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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22
    체 게바라, 쩜쩜
    금자
  2. 2006/07/17
    trnaslated woman(1)
    금자
  3. 2006/07/11
    침묵의 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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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12/27
    [책읽기].희.망.의.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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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9/19
    [책읽기] .거.세.된.희.망.(2)
    금자
  6. 2005/09/19
    [책읽기] .거.세.된.희.망. <내용 요약>(1)
    금자

체 게바라, 쩜쩜

" 우습게 보일 각오를 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정한 혁명가는 열렬한 사랑의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는 진정한 혁명가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혁명가는 극단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차가운 지성주의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해, 엄청난 양의 인간애와 엄청난 양의 정의감,

그리고 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이처럼 생생한 인간애의 사랑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본보기가 되는 행동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

 

- 체 게바라.

  

  '헬렌 킴'이 단체 컨설팅 왔을 때,

   그녀 강의노트 맨 앞에 적혀 있길래 졸음을 쫓으려고 마구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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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naslated woman


 

Women's Studies/ Anthropology/ South America

 

Ruth Beher. 1993 Translated woman: crossing the boder with Esperanza’s story. Beacon press.

 

 >> 번역은 반역이다

   오래전 이탈리아 사람들은 번역은 반역이다”이라는 말로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어 옮기는 일의 난감함을 토로했다. (권용선2003:5) 이 난감함은 언어들 간의 변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문자로 쓰여진 텍스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 오감을 통해 감각되는 것을 지각하는 일, 대화를 나누고 정서를 교감하는 일 또한 번역(translation)에 포함된다.(Ibid., 5) 하나의 문장을 읽어내는 데에 무수한 각주와 해석과 설명이 동원되는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외부와 만날 때 그 나름의 경험과 지식과 취향을 개입시킨다. 공통감각은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그래서 번역은,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불통과 불화의 선 뿐만 아니라 소통과 화해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반역의 작업이다. (Ibid., 5) 

 

이 책은 에스페란자와 베하가 나누었던 대화, 번역, 그리고 반역에 대한 글이다.



   I. 에스페란자 이야기, 그녀의 구술사

 

   내가 동네 아줌마들에게 처음 들었던 에스페란자는 남편의 눈을 멀게 할 만큼 독하고 사납고 거칠고, 몰염치의 아성으로 굳어져 있는 그런 아줌마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라고 불렀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그림 속에 나온 그 인디언 여자를 떠올렸다.

   우리는 1985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작고 허름한 집에서 나는 민트향의 냄새를 맡으며 역시 작고 허름한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말이다. 때로는 지겹고 잠이 쏟아지고 황당해서 후딱 깨기도하면서 수많은 밤을, 몇 년간 지속되었던(1990년 초까지) 그 무수한 밤을 그렇게 지새웠다. 에스페란자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귀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귀를 기울인다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로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에스페란자의 이야기는, 말들은 끊어지고 반복된다. 처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컬러퍼플(The Color Purple)의 주인공 씰리를 떠올렸다.

   "아빠는 엄마를 마구 팼어. 다섯 살 땐가 여섯 살 땐가의 기억인데 우리들 보는 앞에서 엄마 머리채를 끌고나와 마구 발로 찼어. 엄마를 마체테(machete)로 패고 나서 마마가 널 부러지면 우리들을 팼어. 아빠가 때리고 나서 집을 나가면 마마는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늘어놓았어.

나는 마마가 겪었던 삶을 기억해, 그것은 바로 인디언 여자들의 깜깜한 삶이었어. (black life)"

 

   에스페란자 역시 인디언 여자들의 깜깜한 삶을 살게 된다.

 "나는 울 엄마처럼 남편한테 마체테로 머리를 맞았어. 그 놈은 취해서 울 엄마를 남편도 버리고 도망간 창녀 같은 년, 너도 니 엄마랑 똑 같은 년이라고 했어맞는 순간 핫, 했어. 피가 바닥으로 흘렀어. 아이를 꼭 안고 있었어. 그 때 나는 울었어. 그 때 맞은 곳이 여전히 뜨거워. 아직도 코라제(coraje, 화)를 느끼면 그 곳이 불 붙는 것처럼 아파, 너무 아파."  나는 에스페란자의 머리와 이마에 여전히 남아있는 흉터를 기억한다.

 

   II. Literary Wetback (미국에 불법입국하는 멕시코 인을 경멸적으로 칭하는 용어)

 

    II-1. 실제세계 

   

   “재현은 재현되는 주체에 대한 폭력을 포함하는 작업이다.” 

