다. 삼협과 같이 강가로 웅장한 산은 없지만 열대나무들과 어울어진 넓은 강이 또다른 매력을 풍긴다. 배는 보이는 4개의 섬중에 가장 큰 섬 앞에서 또다시 7인승 배로 갈아탄다. 그리고 섬의 샛강으로 들어가 한 농장에 정박했다. 52살 독일아저씨와 인사를 했다. 방콕에 일때문에 오랫동안 있단다. 가족들은 독일에 있고. 내가 10년일했다고 하니 놀랍다며 자기 눈엔 26살로 밖에는 안보인단다. 한 한국남자가 있다. 인사를 하니 자긴 여기 베트남에서 산단다. 대전에 사는데 형이 이곳에 공장을 차렸단다. 일을 거들고 있단다.

 

4.

카라멜 농장이다. 카라멜을 하나씩 돌린다. 몇명이 카라멜 한 봉지를 산다. 쌀이 재료인 술공장이다. 점심을 주는 모양이다. 독일아저씨와 한국인 남자와 같이 앉았다. 음료수를 돌린다. 내가 고른데 호주산 맥주다. 잘 선택했군 하는데 나중에 돈을 따로 받는다. 교묘한 수법이다. 밥과 반찬은 형편없다. 그냥 시금치와 국 조금에다 밥을 먹었다. 이 독일아저씨 한국인들이 어릴적부터 습득한 젓가락 기술을 놀라워한다. 밥 한톨을 테이블 위에 놓고 집어보란다. 가볍게 집으니 저쪽의 미국남자에게 이거 보라며 놀랜다. 그 다음으로 밥알 하나를 던진다. 공중에서 집으란 얘긴데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다른 직업으로 풀렸을지 모른다. 아이 돈 스킬.

 

5.

밥을 먹고 나와 작은 동물우리들을 구경하고 길을 걸으니 큰 뱀이 있다. 1불을 내면 목에 감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용감한 한국인 여성 벌벌 떨면서도 뱀을 메고 사진기 앞에서 브이자를 그린다. 다시 가장작은 4인승 배로 갈아탄다. 앞뒤에서 두명이 손으로 노를 젓는다. 좁은 수로를 헤쳐나간다. 이 메콩 페키지 투어는 메콩강에서 다른 크기의 배 3가지를 타보는 투어인거 같다. 다시 큰 강이다. 처음 탔던 배로 갈아탄다. 한 부산 여성이다. 초등학교 특수 교사란다. 한 아이를 3년은 계속 맡는단다. 오늘 밤 한국으로 떠나야 한단다. 다음엔 베이징에 가고 싶다며 얼마가 드는지 묻는다. 자기도 나같이 길게 여행하는게 꿈이란다.

 

6.

버스를 다시 탔다. 한 절에 잠시 들렸다가 사이공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은 조금 수월하다. 킴 트레블 앞에 도착했다. 한국인 4명이서 음료 한잔씩을 했다. 무표정한 얼굴의 한국인 자매가 있었는데 어디 가버렸나 보다. 뱀을 매고 사진찍었던 한국여자는 계속 혼자서 여행했단다. 직장때문에 시간이 없어 비행기로 캄보디아로 간단다. 두여성 모두 회사나 학교에서 짤리지만 않으면 1년 무급휴직내서 여행을 다니는게 꿈이라 말한다. 대전남자가 아까 말한 것이 생각난다. 자기가 베트남에서 한국관광객들을 보면 딱 표가 난단다. 인상 잔뜩 찡그리고 있는사람들이 한국사람이란다. 이 깊은 억압의 사회를 어찌해야 하나?

 

7.

두 여성과 헤어지고 대전남자와 맥주한잔을 했다. 베트남 관리들 참 영리하단다. 베트남은 토지사유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투자도 할만하게 법을 절묘하게 만들어 놓았단다. 이 친구는 진보나 활동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토지나 사유재산 규제를 풀면 베트남도 자본에 넘어가 버린다는 것을 말한다. 베트남은 성공할 거 란다. 열대지방나라에서는 드물게 사람들이 일에 열심이란다. 잔업특근을 별로 싫어하지 않는단다. 여기도 가족 전체가 벌어야 살 수 있단다. 보통 월급이 우리나라돈으로 10만원선 외국계 회사야 되야 3-4백 만동 한 20-30만원이 된단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사람들이 가라오케 같은데서 100달라를 팁으로 던진단다. 

 

8.

이곳에서 한국사람은 베리리치한걸로 찍혀 있나보다. 내가 어제 공원에서 숙소로 가는데 한 베트남 젊은 여자가 하이하면서 팔짱을 끼려는 것을 뿌리친 적이 있다. 어떤 여자들이냐고 물어보니 한 100만동에서 150만동, 한국돈으로 10만원 내외를 주면 며칠동안 같이 먹고 자고 노는 여자들이란다. 중국과 베트남은 외국남자와 현지여자가 혼숙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 놓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혼숙하다 걸리면 추방이란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단다.  

 

9.

이 대전남자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사이공의 마지막 밤이다. 베트남은 좀 아쉽게 넘어가는 거 같다. 아쉬움이란 느낌은 곧 이곳이 나쁘지 않았다는 말일게다. 베트남 넘어올때 보다는 이 곳이 훨씬 편해졌다. 단지 10흘만에... .

 

 

* 050206 (일) 여행 73일차

 

(잠) 사이공 4인 도미토리 3150원 (3불)

(식사) 저녁 해물스파게티, 맥주한병 3000원 (40000동) 

(이동) 메콩강 하루 페키지 7350원 (7불)

(간식)  호주맥주 1050원 (14000동)

          과일주스 375원 (5000동)

           빵 300원 (4000동) 

          과일음료 300원 (4000동) 

(기타) 인터넷 450원 (6000동)  

       

...................................................................... 총 15,97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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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2 18:30 2005/02/12 18:30

1.

오늘은 좀 일찍 움직였다. 그래야 태양의 강렬함을 피할 수 있다. 오늘은 서북쪽이다. 근처 시장에서 먼저 뭘 좀 사먹자. 고기 꼬치를 석쇠에 굽고 있다. 그걸 가리키니 비빔국수와 함께 꼬치하나를 잘라준다. 이건 좀 먹을 만 하다. 꼬치 고기도 부드럽고 비빔국수도 상큼한게 서로 잘 어울린다. 나와서 북쪽 길로 올라갔다. 대형 슈퍼 두개가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들어가 한바뀌 둘러보면서 먹음직한 오랜지 3개 묶음을 샀다. 이건 씨가 있는 약간 신맛이다.

 

2.

왼쪽 길로 한참을 가니 아담한 공원이 보인다. 작은 연단을 꾸미고 있다. 베트남 공산당 75주년 관련 행사인가 보다. 옆에는 스파르쿠스라 부르나 세명씩 경기를 하는 족구 비슷한 경기 연습을 한다. 공은 나무껍질로 만든 속이 빈 것이다. 제법 아마추어 선수 급들이다. 그걸 쳐다볼 수 있는 노천카페에 앉았다. 커피 비슷한 티를 하나 시켰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3대3시합을 치룬다. 한팀이 이겼다. 기다리고 있던 10대 후반 3대3팀이 경기를 치룬다. 또 한팀이 이겼다. 이긴팀끼리 경기를 한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3.

나와 걸으니 큰 건물들 입구가 보인다. 여기가 대학인가? 들어가보니 병원이다. 나무들이 멋드러지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이젠 버스를 한 번 타보자. 버스 정류장을 찾는데 한 당구장이 보인다. 여긴 냉방시설이 되어있다. 들어가니 포켓볼들을 치고 있다. 여 종업원들이 많다. 내 당구대 담당 종업원은 성형수술하기전 풋풋하던 정다빈처럼 생겼다. 타이거 맥주한캔을 시키니 얼음 가득 담겨있는 잔과 함께 테이블로 가져온다. 여기서는 맥주를 얼음에 함께 먹는게 기본이다. 좀 치다 나와서 버스를 탔다. 한 멋있는 사원이 보여 근처에서 내렸다.

 

4.

사원은 겉 폼 만 요란했지 안은 별로였다. 어제 남쪽으로 걸으며 들어간 한 사원안에는 커다란 고깔모양의 향이 천장에 가득 걸려 있었다. 한 아저씨가 새로운 향을 달고 있었다. 향 연기가 사원안에 가득차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긴 아니다. 그 옆에는 스포츠댄스 건물이 있고 그 옆이 영화관이었다. 로버트 드 니로 등등이 나오는 코미디 가족 영화 간판이다. 들어가 이 영화하냐고 손짓하니 내일부터 한단다. 이제 숙소로 들어가자. 다시 버스를 탔다. 왠만한 버스는 숙소근처 버스터미널로 간다.

 

5.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인터넷을 좀 하다 여행사로 갔다. 김 트레블이란 여행사다. 내일 하루 메콩강투어를 신청했다. 모래 구정전 마지막으로 떠나는 캄보디아행 버스도 예약했다. 메콩강투어 신청서에 몇명의 한국인 이름이 보인다. 다시 숙소로 들어와 이제 일어난 웨일즈 친구와 대화를 했다. 자긴 6주동안 이 침대에서 생활했단다. 20개월코스로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아 호주까지 배로 이동한단다. 배가 다 있단다. 자긴 하루에 7불가지고 생활한단다. 그런데 어제 밤 20불을 썼단다. 포켓볼을 치고 맥주를 마셨단다. 내가 너 다이어트 투 데이즈?라 물으니 그렇단다.

 

6.

