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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7/07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2)
    금자
  2. 2009/07/06
    밀란쿤데라, 농담
    금자
  3. 2009/06/20
    마더 나이트
    금자
  4. 2008/08/17
    쿨하게 한걸음(2)
    금자
  5. 2008/08/16
    스타일
    금자
  6. 2008/06/26
    호란의 다카포(9)
    금자
  7. 2008/06/08
    On the Road(3)
    금자
  8. 2008/05/17
    죽음의 밥상(4)
    금자
  9. 2008/03/20
    『와세다 1.5평 청춘기』를 ‘88만원 세대’가 읽다(2)
    금자
  10. 2007/10/21
    인숙만필
    금자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나는 여태까지 황허와 창장의 물을 마셔본 적이 없다.

 나는 왕야쥔의 눈물을 마시며 자란 우루무치 놈이다. " 

 

신장위구르 자치구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오늘,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떠난 엑스 룸메이트 기묘도 걱정이지만,

언젠가는 꼬옥 가봐야지 했던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소식이 너무 암울해서 중국이 밉다. 

 

요 며칠 신장위구르, 우루무치, 텐산이라는 지명이 서울, 합정동, 안산 만큼이나 구체적인 얼굴을 띄었다.

자치구라는 이름이 갖는 함의나, 신장위구르의 중국 편입 역사나, 베이징에서 우루무치까지 몇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지리 지식이 없이도, 나는 그랬다.

청소년 논술대비 권장도서를 말하는 투처럼 들리지만, 뭐, 그게 바로 문학의 힘이랄까. 

 

'황허와 창장의 물을 마셔본 적 없고' 

학교에서 러시아를 배우다가 중국어를 배우다가 어느 날 영어를 배우게 된, 

그리고  자연히 위구르어어를 아는 우루무치 소년이 문화대혁명기 동안 성장하는 이야기다.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멋지고 쿨하고 깔쌈한데 뭔가 헛헛하다는 느낌이 들면,

허삼관 매혈기처럼 안 웃기는 상황에서 눈물 쏙 나게 웃기고 마음 짠하고 진국이고 끈끈한 그런 중국 소설이 생각났는데,

이 소설 역시 그런 중국 소설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루무치 놈' 이 쓴 글에 중국 소설이라니, 실례일까.

 

 

출판사 서평을 보니 이 소설이 "패배자는 자신의 인간적인 고귀함을 어떻게 지켜나가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쓰여있다.

 

http://book.nate.com/detail.html?sbid=893822&sBinfo=pucritic#pretext

 

우루무치 땅에서 단 한 권뿐이었던 영어사전을 지니고 향수를 뿌리던 왕야쥔 선생도,

그 영어선생의 영어사전을,  프리덤을, 헤이트를, 러브를, 그리고 영어선생이자 친구인 왕야쥔의 인간적 품위를 흠오했던

우루무치 놈, 유아이도 모두 '배패자'가 되지만,

그래도 참으로 따뜻하다. 

이 소설, 따뜻하다. 

 

그래서 신장위구르 자치구 소식이 더욱 슬프다. 

참으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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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쿤데라, 농담

 

어느 날 룸메 씨앗이 냉장고에 붙여놓은 포스트 잇,

밥당번인 날, 아침에 밥을 하면서, 냉장고를 뒤적이면서, 치열한 평화, 라고 말해본다.

누군가와 함께 나누어 먹는 아침밥, 치열한 평화, 그리고 하루.

 

냉장고에 '농담'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룸메, 냉장고에 붙여놓은 장 봐온 영수증을 계산하는 또 다른 룸메, 

이럴 때는 king of convenience가 부르는 homesick이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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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나이트

 

Mother night

커트 보네거트 지음

 

<어느 일부일처주의자 카사노바의 회고록>이 왜 '반전소설'에  나오는지 쓴 커피를 맛난게 마시는 느낌으로

이해하게 되는 문장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블랙유머'라는 단어의 사전적 이해를 넘어 실용 사용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책은 실험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기록에 담긴 실험,

즉 한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매혹시키는 자의식적인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비록 이 세상에 만족스러운 것이 전혀 없을지라도

몸과 마음을 다해 서로에게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p 174

 

"네 모습을 봐라! 맨손으로 악을 물리치려고 왔지만, 지금은 버스 옆구리에 치인 사람꼴로 비참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건 자업자득이다! 그리고 순수한 악을 물리치겠다고 전쟁을 일삼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꼴이 된다.

싸움을 벌일 이유는 많다.

하지만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자기와 함께 적을 증오한다고 상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

p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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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한걸음

쿨하게 한 걸음  by 서유미

 

'스타일'이 너무 스타일리쉬해서 질린 나머지,

서른 세살, 직업도 없고 연애도 없고 아버지 환갑잔치 해 드릴 돈도 없고

'따뜻하고 달콤한 카라멜 라떼'만이 삶의 존재 한 가운데에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었다.

 

머리에 염색하는 아버지를 보고 저러다 검정 매직으로 대머리 부분 칠하면 어쩌냐는 어머니와

멀쩡히 대학 졸업하고도 이력서 백만번쯤 쓴 동생과

오랫만에 구립도서관에서 만났다 했더니 공무원 시험준비하는 동창과

대학 다닐때는 제일 보헤미안처럼 살더니만 결국엔 의사와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와

어릴때 발랑 까져서 남자나 사귀고 팔레레 돌아다니다가 시집잘가서 떵떵거리고 사는 '엄친딸'  사촌동생.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을 관둔 것도 모자라

도통 떨떠름한 남친과 헤어지고

엄마 앞에서 직장 관둔 것도, 헤어진 것도 이야기를 못하는 서른 세살의 나.

