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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펙투쟁, 제 민중단위의 시험대

울산노동뉴스에서 부탁받아 시간에 쫓겨 쓴 거.

음..좀 잘쓸껄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런데로 뭐..

사실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부산시민행동은 부산 민중연대를 중심으로, NL단위들이 주축이 되어 출범한 기구이다. 선점하고 출범하여 지역 활동을 하는데, 이와 좀 성격이 다르게 부산지역에서 활동하는 좌파들이 모여서 부산투쟁위원회를 구성했다. 활동력은 아쉽게도 부산시민행동이 앞서고 있는 상황.

 

국민행동과 민중행동은 좀 다른데, 구성 인자 및 활동가들이 대거 비슷하다. 그렇지만 워낙 정부가 자유무역협정이나 12월 WTO 각료회의들이 남은 상황에서 반세계화 활동단위들이 필요한 상황인데, 민중연대는 자신들의 단위를 중심으로 그쪽 단위들이 세를 확장 하려 하고, 기존의 반세계화 좌파 활동단위들과 같이는 해야 할 필요는 하는데 괜히 힘실어줄 것 같아서 꺼려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그래서 공동투쟁으로 해야 하는것 아니냐. 우선 꾸리고 틀 맞춰 가자'는 형식으로 꾸려진게 민중행동이다. 음..내가 보기엔 그렇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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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펙(APEC)대응 10만 투쟁을 준비하는 민중들의 발걸음.

 

정부의 모든 신경이 부산에 쏠리고 있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경찰청은 보수단체들을 앞세워 부산 지역의 집회가 가능한 대부분의 지역에 집회 신고를 선점하더니 급기야 해외의 활동가 998명에 대해 입국 불허 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편파적인 부산시 교육청의 교육자료에 문제의식을 느낀 전교조 부산지부는 '아펙 바로알기’ 교육안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후 한나라당을 앞세운 보수세력들의 반발이 줄을 잇고 있다.

 

국제 행사 때면 여지없이 등장하는 '거리 환경 조성'을 위해 이미 지난해부터 부산 지역 노점상들은 단속에 쫓겨나야 했다. 생계 대책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이런 단속 과정에서 인권탄압 사례는 수도 없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테러 위험’ 운운하며 부산, 서울 등 거리 곳곳에는 구리구리한 노란색 겉옷을 걸치고 곤봉을 차고 모자를 뒤집어 쓴 병력들이 대거 깔렸고, '이상하게 배가 불룩한 테러범'들을 찾기 위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운운하는 부산시는 각 국 정상들이 한번 들를까 말까 한 UN기념공원 방문을 대비하기 위해 350억원의 돈을 들여 평화공원을 조성했다. 그리고 이제는 '성공개최를 기원하는’전국단위 무차별적인 미디어 광고를 쏟아내고 있다. 

왜 민중들이 아펙(APEC)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잘 서명될 것 같다. 이 글에서는 18-19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일정에 보폭을 같이하며 남한 민중운동 제 세력들이 부산 집결 투쟁을 결의하고,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현재 反아펙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공식 활동 단위는 전쟁과빈곤을확대하는아펙반대부시반대‘부산시민행동’과 전쟁과빈곤을확대하는아펙반대부시반대‘국민행동’이다. 그리고 관련 단위로 '신자유주의세계화반대민중행동'과 부산지역 활동가들이 10월 말 경 결성한 '부산투쟁위원회'가 있다.   



아펙반대, 부시반대 '부산시민행동'

 

아펙은 회의 개최지 결정을 순번대로 한다. 12회 회의(2004년 11월)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진행됐고, 13회는 순번에 따라 한국에서 진행, 개최지가 부산인 셈이다. 부산 민중운동 진영에서는 ‘어떻게 아펙에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며 올해 초 부산 지역의 노동-사회단체들이 준비단위를 구성했다. 이후 34개 부산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노동-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부산시민행동'을 구성한다.

 

개최지인 만큼 고민이 빨랐던 것이고, 특히 부산시의 압도적인 선전작업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부산시민행동 결성 이후 서울을 거점으로 전국활동을 하는 노동-사회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국민행동’을 구성한다. 따라서 조직 결성의 선 후차 순서에 의해 2개의 공식 단위가 결성 된 것이나 이후 논의를 통해 구성상 국민행동이 부산시민행동을 포괄하는 운영구조를 갖기로 결정했다. 

