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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만 한다..

집에 와서 기사를 쓰려고 노트북도 쟁여 왔건만 ..

계속 딴짓만 하고 있다. 옛날 생각하며 사진도 정리하고, 정리 못했던 것을 하나 둘 씩 올려 놓고..

이모가 보일러를 켜 놓고 나간 덕분에 집이 찜질방이 되어 있다.

오늘 .. 발딛 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운 이 바닥에 나의 허리를 완죤히 지저 버려야 겠다..^^:

 

임용고사 끝난 녀석들을 어제 좀 늦게 만났다.

고시인지 고사인지 다른 학번들은 다들 척척하니 잘도 붙더만 울 동기들은 참 쉽게 풀리지 않는다..

바라보기 안타깝고, 그냥 지나치기에도 참 쉽지 않은 녀석들이다..

 

전교조 가서 꼭 활동하겠다는 포부들을 밝히지만, 난 교사가 가지는 사회적 계층성으로 인한 한계가 있으니 지역활동이나 공장현장에서 부터 같이 시작하자고 말했다. 이제 이 말도 소용 없고 서로의 갈길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미 서로의 그런 길을 인정하고 알아서들 간다. 단지 때론 필요할 때 그리고 과거의 정으로 끊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것을 초월해 그냥 인간적 관계로 유지되어 간다. 이미 교사를 하겠다는 것은 교육 운동을 하겠다는 한 맥이지만, 난 전교조 활동이나 교사 운동을 말하는 내 선배나 동기들이 적당한 자기 밥줄과 사회적으로 안정적으로 자기 지위를 잡고 취미활동같은 운동을 하겠다는 것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헌신적으로 전교조를 세워온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교육운동을 비하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사범대를 나온 나의 판단이 그렇다는 거다.

 

민주노총 총파업을 보내고, 철도의 밤을 보내고 그리고 널럴한 월요일을 보내면서 이것 저것 생각이 많아진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을 했다. 블로그에 내글 적듯, 꼬마게시판에 주저리 늘어놓듯 기사를 쓰면 안되는 다는 것을 뼈져리게 배웠고, 단어 선택도 신중하게 해야 하고 특히 설렁설렁 넘기는 단점을 넘어 내가 쓴 글에 대해 책임지고 재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소 챙피하고 아프지만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투본 회의 참관 투쟁의 경우는 내가 들고 싶은 손을 정확히 들었으나 뒷심 부족으로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못했고 심지어 민주노총의 투본 결과를 담아 후속 정리를 못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였고, 이미 내가 그것을 썻어야 하는데라고 느낀것은 이미 12월이 넘어 서였다.

 

철도 파업에 배치되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파업 가부와 상관없이 실상황으로 보도 한다. 그리고 반드시 마무리 기사를 쓴다'였다. 변수들이 많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은 판단들이 난무하고, 여러 평가들이 이어지고, 가진 정보가 틀려 지거나 내가 가진 정보를 확신할 수 조차 없어졌었다. 파업에 대한 시기성은 추운 새벽을 넘겨서 철도청의 최종안을 받으면서 '잠정안 수용'으로 완전히 기울어 졌다. 평가다 성과다 말이 없이 마지막 복귀 지침에 그 흔한 박수 조차 없었다. 현장에 서 있는 나는 확대쟁대위의 투표 결과와 부곡 현장 분위기 속에 갈팡질팡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인가 무엇이 현장의 판단이고 분위기 여야 하는가에 대해 나는 남겨진 조합 간부들, 그들에 대한 조직적 자신감 없음으로 결정 지었다. 그만큼 준비가 덜되 있기도 했고.

 

마지막 결국 밤을 세고 집에 오는 길에 마무리 정리하고 자야, 사람들이 기사를 보겠구나 싶어 욕심부려 정리한 게 화근이 됐다. 지적도 받았고, 정리도 했다. 그렇지만 그 정리된 상황을 모르고 본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기사를 봤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참 많이 아찔해 졌다. 아. 이런 거구나. 미디참이라는 곳이, 인터넷 매체라는 것이 이런 곳이구나를 등골 서늘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덧글보며 설마했던 문항을 다시 읽은 글에서 황당해 하고, 아무도 지적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다소간에 원망도 나오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짱구를 마구 굴리다가 선택을 했다. 고치고, 덧글달아 설명하고, 글을 좀더 수정 보자고. 편집장의 존재가 용욱이 형의, 용구라의 존재가 정말 절실해 지는 순간이었지만 결국 혼자 마무리 지어 버렸다. 그게 제대로 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도 내일 회의때 해야 하겠지.

 

과한 욕심은 실수를 부르고, 공간에 대한 책임은 나의 신중함에서 나온다. 덜렁 거리지 않고 꼼꼼하게, 허둥지둥 하지 말고 신중하게 12월의 내 모토는 "차분해 지기"다. 역할 구분상의 실수 이기도 했으나 나의 실수가 컸던 만큼 차분하고 신중하게 판단하고 실천하는 내가 되야 겠다. 2005년도 다가오고 이제 한살 더 먹어서 20대 중반도 훌쩍 넘어 버리게 됐으니 살아온 시간 만큼의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차근차근.. 신중신중.. 진중진중..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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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현대가족이야기 -조주은

신기하다. 이 책의 저자가 미디어 참세상 칼럼니스트인지도 몰랐고, 현대가족이야기의 저자 인줄도 몰랐다. 성공회대학교에서 열변을 통하며 운동권들은 한번씩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 이 책인줄도 몰랐고, 진보넷 와서 성교육 해 주던 동지가 이 책의 저자인줄도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어처구니 없는 정보력이란.. 각각 또다른 조주은 이라는 여성학자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다 한명이였던 거다. 신기하다.


현대가족이야기는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아버지, 남편을 둔 가족이야기라는 한 축과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노동자가족이야기 두 가지 축으로 이해를 했다. 가족 중에서도 여성, 어머니를 중심으로 보되 실제적 실태조사와 인터뷰를 중심으로 분석돼있다.

 

한마디로 재밌다. 조주은 동지의 성격 만큼이나 솔직하고 재밌고, 가리는게 없다.  

.

 



여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생산 도구로써의 가족도 보고, 그 가족단위를 중심으로 배치된 여성의 사회적 역할도 분석하고, 체제, 지역사회 내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별 분업의 내적으로 체제화 하고, 학습화 하고, 내면화 시켜 동일성들을 만들어 낸다.

 

가족이란 집의 공간을 그리고 인간들의 관계를 안식처의 기둥으로 만들어 버리는 생산적 시스템이 있다. 읽으면서 느낀 것은 나 역시도 그 시스템의 한 동조자인거 같다는 거다. 지금 단지 내게 내가 주체적으로 꾸릴 가정이 없을 뿐이지, 열심히 재정적 책임을 지고 있는 아버지의 존재와 단 한번의 외박 경험도 없는 가정지킴이 엄마. 기둥같은 두 사람의 시스템을 그대로 악용하며 지금의 내가 기생하는게 아닌가 하는가 해서 왕창 찔렸다. 그리고 지금 얹혀 사는 이모네 집에서도 나 엮시 그런 존재 인거 같다. 가사일에 대한 기초적 분담 조차 나눠 하지 않는 내 모습은 너무나 당연히 미안한 모습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집에 부모님이 없는 집을,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는 내가 상상이 안된다. 오빠들이 없는 나도 상상이 안된다. 가정이 가지는 체제 유지적 기능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안적 존재는 잘 모르겠다. 가정의 형태던 인간의 공동체적 형태던 체온을 느끼고, 온정을 느낄만한 공간이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 그런게 없으면 일끝나고 가서 놀곳도, 쉴곳도 정말 적막하고 쓸쓸해서 매일 술을 마시게 될 것 같은데 ^^; 제 5원소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혼자 캡슐같은 집에서 사는 거 정말 불쌍해 보이잖아...  