저녁이 되어 시장으로 나갔다. 감자와 떡과 계란후라이를 부쳐 한 접시에 올려놓는 음식하나를 노점에서 먹고 일어나는데 한 베트남 아줌마가 이거 사달란다. 고단한 얼굴이다. 그 아줌마 음식까지 돈을 치루고 일어섰다. 9시가 넘는다. 어제 봐둔 재즈라이브바로 들어갔다. 밴드 앞 푹신한 자리는 이미 다 찾다. 그 옆 테이블에 앉았다. 공연타임이라 비싼 음료만 된다. 작고 탄탄한 몸매의 한 베트남 여가수다. 나이는 60가까이 되어보인다. 세월의 깊이가 우러나오는 목소리다. 그런데 노래를 끝내고 스테이지를 내려간다.

 

7.

이곳의 매인 연주자의 색소폰 솔로가 이어진다. 그리고 한 젊은 남자 가수, 성량은 좋은데 재즈의 맛이 없다. 노래가 딱딱 끊어진다. 재즈노래는 좀 질펀한 맛이 있어야 한다. 사이공은 혁명이전 그런 도시 아닌가. 아직도 이곳에는 그런 분위기가 조금 조금 남아있어 보인다. 다시 그 멋진 가수아줌마가 카페로 들어온다. 반짝이 옷위에 코트를 걸치고 저쪽 뒤에서 멋있게 담배를 피고 있다. 내가 사이공 행 기차에서 만난 베트남 전사와 비교되는 아줌마다. 선이 굵은 얼굴에는 지나쳐온 인생의 여정이 그려져있다. 그녀에게 이 베트남 혁명의 역사는 무엇이었을까?

 

8.

이제 1부 마지막 무대다. 이 여가수 다시 등장한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조지아~ 조지아~ 단순한 노래지만 그 감정이 느껴진다. 1부 순서가 끝났다. 숙소 근처에서 베트남 라면하나 사먹고 방으로 올라갔다.

 

 

* 050205 (토) 여행 72일차

 

(잠) 사이공 4인 도미토리 3150원 (3불)

(식사) 아침 꼬치비빔국수 525원 (7000동)

                   고기덮밥 825원 (11000동)

         저녁 찰밥 포장 375원 (5000동)

                감자,떡, 계란후라이 접시 2개 1500원 (20000동)

(이동) 시내버스 3번  450원 (6000동)

(간식)  요구르트 225원 (3000동)

          오랜지 3개 1125원 (15000동)

           웨트티슈 225원 (3000동)

          물 300원 (4000동) 

          파인에플 한조각 150원 (2000동)

          재즈라이브바 토마토주스 4500원 (60000동)

          베트남 라면 600원 (8000동)    

(기타) 인터넷 900원 (12000동)  

       

 

...................................................................... 총 14,8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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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2 17:26 2005/02/12 17:26
  1. 나름
    2005/02/14 21:03 Delete Reply Permalink

    나도 베트남... 부러워ㅠㅠ
    형 여행기는 기관지에 잘 실리고 있어
    건강 조심하구 새해복~

  2. aibi
    2005/02/15 15:40 Delete Reply Permalink

    나름)100미터 달리기 방금 마치셨나요? 숨차라.^^ 나름님은 저보다 더 느리게 말하는 분으로 알고있는데 자기의 스타일을 지켜나가는 게 매력인거 같습니다. 어제 이 열대지방에서 자전거를 좀 심하게 타면서 차가운 걸 연신 들이켰더니 밤새도록 배가 끓었답니다. 음.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닌데 조심해야지요. 몸도 마음도 건강한 한 해를 열어나가시길... .


1.

7시도 안 되어 눈이 떠졌다. 요즈음의 현상이다. 옆 베드의 서양인들은 한 밤중이다. 밖은 벌써 해가 실력과시를 시작하고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다. 사이공에만 300만대의 오토바이가 있단다.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하늘거리며 우아하게 자전거 타는 베트남 여성은 옛날 말이다. 여기서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비율은 2:8 아니 1:9 정도 되어 보인다. 그동안 잘 만지고 만 있었던 학습 자료를 꺼내 보았다.

 

2.

프린트 물은 한 장에 4페이지 출력으로 해서 가지고 왔다. 욕심을 내서 처음에는 분량이 책 두권어치 정도 되었다. 그 중 반인 여행관련 프린트는 보면서 찢어 버리고 이제 한 권 분량으로 줄였다. 주로 남은 건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토요노동대학 자료를 중심으로한 학습자료들이다.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앞 뒤 출력으로 했으면 분량이 반으로 줄었을 텐데, 하여튼 여행은 짐과의 전쟁이기도 하다.

 

3.

아침 일찍 일어나 한 서너시간 집중해서 공부하고 책읽고 점심부터 이곳저곳 세상을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각국의 여행자들과 인생의 대화를 나누고 시원한 맥주 마시고 일기로 하루를 돌아보고 푹 잠자고... . 좋은 여행의 진수다. 이렇게만 하면 얼마나 알차겠는가? 꼭 안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은 여행지에서 집중하기도 힘들고, 더워서 아님 추워서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통하는 여행자 만나기도 힘들고 언어의 장벽도 높고, 일기도 점점 밀린다. 엄살인가?

 

4.

자료를 좀 읽다가 출출해져서 공짜 아침 식사를 먹으러 내려갔다. 몇개의 선택이 있다. 계란 두개 프라이 빵 커피가 써있는 1번을 달라했다. 종업원이 머라한다. 잘 못 알아 듣겠다. 이 친구 갑자기 짜증을 낸다. 잠이 덜 깨었는지 무슨 뒤틀린 일이 있는지 내가 당했다. 아이 돈 노우라 말했더니 잠잠하다. 커피를 따라 먹으라는 말 같다. 음식을 가져다 준다. 내일부터는 안 먹어야 겠다. 

 

5.

그제는 동쪽, 어제는 서쪽, 오늘은 사이공 도시 남쪽으로 걸어가보자. 밥을 사먹고 남쪽으로 길을 따라 걸었다. 저기 응달이 드리워진 골목이 있다. 작은 상점들이 끝도 없이 죽 이어진다. 남녀노소 사람들이 더운 방을 나와 상점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다. 이들은 뭘 먹고 살까?

한 한시간 반쯤 걸으니 다리가 보인다. 간이 카페에서 밀크음료를 하나 사먹고 강가 공원으로 들어갔다. 나무 그늘에 앉았다. 강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화물선들이 분주히 지나간다. 한 지체장애 청년이 어린 소녀들과 술래잡기 비슷한 걸 하고 있다.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6.

저쪽 강뚝에선 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젖은 몸 그대로 걸어온다. 나도 초등학교 5학년때 어머니는 서울에서 돈벌고 난 큰집이 있는 부산 고향으로 전학갔는데 거기가 금정산 계곡 밑이다. 이른바 애기소라는 곳이다. 애기와 관련한 연못전설이 있는곳이다. 내용은 모르겠는데 예전 인기 라디오 프로 전설따라삼천리에도 소개되었었다. 하루는 애기소 적당한 곳에서 다 벗고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놀림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7.

다시 공원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정류장 앞에서 반팔 티셔츠를 팔고 있다. 마침 잘되었다. 두장을 샀다. 버스가 온다. 그냥 올라탔다. 에어콘이 잘 나온다. 버스는 북쪽으로 가다 동쪽으로 꺾어져 선착자을 지난다. 여기서 내리자. 매표소 대기실에서 배들을 쳐다보며 333맥주하나를 사먹었다. 다시 도심으로 걸어 시원한 서점에서 놀다가 전망대가 있다는 트레이드 센터까지 걸었다. 전망대를 못 찾겠다.

 

8.

슈퍼에서 멀좀 사먹고 벤탄시장 근처까지 왔다. 재즈라이브 바가 있다. 난 스포츠는 뭐든 라이브를 무척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들어가니 8시 45분부터 한단다. 다시 오겠다고 하고 시장으로 갔다. 반바지가 하나 뿐이라 하나를 사야겠다. 나이키 가짜바지 하나를 샀다. 처음에 6만동을 부르는데 그냥 돌아서자 팔을 붙잡으며 가격이 내려간다. 35000동에 샀다. 숙소앞 레스토랑에서 맥시칸 라이스를 사먹고 숙소에 들어가 잤다.

 

 

* 050204 (금)  여행 71일차

 

(잠) 사이공 4인 도미토리 3150원 (3불)

(식사) 아침 고기덮밥 1125원 (15000동)

         저녁 맥시칸 라이스 2250원 (30000동)

(간식)  간이카페 밀크음료 225원 (3000동)

         333캔맥주 750원 (10000동) 

          해피덴트껌, 음료수, 쥐포 1950원 (26000)         

(기타) 인터넷 615원 (8200동)  

          나이키짝퉁바지 2625원 (35000)

 

...................................................................... 총 12,6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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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1 22:15 2005/02/11 22:15

1.

오늘은 좀 싼데로 옮겨야 겠다. 아침에 나가 첫날 밤 물어보았던 도미토리 있던 호스텔로 가서 도미토리 비었냐고 물어보니 하나 비었단다. 사이공에서 몇 개 없는 도미토리다. 가격은 하루 3불.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 하고 2일치 숙박비를 계산했다. 깔끔하고 괜찮은 곳이지만 할 수 없다. 어제 아침 보았던 한국여자가 서양남자와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둘이서 여행을 다니나 본데 태국 북부가 가장 좋았단다. 베낭을 메고 새 숙소로 올라가니 허름한 방에 침대 4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시트는 그런데로 깨끗하다.

 

2.

