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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어렵고..

버겁고..

지겹고..

슬슬 근질근질하고..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새 보물을 장만했다..

보물을 생각하면 흥에 겹지만..

나의 일상은 후달린다..

음..

해야만한다는 강박적인 상황이 다시 나를 짓누른다..

이렇게 전망좋은 곳에서 이런 느낌을 받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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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공모함다..

* 이 글은 새민중언론님의 [새 언론의 이름을 공모합니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내가 지은 이름 역사속에 평생 남는다..

이스크라 울지마라!!

모두 공모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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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와 병원에서..

이모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

어느 날 이모의 절친한 동네 친구 아주머니가 나한테 전화를 했다.

이모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죽을 뻔 했다고..

병원에 입원한지 3일쯤 되서야 전화가 왔다..

이모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 번호를 기억했다고..

병원에서 만난 이모는 창백하다..

그리고 여전히 마른 모습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밝게 반갑게 인사한다..

 

내게 이모는 얹혀 살았던 5년의 시간 보다 더 질긴 인연이 있다..

어렸을 적부터.. 친척동생들 부터 치닥꺼리까지..

이모가 살아온 세월에는 엄마와 내가 아빠 몰래 퍼날라야 했던

여러가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모에게 태어났어야 할 내가 잘못 태어 난 걸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엄마도 많이 닮았지만 이모를 난 훨 더 많이 닮았다..

그런 이모는 내게 그냥 형제 같은 사람이다..

음..그리보니 난 이모한테 반말을 쓴다..그러보니 그렇네..

 

어제는 이모가 있는 병원에 갔다.. 한 3개월은 더 있어야 한다는데..

병원비가 벌써 부터 어깨를 누르나 보다..

응급실로 왔을 떄 보험도 안되는 약을 썼다고 하면서도 낙관적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리곤 내 걱정을 한다..

"몸이 아파보니 자기 몸이 제일 소중하다"는 명언을 내게 남긴다..

바쁘더라도 적당히 일 잘라서 하라고..

웃고 넘기는데.. 난 적당히 할 것도 더 열심히 할 것도 없는 사람이오.. 라고..

 

아는 사람이 다 아는 신내림쟁이 이모가

쓰러지기 전에 두개 꿈을 꿨다고

나 보고 몸 조심하라고 귀뜸을..

 

이모랑 나랑 같이 가다가 갑자기 이모 이빨이 다 빠졌다는 거다..

그 다음 꿈은 이모가 지나가다가 똥통에 빠뎠다는 것

후자의 꿈 덕분에 전자의 꿈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는 게 신통방통한 울 이모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모의 강조점은 나쁜 꿈에 내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보니 어제 아침에 아빠도 이상한 꿈꿨다고 조심하라고 하더만..

귀가 얇은 나는 마음이 찔끔 해 진다..

혹.. 뭔일이 있을라나?

 

휴..

이모가 병원에 입원하니..친척동생이 소년가장이 돼 있었다.

대학등록금 대출금때문에 군대가기전에 휴학하고 돈을 벌고 있는 녀석.

어제 집으로 돌아와 녀석이랑 세금 영수증을 챙겼다..

저번처럼 가스가 끊기면 안되니까..

전화, 핸드폰, 두루넷, 도시가스, 케이블 요금 등..

40만원에 이르는 영수증을 보면서 녀석이 참 답답하겠다 싶었다..

근데 더 답답한 것은 녀석이 취미삼아 장만했던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가지고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파견으로 들어갔다는 거다.

예전에 여의도에 있을 떄 지지방문도 가고 그랬던 여의도 성모병원.

월급의 50%를 제끼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

녀석도 무지 아까워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나마 자리도 못구한다고..

돈이 필요해서 급하게 들어왔다고..

 

녀석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참많이 미안해 진다..

나 혼자 부모님 등처먹고 지내면서 고고하게 사는 동안

녀석은 말그대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석이 전하는 병원에서의 파견직의 삶이 참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정말 이런 상황이 나를 참 작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

 

간만에 나온 활동비 중 일부를 쟁여서 이모에게 주고..

소년 가장이 된 친척동생에서도 주고..  

하늘도 잿빛에.. 바람도 매섭고..

 

다들 꿈자리 안좋다 하니 몸 조심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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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현실의 버거움인가..