 

책은 재밌다. 음.. 솔직히 예로 들어진 여성들의 조건이나 상황들을 확장 적용하거나 일반화 하기 어렵지만 공감하기는 쉬웠다. 충분히 그럴수 있지 끄덕여지기도 했는데 그 동네에서 어떻게 견디며 책을 쓰고, 대학원 공부를 했을까 유별난 저자가 정말 독하고 대단해 보였다.

 

"가족을 신성한 사적 공간의 왕좌에서 끌어내려, 인간을 기계의 일부로 합체하게 만드는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이윤 추구를 위해 기꺼이 '가족'을 이용하는 거대 기업의 경영 정책, 공해와 교육을 키우려고 해던 것도 사실이다. 사고의 위험이 가득한 지역사회, 그리고 노동조합의 협상 전략과 지역 공동체의 평준화 된 삶 옆에 나란히 놓고자 했다. 또한 실제로는 전쟁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평화'와 친밀함'의 이미지로만 덧칠되어 있는 '가족'에 대해 의문부호를 찍고자 했다. "

 

그냥 내가 적은 책 내용

 

p.41
우리는 자신의 노동자 남편이 건강한 활동가로 성장하게 끔 조금다른 차원의 내조를 하는 것일 뿐이었다. 물론 모임을 통해 나름대로 스스로 여성으로서 독립된 개인으로서 정체성을 키우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계의 문제에 민감해지고 노동자 남편을 둘러싼 사회 현실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 그 모임의 중요한 과제이다.

 

나는 엄마, 아내, 여성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다시 탐수해야 했고, 나와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하고 싶었다.

 

p.66
현대자동차의 모델 그들 가정에서 남편과 부인 사이의 철저한 성별분업이 재생산되고,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가정중심성 domesticity'이 가족을 규정하는 힘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전업주부라는 존재는 그 전제이자 결과이다. 여성이 있을 곳을 가정에만 붙박아 두고 가정을 바깥 세상과 대비시키 신성화하는 가정중심성 이데올로기는 , 남녀간의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방해하고 사회에서 여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p.99
결혼하지 않고 혼자사는 여성들은 흔히 '주인없는 여자' '뭔가 문제가 있는 여자' '일부일처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여자'로 받아들여지고, 그에 따라 보이지 않는(혹은 드러나게) 차별을 받기도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혼은 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제도와 맞물려 체계화되어 있는 준강제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p.149
자본의 착취에 대항한 노동운동을 하는 남성들 역시, 여성이 가정에서 만들어가는 스위트홈 이데올로기를 내면화 하여 가정에서 또 다른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

 

p.177
밥은 행복한 가정과 직결되는 의미를 갖는다. 밥을 차려 주는 것은 단순히 내조를 넘어 가족을 구성하는 행위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p. 201
주인공 여성들은 어머니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욕구와 어머니로서의 정체성 사이에 큰 갈등을 겪지 않는다. 이들은 어머니 역할 수행에 따른 육체적, 심리적 피로가 가중되는 초기 양육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어머니' 정체성에서 편안함과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p. 315
페미니스트들과 일부 학자들은 생계부양자(남성)과 가사전담자(여성)로 구성된 핵가족이 보편적인 가족 형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구성물일 뿐이고, 여성들이 가정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긴장을 보이지 않게 하고 낭만화시켜 남녀간의 권력 관계를 은폐한다면 비판해 왔다.

 

제언
노동자가족에서 가족의 가정중심성을 어떻게 약화시키고 가정과 사회 모두에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인가?: 첫째 무엇보다 우선 가부장적 특권을 유지시키는 '장시간 노동' 그리고 그것을 재생산 하는 매커니즘인 교대레 근무가 폐지되어야 한다. /시급제를 없애나가야 한다.

 

p.324
가족 임금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서 노동주체를 상정해야만 남성들을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의 사회적 노동이 가시화되는 계기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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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싱가폴

5학년이 되던 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친구 잘둔 덕분에 친구의 친척집에 머물면서 아이들 돌봐주는 조건으로 보름정도 싱가폴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다녀왔다.

 

당시 들인 돈은 우리 나라 돈으로 100만원정도. 내돈 30, 부모님돈 70  

그리 싸게 간것도 비싸게 간것도 아니다.

비행기 왕복이 50만원 좀 넘었던 기억이 나고..



싱가폴은 우리나라 보다 1시간정도 늦고 싱가폴 달러는 우리나라랑 비교하면  SDG 1S$=700원 정도 된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물가가 상당하다. 싱가폴이라는 이름의 유례는 예날 싱가폴에서 묘하게 생긴 동물을 발견했는데 그 동물을 사자로 오인해 singa pura(사자의 도시)라고 부르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1819년 영국 스탬포드 래플스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견제하기 위해 노호르 주의 술탄으로 부터 싱가폴을 사들여 이 곳에 자유무역항을 건설했다. 말레이 반도와 인근 여러 나라를 관할하는 영국의 무역거점으로 성정하게 됐다. 이후 1921년 영국이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군사, 경제적으로 영국의 동아시아 식민지 지배의 핵심이었다. 2차 대전 중에 일본이 싱가폴에 쳐들어와 싱가폴 사람들을 학살하는 대학살극을 벌어서 그런지 상당부분 나쁜 감정들이 있다고 하고 1959년 자치권을 획득했고, 말레이시아로 부터도 완전히 독립한 상황이고. 도시 규모는 서울보다 좀 큰 편인데 경제적 규모나 세계적인 지위를 볼때 비교가 안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 알려 진 것 처럼, 싱가폴에 갈때 껌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가지고 가다 들키면 벌금을 내야 하고 당연히 압수 당하고. 길거리가 깨끗한거는 이루 말할 수 없고, 안전장치들도 잘 되 있어서 지하철의 스크린 도어나 도로 표지 판등이 상당히 잘되어 있다. 물론 사람들이 질서도 잘 지키고, 버리는 일도 없고, 차들도 모범적이고.. 인공도시 답게 조경도 멋지던데, 친척분의 말로는 간판의 높이과 크기 숫자를 비롯해 건물 높이와 모델등 왼만한 것은 다 국가가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리콴유나 싱가폴 사회 통제적 분위기와 성형등을 보름 동안 뭐 판단할 것 조차도 없었지만, 경제 성장이라는 발판을 딛고 있는 사회의 역동성(센토사 섬으로 가는 케이블 안에서 본 항구의 번잡한 움직임, 넘치는 관광객, 지하철 등 곳곳에서 드러나는 활기)과 그들이 보이는 자부심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넘어온 사람들과의 경제적 불균형의 아이러니들이 마구 잡이로 섞여 있었다.