옆에 누워있는 젊은 서양 친구와 잠깐 대화를 했다. 영국 웨일즈에서 왔단다. 내가 웨일즈 지방에 있는 헌책방 마을 헤이온와이에 대한 책을 읽었다 하니 반가워 하는 눈치다. 한 괴짜 친구의 용기가 유명한 헌책방마을을 만들었다. 중국에는 3개월 있었단다. 다음 주 부턴가 이곳에서 영어 선생을 한단다. 인사만 나누었는데 이방에는 스코틀랜드 한 50대 아저씨와 독일인 남자가 있다. 숙소를 나와 고기 덮밥하나를 사먹었다. 밥위에 작은 고기 스테이크 하나와 야체 조금 나오고 한 500원 한다. 오늘은 어제 걸었던 반대쪽인 서쪽으로 죽 걸어보자. 로터리에서 티 한잔 먹고 좀 걸으니 에어컨 나오는 큰 마트가 나온다. 다리 숙소에 스테인데스 뚜껑있는 컵을 두고 왔다. 다목적 용으로 좀 큰 걸 사자. 물도 따라 먹고, 사발면도 끓여먹고, 씻은 과일도 두고 먹고, 과자도 부어먹는 그런 크기로 하나샀다. 베트남 넘어올때 책을 서울로 많이 부쳤는데 또 베낭이 꽉 차있다.

 

3.

마트를 나와 좀 더 죽 걸었다. 아이구 덥다. 고만 가자. 길을 건너 맞은편 옷가게 들을 구경했다. 살만한 건 없다. 골목으로 좀 들어가는데 허름한 당구장이 나온다. 한 번 쳐볼까? 혼자서 한 40분 치니 이것도 운동이 된다. 가격도 아주 싸다. 다시 길을 돌아갔다. 아까 쇼핑한 마트 1층 레스토랑에서 해물스파게티와 타이거맥주 한 캔 먹었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 한판하고 다시 나와 인터넷 룸에서 이리저리 검색을 했다. 베트남이 사스 비상이란다. 여러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이곳 사이공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듯 보인다. 여기는 시간당 300원 꼴이다. 시간당 450원 하는 곳으로 갔다. 여기는 스켄 서비스를 한다. 장당 3000동이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스캔할 것을 추려서 주인 아줌마와 협상을 했다. 작은 것도 많으니 몇 개를 스케너에 놓고 그림 한장으로 스캔해달라. 내가 알아서 잘라 저장하겠다. 약간 실랑이를 하다가 아줌마 좋다고 하고 해보니 4번에 얼추 된다. 아직 디카살 마음은 안생긴다.

 

4.

날을 저물었다. 공원 꽃 시장으로가 또 꽃 구경을 했다. 슬리퍼 하나 사야겠다. 아웃도어 신발은 이 더위에 좀 무리다. 벤탄시장 옆 한 신발가게, A급 짝퉁가게이다. 가격도 만만찮다. 나이키 끈 찍찍이 슬리퍼를 8불에 샀다. 다시 돌아와 시장을 한 바뀌도는데 아까 인터넷 베트남 여행 카페에서 본 한국식당이 보인다. 들어가 앉았다. 한국인 아줌마가 주인인거 같은데 내가 벽에 붙어 있는 매뉴를 쳐다보고 있으니 이렇게 말한다. 여긴 돼지갈비 전문 집이에요. 비싼 돼지갈비 먹으란 얘기다. 얼마냐니까 혼자왔으니 500그람 8만동이란다. 6000원이다. 한국에선 1인분 가격이지만 여기선 비싼 요리다. 그래 한번 먹어보자.

 

5.

숫불에 석쇠를 놓고 베트남 종업원이 갈비를 굽는다. 반찬이 4가지 나오는데 차게한 김치볶음이 구미를 당긴다. 다익은 갈비를 커다란 상추 반을 잘라 그 위에 올려놓고 양념장과 김치볶음 그리고 밥 한공기 시켜 밥 반 숫가락을 함께 넣어 입에 넣었다. 비싼 값을 한다. 홍콩에서 먹던 9000원짜리 김치찌게 같이 맛이 있다. 저쪽 테이블에 단골로 보이는 한국인 장사치들이 않는다. 얼음 구덩이에서 방금 꺼낸 거 같은 참이슬 소주를 종업원이 가져온다. 아쉬울 뿐이다.

 

6.

밥과 고기를 비우고 나오니 속이 든든하다. 가끔씩은 이렇게 먹어주자. 방으로 올라가면서 물을 하나 샀다. 냉장고가 없으니 물은 살때 그 몇 분의 시원한 맛으로 먹기도 한다. 침대에 기대 물을 천천히 들이켰다. 사이공은 살 만 하다.

 

 

* 050203 (목) 여행 70일차

(잠) 사이공 4인 도미토리 3150원 (3불)

(식사) 아침 고기덮밥 600원 (8000동)

          점심 해물스파게티, 타이거 맥주 3000원 (40000동)

          저녁 돼지갈비, 공기밥 6750원 (90000동)

(간식)  과일요구르트 225원 (3000동)

          포테토칩 2개 450원 (6000동) 

          찰밥 포장 375원 (5000동)

          물1.5L 300원 (4000동)

(기타) 당구장 465원 (6200동)

          인터넷 스캔 2100원 (28000동)  

          나이키A급짝퉁 슬리퍼 8400원 (8불)

 

...................................................................... 총 25,81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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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1 20:55 2005/02/11 20:55

1.

일어나서 프론트로 내려가 공짜로 주는 아침식사로 스프를 시키니 사발면이 달랑하나 나온다. 화장을 했는지 얼굴이 하얀 여자가 내려온다. 주인 아줌마가 코리안 이란다. 낮설어 하며 인사를 했다. 묵은지 3일 되었단다. 내가 묵는 9번 방은 문이 망가졌다. 옆의 8번방으로 옮겼다. 훨씬 안락하다. 나와서 집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잘있다. 건강하다. 같이 잘 다니고 있다. 시편 잠언 성경책 조금씩 읽고 있다. 중국 윈난성 사진집 3권 부쳤다. 등등 엄선한 대화를 했다.

 

2.

숙소가 모여있는 팝 응우 라오 거리 맞는 편 긴 공원에는 꽃 시장이 열리고 있다. 구정 전 특수 인지 몰라도 싱싱한 꽃들이 죽 이어져 있다. 우선 가장 가까운 흰두교 사원을 찾아가자. 가다 한 골목에서 고기 덮밥을 하나 먹었다. 물어 물어 마리안느 흰두교 사원인가에 들어갔다. 짐승 머리 모양의 검은 신 앞에서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다. 그 신의 생김이 마음에 끌린다. 큰 거리로 나섰다. 대형 상가 건물이다. 여기가 없는게 없다는 벤탄시장 인가 보다. 시장안은 서울의 평화시장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빽빽하게 상점으로 가득차있다. 나이키 아디다스 카피 옷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3.

계속 걸어 나갔다. 한 상점에서 7000동 주고 지도 하나 샀는데 더 모르겠다. 사이공에서 가장 사진발을 받는 위치인 구 인민위원회 청사 앞 호지민 동상 옆에서 잠깐 앉아 쉬었다. 한국 여자 셋이서 말을 주고 받으며 걸어간다. 동상과 뒤 황금색 인민위원회 건물을 배경으로 서양인들이 사진찍기에 열중하고 있다. 베트남은 도시마다 두 세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곳 사이공은 예전 이름이고 통일 되면서 호찌민 시로 이름을 바꾸었다. 아니 두 세가지의 이름이 같이 사용된다고 한다. 호지민 시 박물관은 옆 골목에 있었다.

 

사이공 소재 호지민 시 박물관. 프랑스 풍의 웅장한 건물안에 혁명의 역사가 전시되고 있다

 

4.

박물관을 걸어 들어가니 입구에 결혼식 사진 촬영하는 한 커플이 보인다. 우리나라 덕수궁의 풍경과 다름이 없다. 안으로 들어가니 두 커플이 보인다. 그들은 이 공간안의 내용은 관심이 없어 보인다. 프랑스 제국주의의 상징인 이 건물이 그들이 배경이다. 전시는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하노이 혁명 박물관에 다녀 와서 그럴까? 벽면을 가득채운 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혁명승리의 기쁨을 표현한 그림이다. 탱크와 옆의 환호하는 사람들이다. 탱크위에는 여성이 깃발을 쳐들고 있다. 환호하는 사람들은 아오자이 자락을 휘날리는 여성들이다. 우아함과 혁명의 연결이라. 혁명은 무언가를 거부하는 몸짓이아니라 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듯하다.아오자이 자락이 발에 끌린다. 힙합바지가 생각난다.

 

5.

박물관을 나와 슈퍼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서 공원에 잠시 앉았다. 코코넛 음료 파는 한 친구가 영어를 쓰며 하나 사란다. 만동이란다. 그냥 샀다. 5천동이면 될텐데하는 생각이 스친다. 하노이와는 좀 달라지자. 너무 예민하다가는 나 자신이 알뜰 소비자로 전락한다. 그냥 넘어가기도 하자. 노트르담 대성당은 문이 닫혀있었다. 한 골목에 사진전시회를 한다. 프레스 센터인가 보다. 프레스 사진들은 하나같이 포인트가 있다. 그런데 포인트와 포인트가 겹치니 전체적으로는 믿믿한 느낌이다. 리듬과 강약이 중요하다. 저기가 대통령궁 아니 통일궁이다.

 

호지민 시 통일궁. 건축상으로도 대통령궁의 중심을 잘 표현하고 있단다. 창문은 돌로된 커튼으로 장식되어 있다

 

6.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직원이 반갑게 맞이한다. 내가 신짜오하고 인사를 하자 자긴 한국어를 잘 모른단다. 영어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한다. 열명쯤의 서양인들과 합류했다. 일본여자 셋은 따로 돌아다닌다. 회의실 영빈관 영화관 등등이 3층 까지 이어진다. 4층 옥상 옆에는 핼리콥더가 있다. 대통령궁 답게 최고의 미술품들이 걸려있다. 옥상에서 잠시 쉬고 방공호 같은 좁은 계단으로 지하로 내려간다. 유사시에 대응할 작전본부 방들이 이어진다. 대통령이 피할 침대도 있다. 볼품없는 침대 하나다. 세밀한 지도들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다큐 비디오 감상. 영어방, 프랑스방, 중국어 방이 있다. 한국어방은 없다. 영어방에서 한 30분 보고 나왔다.