 

소설 제목은 '운수 좋은 날'처럼 반어법이었다.

 '쿨하게'는 커녕 예전 애인을 어쩌다가 길에서  만났을 때 절대 입고 싶지 않은

무릎나온 고무줄 추리닝 같구나.

소설의 대사처럼 '무슨 인생이 평생 삼재냐, 지겹다, 지겨워'쯤 되시겠다.

 

소설상황과 비스꼬롬한 '똥구리' 미스인 내 마음은 소설을 읽으면서 안타깝다 못해 찢어졌다.

(울엄마가 남들 딸은 골드미스네, 실버미스네 하고 있는데 넌 '똥구리 미스'구나, 라며 내 맴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엄마, 난 '친환경 스댕steinless 미스'거등, '똥구리'가 뭬야 구리게시리.)

그래서 작가의 말을 읽는데

작가가 서른 세살이 약간 넘은, 게다가 결혼해서 남편도 있는 분인 것을 알고 뭔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주발도 작가가 싱글이 아냐, 라면서 볼멘 소리를 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에 ET가 손가락을 맞대는 것처럼

감정을 잇대고 들들들 재봉틀로 박아버렸던 것이다.

열심히 박음질 하고 났더니 천을 뒤집어서 박어버린 듯한 이 배신감.

 

흥, 그래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짠했지만 위로받았고 스스로에게도 '화이삼'이었다.

소설의 결말은 공무원 시험 패스도 아니고 영화비평상 당선소식도 아니고 하다못해 고만고만한 연애도 아니었다.

연애는 커녕 주인공은 서른 세살에 이런 말까지 하지 않겠는가.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조바심도 사라졌다. 억지로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다."

결론은 정말로 '쿨하게 한걸음'이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카라멜 라떼 한 잔에 위로받으면서.

그게 이 소설의 진정성이었다.

 

평론가의 말처럼 너무 평범하고 정직하고, 연필로 꾹꾹 눌러쓴 느낌의 착한 소설이었다.

문체도 그랬다.

요새 너무 멋부리는 소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촌스럽게 잔잔한 소설을 많이 안 읽어서인지

평범해서 참으로 좋았다.

그 평범함이

"그래, 오래 흔들렸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그래, 오래 서러웠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에서 나온 것이라서 마음 깊이 아름다웠던 것 같다.

(구광본 ‘오래 흔들렸으므로’ -소설 뒤 평론가의 글 중에서 발췌)



 

 -같은 싱글의 입장에서 내 마음은 안타깝다 못해 미어졌다.

순간 엉뚱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연애세포나 노처녀 히스테리 이야기는 이 생각에 비하면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희주가 거품을 물며 불만을 토로하는 동안 내 머릿 속에는 유방암과 자궁암이 쌍둥이빌딩처럼 우뚝 솟아올랐다.

삼십대 환자 급증. 특히 출산은 커녕 모유수유 경험이 없는 미혼여성에게서 발병률이 높다는

뉴스와 신문기사가 슬라이드처럼 착착 장면을 바꿔나갔다.

출산은커녕 당분간 결혼계획도 없는 늙은 싱글들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자 혼자서 나이 들어간다는 건 이렇게 위험부담이 큰 건가.

p44-45

 

-사십대를 기대하기에는 인생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자식 자랑을 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부모가 불쌍했고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머저리 같은 자식들도 불쌍했다. 150

 

-열심히 해 보고 또 그 때 가서 생각해보면 된다.

실컷 자고 나서도 여전히 뭔가를 저지르고 싶으면 뜨거운 캐러멜라떼를 한 잔 하시며 길거리를 쏘다닌다.

 

-죽음 앞에 치통은 얼마나 하찮은가.

그런데도 타인의 죽음은 개인의 치통을 뛰어넘지 못하는 법이다.

이제 그걸 순순히 인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242

 

-따뜻하고 달콤한 캐러멜라떼

아, 캐러멜 라떼, 그걸 보는 순간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커피는 참으로 삶의 한가운데 있는 존재 같았다.

입 안으로 넘긴 커피가 하도 달콤하고 따뜻해서 왈칵 눈물이 났다.

동남은 이제 이렇게 맛잇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아팠다. 245

 

 

-작가의 말 중에서

 

미혼의, 게다가 애인도 없고 실업자이며 은행잔고마저 넉넉지 않은 여성이 바라보는 자본주의 사회란 두려움 그 자체다.

돛단배를 타고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가진 것도 없고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경험조차 없으니

풍문만으로도 두려워지고 자꾸 다른 사람들을 힐끔거리게 된다.

그 막막함과 상대적 빈곤감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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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스타일,을 읽고 주발에게 빌려주면서 말했다.

 

"이거 읽고 너도 칙릿소설 한 번 써봐, 1억원 벌어서 나 좀 호강시켜줘봐"

 

그래도 스타일의 작가 '백영옥' 에게 가혹하다든가,

혹은 난 작가를 너무 우습게 봐, 뭐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나만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나 보다.

주발이가 미용실에서 본 '싱글즈'라는 잡지에서도 이번 여름 휴가에

'젊은 언니들이여, 칙릿 소설을 한번 써보자'라고 부추겼다고 한다.

 

이 책이 서점마다 베스트셀러 전시 코너에 보무도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고,

신문에 대문짝하게 광고되는 것도 좋다.