    사이드(Said)

   

   멕시코의 작은 집에서 풍기는 민트 향의 냄새를 맡으며 식탁 넘어 손을 꼽을 수 없을 만큼의 밤을 보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신식민주의가 만들어 낸 국제적 노동 분업 안에서, 그 정치적 자장 안에서 우리는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 에스페란자도,나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문화를 번역하는 작업은 세 살난 내 아들 가브리엘이 멕시코의 다섯 살 배기 동네 애들보다 더 발육상태가 좋다는 현실에서 미끄러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행상 다니면서 이것 저것 얻어먹고 남긴 음식 받아오는 나를 보고 거지라고 해. 하지만 자기, 내가 너한테서 뭘 빼앗았어?"

   그녀의 행상을 따라 나선 날 아침, 에스페란자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 날 거리를 나란히 걷는 우리들만큼 기묘하게 보이는 것도 없었다. 레이밴 선글라스에 카메라 가방을 들고 스웨터를 입은 미국여성과 인디언 복장에 앞치마를 두르고 어깨에 넝마 같은 바구니를 이고 가는 에스페란자.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우리가 에스페란자네 식탁에서 백 만번의 대화를 하고 그 시간을 공유한다고 해도 여기는 실제세계였다. 인종적, 계급적 경계가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우리는 단지 함께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도 그 거리에서 조용히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환상일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나를 타고 여기저기의 경계를 넘겠지만 실제의 그녀는 국경선에서 저지당할 것이다. 혹은 고작 해야 미국의 미등록 불법가내 노동자로 비참하게 국경을 넘어야 할 것이다. 에스페란자는 책을 통해 자신(self)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될 저기에서 멕시코 사람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취급당하고 또 얼마나 비참하게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수많은 밤, 아직도 가물가물해지지 않는 기억 속의 그 밤들을 통해 경계를 넘었다고 믿었다면, 에스페란자, 그것은 기만일까?

 

   II-2. 여기, 그리고 저기

 

   “동네 여자들한테는 말하지마에스페란자가 간곡히 이야기했다.

   “저 곳 (over there)에서만 영어로 출판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저 곳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요?”  얼떨결에 에스페란자의 의견을 묻는다.

   “재미없을 거야, 별로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런 말이 있잖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심장이 있어도 못 느끼는 거 (eyes that don’t see, heart that doesn’t feel)”

   “왜 동네 아줌마들한테 그렇게 비밀로 해야 해요?”

  “나는 멕시코 사람들이 미국에 건너가 몸을 팔아 먹고 사는 것처럼, 여기서 말을 판 거야. 여기서는 어디서도 쓸데 없는 말들을 풀어서, 이런 이야기 거기서는 못 구하는 거잖아. 그런 말들을 판 거야.”

 

   III-3. 진실 혹은 거짓

 

   에스페란자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 했는지는 나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 아마 극적인 사건을 더 강조했을 것이고 자신의 섹슈얼리티 같은 민감한 문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으며 어떤 사건은 부풀렸을 수도 있다. 그녀는 자신의 섹슈얼리티, 관계, 욕망 보다는 그녀의 고통, 그녀가 당한 물리적 폭력, 그리고 그녀의 분노, 종교적 관념이나 의례 등이 더 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미 그녀에  의해 한 꺼풀 걸러진 삶에 관한 것이다.

   에누리없이 말하자면, 삶에 진실된버전 같은 것은 없다. (there is no true verstion of a life, after all) 그저 삶에 대해서, 삶의 주변을 서성이는 이야기만이 존재할 뿐이다.(There are only stories told about and around a life)

    내가 에스페란자 이야기를 믿느냐고? 내 교육적 배경을 업고서 책이 출간된다면 그녀의 이야기는 진짜가 되겠지.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녀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는 묻혀질 것이다. 에스페란자와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이 잠든 후 그녀의 작은 식탁에 모였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는 다른세상의 사람들에게 보여지기위한 버전의 이야기일 뿐인가?

   에스페란자의 이야기는 생애사(life history) 인가 그저 이야기(life story) 인가? 논픽션인가 아니며 픽션에 해당하는가?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스페인어를 그대로 사용해 historia 라고 칭할 것이다. Historia는 히스토리와 스토리의 경계를 유동적으로 넘나드는 단어이다.