 

전쟁 박물관 입장권

 

7.

마지막 박물관 순례 코스인 전쟁 박물관으로 가자. 길을 반대로 들어 호찌민 박물관이 나온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시클로를 한 번 타자. 3만 동 부르는거 15000동에 탔다. 이 전쟁박물관은 호찌민 시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박물관이란다. 전쟁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단다. 들어가니 그 당시의 땡크, 포 등의 무기가 마당에 전시되어있다. 여러 전시방들이 빙 둘러 있다. 전쟁당시 정치범 수용소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방이 있다. 서대문 형무소는 양반이다. 철문의 구멍을 들여다 보는데 흠찟 놀랐다. 안에서 한 정치범 인형이 나를 보고 있다. 프랑스가 사용했던 길로틴(단두대)도 전시되어있다. 6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 단두대로 목이 잘린 한 혁명가의 사진이 옆에 걸려있다. 이곳의 사진은 가식이 없다. 전쟁의 상흔, 시체들, 고문의 피해자, 손 발 잘린 아이들이 그대로 사진에 있다.

 

8.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작은 충격을 받은 얼굴들이다.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한다. 한 전람실은 세계적으로 베트남 반전에 대한 포스터와 선전물이 전시되어있다. 일본, 호주, 미국, 유럽, 등등 각국의 연대 선전들, 연대 집회 알리는 선전들이 있다. 한국 반전 선전물은 하나도 없다. 대단한 군사 정권이었다. 한 전시방에는 참전한 나라와 숫자가 표로 정리되어 있다. 호주도 이때 한 몫 잡을 려고 대거 참전했었다. 한 7-8천, 그런데 한국은 5만이다. 다국적 참전국은 대부분 남쪽 사이공 방어전선에 배치되었다. 그런데 한국군은 가장 치열했던 중부 전선에 투입되었다. 참전 지도 중부 전선에 한국 태극기가 붙어 있다. 기차에서 만난 베트남 아저씨, 한국군의 총알에 맞았던 것은 아닐까?

 

9.

한 곳에 방명록이 보인다. 좀 들쳐보니 한국인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대부분 너무 참혹해요. 전쟁은 이제 그만 투의 표현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언급도 있다. 한 참전용사의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난 000부대 출신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싸웠다. 여기와서 보니 내가 참전한 뜻은 온데간데 없고 하나의 시각으로만 정리되어 있어 아쉽다.... 마지막 마무리는 이거였다. 베트남이 빨리 경제가 발전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오련다. 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참전용사의 심정이 느껴진다.

 

10.

박물관 무기들 옆으로 서양식 음식 테이블이 세팅되고 있다. 여기와 안 어울리게 밤에는 인형극이 열린단다. 이제 숙소쪽으로 이동하자. 지도에서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다. 나침판을 꺼냈다. 음 저쪽 방향이군. 꼭 길을 몰라도 방향만 확인하면 숙소 찾기 그리 어렵지 않다. 오면서 안에 매추리알 고기들이 들어있는 고급 만두 하나, 햄버거, 생맥한잔, 바나나구워소스뿌린거 등을 사먹었다. 숙소 근처 일본인이 운영하는 한 중고 서점이 있다. 들어가니 한국말 인사를 한다. 한국책이 있단다. 내가 찾던 한-베트남 회화책이다. 작은 책 표지에는 김희선 등등의 한류스타의 사진이 있다. 4만동 주고 사서 뒤 라벨을 벗겨보니 2만 8천동이 정가다. 뭐 필요한 것을 샀으니 할 말은 없다. 밤 늦게 까지 인터넷을 하다 숙소로 들어갔다.

 

 

 

* 050202 (수) 여행 69일차

(잠) 사이공 트윈 침대 8400원 (8불)

(식사) 아침 고기덮밥 600원 (8000동)

(이동) 시클로 1125원 (15000동)

(입장) 호지민 시 박물관  750원 (10000동)

          통일궁  1125원 (15000동)

          전쟁 박물관 750원 (10000동)

(간식)  생맥주 한잔, 과자  750원 (10000동)

           오징어채, 오징어땅콩,아체크랙커 750원 (10000동)

            코코넛 음료 2개 1125원 (15000동)

           왕만두1개 375원 (5000동)

           제과점 햄버거 525원 (7000동)

           생맥 1잔 300원 (4000동)

           바나나 구운거 소스 150원 (2000동)

           캔 맥주 825원 (11000동)

           사발면 300원 (4000동)

(기타) 인터넷4시간 1650원  (22000동)

         집에 전화 2025원 (25200동)  

 

...................................................................... 총 21,52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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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0 19:17 2005/02/10 19:17

1.

아침일찍 눈이 떠졌다. 신기한 것은 어제는 내 침대에 앉으면 몸 뒤쪽으로 열차가 향했는데 깨어보니 앞쪽으로 간다. 열차가 중간에서 한 바뀌 돌았나. 모를일이다. 7시쯤 사발면을 하나씩 준다. 나는 안 먹고 있었는데 이 부자 사발면을 처음 먹는지 뜨거운 물을 받아서 뚜껑을 덮어두지 않고 바로 부셔 먹는다. 면발이 가는 사발면이라 그렇게 먹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아는척 할거 같아 가만히 있었다.

 

2.

생수 병들이 없어졌다. 아저씨는 맥주를 연신 들이키고 아들은 우유와 티를 먹느라 물을 먹지 않는다. 잘 모르고 치웠나보다. 물은 하나 샀다. 차창밖은 완전 열대의 풍경이다. 바라만 보아도 더운 열기가 훅훅 느껴진다. 11시쯤 아침도시락을 준다. 어머니가 싸준 투뷰형 고추장을 꺼냈다. 밥에 비벼먹으니 그나마 미슥거리는게 덜하다. 또 맥주캔 하나를 받아먹었다. 나도 뭘 하나 사야겠다.

 

3.

12시쯤 되었나. 아저씨가 자기 팔을 보여주며 뭐라고 한다. 겨드랑이 근처에 큰 흉터가 있다. 그리고 창밖을 가리킨다. 여기서 전투를 하다 총 맞은 상처란다. 내가 어메리카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아니 한국인에게서 맞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것을 대답했다. 어메리카, 코리아 같이 참전한 것을 알고 있다. 아저씨 고개를 끄덕인다. 아저씨의 이름은 ngvyen van thiet 위엔 반 티엣이란다. 66년에 총을 맞았단다. 그때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내가 dang cong san 베트남 공산당 창립일을 노트에 쓰자 내일이란다. 그는 베트남 공산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4.

아저씨 아들과 자리를 바꿔 창밖을 유심히 쳐다보신다. 창밖은 산악 지형이 이어진다. 이른바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붙은 중부지역이다. 한국군도 이 고지에 있었을 것이다. 서로 뺏고 뺏기고 했을 것이다. 나는 좀 뒤쪽에서 이 아저씨와 창밖풍경을 보았다. 이 아저씨의 도움으로 그냥 그런 풍경이었을 창밖이 달라진다. 이 아저씨가 창밖을 보며 생각에 깊이 잠기면 잠길수록 나도 그만큼 상상에 빠진다. 22살의 젊은 위엔 반 티엣이 저기 있다. 굳은 신념으로 미국군과 5만이나 간 한국군과 맞선다. 진격할 찰라 총알이 몸에 스친다... . 한 20분 정도 지났을까? 아저씨가 일어나신다. 창밖은 다시 풍경이 된다.

 

5.

2시쯤 되어 기차가 한 역에 선다. 내려서 상점에서 쥐포 구운 포장 하나를 샀다. 아저씨는 이빨이 안좋아 못먹고 아들과 나눠 먹었다. 또 캔맥주 하나를 얻어 마셨다. 베트남사람은 한국사람과 같이 체면을 중시여긴다고 한다. 결혼식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기둥뿌리가 뽑힌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 자존심이 있다. 5시가 넘어가자 기대했던 바다가 잠시 보인다. 그리고 황량한 벌판이 이어지고 예정 시간 보다 1시간 가까이 넘어 8시 30분경에 기차는 사이공역에 도착했다.

 

6.

정신이 없어 베트남 부자와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여행자 거리인 팝 응우 라오 지역가는 택시는 5불을 달란다. 2만동 주고 오토바이를 탔다. 여행자 거리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대부분의 숙소에 방이 없다. 3불짜리 도미토리는 기대할 수 없다. 한 골목의 게스트하우스 5층 방에 8불을 주고 들어갔다. 베란다에 작은 침대가 하나 더 있는 묘한 구조다. 샤워를 하고 베란다 쪽 침대에 누웠다. 밤인데도 낮의 열기가 아직 후끈하다. 사이공의 밤이다.

 

 

* 050201 (화) 여행 68일차

 

(잠) 사이공 hoang yen 9450원 (126000동)

(이동) 오토바이 1500원(20000동)

(간식) 쥐포포장 2250원 (30000동)

           물 150원 (2000동)

(기타) 인터넷 300원 (4000동)

 

................................................총 13,6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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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9 21:30 2005/02/09 21:30

1.

일어나서 샤워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부가세 10%를 붙인다. 그동안 부가세 붙인 호텔에서 자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손해 본 느낌이다. 기차에서는 먹을 것이 별로인지라 좀 먹어두자. 우선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밀가루 지단을 펴서 살짝 구운다음에 안에 속을 넣고 마무리한 즉석 만두 한접시를 먹었다. 그리고 여기 하노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찰밥을 먹었다. 아직 기차시간이 많이 남았다. 11시에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프랜치토스트 아침식사를 시켜서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2.