나도 ‘서른 하나, 홈쇼핑에서 파는 옥돌매트가 필요한 나이’라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지갑을 열었다.

 

서른 하나, ‘마놀로 블라닉’ 때문이 아니라

브런치를 함께 하고 생일을 챙기는 단 하나의 특별한 그놈 대신,

서로를 소울메이트로 챙기는 여자들 때문에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는 나이,

내 경우 겉멋만 부리고 내용은 별 것 없다고 생각되는 칙릿에 환장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흠, 그런데 이 소설은 중고등학생용 100% 하이틴 로맨스였던 것이다.

우석훈이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이명박 시대를 미학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시대라고 하던데,

이명박 시대에는 '하이틴 로맨스'도 문학상에 당선되는가?, 하고 교육감 선거 이후 좌절이시다.

공교육감도 대략 난감하시고 '1억원 짜리 하이틴 로맨스'도 난독증을 불러 일으킬 것 같다.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도 스타벅스의 카페라떼처럼 테이크 아웃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혁명이란 몸 사이즈가 66에서 44로 줄어들거나, 키가 160에서 170으로 늘어나는 일 뿐‘

이라는 초반의 경쾌한 문구도

나중에는 뭐 작가가 이런 수사학 정도는 쓰셔야지 쯤으로 변했다.

‘제대로 된 수트를 입거나 완벽한 구드를 신는 일에도 진정성이 있다’고 믿으며

패션지 기사로 일해 온 여주인공 이서정의 그 진정성을 나는 찾지 못했다.

그저 '수석에 수석을 거듭한 수재'에서 외과의사로 (당빵 S출신이 아닐까 사료되옵니다),그리고

최고의 이태리 요리 전문가가 되어서 원 테이블 레스토랑를 차리는 남주인공에 홀렸다.

그래, 잘난 놈들은 가지가지 하는구나, 니가 '스탈'나는 직업은 혼자 다 하시라, 쯤의

못난 인간의 되둥그라진 열등감까지 발로하였던 것이다. 흠흠 

 

나 역시 그 진정성을 좋아라하는 서른 한 살이라고 생각한다.

허영덩어리가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다.

이 놈이 좀더 크면 종양보다 더 무섭게 삶을 망가뜨릴 것이다.

스타벅스에 너무 자주 가서 스스로를 된장녀라고 한탄하면서도

스타벅스의 초록간판만 봐도 위로받는다. 그리고 '히말라야 커피' 같은 공정무역 커피에 열광한다.

사실 사회과학 서적보다 보그나 엘르의 핫 아이템이 훨 재미있지만 들고다니는 책은 '한겨레21'같은 시사잡지다.

 

여 주인공은 ‘왜 그 사람들이 되먹지 못한 불편한 옷을 만들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기에

(잡지사에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내가 소설에서 기대했던 것은 도레스 레싱의 문학성 같은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욕망이 가진 두 가지 진정성이었다.

‘되먹지 못한 진정성’이 있다고 마구 우기는 이 시대 칙릭들의 욕망.

그런데 소설은 ‘프라다에 끌리는 눈길과 굶어주는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 이 상반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 아니라

‘이제 무엇이 윤리인지 고민하지 않겠다’라는 결론만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여주인공 이서정과 서른 하나의 여자들이 공유하는 것이

‘스키니진 체험기’나 살 빼기 다이어트 약의 부작용인 ‘뿡뿡 방귀’ 밖에 없단 말이더냐?

 

모르겠다,

이서정처럼 결국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할 팔자의 서른 한살이라서

이 책을 산 만원이 이렇게 고까운지.

공정무역과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 마저도 요새는 가장 '스타일리쉬'한 소설에 등장해야 하나보다.

그게 세상의 진보이고 윤리라니,

갈 길이 너무 멀다.

고작 나는 서른 하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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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의 다카포

빌려놓고도 한동안 일하는 곳, 책장 위에 오롯이 앉혀놓기만 했는데,

어느날 외부 회의에 가는 길에 뭐 읽을 거리가 없을까, 하는 심정으로 집어들었다가

홀라당 호란에 빠져

이제는 무수히 들었던 클래지콰이의 노래들과  그녀가 피처링한 성냥팔이 소녀라든가, will you love me tomorrow?

등의 노래가 내게 와서 '꽃'이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세상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주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나고 있는 것 같아,

호란이 부러웠다. 

부러워서 몸이 베베 꼬이다가 책 말미에 있는 여러 블라블라 인사들의 호란 소개 글은 '눈꼴셔서

못 보겠어,쳇' 쯤이 되셨다. (되둥그라졌기는 -_-)  

 

책에서 본 호란은

두 마리 페르시안 고양이에게 부비부비하고, 책을 읽고, 가사를 쓰고, 술을 마시고, 아날로그를 사랑하고

이해받고 이해해줄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사랑받고, 겉멋부리는 연애에서 호되게 차이고,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쓰면서 므훗해하고(덩달아 나도 그 기운을 받아 책을 읽으면서 행복해하고) 

얼리 업댑터 아빠이자 어머니란 존재를 딸로서 존경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엄마의 딸이었다.

그리고 책과 음악과 관계, 경험을 엮은 망을 통해

'모든 관점 보텍스'를 겪어 본 듯한 사람으로 보였다.

'모든 관점 보텍스'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고문기구로,

우주의 광대함과 비밀을 가르쳐줌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실감하게 해서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기능을 한다.(p63) 

나도 호란처럼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군대 말고 '모든 관점 보텍스'에 내쳐졌으면 좋겠다.