 

   III-4. 보이는 대상, 보는 주체 (타자화)

 

   페미니즘의 이론화는 분명히 민족지적 기술을 재고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것은 정체성이나 자기/타자 관계의 역사적, 정치적인 구축을 문제로 삼는다. (마커스)

 

   아더 문비 (Arthur Munby)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은 자신의 하녀였던 한나쿨윅 (Hannah Cullwick)천한일들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그녀의 사진을 찍고 그녀의 일기를 읽어보는 것을 즐겼다. 그녀는 일기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었는데 이는 그의 주인의 뜻에 따라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문자가 없는여성들의 이야기를 구술사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갔지만 그들이 우리 시선(gaze)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 그들이 기꺼이 보여지는 주체로서 역할 했다는 사실은 많이 간과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아더 문비의 작업을 도돌이표하고 있는 것일까?

  로잘도는(Renato Rosaldo) 인류학자들은 생애사를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나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문자없는 여성들 앞에 녹음기를 들이대면서 그들의 삶에 대해서 진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를 물었다. 인간이 고통을 느끼고 표현하고 인정하고 공감하는 행위는 그 사회의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정희진 2002:54) 고통을 보는 작업, 그들의 고통을 느끼는 작업, 그리고 자기와 타자 관계의 구축하는 작업은 보이는 대상과 보는 주체 사이의 정치학을 포함한다.

 

   더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여지는사람이 더 상처받는다.

   그래서 타자화되는 존재들은 상처 받기 쉬운 위치에 놓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주체는 견고한 위치에서 그들을 재단한다. 나는 바라보는 민족지 학자이고 에스페란자는 나의 시선에 의해서 타자화되는 존재이다. 나는 내 콤마드레, 에스페란자의 historia를 내게 반사해 내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통로를 만들었다.

   이야기를 통해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아와 타아와 섞인다는 것은, 말만큼 멋진 작업은 아니다. 특히 다른 세계에 속한 여성들이 함께 작업하는 것은 그만큼의 불협화음을 포함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인류학은 이제 온전히 이러한 불협화음을 껴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름없는 페미니즘과 너무 이름을 가진 나의 페미니즘 사이에서, 나는 이제 에스페란자가 아니라 나를 번역(translating)한다.

 

   III. 에스페란자, 희망

  

    그 시절, 온갖 매체에서 베를린 장면이 무너지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자료를 정리하고 있을 때, 사회주의 국가에 살던 사람들이 서구의 자동차와 아파트를 사탕 가게에서 알록달록한 사탕들을 쳐다보는 아이들처럼 바라보는 사진이 뉴욕타임즈를 장식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국경을 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미국에서 사용된 일회용 기저귀가 시장에서 새 기저귀로 팔리고, 사람들은 쉬쉬하면서 저기에서 온 산업페기물이 싸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살아있는 시체’ (living dead)라고 불렀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선이 전쟁터처럼 되어가고 있었고, 불법으로 미국에 침입한 외부인(illegal aliens)에 대한 기사가 넘쳐 났다고, 나는 그 시절을 그렇게 기억한다.

   당시 남편과 나는 현지조사를 위해 국경을 넘을 때 달러를 건네면서 관광객이라고 말했다. 멕시코로 들어갈 때 솔직하게 신원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요구하는지 알게 되면서 체득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우리가 사실은 관광객이 아닐까 의심한다. 학계적인 관광객, 말이다. (academic tourist)

 

   이 책은 1991 5월에서 8월 사이에 쓰였다. 엉덩이에 땀띠가 날만큼 책상 앞에 앉아있는 동안 얼마나 에스페란자네 식탁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그 해 9월 출판을 준비했고, 11월 에스페란자에게서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콤마드레, 멕시코에서 나와 보냈던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바래요. 당신이 멕시코에 다시 올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게 그 책이 팔렸으면 해요. 내 이야기를 번역할 수 있는 권한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불법 외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로 읽혀지길 바란다. 또한 멕시코 남성들의 '원초적 가부장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녀의 삶이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에스페란자가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인 여성과 아이들 이외에는 어떤 것도 손에 쥘 수 없었던, 절망적인 멕시코 하층 계급 남성들의 '더 약한 자를 향한 폭력'이 구조적인 폭력 속에서 이해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멕시코 남성들의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 책에 나온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에스페란자는 그녀 스스로 만든 가명이다. 에스페란자는 스페인어로 희망을 뜻한다.

 

권용선. 2003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그린비

정희진. 2002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또 하나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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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Carson, Rachel

                  2002 『침묵의 봄』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로.