르완끼엠 호수로 갔다. 여기는 론리플래닛등 여행자가 볼만한 책들을 복제해서 파는 장사들이 많다. 한 친구가 집요하게 사라고 쫒아온다. 여기도 있을 만큼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 운전사에게 기차역 가는 버스가 몇 번이냐고 물었는데 없단다. 없을리가 없는 코스인데 없다고 하니 할 수 없다. 택시를 탔는데 여긴 택시 종류에 따라 요금차이가 배로 난다고 하는데 정말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 배로 나왔다. 또 시간이 남아서 하노이 기차역 맞은편 간이 카페에서 주스하나를 시켜 먹었다. 이 주인할머니 만동을 내란다. 5천동도 하지 않는데 내가 두번이나 모른 척 하면서 5천동을 꺼내니 인상을 쓰며 아니란다. 만동을 내고 대합실로 들어섰다.

 

사이공 행 SE1 특급 열차다. 가장 빠른 29시간이 걸린다. 낮시간에 출발하는 열차가 이것 뿐이여서 큰 맘먹고 티켓을 끊었다

 

3.

2시가 되니 개찰이 시작된다. 빨리 타서 앉아 있자. 개찰을 하고 내 열차칸을 찾는데 한 사람이 와서 표를 보여달란다. 역무원 옷을 입고 있지 않고 뭔가 이상했는데 하여튼 보여주었다. 따라 오란다. 그가 내 자리를 찾아주면서 우는 얼굴로 돈을 달란다. 중국 국경에서 하노이떠나기 바로 직전까지 줄줄이 당하고 있다. 이게 마지막이야. 2만동 달라는 걸 5천동 쥐어 보냈다. 저렇게도 먹고 산다. 소프트 침대는 생각보다는 좁다. 하여튼 3층 침대만 타다 2층 침대칸으로 들어오니 아늑한 느낌이다.

 

4.

조금 있으니 우루루 여러 사람이 들어온다. 베트남 가족인거 같은데 배웅하러 왔나 보다. 나무 두 그루와 여러 짐들이 들어온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맞은 편에 앉은 약해 보이는 한 친구 손을 붙잡고 한 여자가 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런 울음이다. 옆의 아버지로 보이는 아저씨도 눈을 훔친다. 한 아저씨가 우는 여자에게 이제 그만 가자 한다. 이산가족과 같이 그들이 나갔다. 약해 보이는 친구를 유심히 보니 약한 정도가 아니다. 아주 뼈만 남은 몰골이다. 인사를 나누었다. 역시나 아들이 아파서 어디 요양하는지 치료를 받으러 간단다. 내 나이를 물어본다. 내 나이를 말하자 자기 아들은 25살인데 이렇다고 하면서 뼈만남은 손목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코리아 인베이더 베트남.

 

5.

인베이더라 순간 당황했다. 이건 여행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침략, 침략자란 뜻이다. 이 아저씨가 이걸 말한 것일까? 혼란스러워 아저씨에게 우선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좀 더 곰곰히 생각해보니 침략자가 맞다. 내가 어릴때 핑퐁오락부터 해서 뽕뽕오락실이 등장했을때 인베이더 오락이 있었다. 적의 비행기 무리가 척척 내려온다. 옆으로 내려오다 한칸 밑으로 다시 옆으로... . 천천히 내려오지만 죽이지 못할 경우 마지막은 아주 빨라진다. 그리고 내가 죽는다. 아저씨에게 뭔가 대답은 해야겠다. 나 어제 호지민 묘소에 다녀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6.

이 아저씨의 나이가 61살이란다. 그러면 베트남 전쟁때 아마 젊음을 바쳤을 것이다. 중국 베트남 두 사회주의 나라를 두달이 넘게 다니면서 이렇게 충격을 주는 말을 들은건 처음이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한국이 베트남 침략자인거 아니? 이 말이 계속 머리속을 맴돈다. 내가 과연 알기나 하는 걸까? 나도 지옥의 묵시록 정도의 추상적인 전쟁의 광기를 알고 있다. 이 사이공 행 기차안에서 거의 뼈만 남아 있는 아들을 데리고 가는 베트남 전쟁에 젊음을 바친 베트남인이 물어본다. 너 한국이 베트남 침략자인거 아니? 사실 난 잘 모르고 있었다.

 

7.

5시쯤되니 도시락이 들어온다. 닝닝한 국같은 반찬이 셋에다가 푸석한 쌀밥이다. 이 젊은 친구 나에게 계속 맥주를 마시라고 권한다. 베트남 산인 타이거 캔맥주 한 박스를 들고 왔나 보다. 너무 사양하는 것도 무례한 것이다. 이 부자와 중간에 놓인 작은 테이블위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이 친구 정말 잘 먹는다. 아까 빵에다가 음료도 시켜먹고 그런데 몸이 그 영양분을 거부하는 듯 보인다.

 

8.

밥을 먹고 좀 쉬다가 셋 다 일찍 자리에 누웠다. 나와 아들이 1층 침대, 아버지가 아들 위의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이 아버지의 삶을 생각해 본다. 청춘을 바친 베트남 전쟁, 아들은 병들었다. 그의 생각에는 지금의 베트남이 병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가 가진 신념 용기는 지금 베트남에서 우선 순위는 아닌 듯 싶다. 내가 그라면 참으로 착찹할 듯 싶다. 너 한국이 베트남 침략자인거 아니? 이 사이공행 열차안에서 한 베트남 인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나에게 전달되었다. 비싼 열차 티켓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밤이 지나가고 있다.

 

 

* 050131 (월) 여행 67일차

 

(잠) 기차

(식사) 아침 베트남씩쇠고기쌀국수 750원 (10000동)

                 밀가루지단얇게펴서안에속넣은만두 300원 (4000동)

                 잎에싼 찰밥 300원 (4000동)

                 레스토랑 프랜치 아침 메뉴세트 3000원 (2.75달러)         

(이동) 택시 1800원 (24000동) 

          하노이-사이공 특급열차 74625원 (995000동)         

 (간식) 과일주스 750원 (10000동)

(기타) 열차 안내비 375원 (5000동)         

 

 ...................................................................... 총  81,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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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9 20:03 2005/02/09 20:03

1.

일어나서 그동안의 여행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여행을 생각하며 러시안 집시카드을 보았다.

 

am7:20

39.말(감정의 격변) 고삐를 단단하게 쥐어라. 그렇지 않으면 비틀거리게 된다

1. 기사(소식) 기대하지 않았던 희소식

22. 길(인생의 여정) 외롭고 고달픈 여정. 혹은 일

17. 왜가리(새출발, 변화) 주거지의 이동

44. 불(정열) 불길을 주의하라. 날개를 태워 추락할 수 있다

 

마지막카드

6. 사과(만남) 즐겁지 않은 모임이나 만남 ---- 즐거운 일

28. 편자(성공) 행운이 당신을 기다린다

37. 천사(수호천사) 화해를 함으로써 새로운 기쁨을 맛보다 ---- 바라마지 않던 영광, 행운이 기다린다

31. 태양(따뜻함, 강렬한 성격) 번영, 개화, 삶의 포옹, 행복

 

2.

거리로 나왔다. 얼굴이 계속탄다. 모자를 하나 사야겠다. 챙만 있는 모자를 하나 골랐다. 아저씨가 처음에 5만동을 부른다. 내가 3만동을 불렀다. 부인인 아줌마가 5만을 다시 강하게 부르는데 아저씨가 3만 내란다. 모자 깎는데는 반쯤 성공했으나 그 이후는 모조리 실패를 맞보았다. 과일은 시세대로 사 볼려고 했으나 두 군데서 실패였다. 내가 돈이 좀 있게 생겼나보다. 이곳 베트남에서... . 결국 파인에플 하나 깎은거를 3천동에 샀다. 4천동에 사먹은 찰밥 다른 곳에서 먹었는데 아저씨 만동을 부른다. 베트남은 체면을 중시여긴단다. 그래서 물건 깎는 것도 중국과는 달리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단다.

 

부패방지 처리된 호찌민이 있는 묘

 

3.

가이드 북에선 호지민 묘를 오전 11시까지만 연다고 나와있다. 택시를 타자.  기본요금 만동을 내고 내렸다. 묘 맞은 편에 내려서 걸어 들어가는데 공안이 제지를 한다. 저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란다. 저쪽으로 가는데 한 오토바이 운전수가 2키로라고 타란다. 무시하고 걸었다. 한 5분 정도 걸어 입구에 도착했다. 소지품을 맡기고 검색대를 통과하고 줄을 서서 입구로 들어갔다. 공안들이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입구에 들어가 게단을 올라가는데 뒤에 있던 서양인 둘이 소근거리다 조용히 하라 제지를 받았다.

 

4.

호찌민(1890-1969) 베트남 공산당의 창립자이며 1946년 부터 사망까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 호찌민의 추종자들과 공산당은 그를 호 아저씨라는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했다한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죽을때까지 결혼한 적이 없었다. 드디어 시신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불빛이 풍겨나오는 유리관에 단정한 모습의 호찌민이 누워있다.  4명의 군인이 사방에 서있다. 천천히 3면을 돌아서 보는 구조다.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냥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는게 더 도움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끼어든다.

 

5.