그 고문기구를 거쳐서 사람이 우주의 미물로서 미물만큼만 욕심낼 수 있기를,

여기 저기, 어차피 미물인  서로의 존재를 기꺼이 가여워하고 그래서 감싸주는

뭉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으면.

 

부러워서 몸이 베베 꼬여도,

김윤아라든가, 이상은이라든가, 그리고 호란 들이 많이 많이 나와서

그런 가수들이 주류에서 뜨고,

'아, 더 이상 뜨면 안 되는데' 하는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 자주 들었으면 좋겠다.

  

 

-호란의 책장에서 밑줄그은 책들, 나도 볼 테다!

 

아르토 파실리나 <기발한 자살여행>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제레드 다이아몬드 <섹스의 진화>

 

-호란의 쥬크박스 중

 

Beth Gibbons

 

Rebecca Pidgeon

 

Jeff Buck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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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여행, 커피, 뜨거운 물로 날마다 샤워하기."

내 생활의 세가지 계륵.

 

뜨거운 물로 날마다 샤워하기,는 작년 겨울 11월부터 고치기 시작해서

요새는 이틀에 한 번 샤워로 완전히 안착! 

올 여름에는 '찬물로만 샤워해야지'로 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짝짝짝!)

 

커피는,

공정무역 커피를 이용하거나 작은 카페에서 직접 볶은 것을 아주 연하게 마시는 '차악'까지는 갔지만

한국에서 나지 않는 커피를 아예 끊는 것은 못 하고 있다.

언젠가 친구 미물이 뉴욕에서 만난 한인 교포 중에 온 몸이 마비된 할머니 이야기를 해 줬다.

"이렇게 살 바에는 자발적으로 죽고 싶다"고 하루에 스무번도 더 생각하다가도

아침에 일어나 커피 냄새가 방 안에 가득 흐르는 것을 맡고 누워있으면

"살아서 이 커피향을 아침마다 맡고 싶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금도 나는 토요일 아침, 조용히 일어나서 전기포트에 물을 데우고

원두커피를 슬슬 갈아서 드리퍼에 올린 후 "코피 루악"하면서 맛난 커피를 내려마시고 있다.

("코피 루악"은 인도네시아에서 나오는 디게디게 맛난 커피라는데

나는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식당 주인이 커피를 내리면서 읖조리는 것을 보고

영화도 너무 좋고, 그걸 읖조리는 식당 주인님도 너무 좋아서 따라하고 있다,)

뉴욕 할머니처럼 커피 향 때문에 살고 싶은 바램이 자라날 정도는 아니지만

커피는 토요일 아침, 휴일 아침에도

스스럼없이 일어나 너무나 기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 준다.

The corrs나 cardigans 노래를 아침에 크게 켜 놓고 커피를 내리고 있으면,

죽을 때 주옥처럼 스쳐가는 하루의 모습에, 이 아침에 떡 하니 떠오를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여행,

쿠바를 갔을 때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종이에 찍어준다)

갔던 곳의 도장이 여권 곳곳에 찍혀 있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평생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질처럼 내세웠지만

비행기 한 대가 뜨면 자동차 팔만대가 일제히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효과가 난다.

 

작년에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영국의 여성환경연대 WEN에 연락했을 때 들었던 말,

"저희는 저희가 꼭 참석해야 하는 회의에 갈 때만 비행기를 타요.

그 외에는 영상자료를 보내드려요."

그래서 프리젠테이션 자료만 받고 회의비 중 아주 작은 돈을 털어 단체 기부금으로 돌렸다.

히드로 공항 확장 문제로 영국환경단체들이 일제히 해외여행에 들어가는 에너지에 더욱 촉수를 세우고

비행기 탄소세나 뭐 이런 저런 대안(?)등을 내놓고 있다는 것을 직후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행, 특히 낯선 곳을 어슬렁거리는 장기 해외여행은

공항가는 리무진 버스만 봐도 속이 콩닥콩닥 흔들릴만큼

매력적이다. 여전히.

 

여행이 없어도

오눌 아침 커피를 마시고 블로그글을 읽고 친구와 연락하고 촛불집회에 갈 생각을 하면서도 충분히 좋지만

카오산 로드에서 느꼈던 그 한 여름밤의 열기,

슬러퍼를 찍찍끌고 과일 주스 봉다리를 손에 끼우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혹독하게 덥고 절절하게 한국소설이 읽고 싶고 혹독하게 외로울 만치

온전히 홀로, 인 나로 부유하고 있다는 자각과

그런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도 나를 못견딜 만큼 행복하게 한다.

 

<온 더 로드>는 장기 어슬렁 해외여행에 대한 그런 느낌을,

너무 내 맘같이 써 놓은 장기 해외여행 여행자에 대한 인터뷰 글이다.