열사정국이라 불리던 그 계절에

사무실 앞에 놓인 빈소가 그리도 내 어깨를 짖눌렀었다.

침묵속에 현장 투쟁 결합도 못하면서 어떻게라도 협상을 해 줬으면

했던 바램이 내심 있었겠지.. 

 

비정규 투쟁단위들은 순회 투쟁을 떠나고..

민주노총은 지난 16일 열린 중앙집행위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재개키로 결정했다

떡하니 한국노총과 만나 정세와 전략을 논하고

오늘은 민주노동당에서 간부 회의를 하고..

 

총파업을 말하고

점거를 하고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항변들이

소리없는 영상으로만 비친다..모두가 버거워 지금 상황이 이리도 고요한가...

아님 대의원 대회 결정이 아니라 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수호 위원장이 차라리 계속 도발하지 말고 치고 나가 주길 바랬던 건가..

 

민주노총의 연이은 기자회견 이후 대영빌딩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대영빌딩 뒤 공원에서

점심시간을 틈타 사이좋게 족구하는 대영빌딩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스포츠가 관계 개선에는 짱이야 라고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을 되씹고 왔다..

 

나 또한 침묵한다..

누군가 판 벌리기를 기대하면서..

아님 침묵으로 묵인한다..

내가 못하더라도 누군가 하면 대리 만족이라도 하고 자기 위안이라도 할 심산인가 보다..

얼마나 살았다고 벌써 이러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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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를 만났다..

이제보면 언제 볼꼬.. 가난한 내 일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뜯어먹는 녀석이다.

중국에 있다가 향수병에 걸릴것 같아서 남편 두고 혼자 왔단다..

간만에 전화해서는 중국이라고 하더니

또 전화해서는 서울에 떨어졌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이렇게 만났으니.. 참 오래 만났다..

그리고 더 오래 만나겠지..

 

언제 어떻게 만나도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거다..

이 녀석은 또한 내가 가진 예수쟁이들의 불만 조차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하.. 나도 있다..

야탑의 한 까페.. 음.. 여기도 사실 분위기가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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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리엔테이션 가던날..

사실은 이미 사무실에 가있어야 할 상황이지만..

오늘은 오전에 일이 있어 일좀 보고 갈려고 하고 있다..

--; 사실 9시에 집에서 출발해야 했지만, 쓰던거 마자 쓴다고 앉아 있다가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다.

 

엄마가 이제 대학생이 됐다..

그 살아온 세월도 있는데 05학번이 되었다.. ^^*

놀랍운 건 지원했던 대학에 다 붙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택해서, 보육학과에 가셨다..

하하.. 손자 손주 생기면 직접 볼려고 택했다고 한다..

전문가가 될 테니 믿고 맡기란다..물론 유료로..

어느세월에 그런 세월 올런지.. ^^;

 

오늘 오리엔테이션을 가셨다..

어제 입학식에 갔는데 여간 혼자가서 어색하기도 했었나 보다..

다들 교수인 줄 알고 인사들 해대며 같이 온 학부모들은 '잘 부탁한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고..학생인데요.. 라고답하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랬단다..

"다른 가족들은 남편도 오고, 자식들도 꽃다발 들고 오고.." 했단다.. 물론 05 학번 새내기들 중에는 엄마 손 잡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술한잔 걸치고 늦게 집에 들어가는데 마중나와 있던 엄마가 날  보자마자 또 봇물처럼 말을 늘어 놓는다..음.. 오전에 갔다 갈껄 그랬나?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음.. 졸업식때는 꼭 가서 사진도 찍고, 캠도 빌려서 영상도 찍어 드려야 겠다..

 

아침부터 나의 의견을 묻는 말들이 쏟아진다..

체육복 가져 오라는데 뭐가져 가지? 가방은 뭘 가져 가지? 필기도구 가져오라는데 많이 가져가야 해? 토요일도 수업이 있니? 화장품좀 담을 가방 없을까? T셔츠 준다는데 쫄티 되면 어떻하지? 과일좀 가져 가면 안될까? 그냥 밤에 올까 얘들이 나땜에 부담스러워 할 것 같은데..

