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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소득의 분리에 반대한다.

웅얼거림님의 ["일 안해도 빵 먹을 권리 있다" - 한겨레] 에 관련된 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라는 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동의.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 없는 세상이라는 것도 동의.

부를 나누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

그렇지만, '노동과 소득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사실 '부를 나누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며, 특별히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인 사고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기업의 불우이웃돕기도 정확히 '노동과 소득이 분리'된 '부를 나누는 새로운 방법'이다.

'노동과 소득의 분리'가 '마을이나 종교 공동체의 시혜 대상에 머물렀던 빈민층'의 재탄생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도, 아무런 사회적 기여를 하지 않아도, 사회가 우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넌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먹고는 살아라. (저항하지 말고.)"

이것만큼 비참한 것도 없다.

 

노동과 소득이 분리되는 순간, 노동은 없어진다. 소득이 없는 노동은 노동이 아닌 것이 자본주의기 때문이다.  '노동과 소득의 분리'는 노동이 필요 없음을, 실업자가 쓸모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소득은 시혜에 불과하며 시혜는 강탈의 다른 얼굴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쓸모가 있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아니 각자의 쓸모를 서로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타자를 단지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건 가라타니 고진에게 얼마전에 배웠다.)

 

다시 말해, '임노동'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활동들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노동'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득은 정확히 그러한 노동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때의 노동은 임노동과는 다르며, 사회는 자본주의사회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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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어느 사회주의자의 선물 - BIC

비싸고 좋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싸고 좋은 것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이다.

'명품'을 만들어 내는 것, '명품'을 가려내는 눈을 갖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BIC

볼펜은 워낙에 안쓰니까 잘 모르겠지만,

라이터는 정말 좋았다.

라이터는 사는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잘 안사긴 했지만,

가끔 어디서 얻으면, 애지중지하며 가스가 다 닳을 때까지 쓰곤 했다.

 

재밌군. 이런 얘기를 가진 회사였다니.

'명품' 면도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면도기나 한 번 사봐야겠다.

 

글 전체 보기 : 어느 사회주의자의 선물 - BIC

글 내용 중 재밌었던 부분 :  

 

  • 마르셀 비크(Marcel Bich) 남작은...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 '인민 대중의 생활을 개선'시키기 위해 BIC을 만들어 낸 것이다.
  • 모든 BIC의 공통된 컨셉은 「가장 싼 값으로 팔기 위해 가장 싸게 만들기」이다.
  •  단순할 것, 꾸밈 없을 것, 정직할 것, 유효적절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구입할 수 있을 것, 휴대할 수 있을 것, 아무나 흉내낼 수 없을 것
  •  "나는 반영구적인 일회용!"
  •  메이 데이에는 <<정년 전 퇴직제 반대!>>라는 정치적 견해를 담은 광고 아닌 광고를 게재하기도 하고, 프랑스 전력공사의 동맹파업 때는 <<금일, 매우 중대한 정전이 있을 것>>이라는 라디오 광고를 집행
  •  생산수단의 사유폐지 및 사유화라는 사회주의 이념에 골몰한 그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도 그대로 옮겼다. 그가 죽은 1994년 당시 총매상고 5조 9천억프랑 가운데 순이익을 3억 7천만 프랑만 남기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차대조표를 남긴 게 그 증거!(프랑이 낯설면 그냥 원화로 생각해 보라. 6조원 어치 팔았는데 3억원만 남긴 셈! 믿겨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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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맞춤법과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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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기 면허증에 관한 웃긴 기사 두 개

[원동기 면허증이나 따볼까나?] 에 관련된 글.

 

초희님의 덧글을 보고, 원동기 면허증이 운전 면허증과 같은 정도의 '효력'을 인정받고 있는지를 찾아보기 위해서 잠깐 검색을 해봤다.

 

그런데 원하는 자료를 찾기는 어려웠다. 

이런 것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테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우선 대체 신분증을 사용하는 사람이 소수고,

그 중에서도 원동기 면허증 들고 다니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딱 한명이다.

(곧 그 분의 트랙백이 걸리겠죠. 그쵸?)

 

하지만 원동기 면허증이 '상당히' 유용하다는 증거가 되는 기사를 두 개 발견했다.

 

주운 원동기 면허증으로 `만능사기'

신용카드 두 개와 휴대폰을 개설하고 1000만원 이 훨씬 넘는 금액을 사용했단다.

효력이 있긴 있나보다. --;

 

대구 청소년도 외면한 ‘청소년증’

탈학교 청소년들이 청소년증이 싫어서 원동기 면허증을 갖고 다닌단다.

장하다. 역시 절실한 사람들은 해답을 발견하는 모양이다.

 

사실 청소년증이면 주민등록증 발급 나이 이전에는 주민등록증과 같은 효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증'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민간영역은 물론 공공기관에서도 많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소년증 자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라는 심각한 개인정보를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전자주민증 공청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 문제 때문에 주민등록증 발급 나이를 13세 정도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긴 성인인증 때문에 9세로 낮추자는 얘기도 있긴 했다(관련글 : 9세 어린이도 열손가락 지문을 찍어야 하나?). 난리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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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기 면허증이나 따볼까나?

[열 여덟이 되기 전에 여권 만들기 캠페인] 에 관련된 글.