 아마 이 사진에서 날 찾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센토사 섬에 있는 사자상 근처에서 찍은 거다.

 

2001년 여행에서는 싱가폴과 말레이시아를 갔다. 말레이시아의 여행은 정말 집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특히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콸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452m)에도 가보고, 절도 다니고, 팬이 도는 싸구려 여관에서도 자보고..

 

2000년과 2001년의 겨울은 참 괴롭고 힘든 시기였다. 나름대로 현장이란 곳에 기웃기웃하다가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학교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것에 대한 처절한 현실도 느꼈고, 정말 오아시스 같은 여행을 친구랑 갔다 왔다. 남은 사진도 몇장 없고, 준비된 동선도 없이 무작정 떠났다가 와서 솔직히 어디어디를 갔다 왔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내 도피여행의 시작이고, 첫 외국어를 하는 세상에서 단 둘만이 한국어를 하는 놀라운 현실을 체감한 기회이기도 했다.

 

친구와 나의 영어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험이 있었는데..

싱가폴에 있는 유명한 도서관에 가려고 왠 사람에게 길을 물어 봤다.

"우리에게 길좀 알려 달라" 그랬더니 그 외국인이 한참을 영어로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 주고 난리가 났다(우리가 만난 싱가폴 사람들은 정말 다 친절했다) 그러더니 맨 끝에 "Are you follow me?" 라고 물었는데 우린 팔로우만 들은거다. "아니 이 사람이 우리한테 어쩔려고 따라오라는 거야. 야 안돼!" 갑자기 땡큐 라고 대답해 버리고 확 돌아서 버렸다. 어찌나 그 외국인이 황당했을까..

 

이런 경험도 있었다. 센토사에 가려면 케이블 타고 가면 케이블 타고 와야 한다. 그사실을 사전에 몰랐던 우리는 매표소에서 갈때는 케이블을 타고 가고 싶고 올때는 배를 타고 오고 싶다는 말을 한참을 하고 있었는데 안내원과 말이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왕복하지 않겠다는 말로 "go but No Return"이라고 말을 했는데 안내원이 상당히 당황해 하더니, 나중에 우리의 의도를 알아들었는지 한국말로 "왕복해야 해요"라고 대답을 했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하하.. 웃으면서 땡큐를 연발했었다.  

 

 같이 여행했던 내 친구가 다시 싱가폴에 간다. 다시 그 친척집에 간다. 아직 국가 공인 선생님이 되지 못한 내 친구는 요번 시험에서 떨어지면 상당기간 싱가폴에 묶여 있게 될 것이라는 겁을 주며 '너네가 그리울 거야'라는 말을 연발한다.

 

오뚱이가면.. 정말 심심할 텐데.. 약방의 감초 같은 오뚱이 가면 우리끼리 모여도 참 서먹서먹 할 텐데.. 오뚱이 아이들 수영장에서 다이빙 한다고 난리 치면서 머리 박는 사고가 없기를, 영어 때문에 압박받지 않기를.. 건강하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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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날은 맞지 않다.

옆에 있는 사진 부담스럽군.. 내사진인데. .음.. 좀 작업을 해서 바꿔야 겠다.

어제 YTN에 2번이나 나오는 기분 좋은 날이였지만..

돌아다닐 수록 힘이 빠지는 날이다..

 

집에 들어갈 때 오늘 하루 잘 살았다 라고 가슴 뿌듯하게 뛰어 가고

집에서 나올 때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아야 겠다 하루 일정 체크 하고 나오고

한동안은 그랬는데...

 

이상욱 위원장 글이 시기 적절치 않아 뜬금없이 부담이 된 것 같아 괴롭고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간다고 우기는 민주노총 집행부가 웃기고

투쟁 일정 발표해 놓고 전화해 보면 지침은 내렸는데 확인을 안해봤다고

둘러대는 조직 담당자들한테 황당하고

사안의 중요한 만큼 정말 헌신적으로 철저하게 싸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민주노총 결정에 움찔하고 욕부터 나오고 설마설마 했던 게 확인되니 속시원하다는 듯이

욕하는 사람들 한테도 그렇고..

시청앞에서 단식 25일 째라며 다죽은 모습으로 부축받고 나타난 곽사장님은 단식을 푼다면서 대회사 읽을 기운도 없는지 다른 사람에게 대독하게 하고 휠체어 타고 내려가 더 기가 차고 ..

보험모집인 노조에서 나눠준 유인물을 고스란히 뺏으러 다니는 보험사 인사팀들의 모습을 보며 망연자실해 지고..

민주노총도, 각 연맹도, 해당 사업장도 내리 꽂은 지침은 공중분해 해버리고 뻥카를 있는대로 질러버린 현실에서는 앙상한 다리만이 보여 정말 우울하고 화가나는 하루다.

 

과연 오늘은 어떤 헤프닝들이 이어질까

이석행이 그리 자랑해 마지 않던 지금까지 보지 못한 집회가 연출될까?

전국 적으로 실수 17만이 퇴근 좀 일찍하는 일일 파업에 들어가나? 

애초 촛불집회로 잡혔을 때 부터 기대를 버리고 냉철하게 접근했어야 하는데

질러놓은 뻥카가 찔리고, 나도 덩달아 춤춘거 같아 마음이 싸~아 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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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시티은행, 이찬근 - 나를 위한 정리다

기회다. 농민은 쌀을 태우고, 의료인들은 하얀 가운을 태우고, 장애인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노동자들을 파업을 하고 빈민들은 투쟁에 나선다. 26일 민주노총 총파업을 앞두고 말이 많다. 사회적 합의로 가기 위한 계단이다라는 평가 부터 구라 뻥이다 까지. 몇일 전 한 신문에서는 제 2의 imf가 온다는 제목을 뽑았다. 환율이 춤을 추고 이헌재가 5% 경제 성장 전망에 백기를 드냐 마냐의 논쟁을 넘어 위기는 전방위 적으로 압박하고, 그에 따른 투쟁들이 끓는 물을 닫아 둔 주전자 뚜껑처럼 일어나는 11월 인 것 같다.

 

11월 15일 금통위의 콜금리 3.50%에서 3.25%로 인하한 이후 국내 은행들의 반응이 다르게 갈리고 있다. 물론 신문에서는 미국은 금리를 인상했다고 운운했지만, 국내 은행중 단연 독보이고 있는 씨티은행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씨티은행은 국내 시장 점유율 10% 이상을 차지하겠다는 포부 만큼이나 공격적인 영업을 하고 있다. 콜금리 인하 발표 이후 정기예금 금리를 0.1% 포인트 낮췄지만 이는 국내 시중은행의 금리보다 0.3% 포인트 가량은 높은 거다. 시티그룹은 그들의 재력으로 국내 은행과의 전쟁에 돌입한 상황이다. 단 한푼이라도 이자가 높다면 돈은 그쪽으로 이동한다. 은행말로 표현하면 고객은 수익률을 쫓아 가니까.



