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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들의 2005년 모습

올초  유난히 옛날 사람들.. 특히 끊겼던 연락들 해 오는데..

만나서 당황하는 것은 그들의 변하지 않은 모습이라..

아직 얼마 안되서 그러나..

그리고 좋은 것은..

그들과 그들의 얘기 나의 얘기 그리고 옛날 애기를 할 수 있다는 것. ..




새해 첫 연휴에는 내 졸업의 가장 큰 조력자 였던 97 동기 효진이를 만나..

올 봄 결혼 예정 소식을 듣고..

7일에는 단운위를 같이 했던 98녀석들 중 일부를 만나..

정족수가 차지 않아 모임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8일에는 00학번 새내기로 교투실천단 3호로 들어왔던가 하는 수련이 녀석을 만나..

좌충우돌 변하지 않은 모습에 정말 재밌었고..

 

옛날 사람들..

만나니 좋다..

 

그날 본 98들 모습이다..수정, 민정, 희정, 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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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주도 하이킹 2

9월 3일


다시 교회가서 씻고, 밥도 해 먹고, 짐 다시 챙겨서 큰엉해안경승지 ->정방폭포 -> 계속 이동하는데 너무 더운 거다. 정말 너무 더워서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온도가 얼마나 되나 기상센터에 물어봤더니 그날 제주도는 34도 란다..미쳤지 34도에 쉬지도 않고 그리 자전거를 달려 오니.. 사실 한 녀석은 이날 결국 탈진에서 트럭으로 먼져 이동했고, 남겨진 우린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더위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대장의 설득이 시작됐다. 코스에는 벗어나 있지만 주상절 리가 정말 멋진 곳이라는 설득이다. 대장이 정말 가자, 가자 라고 노래를 부르는 통인데.. 공동체의 규칙상 대장이 go!를 외치면 따르자는 사전 합의에 근거에 우리는 주상절리에 갔다.



그냥 짜집기 한 사진...

 

내려갈 때는 신났지.. 정말 신나게 내려가는 코스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주상절리 다음 코스 인데.. 신나게 내려갔으니 그만한 고개가 있는 거지..근데 그간 웬만한 경사로에서도 기어 조절을 통해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고 갔었는데 그 코스만은 정말 못 올라가겠는 거다.. 50도는 넘어 보이는 진짜로 엄청난 경사로 였다. 밀고 밀고 올라서 간신히 목적의 테디 베어에 도착했다. 물론 테디베어 뮤지엄에 들어가서 구경하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쳐다본다. 우리의 복장, 굉장히 여행자들 스러웠고 심지어 고온의 날씨에 자전거 굴리고 와서 냄새도 장난이 아니었던 게다. 뮤지엄에 있는 것이 민폐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우린 한인 혜택도 받아서 입장했다. 테디베어뮤지엄은 정말 무지무지 크고 예쁜 인형들이 사진 찍기 좋게 되어 있더라. 상당히 많은 민폐들을 끼치며 신나게 사진 찍고, 다시 나와서 마의 고지를 넘어 화순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그날 일정이 밀리고, 코스가 길어서 결국 해가 진 뒤에서도 우린 달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야맹증이 있는 지라 겁도 많이 났는데, 심지어 자전거에 조명등 설치도 안해 놓은 상태에다 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이 공사중인 곳이어서 인도가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았고 장애물도 엄청나게 많았다. 앞에 가는 메티스가 '언니 돌!' ' 언니 구멍' ' 언니 장애물!' 이런 식으로 힌트를 주면서 가드를 했고 오르막길 이후에는 계속 내리 막길이어서 마구 달려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물론 이날도 야영할 계획이었으나 상태들이 너무 안좋았던 관계로 민박을 하기로 했다.
 
정말 신기하지만 아침에 눈 떠서 김밥 도시락을 준비하고, 하루 종일 내내 자전거 타고 (거의 쉼없이 사진 몇장만 찍고 달렸는데..), 또 끼니 되면 끼니 챙겨들 먹고, 샤워 하고, 빨래들 해서 널고, 심지어는 밤늦게 까지 소주 걸치며 뒷풀이 하지만..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기상시간에 맞춰들 일어난다..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녀석들이 없다. 졸리다고 찡얼 거리는 녀석도 없다.. 왕어른신들도 꿋꿋하다.. 물론 뒷풀이때도 조는 한이 있어도 같이 끝까지 있는다.. 참..정말 죽이는 팀웍, 팀원들이었다..

 

9월 4일

이제 하이킹 일정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정도 들고, 자전거에 익숙해 지려고 하니 마지막 날이 온다. 심날은 타입캡슐을 묻는 날이다. 제주사랑도 그날은 개인 일을 뒤로 하고 우리와 함께 한다. 쿠키 빵을 엎어 놓은 것 처럼 생긴 산방산 지나서 송악산으로 가서 타입캡슐을 묻고.. 난 타입캡슐에 나에게 쓰는 편지와 당시의 느낌을 적은 쪽지와 사탕 그리고 당시 신었다가 쟁여 놓았던 양말을 넣었다. 다들 나에게 항의 많이 했지만 썩던지 어쩌던지 3년 뒤에 열어 보면 재밌을 것 같아서 우겨서 넣었다. 그리고 우린 사진 한 장을 찍고 3년 뒤에 다시 모여서 다시 여행하자는 약속을 했다.

 

이후 코스는 널럴하다. 추사적거지를 지나 소인국테마파크에 가서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려라~ 달려라~ 해서 오설록통과~ 분재예술원통과~금릉청소년수련장 통과~ 여섯시도 채 안된 시각에 우린 정말 쉽게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마에 고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던 제주사랑의 경고는 결국 뻥으로 드러났고, 우린 협재 해수욕장에서 그간 못 놀았던 물놀이를 하며 마지막 날의 뒷풀이를 세게 했다. 협재의 노을도 예뻣고, 함께 여행하면서 그을린 멤버들의 모습도 감동 적이었다. 하하..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모였을까 싶은..

 

그 날 저녁 우리는 하늘이 보이는 밖에서 고기를 한껏 구워 먹으며 이것 저것 많은 대화를 했다. 밤세.. 하하.. 밤세..그래도 아침은 온다...

 

9월 5일

다음날은 정말 코스대로 한림공원 ☞협재해수욕장 ☞애월전망대 ☞하귀 해단도로 ☞ 이호 해수욕장 ☞ 제주하이킹 랜드 로 왔다. 물론 중간에 애월 봉수대를 전망대로 착각하고 사진 찍고 놀고 했던 약간의 에피소드를 빼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하이킹 랜드, 출발점이 보이자 정말 가슴이 뻐근하고 아쉬움이 밀려 왔다.. 물론 실감도 안났다. 커피도 한잔 마시고, 자전거에서 실었던 짐 내리면서 반납하는데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다. 에이.. 기분이다. 다시 한번 타고 한바퀴 돌아보다가 반납했다.