 

4/22 아펙에 우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단위들 내에서도 2004년 한-일FTA(자유무역협정) 협상 저지를 위해 ‘동경원정투쟁’을 진행한 성과를 모아 'APEC 정상회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2004년 하반기 '원정'투쟁 등을 주도했던 ‘반세계화공동투쟁기획단’의 해소 이후 이런 고민들이 구체화 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아펙 대응 투쟁'의 필요성에 절감하는 단위들이 기초 논의를 시작했고, 4월 22일 토론회를 통해 좀 늦긴 했지만 구체적인 가닥을 잡기 시작한다. 4월 22일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는 '반전! 반세계화! 반부시!'라는 아펙 투쟁의 정치적 기조를 정하고, '부산 총 집결 투쟁' 방안들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는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아펙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리고 투쟁'에 관해 류미경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정책국장, '아펙과 전쟁확대 그리고 반전투쟁'의 주제로 김어진 다함께 운영위원, '아펙 어떠한 태세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이종화 전국민중연대 반세계화특위장의 발제로 진행됐다. 또한 민주노총, 전국빈민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의 단위 참가자들이 약정 토론을 진행했다. (기사 참조 : http://news.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2365)

 

그리고 이 자리를 통해 부산 아펙투쟁의 상을 'WTO 홍콩 각료회의 저지 투쟁'의 징검다리 투쟁으로 정하고, 부산투쟁을 전국 투쟁으로, 남한 민중투쟁의 총집결을 요하는 투쟁이라는 공통의 상을 잡는다. 참가단위들은 아펙 대응 투쟁에 대해 모두가 절감하며, 정치적 지향과 성격을 떠나 제 운동단위들이 ‘자신의 투쟁’으로 받아 안고 부산 집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모은다. 

 

6/1아펙반대국민행동 (준) 출범

 

이런 논의들을 바탕으로 아펙 반대 투쟁을 조직할 전국단위의 기구가 출범한다. 6월 1일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APEC)반대 국민행동(준)이 상징적으로 외교통상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지며 공식 발족한다.

 

출범 직후 국민행동(준)은 2005년 아펙(APEC) 통상장관회의(6/3)가 진행된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앞에서 통상장관회의를 규탄하는 아펙반대 집회를 개최, ‘아펙이 어떻게 민중의 권리를 파괴하고 있는가’를 폭로하며 여론을 반전시키는 활동을 시작한다. (기사참조 : http://news.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2847)

 

이후 여론의 집중을 받았던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6월 8일 부산에서 진행한다. 이날 토론회를 공동주최 했던 국민행동(준)과 부산시민행동은 토론회를 통해 부산시에서 강조하는 ‘아펙 유치를 통한 경제적 효과’가 허구임을 밝히고, 전 민중적 투쟁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기사 참조 ; http://news.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2886)

 

또한 국민행동은 캐나다 오타와 대학 교수이며 ‘빈곤의 세계화’의 저자인 미셸 초스도프스키 교수의 전국 강연회를 통해 ‘세계화’의 패권 전략과 한국 민중들이 당면한 투쟁 과제를 받아 안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이 토론회는 전국 순회 토론으로 진행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반(反)아펙 투쟁의 필요성'을 교양 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기사 참조 : http://news.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3703)

 

8/26 민중행동 출범

 

국민행동(준)의 출범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아펙'만 뚝 떼어놓는 것이 아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제 민중의 투쟁 기구가 필요함이 강조되어 왔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FTA(자유무역협정)과 12월 홍콩에서 개최될 WTO 각료회의 등 자본의 세계화를 실현하는 국제기구들에 대항한 '반세계화' 연대기구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었고,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세계화반대민중행동(민중행동)`이 8월 26일 대표자회의를 통해 공식 출범한다.

 

민중행동은 아펙반대국민행동을 포괄하며 남한 반도 내 반세계화 활동단위를 총괄하는 단위로 그 위상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또한 민중행동은 2004년 동경원정 투쟁을 진행했던 '반세계화공동투쟁기획단'의 성격을 이어 반세계화 투쟁 기구로 공식 출범한다.

 

따라서 민중행동은 反아펙 활동 뿐만 아니라, 12월 WTO 홍콩 각료회의 저지를 위한 국제 활동을 중심으로 포괄적인 '반세계화 투쟁'을 준비 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의료 교육 등의 시장정책, 제주특별자치도와 같은 자발적 자유화조치들, 농민의 쌀 투쟁과 같은 식량 보장에 관한 문제들에 적극 결합하며 국내외 활동을 병행하며 아펙 반대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9/7 아펙(APEC)반대 국민행동의 공식 출범

 

아펙반대 국민행동은 부산 지역 선전을 비롯해, 아펙 10문 10답 등의 선전물들을 배포하며 여론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9월 7일 54개 노동사회단체가 ‘10만 부산민중대회’의 투쟁 계획을 밝히며 국민행동은 (준)자을 떼고 공식 출범한다. 국민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11월 부산에서 개최될 아펙(APEC)정상회의 개최와 부시의 방한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발족한다"며 기구의 취지를 밝혔다.