 

원동기 면허증의 잠점

 

1. 만 16세 이상이면 딸 수 있다. (즉 주민등록증 발급 전에 딸 수 있다.)

2. 대체 신분증으로 충분하다. (운전면허증의 일종)

3. 부모의 동의가 필요없다. (여권의 경우에는 동의가 필요)

4. 따기가 쉽다. (연습 조금만 하면 아무나 딴다고 한다.)

5. 싸다. (전체 수수료 합산 27000원)

6. 오토바이 몰 수 있다.

7. 자동차는 몰 수 없다. 

 

여권과 원동기면허증 두 개면 완벽한 조합이다.

주민등록증이여 안녕이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똑같이 두 바퀴 달린 건데 뭐 크게  다르겠나.

근데 누구한테 오토바이를 빌려서 연습을 해본다지?

혹시 빌려주실 분?

 

근데 이걸로 캠페인은 무리겠지.

아 훤하다. "애들을 폭주족으로 만들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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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대추리 지키러 가요

다음주 금요일 3월 17일은 대추리에서 논갈이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또한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대추리로 소풍을 가기로 한 날이기도 하죠.

 

저도 그날만큼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갈 생각입니다.

사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생활자전거 소개'를 쓴 이유는 이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어서 였습니다.

지난 인권활동가대회 자전거방에서 자전거 구매조언과 도로연수, 자전거 여행을 약속한 바도 있구요.

 

물론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처음 자전거를 접하는 사람들이 '여행'으로 가기에는 약간 먼 거리입니다.

또 도로를 많이 달려야 하기 때문에 도로와 장거리 여행에 익숙한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또 그날 오전부터 일정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또 그날 날씨가 어떨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래서 포기할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시도해 보렵니다. 

사람을 모아보고, 의견을 모아보고, 상황을 봐가면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마지막에 생각해보렵니다.

 

평화와 인권을 지키러 가는 길에 자동차와 석유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저는 그렇게 가고 싶습니다.

열심히 패달질을 하면서 대추리의 땅과 바람을 느끼고 싶습니다.

따뜻한 봄과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같이 가시죠.

 


 

 

다음은 일단 제가 생각한 안입니다.

의견 많이 주세요.

계획은 참가자와 사정에 따라서 변경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함께 갈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꼭 덧글이나 메일로 미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출발시간 : 3월 17일 오전 8:00
  • 출발장소 : 여의도 한강 공원 마포대교 아래
  • 주요경로 : 여의도-석수-안양-의왕-수원-병점-오산-송탄-평택-대추분교
    • 자전거도로구간 : 여의도에서 안양천따라 석수역까지 약 20km
    • 도로구간 : 석수역에서 대추분교까지 약 70km
      • 석수역에서 수원까지 22km
      • 수원에서 평택까지 35km
      • 평택에서 대추분교까지 13km
  • 예상시간 : 주행 6시간(평균속력 15km), 휴식 및 점심 1시간.
  • 준비물 : 자전거, 간식, 헬멧, 장갑 등
  • 기타
    • 오래 방치돼 있던 자전거는 바퀴와 기어, 브레이크의 상태를 먼저 확인하셔야 합니다.
    • 처음 타시는 분들을 고려해서 처음에는 다소 돌아가더라도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 석수역에서부터는 전철 1호선과 코스가 거의 겹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 경우에 따라서 여러 개의 팀으로 나눠야 할 수도 있습니다.
    • 깃발이나 몸자보 같은 걸 달고 가면 더 좋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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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자전거 도로'에 이어

무화과님의 [서울의 자전거 도로] 에 관련된 글.

 

무화과님이 힘든 와중에도 이렇게 화답해주시니 또 가만있을 수가 없네요.  ^^

 

저는 자전거가 도로를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어지간하면 도로로 달리려고 하는 편입니다.

자전거가 혼자 일 때는 외롭고 불안하지만, 둘만 되도 서로 보호해주며 훨씬 편하게 달릴 수가 있어요.  셋만 되면 아무리 초보라 할지라도 맘편히 달릴 있고, 넷이 넘어가면 한 차선을 잡고 달려도 됩니다.

그래서 도로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다가 다른 자전거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다른 자전거에게 그런 반가운 자전거가 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도로를 달리죠.

 

현재의 대부분의 자전거도로는 정말 엉망입니다.

엉망인 이유는 자전거 안 타는 공무원들이 길을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차도를 줄이는 게 아니라 인도를 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천변 자전거도로는 그런면에서 예외입니다.

도심 한 가운데에서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길을 달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입니다.

또한 강의 아름다움 또한 빼먹을 수 없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면서 한강이 아름답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강이 백사장과 뻘과 갈대와 섬이 있는 강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자전거 타는 즐거움 중에 하나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무화과님의 글에 약간의 정보를 더 해보겠습니다.

 

1. 한강

한강 자전거 도로는 갈수록 확장되는 추세입니다. 얼마전에는 구행주대교를 자전거와 보행자 전용다리로 만든다는 기쁜 뉴스가 있었습니다. 각각의 다리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설명하기는 복잡합니다. 하지만, 제가 매일같이 넘어다니는 한강대교 역시 자전거로 건너기에는 인도로도 차도로도 안성맞춤이고 자전거 도로에서도 자전거를 끌고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건널 수 있는 얼마 안되는 다리라는 것만 추가하고 넘어가죠.