 

물론 그날 우린 두 번째 공식 뒷풀이를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목욕탕도 다 같이 갔다. 어찌나 냄새나고 지저분하던지..우리가 떼거지로 움직이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처다 보는 상황이었다...노래방 알바스 소화기, 대장 실종 사건, 메티스의 술버리기 작전 등 제주도에서 잘나간다는 시내에서 술도 한잔하고..다들 뻗는 상황에서 알바스와 동동주가 술마시러 가자고 꼬득인다..음.. 갈까 말까 하다가.. .. 잘못 걸리면 녀석들에게 죽겠다 싶어서 방에 숨어서 결국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냈다. 

 

9월 6일

제주하이킹랜드에서 주최한 제 1회 제주국토대장정의 공식 일정은 5일로 마무리 됐다. 그렇지만 다들 시간의 여유가 있는지라 좀 더 제주도에서 놀기로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온 나와 샐리 언니 그리고 강원도에서 온 알바스는 모든 일행과 갈수 있는 최대한 같이 가기로 하고,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각자의 목적지로 가는 것으로 결정. 6일을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물론 한라산을 가고자 했으나 그 전날 과한 술로 인해 출입 시간을 놓쳤고, 우린 봉고차를 렌트해 제주도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못 가본 한라산도 차로 가고, 도깨비 길도 하고.. 뭐 .. 여기 저기 많이 다녔는데 기억이.. ^^;

 

팀웍이 빛을 발한 일이 있었다. 봉고차를 렌트해서 다니다가 운전을 하던 막걸리 녀석이 '어 사고 난 거 같은데요' 하는 거다. 다들 화들작 놀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앞서 고개를 넘어 오던 트럭이 단 몇초 차이로 우리 앞에서 길가의 돌에 부딪 힌 사고가 발생 한거다. 보조석에 있던 아주머니가 튕겨 나와 쓰러져 있고, 아저씨도 운전석에 끼어 있고 주변에는 트럭에 실었던 짐 때문에 난리가 나고.. 한 녀석이 나서서 다른 차량 소통을 돕고, 한 녀석은 보험사랑 119에 전화해서 견인차를 부르고, 의대생이었던 두 사람은 아저씨와 아줌마를 돌보고 착한 한 녀석은 그 둘을 보조하고, 나랑 메티스는 길거리에 쏟아진 짐들을 다시 트럭에 옮기는 일을 했다. 잠시 후 보험회사와 견인차 응급차가 왔고 상황은 마무리 됐다. 정말 놀라운 상황이었지만 긴급 사태를 신속하게 처리 한 이후 하이킹 멤버들 간의 멤버쉽은 더욱 강화 됐지.. 어찌나 뿌뜻하던지.. ^^.. 생각해 보면 당시 나만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참 계면쩍였는데.. 다들 멋지더라고..

 

돌아다니다 시간 늦어서 제주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간신히 부산 배시간에 맞췄다. 버스를 타고 배를 타러가면서도 계속 웃음이 난다. 제주도에 와서 단 한번도 여유롭게 이동해 본적이 없다. 간당간당 시간 맞춰 뛰고, 넘어지고, 팀을 나눠 역분하고 하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이동했던 거고 그때 부산 가는 배도 마찬가지 였다.

 

공식 일정은 여기 까지..

사진 찾고, 제주도에서 부산가는 동안 밤새 내내 여행 얘기 하고 물론 또 뒷풀이 하고.. 마피아 게임도 하고 놀다가 .. 부산에 가서는 또 부산 토박이들이 이것 저것 구경 시켜 줘서 영도 대교도 친구 흉내내서 건너 보고, 부산 영화제 한다는 거리도 가보고, 생선 많이 파는 시장도 가보고.. 부산 출신들이 내는 회도 찐하게 먹어보고.. 간신히 또 기차 시간에 맞췄다. 사실 부산역 사물함에 짐을 놓고 놀러 다닌 상황이었는데 간당하게 지하철을 타게 된거다. 음.. 뛰고 뛰고 언니는 먼져 뛰어가서 기차 잡고, 난 사물함에 가서 짐 꺼내 가기로 역분하고 계속 뛰었다..기차역에 갔더니 출발하겠단다.. 에구 놓치나 보다 생각하면서 뛰면서 층계를 내려오는 데 샐리언니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문이 닫히고 있었다. 물론 극적으로 또 닫힌 문을 열고 기차 타고 올라 왔지..뭐.. 긴장의 연속이지라.. 올라오는 기차에서는 물론 시체가 됐고..

 

하이킹을 마치고..

 

하이킹을 통해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배려 할 줄 알고, 배려할 생각을 하는 그런 가슴이 따뜻하고, 따뜻하게 살려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각박하게 싸우고, 농성하고, 푸념하다가 만난 이 사람들이 정말 감동스럽게 다가왔다. 운동하는 사람의 헌신성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저런 정서로 열심히 사는 구나 하는 일반의 느낌, 고스란히 체험한 상황이었다. 음.. 여행 좋았다. 그리고 그 때 사람들도 정말 좋고.. 이제 이런 여행에서 난 왕고가 되겠지만.. 다시 이런 기회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여행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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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주도 하이킹1

메모] 2003년 8월 31일. 제주도 하이킹을 준비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KGI파업은 극적으로 8월 말에 극적으로 마무리 됐고, 난 가벼운 맘으로 다 털고 휴가를 갔다올 수 있다. 더욱 기분 좋은 것은 휴가 때 덤으로 생긴 휴가 경비로 인해 기분이 더 좋아졌고..

 

100일에 이르는 협회 점거 투쟁과 50일에 가까운 KGI파업 투쟁 때문에 몸도 마음도 정말 엉망인 상황이었다. 무기력하고 나의 키 뿐만 아니라 내 맘이 정말 작았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꼈던 엉망진창의 여름이었다.

 

증권전산 수련회까지 갔다 오게 되서 결국 8월 31일 비행기 출발임에도 불구하고, 31일 새벽에야 짐을 챙길 수 있었다. 당시 협회로비를 점거 농성 중이었고, 사무실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알리안츠 건물에서 고객용 PC를 사용해서 신청하고, 결과를 설레게 기다렸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증권 간부들이 그랬겠지만 정말 여의도를 벗어나고 싶었다.


 

제주도 월드컵 경기장. 이날 제주도 날씨는 34도 였다. 저기 왼쪽 끝 세번째가 나다. 어찌나 다리가 튼실한지^^*



결국 하이킹을 다시 생각해 냈고, 여름휴가를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간다'는 생각에 이곳 저곳 하이킹 까페들을 기웃 거렸다. 그리고 극적으로 찾아낸 '제 1회 제주국토대장정'프로그램.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결과가 났는데도 파업이 안끝났다. 음.. 미안한 맘에 포기할까 했는데 8월 마지막 째 주에 극적으로 끝나는 상황이 된 거지. 음하하.. 가야 한다. 가서 다시 살아나서 돌아오자. 그렇게 해서 난 하이킹 같이 할 수 있게 됐다.