 

이후 아펙반대국민행동을 중심으로, 부산 지역에서는 부산시민행동을 중심으로 아펙에 대한 선전, 여론 사업을 진행한다. 서울에는 명동, 서울역 등을 거점으로, 부산에서는 태화, 해운대 등에서 선전전 및 문화제 등 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에는 문화운동 단체들과 연대하여 'NO-APEC FESTIVAL'을 진행하며 이색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월 24일에는 '10만 부산 투쟁 조직 위한 전국 순례'단이 공식 활동을 시작하며 전국 순회 투쟁에 돌입한 상황이다.

 

부산에서 늘 집회가 열리는 서면, 시청, 부산역 광장을 포함해, 시민 선전전을 열기 위한 사상, 남천동, 동래, 해운대 일대 등 부산 시내 곳곳에는 이미 보수단체들에 의해 집회신고가 되어 있다. 국민행동과 부산시민행동은 부산시 해운대 근처 추가 2000여 곳에 집회 신고를 하는 등 강수 대응을 하고 있지만, 투쟁을 막기 위한 정부의 정책 또한 치졸하기 이를 데 없다.

 

아펙 바로 알기 수업안을 올렸던 전교조 부산지부는 때아닌 색깔논쟁과 교사 자질논쟁에 휩싸였고, 외국의 반세계화 활동가 998명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가 내려질 위기에 놓였다. 경찰청은 1년 동안 각 국의 협조를 받아 명단을 취합, 998명에 대한 입국 불허를 법무부에 신청했다. 아펙반대 국민행동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3일 '전교조 탄압 및 해외 참가자 입국 금지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과제는 명확하다. 빈곤을 양산하고, WTO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아펙정상회를 저지 시켜야 한다. 이런 민중 동향에 정부는 집회 봉쇄, 준 전시상황을 조성하며 공안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현재 국민행동이 밝히고 있는 공식 일정은 △11/12 아펙반대부시반대 투쟁 선포식 △ 16~17일 부산국제민중포럼 △17일 부시방한반대, 한미정상회담 규탄 대회(경주) △ 17일 아펙반대부시반대 국민 투쟁 전야제 △18일 노동, 농민, 빈민, 청년학생의 부분대회를 포함한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부시반대 10만 국민대회 △19일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부시반대 2차 국민대회 등이다.

 

아펙 반대 투쟁을 통한 승부수는 제 노동-사회단체들에게 떨어진 상황이다. 이라크 전쟁의 책임자인 부시 미 대통령을 비롯해 각 국 정상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그 때, WTO의 돌파구로 아펙(APEC)이 기능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고, 아펙(APEC)회의 주최국이 된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이는 남한 민중 진영에게 떨어진 과제이다. 


덧붙임.
APEC이 영문 명칭이다 보니 ‘아펙’또는 ‘에이펙’이라고 읽는다. 아펙반대 국민행동은 비공식 토론 첫 회의에서 APEC을 ‘아펙’으로 통일해 읽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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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파 텔레파시를

제목을 나한테 초능력이 있는 거 같다라고 쓸까 하다가 '저주파 텔레파시'로 바꿨다. 왠지 음..초능력은 아닌 거 같아서..

 

중국에 다녀온 이후로 어찌나 변수도 많고 상황도 많은지..

중국 여행 다녀 왔더니 이미 몇몇 활동가가 활동을 접은 상황이었고..

참세상 활동가들이 몇몇이 연락도 없이 잠수 타더니 결국은 또 활동을 접는 상황을 맞이했고..

그들의 선택을 바라보면서 많은 고민도 하게 되고 많은 생각도 하게된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그래도 어떻게든 해야 될 거 아니냐고 애써 섭섭하고 아쉽고 화나는 맘을 누른다.

 

내가 저주파([low frequency, 低周波) 텔레파시를 마구 마구 내 뿜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몇일 전 저녁과 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 때문이다.



애써 아쉬운 부분을 털고, 아픈 부분에 약발라 주고, 그간의 상황들을 안주삼아 이야기 하고 참세상 사람들과 의기 투합하고 집에 도착한 새벽.

운전중에도 문자를 날리는 배테랑 운전기사 아저씨를 만나 달랑 3천원으로 5천원 거리를 왔던 그 새벽.

엄마 숙제를 했던 그 새벽.

잠수 탔던 한 활동가가 '이제는 활동을 접는다'며 신변의 글을 남겼던 그 새벽이다.

 

잠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잠수함은 언젠가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뜬다'라는 내 논리식의 기다림에 대한 허탈감 때문인지.