 

2. 안양천

안양천은 저는 거의 안 가봐서 모르겠구요.

 

3. 탄천

탄천은 도로의 질로는 아마 최고일 겁니다. 폭도 넓고 안내도 잘 돼 있고, 인도와의 구분도 되어 있고, 또 분당의 저 끝, 죽전 신갈에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원, 용인 등을 갈 때도 유용합니다.

 

4. 홍제천, 불광천

이 쪽 자전거 도로는 다소 불만 스러운 편입니다. 길도 좁고 울퉁불퉁하며, 사람과 자전거의 교통정리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홍제천 쪽으로는 홍제역 부근, 불광천 쪽으로는 응암역 부근까지 나 있는 건 본 거 같습니다.

 

5. 양재천

양재천은 탄천과 합류해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갑니다. 그래서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탄천도로로 조금만 가다보면 길이 나뉘어집니다. 거기서부터 양재동까지 길이 연결되고, 과천까지 연결한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네요. 강변은 가장 예쁘게 꾸며진 곳이기는 한데, 밤에는 자전거 통행을 금지한다는 다소 황당한 규정이 있었습니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6. 중랑천

중랑천 길은 서울 북동부에 사는 사람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가장 활용도가 큰 길이 아닐까 합니다. 의정부까지 길이 나 있지요. 도로도 넓고 생활권과의 연계도 좋습니다.

 

흠. 일단 여기까지인데요... 이런 건 정말 위키와 같은 협업 프로그램을 통해서 정보를 모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빨리 위키 테스트를 마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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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대추리 들에 서서 ‘국가’를 생각한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활동가가 3월 6일, 7일 대추리에서 보낸 이틀간의 경험을 정리한 글을 쓰셨네요. hrnet 메일링리스트로 돌리신 글을 퍼옵니다.
그날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대추리 들에 서서 ‘국가’를 생각한다.

평택 대추리에서 보낸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 이틀


3월 7일 아침 7시, 막 K-6 미군기지 위로 붉은 해가 솟았다. 옅은 서리 속에서도 쟁반만한 붉은 해, 대추리에서는 떠오르는 해도 지는 해도 유달리 붉고 크다.
아침 바람을 맞으며 들에 내려선다. 옅게 서리가 깔리고 지난 가을 추수 뒤로는 빈 들인 이 논바닥에서 물꼬를 손보는 농민을 만난다. 농사를 지을 채비를 하는 것이다. 시야가 닿는 곳 모두는 논이다. 들이다. 아침 들녘에는 냄새가 있다. 밭과는 다른 물기 배인 흙냄새가 바람에 실려 온다.
들은 아직 잠자고 있다. 햇발이 퍼져 햇살의 따사로움이 이 들에 내리쬐는 이른 봄 한낮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이다. 안개처럼. 들 가득히 내려앉았던 오리 떼가 인기척을 느끼고 비상한다. 이처럼 넓은 들이면 농민들이 흘린 벼 이삭들을 주워 먹는 것으로도 저 많은 오리 떼가 겨울을 충분히 날 수 있었을 것이다.
발끝은 벼 끄트머리에 자꾸 걸린다. 아직은 흙이 채 목지 않아 성에가 남아 있다. 논갈이를 하기에는 이른 철이다. 새가 깨어나듯이 수런수런 들도 깨어난다. 문인상 가는 길에 허수아비를 세우고 미군기지 확장 반대 구호들을 적은 헝겊 쪼가리들, 문인상 이곳은 절반도 되지 못한다. 안성천까지 걸으려면 1시간은 족할 것이다. 안성천 끝으로는 서해 바다가 넘실대겠지. 내가 걷는 이 벌판도 바닷물이 들어오던 갯벌이었을 것이다. 염기 머금은 땅에서만 자라는 칠색초, 나문재, 갈대만 자라는 버려진 갯벌, 그 갯벌을 오늘의 옥토로 만들기까지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의 노력을 잠시 생각한다.