묘소의 뒤편은 호찌민의 집무실과 숙소, 연못등이 있다. 한국말이 들린다. 10여명의 한국페키지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걸어가고 있다. 청사 건물을 왜 황색으로 칠했나. 황색은 중앙을 상징하는 색이고 부의 색이기도 하다. 두 나무가 붙어있다. 불교용어로 뭐라하는데 베트남의 통일을 상징하는 나무다. 베트남은 예전 우리나라 전라도 경상도 갈등 저리가라는 수준으로 남북간에 갈등이 크다. 남쪽은 우리가 먹여살린다하고 북쪽은 우리가 통일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북쪽 사람들은 곧은 나무쪽이 자기들 나무고 삐뚤삐뚤한 나무는 남쪽 것이라고한다. 작은 호수옆 호찌민의 집무실은 단촐했다. 가이드가 한 방에서 저기 사진은 맑스와 레닌이다고 설명하자 한 아줌마가 기계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 아줌마의 사진기 메모리카드에 맑스와 레닌이 담기는 순간이다.

 

6.

호찌민의 숙소는 통나무로 1층이 빈 2층집 구조다. 베트남은 워낙 더워 열기때문에 그런 구조가 많다한다. 그 옆에는 호찌민 박물관이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베트남은 지금이 여행철이라한다. 4-5월 부터는 우기가 시작된다. 한국인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여긴 다른 가이드다. 미국 현지 첩보원들은 호찌민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자라는 의견이 중론이었다한다. 그런데 프랑스가 미국을 끌어들이러 호찌민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일을 그르쳤다. 사실 미국이 북베트남을 공격했더라면 자본주의로 통일시킬수 있었다.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중국때문에 공격을 포기했다. 가이드의 말은 사람들에게 별 부담없이 받아들여지는 거 같다.

 

7.

박물관을 나와 안 가본 방향인 또이 호수쪽으로 걸었다. 호수의 물은 지저분했고 바람도 잘 안분다. 한 강변 레스토랑에서 튀김에 맥주 한병을 먹고, 걸어서 잎에 싼 밥과 빵을 사고 로타리에서 생맥을 또 한잔먹고 기차표를 끊으러 버스타기를 시도했다. 한 젊은 친구에게 물으니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 마침 자기도 기차역에 아버지를 마중나간다고 한다. 같이 버스를 탔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한국의 경제를 칭찬하며 베트남이 이를 배워야한다고 한다. 이럴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수 밖에 없다.  안 배워야 할 것을 설명하기에는 여러 조건이 안 맞다. 대학 2학년이란다. 내가 아까들은 남북간의 갈등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 친구 대답이 한국 여배우들이 이쁘단다. 이럴때도 그냥 넘어가야 한다. 한 번은 다시 물을 수 있지만 몇 번해서 이해못하면 서먹해진다. 기차역 앞에서 내렸다.

 

8.

사이공가는 철도요금은 생각보다 많이 올랐다. 재일 빠른게 29시간 걸린다. 33시간짜리 41시간짜리 등등이다. 창문을 보면서 여행하려고 내일 낮에 출발하는 열차를 예매했다. 그리고 혁명박물관쪽으로 걸었다. 꽃시장을 한 번 둘어보았다. 베트남에 오토바이 택시가 몇 대나 될까? 거리를 걸으면 1분에 한 명꼴로 앞에서 헬로우, 하이하며 오토바이 타라 한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거나 손을 젓는것도 한 두 번이지 거절하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혁명박물관 근처 오페라 하우스 앞에 왔다. 웨딩드레스 두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 건물 위 테라스에서 1945년 8월 16일 베트남 인민위원회가 하노이를 접수했다는 사실을 선포했다한다. 오늘저녁 클레식 공연을 한다.

 

하노이 소재 베트남 혁명 박물관

 

9.

오토바이 운전수에게 길을 묻기도 겁난다. 한 운전수에게 물으니 바로 저쪽이란다. 옆에 있던 운전수가 돈 안받을테니 타란다. 이 친구 빙 한 바뀌 돌더니 내려주면서 들어갔다 나오면 좀 떨어져 있는 어디까지 가자고 한다. 결국 5천동을 주었다. 혁명박물관은 30여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구조였다.  19세기 프랑스 식민지 치하에서의 독립투쟁을 다른 초기 방들 베트남 전쟁 방, 그리고 최근의 발전상으로 방이 나뉘어저있었다. 몇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는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혁명의 승리를 선포하는 라디오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 큰 광장에서 환호 퍼레이드 모습, 소수민족의 여성게릴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0.

더운 지역에서 여행하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박물관을 나와 또 생맥두잔을 들이켰다. 여기서 호수까지는 갤러리 골목이다. 한 서점에 들어갔다. 북부 소수민족 지역인 사파의 얇은 사진집과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를 비디오로 보았던 남아있는 나날들 영문소설을 샀다. 지금 베트남은 2.3일인 베트남 공산당 창건 75주년 프랭카드와 앰블럼으로 도배가 되었다.  매년 이렇게 하는지,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 하여튼 한 갤러리에서는 75주년 포스터 전시회를 하고 있다.

 

11.

르완끼엠 호수에 도착했다. 벤치에 않아서 거북이 상을 바라보다가 성당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오늘이 일요일이다. 미사를 하고 있다. 마침 영성체 시간이다. 영성체는 예수의 피와 살의 상징인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의 시간이다... . 나도 어떤 계기로 카톨릭 영세를 받은지라 신부님이 나누어주는 500원 동전크기의 빵을 먹을 자격이 있다. 앞쪽의 건물내부경관도 둘러볼겸 나도 줄을 서서 빵 하나를 받아먹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분위기가 좋다.

 

12.

미사가 끝나고 나와서 식당 골목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피자작은것과 샐러드바접시, 주스한잔을 시켰다. 피자는 야체빵하나 나오는 수준이다. 그나마 샐러드바 부패가 먹을 만 했다. 나와서 하노이 구 시가지를 죽 걸어들어갔다. 한 피씨방에서 일기를 좀 올리고 10시쯤 나와서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가던중에 한 노점에서 한치인지 오징어인지 작은 거 한마리를 구워달라고 했다. 작은거 한마리에 1불이란다. 오전에 과일사다 지나친 기억이 있어 왠만하면 사려고 하는데 이 아줌마 끝까지 1불이란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마치 예전 악착같이 벌어 집안을 꾸리고 자식을 공부시켰던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를 보는 거 같다. 이 아줌마의 이를 악문 모습을 보며 또 한번 어떤 생존본능같은걸 느낀다. 결국 달라했다. 이 아줌마 거스름 돈 일부를 떼어먹으려 한다. 나도 물러설 수 없다. 아줌마 제대로 거스름 돈을 준다. 베트남 하노이는 나에게 힘들게 느껴진다. 그건 나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중국은 나름대로 준비도 조금 했고 무거운 책과 프린트도 여러권 가지고 다녔다.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은 달랑 가이드 북 하나 가지고 있다.  이곳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는 자세가 부족한 것이 사람들이 나를 단지 관광객 소비자로 보게 만드는 이유다.

 

13.

숙소를 찾았다. 잎에 싼 찰밥집을 갔다. 밥통을 긁어서 하나를 만들어 준다. 힘들땐 먹는게 최고다. 숙소에 돌아와 밥을 먹었다. 밥심이 생긴다. 내일은 1700여키로 남쪽으로 출발이다. 남쪽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

 

 

* 050130 (일) 여행 66일차

(잠) 그린호텔 욕실포함 싱글룸  10불 부가세 10%포함  13,050원    (174,000동)

(식사) 아침 국수어묵  375원 (5000동)

                 고기덮밥 750원 (10000동)

          점심 잎에싼 찰밥 300원 (4000동)

          저녁 야체셀러드, 치즈피자, 레몬주스, 부가세 4950원 (66000동)

                 잎에싼 찰밥 300원 (4000동)

(이동) 버스 185원 (2500동) 

          오토바이 375원 (5000동)

(입장) 호지민 박물관  375원 (5000동)

          베트남 혁명박물관 750원 (10000동)

(간식) 빵   185원 (2500동)         

          생맥주 한잔, 고기튀김안주  1875원 (25000동)

            생맥두잔, 베트남식 야체셀러드1650원 (22000동)

            한치한마리 1125원 (15000동)

(기타) 인터넷2시간 900원  (12000동)

           사파 사진집 1275원 (17000동)

           남아있는 나날들 영문소설 2925원 (39000동)

 ...................................................................... 총  31,3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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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4 23:16 2005/02/04 23:16

1.

5시에 도착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도착했다해서 깨어보니 4시다. 이럴때 좀 당혹스럽다. 정신을 차리고 베낭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처음 배에서 내려 중국 땅에서 헤멜때의 정신없음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아직 나는 해외여행 초자아닌가? 일단 역 주변은 잘 때가 못된다. 한 아줌마 오토바이 운전수 뒤를 탔다. 르완끼엠 호수 옆 구시가지로 가자 했다. 저기 작은 호텔 간판이 보인다. 내려달라해서 아줌마에게 얼마냐 물으니 50000동을 부른다. 새벽에 이 아줌마와 실강이를 해 겨우 17000동을 주고 문을 열고 프론트로 들어갔다.    

 

2.

여긴 중급 호텔 좀 되나보다. 15달러란다. 10달러는 몰라도 여긴 아니다. 나오니 그 아줌마 그냥 타란다. 오토바이가 새벽을 또 달린다. 아줌마 아는 데가 있나보다. 그린 호텔이라는 곳에 내린다. 들어가니 젊은 친구 둘이서 서양인을 상대하고 있다. 나에게도 방을 보여주는데 여기도 15불이란다. 아니라고 했다. 금방 체크아웃한 10불짜리 방이 있으니 치울동안 조금 기다리란다. 그리고 기다리는 아줌마에게 돈을 집어 주고 내 보낸다. 베트남은 선불이 아니라 여권을 금고에 보관하고 체크아웃할때 돈을 내는 호텔시스템인가 보다. 걱정마란다. 방에 올라가니 깔끔하다.

 

3.