숙제가 너무 벅차서 그랬는지 ..

왠지 모르게 쫘~악 가라 앉는 그 새벽.

참세상 뉴스 페이지가 참이나 쓸쓸해 보이던 그 날....

 

요지인 즉.

다들 한번쯤 겪었을.. 모두 이렇게들 떠나나 싶은 상황에서의 허탈감이 쎄~~게 왔을 때 등불 처럼 나타나 "그래도 동지에겐 우리가 있잖소"라면 손을 건네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등장한 다는 것이다. 어쩌면 평소에도 그들은 늘 있었고, 늘 그렇게 내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인지 모른다. 평소의 내가 몰랐을 뿐일수도..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

"나 때문에 그런건가?"

 

내가 졸라 쪼그라 든다는 느낌에 이런 생각들이 나를 떨어지지 않던 그 새벽에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너무 화가 나서 글을 썼다는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참세상에 실어줄 수 있겠냐' 라는 짧은 메일과 첨부 파일을 보내왔다.

 

뭐 다른 사람들은 그게 뭐 별거냐. '너 상태가 너무 안좋은 거 아니냐 '라 할 수 있지만..그렇지 않다. 그 순간 만큼은 내게 그 글은 잠시 길을 잃었다가 다시 내가 갈길을 찾은 '환희'의 느낌이었다. 참세상에 대한 말도 많고, 활동가들도 대거 떠나고 내가 남은 것이 오히려 내 고집으로 스스로를 합리화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 그 외로운 새벽에 참세상을 동지로 찾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내겐 눈물날 만큼 고마운 상황이었다.

 

"그래 이렇게 주저 앉으면 안되지. 내가 이렇게 망연자실할 필요가 없지"

 

냉큼 글을 등록대기에 올려놓고, 감사의 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도 정말 짧은 내용이었지만 그 새벽녘의 방황을 단칼에 끈내준 고마운 동지에게 감사의 마음 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운동을 정리하면서 내게 '섭섭하다'고 말했던 선배한테 오래간만에 전화가 왔다.

 

"잘 니내냐? 살만해?"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학교 때 워낙 애뜻하게 내가 쫓아당긴지라. 활동을 안해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갑작스레 밤 11시에 전화를 했다. 그녀 말이 "그냥 생각이 났단다"

 

어찌나 반갑던지.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현재의 상황을 잘 넘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상당히 외로웠던 거 같다. 그러니 그렇게 전화한통화 메일 한통이 눈물나게 고맙지..

 

"넌 그렇게 사는 게 잘 어울려"

그날 그 선배는 한번 영덕에 놀러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 녀석이 술에 취해 전화를 했다. 생각해 보니 이게 다 하루에 벌어진 일이군..요즘 참이나 상태가 좋지 않은 녀석이, 맨정신에는 말도 짧은 녀석이 그날은 술에 취해 이말 저말을 마구 늘어놓는다. 진작에 내가 같이 고민해 주고, 이야기 해 주고 했어야 할 말들을..내가 먼저 손 내밀었어야 하는데 그녀석이 먼저 SOS를 쳤다.

 

'내가 내 상황 안 좋다고 나만 보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결국 전화기가 그냥 끊겨 버렸지만..  

 

고로 내가 저주파 텔레파시를 내 뿜고 있다고 생각이 든 것은 기타 이런 상황 말고도 여러 상황 들 속에서 '내 상태가 이러니 나한테 연락해~~연락해~~'라는 식, '내가 요즘 힘이 빠져 있으니 나한테 힘내라 문자보내 문자보내'라는 식의 남들이 인식할 수 없는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고, 그 주파수를 육감적으로 감지한 사람들이 나에게 가시적인 반응을 해 오고 있는 상황 들이 신기하게도 시기 적절하게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저주파 텔레파시를 내뿜는 것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나, 내가 남들의 텔레파시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부터 숨겨 놓고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안테나를 높게~높게 세우기로 했다. 나의 갑작스런 연락에 놀라지들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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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자기..

방금까지 엄마 숙제를 했다.

물론 지금도 하고 있고..

그녀의 꿈을 함께 이루는 것이 내게 참이나 재밌지만

조금은 벅찬 일인듯 싶기도 하다..

내 대학때도 다루지도 않았던 파워포인트를 ..

학교 때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기관 실습 서를 ...

한번도 만들어 본적 없는 각종 동물들을 만들면서..

 

하지만 그녀가 보내온 세월을 생각하며..

당연히 그녀를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 생각하며..

오늘 이 새벽도 그녀와 함께 한다..

에구..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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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 의심되는..