버려진 갯벌, 옥토로 되기까지
기록에는 1943년에는 일본에 의해서 원대추리에 살던 농민들이 쫓겨났다. 오늘의 미군기지 그 터에 있던 농민들은 밀려났다. 해방 되고 다시 전쟁 중이던 1952년 미군은 아무런 통보도 없이 포크 레인으로 밀어붙였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무런 보상도 없이 쫓겨나 오늘의 대추리와 도두리 마을을 형성했다. 이들이 살 방법은 버려진 갯벌을 간척하는 일밖에 없었다. 어딜 가나 먹을 것 없어 굶주리던 전쟁 그 전후에 농민들은 버려진 갯벌을 정성껏 개척했다. 이 나라의 간척사가 그랬듯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량증산정책에 의해 강제로 바다를 메우는 간척사업, 1970년대 박정희식의 대대적인 간척사업을 뺀다면 농민들이 자구책으로 갯벌을 일구어 농토로 바꾸었다.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밀어내고, 돌을 골라내고, 개토를 하기를 몇 번씩, 새벽별 뜰 때 나가 저녁 별 뜰 때까지 어느 농민의 말마따나 “죽을 똥 살 똥” 다 싸면서 농토를 일군 것이다. 손은 갈라지고, 갈라진 손바닥에 피가 고이면서도 리어카 하나 변변히 없는 사정은 번한 것, 그들은 거의 맨 손으로 이 농토를 만들어냈다. 땅만 평평하게 한다고 작물이 자라는 것은 아니어서 보통 갯벌을 일군 땅에다 벼고, 보리고, 콩이고 심으면 마지 제초제를 맞은 것처럼 소금기-간기- 때문에 빨갛게 타들어 가 버린다. 거기에 바닷물은 안 되므로 저 멀리서부터 물을 끌어와야 했지 않겠는가. 그 모든 일에 좌절하지 않고 이 천만 평에 가까운 농토를 일구어냈고, 그 안에 미군기지로 사용하겠다며 강제 토지수용 절차를 밟고 있는 2백 8십만 평의 땅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전국 공통의 과정인데, 기껏 농민들이 버려진 갯벌을 피땀 흘려 개척해 놓고 나니까 땅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왜 남의 땅에 허락도 없이 농사를 짓고 있냐며 당장 땅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고, 급기야는 법의 이름으로 집달관을 앞세워 그 땅을 빼앗았다. 참다못한 농민들의 투쟁으로 가까스로 타협을 이루어 이 들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추리, 도두리 들판에는 유난히 부재지주가 많고, 그러므로 그들은 미련 없이 맨 먼저 국방부에 협의 매수하고 넘겨줄 수 있었고, 이것을 마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의매수에 응한 것이 대부분인 것처럼 정부에서 선전해대는 것이다.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은 그러기에 더 자부심이 있다. 바다를 메우고 갯벌을 일구어 만들어낸 옥토, 그 들에서 난 식량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고, 자식들 공부시켰다. 전국에서 가장 맛좋은 쌀이 이곳 쌀이라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러니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의 손은 단단할 수밖에, 그러니 이 농토는 목숨과도 같은 곳이다. 그 땅을 지키겠다는 농민들의 마음은 절절할 밖에. 그곳에서 나고, 그곳에서 땅을 일구고, 그곳에서 늙은 이곳 마을 주민들에게 보상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들이 사람이고, 사람이 들이 되고, 속 쓰린 가슴으로 들의 주인들이 우니 “들이 운다.”
K-6 미군기지에서는 소음이 커진다. 곧 전투기가 이륙하고, 아파치 헬기가 뜨고 내린다. 어느 것 하나 생명을 죽이는 연습이고 훈련이다. 이 아침, 들에서는 생명의 소리가 들리는데, 철조망 너머의 식수탑, 감시탑이 서 있는 미군기지에서는 생명을 빼앗는 죽음의 소리가 들린다. 그 죽음의 소리는 이제 법의 이름으로, 공권력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헌정한 이 들까지 확대될 것이었다. 이곳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이 몸을 던져 막지 않았다면 말이다.

겨우 10여명의 인권활동가들
문인상 앞에서 발길을 돌려 서둘러 마을로 돌아왔다. 그곳까지 걸어갔다 오는 데만도 1시간이 걸렸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오늘 상황을 알려달라고 쉴 새 없이 물어온다. 서울에서 울산에서 일이 있으면 알려달란다. 어제처럼 오늘도 경찰을 앞세우고 국방부 놈들이 대추분교를 집어먹겠다고 덤벼들 지 모를 일.
어제는 참 아찔했다. 우리는 기껏해야 3백도 안 되는데, 저들은 천명도 넘는다. 거기에 법의 권위를 앞세우고 있지 않은가. 오전 10시 이후부터는 다급한 상황이 이어졌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대추분교 정문을 막기로 했다. 대추분교도 이곳 농민들이 한푼 두푼 모으고, 서로의 힘을 모아서 세웠던 학교다. 이곳을 국방부가 현장 사무소로 쓰겠다고 접수하겠다는 것이고, 주민들과 범국민대책위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으니 법원의 인도명령을 받아서 그것을 집행하겠다고 들어오는 것이다. 국가가 지어준 학교가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세운 학교인데도 그들은 거침이 없다.
대추분교 정문과 학교 울타리 안쪽으로 트랙터를 비롯한 농기구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연행하면 전원 잡혀가겠다고 집회를 열고 있었다. 대추분교 정문이 뚫리면 그들은 대추리 주민들의 공동체를 지탱해주던 상징적인 장소를 거침없이 짓밟을 것이었다. 인권활동가들은 겨우 15명 정도, 우리는 쇠줄로 엮어놓은 정문 앞에 섰다. 무슨 힘으로 그들을 용역과 경찰을 막겠다는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곳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니까, 연행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심정으로 그 앞에 섰다. 몇은 쇠사슬로 몸을 감고 연좌했다. 전국 152명의 인권활동가 명의로 미군지기 확장 반대 선언을 했다. 얼굴을 서류로 가린 집달관을 앞세우고 용역과 경찰이 몰려왔다. 주민들이 소릴 지르며 항의했지만 주민들도 기세등당한 그들에게 위축이 된 듯 우리와 합류하지 않았다. 오로지 15명 정도 되는 인권활동가들이 정문에서 고립된 채 싸워야 했다.
먼저 한자로 집행이란 글자를 새긴 검은 복장의 집달리들이 나섰다. 주민 대표를 불러달란다. 서류를 보자 했지만, 묵묵부답, 여전히 서류로 얼굴을 가린 집달관으로 눈짓으로 지시한다. 그들은 법원의 결정 내용도, 인도명령서의 내용도 제시하지 않았다. 집달리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어 비키라고 하고, 비키지 않으니 쇠줄을 자를 심산으로 절단기를 동원한다. 몸으로 막는다. 어떻게 쇠줄의 한 가닥이 잘려 나갔다. 그래도 완강히 버티자 이번에는 경찰이다. 법원의 집행을 가로막는 공무집행 현행범이므로 3차 경고 후에 전원 체포하겠다고 메가폰을 들고 경찰 지휘자가 떠든다. 3차례의 경고가 끝나자 항의하는 우리를 한 사람씩 달려들어 사지를 들어 연행한다. 주위에 있던 주민들이 “네 놈들은 어느 나라 경찰이냐! 미국 놈들 경찰이냐!” 항의했지만 그들은 끄떡없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 연행되어 경찰 봉고차에 실렸다. 허탈하다. 이렇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 투쟁의 거점이었던 대추분교는 이렇게 짓밟힐 것 같았다. 그런데 1시간여가 지났어도 대추분교 정문은 뚫리지 않았다. 한 인권활동가가 정문을 묶은 쇠사슬 틈새로 팔을 집어넣어 버텼던 것, 저들은 어떻게든 이 활동가를 끌어내려 했다. 절단기를 동원해 정문의 철망을 뜯어냈지만, 결국은 그 활동가를 떼어내지 못했다. 문정현 신부가 정문 안에서 그 활동가와 손을 맞잡고 버텼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떨구고 하염없이 울어야 했다. 여기가 어딘데 저놈들에게 내어줄 수는 없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팔은 피가 통하지 않아 저려오고, 팔의 통증도 이곳만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는 일념 앞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도 모두 울었다. 전국의 동영상으로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이들도 울었다.
그 완강한 저항 앞에 저들은 물러났고, 연행되었던 19명의 인권활동가-그중에는 한겨레신문 기자도 있었다.-들은 한 시간여 만에 풀려났다. 현행범으로 체포한다고 호기 있게 덤비더니 격리 차원이었다나.