시티그룹은 2001년 조지부시(아버지 부시)의 공화당에 돈을 가장 많이 지원한 그룹 랭킹 6위에 오른 기업이다. 2000년 미국 단체들이 뽑은 '세계 최악의 파괴적 은행'에 뽑힌 기업이기도 하고, 2003년에는 다국적 감시라는 미국 단체로부터 '2002년 최악의 1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멕시코 전 대통령 카를로스 살리나스 형제가 수천만 달러를 해외 유출하는데 도와주기도 하는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자금을 국회로 빼돌리는 역할도 국제적으로 해 주고있는 대행업체 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사무금융의 외기노조의 시티은행 지부가 파업투쟁을 전개한 바도 있다. 물론 시티에 인수되기 전에 한미은행 조합원들도 상장폐지 저지를 위해 투쟁한 바 있다. 노조 배제적 성향, 임금 비밀주의 및 개별화 전략에 역사적인 노하우를 가진 시티그룹과 맞장 뜨기는 쉽지 않았다. 누가 그러던데 시티은행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비정규직의 형태를 넘어 수십개에 이르는 형태의 비정규직이 있는 총집합소라고. 사실 시티그룹 노조도 조합원 월급이 얼만지 다 모른다고 하는데.

 

자주 애용하는 영등포 도서관에서 두권의 책을 빌려서 끝을 냈다. 이찬근 교수가 지은 'IMF 시대 투기자본과 미국의 패권' 박동규 교수가 지은 '첨단 금융기법의 정상 씨티은행' 이다.

 

씨티그룹에 대한 분석 책은 94년도에 나온 책이다. 상당부분 IMF경제 상황을 예상치 못한 전망들이 보이나 결과는 똑같다. 시티 그룹이 보인 선진금융기법을 배우고, 국내 은행들, 금융자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 원활한 금융의 이동을 도모해 줘야 한다는 거다. 시티그룹을 슬로로 표현하면 다각화, 전문화, 국제화라고 한다. 1812년에 생겼다는 그 역사도 어마어마 하고, 숱한 위기 넘겨 오며 생긴 노하우가 어떤지 국내에 있는 씨티 은행을 보면서도, 책을 보면서도 여실히 알수 있다. 근데 정말 자본이 보이는 행태는 하나의 지침서 같다. 합병해서 합치고, 인력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해서 슬림화 하고. 다시 대형화 해서 이것 저것 굴리다가 망해간다 싶으면 노동자들 마구 잘라내고 다시 합병한다. 물론 청산의 형태가 있을 수도 있고, 진짜로 부도 나서 망할 수도 있고. 
 
* 금융기관의 자금조달과 운용과정에서 증권을 매개수단으로 한느 것은 금융방식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전통적인 자금조달방법이 아닌 증권에 의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의미하고,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대출채권 등과 같은 자산을 증권의 형태로 표시하여 일반 대중에게 광범위 하게 유통시기는 것 의미

 

* 금융기관들이 그들의 전통적 업무만을 고수하는 자세를 탈피해 백화점식 원스톱 종합금융서비스의 제공을 추구하는 것은 변화하는 국제금융시장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현상이다. 최근 금융시장에서 금융의 탈중개화 내지 증권화 현상이 드러난 것. 파리바, 도이치 은행과 같은 유럽 금융기관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그 위상이 축소될 것이며 전략적 제휴에 적극적인 HSBC(Hongkong and Shanghai Banking Cor.)그룹은 국제 위상 높아질 것 
->  이런 현상은 IMF 이후 우리 나라에서도 보이고 있지 않나? 방카가 그렇고 은행에서 투신상품이나 증권상품을 파는 경우도 그렇고. 백화점식 원스톱 금융서비스 지향하는 지주회사.

 

*92년 당시 합병사례
BankAmerica + Wecurity Pacific -> Bank America
총 91,400명 중 12,000명 감축. 총점포 1/5 폐쇄 연 12억 달러 경비 절감. 미국내 2위 대형 국제상업은행 지향. 개도국 및 농공업분야 대출부실로 고전하던 BankAmerica 와 부동산 관련 대출부실로 어려움 격도 SP 합병 대규모 경비 절감. 증권, 보험 업 등 비은행 업무 확대로 겸업 은행. 금융집단의 설립 및 경영을 위해 다양한 조직구조가 세계 각국에서 실험되고 있는 유형은 은행, 투자, 보험등과 관련한 일련의 상품을 동시에 판매하고 수수료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독립적 판매회사를 설립하는 형태이며 조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영업거점으로 기존의 은행지점 망에 기초한 마케팅 및 유통 시스템 구축.

 

*저자가 94년에 말하는 "우리나라 은행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정부의 규제적인 금융정책과 은행자체의 자구노력 미비라고 지적". 은행의 자율성이 보장되어 자유로운 경쟁원리가 도입되고 금융자금의 조달과 배분이 외부의 간섭과 규제 없이 시장의 가격기능에 의해 결정 될 때에야 비로소 은행산업의 경쟁력이 갖추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과점에서도 금융자유화가 시급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은행 산업 규제 형태는 은행상품에 대한 가격 규제, 은행업무의 영역과 활동에 대한 규제, 은행산업의 진입 및 확장에 대한 규제, 자본금 및 은행의 재무제표에 대한 규제, 은행의 지리적 영업범위에 대한 규제로 구분될 수 있다.

 

*미국의 금융기관에는 ⑴금융중개기관 ①예금기관-상업은행, 상호저축은행, 저축대출조합, 신용조합 ② 계약형금융기관- 생명보험, 손해보험, 연금기관  ③기타금융중개기관- 금융회사, 투자회사, 부동산투자신탁, 기타 정부계 금융기관 ⑵증권중개기구 ①저당은행 ②투자은행 ③증권회사 있다고. 지금도 그런가?

 

*씨티은행은 1812년 6월 16일 뉴욕 소수 상인에 의해 설립. 당시 신용조합 (credit union)
1837년 테일러 시대에 절정에 이르며 은행을 소수상인을 위한 신용조합 형태로부터 전문 상업은행으로 탈바꿈함. 92년 6월 기준으로 자산이 2,190억 달러로 미국 최대 상업은행으로 24개국 360여개 지점 확보, 70년대 개발도상국에 대한 집중 융자로 세계은행을 리드한 씨티은행. 1961년 상업은행으로서는 최초로 양도성 정기예급(CD) 개발하여 시판하고, 77년 ATM기라 하는 자동입출금기를 설치한 최초의 상업은행. 70년대 중반부터 소비자금융의 중요성 인식하고. 은행정보화. 일렉트로닉 뱅킹 착안. 93년 말 세계 93개국 3,300개 지사 지점 가짐. 아마 지금은 더 많겠지. 

 

*91년 1월 리드 회장은 경비절감 목표로 이전 8억 달러 수준에서 10억 5,000만 달러 배가한다는 발표. 총직원수 91년 한해동안 4,000명 감소 / 은행 겸업화 성공사례 -개인은행 부문/ 기관투자부문/ 투자은행부문/ 보험부문/ 정보부문

 

*1967년 기업금융 제공하면서 진출. 소매금융 성공. 은행업무 무인화를 선도함. 91년 신용카드 사업으로 연간 6억달러 순이익 거둠. 금융 대상을 선진국 금융(JENA: jepan, europe, north america)과 개발도상국권금융(IBF: international banking and finance)으로 분리하고 있음. 소매금융의 고객을 분류. 은행관련 거래 한 장 카드로 해결하는 전자지갑 지급수단 개발업무처리 시간 단축, 생산성 향상, 대출실적 개선 및 고객관리 강화-> 인센티브제 , 연봉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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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근 교수는 지금 투지가본감시센터 공동대표이기도 하고 금융노조의 금융연구센터 소장이기도 하다. 대안연대 활동을 정리하고 잘 옮긴 거 같다. 독보적인 이름도 걸고 덕분에 사회적인 위치도 잡고. 