사람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적어도 그 사람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정치적 의도 깔려 있다 하여도

우선은 믿고 우선은 지지,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한다는 전제 조건하에..

그래서 간혹 나의 정치적 선택을 의심받거나,

'너 그 쪽 사람이냐?'라는 말을 들어도

열심히 한다면

우선은 그들에게 손을 들어준다..

난 ..그렇다.

 

오늘 나는 진정성이 정말 의심되는 말들을 들으며

이게 진정인가 아닌가을 따지고 젠다..

어디까지가 배려일까, 배려가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딴 동네 가는 사람들 꼭 저소리 하더라..

다시 두서 없는 생각들을 곱씹고 곱씹고

그리고 나서 팩 한마디 던졌다.

사실 더 세게 치고 싶었는데, 

그냥 참았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내 동기들은

그리고 한 선배는

언제가 내 후배는

왜 자신들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더 이상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왜 붙잡지도 않고, 아무말도 없냐고 나에게 섭섭함을 표시했었다.

 

뭐 그럴 필요 있을까.

집회 안나온다고 뭐 거시기 한 것 도 없고

사회 변혁적 의지와 개인 일이 비례하거나 반비례한 선택도 아니고.

이미 맘 떠나기로 한 사람들의

쌓이디 싸이는 이유 들어봐짜 변명으로만 들리는 것을..

'그냥 거기서 잘 살아요'

'좋은 선생님 되세요'

 

간만에 소문으로만 듣던 권재철의 말보다

더 짜증나고 실망스런 말들을 주서 들었다.  

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낀 솔직함이다.

 

내가 보기엔

그는 아직 사태의 본질을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애써 자기 명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얘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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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내는 동지들..

사직서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13인의 민주노총 상근 활동가들이 민주노총 상근 활동을 접었고,

각종 지역본부장들이 사퇴의 변을 밝히고 있다.

오직 굳건하고 귀를 막고 있는 사람들은 조합원의 냉소를 느끼지 못하고 

그들만의 민주노총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뿐이겠지..

 

* 민중언론 참세상["민주노총 지도부는 조직적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라"] 에 관련된 글. 13인의 선택에 대해 난 적극 지지 한다. 그들의 선택이 옳기 때문이다. 기자회견 시작에 앞서 전노협 민주노총에 이어 계속 상근 활동만 했던 한 활동가는 "늘 기자회견 준비나 하고 뒷 치닥거리 하다가 이렇게 직접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라는 우스겟 소리를 했다고 한다. 참이나 안타까운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의 절박함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 젊음을 바친 그들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미래의 꿈이 싸잡아 뭉게지는 참고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비굴하지 않을까. 당당하게 살기위해 가난해도 견뎌내고 사람속에 희망 찾는 것이 이네들의 삶이고 꿈인것일진데.. 민주노총이 아니어도 노동운동은 계속 할 수 있다.



사실 저들은 아직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는데..

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참이나 굴곡 많은 부부를 만났다. 그중 1인도 사직서를 낸 활동가다.  "관둘땐 관둬도 일은 마무리 해야 하지 않겠냐"며 비시시 웃는다. 참이나.. 어련하실라고..정신없이 치이다 보니 사직서 제출도 못했다고..그 시간까지 자료 보냈다는 문자를 날리고 있었다. 그 발걸음 그 애정이 그리 쉽게 떨어질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한명의 사직 소식을 들었다. 오늘 민주노총 게시판에서 본 동지의 사직의 변.

 

사직서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민주노총에 들어와서 능력은 부족하지만 진정한 노동운동이 무엇인지 제 능력껏 조금씩 느끼고 배워왔습니다. 제가 민주노총에 면접을 보러 왔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당시 사무총장이신 이수호 위원장과 사무차장이었던 오동진 선배... 어쩌면 두 분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민주노총에 사직서를 제출하지도 않았겠지요. 하지만 두 선배님 덕에 민주노총에서 많은 추억과 좋은 동지들을 또한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젠 제 한계인 듯 합니다. 정파를 떠나, 더이상 노동운동의 선배들이 정도를 걷지 않는 모습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복구하여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가 변변히 못해 휴가를 쓰고 있었지만, 동지들을 생각하면 늘 죄책감에 마음이 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더 두려운건 그렇게 바라던 나의 일터로 돌아가기가 두렵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일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동지들을 만나고 함께 투쟁하는게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동지들을 만날 자신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만날 수 있는 동지가 없다면 저는 민주노총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차라리 마음 편히 쉬면서 병을 치유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더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수석부위원장에 대한 사건을 지도부가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 풀어주시길 바랬습니다. 수석부위원장 개인으로는 인간인지라 실수를 했다손 치더라도, 민주노총의 지도부라면 그 책임을 함께 지고 민주노총의 도덕성을, 아니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회복시켜 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제 기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노동운동의 한참 후배이지만 이제 제 앞길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에서 6여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고 깨우쳤습니다. 제가 어떤 곳에서 다시 운동을 시작하더라도 그 경험을 살려 최선을 다하며 운동하겠습니다.