주민들이 누워 버리다
오후에 경찰은 정문 앞에 1001 기동대를 깔아놓더니 이번에는 논을 가로질러 학교 측면으로 두 차례나 공격해 왔다.
그렇지만 상황은 오전과는 딴판이었다. 인권활동가들이 지키던 정문 앞에는 동네 아주머니들-나이로야 할머니들이지만-이 먼저 주저앉았다. 우리가 세운 학굔데 우리가 지킨다, 저놈들은 자격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세금은 꼬박꼬박 걷어가고, 해준 게 뭐야, 백성 지키라고 경찰도 있고, 군대도 있는 거지, 백성 죽이라고 있는 거냐, 미국 놈들 앞잡이 노릇 그만해라, 아주머니들은 경찰들 앞에서 당당하게 주장했다.
인권활동가들 모두는 쇠사슬로 몸을 묶었다. 오전 투쟁의 승리가 있었으므로 결의는 드높았다. 인권활동가들은 그렇게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었고, 주민들과는 절절한 마음으로 서로를 묶었다. 오전에는 떨어졌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논을 가로질러 학교 측면을 경찰들이 공격하자 아주머니들이 길바닥에 누워버렸다. 나를 밟고 가라, 나를 죽이고 가라, 이놈들아 미국 놈들 전쟁기지 맹글어 줄라꼬 이 땅을 뺐냐, 이 날강도 같은 놈들아. 어떤 이는 야단을 치고, 항의하던 끝에 겨워서 울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워 버렸다. 경기남부의 노동자들, 학생들, 단체 회원들이 그들과 함께 했다. 차마 그들을 짓밟고 넘어서지는 못했던지 그들은 해가 지기도 전에 논길을 따라 철수했다.
그렇게 3월 6일 행정대집행 첫날을 이겨냈던 것이다. 선도투쟁으로 기꺼이 연행되고, 끝내 정문에서 팔을 낀 채로 저항했던 인권활동가들의 인기가 높아졌다. 촛불집회장은 승리감으로 넘실댔다. 자신감과 일체감이 절로 느껴지는 밤이었다.