 

가방은 배낭 가방 챙겨주고, 필기도구는 볼펜 쟁여주고, 강의시간표는 새내기니까 정해저 있을 테니 오늘 가서 잘 들으라는 설명 해 주고, 과일 같은 거 챙겨가면 아줌마 티나니까 그냥 가져가지 말고 주는 것만 잘 챙겨 먹으라 일러주고 얘들한테 술마시면 안된다고 잔소리만 안하면, 아들자랑 남편 자랑만 하지 않으면 되니까 부담갖지 말고 얘들이랑 잘 놀다가 내일 오라고 의견을 덧붙였다..

 

대학생이 되기 위해 엄마는 빤딱이 옷을 벗고, 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긴 패딩 잠바를 입고 '니 목도리 하고 가면 안되?' 응 돼.. 잽싸게 목도리를 둘둘 감고 나타나서는 오빠 방에서 모자까지 챙겨서 간다..엄마의 뒷모습은 "정말, 신나서 죽겠다"는 기분 그 자체였다..

 

신나서 나가는 모습을 보니.. 참..미안하기도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렇다..

나도 저렇게 신나서 학교가던 때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검정고시라도 봐서 공부하고 싶다던 옛날 엄마가 생각나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는 30대 후반 40대 초반 이었던 거 같다..나 같은 자식에게 남편에게 묻혔던 엄마의 꿈이 너무 늦게 시기를 맞은 거 같아서 참 미안하다..그리고 늦었지만 중학교 부터 다시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 해 온 욕심도 대단하다..

 

2년이란 대학 기간이 그리 길진 않겠지만..

엄마가 아닌 인생을 살아온 여성으로 그리고 자신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나도 많이 도와 드려야 할텐데.. 걱정이네..

밖으로 내도는 내 일상이 영 도움이 안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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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동지 -펌글

어느 테입을 돌려 보다 보니 김진숙 동지의 교육장면이 나왔다. 1시간 넘게 진행되는 강연에 편집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마냥 보고 웃고, 눈물 짜고 하고 있었다. 그녀의 호소력과 절절함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원칙적 교육에 정말 감탄해 마지 않았는데.. 그날 강연에도 등장했던 조카에 대한 글이 있어서 긁어 왔다..


사회적 교섭과 조카 (펌, 김진숙동지의 글)


저는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으로 있는 김 진숙이라는 사람입니다.

 

다들 그러셨겠지만 저역시 지난 설,고향으로 가는 길이 편편치만은 않았습니다. 인천에 있는 조카는 집에 어려운 사정이 생겼는데 맏이로서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무력감때문인지,휴가가 하루밖에 없다는 둥,차가 많이 막힐거라는 둥 핑계를 대면서 안가려고 하기에,그래도 명절인데 안가면 엄마가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냐,너 안가면 나도 안갈란다, 어르고 달래서 겨우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인천 주안역에서 만나서 차를 타자마자 조카가 묻습니다.

 

"이모,그게 모야?"
"이거?김셋트.니네 엄마 줄려구"

저는 제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꾸러미를 궁금해 하는 줄 알고,한진동지들이 마련해준 선물셋트를 자랑스럽게 치켜보였습니다.

 

"아~니.저번에 내 친구가 테레비 보구 말해주든데 민노총이 막 싸웠대매.한쪽에선 뭘 하자그러구 한쪽에선 하지말자 그러구 신나두 뿌리구 그랬대매.그게 모냐구"

망할년.하구 많은 말 다 놔두고 오랜만에 만나서 가장 아픈데 부터 찌르다니..
저는 심사가 있는대로 꼬여서는, "야.너는 민노총이 아니라 민주노총이라구 멫뻔을 말해야 알아듣냐?민주노총!" 엉뚱한 트집을 잡습니다.

 

"암튼.그게 모냐구?모때매 그랬는데?"
"사회적 교섭"
"엉?그게 몬데?"

 

사회적 교섭이 뭔지도 모르는 제 조카는 비정규직 노동잡니다. "그러니까 니가 용역이야?"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했다가,"야 그런 건 파견이야" 그러면 또 그런가부다 하는,한마디로 지가 뭔지도 모르는 한심한 까대기 입니다. 커다란 마트에서 일하는데 얘는 그 마트의 직원이 아닙니다. 라면파트에서 온종일 라면에 치여서 살면서도 얘는 그 라면회사 직원도 아닙니다. 그 마트에서 일하고 밥먹고 똥싸면서 하루 열시간이 넘게 일하는데,사실은 사장이 누군지도 모르고 회사가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파견업체가 얘가 속한 회사입니다.