 

참이나 민주노총에서 보기 드물게 밝고, 맑은 동지였다. 직접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어찌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칭찬에 칭찬을 하는지..

 

대딩 시절 민주노총으로 실습 왔다가 졸업후 민주노총으로 삶의 방향을 정했던 사람

그 덕에 어린 나이에도 경력 6년차의 왕 고참이 되어 있는 사람.

현재는 우울증으로 병가를 내고 쉬고 있는 사람.

임진희 부장이다.

그 동지를 봤던 사람이라면 '정말 민주노총 분위기가 아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의 사람이다. (폄하 하는 것이 아니고, 부추겨 세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느낌에..)

그리고 사직서에 드러난 그 동지의 선택이 안타깝고 안타깝다..

 

일전에 레이버 투데이가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당시 이수호 위원장은 "최근 사무처 분위기가 좋아졌다"라는 말을 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이수호 위원장은 국어 선생 답게 사무처 회의때 시도 읽어 준다며 화기 애애한 분위기를 강조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임진희 부장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후 병가를 냈다.

 

그리고 쉬고 있던 사람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심지어 이수호 위원장과 임진희 동지는 결혼식 주례까지 서주던 그런 관계였다. 그래서 이 글이 정말 안타깝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오늘 민주노총 활동가가 사직의 의사를 밝혔다. 어제 굴곡많은 부부에게 들었던 그 활동가. 결국에는 사직의 변을 밝히며 '노동과 세계'에서 자신이 일구고자 했던 꿈을 이야기 한다. 아쉽지만 활동을 정리하면서..

 

누구는 자꾸 현 집행부의 사퇴를 주장하면 이게 선거로 연결되고, 선거는 결국 정파적 대결 구도로 해석되기 때문에 타격의 쟁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혁신, 노동 운동의 혁신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물론 다양한 주장도 있겠지.  

 

내 그릇이 작아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난 여기에 좀더 덧붙이고 싶다. 모두가 알고 모두가 이해하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현재 민주노총 집행부 유지하고 있는 자리로 인해, 그들만의 명분으로 인해 짓밟히고 있는 노동운동가들의 꿈과 미래, 그리고 부정되는 과거의 인내가 있다는 것이다. 13인으로 대표되는 전국의 수많은 활동가들이 민주노조로 대표되는 민주노총과 함께 투쟁하며, 조직된 노동자라는 과제를 받고 만들고자 했던 꿈들이 다 뭉게 지고 있다는 것이다. 발등을 찍을 만큼 분노스럽지만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문을 외워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더럽고 어이없고, 주마등처럼 주변 사람들의 핀잔이 멤돌아도 ..

나 역시도 '니네 동네 시끄럽다메'라는 멋모르는 친한 지인들의 걱정스럽다는 말이 이렇게나 당황스러운데..

 

사무금융에서 해고 문제가 발생한 이후. 한동안 게시판이 시끌시끌했다. 노동조합에서 상근활동가를 부당 해고하는데 어떻게 사용자들한테 가서 부당해고 하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겠냐고.. 물론 이어 이어 집행부는 사퇴에 관한 주장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연일 도배가 됐었다. 그러나 귀를 닫고 뭉게고 정파적으로 몰아세우던 집행부는 뭉게고 뭉게더니 유유자적하게 자리를 지켜 지금까지 오고 있다. 민주노총의 현 집행부도 정말 그런 행태와 비슷하게 이어지는게 아닌지 오히려 더 불안할 뿐이다. 민주노총은 좀 다르길 바랄 뿐이다.

 

그 들 중에 직접 아는 사람이라야 손으로 꼽는 정도 수준이지만..

난 그들의 선택을 지지하고

그리고 그들이 이런 선택으로 인해 운동판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오히려 제대로 하기 위한 선택이었기에 더 열심히, 곳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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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사람들과의 당구장

그리보니 벌써 저번주 일이네.

금요일에 참세상과 진보네의 공동 회식이 있었다. 휴가기간에 정해진 일정인지라 어째 잡힌 회식인지는 잘 몰겠고, 개인적으로 세관을 통과한 중국술 2병과 나와 함께 중국을 누빈 소주 2팩을 이날의 회식에 기증했다. 중국술은 눈치껏 술 사는 중국사람들 관찰 끝에 골라온 것인지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맛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이날 일정이 있어서 잠시 회식에서 빠졌던 나는 일정이후 다시 멤버들과 합류했다. 당연히 술을 마실거라 생각했던 멤버들은 2차 이후 동네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난 당구를 못치기도 하거니와 늦게 결합한 관계로 대결을 열심히 봤다.