전망 좋은 집을 수리하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3월 7일에는 저들의 공격이 없었다. 절반 정도는 멤버가 교체되어 다시 10여명이 되어 버린 인권활동가들은 인권단체 공동의 집을 수리하기로 했다. 대추리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2층 집이었다.
대추리 마을에는 지난 해 하반기 들면서부터 빈 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보상금 받고 떠나는 집들이 늘자 남은 주민들도 마음이 산란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필시 국방부 사람들이 시켜서 한 짓인지는 몰라도 나가면서 집을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살 생각도 못하게 엄처 파괴한다. 수도도 끊기고 전기도 끊고, 보일러도 파괴하고, 유리창은 유리창대로, 문은 문대로 파괴된 2층 집. 꽤나 돈 들여서 집은 집이었지만 바닥에는 깨진 유리가 즐비하고, 여기저기 가재도구가 널려 있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엄두가 나지 않던 집이었다.
우리는 1층은 포기하고, 2층만 수리해서 쓰기로 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치우기 시작하니까 어느새 집 꼴이 돌아왔다. 감탄할 지경이었다. 가구를 옮기고, 쓰레기를 분리 처리하고, 문짝을 떼다 달고, 옆집에서 물을 끌어다 청소를 했다. 전기가 연결되어 2층에 불이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팔짝팔짝 뛰었다. 그날 연장을 구하랴, 아메리카 타운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날라 오랴, 노인정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허락도 없이 끌어다가는 엄청 타고 돌아다녔다. 거기에 흰 모자까지 눌러쓰니까 동네 이장이라고 깔깔대고 웃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 먼지를 뒤집어쓰고 빈집 수리를 하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서 와서 밥 먹으라고 독촉이다. 밥 떨어진다고, 밥 먹고 하라고 일부터 와서 손을 잡아끈다.
결국 그날 집수리는 완전히 끝맺지는 못했다. 수도를 연결하고, 외부 침입자를 막기 위해서 문을 달아야 하는 일이 남았지만, 대체로 성공적으로 우리는 일을 끝냈다, 위대한 협동의 힘을 보인 하루였다. 저들이 파괴한 그 폐허 위에 우리는 생활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곳 농민들이 올해도 농사짓자며 일상의 생활을 계속 하는 것으로 저항하고 있듯이 우리도 그 폐허 위에 공동체의 일상생활을 건설할 것이었다. 저들은 늘 파괴하고, 철조망으로 분리하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의 저항은 삶과 연결되는 저항이다.

우리는 저항한다.
그 이틀 동안의 투쟁에서 우리는 위태로운 상태지만 헌법적 가치인 평화적 생존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저 생명의 땅이 미군의 세계침략지기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 이곳을 지키는 것은 농민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일이고, 세계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기초한 미군 재배치 계획을 저지하고, 파탄시키는 일이다.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미국이 이곳 평택에서 그 침략 야욕의 꼬리를 내려야 하고, 그래서 결국은 미군이 철수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물러설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국가는 국가라야 국가로 인정받는다. 백성의 생명, 평화를 지켜주어야 할 의무를 국가는 지고 있다. 국가의 목적은 인권이다. 그 목적을 위해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대표성을 위임받는다. 이 논리는 불온한 사상이 아니라, 이 나라의 정상배들이 그토록 입에 달고 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이고 원칙이다. 만약 국가가 그 목적을 등지고 국민을 억압한다면, 그래서 더 이상 법이 법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그 권력을 변경하는 것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정부는, 그 국가는 뒤집어야 하고, 권력을 변경해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 정치가들은 입에도 담지 않는 저항권의 원리다. 이 저항권의 원리는 자유민주주의 인권관의 근간이 되는 로크란 사람이 말이다. 어느 사회주의자의 말이 아니다.
지금 평택 대추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스스로 저항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회가 미군에게 평택 땅을 미군기지로 넘겨주는 법을 만들었고, 정부는 그 법을 집행한다. 주민들의 말마따나 지금까지 해준 것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고, 오로지 고통만 선사했던 그 국가가 급기야 삼권분립의 한 축인 법원마저 야간과 휴일에도 집행이 가능한 행정대집행을 허가한다.
내 나라의 백성들이 피땀 흘려 일군 땅을 그 땅의 주인인 농민들의 동의도 얻지 못한 채 법과 공권력으로 빼앗으려 한다. 가진 자에게는 철저하게 보장해주는 사유재산제 원칙도 여기서는 예외다. 왜? 이들 농민들은 힘도, 돈도 없으므로, 무시해도 되는 상대이므로….
그러나 우리는 본다. 인권과 평화의 꿈으로 일어나는 주민들, 이제 그들은 쉽게 통치되는 백성이 아니다. 법을 무서워하고 공권력을 두려워 떠는 무지랭이가 아니다. 그들은 삶 속에서 세계의 군사적 패권을 향하는 미국의 군사전략을 간파한다. 그들은 저 빈들을 논갈이하고 그곳에 벼를 심어 전국에서 가장 맛난 쌀을 생산하면서 미국에는 한없이 아부하는 집권자들의 간특한 속임수를 정확히 분석한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있다. 이번 대추리에서 지낸 이틀은 우리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저항의 땅, 그래서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인권적 가치를 지키는 그 일, 그 저항의 길에 분명히 선다. 인권의 원칙을 거스리는 국가를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꼭두각시 춤이나 추는 대한민국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와 국회와 사법부에 저항한다. 그것이 정의이므로, 그것이 인권이므로.

다시 대추리에 가면 미군기지 위로 붉은 해가 뜨고 지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지는 그 너른 들에 꼭 설 것이다. 그 들 앞에 서서 그 들이 우는 사연을 생각할 것이다. 그 들과 더불어 그 들의 주인인 그 곳 농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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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자전거 소개 - 최저가 전문자전거

1. [생활자전거 소개 - 들어가며]
2. [생활자전거 소개 - MTB 계열]
3. [생활자전거 소개 - 하이브리드 계열]
4. [생활자전거 소개 - 미니벨로 계열]
5. [생활자전거 소개 - 최저가 전문자전거]

4. 최저가 전문자전거들

일단 지금까지 크게 세가지로 나눠서 생활자전거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자전거에도 사이즈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너무 작거나 너무 큰 사람들의 경우는 지금까지의 모델이 무의미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대안을 소개합니다.