 

이찬근 교수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책에도 고스란히 나와 있는 문구 :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개혁과 개방을 추진해야 한다. 재벌개혁, 노동시장개력, 금융개혁은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 진정 국민기업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전업의 대기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문어발식 재벌그룹은 해체되어야 하고, 고부가가치의 노동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전략 산업으로 등장한 금융산업에서 선진노하우를 전수 받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을 대폭 개방해야 한다. 물론 MR.원 같은 유능한 관료 집단 양성을 비롯한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금융외교 채널 구축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뭐라고 해야 하나? 재벌은 해체되어야 하고, 그리고 진정한 전업의(?) 기업이 자신들의 초과 이윤을 배분하지 해야 하고, 사주의 형태로 노동자를 주주로 탈바꿈시켜 배당으로 온몸 닳게 하지 않고, 빚에 쪼달리지 않게 하고 노동의 대가로 주는 선량한 기업주로 다 탈바꿈 시켜야 한다고 해야 하나? 외국 자본 폐해가 많으니 규제를 많이 만들어서 그들의 소득을 사회의 공공영역에 환원 되게 제도적으로 강제해야 된다고 하면 되나? 내 생각이 뭔지 모르겠네.

 

그냥 책을 통해 이찬근 교수가 보는 경제구조 내에서의 국가의 패권.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금융질서에 대한 인위적 개입과 국제관계 속의 어거지가 미국이 가진 패권이라는 것이다. 경제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해석도 없고,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자본의 위기 순간 순간 마다 국가 행정부가 어떻게 했는가를, 그리고 세계적으로 국가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위기를 넘겨 왔는가에 대해 강연을 들은 거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은 거다.


책의 내용 중에
*초국적자본은 3대 구조변수 △금융자본의 세계적인 축적 △금융산업, 금융시장의 글로벌한 통합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 2대 환경변수로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에 따른 외환시장의 투기장화 △미국의 패권에 의해 지지된 폴리티컬 머니 = 달러 의 상호작용 속에 투기자본의 광폭성을 결정짓는다고 설명.

 

*92년 9월 영국의 영란은행은 유럽통화제도의 중심기구인 환율조절 메커니즘에서 탈퇴한다.
돈은 원래 더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곳, 나라로 이동하는 속성이 있다. 92년 영국의 외환위기는 독일의 고금리정책의 희생양이었다면 94년 멕시코의 외환위기는 미국의 고금리 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조지 소로스의 일반이론 = 재귀이론(Reflexivity Theory) 시장에서의균형은 극히 예외적인 것이며 불균현 혹은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 오히려 정사이다. 불균형한 시장에선는 강세장과 약세장이 반복되는 폭등, 폭락 싸이클이 오히려 필연적이다.

 

*레이건이 패용한 넌센스 경제학-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동시에 누적된 쌍둥이 적자가 구조화 된다. 1985년 플라자 합의 미국은 일본과 독일에게 각기 엔화와 마르크화를 강제절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미국은 준고정환율제 적용했다. -> 최근 달러 약세에 따라 2차 플라자 합의가 거론되기도 했다. 위안화에 대한 인위적 조정이 있을 거라 했지만 G20회의에서는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달러화 시대의 개막은 2차 세계대전이다. 1930년 세계 각국 금본위제가 줄줄이 무너지고 39년 2차 대전은 영국 파운드화의 역사적 몰락이 시작됐다. 1944년 7월 연합국간에 브레튼우즈협정을 체결. 아직 전쟁이 계속되는 와중에 미국 주도하에 전후 체제를 구상했다는 점 지적. 이것이 미국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의 개막을 구체적으로 예상한 것이고 국제적인 리더십을 적극 행사하기 시작했음을 뜻함. IMF는 47년 3월, IBRD는 1946년 6월 발족.

 

*?1958년 EEC 혹은 Comon Market 유럽공동체 결성. 공동시장은 역내국가간의 자유무역과 노동 및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한다. 유로금융시장 - 금리규제, 지불준비금 예치, 예금보험 가입 등에 따를 필요 없이 자유롭게 발전.

 

*금 1온스 =35달러의 고정환율제. 1973년 11월 폐기될 당시 1온스당 100달러에 이르기 까지. 금의 이중가격제 적용하게 되고 금의 고정가격 무의미 해짐. 미국 달러 방어를 위해 미국은 달러방위 61년 스왑협정 - 중앙은행간에 상대국 통화를 미리 사고 나중에 되파는 약속 행함으로써 필요한 통화를 상호간에 손에 넣는 방법/ 63년 케네디 대통령의 금리평형세(Interest Equalization Tax) - 외국인이 미국에서 발행한 유가증권을 미국인이 매입할 경우 특별세를 거두겠다는 조치/ 

 

*1967년 런던 금시장 금매입 강세로 금가격 폭등, 1968년 3월 골드러쉬 3월 14일 영국 재무부 런던 금시장 일시 폐쇄 결정. 금풀 해체 결정. 금의 이중가격제 시작됨. 1온스당 100달러 인상. 1973년 10월 1차 석유위기. 급격한 유가 인상은 경상수지 적자로 전락. 73년 관리변동환율제(managed float), 유럽제국들은 공동변동환율제(joint float) / 대표적인 외환센터 - 런던 뉴욕 동경 쮜리히 프랑프부르트 홍콩 싱가폴 /1972년 시카고상품거래소 (CME) / 1995년 233년 전통의 영국 베어링은행 도산. 니콜라스 리슨이라는 싱가폴지사의 선물트레이더가 무모하게 투기행위를 자행함으로 발생한 사건.  / 1982년 멕시코 촉발된 연쇄채무위기

 

*1969년 네덜란드 헤이크에서 열린 EEc 정상회담 경제통화동맹 가능성 모색. 1970년 베르너 '베르너 리포트' 제출로 유럽의 경제 통화통합을 위한 3단계 계힉이 입안됨. 1979년 유로통화제도 (EMS) 출범. 플라자합의 이후 환율변동은 더 이상 순수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현상으로 변모됨. 1929년 10월 24일 암흑의 목요일 12.8% 역사적 주가추락보다 훨씬 큰폭 추락.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미국 다우주가평균은 전날에 비해 무려 22.6% 폭락하는 그러나29년에는 주가폭락 외에 물가폭력, 농산물 가격의 대폭락 현상이 줄지어 터지고 관련 은행 도산의 30년 금융공황이 발생한 것. 과거와 달리 실물경제 전혀 무관한 금융시장만의 단독붕괴 현상이다. -> 금융자본에 의한 차별성 부각/ 증권, 외환 시장의 결제시스템추가 설명 

 