 

그 마트에서는 얘한테 일 시킬거 다 시키고,물건 진열이 조금만 더뎌도 땍땍거리고,늦게 밥 먹으러 간탓에 1분만 늦게 와도 주임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지키고 서 있으면서도,얘가 사소한 요구라도 할라치면 니네 회사에 가서 말하라는 아주 편리하기 짝이 없는 구조입니다. 월급 명세표도 없는 월급 80만원을 받으면서,언제부턴가 돈이 줄어들어서 나오길래 명세표를 볼 수 없냐 했더니 니네 사장한테 달라하더라는 쫑코 이후 이 아이는 아무것도 요구하지도 묻지도 않는답니다. 나중에 다른 친구들한테 들어보니 법이 바뀌어서 생리도 월차도 없어져서 그렇게 됐다 하더랍니다.

 

이 아이 아침 7시 30분 부터 저녁 10시 까지 일합니다. 추석때도 일하느라 추석 다음날 잠깐 집에 다녀왔고,이번 설에 9일을 쉬는 회사도 있다고 언론에선 떠듭디다만,얘는 그나마 1년이 넘은 짬밥 덕택에 설날 하루가 휴가 였습니다.

주 5일제를 누리는 세상에서,이 아이는 토요일 일요일이 더 바쁩니다. 지 동생이 장가를 가서 얘한테도 첫조카가 생겼는데,어깨가 아파서 조카 한번 안아주지도 못했습니다. 설날도 밥만 먹고는 온종일 퍼 자다가 내일 출근땜에 부시시하게 부은채로 밤에 갔습니다. 조카를 안지도 못하는 어깨로 박스를 들어 나르는 일을 하러...

 

온종일 박스 들어나르는 게 일이라 손가락이 퉁그러지고 어깨가 아파 팔을 들지도 못하면서도 산재 신청도 못하는 제 조카는 병신 입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노조도 못 만드는 제 조카는 쪼다 입니다. 촌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몇년간 다니던 직장이 망하고,서른 몇살의 여자를 받아주는 데가 있다는게 감지덕지 고마워서,말한마디 변변히 못하고 사는 제 조카는 천치입니다.

 

그래도 이 아이 저한테는 참 애틋한 아이입니다. 쌍둥이인 이 아이 태어났을 때.지금도 그렇지만 집이 참 많이 어려웠습니다. 이 아이 엄마인 우리 큰언니가 벌어 먹고 살았는데,쌍둥이 둘을 매달고는 길에서 장사를 못하니까 둘중 큰아이인 이 아이는 우리집에서 컸습니다.우리 엄마가 아픈 날이 많아서,아예 일어나시지도 못하는 날은 이 아이를 제가 업고 학교를 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중학교때.애기를 매는 띠도 없을때라 기저귀로 이 아이를 업고나면 왜 그렇게 흘러내리는지 궁뎅이에 아이를 치렁치렁 매달고 학교를 간 적이 몇번 있었는데,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다른 애들 다 등교한 학교에 맨 나중에 들어가서 정문옆 철봉틀에, 업고 간 기저귀로 이 아이 묶어놓고 교실로 뛰어 들어갔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저는 창문밖 철봉틀만 내다봤었지요.

쉬는 시간에도 다른 애들 눈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수업시간에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달려가보면,그래도 아는 얼굴 왔다고 입안에 모래를 가득 담고 벌쭉 벌쭉 웃던 아이입니다. 똥을 도대체 몇번이나 쌌던건지 온몸에 똥으로 매대기를 쳐놓고도 울지도 않던 그런 아이입니다. 이 아이가 커서 중학교에 다닐 때.수배중인 이모 잡는다고 경찰이(정복도 아니고 신분증 제시도 안했다니 아마도 짭새였겠죠)이 아이가 다니는 학교까지 와서 이것저것 묻고 따라다닐 때도,우리 이모는 나쁜 짓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는 그런 아이입니다.

 

그런 사실을 20년이 지난 작년에야 얘기를 했던..그런 아이입니다. 짜장면 한 그릇 못사준 이모한테 옷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고 명절 때는 노자하라고 용돈도 주고 그런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가...저 때문에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98년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질 때 제가 온몸으로 반대를 안해서 이 이이가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노사정위에서 파견법이 합의될 때 제가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아내지를 못해서 이 아이가...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노조가 있고,단결된 힘으로 단협에서 막아내면 솔직히 되지 않을까 그런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습니다. 제 조카는 전노투도 아니고 좌파도 아닙니다. 다만 민주노총이 어떤 합의를 하면,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그 내용에 따라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일 뿐입니다.