 

 

한참 거실에서 디브이디 참을 없는 존재의 무거움 보고 있는데 방귀 냄새 킁킁!!

마치 우당탕탕 괴짜 가족의 국회의원 뒷마당에 들어와 막대한 똥을 같았다.

아니 미녀는 괴로워 나오는 뚱녀 변기에 산처럼 쌓인 자신의 똥을

젖가락으로 끊어서 물을 흘려보내는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뒷마당에는 뚱녀 국회의원 아닌

스컹크가 들어와 방귀를 , 뀌고 간거라고 엄이 설명해줬다.

시멘트만 들어찬 서울에서 스컹크는 커녕

비둘기와 고양이 이외의 동물도 보기 힘들고 흙을 밟아보기도 어렵다.

시멘트로 둘러쌓인 아파트 안에는 바퀴벌레와 모기를 쫓는 그 거시기들과,

물먹는 하마, 뽀드득 아주 야무지게도 닦이는 세정제 그런 것들이 마구 있다.

스컹크가 뒷마당에 와서 방귀 끼고 가는 캐나다에 들어앉아 침묵의 봄을 읽으면서,

스컹크 방귀 냄새보다도 독하고 심한 날마다의 생활에 야리꾸리한 감상에 젖었다.

이런 기분은 티벳의 라마승들이

살아있는 작은 모든 것들을 나도 모르는 새에 밟을까봐 봄철에는 발걸음을 되도록 자제한다는 다큐먼터리를 봤을 느꼈던 그런 것이랑도 비슷했다.  

나는 한번도 바퀴벌레를 죽이는 살충제 쓰면서 죄책감을 느껴본 없고 살충제 성분이 무엇인지 궁금해 적도 없었다.

 

아주 추상적으로,

너무 많이 쓰고 많이 가지고 많이 탐내고 그러는 나도 모르게 환경을 파괴하고

그래도 도시생활에서는 어쩔 없고,

그러다가 대안 생리대를 쓰거나 텀블러를 들고다니거나 재활용을 똑소리나게 하는 것으로

자기를 위로하고,

그러다가 쓸데없는 인생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것들이 쓰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이 들고는 그랬다.

존재가 참을 없을 만큼 무거웠다.

 


 


읽을 때는 방만한 증거 자료들에 조금 질리기도 해서 (도대체 살충제는 그렇게 끝이 없이 많고 해악도 그렇게 끝이 없이 많은지)

카슨이 방사능 효능을 들먹이면서 살충제의 해악을 이야기하는지 몰랐는데

후기를 보니 카슨이 비밀 핵실험과 핵비축이라는 장막에 대항하기 위해 책을 썼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니까 그녀는 미국 육군이 비키니 섬에서 실시한 원자폭탄 실험의 세부적인 내용을 감추려 연구를 시작해서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인해 핵전쟁이 일어나려는 찰라에 연구내용을 발표했다. (p 337)

(>///< 언니 최고로 멋져!!)

그녀는 박사학위를 갖지 않았다는 점과

어떤 단체나 기관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는 때문에 거의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살충제만큼 독한 화학살충제 기업들과 그에 연루된 박사 학위 가진 과학자들의 공격에 많이도 당했다.

그녀에게 가장 불리하게 작용했던 사실은 대중을 위해 글을 과학자라는 점과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p339)

과학자들과 저널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은 카슨을 감정을 호소하는 단어 사용하는 히스테릭한 여성이며 지나치게 섬세한 본성의 소유자이고 그녀가 책은 자신이 저주하는 살충제보다 독하다 말했다.(p 339)

의학전문 평론가인 빈은(William B.Bean)

“<<침묵의 >> 읽으면 여성과 논쟁을 벌여 이길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라고 말했다. 농무부 장관은 공식적으로 아이도 없는 독신녀가 유전학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라는 의문을 표현하기도 했다.(p340)

이런 놈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이른 나이에 암에 걸리고 회복하지 못한 것이 아닌라는 생각에 분노 게이지 부르르.

 

그들에게는 

"목축업자에게는 초원을 찾아다닐 권리가 있고

나무꾼에게는 벌목을 권리가 있듯이

누군가에게 야생들꽃을 즐기는 것이 도저히 포기할 없는 권리이기도 하다. (p94)"

라는 투의 그녀의 문장이 지극히도 '계집애'스럽고 '비과학적'이고 넌저머리날 만큼 '몰상식하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카슨의 지극히도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이 기록은

가슴을 찡,하게 만들고, 그 수없이 쏟아지는 구구절절한 증거들에 압박당하는 느낌을 준다.