 

팀의 구성은 용욱+삼권+홍킹이 한팀, 달군+편집장+파차가 한팀. 이 양팀의 대결이었고 홍킹의 선전으로 홍킹네 팀이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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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영이 결혼식

고등학교 1학년때 처음 만났으니가 10년지기 친구다. 1학년 때 학생회 선거때 경쟁자로 만났던 녀석이 결혼을 했다. 혜영이의 모토나 포스터는 기억이 안나는데, 친구는 방송 유세때와 포스터에 자신이 웃으면 보이는 '황금니'를 상징으로 걸었던 걸로 기억난다. 물론 웃으면 보이는 예쁜 금니는 여전하다.

 

성고협 동기중에 누가 제일 먼저갈까 싶었는데 역시 혜영이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모두모두 돈을 모아 밥통을 샀다. 그리고 서둘러 집들이를 하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엮시나 집들이는 요번주 토욜로 잡혔다. 이런 방식 좋은 거 같다. 하하

 

형이 ROTC(?) 출신이란다. 암튼 이런 결혼식은 처음 봤는데, 후배들이 교열을 해서 칼로 멋지게 등장 시켜주더니, 나중에 행진할 때는 장난을 걸었다. 칼로 가는 길을 막고 시키는 대로 해야 보내주겠단다. 신부 업고 앉았다 일어났다 시키고, '나는 변강쇠다', '오빠 화이팅'을 외치게 하고.. 암튼 후배들의 재간에 재밌고 유쾌한 결혼식이 됐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이번으로 두번째다. 은희는 너무 서둘러 결혼해서 감이 없었고, 혜영이네는 형이랑도 친해서 좀 실감이 난다. 결혼식장에서 밀려오는 벅찬 감동이란.. 내가 키워 결혼시키는 것 같아서 어찌나 든든하고 좋았다. 아마 좀만 더 지나면 조급증이 밀려오긴 하겠지만 지금까지는 여유로운 상황 ^^;

 


         

 

그리고 이날 모인 성고협 녀석들. 소식이 끊긴 녀석도 있었고, 토요일 결혼식에 근무가 잡혀 못나온 녀석들도 있었다. 이제는 후배도, 여친들도 모두 두루두루 만나는 사람들이다. 내가 성남에서 제일 좋아하는 그룹멤버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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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사건들도 즐비하고..

올해 유난히도 노동조합 간부들의 비리 사건들이 많이 언론을 탄다. 기아차 사건도 그렇고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 사건도 그랬다. 한국노총 건물 삐까 번쩍하게 올라갈 때도 그랬고 다른 자동차 대공장 노동조합에서 노예 매매하듯 돈으로 사람 명줄 가지고 논다는 얘기를 적잖게 들었다. 급기야 소문만 무성했던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이 긴급 체포됐다.

 

* 민중언론 참세상[민주노총, 강승규 수석 혐의 드러날시 엄정처리 방침] 에 관련된 글. 소위 노동운동을 한다는 사람으로, 선진노동자들의 대중조직체인 노동조합을 고민하고, 노예의 사슬을 끊고 당당한 노동자의 깃발을 세웠다는 민주노조의 역사를 계승한 민주노총을 구심으로 사회 변혁적 노동운동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람의 한 명으로 참으로나 답답한 상황이다.

 

그래 그 놈들 원래 그랬던 놈들이야.

라고 치부하기에는 내가 하는 일 모두가 '같은 일'로 '퉁 쳐지'는 오명이 너무나 억울하기도 하다. 어디까지, 누구를 그런 놈들이야와 그렇지 않은 놈들이야로 나누기도 모호하고 구분해 내기도 어려우니 답답하다. 그렇지만 결국 이런 놈들이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잡고 떵떵 거리게 만든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원죄의 족쇄도 차고 있으니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짧디 짧은 열사정국에 연이은 어정쩡한 파업 선언 그리고 뒷목 떙기는 이런 소식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말그대로 미꾸라지 몇마리가 흙탕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러지 말자는 생각을 할 뿐이다.

 

소식이 날 때마다 찔끔 찔끔하다.

나같은 사람도 이런데, 젊은 평생을 지역에 현장에 꼴아박은 사람들의 심정이야 어떠하랴. 

무엇이 문제일까. 왜들 그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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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종료

어제 저녁 9시 부로 나의 휴가는 종료 됐다. 