특히 카오산 로드로 가는 길, 거기서 느꼈던 여행자들이 내뿜는 열기들.
(나 역시 카오산 로드가 태국이 아니고 거기서 느꼈던 부정적인 생각이 있지만
다 접고 여행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말이쥐)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를 두 달 여행하고 태국 공항에 처음 접어들었을 때

고가도로를 훤히 밝히며 카오드 로드까지 뻗어있던 그 길에서 가슴 먹먹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여행,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해야 할 일 없이 늘어진 시간들,

그리고 연유가 듬뿍 들어간 달달한 얼음 봉다리 동남아 커피와 찍찍 끌고 다녔던 게다짝이 그리웠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흐르고, 이제 내가 여행을 하면서 가장 즐기는 건 작고 예쁜 카페를 찾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게 되었다.
외국까지 가서 가장 좋은 게 고작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이냐고 타박하는 친구도 있지만

커피 한 잔이 주는 한가한 시간은 더할 나위없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p57)

-여행이란 어쩌면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달과 6펜스>를 보니까 이런 대목이 있어요. 자기가 살아야 할 곳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을 찾아 

여행을 하는 거라고. (65)
 

-나이 예순이 되어 두 손 맞잡고 거리를 걸을 수 있는 부부로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까... (195)

-내가 나인 게 미안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

여행을 하면서 사회가 날 어떻게 볼까 고민하는 대신 좀 더 나를 인정하게 됐다고 할까... (263)

-사람들을 나와 구별하려고 하면, 정작 힘들어지는 건 자기 자신이거든. 나와 다르다는 걸 발견하면 그냥 안아주는 거야.

(268)

-낯선 세계에 온 몸을 던져놓는 일은 늘 흥미진진했다.

대단한 일들이 생겨서가 아니다. 익숙하지 않는 거리를 걷는게 좋았고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좋았다.

쓸쓸함마저도 좋았다. 그것은 자유였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자유일지라도 그 짧은 시간이 주는 기쁨은 언제나 나를 유혹했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었다. (301)

가끔 일상을 떠나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은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여행은 바로 그런 시간일 뿐이다.(315)

-어떤 사람들은 여행이 참을 수 없는 유혹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행이 중독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중독은 겸손을 배운다는 여행의 의미에 어긋난다.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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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밥상

<고대대학원 신문사에 쓴 글, 블로그에 옮기니 딱딱하네 그랴 -_->

 

『죽음의 밥상』 by 피터 싱어, 짐 메이슨

 

 

 

칠 만원짜리 서평 원고를 위해 만 오천짜리 책을 샀다.

서평이란 출판사가 뿌린 책 소개를 밑감 삼아 자기 감상을 양념 치듯 섞어 쓰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화장실 변기 위에서, 달리는 지하철에서, 자다 깨서 노란색 형광펜을 그어가며 읽었다.(덕분에 원고 마감일이 지나서 이 글을 쓰는 중입니다)

진정성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을 주는 이 책, 참으로 기특하다.

허나 허구한 날 동물의 시체를 먹고 사는 인간들이 400쪽이 넘는 도덕적인 책을 읽고 개과천선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진정성의 문제는 늘 재미가 없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소고기에서(누렁아 미안, 널 고기라고 부르다니)

지구 온난화를 만드는 메탄가스의 1/3이 나오고 동물 사료를 만들기 위해 GM 곡물이 재배되어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열림우림은 잘려나가고 수질오염은 엄청나고 소고기만 적게 먹어도 전 세계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블라블라블라.

웬만한 채식 책은 다 읽어서 육식에 대해 A4 20장쯤은 참고문헌 없이 줄줄 써 내려갈 것 같은데도,

나는 7년 동안 채식을 3번쯤 뒤엎었다.

어찌된 것이 고기 냄새가 후강을 타고 내려오면 온 몸이 환장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아, 고기가 먹고 싶어.

인간의 욕망이 진정성을 이기는 순간이란 이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해한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가 여전히 고기를 먹는 것도,

채식에 100% 동의하는 내가 애인과 함께 고깃집에 들어앉아 있는 것도

(된장국만 퍼 먹으면서 언젠가는, 교화시키고 말겠어!!! 부르르르르르 하고 앉아잇음) 

충분히 따뜻하고 인간적인 우리가 나치가 유태인에게 했던 것보다 더 잔악무도한 공장식 축산업에서 나온 고기를 먹는 것도 말이다.

 

올해 세계문학상 당선소설인 ‘스타일’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뚱뚱한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얘기라면,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는 납득하지 못하겠다.

나라면 키가 작으면 하이힐을 신고, 피부에 자신이 없으면 화장을 하라는 빅토리아 베컴의 말에 기꺼이 한 표 던지겠다.”

 

아아, 옳으신 말씀.

 

이 글을 쓴 피터 싱어처럼 윤리학자도 아닌데 윤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밥을 먹는 것은 스스로에게 가혹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래서 우리가 인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으면서 윤리가 무엇인지 고민씩이나 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

사람에게 상처받고 ‘타인의 눈물은 물과 다름없다’는 러시아 속담을 곱씹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가슴 미어지는 쌈박한 동물.

그래서 우리는 이성과 도덕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죽음의 밥상』은 여기에 박차를 가한다.

과연 얼마나 인도적이어야 충분히 인도적인 식사를 하는 것일까.

인도적으로 키워진 동물의 살코기와 공정무역으로 재배된 농산물을 구입하는 ‘양심적 잡식주의자’와,

생선과 유제품까지도 아예 먹지 않는 100%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의 차이는?

유기농 수입 농산물과 비유기농 지역 농산물을 먹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친환경적일까?

문어나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은 고통을 얼마만큼 느낄까?

동물 세포를 실험실에서 키워 만든 배양고기(비동물성 고기)가 나온다면 죄책감 없이 고기를 먹어도 될까? 등등.

 

이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이 쏙쏙 들어오는 것은 저자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이 책상 머리에 앉아 책을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즐겨먹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가족과(우리 집의 모습?),

양심적 잡식주의자의 가족과, 아이 둘을 비건으로 키우는 가족을 졸졸 따라다니며 책을 썼다.