*1980년 중반부터 외환시장, 채권시장, 주식시장 상호간에 자금의 흐름 혹은 자본의 이동이 동시적으로 연계한 현상이 새롭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글로벌한 자본이동이 세계경제의 새로운 벡타로 등장한 것이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걸프전. 일본의 버블 경제는 미국경제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고, 국제 정책 협조라는 파라독스에 의해 일본의 경제정책상의 자율권이 축소된 가운데 발생한 비극이다. 일본의 제조업은 미국을 압도했지만 금융에 관한 한 일본은 미국에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 물론 기술발전을 통해 자금 이동의 용이성 지적

 

*1950년 최초의 현대적인 신용카드 다이너스츨럽 발행. 1955년 플라스틱카드로 바꾸면서 본격적인 신용카드 시대를 염. 미래의 소득이 오늘의 화폐로 둔갑한 것으로 평가

 

*화폐자본으로서의 금융자산은 실물경제와는 별개로 스스로의 운동법칙에 의해 고단위의 축적을 달성하고 있다. 자본주의 발전이 고도화됨에 따라 금융적 상부구조가 실물적 하부구조에 비해 더욱 빠르게 확대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 이찬근 IMF 시대 투기자본과 미국의 패권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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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염려증 재발

건강염려증이 재발하고 있다. 

후후..건강염려증은 실제 있는 정신질환중에 하나이다. 예전에 심리학 책에서 이 증세를 발견하고는 어찌나 반가웠던가.. 사실 반가워 할 일이 아닌데 말이다..

 

건강염려증(健症, hypochondriasis)은 사소한 신체적 증세 또는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고 확신하거나 두려워하고, 여기에 몰두해 있는 상태이다



난 건강염려증이 재발과 연관하여 한동안 술을 끊기로 했다.

유난히 피곤하고,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고, 거의 폭식증에 가까울 정도로 먹을게 앞에 있으면 배가 터지도록 먹어버리고 있다. 자제나 제어 절제가 잘 되지 않는 상황이다. 아마 최근에 TV 중독자 처럼 몰입해 버리는 이유도 아마 몸이 안좋아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내 진단으로 그냥 내몸을 아끼는 차원에서 한동안 금주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한.동.안...

 

담배를 끊을 때는 후두가 약한 내 건강 상태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담배라는 것을 핑계 삼아 무엇인가에 의지하려는 약하디 약한 내 모습을 본 탔도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대한 고민과 대중 사업의 답답함은 연기로 날려 보내듯 대신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용기내고 대중과의 만남과 사업속에서 풀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난 담배를 끊었다. 내가 담배에게 잡히기 전에 놓아준거다. 운동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인데 담배라는 것을 손에 쥔 이상 집을 피해 그늘 진 곳에서 피워 버려야 하는 상황도 한 몫한 거고...

 

지금에 있어서의 술은 좀 다른 맥이다. 최근 친척분이 한 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는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고, 공장소리가 귀에 들린 다는 형이 등장하고, 엄마도 이명이 들려서 병원에 가고 간이 안좋아져서 이모가 병원에 가고.. 주변사람들이 아픈 모습, 아파지는 것을 보니 덜컥 겁이 난게 사실이다. 

술도 안마시고 운동하며 삼시세끼 건강하게 챙겨먹는 주변사람들이 그럴진데 

나도 그나이가 되면 30이 넘고 40이 넘으면 그렇게 아프겠구나 싶은거다. 

중도에 도태되거나 포기하는 일 없이 백발이 성성하고, 걸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 운동판에서, 집회를 다니며 열심히 살고 싶은데 어쩌면 그전에 내가 막부린 젊은 시절 때문에 그렇게도 못살겠구나 싶어서 더럭 겁이 난거다. 

 

왼손은 타고난 손금이고 오른손은 후천적인 손금이라고 했나? 왼손의 깔끔한 생명선에 비해 오른손에 끊어지고 짧아진 손금을 보면서 이러한 겁이 더 현실감 있게 와 닿았다. 이렇게 내 맘대로 하루하루 맘놓고 살다가는 어느 순간 팍! 가겠구나 싶은 겁. 남.   

 

세금 한푼 내 본적 없는 내가 공공의료의 혜택을 받아 볼 날이 올지도 모르고, 내가 믿고 있는 개인 종신보험이 날 책임져 줄 수도 없을 것이고 병원에 가서 진단 한번 받기도 급급할 텐데 아프면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될 까봐 두려운거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조금 이상이 있다고 느껴질 때 조심히, 아끼고 챙기고 해야 겠다는 거다. 절대 송년회가 줄줄이 이어지는 12월을 대비해 몸만들기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다들 술끊었다고 하니까 몸만드냐고 하는데 절대! 절대 아니다.

 

내가 나와 하는 약속이다.

한.동.안...

어떠한 유혹에도 소주는 마시지 않는다. 

매일 아침에 운동 꼭 가자

하루에 3끼, 밥으로 맵지 않게 먹자

건강하게 내가 나를 아끼자.. 적어도 남은 11월 까지는 지키자...  꼭 그러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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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생신 ^^

울 아버지가 58세가 되셨다. 이제 정년 퇴임이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정년퇴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 사는게 이렇게 힘든데 집이나 먹을 것 걱정없이 살수 있어서 행복하시다는 내 아버지의 생신이셨다.

 

간만에 온 가족이 모여서 점심도 저녁도 상다리가 휘어졌다.

언니가 새식구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하는 집안 식구 생일이다.

사실 8/15 엄마 생일도 했었겠지만 그때 나는 타국에서 놀고 있었던 지라..^^;


 

케익은 내가 샀다. 덕분에 통장잔고사 8원 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갱신했지만..

어찌나들 좋아하셨다.. 노래 부르고, 불도 끄고, 소원도 비시고..



연애오 올인한 울 새언니, 공무원이나 자신의 일을 깔끔하게 공개하지 않는 우리 큰오빠.

보수 반동이나 나의 돈줄이고 착한 울 작은 오빠 .

사이 좋고 아이 같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 엄마와 아빠 .

그리고 내가 같이 했다.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큰 힘을 주는 사람들이고 내 든든한 후원자이다. 아마 내가 쥔 지금의 뱃심도 이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어 준, 가끔은 보수 반동의 말들을 늘어놓고, 자본가의 괴변을 설파하고, 말도 안되는 억지들을 부리고, 집회에는 나오지는 않지만 열심히 사는 이땅의 노동자이고, 그들의 가족이다. 그리고 내 가족이다..

 

아버지의 58세 생일을 맞으며, 간만에 식구들이 다 모여서 배터지게 먹고 TV보고 놀고 하면서 정말 좋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예전엔 가족의 소중함이나 가족에 대해서는 가끔 전화 안부를 묻고 의무적으로 집에 가서 보고해야 하는 대상이였는데.. 가족이 주는 생산체계가 정말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이들이 너무 좋다. 정말 아이 같고, 착하고, 열심히 사는 이 사람들이 좋다. 그들이 내 가족인것도.. ^^* 


 우리 가족은 말도 잘 듣는다. 카메라 보라니 어찌나 다들 카메라 보며 좋단다.. ^^* 큰오빠, 새언니, 엄마, 아빠, 작은오빠 그리고 사진찍고 있는 나 이렇게 우린 혁족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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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남성페미니스트'를 부담없이 읽고

난 책을 좋아한다. 읽은 것은 신통치 않지만 소장하는 것에 욕심이 많은 편이다. 특히 헌책이나 누군가 메모하거나, 생각을 적어 놓은 책을 소장하고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1학년 새내기 때(다들 밝히지 말라고 하지만..)학교에 있는 여성위원회라는 곳에서 새내기 활동을 했었다. 나란 사람의 과거가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구나, 다양한 삶과 사람들이 있구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그리고 내가 가진 성 정체성에 대해 엄청난 고민들을 하게 했던, 세상의 다른 면을 보여준 신기한 곳이였다.