 

책을 보는 내내 한 가지 걸렸던 점은

인간은 도자기 진열장에 들어간 코끼리처럼 자연을 짓밟고 있다 사실에 민감했던

그녀의 책에 동물 실험의 결과들이 너무 태연자약하게 나와 있었다는 점이다.

실험동물들에 대해서 죽음에도 자비를라는 입장과 실험동물자체에 대한 의문이 켜져가고 있는 시점에서 살충제 해악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많은 실험동물들을 생각하니

짚신벌레 위에 있는인간이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지

존재가 한없이 무거워져버렸다.

(물론 카슨이 동물실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책에 나와있지 않다.

그녀는 그저 동물실험 결과들을 들이대면서 살충제의 해악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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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희.망.의.이유.


 

제인 구달처럼 늙고 싶다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7박 8일 반납’ 비디오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나

 

고리짝 장롱 냄새를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누리는 가장 매력적인 일, 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올 해 크리스마스 케익을 보며 제인 구달처럼 늙기를 빌었다.

 

읽는 동안 마음에 찌르르, 하는 느낌이 든다.

 

진보넷 블로그에서 ‘동지들, 내일 시위에 따숩게 입고 나오세요” 의 문구를 봤을 때 들었던 그런 마음.

 

그러니까 나는 그런 마음들과 그런 책들이 너무 좋은데, 이 책도 그렇다.  

 

이 책의 인세와 판매수익금 전액은 ‘기적의 도서관’ 건립 기금으로 쓰이므로,

 

이 책을 사서 보는 것도 제인 구달처럼 ‘착하게’ 늙어가는데 보탬이 되겠습니다. ^0^

 

 

<책 속>

 

‘고상한 유인원’ 침팬지는 ‘고상한’ 미개인 만큼이나 신화에 불과하다.

 

잔인한 집단간 공격과 새끼 살해의 사례들, 귀염둥이 침팬지들이 보여준 동족 잡아먹기, 공격 당한 침팬지의 흐르는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받아 마시는 모습 등등,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느낌표 선정 도서에 이 정도 씬은 나와줘야지’ 의 찐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런 장면들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조차

 

“심한 고통에 처하여 울고 있는 누군가를 본다면 대부분은 가서 그들을 부축하고 위로할 겁니다. …

 

그래서 우리는 다윈 식의 과거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고 말하게 만든다.

 

제인 구달은

 

‘나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사랑과 연민과 자기 희생의 자질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잔인하고 악해질 수 있다. 누구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행동 뿐만 아니라 말을 통해서도 서로를 고문하고 싸우고 죽인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가장 고결하고 관대하며 영웅적인 행동들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더 이상의 발췌는 금물, 그저 '착한 동화책'처럼만 보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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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거.세.된.희.망.