심지어 지구에서 가장 윤리적이며 싼 식사를 하는 ‘쓰레기통 다이버’들과 쓰레기통에서 따끈하게 건져온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다.

이처럼 저자들은 세 가족의 밥상에 올라온 식품 회사들과 농장을 일일이 연결해서 방문하고 인터뷰하면서

우리가 선거일이 아니라 날마다 “마트에서 투표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국에서 풀어놓고 기른 닭의 달걀이 닭장 달걀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는 현실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이 시장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늘 저녁, 한 끼라도 진정성이 욕망을 이기는 밥상을 마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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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1.5평 청춘기』를 ‘88만원 세대’가 읽다

와세다 1.5평 청춘기』를 ‘88만원 세대’가 읽다

-여성환경연대 소식지 "문화공감-이 달의 책' 코너에 쓴 글

 

   스스로도 ‘나는 입을 꼬매야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금자가 솔솔 흘린 스포일러들이 SMK의 비혼녀들을 사로잡았다.
[SMK_ 여성환경연대 ‘사무국’의 영어 이니셜, 허나 활동가 모모양이 ‘여성어쩌고’ 단체(외부인들은 ‘여성환경연대’를 이렇게 발음한다-_-;;;;)에서 일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갈 마음도 없었던 선 자리에서 두 번 퇴짜를 맞은 후 비혼 활동가들이 여성환경연대를 ‘환경전문컨설팅업체 SM, Korea’로 탈바꿈시켰다.]

1.5평’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남의 일 같지 않은 ‘도시빈민’ 비혼 활동가들에게 이 책의 주인공 다카노가 8년 동안 1.5평에서 2평 하숙방으로 승격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가슴에 찌르르한 감동과 동병상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다카노는 학점과 졸업에는 관심 없으며, 하루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은 하지 않는다. 낮 12시에 일어나 동네 문화센터에서 수영을 하거나 헌책방을 기웃거리거나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일본악기 샤미센을 연주하고, 그리고 잔다.
열거한 것들이 많다고 헷갈리면 안 된다.
하나면 하나지 둘은 아니다(‘영심이’ 노래버전).

오늘은 수영, 내일은 헌책방, 다음 날은 샤미센 연주다.

관심분야는 오지탐험과 신종 마약 인체실험, 환경문제(두둥!), 프로레슬링 등.

그의 친구들도 거의 다 와세다 대학 탐험부 출신들로 탐험부라는 이름이 풍기는 ‘똘(아이)끼’에 부합한다. 그들은 신종 마약 인체실험을 감행하고 전설의 여전사 아마조네스에 관심을 쏟고, 세상에서 이보다 나을 수 없는 친환경 생활양식 ‘영구수면법’을 연구한다.

1989년부터 2000년까지, 즉 주인공이 스물두 살 때부터 서른셋이 될 때까지, 거품이 부풀대로 부풀다가 마침내 터지고 나서 만성불황에 접어드는 일본에서 그들의 1.5평 하숙방 ‘노노무라’는 12,000엔의 방세(약 96,000원)를 그대로 유지한다.

집주인 아줌마는 말 그대로 마이웨이 스타일이라서 탐험부 학생들이 지 멋대로 나가 콩고의 밀림지역에서 미스터리 동물 무벤베를 찾든지, 동남아의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에서 반군과 기거하며『미얀마 아편왕국 잠입기』라는 책을 잉태하던지, 신경 쓰지 않는다.

특히 이 소설의 핵심 뽀인트는 소설이 자전적 일화를 옮겨 놓은 것이며 소설 주인공 ’다카노‘는 바로 이 소설의 작가 ’다카노 히데유키‘라는 점이다. 

    이 책을 돌려 읽고  SMK 회의실에 모인 비혼 활동가들은 자기들 입에 거품경제가 한창인 것처럼 입에 거품을 물었다. ‘거품경기’가 지나간 후 ‘청빈’을 컨셉으로 삼은 ‘가난 르네상스’라는 TV 코너에 소개된 1.5평 하숙방 ‘노노무라’하며, ‘일본 타면당’(惰眠當:게으르게 잠만 자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단체의 존재하며, 또 당의 공식활동을 ‘영구수면’으로 정하고 ‘타면의 소리’라는 기관지를 발행하는 모습이라니.

그런가하면 그들은 환경문제에 침을 튀기면서, “경제 활성화=환경파괴”라거나 “노동이 미덕이라는 인식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라고 선언한다. 경제 비활성화의 구체적인 행동 지침은 ‘알바를 하지 않는다’ , ‘돈을 쓰지 않는다’ 등이다. 물욕, 식욕, 성욕을 없애고 ‘영구수면’을 지향한 결과 “도통하는 것도 시간문제”가 되는데 “이러다 죽겠다” 싶은 순간 ‘경제 비활성화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도통한다’라는 메이저 프로젝트를 마감한다.

‘플러그를 뽑고 한 박자 천천히’를 모토로 ‘캔들나이트’ 행사를 해마다 펼치지만 날마다 ‘플러그를 꽂고 두 박자 빨랑빨랑’의 삶을 이어가야 하는 SMK 활동가들에게 이러한 일화들은 언행일치되지 않는 삶을 뼈저리게 자성케 하였다(아흐~).