 

신청자가 많지 않아서 뭐 그리 설레게 기다릴 필요가 (^^;) 없었지만....암튼.. 31일 8시 50분에 비행기를 탔으니.. 얼마나 새벽부터 난리 였겠는가.. 왠만한건 제주도에서 구입한다는 생각으로 되는대로 챙겼다.

 

준비물 옷 3벌, 칫솔, 치약, 수건 2개(안장용1개 포함), 메모지, 카메라, 썬글라스, 모자, 속옷, 썬블럭 및 기타 화장품, 양말, 껌, 현금, 벌레약, 맨소레담, 휴지 등등 당시 비행기 가격은 77,060원 대항항공을 이용해서 갔다. 

 

제1기 제주국토대장정
공식 일정은 9월 1일부터 9월 5일 까지

 

계획상으로는 9/1) 제주하이킹랜드 라는 자전거 랜탈 장소를 출발해서 용두암 ☞ 용연 ☞탑동 ☞ 사라봉정복 ☞함덕해수욕장 ☞행원해안도로 ☞풍차마을 ☞세화 ☞종달해안도로 ☞성산항 ☞우도항 ☞서빈박사 해수욕장 ☞제주사랑 축구대회☞하고수동 해수욕장

 

9/2) 우도봉☞ 일출 ☞검밀레 동굴 ☞우도항 ☞ 성산항 ☞ 성산일출봉 정복 ☞섭지코지 ☞용눈이 오름 ☞다랑쉬 오름 ☞성읍민속마을 ☞표선해수욕장 ☞펭귄 수영대회

 

9/3) 큰언해안경승지☞ 정방폭포 ☞월드컵 경기장 ☞ 중문관광단지 ☞ 테디베어 뮤지엄 ☞주상절리, 쉬리언덕 ☞ 창천리 3거리 ☞안덕 계곡 ☞화순해수욕장

 

9/4) 산방산일대 ☞송악산 ☞ 타입갭슐 묻기 ☞대정 ☞추사적거지 ☞소인국테마파크 ☞오설록 박물관 ☞ 금릉석 식물원 ☞청소년 수련원

 

9/5) 한림공워 ☞협재해수욕장 ☞애월전망대 ☞하귀 해단도로 ☞ 이호 해수욕장 ☞ 제주하이킹 랜드 ☞ 끝

 

이것이 공식 일정이었다. 그렇지만 생각치 못한 변수로 2명은 거의 자전거를 처음 타 보는 실력, 나 또한 2002년 한번 여행을 다녀왔을 뿐 그리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하.. 그 외 기타 변수들 발생.. 흐흐.. 계획대로 될 턱이 없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제 1회 제주국토대장정'을 기획했던 제주사랑이 철인 3종 참가한 자신을 염두해서 동에서 서 쪽으로 하이킹 코스를 계획했던 것이다. 하하. 다녀 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오름까지 가는 그 험난하고 질긴 오르막길과 동에서 서쪽으로 돈다는 것의 의미를...

 

까페에서 신청해서 만난 사람들은 사전에 채팅을 통해 대장을 뽑고, 준비물을 체크하고 서로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친해 졌지만 난 바쁘다는 핑계로 달랑 한번 참여했기 때문에 어색 만빵인 상황이었다. 처음 보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낯설었다. 심지어 당시 노랑 커트 머리를 하고 내 모습에 다들 너무 쉽게 '랄라형!'으로 나를 정리했다. 물론 나의 말투가 공손하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다들 너무 쉽게 '남자 같아요' '오빠' '형' 이렇게 부르며 상당히 기어오르더라고.. 몇마디 좀 재밌게 건넸더니.. ^^; 결국 내내 사람들은 형, 어이 친구 등 동네 노는 형들 부르듯 날 불렀다..

 

8월 31일 제주공항 도착. 정말 무턱대고 비행기 타고온 내가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공황에는 내렸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미처 코스와 연락처를 챙기지 못해서 공항 PC방을 이용해 사람들의 연락처를 적고, 제주사랑에게 연락을 해서 먼져 와서 놀고 있는 일행들을 만났다.

 

31일은 그냥 놀았다. 주최측인 제주사랑 집에 가서 라면도 끓여 먹고 사진도 찍고.. 이영애 CF로 유명해진 미로 공원에서 공주놀이도 하고, 이름은 기억도 안나는 데 동네 공원 언덕에 올라가서 제주도의 일몰도 봤다. 사전 체력장으로 모두 뛰어서 가는 거였는데 난 4등정도 했다.. 당시 나는 하이킹 참가자들 중에서 나이 순으로는 서열 3위의 왕 고참측에 속했다.

대장, 회계 그리고 꼬마 대장, 그 외 후발로 참가하는 녀석들도 있고. 끼니는 해먹기로 했다. 그러니 당연히 코펠들이 기본짐으로 실어 진다. 1일 민박 나머지는 야영을 하기로 했다. 텐트는 중간에 넘겨 받는 걸로 얘기 하고 의기 투합하며 31일 출발을 위한 뒷풀이를 하고..

 

9월 1일

10시 출발 예정지, 하이킹랜드 앞. 난리 도 아니다. 처음 타는 녀석이 있어서 자전거가 맘대로 구르고.. 나도 간만에 타는 지라 어찌나 중심 잡기가 쉽지 않다.. 오호.. 이렇게 해서 어떻게 할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출발 하자마자 나타난 고개에서 우리 모두의 실력은 아주 솔직하게 드러났다. 한 명은 인도에서 떨어지는 낙마 사고, 기아 변속을 몰라서 올라가다 말고 후퇴하는 자전거.. 박박 기는 멤버가 있다면 술술 고개를 넘어가는 멤버들도 있었다.. 개인적인 일정으로 행사 주최자였던 제주사랑이 우리와 함께 같이 가지 못했는데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면서 정말 저들이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들었다고..

 

이날 우리의 목적은 우도에 가는 것. 마지막 배 시간(5시)에 맞추기 위해 페달을 열심히 밟아야 하는데 심지어 한 친구가 중도 포기를 선언해 버렸다. 어떻게 모인건데 누구를 버리고 갈 수 있으랴.. 그 친구를 밀고 끌고 난리 부르스를 치면서 갔다. 음 결국 2인을 선발대로 파견해서 표와 장을 미리 보게 하고 나머지들이 그 친구와 보조를 맞춰서 가는데 고개는 어찌난 계속 나오던지.. 대체의 장소는 생략하거나 멀리서 보고 계속 밟아 성산항 까지 갔다. 극적으로 도착한 성산항에는 마지막 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정말 탄성과 함성을 지르며 우린 사진 찍고 배를 타고 우도에 들어갔다.

