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어나서 그동안의 여행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여행을 생각하며 러시안 집시카드을 보았다.

 

am7:20

39.말(감정의 격변) 고삐를 단단하게 쥐어라. 그렇지 않으면 비틀거리게 된다

1. 기사(소식) 기대하지 않았던 희소식

22. 길(인생의 여정) 외롭고 고달픈 여정. 혹은 일

17. 왜가리(새출발, 변화) 주거지의 이동

44. 불(정열) 불길을 주의하라. 날개를 태워 추락할 수 있다

 

마지막카드

6. 사과(만남) 즐겁지 않은 모임이나 만남 ---- 즐거운 일

28. 편자(성공) 행운이 당신을 기다린다

37. 천사(수호천사) 화해를 함으로써 새로운 기쁨을 맛보다 ---- 바라마지 않던 영광, 행운이 기다린다

31. 태양(따뜻함, 강렬한 성격) 번영, 개화, 삶의 포옹, 행복

 

2.

거리로 나왔다. 얼굴이 계속탄다. 모자를 하나 사야겠다. 챙만 있는 모자를 하나 골랐다. 아저씨가 처음에 5만동을 부른다. 내가 3만동을 불렀다. 부인인 아줌마가 5만을 다시 강하게 부르는데 아저씨가 3만 내란다. 모자 깎는데는 반쯤 성공했으나 그 이후는 모조리 실패를 맞보았다. 과일은 시세대로 사 볼려고 했으나 두 군데서 실패였다. 내가 돈이 좀 있게 생겼나보다. 이곳 베트남에서... . 결국 파인에플 하나 깎은거를 3천동에 샀다. 4천동에 사먹은 찰밥 다른 곳에서 먹었는데 아저씨 만동을 부른다. 베트남은 체면을 중시여긴단다. 그래서 물건 깎는 것도 중국과는 달리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단다.

 

부패방지 처리된 호찌민이 있는 묘

 

3.

가이드 북에선 호지민 묘를 오전 11시까지만 연다고 나와있다. 택시를 타자.  기본요금 만동을 내고 내렸다. 묘 맞은 편에 내려서 걸어 들어가는데 공안이 제지를 한다. 저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란다. 저쪽으로 가는데 한 오토바이 운전수가 2키로라고 타란다. 무시하고 걸었다. 한 5분 정도 걸어 입구에 도착했다. 소지품을 맡기고 검색대를 통과하고 줄을 서서 입구로 들어갔다. 공안들이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입구에 들어가 게단을 올라가는데 뒤에 있던 서양인 둘이 소근거리다 조용히 하라 제지를 받았다.

 

4.

호찌민(1890-1969) 베트남 공산당의 창립자이며 1946년 부터 사망까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 호찌민의 추종자들과 공산당은 그를 호 아저씨라는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했다한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죽을때까지 결혼한 적이 없었다. 드디어 시신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불빛이 풍겨나오는 유리관에 단정한 모습의 호찌민이 누워있다.  4명의 군인이 사방에 서있다. 천천히 3면을 돌아서 보는 구조다.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냥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는게 더 도움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끼어든다.

 

5.

묘소의 뒤편은 호찌민의 집무실과 숙소, 연못등이 있다. 한국말이 들린다. 10여명의 한국페키지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걸어가고 있다. 청사 건물을 왜 황색으로 칠했나. 황색은 중앙을 상징하는 색이고 부의 색이기도 하다. 두 나무가 붙어있다. 불교용어로 뭐라하는데 베트남의 통일을 상징하는 나무다. 베트남은 예전 우리나라 전라도 경상도 갈등 저리가라는 수준으로 남북간에 갈등이 크다. 남쪽은 우리가 먹여살린다하고 북쪽은 우리가 통일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북쪽 사람들은 곧은 나무쪽이 자기들 나무고 삐뚤삐뚤한 나무는 남쪽 것이라고한다. 작은 호수옆 호찌민의 집무실은 단촐했다. 가이드가 한 방에서 저기 사진은 맑스와 레닌이다고 설명하자 한 아줌마가 기계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 아줌마의 사진기 메모리카드에 맑스와 레닌이 담기는 순간이다.