 그러나 ‘88만원’ 세대의 최전선에 서서 본인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비혼 활동가들에게 다카노를 비롯한 탐험부 친구들의 ‘프리터 생활’은 ‘귓구멍에 파를 끼운다고 해도’ 곧이들리지 않을 만큼 딴 세상 이야기였다. 일본의 프리터들은 다카노처럼 하루 한 가지만 해도 “최저 수준의 생활이긴 하지만 어쨌든 먹고는 살 수 있는(p298)" 것이다. 한국의 ‘88만원’ 세대는 ‘최소한 벌어먹고 살아남기’ 위해 몸뚱아리를 아등바등 놀려야한다. 이는 ‘소수자 노동’을 위해 인위적으로 알바의 시간당 임금을 상당히 높인 일본사회와 ”누가 먼저 잡아먹힐까”라는 절망적 결말 이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는 ‘개미지옥’에 빠진 한국의 ‘88만원’세대의 차이이다.

[우석훈(2007),『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88만원 세대』서울:레디앙, p198.

명주잠자릿과의 애벌레를 ‘개미귀신’이라 부르는데, 이 개미귀신은 모래땅에 개미지옥을 파놓고 숨어 있다가그 곳에 미끄러진 개미 등의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이는 개미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누구를 밀어 넣느냐, 즉 “누가 가장 먼저 잡아먹힐지”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

 

 “우리도 하루에 한 가지만 하고 싶다, 헉헉” 하고 생각할 틈도 없다. 일본 프리터를 요로코롬 부러워하는 줄도 모르고, 남들이 다 넥타이를 차고 ‘참인간’이 되어가자 다카노는 갑자기 인생의 ‘막막증’에 걸린다.

이 ‘막막증’이란 신문기사체로 정리하면 ‘장래에 대한 불안’이다(240).

우리가 암만 ‘88만원’으로 생활이 가능한 생태형 인간과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을 한다고 위로한들, SMK 비혼 활동가들이 느끼는 ‘막막증’은 다카노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애매하고 처연할 것이다.

더군다나 다카노가 ‘노노무라 생활’을 청산하는 강력한 계기인 ‘8년 만에 여자친구 생기기’도 없는 우리네 인생은 더욱 츱츱할 수밖에 없다(우리가 짠~한가? 단체 후원금 환영).

이렇듯 SMK 비혼 활동가들의 지탄을 마구 받으며 소설의 결말은 ‘연애 지상주의’로 치닫는다. 소설은 마지막 10쪽에 이르러 탐험 버라이어티 소설에서 하이틴 로맨스 소설로 급변하며 연애를 통해 구원받고 ‘참인간’이 되는 다카노의 모습을 그린다. 그는 공동하숙방 ‘노노무라’에서 나오는데 우리는 입에 침을 튀기며 혼자 사는 삶은 ‘완전 반환경적’이라고 열을 올렸다. (혼자 ‘인간적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는 냉장고, 세탁기, 화장실, 부엌도구 등등 모든 것을 다 하나씩 갖추어야 한다. 모두가 혼자 산다면 크나큰 공간이 낭비되기도 한다. 스웨덴의 스톡홀롬에는 60% 이상의 독신자 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러한 주거환경이 반환경적이고 자원낭비적이며 개인의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결혼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또 같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형태가 필요하다.)

 

우린 도통 모더니즘적 세련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생시골’형 공동체 정서하고는 이미 굿바이 해버린 도시형 자식들이지만 ‘따로 또 같이’가 함께하는 업그레이드된 개인주의적 공동체가 좋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생태적으로 올바른 결말이기를 바랬다(가령 비혼자 공동주택 같은거 말이쥐).

  어쩌면 우리에게 여성환경연대는 우리만의 ‘노노무라’일지도 모른다. SMK 비혼들은 이 안에서 '88만원‘세대로 평생을 살아야할 것 같은 막막증을 느끼고, 그리고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이틴 로맨스도 없는 이 시절을 서로 위로한다. 지금보다는 더 많은 생태적 고려가, 지금보다는 더 많은 인간적 고려가, 그리고 지금보다는 더 따스한 사회가 되기를 오매불망하면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여자 탐험부 ’노노무라‘의 삶을 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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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만필

강금실의 책을 쑥쑥 읽다가 인숙, 이라는 당신을 발견하고 같은 사무실 라연에게 인숙만필을 빌려 한 달 동안, 논문을 지옥처럼 쓰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밤, 11시 넘은 버스정류장 가로등 아래, 집에 도착해 드디어 등을 대고 이부자리에 누워 밥통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고실고실하고 안도감 드는 밥냄새를 맡는 기분으로 하루에 10장 정도씩 천천히 읽었다. 요새 소설이나 수필, 에세이, 블로그 글들이 겨울 구들장에 익혀놓은 군고구마나 군밤처럼 고소하고 애틋하다. 사라질까봐 아까워서 애틋할 정도. 도대체 왜 사회과학책 종류만 들입다 '사' 읽고 이런 책들은 그냥 '심심풀이'로 여겨서 빌려만 봤는지 모르겠다. 책장에는 위로가 되는 책들이 별로 안 보여서 아쉬워. 정작 힘들 때 위로가 되는 놈들인데. 인숙만필도 그 중 하나, 인숙씨도 만나고 싶고 인숙씨 서클-고종석과 강금실을 포함한-도 부럽다.