 

우도에서도 역시 쉽지 않다. 숙소까지 가는 길은 고개, 고개, 고개 쉼도 없이 고개다.. 나도 체력하는 자부 하고 있었는데 정말 힘에 부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라.. 간신히 고개를 넘었는데 갈림길이 마구 나오는데 선두가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후미에 있던 녀석들도 사라진 거.. 아뿔사. 너무 고개 숙이고 페달 밟는데만 집중해서 엉뚱한 방향에 서 있었던 것..한참을 헤메고 나서야 일행을 만나서 숙소에 짐풀고 백사해수욕장에서 물장난을 하고 놀았다. 음.. 사진에 보면 이상하게 찍은 몇 장의 장난스런 사진이 있는데 그게 다 백사 해수욕장이었다. 당시 TV를 강타하던 다모 삼매경에 빠져 있느라 회의, 취침 너무 늦었음에도 우리는 일출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새벽 4시에 기가막히게 일어났다..

 

9월 2일

새벽 4시에 기상해 아침 밥 먹고, 점심용 김밥 만들어서 냉큼 챙기고 자전거를 세워두고 우도봉으로 올라갔다.. 음.. 해는 언제 뜨는 거야 졸며 깨며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은 좀 흐린 덕에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가 없었다. 포기할 때쯤 대장이 우도에 정말 경관 좋은데가 있다면서 대오를 이끌었다. 순진한 우리는 그냥 따라 갔는데 이게 왠일인가.. 길도 사라지고 벌판이 나오고..우하하.. 섬을 가로질러 가면서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해서 사진 몇장을 찍고..그런데 오는 길에  심지어 길도 잃고, 무덤을 밟고 다니고, 소똥 피해 다니고, 섬 경비대가 나가라고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암튼.. 풀 독이 마구 (당시에 난 반바지였기 땜시) 오르는 상황에서 대장에 대한 항의가 빗발쳤지만.. 대장은 묵묵히 '길이 나온다 안 하나..'하면서 앞으로 갔고.. 이런 대장의 특성은 주상절리 앞에서 다시 빛을 발했다..

 

암튼..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자전거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검밀레 동굴(모래가 검은 동굴이다)에서 놀다가 배타고 나왔다. 음.. 배를 타고 다시 성산항으로 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비가 오면 바퀴가 쉽게 미끄러지기 때문에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다행이 별일 없었지만 하얀 우비를 입고 한줄로 자전거를 타는 우리의 모습이란.. ^^* 성산일출봉에 도착.. 어찌나 높기도 하고 전경도 멋지고 돌도 많고 예술 같은 그림들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예술적으로 펼쳐진다..음.. 고소공포가 있는 나로써는 좋기도 좋지만 발에 힘이 풀려서 바들바들 떨면서 사진 찍고 그랬다. 대단한 것은 찍었던 사진기가 고장나는 바램에 일출봉에서의 개인 사진들이 하나도 없다는 거지.. 심지어 거기서 300원 짜리 고가의 요쿠르트를 사먹으며 찍은 사진도 ..

 

난 매일 아침 김밥을 만드는 것을 보조했다. 저 안에서 하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나다. 노랑머리 손수건..^^*

 

이날 하이킹이의 막둥이 2명이 합류했다. 그래서 총 멤버는 랄라, 샐리언니, 직이대장, 은빛바다 윤정, 메티스, 동종주, 막걸리, 제주사랑, 알바스, 한국인, 루시아 등이 됐다. 정말 특이하게 비슷하고 정의감에 넘치고 공동체 의식이 투철하고 희생정신도 대단 들 했다. 암튼 이들과의 질긴 인연으로 작년 연말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여서 서울에서 송년회도 하고, 얼굴고 보고 그랬다. 음.. 다들 어찌나 잘 자라고, 잘 살고 있던지.. ^^*

 

드라마 올인 찍은 섭지코지 언덕도 갔다 오고, 혜교 처럼은 아니어도 비슷하게 독사진도 찍어 보고 잠시 쉬는 동안 소나기도 맞고, 그 뒤에 상한 김밥먹고 체하기도 하고..사실 하이킹은 이 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개인일정으로 빠져 있었던 체력 짱!의 제주 사랑이 참여 멤버로 참여했고 용오름에 가서 단체 사진 찍어야 한다면서 하이킹 메버들을 마구 굴린 것이다. 달리고, 오르고, 내리고, 다시 씩씩거리고 올라가고.. 결국 우리는 제주도의 명물이라는 다랑쉬 오름은 포기하는 대신 용오름에 가서 사진도 찍고.. 그리고 우리는 이 사진을 기념 사진으로 액자 선물로 받았다.

 

돌아다니면서 재밌는 일도 많았다. 농협만 나오면 무조건 물뜨러 가고, 물 나오면 무조건 씻소, 틈만 나면 썬블럭 덕지 덕지 바르고.. 심지어 귤농장 아주머니가 공짜 귤도 얻어 먹고...

 

전날은 민박을 했지만, 이 날은 해수욕장에서 아영을 하기로 했다. 4시부터 이뤄진 강행군 덕분에 왕언니 샐리 언니는 도착하자마자 쓰러저 버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씻을 곳을 찾아 헤메였다. 다시 내륙을 통과해서 대천동사거리에서 다시 동쪽으로 쭉쭉 가다가 간신히 표선해수욕장의 야영지를 찾았지만 제주도의 야영지는 한 철이 끝나면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에 화장실 조차도 쓸수 가 없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어찌나 땀도 많이 흘려서 냄새도 장난 아닌데다가 그날 비도 많이 맞아서 영 상태도 않좋은데.. 다들 돈이 별로 없으니 민박하자는 말이 목까지 올라와도 간신히 자전거에 실고 온 텐트랑 코펠 등을 생각하며 야영지에 짐을 풀었다. 극적으로 대장이 근처 교회에서 씻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고, 우린 간신히 씻고 간신히 요리하고, 빠질 수 없는 한잔 쏘주 걸치고, 텐트에서 깊은 숙면에 돌입했다..

 

사실 난 그 때 일이 있어서 근처 PC방에 가서 일을 하고 왔는데 일부는 뻗고, 일부는 한잔 계속 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장이 모기향을 마구 피우면서 벌레들을 쫓고 있었다. 대장은 정성스레 모기향을 앞뒤로 피워 줬지만 사실 우리는 그 모기향 덕분에 질식해 죽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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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보니 아침은 늘 새아침이네..

끊긴 필름은 조각모음을 하고 있는데 영 신통치 않다.. 으이구..

슬프고.. 기분 더럽고...우울하고.. 빈속에 배가 고프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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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다짐

뿌뜻하게 보내려 했던 휴가는 결국 콧물을 한바가지 쏟아내며 골골 거리며 보냈다.

폐병쟁이가 내는 기침 소리를 낸다며 식구들이 '결핵?'을 의심했지만..

병원에 갈 것을 약속하며 다시 서울로 귀향했다.. 