 

6.

호찌민의 숙소는 통나무로 1층이 빈 2층집 구조다. 베트남은 워낙 더워 열기때문에 그런 구조가 많다한다. 그 옆에는 호찌민 박물관이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베트남은 지금이 여행철이라한다. 4-5월 부터는 우기가 시작된다. 한국인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여긴 다른 가이드다. 미국 현지 첩보원들은 호찌민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자라는 의견이 중론이었다한다. 그런데 프랑스가 미국을 끌어들이러 호찌민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일을 그르쳤다. 사실 미국이 북베트남을 공격했더라면 자본주의로 통일시킬수 있었다.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중국때문에 공격을 포기했다. 가이드의 말은 사람들에게 별 부담없이 받아들여지는 거 같다.

 

7.

박물관을 나와 안 가본 방향인 또이 호수쪽으로 걸었다. 호수의 물은 지저분했고 바람도 잘 안분다. 한 강변 레스토랑에서 튀김에 맥주 한병을 먹고, 걸어서 잎에 싼 밥과 빵을 사고 로타리에서 생맥을 또 한잔먹고 기차표를 끊으러 버스타기를 시도했다. 한 젊은 친구에게 물으니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 마침 자기도 기차역에 아버지를 마중나간다고 한다. 같이 버스를 탔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한국의 경제를 칭찬하며 베트남이 이를 배워야한다고 한다. 이럴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수 밖에 없다.  안 배워야 할 것을 설명하기에는 여러 조건이 안 맞다. 대학 2학년이란다. 내가 아까들은 남북간의 갈등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 친구 대답이 한국 여배우들이 이쁘단다. 이럴때도 그냥 넘어가야 한다. 한 번은 다시 물을 수 있지만 몇 번해서 이해못하면 서먹해진다. 기차역 앞에서 내렸다.

 

8.

사이공가는 철도요금은 생각보다 많이 올랐다. 재일 빠른게 29시간 걸린다. 33시간짜리 41시간짜리 등등이다. 창문을 보면서 여행하려고 내일 낮에 출발하는 열차를 예매했다. 그리고 혁명박물관쪽으로 걸었다. 꽃시장을 한 번 둘어보았다. 베트남에 오토바이 택시가 몇 대나 될까? 거리를 걸으면 1분에 한 명꼴로 앞에서 헬로우, 하이하며 오토바이 타라 한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거나 손을 젓는것도 한 두 번이지 거절하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혁명박물관 근처 오페라 하우스 앞에 왔다. 웨딩드레스 두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 건물 위 테라스에서 1945년 8월 16일 베트남 인민위원회가 하노이를 접수했다는 사실을 선포했다한다. 오늘저녁 클레식 공연을 한다.

 

하노이 소재 베트남 혁명 박물관

 

9.

오토바이 운전수에게 길을 묻기도 겁난다. 한 운전수에게 물으니 바로 저쪽이란다. 옆에 있던 운전수가 돈 안받을테니 타란다. 이 친구 빙 한 바뀌 돌더니 내려주면서 들어갔다 나오면 좀 떨어져 있는 어디까지 가자고 한다. 결국 5천동을 주었다. 혁명박물관은 30여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구조였다.  19세기 프랑스 식민지 치하에서의 독립투쟁을 다른 초기 방들 베트남 전쟁 방, 그리고 최근의 발전상으로 방이 나뉘어저있었다. 몇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는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혁명의 승리를 선포하는 라디오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 큰 광장에서 환호 퍼레이드 모습, 소수민족의 여성게릴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0.