 

계약이 해지되면서 50이 넘은 나이에 길거리로 쫒겨난 부산대 청소 아지매 경비 아저씨들,하이닉스 매그나칩 동지들,현자 비정규직 동지들,대자 비정규직 동지들,기아자동차 사무계약직 동지들... 그분들을 만나면 죄스러움에...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냥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그분들을 만나면 자꾸 울게 됩니다.

 

저는 제가 민주노총이라는 게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운동한답시고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면서도,긍지와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늙은 아버지까지 안기부에 경찰에 시달리게 만들었으면서도,그까짓 상처쯤이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걸로 다 덮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는데...점점 안좋아지는 세상.지 잘난 맛에 살았던 그 잘나빠진 이모가 조카를 파견노동자로 만들어버린...아...저는 20년 동안 뭘 한걸까요. 제가 20년 동안 한건 뭐였을까요.

 

일요일도 없고,재고조사하는 날은 밤도 없는 제 조카앞에서 저는 이모가 열심히 싸워서 민주노총 사업장은 대부분 주40시간 이 됐다고 자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여금도 없고 체력단련비도 없고 효도수당도 없고 하다못해 월차도 없는 제 조카의 천만원도 안되는 연봉앞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심히 싸워서 그들의 성과금이 너의 1년 연봉을 넘는다는 자랑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민주노총의 투쟁이건 산하노조의 투쟁이건 비난이 난무할 때,조중동만 탓하기엔 참 옹색해져 버렸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역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노숙자, 하루 서른여섯명이 목숨을 끊는 자살행렬의 시작이었던 98년 노사정위 합의. 그에 대한 처절하고 뼈저린 참회없이는 민주노총의 어떤 정당하고 명분있는 투쟁도 고립무원일 뿐입니다.

사회적 교섭이,갈등의 당사자들이 모여서 대화로 문제를 풀자는 거라고 제딴에는 열심히 설명해주고 나니,조카가 묻습디다.

 

"대화가 돼? 대화루 해두 되는데 근데 이모.그 아저씬 왜 크레인까지 올라가서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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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천포인트의 단상

간만에 여의도에 가서 기름진 음식을 얻어 먹고, 세계사회 포럼에 갔다온 투기자본 감시센터 동지들의 보고 대회에 참석했다. 사진을 보고, 브라질 현지에서 구입했다는 그 동네 민중가요를 들으니 어찌나 부러웠다.

 

같이 밥 먹었던 동지가 하는 왈. "좋아 진게 없다" 였다. 증권쟁이들 오늘 1,000포인트도 찍었으니(잠시나마) 분위기도 좋은데 뭐 좀 떨어질 거 없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사실 어제 개인적인 일이 있어 늦게 사무실에 나갔는데 TV에서 '1,000 포인트를 찍었다'고 아나운서가 목에 핏대 세워 말을 이었다. "그래 찍었어?" 하고 왠지 모르게 무진장 기다린 기대가 이뤄진 것 같은 반가운 맘이 들었다가(왜 반가웠을까 ^^;) 에이 이럴줄 알았으면 소소하게라도 몇주 사놓을 껄 아는 아쉬움 까지.. ㅡㅜ

 

개인의 주책스러운 흥분을 가라 앉히고 "근데, 그게 뭐? 그게 무슨 영향이 있다는 거지"라는 맘이 들면서 괜히 그 아나운서의 예쁜 얼굴과 목소리에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아나운서가 미워졌던 거다.



 

음.. 귀가 얇아서리.. 암튼.. 25일 개장 5분만에 주가는 1000포인트를 찍고, 1000.26 포인트까지 올랐다. 지난 2000년 1월 이후 5년 45일 만이라고 한다.
 
그래서 문득 내가 그리 1,000포이트가 반가웠던 이유는, 길들여진 여론에 의해 스스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하나와 주가 상승이 반영하는 '경제 활성' 그리고 그 혜택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주가가 상승하면 그만큼 주가 거래도 늘고, 돌아 다니는 돈들도 늘고, 증권사 수입도 늘고, 개인 투자자의 주식도 오르니 증권업 종사자들에게 그나마 돈 굴러가는 소리에 나름대로 떨어진 떡고물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개인 투자자는 투자한 돈에 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이렇게 굴러 다니는 돈은 내수 경기를 풀어주는 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런데, 그게 별 영향이 없다는 생각에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 졌던 거다.