가습기와 수많은 빨래들, 그리고 이모의 도움으로 인해 감기는 거의 다 나았다.

나이를 한살 먹는다는게 이렇게 온몸으로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감기는 연중행사 축에도 못꼈는데 이제는 겨울이면 수차례씩 오고가니..

 

일기장을 하나 사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수첩을 사서 다이어리로 정리했고..

개인적인 올해 목표와 주요 단어도 잡았고..

블로그의 성격 전환에 대해서도 결정했고.

나의 보물 1호인 VX2000 캠을 팔기로 결정도 했다..




"사회 경험 4년차 무엇이 변하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할 것인가..

포기 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의 젊은 삶에 대한 축배를..즐기면서 질기게! -

 

올해의 새해 핵심 단어로 '사람' '희망' '경제' '중국' '가족' '미디참'

 

뭐 매해 반복되기는 하지만 올해는 새롭게 경제와 중국 을 넣었다. 물론 미디참도 들어가 있고. 경제를 관점있게 잘 보고, 잘쓰자는 것. 그리고 중국은..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가장 친한 친구가 가 있는 관계로 열심히 관심있게 바라 보자는 것.. 조만간 친구한테 한번 크게 얹히러 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올해의 다짐 중에..

아침 운동 3회/1주  꼭 하자. / 삼시 새끼 꼭 밥으로 챙겨 먹자

종류 가리지 말고 책은 재밌게 부담없이 열심히 읽자

따뜻한 사람이 되자.. /말을 줄이자.. 뭐.. 기타 등등 이 있다..

 

반복되는 게 아니라 올해도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할 내 모습이기에 이것 저것 다짐도 해 보고 , 목표도 세워 봤다. 그리고 향후 텍스트와 글에 충실하기 위해서 영상 활동과 관련한 나의 개인적 관심을 좀 줄이고 , 악기를 배워 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캠코더를 팔고 다른 곳에 투자 아닌 투자를 해 볼 계획이다. 아마 올해는 '나이 서른에 우린'의 노래를 책임 질 수 있는 준비를 하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블로그도 좀 바꿔 볼까 한다.

모 페이지에 가보니 기자 옆에 개인 블로그를 링크 시켜놨던데..그렇게 됐을 경우 블로그에 드러난 나의 사생활은 어찌 되는 것인지.. 음.. 갑자기 위기감이 느껴지면서 .. 블로그를 사변적인 잡기장에서 색깔을 가진 저장창고, 생산 공장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 못된 성격 드러나지 않고, 바닦치는 무식함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

 

새해 첫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봤다. 어찌나 귀엽고 재밌고 즐겁게 봤는데.. 마법을 푸는데는 도대체 관심이 없지만 정말 낙천적이고, 소박하게 사랑할 줄 아는 소피가 참 맘에 들었다. 할머니가 되고도 가질 수 있는 그 긍정성. 음..여차 저차한 말들은 생략하고 나도 그런 긍정적인 맘과 자세를 늘 가질 수 있는 한 해로 만들 계획이다. '그런 거지 뭐'의 단정적이 말은 쓰지 않을 거다...희망을 갖고, 없다면 그 조건을 만드는 한 해로 만들어야 겠다..

 

새해 부터 우울한 소식들이 연일 방송에서 주변에서 들려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만드는 한 해를 위해 화이팅 하자!! 

 

그냥 끝내려 하다가 이것 저것 사진을 짜집기 해 봤다. 새해 맞이 동네 율동공원에서 식구들과 산책하면서 찍은 가족사진(난 사진 찍고 있음), 공원안에 있는 번지 점프대가 타워처럼 보여서 찍은 사진,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빠가 빚어준 우리집 왕만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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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크리스마스

를 보냈다. Happy~! Holiday! 다.

작년에는 당진에서 보내고 올해는 북길이네 집에서 보냈다.

깐가의 애절한 요구가 아니였다면 집밖에 한번도 나오지도 않고 자고, 술마시고, TV보고 .. 그렇게 또 연휴를 보냈을 것이다.

 

그래도 간만에 다 만나니 엮시나 재밌다..^^




 

이렇게 저렇게 보낸 크리스 마스 올해 사진이다.

24일 이것 저것 선물들을 사들고 북길이네 집에 모였다.

난 영등포 역에서 마님을 기달리다가 영등포 역앞 사진도 한장 찍고,

우람이는 자기와 같은 토실토실 케익을 만들어 오는 기특한 짓을 했고,

술취한 마님은 모든 남자가 다 자기를 좋아한다는 망언을 했고,

느끼쟁이 안영은 리마리오 흉내를 내 모두에게 수천만 기름을 선물했고..

여전히 귀여운 영보는 신문까지 스크랩해와 홍합탕을 했고...

여수에서 올라온 깐가는 원장이 자기만을 갈군다고 성토를 했고..  

간만에 만난 북길이는 여전했고, 

또한 간만에 만나는 임고 또한 유쾌하고 재밌었다..

안타깝게 싱가폴에 가 있는 오뚱과 큰 모임에만 나오는 브 만이 결석한 상태였지만..

모두가 모여서 술과 잠과 TV와 만담이 어우러진 크리스 마스를 보냈다.

 

간만에 동네 노는 형들이 동네 극장에서 '나비 효과' 영화를 시끄럽게 봤고..

27일 생일을 맞은 깐가의 깜짝 생일 파티도 해줬고..

고음 처리는 안되지만 득음을 위해 열심히 노래하는 베스킨라빈스 루돌프 머리띠도

우리와 함께 했다.

 

뭐.. 그래도 연휴 내내 집에서 술만 마시고 먹기만 했던 작년보다는 좀 발전적이다.

 

대부분 연인들이 보낸다는 날들을 같이 보내는 친구들이고, 왠만하면 주기적으로 만나고, 개별적 보다는 집단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다. '올해가 마지막이지 않겠냐' 싶었지만 우리들의 이런 놀이는 수년에 이르고 있다. 이들이 있어 적적하지 않은 연휴, 즐거운 연휴, 유쾌한 연휴가 됐다..다들 올해의 모습 처럼 밝고 명랑하길.. ^^

 

난 이들에게서 '랄라' 라는 이름이 적힌 빤스를 선물 받았다. 요란한 무늬라서 언제 어디에 맞춰 입어야 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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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처음으로 자전거 여행을 갔다

컴퓨를 보다보니 2002년 첫 여름 휴가 때 적었던 글이 있었다. 이것 저것 손 볼까 하다가 .. 그냥 올린다.. 언제나 그렇듯 여름 휴가 때가 되면 사람이 문제다. 그리고.. 내가 문제다..

 

참고로 그때 난 자전거를 탄지 일주일도 채 안된 왕 생짜 초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혼자가서 음.. 사진도 별로 못찍었다. 그리고 혼자 찍는 사진은 늘 이렇다.. 타이밍도 못맞추거나.. 어설프게 나오거나.. 