자전거의 사이즈는 크게 두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바퀴의 지름, 또 하나는 프레임(자전거 몸통)의 사이즈. 바퀴의 지름은 사이클이 27인치, MTB가 26인치가 표준이고 20인치 미만의 바퀴를 쓰는 자전거를 미니벨로라고 합니다. 바퀴의 크기는 꼭 사람의 크기와 관계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미니벨로라고 작은 사람만 타는 건 아니라는 거죠.

중요한 것은 프레임 사이즈입니다. 사실 몸에 꼭맞는 자전거를 구하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전문적으로는 키, 다리길이, 팔길이, 어께너비까지 고려해서 자전거 각 부분의 길이를 맞추기도 합니다. 궁금하면 여기에서  알아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기는 어렵구요. 가장 중요하게 다리길이에 프레임 사이즈를 맞추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대부분의 생활자전거는 프레임 사이즈가 16인치 한가지로 나옵니다. 다리길이, 제조회사, 프레임 구조 등에 따라 변수가 많이 있지만, 대체로 16인치는 좁게는 165cm~173cm, 넓게는 160cm~178cm 정도의 키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말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사이클은 조금 더 크게 나오는 편이고, 미니벨로는 조금 더 작게 나오는 편입니다.

작은 사람의 경우는 사실 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미니벨로 쪽으로 가면 어느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키가 178을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긴 안장대를 사서 보완을 해볼 수는 있지만, 오래 타시려면 사이즈에 맞는 전문자전거 쪽으로 넘어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자전거는 사이즈가 다양하게 나오거든요. 물론 가격은 더 올라갑니다. 값비싼 신체 사이즈를 가진 탓이지만, 뭐 가격만큼 좋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니까 꼭 억울할 건 없습니다.
여기서는 여러 사이즈가 나오는 전문자전거 중에서도 가격이 30만원 안쪽인 자전거를 소개할까합니다. 이런 애들은 전부 MTB입니다. MTB가 사이클이나 미니벨로 등에 비해 많이 팔리기 때문에 부품값이 저렴하거든요.


1. 얼라이트 300

제 자전거의 후속모델입니다. 제 꺼는 2004년형이죠. 제가 키가 커서 당시에 큰 사이즈가 나오는 가장 싼 자전거로 고른 것이 얘였습니다. 25만원이었죠. 작년까지도 최저가로 사면 25만원 정도에 살 수 있어서 꽤 요긴한 모델로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회사명이 KHS에서 FREE AGENT로 바뀌고, 이상하게도 37만원대로 가격이 형성돼 있네요. 물론 뚜렷하게 업그레이드 된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좀 심한 것 같습니다. 조만간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해봅니다. 13, 15, 17, 19인치가 나오고 다른 회사 제품에 비해서 다소 크게 나온다는 설이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지나치게 비싸서 추천할 수 없지만, 제 자전거라서 빼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2. 아웃룩

다이아몬드백사의 아웃룩 역시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실제로 타고다니는 사람도 많이 봤구요. 16인치와 18인치가 있네요. 가격은 26만원선이군요. 얼라이트 300의 가격이 제 정신차리기 전까지는 가장 무난한 모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3. 모하비 2.0
라레이사의 이 모델은 저로서는 아직 본 적이 없고, 이번에 인터넷 상에서 처음 발견한 모델입니다. 부품은 생활자전거에서 소개했던 알로빅스 500보다도 다소 떨어지는 것 같지만, 가격도 19만원이 안된다는 게 놀랍네요. 사이즈도 16인치와 18인치에 여성용16인치도 있다는 재밌습니다. 여성용이라는 건 별 건 아니고 프레임의 위쪽 튜브가 낮게 설계되어 있어서 초기에 타고 내리기가 편하다는 것입니다만, 나중에 익숙해지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평가가 이뤄지기를 기다려봐야 할 겁니다. 그런데 어지간하면 가격의 매력이 워낙 커서 인기를 끌지 않을까 싶습니다.

 

4. 어드밴스 

게리피셔는 위의 세 모델을 만드는 회사들에 비해서 좀 더 고가의 전문자전거를 많이 만드는 유명한 자전거 회사입니다. 그런면에서는 꽤 신뢰할만한 편인데요. 이렇게 낮은 가격의 제품은 처음 보네요. 32만원선. 못 봤지만 믿을만할거라고 봅니다. 사이즈는 16인치와 18인치가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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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자전거 소개 - 미니벨로 계열

1. [생활자전거 소개 - 들어가며]
2. [생활자전거 소개 - MTB 계열]
3. [생활자전거 소개 - 하이브리드 계열]
4. [생활자전거 소개 - 미니벨로 계열]
5. [생활자전거 소개 - 최저가 전문자전거]

 

 

3. 미니벨로 계열

2004년이 하이브리드의 돌풍으로 기억된다면, 2005년은 미니벨로의 돌풍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미니벨로는 20인치 이하의 작은 바퀴를 쓰는 자전거를 말합니다. 작은 자전거는 힘이 힘이 더 들고, 속도가 느리다는 편견이 많이 퍼져 있는데, 어차피 일상적인 속도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속도 위주로 만들어진 미니벨로는 무거운 유사MTB들 보다는 확실 빠르고 힘도 덜 듭니다.

