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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8
    On the Road(3)
    금자

On the Road

"여행, 커피, 뜨거운 물로 날마다 샤워하기."

내 생활의 세가지 계륵.

 

뜨거운 물로 날마다 샤워하기,는 작년 겨울 11월부터 고치기 시작해서

요새는 이틀에 한 번 샤워로 완전히 안착! 

올 여름에는 '찬물로만 샤워해야지'로 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짝짝짝!)

 

커피는,

공정무역 커피를 이용하거나 작은 카페에서 직접 볶은 것을 아주 연하게 마시는 '차악'까지는 갔지만

한국에서 나지 않는 커피를 아예 끊는 것은 못 하고 있다.

언젠가 친구 미물이 뉴욕에서 만난 한인 교포 중에 온 몸이 마비된 할머니 이야기를 해 줬다.

"이렇게 살 바에는 자발적으로 죽고 싶다"고 하루에 스무번도 더 생각하다가도

아침에 일어나 커피 냄새가 방 안에 가득 흐르는 것을 맡고 누워있으면

"살아서 이 커피향을 아침마다 맡고 싶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금도 나는 토요일 아침, 조용히 일어나서 전기포트에 물을 데우고

원두커피를 슬슬 갈아서 드리퍼에 올린 후 "코피 루악"하면서 맛난 커피를 내려마시고 있다.

("코피 루악"은 인도네시아에서 나오는 디게디게 맛난 커피라는데

나는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식당 주인이 커피를 내리면서 읖조리는 것을 보고

영화도 너무 좋고, 그걸 읖조리는 식당 주인님도 너무 좋아서 따라하고 있다,)

뉴욕 할머니처럼 커피 향 때문에 살고 싶은 바램이 자라날 정도는 아니지만

커피는 토요일 아침, 휴일 아침에도

스스럼없이 일어나 너무나 기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 준다.

The corrs나 cardigans 노래를 아침에 크게 켜 놓고 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죽을 때 주옥처럼 스쳐가는 하루의 모습에, 이 아침에 떡 하니 떠오를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여행,

쿠바를 갔을 때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종이에 찍어준다)

갔던 곳의 도장이 여권 곳곳에 찍혀 있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평생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질처럼 내세웠지만

비행기 한 대가 뜨면 자동차 팔만대가 일제히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효과가 난다.

 

작년에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영국의 여성환경연대 WEN에 연락했을 때 들었던 말,

"저희는 저희가 꼭 참석해야 하는 회의에 갈 때만 비행기를 타요.

그 외에는 영상자료를 보내드려요."

그래서 프리젠테이션 자료만 받고 회의비 중 아주 작은 돈을 털어 단체 기부금으로 돌렸다.

히드로 공항 확장 문제로 영국환경단체들이 일제히 해외여행에 들어가는 에너지에 더욱 촉수를 세우고

비행기 탄소세나 뭐 이런 저런 대안(?)등을 내놓고 있다는 것을 직후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행, 특히 낯선 곳을 어슬렁거리는 장기 해외여행은

공항가는 리무진 버스만 봐도 속이 콩닥콩닥 흔들릴만큼

매력적이다. 여전히.

 

여행이 없어도

오눌 아침 커피를 마시고 블로그글을 읽고 친구와 연락하고 촛불집회에 갈 생각을 하면서도 충분히 좋지만

카오산 로드에서 느꼈던 그 한 여름밤의 열기,

슬러퍼를 찍찍끌고 과일 주스 봉다리를 손에 끼우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혹독하게 덥고 절절하게 한국소설이 읽고 싶고 혹독하게 외로울 만치

온전히 홀로, 인 나로 부유하고 있다는 자각과

그런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도 나를 못견딜 만큼 행복하게 한다.

 

<온 더 로드>는 장기 어슬렁 해외여행에 대한 그런 느낌을,

너무 내 맘같이 써 놓은 장기 해외여행 여행자에 대한 인터뷰 글이다.

특히 카오산 로드로 가는 길, 거기서 느꼈던 여행자들이 내뿜는 열기들.
(나 역시 카오산 로드가 태국이 아니고 거기서 느꼈던 부정적인 생각이 있지만
다 접고 여행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말이쥐)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를 두 달 여행하고 태국 공항에 처음 접어들었을 때

고가도로를 훤히 밝히며 카오드 로드까지 뻗어있던 그 길에서 가슴 먹먹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여행,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해야 할 일 없이 늘어진 시간들,

그리고 연유가 듬뿍 들어간 달달한 얼음 봉다리 동남아 커피와 찍찍 끌고 다녔던 게다짝이 그리웠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흐르고, 이제 내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 즐기는 건 작고 예쁜 카페를 찾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게 되었다.
외국까지 가서 가장 좋은 게 고작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이냐고 타박하는 친구도 있지만

커피 한 잔이 주는 한가한 시간은 더할 나위없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p57)

-여행이란 어쩌면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달과 6펜스>를 보니까 이런 대목이 있어요. 자기가 살아야 할 곳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을 찾아 

여행을 하는 거라고. (65)
 

-나이 예순이 되어 두 손 맞잡고 거리를 걸을 수 있는 부부로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까... (195)

-내가 나인 게 미안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

여행을 하면서 사회가 날 어떻게 볼까 고민하는 대신 좀 더 나를 인정하게 됐다고 할까... (263)

-사람들을 나와 구별하려고 하면, 정작 힘들어지는 건 자기 자신이거든. 나와 다르다는 걸 발견하면 그냥 안아주는 거야.

(268)

-낯선 세계에 온 몸을 던져놓는 일은 늘 흥미진진했다.

대단한 일들이 생겨서가 아니다. 익숙하지 않는 거리를 걷는게 좋았고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좋았다.

쓸쓸함마저도 좋았다. 그것은 자유였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자유일지라도 그 짧은 시간이 주는 기쁨은 언제나 나를 유혹했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었다. (301)

가끔 일상을 떠나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은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여행은 바로 그런 시간일 뿐이다.(315)

-어떤 사람들은 여행이 참을 수 없는 유혹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행이 중독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중독은 겸손을 배운다는 여행의 의미에 어긋난다.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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