어쨋든 내 2002년의 모습과 내 알톤 자전거다.

 

2002년 8월 4일부터 7일까지
아주 짧은 첫 여름 휴가

준비물 : 현금, 썬글라스, 썬블럭, 손수건, 안장수건, 캡모자, 여유분 옷, 우비(나중에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지만 무지 무거운 우비를 준비했었다), 물통, 장갑, 시계, 비상약, 건전지

자전거는 영등포 기차역에서 화물로 강릉역으로 보냈다. 화물로 보내기 전에 자전거에 붙어 있는 조명등 및 기타의 물건들을 떼어내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없어지기 땜시. 당시 15만원에 구입한 앞 뒤 쇼파가 있는 알톤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여행객들이 나의 자전거와 혼자여행온 여자라는 사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모든 것에  어찌나들 놀라는지..



준비물을 담은 가방과 몸만 기차에 싣고 밤기차를 타고 강릉역으로 감. 가방은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좋다. 사전에 준비한 것은 자전거 여행 까페에 가서 코스 및 일정들을 체크하고, 정말 혼자 무작정 떠난 극기훈련이였다. 7번 국도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덤벼든 여행은 강릉역에서 날 맞은 비에 넘어지면서 시작됐다. 준비는 없다. 그냥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라은영이란 사람에 대한 자괴감에서 오는 절박함이 있었다.

 

8월 4일.
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갈 것만 결정했지 어떻게 강릉시내에서 7번국도를 탈것인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비를 맞으며 다시 전국 교통지도를 꺼내고 강릉시내의 조밀도를 보고, 7번국도를 찾는다. 출발은 양호하다. 무거운 우비는 자전거를 타자마자 간이 찜질방으로 변해버렸고, 비는 우비의 틈을 비집고 나를 적시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발, 멈춤, 코너 돌기 및 모든 것이 서툴렀다. 특히 무거운 짐은 자전거를 더욱 무겁게 했다.

 수차례의 무단횡단과 신호무시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손가락을 따라 도착한 7번 국도는 한적한 시골길과 같이 직선 길로 시작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거꾸로 올라온 하이킹 족을 만났고, 그들의 힘찬 응원이 여행내내 힘이 됐다.

 

강릉역 출발 ☞ 7번 국도 진입. 진입 30분도 채 되지 않아 심각하게 자전거가 빗길에 미끄러진다. 미끄러진 자전거가 도로로 미끄러 지고 자칫 교통사고가 날뻔했다. 덕분에 무거운 우비와 바지가 찢어지는 액땜을 겪었다. ☞ 정동진. 고 3때 수능 끝나고 성적이 나오기 전에 잠시 가출아닌 가출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 혼자 기차타고 왔던 정동진. 이미 2002년의 정동진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혹여 자전거 도둑맞을까 자전거와 함께 모래 바닷가를 가는 무모한 짓도 한번 하고 편의점에서 물도 사먹었다. 어찌나 사람들도 많고 여름 휴가때면 빠지지 않는 이른시간에 바닷가에서 유흥을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 헌화로 바다가 내옆에서 계속 파도를 친다. 특히 비가 오는 바닷가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였다 ☞ 다시 7번 로 돌아와서 동해시를 지나 묵호 ☞ 삼척 ☞ 맹방에서 1박을 한다.
 
사실 맹방에서 일박을 할 계획이 아니였으나 이미 날이 저문 상태에 빗길이고, 자잔거 등도 생각보다 무척 약했다. 특히 가로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야맹증이 있는 개인적 상황에서는 더욱 나가기가 어려웠다. 맹방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는 언제 호랑이가 나타날지 변태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공포속에서 찔끔찔금 한 상황이였기에 맹방에서 1박을 했다. 장소는 맹방 민박. 2만원. 맥주 1캔과 약간의 과자를 사서 맹방 바닷가에서 혼자 한잔하고 나의 기억하나를 바닷가에 묻고 왔다.

 

사전에 알았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 7번 국도를 타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강원도에는 무척이나 고개가 많다. 맹방에 이르는 곳까지의 해안도로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개에서는 자전거를 밀고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특히 공사중인 곳도 많고 국도도 역시 자동차 운전자들은 자전거를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확확 밀치고 가는 경우가 많다. 식사는 중간에 보인 휴게소 식당에서 하고, 볼일은 여기 저기 널린 화장실에서 보고, 이곳 저곳에서 물 사먹으며 정말 아픈곳 하나 없이 잘 왔다.

 

 

8월 5일

맹방에서 다시 아침을 맞고,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출발한다. 전날 무리하게 달려서 상당히 근육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어찌나 튼튼한 다리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미쳐 간과했던 어깨와 종아리 뒷쪽이 완전히 익어버리는 불상사를 제외하고는. 난 정말 건강한 사람임이 입증됐다. 철저히 썬블럭으로 커버하고 썬글라스와 수건을 정비하고 다시 출발한다. ☞계속 7번 국도를 타며 왕 고개들을 넘고 엄청난 활주로를 넘고 고가도로를 타고 ☞ 동해 휴게소 (강원도와 경상도 경계 고개에 있음)에서 잠시 쉼. 고가도로에서 다른 하이킹 여행족과 도보여행자를 만났다. 그들이 내게 다음의 코스가 어려움을 알려줬다. 까짓것 하고 오르는 고개는 정말 오를수도 없고 내려 갈수도 없고 자전거를 뉘여 놓고 쉴수도 없는 울고싶은 고개였다. ☞ 울진 발전소 근처에서 맥주 한캔도 까보고, 부둣가에서 놀고 ☞ 왕 바람 많이 부는 고개를 넘어 평해에 도착. 기냥 평범한 읍내 인데 전날과 같이 어둠의 상황에서 절망하기 보다 해질녁에 그냥 쉬어버린 상황이다. 저녁 먹는 식당에서 고개에서 만난 하이킹족을 다시 만남. 그들은 텐트를 싣고  여행중이기 때문에 강가에서 잔다고. 다음날을 위해 오이를 사서 여관 냉장고에 넣어두고 물도 얼렸다. 어찌나 고급스런 여관을 잡아서 1박을 함. 어찌나 고급스럽던지 다시는 여관에는 가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과 특히 혼자는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누군가에 부탁해서 찍었겠지.뒤는 동해바다다..

 

8월 7일

평해를 떠나 포항에 도착하는데 6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경상도 부터는 강원도와 완전 대비되는 완만한 길이 나오는 데 특히 평해 이후로는 정말로 완만한 시골길과 도로길이 번갈아 나온다. 특히 이날 부터는 비가 좀 심하게 내리는 상황이였고 자전거 수리도구를 하나도 챙겨오지 않은 상황에서 자전거 바퀴 바람이 빠지는 상황인지라 더 여행하기가 어려웠다. 일상의 도로에서 덤프 트럭은 주위 대상이다. 지나가면 엄청난 바람과 먼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비가오는 상황에서의 덤프트럭은 빗물로 물보라을 만들고 엄청난 빗물을 퍼붓고 가기 때문에 중심을 잘못 잡으면 그 바람에 자전거가 넘어지기도 한다. 결국 포항에 사는 후배 녀석의 신세를 지며 여행을 끝내기로 한다. 포항 주유소에서 전날에 만난 하이킹 족을 다시 만나서 쉬면서 옥수수 나눠 포항시내를 헤집어서 후배네 집으로 가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후기 ..