샤워를 하고 잠을 잤다. 12시쯤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하노이 구시가지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거리란다. 이 곳에는 36개의 거리가 있다는데 이것은 36개의 상인조직이 한 거리를 맡아서 정착한데서 나오는 이름이란다. 거리는 아주 복잡해서 내가 자는 호텔을 제대로나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돌아오기 쉽게 일단 직선으로 가기로 했다. 가다가 큰 상점 맞은편에 잎에 싼 밥을 팔고 있다. 하나를 사서 걸으면서 먹으니 찰밥이다. 큼직한 오뎅하나와 오뎅 국물로 밥을 먹는데 300원짜리치고는 아주 맛있다. 베트남에 왔으니 국수를 먹어줘야한다. 길거리 간이 의자에서 국수를 팔고 있다. 소라를 한껏넣고 매운 맛을 더한 국수다. 한 소쿠리 풀을 그때그때 집어서 같이 먹는다. 드디어 르완끼엠 호수에 도착했다.

 

4.

적당한 크기의 호수다. 호수 중간에는 거북이 탑이 있다. 호수를 돌고 있는데 한 아줌마가 지도를 들고 와서 사란다. 얼마냐 물으니 2달러란다. 내가 1달러를 부르고 아줌마가 20000동을 부르고 좋다해서 샀는데 사고나서 생각해보니 두배 이상은 준거 같다. 아직 동이 적응이 안된다. 베트남은 하도 돈 단위가 커서 잘 안들어 온다.  슈퍼로 들어갔다. 베트남의 맥주 브랜드는 타이거맥주가 가장 유명하고 333맥주도 있다. 일단 다시 숙소로 들어가자. 그 길로 돌아가면 되는데 또 그러기는 싫다. 옆 길로 좀 빠져 걸으니 한 화랑이 나온다. 직원이 친절하게 맞이한다. 2층 옷가게까지 둘러보았다. 나오는데 큰 성당이 보인다. 성요셉대성당인가 보다. 문이 닫혀있다. 그러다가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하기야 잃어버려도 거기서 거기긴 하다. 호텔 명함을 챙겨왔으니 물어 찾아가면 된다. 잃어버린김에 그냥 더 가보기로 했다.

 

5.

한 유스호스텔이 나오고 인터넷을 하고 있다. 한 시간에 12000동이란다. 비싼요금이다. 다른 싼 곳을 모르니 일단 한 시간을 하기로 하고 앉아 블로그에 간단히 글을 올렸다. 이젠 숙소 찾기다.  숙소 명함을 꺼내어 서너번 물어 숙소를 찾았다. 다시 사워를 한 판하고 거리로 나왔다. 조금 익숙해졌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커브를 틀었다. 화랑거리가 나온다. 몇 군데 들어가 보았다. 베트남의 거리는 오토바이 홍수다. 여긴 자전거 별로 없다. 그 요란한 소음들을 들으면 정신이 없다. 길을 걸으면 최소한 1분마다 한 둘은 하이, 오토바이하면서 말을 건다.  나중에는 길을 묻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다. 오토바이 운전수에게 물으면 자기가 태워주겠다고 할 거 아닌가. 화랑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음이 차단된 완전 다른 분위기다. 책에서도 베트남은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좀 다른 창작 분위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림들이 개성이 강하고 마음에 들어온다....

 

6.

다시 르완끼엠 호수에 도착했다. 어슬렁거리다 슈퍼에서 물을 사고, 구운 옥수수도 하나 사먹었다. 다시 구 시가지를 헤메다 한 노점에서 베트남 국수를 사먹었다. 내 입맛에는 좀 별로다. 숙소 근처 베트남식 호프 한잔했다. 오이 안주에다가... .  이 곳 호프는 한국의 김빠진 맥주맛이다.

 

7.

숙소에 들어오니 7시가 넘었다. 베트남 티비는 무얼할까? 해변을 소재로 한 프랑스영화다. 웃기는 영화는 아닌데 코믹스러운 한 남자가 계속 차이고 당하고 헛물을 켠다.  여러개의 스포츠 체널이 있다. 3군데서 축구경기를 한다. 베트남은 축구에 열광한다. 나도 안 볼수가 없다. 시트콤의 고전 남자셋 여자셋도 한다. 초기 커플인 송승헌 이의정이 나온다. 그리고 장금이. 한 성우가 모든 배역을 다 소화한다. 한국어로 대사를 치면 바로 따라 성우가 무슨 말인지 말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5번체널 토크 프로다. 책을 낸 사람들이 차례로 출연한다. 아직도 우아한 여배우 클라우디오 카르디날레,  색시한 코드의 젊은 여배우, 지적인 여자,  페널로 보이는 중간 가름마 느끼남, 유쾌한 스타일의 남성패널이 나온다. 카메라 워크도 재미있다. 여배우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낸다. 액정화면의 삿은 훔쳐보기 코드다. 대화의 향연이다. 프랑스 스타일이로군... . 

 

8.

12시가 되어간다. 오래도보았다. 내일은 하노이 시내를 누비리라.

 

 

* 050129 (토) 여행 65일차

(잠) 그린호텔 욕실포함 싱글룸  10불 부가세 10%포함  13,050원    (174,000동)

(식사) 점심 잎에싼 찰밥 300원 (4000동)

                                   고동야체국수  1125원 (15000동)

            저녁 베트남 쌀국수 750원 (10000동)

(이동) 새벽 오토바이 1275원 (17000동)

(간식) 물 작은거  195원 (2600동)

            옥수수 구운거 375원 (5000동)

            생맥주 한잔, 야체안주  600원 (8000동)

            타이커맥주캔, 리치크랙커, 새우깡비슷한것  1500원 (20000동)

(기타) 인터넷1시간 900원  (12000동)

            하노이 지도 1500원 (20000동)

 

 ...................................................................... 총 21,57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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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3 00:29 2005/02/03 00:29

 

1.

새벽 2시쯤 되었을라나. 버스가 어디에 서서 먼가를 고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리고 차는 다시 좀 가다 다른 곳에 선다. 밖으로 나왔다. 시계는 3시를 넘어간다. 차의 타이어를 전기 드릴로 나사를 풀고 빼낸다. 몇명이 나와 구경한다. 나도 구경의 대열에 동참했다. 내가 이해할때는 바퀴에 구동력을 주는 작은 실린더하나와 내가 누운 오른쪽 뒷 바퀴가 부딪쳐서 바퀴에 손상이 간 거 같다. 바퀴에 커다란 기스가 나있다. 계속 더 그랬더라면 펑크가 났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수리를 마치는 데 두시간이 넘게 걸린거 같다. 사람들은 이런일을 일상적으로 겪는 것처럼 아무 불평 아무 반응이 없다. 차는 다시 출발했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2.

다시 깨니 이른 아침이다. 산길을 넘고 있다. 산을 거진 올라가 옆쪽으로 내려가는데 낮은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산 밑으로 솜사탕처럼 촘촘히 가라 앉아 있다. 그 위로 해가 떠오른다. 나도 한국에서 지리산 등 좋다는 몇 군데 가보았지만 이건 비교가 안된다. 아마 우연이라서 버스 뒷자리에서 누워서 보는 그 맛 때문에 감동이 더 컸나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베트남 북부의 사파가 이런 낮은 구름으로 유명하단다. 버스는 다시 구름 밑으로 하강한다.

 

3.

허커우가 가까워 지고 있다. 바나나 파인에플 나무들이 줄을 잇고 길가에 열매들을 싣고 있다. 서울은 완전 한 겨울일텐데 나는 완전 한 여름으로 가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하고 작은 허커우 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리니 더운 열기가 몰아친다. 나는 사계절의 옷을 다 가지고 가는 셈이다. 미지의 공간에 도착했을때 설레임도 있지만 당황스러움도 있다. 어디가 어딘지. 일단 주변을 걷는게 최고다. 가게들을 지나 강물을 한 번 쳐다보고 커브를 틀어 적당한 식당 앞에 앉았다. 만두 한 판을 시키고 죽을 한 그릇 더 먹었다. 주인 아저씨 아줌마와 몇 마디 나누고 나왔다. 여기 바로 옆이 베트남인데 강건너인지 어느쪽인지 아직 모르겠다.

 

4.

은행에 들어가 환전 되냐 했더니 옆으로 가란다. 나와서 옆 건물에서 환전되냐 물으니 왔던 옆으로 가란다. 보니 중간에 사설 환전 보따리 아저씨가 있다. 얼굴은 정직해 보이는데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베트남 동화는 1984년인가 외체를 돈을 마구 찍어 값아 돈 가치가 700프로가 하락했다 한다. 중국 위앤화 100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전자계산기로 찍어 보여준다. 도대체 가늠이 안된다. 1000동짜리 지폐 한 다발과 50000동짜리 10000동짜리 지폐를 받았다. 18만 19만 동정도 될 것이다. 호주머니가 벌써 가득찼다.

 

5.

저쪽으로 택시를 타면 국경출국건물이 나온단다. 중국 잔 돈이 하나도 없어 위웬화 좀 바꿔달라하자 2000동이면 간단다. 택시를 탔다. 걸어도 5분이 안되는 거리에 내리는데 이 아저씨 내리니 10원을 요구한다. 실강이를 좀 하다 5원으로 하기로 하고 100원 위엔화를 내밀어 거스름 돈을 받았다. 출국 도장을 받으러 건물로 들어갔다. 홍콩에서 나와 12월 30일에 중국에 입국했다. 오늘이 1월 28일이니 거의 한 달을 채운 셈이다. 출국 도장을 받고 나오니 다리가 나온다. 국경을 넘는 다리인가 보다. 황토강물이 중국과 베트남을 나누고 있다.

 

6.