거세된 희망, 폴리 토인비/이창신 역 <개마고원> 1.고된 노동, 질긴 빈곤 “거리를 지나며 마주치는 모든 것은 내 삶을 넘어서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었다. 스탁벅스의 소파, 서점, 레스토랑, 하다못해 몹시 허름한 카페도 더 이상 내게 손짓하지 않았다. 오늘날 가난을 광범위하게 정의하는 말이 있다면 바로 ‘제외’라는 말이리라. 평범한 즐거움에는 하나같이 ‘출입금지’표지판이 대문짝하게 걸려있다. 이걸 사라, 저걸 사라며 소비자를 현혹하는 번쩍번쩍 빛나는 상점은 총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돈이 모자라 가장 싼 음식을 고르는 일은 결코 즐거운 쇼핑이 될 수 없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움만 더해갔다.” 제외, 라고 말하면, 가난 때문에 제외 받아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이명랑의 소설 ‘삼오식당’을 떠올린다. 삼오식당의 주인공 ‘명랑’은 영등포 시장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이동식 화장실(푸세식)이 너무 멀고 너무 오래 기다리고, 게다가 돈을 접수하는 ‘똥할멈’의 존재가 무서워서 - -;; 자기네 ‘삼오식당’에 딸린 방, 그 쪽방 뒤에 세탁기를 간신히 밀어넣은 공간으로 들어간다 . 세탁기에서 나온 물이 들어가는 조그만한 수채구멍에 엉덩이를 살포시 두고 시원하게 오줌을 싼다. 그리고 한 바가지 물을 뿌린다. 영등포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여편네들은 모두 명랑이네 엄마, 삼오식당 주인의 눈치를 봐가며 ‘삼오식당’의 찌릉내나는 세탁기 수책구멍을 이용한다. 그리고 명랑은, ‘고만한’ 동네 애들과 함께 다니던 ‘국민학교’를 떠나 시험쳐 들어간 다른 동네 중학교에서 나지막히 읊조린다. ‘처음엔 몰랐지만,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기 힘들어졌다, 한 번도 수채구멍에 대고 오줌을 싸보지 않은 친구들, 그것을 신기해하는 친구들, 그래서 말 수가 점점 적어지고, 나는 어느 순간 책을 열심히 보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가난이 제외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 역시, 삼오식당의 명랑처럼 화장실 때문이었다. 푸세식 화장실을 무서워하고 더러워하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겁이 나” 그들이 푸세식화장실을 두려워한 것만큼이나 나도 그들에게 푸세식화장실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 겁이 났다. 번쩍번쩍 상점에서 제외받는 가난도 싫은 일이지만 화장실 하나로 사람에게서 제외받는 것 또한 서글픈 일이었다. 2. 거세된 희망은 영국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폴리 토인비가 급식조리원, 청소부, 텔레마케터, 빵 포장 등의 ‘저임금’ 노동생활을 하고 나서 쓴 책이다. 빈곤에 관한 여러 책 중에서도, 그녀를 기억하는 것은 가난해서, 무시받고 제외된 인생들에 대해서 정직하게 기술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더 훈훈하거나 가난해서 못 견딜만큼 비참하거나, 이러지도 않았다. 다시 중산층의 삶으로 돌아오며 ‘내가 저곳이 아니라 이곳에서 태어나 얼마나 행운인가’하는 형언하기 힘든 기쁨과 안도감이 컸다고 쓸 만큼, 또 솔직했다. 그래서 이런 ‘체험식’의 글쓰기가 빠지기 쉬운 ‘아, 그렇습니까? 좀 띠겁습니다’ 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들’과 ‘나’의 자리를 인식하되 시혜나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혹은 우리는 하나다, 라는 손쉬운 ‘거짓뿌렁 동지애’를 가장하지 않는 것. 일용잡급직으로 한동안 일해본 적 있는 내게 와 닿는 부분은 이런 거였다.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게 일하는 시간을 펑크내서 면접보러 오게 만들고-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이력서를 쓰고 일을 찾는 고역과 면접후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다가 자신의 가치가 이것밖에 안되나 라는 자괴감에 빠지고, 면접이 취소돼도 미리 연락주지 않고 직장을 옮기는 그 기간동안 살 돈이 없어서 갑갑하고, 빚은 쌓이고, 값싼 노동자는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나 다를 바 없다는 식의 태도,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이었다. “차도 없고 택시나 지하철을 탈 돈도 없는 사람들은 시간과 발품이 누구보다 귀한데도, 사람들은 이들을 시도때도 없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한가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찾기는 한결 어려워지고, 겸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든 절차는 언제나 직접 찾아가 처리해야 하고, 그것도 대낮에 이루어지기 일쑤였다.” ‘스타벅스 커피’정도는 사 먹을 수준의 최저임금 현실화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이 얼마나 마음을 쑤시던지, 그런 것들은 자존감을 많이 손상시키고야 만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이요원이 상사에게서 ‘저부가가치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고 화장실에서 우는 것처럼, …스스로가 저부가가치 인간이라는 자각. 