그냥 꿈 같다. 지나간 시간들. 혼자 되씹던 말들. 수천번을 되뇌었을 할수 있다는 나의 약속. 한고개 한고개를 넘으며 그리고 내려오며 나는 나를 시험하고 이겨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에게 과시하거나 자랑하기 위해 시작한 홀로여행이 아니다. 역시 너야, 대단해 라는 말들은 흘려라. 남들이 나에게 해주는 말들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나의 결정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에서 예의상 나오는 말일뿐이다.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부분이고 현상처럼 해낸 것이고 누구도 할수 있는 일이다.

 

자전거는 맛탱이가 갔다. 그럴만 하지. 그리 무리를 했으니. 이 여행을 통해 혼자 달릴지라도 언제나 나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느낌과 존재감 그리고 그들에 대한 내가 가진 의미를 알수 있었다. 독불장군과 같은 나란 사람은 원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란 감정자체를 느끼지 않으니... 표현하지도 않는다. 고민스럽게 찡얼거리며 강한척 어느 순간에 약한척. 척척하는 가식적 행위에 대한 불필요함을 느낀다.

난 단지 나 이다. 그냥 그 모습을 있으며 움직이면 되는 것이 세상의 한 부분인 나란 존재이다. 후후 연애나 찐하게 해서 누군가를 죽도록 좋아하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지만 난 죽도록 좋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의 내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너무 뻔하다. 욕심 부리지 말고 조급해 하지 말아야.. 주변에 모든 것에 ..

 버티고개에 자전거를 밀고 올라가던거. 활주로 끝에 나왔던 감동적인 내리막길. 억수같은 빗속에서 만난 하이커들. 모두가 힘을 나눠가는 모습. 모두의 까만 얼굴과 파이팅의 말들. S나 또한 그들에게.. 내 주변인들에게 힘을 주는, 나눠주는, 단 한줌의 정성도 나누는.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이 아닌 삶은, 세상은 그렇게 나눠가면서 살아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 이제 포항을 떠나 다시 성남으로 가야한다. 이제 나의 첫 휴가도 끝났다.

 

나의 그사람에게
분명 왜곡된 거다. 그리고 그 사람도 그것을 알 것이다. 서로간에 사랑이 아니라 익숙함인 것을. 분명한 것은 난 그 사람을 좋아하고 인정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잘못한 거다. 처음부터 너무 잘 맞아 떨어진 우연처럼 지금까지 온거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이 더 많은 해를 입었기에 나또한 이렇게 혼자 나를 되돌아 볼 수 밖에 없다, 이제 인생을 나누는 동지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그 사람에게. 무엇을 하든 서로에게 어떠한 사람이 생기든 간에.

 

여행을 끝내니 ...
손톱에 끼여있는 때. 고개. 햇볕. 소금에 절은 옷. 바다. 트럭이 선사한 빗물 세례. 바람. 다리의 멍. 2번이나 사고를 낼만큼 심하게 넘어진 상황. 내가 목격한 불륜의 현장. 까맣게 탄 팔과 다리. 힘내자. 할수 있다.

그리고 내가 깨우친 내가 가진 삶에 대한 집착. 살기 위해 달릴 수 밖에 없었던 첫날 밤. 오르막길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가지 밀어 부티는 나의 고집. 난 독한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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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신경질이 욱.욱.욱.욱..

엄마가 계속 찡얼찡얼 찡얼..

내 말투는 툭.툭.툭..

 

아침에 엄마한테 한 막말이 미안해서..

엄마가 그리 졸랐던 이메일과 블로그를 만들어 줬다.

음.. 진보넷에 만들려 하다가 일상사 들통날까봐 다시 네이버로 바꿔서 만들어 줬다..

좋으시단다..찡얼징얼하다가 갑자기 기분이 업되서 점심 준비하신단다..

 

못됐다. 무책임하다. 너는 너만안다. 자식잘못 키웠다. 너는왜 대학을 나왔냐.

나도 공부하고 싶었다. 남들 자식을 자기차끌고 와서 엄마 모시고 다니더만..

마지막 말은 "등록금 대줄것도 아니면서.."로 끝맺는다. 지겹도록 못이 박힌다.. 이게 다 내 죄려니.. 하고 듣고만 있는 것도 정말 기분 드러워서 못들어 먹겠다고 지른 한마디가 내내 걸리네.. 못되먹은거 맞다.. 

 

최근 고3인 울 엄마의 찡얼거림이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되면서 더 거세진다. 엄마가 대학에 갈수 있지. 맘에 드는 거 골라봐..내가 아는게 없으니까 너가 도와줘야지. 잘난 둘째 아들한테좀 도와달라고 해. 둘재아들 왈.. 난 지금의 교육제도를 반대하고, 나또한 그 제도의 희생자라 생각한다. 엄마가 하나의 티켓 따듯 자기만족적으로 그런 제도속에 들어가는 게 싫다..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시고 .. 엄마의 하소연은 나에게 쏟아진다... 

 

엄마가 학교를 다니기 까지 엄마와 이모 그리고 나를 제외한 극비의 007작전이 두어번 있었다. 공부하고 싶어했으니까.. 공부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니까.. 평소에 나도 보지 않는 아리랑 TV의 퀴즈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며 아는 단어 찾기가 취미이신 분이니.. 말끔히 학교생활 마치고 2005년 2월 16일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아마 생애 처음으로 받는 졸업장일 것이다..그래서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울 엄마의 삶이 서글프기도 하고..

 

불감지수 높아지면서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첫 타자는 가장 가까이에서 늘 즐기게 아침을 챙겨주는 이모와 아침을 못먹고 나가는 나의 상황 때문에 발생하고.. 너 뭐하고 다니냐고 묻는 말에 다시 한번 발생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후배에게도 한마디 날리고.. 오늘 엄마한테도 날리고.. 망나니다.. 마구 날리고 사니..

 

분명히 후회하는데.. 반성도 하는데.. 나아지는 기미 없이 계속 반복이다.. 반복.반복.. 빨리 다음주가 와서 휴가 모드에 빠져야 할 것 같다.. 지금의 고민은 휴가 후에도 회복되지 않고 계속 욱욱!! 하는 모드면 어쩔까 라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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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준비..

12월 마지막주 수요일 29일 부터 겨울 휴가에 들어간다.

겨울 휴가일 뿐만 아니라 예년과 다르게 집으로 들어가 차분하게 휴가를 보낸 생각이다.

