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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대화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드뎌 아버지에게 내가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말씀을 드렸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거기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아주 간단한 정보만 이야기 하는데도 한시간이 걸렸다. 대충 노인네가 이해 못할 부분은 빼고 보육현장 민주화와 아동의 인권보장을 위해서 만든다고 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횡령, 정원초과 등 나쁜 짓 하는 원장들 긴장하라고 노동조합 만드는거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아버지 왈, '합리적이고 목적이 분명하면 되지 않겠니? 너를 믿는다.' 이 보수적인 양반이 왠일로 이리 순순히 노조활동을 인정한단 말인가? 잠시 감격했다. 그러나 뒤이어 하시는 말씀이... '뭐든지 대립각을 세울 생각만 하면 안된다. 한국노총 봐라 경영자랑 대화도 하고 합리적으로 하잖냐? 민주노총은 말도 안되는 요구나 하고, 도대체 이라크 파병이 노동자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노조에서 그런걸 요구하냐? 불그스럼해가지고..' 아버지 저도 불그스럼한대요? 그리고 세계적 견지에서 보면 이라크 파병문제가 노동자랑 상관있는 것 맞아요. 그게 아니더라도 노동자도 국민인데 거기에 대해 의견을 가질 수 있죠. '그럼 안되지.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노동법의 테두리안에서, 그게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요구하는거야.' ....... 더 이야기 하다간 부녀간에 의가 상할 것 같아 정치적 견해는 다를 수 있으니 더이상 얘기하지 말죠.하고 이야기를 정리했다. (아버지 그 노동법이 잘못되었을때는 어떻게 하나요?)


우리 아버지는 우리 집안(친척들을 통틀어)에서 가장 강력한 여론 주도층이다. 많은 친척들이 아버지의 정치적 견해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데 아마도 자신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한겨레신문에 나의 인터뷰 기사가 났는데 그걸 친척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어느 친척도 그 신문을 보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신문을 사서 돌렸다. 어머니가 큰 집에 전화를 걸어서 한겨레신문좀 보라고 했더니, '우린 조선일보만 봐' 이래서 그게 아니고 우리딸 기사가 났다니까요. 설명해서 그 면만 보게 만들었다. 그때 우리집안 어른들, 평생 처음으로 한겨레 신문을 봤다. 심지어 어떤 친척분은 한겨레신문같은데 자꾸 오르내리면 안 좋으니 조심하라고 전화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최고 수위를 달리는 보수파가 우리 아버지다. 그런 양반이니, 노조활동이란 거의 미친 짓으로 보일 수밖에. 그래도 자식이 가는 길을 말릴 도리는 없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합리적인 노조활동을 충고해주시는거다. 필요하면 사용주와 타협하라. 이게 우리 아버지가 내게 주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충고였다. ------------- 우리 아버지는 평생 성실하게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도 안하는 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해서 돌아 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탄하신다. 그리고 그 원인을 요령껏 살지 못한 자신에게서 찾는다. 부동산, 주식, 무엇을 해도 손해만 봐 온 분이기에 자신이 답답하기도 하겠지. 그러나 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으로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문제인 것이지, 편법이 판치는 사회에서 편법을 쓰지 않아 늙으막까지 고생하는 자신을 한탄하는 것은 아무리봐도 이상하지 않느냐 말이다. 아버지의 성실한 삶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 사회가 문제이고 그래서 그런 사회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버지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분들이 살아왔던 시대에 저항은 늘 개인적 파멸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두환 군사독재 초기에 이유도 없이 고모가 안기부에 끌려가서 1주일이나 생사를 알지 못해 애태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양반이 어째서 자신을 억압한 정권의 수하들에게 계속해서 투표하는지. (인질이 납치범에게 애정을 느끼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닌가 말이다.) 앞으로 이 의식의 간극을 어떻게 메꿔나가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진행시켜야 할지, 진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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