베트남 입국 도장을 받으러 건물로 들어갔다. 베트남은 재작년 부터 한국인은 14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 2주일이 넘으면 한 달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고 비자피로 30미국달러를 내야한다. 내가 얼마나 머무를 지 나도 모른다. 입국 양식을 쓰는데 한 베트남 남자가 와서 친절하게 도와준다. 알고보니 그 건물안에 하나 있는 여행사 직원이다. 뭐가 순수한 서비스가 없다. 다 뭔가 댓가를 기다리고 있다. 기차티켓과 환전을 한단다. 환전률이 어떻게 되냐 물으니 중국돈 1원에 1825동이란다. 은행보다 후하단다. 아무래도 아닌것같다. 은행에서 바꾸겠다고 하고 기차 티켓을 주문했다. 고개를 돌리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오토바이 운전수 7~8명이 보고 있다. 한 친구가 거기 여행사 아니라며 목에 칼을 긋는 시늉을 한다. 시안에서도 경험했고 얼마 띠어 먹겠지라 생각했다. 사람은 이렇게 친절에 약하다.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

 

7.

신청용지에 도장을 받았다. 여행사 직원과 나와서 여행사로 들어갔다. 2시 반쯤 티켓을 가지고 온단다. 나와서 중국돈을 환전하러 은행으로 나섰다. 한 젊은 오토바이 운전수가 계속 위치를 알려주며 따라온다. 은행에 들어가서 기본인사 신~짜오라 하니 은행직원들이 웃는다. 한 1600원정도를 환전했다. 2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은행 환율은 역시나 1원당 1933동이다. 그 여행사에서 바꿨으면 1원당 100동, 1600원이면 160000동을 손해 볼 뻔 했다. 만원이 넘는 돈이다. 7시 기차고 지금이 12시가 다 되어간다. 그래 이 친구 오토바이를 타자. 한국돈과 동을 비교하니 1000동에 75원, 만동에 750원, 10만동에 7500원이다. 4시간을 오토바이를 대절해서 주변을 돌기로 했다. 10만동 달라는걸 7만동에 하기로 했다.

 

8.

큰 베낭을 여행사에 맡겨두고 이 친구 뒷 자리에 앉아 어깨를 잡고 출발했다. 천천히 가자했다. 처음 장소는 하노이로 향하는 고속도로인지 아직 완공되지는 않았는데 한 6차선은 되어 보였다. 옆으로 돌아서 인민광장 앞으로 왔다. 당 청사, 인민위원회 건물들이 있다. 날씨가 더워 광장에는 사람하나 없다. 옆에 노점이 있다. 거길 가자 했다. 대나무 속을 기계로 즙을 내서 얼음과 내 놓은 음료와 두 종류의 튀김 만두다. 대나무 속은 생각보다는 달작지근했다. 가격이 다해서 7000동이다. 아직 한국돈과 가늠하기가 힘들다. 가방에 넣어 둔 1000동짜리 돈다발을 꺼냈다. 운전사 친구와 일하는 여자가 좀 놀라는 눈치다. 예전 일본 잘 나갈때 일본인들이 돈 다발 꺼내 보이며 계산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내가 그 격인가. 좀 쑥쓰럽다. 그런데 이 한다발이 7500원 밖에 안된다.

 

9.

다음으로 라오까이 시장에 들어갔다. 옛날 우리 시장 모습이다. 호지민 시계가 눈에 띈다. 전자식으로 년월일시가 표시되고 얼굴라인에 불이 들어온 호지민에 햇살모양의 선이 그려져 있다. 당연히 그 선에도 불이 들어온다. 내가 그 운전사에게 너 호지민 좋아하냐고 영어로 물었다. 못 알아 들었는지 못 들은 체 하는건지 대답이 없다. 젊은 이 몇몇이 장기를 두고 있다. 나도 어릴때 외할아버지 어께넘어 배워서 알고 있다. 장기 알이 큼직해서 상대것을 먹을때 실감이 난다. 한 훈수두는 친구가 자기가 흥분해서 말을 옮긴다. 갑자기 1대 2매치가 되 버렸다. 나왔다.

 

10.

다음 간 곳은 무슨 기념탑이다. 혁명기념 탑인가 보다 생각하며 올라갔다. 운전사가 바닥에 1979년이라 쓴다. 이건 중국과 베트남의 작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념탑이다. 사회주의 북 베트남이 1975년 전쟁에서 승리하고 통일한 직후 부터 러시아와 관계를 펴면서 앙숙이었던 중국과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단다. 결정적으로 1978년 베트남 정부가 사회주의 이행이란 슬로건 하에 사유재산 몰수와 남부 지방에서의 상업적 기회주의를 배격하는 정책을 펴나갔다. 이는 베트남 남부의 돈줄을 잡고 있었던 중국 화교들에게는 결정적 타격을 주었고 중국에서는 반중정책이라고 이해했다. 180만명의 베트남 거주 중국 화교중 50만명이 탈출하는데 출국세를 1인당 미5천달러까지 지불해야 했단다. 중국정부는 베트남 원조중단, 개발 프로잭트 철회등등의 보복조치를 취했다. 결정적으로 1978년 베트남이 중국혈맹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79년 2월 중국은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북 베트남을 침공했다. 중국은 17일만에 철수하면서 대단한 성공이라 공표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측이 2만명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큰 상처를 입었다. 론리의 마지막 코멘트가 멋지다. 중국은 자기들이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지만 중국 이외에는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는다. 미국을 이긴 베트남이다.

 

11.

강가로 갔다가 너무 더워서 멀 좀 먹자고 했다. 다시 아까 갔던 시장으로 갔다. 이 친구말이 길가의 레스토랑을 비싸고 여기가 싸단다. 시장안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내가 밥을 먹겠다하니 주인이 앉아 있으란다. 밥과 국 반찬 3가지가 나온다. 정식같다. 그런데로 먹을 만하다. 이제 세가지 단어를 배웠다. 씬짜오(안녕하세요) 캄언(감사합니다) 안뇽(맛있습니다) 이 단어 3개로도 베트남 여행하는데 지장은 없다. 아 두가지가 더 있다. 뚜이(나) 한꿔(한국인). 옆자리에서 술을 먹고 있던 한 남자가 온다. 이름이 남이다. 술을 권한다. 먹어보니 중디엔 치커주 같이 좀 독한 술이다. 나도 권하고 그가 플라스틱 컵에 가득따라 반씩 먹자고 호기를 부리고 내가 먹어주고, 운전사도 한번 먹이고 내가 먹고 그의 차례가 되었는데 꼬리를 내린다.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강가 사당 두군데를 들렀다. 치장이 화려하다. 다시 여행사 앞으로 와서 운전사와 헤어졌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괜찮은 친구다.

 

12.

여행사로 들어가 표를 받으니 12만2천동짜리다. 한 5만동 정도를 수수료로 챙긴 셈이다. 덕분에 짐도 놓고 샤워도 했다. 샤워하고 앉으니 두 직원이 한국어 가르쳐 달라고 앉는다. 기본인사 숫자 등등을 한 번씩 불러주면 적으면서 따라한다. 오래있을 곳이 아니다. 간다하고 인사하고 나서는데 한 오토바이가 붙잡는다. 만동에 역까지 가기로 했다. 다시 먼지를 뒤집어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역앞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역 티비에는 예전 개그맨 서경석이 무슨 드라마에 출연한 그 드라마를 한다.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고있다. 특히 내 옆의 아줌마와 한 여자는 완전히 빠져있다. 다시 역을 나와 큰 나무앞의 간이 까페에 앉았다. 이 곳은 날씨가 덥다보니 여기저기에 목욕탕에서 앉는 의자를 몇개 놓고 장사를 한다. 주스하나를 사먹었다. 

 

13.

시간이 얼추되어 개찰을 하고 좌석을 찾았다. 이게 왠 일. 4인실이라고 두 번이나 그들이 얘기했는데 3층 6인실이다. 중국 3층 침대와는 또 다르다. 진짜 딱딱한 바닥에 돋자리 하나 펼쳐져있고 창문도 다 철망으로 막혔다. 베트남아이들이 열차에 돌을 던지는 심한 장난을 일삼아 다치는 사람이 속출하여 철망을 쳐놓는다 한다. 이건 완전 거짓말이다. 돈 얼마 수수료로 챙기는 건 그렇다 치고 사회주의 베트남에서 사기를 당했다. 그 녀석들에게 한국인에게 더 사기치라고 한국말까지 가르쳐주었다. 신고식을 톡톡히 치룬것이다. 다행히 옆자리 베트남 부부는 좋아 보인다. 오늘은 피곤한 날이다. 국경을 넘었고 많이도 돌아다녔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문제의 하노이 행 기차티켓. 위의 6자는 6인실이란 뜻 같은데 받을때는 알 수 없었다

 

 

* 050128 (금) 여행64일차

 

(잠) 기차

(식사) 아침 만두 죽 650원 (5원)

          점심 베트남 시장 정식 1800원 (22000동)

(이동) 허커우 국경 택시 650원 (5원)

          라오까이-하노이 6인실 침대하 11700원 (90원)

          4시간 오토바이 5250원 (70000동)

(간식) 베트남 길거리음식 525원 (7000동)

          베트남 음료 375원 (5000동)

(기타) 화장실 입장 중국 70원 (0.5원)

                           베트남 75원 (1000동)

 

......................................... 총 21,09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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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2 22:05 2005/02/02 22:05
  1. 고양이
    2005/02/03 00:37 Delete Reply Permalink

    드뎌 베트남을 드갔구만요. 난 지난 토욜 눈 맞고 밟으며 운악산 다녀왔슴다. 여튼 건강하시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쭈욱 잘~

  2. aibi
    2005/02/03 01:04 Delete Reply Permalink

    고양이님은 산을 아주 좋아하는 분인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서울에서 무신일을 도모하는 분인걸로 알고 있는데 운악산에서 눈을 맞으며 그 구상을 어떤 모양으로 그리는지 궁금할 따름이네요. 돌아가면 한 수 가르쳐 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