 

같이 저녁 먹던 동지 말이"예전 같으면 성과급 얘기도 나오고, 객장에 고객들 넘쳐나고 전화통에 불도 날만한데 1,000포인트가 되도 별로 달라지는게 없다"는 거다. 어차피 주가를 끄는 몇몇과 기관투자가들이나 돈을 챙기지 개미 전체가 주가 상승의 혜택을 받기 어렵다는 거였다. 그리고 오히려 지금 같은 활성장의 상황에서도 증권사들은 합병, 명예퇴직을 계속하며 인위적인 그림그리기를 계속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숨통이 트여지지 않는 다는 설명인거다.

 

그리보니 어제 또 하나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1월 경상수지 흑자 사상최대, 상품수지 흑자,여행수지 적자"라는 거다. 그들 계산법은 잘 몰라 뒤져보니 경상수지 [經常收支, balance on current account]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 소득수지, 자본이전 수지로 국제간의 거래에서 자본거래를 제외한 경상적 거래에 관한 수지 라고 한다. 그들 계산법에 따르면 현재 국내 경기는 수출을 많이 해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설명이겠지.

 

올 1월 중 경상수지가 월별 기준 역대 세 번째로 큰 38억 6620만 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수출이 호조인 상황이고 상품수지도 사상 최대 규모를 달했다고 한다. 해외여행자가 늘어 여행수지 적자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데 그러면 수출이 잘되 돈은 많고, 있는 사람들은 연휴끼고, 뭐끼고 해서 해외여행 다녔다는 것으로 쉽게 공식화 하며 설명해댔다.

 

갑자기 상실감이 밀려 오는데, 해외여행 못가서도 아니고,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산업역군으로 일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최근 노무현 정권 2주기 맞이 경제 상황 정리하면서 소위 보수언론들을 쭉 훑으며 상황 봤더니 '수출은 수 내수 경제는 낙제'라는 것이 주요 논맥일 만큼 숫자와 수치가 대변하지 않아도 한국이라는 곳은 세계 4위의 외화보유고를 자랑하는 돈을 움켜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피델리티니 같은 운용사들이 광고 해대며 시장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겠지.. 그런데 과연 이 모든 것은 누구의 주머니,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것이다.

 

일상적 구조조정의 난무,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실업자가 넘치는 고용구조의 왜곡과 신자유주의 정권 그리고 아생주의에 매몰된 기업과 은행들 때문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 뭔가 깔끔하지 않다. 계속 민중은 이렇게 가난하게, 그리고 이렇게 수치와 자본 이익과 상관없이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님, 내가 오바해서 생각하는 것이거나. 그래서 이런 수치들이 기록을 갱신할 때 마다 난 중간 문맥이 사라진 글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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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 생일 ^^*

동기 막내 영보가 생일이었다. 물론 마님이 더 어린 막내지만 ..

같은 범대 출신으로는 영보가 동기중 가장 어리다..

영보는 이날도 역시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날의 영보를 보면서 인간 신체의 질기고 독한 놀라움을 다시 느꼈다.

벌써 몇번째인가.. 점빼기 시도를 수차례 하고 있는 영보에게

이제 얼굴 점빼기는 방학 연례 행사가 된 거 같기도 했다..

 

 



간만에 망나니들 많이 모였다. 가장 덩치크고 재밌는 망나니는 여수에 있고,

유쾌하고 재밌는 망나니는 미처 연락하지 못했는데 역시 오지 않았다.

그외 실종됐던 북길이가 철도 시험 1차에 붙여 면접을 봤다는 결과를 가지고 왔고..

음.. 금욜에 결과 난다고 했고... 우린 북길의 합격을 열심히 응원해 줬다..

어쩌면 동기 내 가장 큰 돈줄이 될 수도 있는 북길이를 기대하며.. ^^*

 

오뚱과 안영, 마님은 그대로 였고..

아직도 다이어트에 열성인 송보가 뾰족턱이 되서 나타났다..