내내 비가 내리던 상해를 떠나서, 한국 아자씨와 아주머니들이 드글드글한 비행기 타고 인천공항에 내렸다. 어찌나들 비행기 면세 상품들을 사제끼는지 내 앞에 아저씨는 한국 돈 24만원짜리 펜도 샀다..

 

무사히 복귀. 아직은 얼떨떨하고 피곤하지만..

암튼.. 2005년 휴가 종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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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하기2

이번 여름 휴가는 기나길게 한번 정리해야 할 듯..

여긴 북경에 있는 왕징. 한국인들과 조선족이 많은 관계로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다.

슈퍼나 동네 상점들 모두 한국어, 한국 물품들이 즐비하다..

숙소도 한국 분이 운영하시는 것에, 조선족 아주머니가 있어서 소통에는 지장 없다.

최근 대장금이 방영중이라고 하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다..

아파트 입구에는 신기하게 요쿠르트 라고 써 있는 한국의 요쿠르트 아주머니가 입고 다니는

특유의 옷과 가방을 든 요쿠르트 판매원이 있다.. 생긴 것도 한국 것과 같다..

한국을 그냥 옮겨 놓은 것 같은 곳.. 

물론 동네 돌아다니다 보면 꼬치 구이 팔고, 만두 팔고 하는 등의 모든 것은

중국의 일반 동네와 비슷하지만.. 아무리 봐도 잘사는 동네 티가 많이 나는 곳이다.

아침에 문 사장님 이라는 조선족 사업가를 만나 이것 저것 얘기 하고

내일 공장 견학을 하기로 했다..^^

잘만 하면 요번주에 취재가 끝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후에는 중기청과 상공회의소 북경 사무소에 나갈 예정이다.

같은 동네에 있어서 점심시간 끼어서 이동하면 될 것 같아 이동에 앞서 정보를 모으러 왔다.

 

왕징에는 한국 교회가 운영하는 청소년 문화센터가 있다. 

정말 운이 좋게... 친구가 소개 시켜준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정말 국제 공항이라는 곳에도 영어 한마디 없다.. 

심지어 공중전화카드 판매하는 얘들도 영어를 모른다.. 정말.. 신기하다..

나를 불쌍히 여긴 친구가 지인에게 부탁을 하여 정우성 때문에 공항에서 길을 잃고 헤메이던 나를 챙겨 왕징에 있는 숙소까지 잡아주고, 데려다 주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 소개 시켜 주며 이것 저것 중국에 관한 얘기들을 해 준다..

사실 그들이 중국에 와서 살아온 얘기들을 해 준다.. 그리고 생각과 많이 다른 그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 내가 불쌍해서 인지, 종교인들이라 서로 끈끈해서 인지..

아님 타지에서 고생많이 해서인지.. 정말 사람들이 좋고, 다들 자기 일처럼 나선다..

정말 내가 미안할 만큼 개인 시간들 쪼개서,

서울에서 였으면 한번쯤 귀찮아 할 일도 서로 나서서 해준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끔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반추하게 된다..

^^ 암튼.. 인복이 있어 좋은 분들 많이 만났다..

돌아가면 친구녀석에게 큰턱한번 쏴야 할 것 같다..

 

어제는 한국으로 따지면 용산전자 상가격인 북경 시내의 중간촌이라는 곳에 갔다..

물론 규모나 물품 그리고 가격 면에서 용산전자 상가가 비교가 안된다.

어마어마 한데.. 굉장히 특히한 것은 삼성 전자와  엘지 전자 물품만은

일반 상점이 아닌 귀빈실 형태로 룸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

그런거 있잖아. 우린 일반 물품이 아니야 라는 로얄석 같은 거..

암튼 4군대의 건물들 (^^; 이름은 미처 기억할 수 없는..)을 돌아니면서

봐도 대거 그렇다.. 이들 내에서의 기업의 네임벨루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침은 숙소에서 한국식으로 주고..

점심은 돌아다니가 간단히 떼우고..

저녁은 도움 주신 분들에게 간단히 대접하고..

중국의 음식값은 상상을 초월하게 싸다.. 과일도 ^^;

싸니까 자주 사서 먹게 되고, 기름진 음식 덕분인지, 하루종일 지쳐 있는 상태에서 마구 먹어서 그런지..중국생활 이틀만에 2 킬로그램은 는 거 같다..

이러다 좀 심각해진 모습으로 복귀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오늘 내일 바짝 취재 잘 하면 취재 일정 끝내고 나도 구경 좀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음하하하하..서울보다 1시간 빠른 북경에서 매일 아침 6시에 놀랍게 칼 처럼 기상하고 있다.. 미친짓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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