이것 저것 챙겨 먹고, 이것 저것 못봤던 책도 보고..

 

휴가를 준비한다.. 헌책도 주문해서 집에 쟁여 놓고..

사람들에게 사전 광고도 철저히 한다.. 나 휴가거든요.. 나 그때 휴가가요.. 라고..

전화기는 사무실에 두고 갈 생각이다.. 하하.. .. 이건 오바인가??

 

여의도 공원에 처진 국보법 단식단들의 텐트를 보면서.. 돌아가는 버스가 지나치는 국회앞에 즐비한 플랭카드를 보면서.. 그 반대편에 즐비한 국보법 사수 콘테이너를 보면서 착찹하다.. 한번 기사로 다뤄야 하는데라는 것 이상으로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서.. 참.. 지나칠때마다 무기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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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츄리닝 바람

사무실에 아무리 편하게 와도 츄리닝은 입고 오는 경우 드문데..

오늘도 하루 왠 종일 츄리닝 차림이다.

일찍 끝내고 집에 가려 했건만 쉽게 발이 떨어질 만큼 일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다..

 

내장들이 난동을 부려 소화도 잘 되지 않네..

음.. 너무 우유를 많이 먹은 탓인지..

너무 커피를 많이 먹은 탓인지..

죽으로 만들어 버린 인절미를 먹은 탓인지..

잠이 부족한 탓인지..

 

어제는 긴급하게 연락 받은 우리증권 테입을 들고 츄리닝을 입고 다시 사무실로 왔다.

하루 종일 회의를 한 멤버들이 회의스럽게 술잔을 주고 받고 있었고,

적당한 사람들이 옹기종이 있는 곳에서 편집을 시작했다.

파업상황만 아니면 테입 안받았을 텐데.. 주말에 너무 무리한 관계로 넘 피곤한 상황이었던 게다..

 

파업 영상 받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짜집기 하고 해보다..기어이 새벽에는 눈물이 나더라고.. 사실 동지가 전화했을때 정말 부탁 받기 싫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좀 피해 볼까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받은 거였는데..

 

정말 순수하게 동지 관계 쌓아 가는 것도 아니고, 잘만든 것도 아니지만 만들었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 준대로 여론적으로 잘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생색내기 식으로 기능적으로 필요할때 도구처럼 활용하는 그런 내 존재 인것 같아서 카메라를 팔고 영상과 관련한 활동을 접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그리고 이제 정말 몸이 축나서 밤세우기도, 내 몸 쪼개가면서 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편집도 마찬가지 였는데..

 

미안한 맘 하나는 꼬깃 꼬깃 신문지에 싸인 테입에 라은영 동지 고맙습니다 라는 글을 보면서.. 파업이 노동자 학교라 하더니, 그리 라부장, 라부장 이렇게 부르던 동지가 나에게 이젠 서스름 없이 동지라 하네..한편에 맘도 뻐근해 지고..뺑이치려 했던 맘도 미안해 졌다.. 서둘러 사무실에 와서 술먹자는 사람들 뿌리치고 편집을 시작하는데..

 

곳곳에서 그들의 웃음이, 투쟁의 구호가, 그리고 아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면서 예날 생각이 많이 났다. 증권노조 역사 관련한 영상을 급하게 만들던 중에 인터뷰를 했던 여성동지가 주말에 삭발을 했다. 삭발이나 단식결의는 늘 사람 맘을 쪼그라 들게 하는데.. 삭발하는 그동지 주말에 돌잔치 끝내고 와서 삭발을 했다. 고졸하고 17년 동안 다닌 회사. 약해지지 말자고, 우리 모두 독해지자고 한 삭발입니다. 오늘 난 눈물 만큼 황영기에게 피눈물 나게 해 줍시다.. 라고 다부지게 말하는 모습에 .. 뺑이치려 했던 내 모습이 비껴 영 눈물이 많이 났다.

 

하루종일 피곤이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쌓이는 일에 슬슬 신경질이 난다. 부담없게 생각했던 알티비가 날 누르기 시작하고 맛있게 먹으려 했던 인절미가 죽이 되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샤워를 못하고 아침을 맞아서 찝찝하고, 잠못자서 피곤하고..

 

파업대오가 영상을 보고 싶단다.. 3개 영상으로 나눠 만들었는데, 하나로 만들어 달란다.. "그건 도저히 역부족 입니다"라고 말하고 혹시나 해볼까 해서 컴을 켰는데 컴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행이다.. 어제 아무일 없어서... 숨을 내리고.. 어쨋든 우리증권 동지들이 와서 영상을 받아간다.. 서부역 방향을 찾다가 나보고 길건너 오라 하고, 기다리라 하고 주문이 많다. 다시 짜증이 확 하는데 차가 도착했다..

 

츄리닝 바지에 겨울 단체 복을 입고 차 창문을 내린다.. 정말 착하게 생긴 3사람이 얼굴을 내밀면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한다.. 파업대오 한테 간다고.. 고맙다고 다시 인사한다..

 

다시 미안해 졌다.. 뺑이치고, 신경질 내고, 욱! 욱! 튕기고 그러고 있었는데 참 열심히 사람들한테 참 내가 몹쓸 짓 하는 나쁜 사람이구나 싶었다.. 하루 종일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해 지면서 정말 쪼그라 드는 하루로 마감하고 있다..

 

지금도 추가적으로 있을 일정을 기다리며..

 

어제도 그랬다. 미디참에서의 기사와 관련한 공개적 논쟁이 이렇게 까지 붙은 적이 있었을까 싶은, 그렇게 민감하고 중요하다 생각하면 절충해서라도 내야 한다고 주장해야지 왜 원본 수정 불가, 모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모두를 심판대에 세우냐 라고 윽박 지르듯 말을 했다. 그래 민감한 주장이고 충분히 이해되는 문제제기면 쉽게 절충하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모습으로 강단지게 보여줬다. 그래서 섭섭했고, 그래서 답답했다. 과연 그 동지에게 하루종일 제안하고, 함께 논의하고 있는 우리는 뭐였을까. 차라리 정치 토론을 해서 하반기 정세에서의 집중 방점으로 잡고 기획논의로 넘겼어야 하는 건가. 기사는 기자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고서는 100% 등록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밀어 붙여야 하는 건가..

 

내안의 관료주의인가.. 편집장이 마구잡이로 "등록 안됨. 삭제다"라고 주장하지 않고,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진보넷의 장점이고, 강점이다 라고 얘기한 나도 참 무색해 졌다.

 

결론은 없다. 그냥 그런 상황만이 남았다. 어제 같이 술을 먹지 않아서 내게 결론이 없는건지, 아니면 내안의 관료주의와 그 동지와 다른 정치적 판단에 의해 그런건지 결과를 알수가 없다.

 

만성적 수면 부족.. 찌들어서.. 내몸만 생각하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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