가난해서 스스로에게 제외받을 때의 기분. ‘거세된 희망’은 그런 느낌에 대해서 적고 있었다. 3. 이 책의 최고 장점은 노동의 가치가 어떻게 매겨지는가에 대해서 질문한다는 거다. 독일의 바바라 스티글러(독일 사민당 자문) 위원은 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는‘업무 평가에 대한 차별적 상황’에 대해, “업무평가에서 특히 육체노동은 대근육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져서 임금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즉, 아이를 양육하는 일 같은 분야의 육체노동은 소근육을 많이 이용하는 일로 사회적으로 평가절하되어 왔다. 즉 대근육 중심의 육체노동만이 고임금 직종으로 분류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차별 없는 업무평가 방안’으로 연구진들이 노인을 간병하는 여성과 전문 기술직에 일하는 남성을 비교 적용해보았다. 이런 분석틀을 가지기 않았던 기존에는 기술직종이 노인간병 직종에 비해 평균적으로 200유로 정도 높게 받고 있었는데, ‘차별 없는 업무평가 기준’에 의해서는 동일한 평점을 받았다고 한다. 기존의 직종 간에 존재하던 임금 규정 및 업무 평가에 대한 관행을 뒤집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평가 방안은 기존의 남성노동 위주의 업무평가를 대체해서, “한 사람의 노동에 대해 요구 받는 능력과 약화되는 능력을 동시에 고려해 업무가치 평가를 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즉 업무평가 되는 능력은 지적 분야(전문 능력, 조직 능력), 심리사회 분야(언어 및 의사소통 협력, 협력 능력, 감정이입 능력), 책임성(업무결과 및 환경보호와 같은 가치에 대한 책임감)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축으로 업무에서 요구되는 전문 분야 뿐 아니라 그 업무를 수행하면서 피해를 입는 부분에 대해서도 평가한다. 즉 전문능력에 대해 수당이 지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업무를 수행하면서 피해가 되는 부분이나 불리한 부분도 고려되어야 하고, 수당으로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 부분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ildaro.com의 ‘여성임금 부당하게 책정되 왔다’라는 윤정은 기자의 글 중에서 따왔습니다> 저자 또한 묻는다. 점화플러그를 청소하는 기술자가 노인을 씻기는 간병인보다 높이 평가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돌봄노동은 ‘싸구려 노동’이나 ‘허드레 노동’ 단지 약간의 임금이 주어지는 ‘엄마들의 일’이라고 치부되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씻어주고 상냥한 태도를 보이는 일은 특별한 자격이 필요 없다. 그저 여자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를 보살피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가르치고, 아이를 키우는 소위 여성의 능력은 언제나 저평가된다는 것이 저임금 문제의 핵심이다.” 거세된 희망은 여기서 더 나가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의 글쓰기와 간병인, 혹은 급식조리원의 일의 가치가 왜 그렇게 차이가 나야 하는지를 묻는다. 간병일을 하거나 밥하는 아줌마, 아이를 돌보는 유치원 교사, 청소부 등은 저임금을 받지만 그 일들은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이다. “나는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의 시원한 통로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이따금씩 쉽게 벌고 소비를 즐기던 예전의 내 삶을 생각해보았다. 그 때 하던 일과 지금 병원에서 하는 일(환자 운반원)의 가치를 비교해보면, 지금 이 일이 왜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나가는 아이가 내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한 마디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단 한 마디도.” 왜 이들의 노동은 ‘저부가가치 노동’으로 취급받아야 하는가. 그녀는 텔레마케터의 일을 금세 그만두면서 읊조린다. “경쟁은 자본주의 사회의 원동력이라지만, 이곳에서의 경쟁은 생산성도 없고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청소를 하는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데 한몫할 뿐이었다.(그녀는 청소대행업체에서 무조건 싼 청소 가격을 제시하는 텔레마케팅을 했다) … 텔레마케터로 청소원을 소개하기보다는 차라리 직접 청소를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적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노동, 그런 노동에 대한 가치 재평가...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 도 중요하다. 하지만 동일 가치 노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재평가도 그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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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거.세.된.희.망. <내용 요약>