 

결국 난 정서차로 인해 활동을 정리했지만, 당시 한 선배가 "너 같이 준남성으로 착각하며 사는 얘는 이런 것 좀 읽어봐야 한다"라고 건넨 책이 또 하나의 문화에서 나온 '새로 쓰는 성 이야기'였다. 그 책은 내용 뿐만 아니라 내 삶에 있어서의 '성'이란 주제를 처음 던져주고, 여성이라는 내 성을 직접 볼 수 있게 해준 계기였다. '여성적'이다와 '도움이 필요한 약한 생명체'를 동일시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리고 동성애 공포를 가진 준남성적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왕성한 영상활동가 자리에서 예쁜 분홍색 책을 발견했다. '남성페미니스트' 개인적으로 페미니스트라는 용어가 주는 느낌이 거북하다. 왠지 모르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부르주아적 여성 인권 활동 내지는 이슈 파이팅이나 성적인 담론들만 내세우는 시혜적 운동인 것 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들의 운동을 폄하하는게 아니라 단어가 나한테 그런 느낌을 준다는 거다. 



내가 자주 물어보는 네이버 사전에서는 페미니스트를 "페미니스트(feminist)[명사]는 1.여권 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2.여성 숭배자, 또는 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연장선으로 '여권신장,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남성들의 얘기'인 거다. 그리고 샌드라 바트키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책을 통해 희망을 얻었다"라는 것이 대체적인 결론이다. '여성 해방을 목표로 하는 운동에서 남성과 여성이 어떤 형태의 정치적 연대를 구축할지를 생각하고, 이 책 <남성 페미니스트>는 평등 사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싸우고자 하는 남자들이 많다는 증거를 제시한다'라는 머리글로 책 내용의 총체적 분위기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나는 여기서 무엇을 봤냐 하면,  소위 진보를 자청하는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가지는 사회적 고민, 남성 페미니스트 이기 때문에 절대 다수 남성사회에서 왕따가 될 수 있고, 그 고결한 외로움 속에서도 연대 전선이 가능하다는 거 그리고 덧붙여 성전환자들이 가지게 되는 고민과 논의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고민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아 이럴수 있구나'의 부분들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 본적이 없는 고민, 생각해 보지 않은 경험들이 그럴수 있구나로 와 닿았다는 거다. 결론은 다른 사람들도, 남성과 여성 가리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며, 담론을 형성하기에 좋은 기재가 될 수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차별은 사회적 가치 생산에서부터 비롯됐고, 일상의 남성과 여성과의 문제들은 이것에서 파생된 가부장적 사회질서와 남성 중심적인 누적되고 역사적인 사회문화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배경속에 이 운동판에도 사회적, 권력관계의 그늘에 가려 언제나 곳곳에서 숨겨진 담론으로 지워지거나, 꽁꽁 묻혀 진 채 넘어가는 경우들이 생긴다. 경우의 수에 따라 8.3 사태나 금속노조 사태와 같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는 수천가지의 상황과 사건속에 드러난 몇개에 불과하다.  

 

성전환자가 있다. 여성으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다가 남성으로 성전환을 했다. 이 사람을 여성페미니스트 내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해 저자는 '난 원래도 남성이였고, 신체를 남성의 조건으로 바꾼 것 뿐이다'라고 항변한다. 난 갑자기 벽에 부딪힌다. 동의는 하겠는데, 신체를 바꿔가면서 이 사람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주 기초적으로는 성적인 만족감일까 싶기도 하지만 실제 전환자들의 성적 경험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글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라면 왜 여성이면 안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신체를 바꿔 얻고자 하는 자기 만족 이외는 무엇일까를 잘 모르겠는데, 그 답을 사실 여기서 찾지는 못했다. 

 

또 다른 하나 부문은 장애인이 아니고서는 장애해방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가. 백인이 하는 인종차별 반대운동은 자체가 한계인건지, 이주노동자가 아니고서는 언제나 연대에만 머무는 것인지. 주변적인 연대자, 도움자로 당사 주체가 아닌 제 3자로 떠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남아서 언제나 부담스러웠던 부분들이 다시 정리 못하고 넘어가게 되는 거다. 나는 여성이니까 페미니스트 인가에 대한 답이 일치 되지 않는 것 처럼, 가능한 연대가 가능하고, 필요한 것이라고만 답하기에는 왠지 뭔가 부족한 거 같은데 그 2%의 부족분을 찾을 수 가 없다.

 

하하... 정리가 안되는게 너무 많은데..

 

그냥 적어 두고 싶었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백인, 우리는 페미니즘의 응원자이자, 동맹자이다
*20여년간 여성들이 벌여온 젠더의 논의에 어떻게 남성들을 끌어들일 것인가의 방법을 찾을 시기

*페미니스트를 친여성주의자, 반성차별주의자라고 구분한다면 남성 페미니스트들 내에는  허식가, 내부자, 인본주의자, 자기학대자로 분류할 수 있다.

*일부(아마 대부분) 남자들이 남성과 성관계를 갖기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동성애 공포때문인데 그 공포나 비약적인 두려움은 아니다. 이것은 동성애 섹스가 남성적 욕망을 영토화한다는 것을 위협한다는, 완벽한 이성적 인식에 기반한 두려움이다... 영토활동은 남근의 활동이고, 보호의 기재는 닫혀진 항문으로 남근은 확장은 항문은 폐쇄되는 것이다... (동성애 관계가 선호의 문제인가..?)

*사려 깊고 개방적인 성애적 실천이 주어졌을 때 젠더에 대한 구속은 욕망의 탈영토화라는 자유로운 흐름에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고, 여성주의적 자유를 맛보게 해 줄 것이다.

 

*왜 모두가 같이 겪는 젠더 분쟁을 위해 내가 희생양이 돼야 하는가? 이제 신물이 난다. 스스로에게 가만히 물어보라. 우리 성전환자들이 그려 나가는 자화상을 당신이 응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병태적 쇼에 대한 호기심인가? 사고 현장을 천천히 지나가면서 아스팔트 바닥에 붉은 핏자국이 있는지 자세히 살피는 공포와 흥분이 뒤섞인 관음적 욕망인가? 아니면 세속적 한계를 초월한 천사의 섹스를 보고 싶어하는 환상인가? 당신에게 또 한번 물어보라. 그래서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인가? 괴물, 돌연변이, 사이보그, 성도착자, 동서애적 욕망의 색다른 대상인가? 아니면 단지 다른 의미의 남성과 여성인가?