1. [어느 책에선가 '타인의 눈물은 물과 다름없다'라는 러시아 속담을 보고 정신없이 웃었던 적이 있다. (13)] 타인의.눈물은.물과.다름없다.라는 말, 그런 속담은 너무 써서 이렇게 말로 턱~하니 표현해 놓은 러시아 말이 얄밉지만 아무리 찧고 까불어도 그렇다는 것을, 내 나이에는 이미 차고 넘치게 알고 있으니. 2. [내 동생은 자기가 사학과를 선망했었다는 걸 기억이나 할까?... 자기가 걷고 싶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 대한 돌연한 질투에도 불구하고 그는 패기만만했다. 그는 자신만만했고 그래서 뼛속 깊이 도덕적이었다. 그 무렵, 결혼을 앞둔 한 친구의 토로를 들었다. 그 친구는 자기가 높은 급료를 받고 있는 전문직 여성을 결혼 상대로 택한 이유가 생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의 능력으로 생활을 헤치고 나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공포를 이해했다. ... 그런데 내 동생은 "어디 그 파렴치하고 거지같은 근성을 창피한 줄도 모르고"라고 운운했다. ... 그런데 '여자한테 얹혀 살 것을 작심한 인간'에 대해 그렇게나 가차없었던 내 동생이 요즘에는, 자기 아내가 돈을 벌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는 것 같다. 내 동생의 그런 변화를 생각하면 서글프다. (89)] 나도 '자기의 능력으로 생활을 헤치고 나아갈 자신이 없는' 그 친구의 공포가 이렇게 절절히, 알알이 이해가 된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나 역시 그 공포를 줄여줄 수 있는 보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상을 발견했기 때문에, 결혼씩이나 할 수 있겠지. 인숙씨 동생의 변화도,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몇몇 인간들의 결혼의 목적도 서글프다. 어쩌다가 원시 사회였다면 부락의 일을 거의 도맡아 했을 이 젊은 세대들이 이렇게 낭만도 없이 시든 오이마냥 살고 있는 것일까? 원시 부락까지 안 가도 우리 앞 세대는 시청 광장앞을 물들이고 몰래 광주민주화항쟁 비됴도 돌려보고 삐라도 만들어 뿌렸던 나이에, 우리는 '홈에버'에서 애인이랑 카터끔시롱 물건사고 실명인증 받아가며 인터넷 댓글 쓰시고 토익책 들고서 도서관에서 꾸벅꾸벅 졸고. 애드버스터라는 책에서 재인용된 용어처럼 정말 침울한 '침체 세대'이올시다. 결혼은 과연 할랑가 몰라. 3. ['에로티시즘'이란 죽을 때까지 내내 삶을 긍정하는 것'(조르쥬 바타이유) 내 주눅듦은 내가 내내 삶을 긍정하지 못해왔다는 징표일지 모른다. 젊음에 대한 내 지나친 애착은 한 번도 에로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행하지 못한 자의 불건강을 드러내는 건지도 모른다.(132)] 흠, 그래서 영화 '죽어도 좋아'에 나오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 '우리는 내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랑가만 생각헌당께'가 그렇게 에로틱하게 들려부렀을깡? 4. [몸도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컸지만,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왜 자기에게는 매사가 이렇게 고약하게만 돌아가는가, 하는 울분이었다.(139) ... 어떤 영화를 보니까 '인생에서 가장 좋은 건 모두 공짜'라는 대사가 있다.(140)] 나를 가장 힘들게 할 때는, 왜 나에게는 매사가 이렇게 고약하게만 돌아가는가, 하는 울분이 벌컥증처럼 속에서 치밀고 올라올 때였다. 대부분, 연애하는 시기였다. 제길슨. 언젠가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건 모두 공짜'라는 말이 애인을 보면서 하릴없이 나왔으면 좋겠다. 애인도 공짜잖아, 애인 키운 사람이 애 썼지. ㅎㅎ 5. [왜 노숙자들에게 슬리핑 백이라도 나눠주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겨울이 추운 나라에서 사람을 신문지에 싸서 시멘트 바닥에 버려두다니.그들에게 '죽어, 얼어, 부활할 거야'라고 농담이라도 건네는 건가?... 불운한 사람들의 유일한 도피처인 잠조차 최소한도 지켜주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독한가?우리는 악독한 추위처럼 독하다(174)] 독해서,미안한 겨울이 왔다. '재활용 슬리핑백 프로젝트'라도 해야하는데... 6. [좋아해서라기보다 필요해서 자주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칸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채찍 삼아 중얼거리며.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야만 하니까' (176)] 연구실 책상에 붙여놔야할 어록. 논문 해야만 하니까 할 수 있겠지 -_- 7. ['부모는 다 큰 자식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마련이다. ... 부모로부터 배우기만 하고 부모에게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식은 불효자식이다. 훌륭한 인격에서 배어나오는 향기를 몸에 휘감지 못하고, 지성의 아름다움도 없이, 전자제품 이야기, 레저 바캉스 이야기, 프로야구 이야기, 영화배우나 탤런트, 가수 이야기, 시시껄렁한 일상생활의 이야기 밖에 못하는 자식으로부터 평생동안 먹고사는 일에 시달려온 부모들은 도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부모가 험하게 늙어가는데는 자식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202)] 서준식 옥중서한, 에서 인숙씨가 베낀 글을 나도 다시 베꼈썼다. 부모님에게 불효자식을 넘어서서 나는 전자제품 이야기, 레저 바캉스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도 안 한다. 부모랑 말을 잘 안 섞고 짜증만 내지. 엄마가 설에 오셔서 지금 내 방에 계시는데 하루 더 있다가 가시라고 해야겠다. 하루라도,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조금이라도 '효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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