더운 지역에서 여행하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박물관을 나와 또 생맥두잔을 들이켰다. 여기서 호수까지는 갤러리 골목이다. 한 서점에 들어갔다. 북부 소수민족 지역인 사파의 얇은 사진집과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를 비디오로 보았던 남아있는 나날들 영문소설을 샀다. 지금 베트남은 2.3일인 베트남 공산당 창건 75주년 프랭카드와 앰블럼으로 도배가 되었다.  매년 이렇게 하는지,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 하여튼 한 갤러리에서는 75주년 포스터 전시회를 하고 있다.

 

11.

르완끼엠 호수에 도착했다. 벤치에 않아서 거북이 상을 바라보다가 성당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오늘이 일요일이다. 미사를 하고 있다. 마침 영성체 시간이다. 영성체는 예수의 피와 살의 상징인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의 시간이다... . 나도 어떤 계기로 카톨릭 영세를 받은지라 신부님이 나누어주는 500원 동전크기의 빵을 먹을 자격이 있다. 앞쪽의 건물내부경관도 둘러볼겸 나도 줄을 서서 빵 하나를 받아먹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분위기가 좋다.

 

12.

미사가 끝나고 나와서 식당 골목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피자작은것과 샐러드바접시, 주스한잔을 시켰다. 피자는 야체빵하나 나오는 수준이다. 그나마 샐러드바 부패가 먹을 만 했다. 나와서 하노이 구 시가지를 죽 걸어들어갔다. 한 피씨방에서 일기를 좀 올리고 10시쯤 나와서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가던중에 한 노점에서 한치인지 오징어인지 작은 거 한마리를 구워달라고 했다. 작은거 한마리에 1불이란다. 오전에 과일사다 지나친 기억이 있어 왠만하면 사려고 하는데 이 아줌마 끝까지 1불이란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마치 예전 악착같이 벌어 집안을 꾸리고 자식을 공부시켰던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를 보는 거 같다. 이 아줌마의 이를 악문 모습을 보며 또 한번 어떤 생존본능같은걸 느낀다. 결국 달라했다. 이 아줌마 거스름 돈 일부를 떼어먹으려 한다. 나도 물러설 수 없다. 아줌마 제대로 거스름 돈을 준다. 베트남 하노이는 나에게 힘들게 느껴진다. 그건 나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중국은 나름대로 준비도 조금 했고 무거운 책과 프린트도 여러권 가지고 다녔다.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은 달랑 가이드 북 하나 가지고 있다.  이곳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는 자세가 부족한 것이 사람들이 나를 단지 관광객 소비자로 보게 만드는 이유다.

 

13.

숙소를 찾았다. 잎에 싼 찰밥집을 갔다. 밥통을 긁어서 하나를 만들어 준다. 힘들땐 먹는게 최고다. 숙소에 돌아와 밥을 먹었다. 밥심이 생긴다. 내일은 1700여키로 남쪽으로 출발이다. 남쪽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

 

 

* 050130 (일) 여행 66일차

(잠) 그린호텔 욕실포함 싱글룸  10불 부가세 10%포함  13,050원    (174,000동)

(식사) 아침 국수어묵  375원 (5000동)

                 고기덮밥 750원 (10000동)

          점심 잎에싼 찰밥 300원 (4000동)

          저녁 야체셀러드, 치즈피자, 레몬주스, 부가세 4950원 (66000동)

                 잎에싼 찰밥 300원 (4000동)

(이동) 버스 185원 (2500동) 

          오토바이 375원 (5000동)

(입장) 호지민 박물관  375원 (5000동)

          베트남 혁명박물관 750원 (10000동)

(간식) 빵   185원 (2500동)         

          생맥주 한잔, 고기튀김안주  1875원 (25000동)

            생맥두잔, 베트남식 야체셀러드1650원 (22000동)

            한치한마리 1125원 (15000동)

(기타) 인터넷2시간 900원  (12000동)

           사파 사진집 1275원 (17000동)

           남아있는 나날들 영문소설 2925원 (39000동)

 ...................................................................... 총  31,350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2/04 23:16 2005/02/04 23:16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aibi/trackback/76

« Previous : 1 : ... 627 : 628 : 629 : 630 : 631 : 632 : 633 : 634 : 635 : ... 706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