 

*굳어진 습관, 익숙한 편안함, 무관심해지려는 유혹 앞에서 남성들에게 이런 것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구체적인 상기와 도전은 성실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해와 투쟁을 지속하기가 여렵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을 나타낸다 (데이비드 J. 케헤인 : 남성 여성주의라는 모순 어법)

 

*여성으로서/ 여성처럼 글을 읽는다는 것은 페미니즘 지식이 여성의 몸으로 경험한 것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남성이 여성으로서/ 여성처럼 글을 읽는다는 것은 페미니즘 지식이 여성의 몸으로 경험한 것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남성이 여성으로서/ 여성처럼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남성이 여성의 몸으로 들어가서 여성주의적 지식을 산출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논리는 남성이 여성이 될 수 있고 앎이 생물학적 조건과 만나는 일종의 학문적 성전환이다.( 헨리 S. 루빈 : (성전환자)남성처럼 글읽기)

 

남성페미니스트 - 톰 디그비(Tom Digby) 엮음 - 또 하나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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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가 대회 생각-생각

이것 저것의 잡다구리한 생각이다. 난상잡기장이라고 할까. 암튼 지난 7일 일요일에 현장활동가 대회에 다녀왔다. 앞에 '전국'글자가 붙은. 가며 오며 글쎄 난 뭘 기대하고 갔을까, 무얼 하러 갔을까 ? 돌아오고 뭐가 내게 남았을까? 나는 뭘 결의했지? 답을 모를 상황만이 내게 남겨져 있다. 정말 이상하지. 뽕 맞은 것 처럼 힘내서 올거라 생각했는데, 갔다오고 난 나의 답은 글쎄 이다..

 

 ◀내가 중간에 숫자을 세었을 때 인원은 700명이 넘었다. 좌석수를 일일이 곱하며 몇명이 어디서 왔나를 유심히 봤다. 벽에 걸리 플랭들도 열심히 보고..


조직이 애초에 없었던 학출 학생운동가에게 그리고 철저히 혼자인 활동가에게 전국적인 조직은 언제나 손에잡힐 듯한 꿈이고, 그리움이다.  정치적 지향을 같이 하고, 같은 조직의 조끼를 입고 오고, 대중들을 만날 수 있는 동지가 있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다. 이제는 철저히 '혼자하는 활동'에 익숙해 진다. 생각도 판단도 정보도 철저히 혼자 가지고 혼자 사고한다. 실천도 내 맘대로 이다. 하고싶은 하고 하기 싫으면 않하고..그래서 그게 외롭고 때로는 내가 거쳐온 과거가 정말 원망 스럽기도 하다. 차라리 누가 뭐라 해도 어디 소속인 사람이 되고 싶은..

 

분위기는 만들어 가는 거다. 활동가 대회에 모인 사람들은 이곳에서 결의들을 모아내고, 자신의 실천 결의들을 밝혔다. 선언은 13일 전야제에서 전국의 문선패 동지들과 사회적 합의주의 플랭을 찢어 버리는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밝혔고, 현차비정규노조 활동가는 '울산지역 공대위'와 현차민투위와의 공동투쟁을 제안했다.


 활동가 대회 유인물이다. 붉은 색의 유인물, 그리고 손수건 위에 남겨진 붉은 시선이 사람의 맘을 잡는다. '너 제대로 살아라'라고 나를 다그쳤다. 그래서 이 아저씨의 시선에 눈을 맞출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모인 사람들은 돌파구를 찾으러 온것 같다. 그것이 의자 밑의 꽃병을 찾는 순진한 활동가들의 모습으로, 노동해방을 외치며 어색한 공기들을 풀어가는 것 처럼, 전국의 동지들과 악수하며 '잘 살고 있었냐'고 인사를 건네는 그 맘 처럼 애틋하게. 그리고 같이간 참세상 방송국의 활동가들도 그랬던 것 같다. 관찰자나 집회의 제 3자가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팔뚝질도 하고 구호도 외칠 수 있었던 그날은 활동가들에게 조금은 피곤하지만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가 되었음을 느낀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실천한다는 것은 집회에 가야 느끼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이 날은 '나도 뭔가 하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갖을 수 있었다.  

 

 

         

▲약간의 사진설명을 붙이면 행사 끝나고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태곤, 편집장, 소장님, 진찬, 혜리, 하은, 용욱 그리고 뒤에 녹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홍킹이다. 난 사진을 찍고..

 

 

4학년 이후에 나에겐 나쁜 버릇이 생겼다. 믿지 않고 의심부터 하는 버릇. 설령 그것이 맞을 지라도 일단은 의심부터 하는 습관. 이 습관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내 판단을 흐린다. 내게 요번 활동가 대회에서도 엮시 그랬다. 왠지 활동하는 좌파들은 다 가야 할 것 만 같은 자리, 안 가면 제대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쫓겨서 간 자리 였다. 한번 쯤 전국의 동지들을 보며 흩어져 있어도 뭉쳐 있는 우리! 라는 자신감을 갖기에는 내게 뭔가 부족했다. 그 부족한 2%를 찾는 것이 나의 과제 였겠지만 나는 끝내 찾지 못하고 올라왔다. 그게 무엇이였을까?

 

나는 무엇을 결의해야 할까. 자신의 활동 공간에서, 자신의 조건에서 자본과 정권의 공세는 강화되고 현장이 깨지고, 조직이 깨지고 활동가들이 사라지는 이 엄혹한 시기에 내가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를 좀 구체화 해야 겠다. 조만간 나의 결의문..수정에 수정을 거쳐 게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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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

많은 것을 기다리며 살고 있잖아. 어차피 나는 많은 것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데 지금도 또 기다리고 있다. 철야농성 73일째라고 써있는 사무금융연맹에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인기척도 나지 않는다. 어색한 공기가 가득차고 이들도 복직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지..

 



난 회의를 기다리는 거다. 4시에 있을 BIT회의. 몇명이나 올지 모르지만 정보통을 모을 회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모는 TV 아침 프로그램 중 선택이라는 프로를 열심히 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읽다가 TV 소리에 책을 덮었다. 이미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책에 집중하는 것을 글러먹는 거니까.. 같이 앉아서 TV를 보다가 너무 절절하게 동화해 버리는 이모를 보면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리보니 요번달은 이모한테 생활비도 못주고 이 한몸 추스리기도 급급하다..

 

기다리고 있다. 좀더 생활이 편해질 날을.. 엄마 아빠의 짐을 덜어 줄 수 있는 날을.. 보수 반동 작은 오빠한테도 당당해 질 수 있는 날을...좀더 내가 하고싶은 것을 마음 껏 할 수 있을 만큼 나를 키울 수 있는 그날을..맘 편히 사람들을 만날 날을... 무언가를 재지 않고 사람들을 그대로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을...

 

그리고 기다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서 있는 것인데..

갑자기 조급해졌다.. 뭣 때문에 또 이럴까..

 

가을이라 그런가.. 춥다가 갑자기 날씨가 풀려서 그런가..

아님 정확히 2개의 글이 내게 밀려 있어서 그런가..

좀 답답하고 우울하다..

왠지 오늘 증세를 보아하니 한동안 모르고 지냈던 슬럼프가 다시 올것 같은 불길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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