송보의 변화되는 모습은 솔직히 나에게는 한편의 부러움과

한편의 부담감을 주지만.. 어쨋든 본인 스스로의 다이어트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좋다고 하니.. 그것으로 됐다고 정리했다...

물론 떄로는 본인이 만족할 지라도 사회적으로

외모지상주의에 스스로가 상품이 되고, 여성성이라는 강요받는

현실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사실 뭐.. 난 이들을 만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그리고 삐라 뿌리고, 결혼식장 앞에서 집회하고, 주례사 단상을 점거한다는

농담이 통할 수 있는 녀석들이 있어서 좋기도 하고 ^^*

 

점을 빼고 나타난 영보는 흡사 **와 같은 모습으로

깊게 눌러쓴 모자와 흰 마스크로 얼굴 통째를 가리고 나타났다.

음.. 케익을 중점해 찍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영보가

본인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론 손으로도 가렸지만..


물론 이렇게 배치하는 것 맞지 않지만... 그냥 이렇게 해 놨다.. 우린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어색하게 앉아서 이렇게 박수치고 케익자르고 한다..여전히.. 똑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참.. 요번 영보 생일에는 후지 즉석 카메라를 선물로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짧은 2월 동안 결혼식 2번과 생일 한번으로 파산 직전에 몰려 있는 상황이지만..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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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연박사님 결혼식에서

2005년 2월 20일 보연 박사님이 결혼을 하셨다..

환형이랑 했는데 워낙 둘이야 공식, 공인 커플이여서 결혼식이 새삼 스러웠지..

어찌나 둘다 좋아하던지...

결혼한 한 선배가 말하기를..

동거를 하던 뭐를 하던 당사자들에게는 상관이 없는데

결혼식 만큼은 부모님과 가족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 주는 것이 제일 편하다고 하더라고..



보연 박사님 결혼식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간만에 옛날 사람들을 만나 이것 저것 수다도 떨고

오래 된 생활나누기도 했다..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지금의 살아가는 얘기들이 생소하지만..

그래도 사람사는 얘기 , 그리고 언니들의 얘기가 참 좋았다..

많이 안와서 좀 아쉬웠지만.. 

 

 

어찌나 잘 어울리는 한쌍인지.. 둘다 좋아라 눈을 뜨지 못한다..

결혼식에 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좀 얘기를 덧 붙이면,

사회자가 신랑 신부한테 주문하기 '부모님들에게 최대한 깜찍한

포즈로 부모님 사랑해요~ 를 하라'고 시켰다..

음하하.. 정말 장내가 떠나 갈듯 했지.. 다들 상상해 보시라~~

 

 

어정쩡 하긴 하지만 라식 수술을 한 자짱과 제일 젊어 보인다는 평을

받은 영보와 그리고 이제 정식 공무원 선생님이 된 선영언니와 박사님이

사진을 찍었다...

 

 

여기 드나드는 사람중에 이사람 기억하는 사람 있을랑가?

95제화 언니다.. 결혼후 어찌나 건강해 졌던지.. 정말 듬직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재밌고 유쾌하고.. 좋은 사람이다..

 

 

 

아.. 그리고 구청결혼식장에서 결혼을 했는데.. 피아노 칠 사람이 없어서..

긴급 공수된 제화 언니가 피아노를 쳤다..친정가서 연습했다고

어찌나 얘기를 하던지.. 언니는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냥 잘..

 

 

전체 결혼식장 참석자들이다.. 음.. 내 팔뚝 왜 이리 굵은 것이냐.. --;

못알아 볼까봐 설명을 덧 붙이면

라식 수술한 혜연 자짱, 옛날 시대강타 후보였던 민주 언니, 가운데는 2000해방이화

총짱이었던 지수언니, 예쁜 동기 영보, 96 선배 승개, 선생님된 96 선영

그리고 나다..

 

나이 들어 결혼식이 좋은 이유는 ..

흩어 졌던 사람들이 정말 오랫동안 쌓아놨던 생활 나누기를

한꺼벌에 몰아서 할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새삼 유쾌해 진다는 것

그런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 좋은 거 같다..

 

참... 그리고 현수아저씨 소식을 들었는데..

이것 저것 엮어서 안동 큰집에 가셨다고..

면회는 못가더라도 다들 편지들 한통 쓰게요..

 

- >안동시 안동 우체국사서함 171호 3010 조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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