 

작은 자전거라 하면, 흔히 접는 자전거를 많이 떠올립니다. 하지만 앞서도 얘기한 바 있지만, 자전거 몸통을 접을 수 있게 만드려면 불가피하게 무게가 증가합니다. 그래서 들고 다니려고 접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니면 자동차에 뒤에 싣고 다녀야 하는데 그럼 자전거를 타는 의미가 없죠.

 

미니벨로의 가장 큰 장점은 접는 기능보다는 무게와 부피면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시내버스에 싣는 것은 어차피 어렵지만, 지하철이나 택시에 어렵지 않게 실을 수 있다는 건 도시에서는 큰 장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주차도 편합니다. 예를들어 식당이나 가게를 갈 때도 가게 안 쪽에 세워놓기가 훨씬 수월하거든요.

 

1. 스왈로우  

DM사가 2005년 봄에 신제품 예고를 했을 때부터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10만원대라고는 믿기 힘든 12kg에 불과한 무게에 사이클의 수준의 크랭크를 달고 있는 미니벨로가 있었던 것이죠. 그게 스왈로우입니다.

작은 사람도 한 손에 들고 움직일 수 있을만큼의 가벼운 무게, 높은 기어비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속도는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물량이 부족해서 초기보다 오히려 나중에 가격이 상승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죠.

다만, 그 속도를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타는 자세가 앞으로 기울어져서 다소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장거리를 갈 때는 아무래도 하이브리드에 비해서 피로가 좀 빨리 오는 것 같습니다. 7단 기어는 일상적으로는 불만이 없지만, 급격한 경사에는 다소 불리한 점이 있습니다. 물론 급격한 경사를 끌고 올라가는 건 훨씬 편하겠지만요.

올해 특별히 업그레이드 된 건 없는 것 같지만, 그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가격은 12만원대.

 

2. 서브웨이

서브웨이는 스왈로우와 함께 출시되어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접히는 자전거들 중에서 아마도 거의 유일하게 추천을 받는 자전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왈로우와 몸통모양만 다르고 완전히 같은 부품들을 씁니다. 가격도 거의 같습니다. 접을 수 있게 만들면서 무게는 좀 더 나갑니다만 지나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 가격대에서 접히는 건 큰 장점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타는 자세가 아주 편하고 팔과 어께에 거의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더 큰 장점으로 꼽더군요. 속도는 스왈로우 못지 않게 나오구요.

올해 알톤에서 나온 콤포스타라는 자전거는 서브웨이와 유사해 보이는군요. 무게는 좀 더 가벼운 것 같은데, 두고 봐야겠네요.

 

3. 이스케이프

DM사는 스왈로우와 서브웨이로 미니벨로 계열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기대되는 새 미니벨로, 이스케이프를 발표했군요. 스왈로우와 유사한 컨셉인데, 프레임모양이 다르고 기어가 14단이 되어었더군요. 스왈로우의 7단은 언덕을 오를 때는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는데, 기대가 됩니다. 다만 아직 가격에 거품이 좀 있네요. 스왈로우보다 많이 비쌀 이유는 없어보이는데 말입니다. 가격은 스왈로우보다 2~3만원정도 비쌉니다만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스왈로우에 비해서 짐받이와 물받이가 없지만 안장과 스템은 더 좋아 진 듯 하니다. 올해의 인기모델이 될 듯하군요.

스마트에서 나온 MV2라는 미니벨로도 비슷한 개념에 14단 기어를 갖고 있네요. 가격도 스왈로우 수준이구요. 대체로 부품과 무게는 스왈로우와 유사합니다. 프레임은 이스케이프보다는 더 안정적이구요. 개인적으로는 좋은 물받이가 달려 있어서 맘에 듭니다.


이스케이프 프레임 절단 사고가 있었습니다. 비추합니다. 참고하세요.
이스케이프 등 프레임 절단 사고


4. 이지바이크

올해 제대로된 대중교통 연계용 자전거가 출현했습니다. 삼천리의 이지바이크.
제작년부터 이런 용도의 자전거로서 각광을 받던 스트라이다가 있었지만, 가격이 40만원대여서 영 부담이 됐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10kg의 무게에 스트라이다의 절반 가격도 안되는 이지바이크의 등장은 전혀 다른 유형의 자전거타기를 만들어 낼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한 번 끌고 나오면 자전거'만' 타야 한다는 것, 1시간 이상의 장거리 출퇴근은 쉽게 맘먹기 쉽지 않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사실이었죠. 하지만 이 이지바이크는 아주 작게 접히는데다가 무게마저 아주 가벼워서 지하철은 물론 버스에도 쉽게 싣을 수 있습니다. 즉 대중교통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죠.  자동차가 아니라 걷기를 대체하는 자전거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장거리나 오르막에는 역부족입니다. 전형적인 세컨드 자전거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겁니다. 얘를 먼저 타고 익숙해진 후에, 본격적인 자전거를 사는 거죠.
물론, 결함이 없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대단한 인기를 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최저가 16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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