책 내용 갈무리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일해도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다면? 아등바등 살지 말고 인생을 즐기고 잘 먹어라, 그리고 돈을 지불하라. 안심하고 마시고, 아이들을 잘 놀게 하라. 다른 사람처럼 똑같이 소비하고 살아라. 그런데 만약 힘들고 중요한 일을 하는데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노동의 최상의 복지다” “도움이 아닌 자립을” 노동당이 노래하듯 외치는 구호들은 시대의 흐름과도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한계선 이하의 삶을 산다는 암담한 현실이 구호 이면에 숨어 있다면? P14 경영컨설턴트가 지나다니는 계단을 청소하거나 그의 양복을 세탁하고 그의 나이든 부모를 돌보거나, 그의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보조교사를 하는 따위는 그가 하는 대단한 일에 비하면 ‘잡무’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가 원만히 굴러가기 위한 필수요소가 아니라 그저 보조수단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보조’라는 뜻의 영어단어 ‘ancillary’는 라틴어 ‘ancilla’ 즉 여자노예인 하녀에서 온 말이다. 하녀가 하던 일은 오늘날의 서비스 경제에 속하지만 서비스 산업은 여전히 비천하고, 여자가 하는, 따라서 전통적으로 남자가 해온 일보다 가치가 낮은 일로 인식된다. P26 중산층의 운명은 집만큼이나 안전해서, 하층민은 하층민의 운명이 따로 있고, 그들은 그들의 운명이 따로 있었다. …이 책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만한’ 빈곤층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앞으로도 집을 장만하지 못할 것이며, 저축할 수 있는 돈은 극히 적은 액수에 불과하고, 노후에도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자칫 병에 걸리거나 사고라도 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이들은 노동에 시달리다가 일찍 사망한다. 최상위에 속하는 남성의 평균수명은 78세인 반면, 최하위에 속하는 저임금 남성 노동자의 평균수명은 고작 71세에 불과했다. P31-32 수중에 돈이 없다면 돈을 빌리는 일도 그리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알 만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판국에 꺼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빚을 진다고 해서 더 문제될 것도 없었다. 주머니에 4펜스 밖에 없는데, 집세 70파운드와 다른 대금이 이미 연체되었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나빠진단 말인가? 그렇다면 꺼릴 일이 없지 않은가? P93 선택의 범위가 넓을수록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반대로 선택의 범위가 좁을수록, 즉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나 갈 수 있는 장소나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기회 또는 범위가 제한적이라면 삶은 비참해진다. 부가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풍요로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풍요에서 차단되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이 삶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빈곤감은 ‘상대적’이다. P144 …정말 건디기 힘든 일이지만 여기 사람들은 용케도 살아갔다. P147 텔레마케터의 수입은 평균노동자 수입의 약 40퍼센트 수준이다. ‘반복사용 긴장성 손상 증후군(RSI)’이 컴퓨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신종 병이라면, ‘음향 충격’은 전화통화를 집중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신종 산업병으로, 우울증에 빠지거나 소음을 참지 못하는 증세를 보인다. 이 일을 몇 시간씩 하다보면 누구든지 기분이 우울해지곤 한다. 내게는 이 증세가 ‘반복사용 뇌손상 증후군’처럼 느껴졌다. P245-246 나는 이제까지 인종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하층의 일을 찾아갔을 때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늘 흑인 일색이었다. 그렇지 않은 곳은 모두 백인 여자였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해야 하는 아이를 둔 엄마들이었다. P314 참으로 이상하게도 고위관리자협회는 최저임금을 위협으로 간주해 그토록 강력히 반발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임금인상은 문제삼지 않았다. 고위 임원의 임금이 인플레를 얼마나 유발하고 경제안정을 얼마나 위협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으면서, 최저임금을 50펜스 인상하면 국가경제가 흔들린다고 말한다. P334 현대의 평등은 오히려 하위 3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이 여전히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그들의 자녀 역시 타고난 빈곤을 탈출하기가 여전히 힘들다는 사실을 교묘히 가릴 뿐이다. 그러나 현대적 평등주의는 ‘제법 점잖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신화이다. 평등주의 덕에 우리는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잔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정당화하기에는 평등 외에 다른 수단이 없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흡족해 할 수 있는 변명거리가 필요하다. 특권층 역시 얼마나 자기 기만적이든 간에,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진다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P337 임금이 얼마나 인상되면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할까? 경제학자에게 물어보라. 십중팔구는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것이다. 저임금관리위원회에서 일하는 워릭대학교의 마크 스튜어트 교수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P344 교육과 훈련은 저임금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정치인들이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한 가지 분명한 이유 때문이다. 훈련을 받고 안 받고 간에 청소하고, 요리하고, 환자를 돌볼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주머니에 국가자격증을 얼마나 많이 넣고 다니든 간에 밤낮없이, 때로는 오밤중까지도 이어지는 고된 노동은 기본이다. 도카스는 앞으로도 계속 그곳 요양원에서 매일 아침마다 여성 명의 노인을 침대에서 들어올려 욕실에 들여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생계비조차 벌 수 없는 현실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P356 1970년도 초에 자동차 생산업체인 복스홀과 노조 사이에 체결된 협정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1)남성 인력을 사용할 수 있는 곳에는 여성 인력을 투입하지 않는다. 2)기존의 남성 피고용인을 여성으로 대체하지 않는다. 3)여성 인력은 광범위하게 합의된 특정직에만 고용한다. 합의된 일은 주방일이나 청소따위를 말하는 것으로, 이 회사에서는 유아용 카시트를 만드는 일이 여성에게 돌아갔다. P371 3c 업종- 여성과 관련 catering, cleaning, c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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