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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7
    죽음의 밥상(4)
    금자

죽음의 밥상

<고대대학원 신문사에 쓴 글, 블로그에 옮기니 딱딱하네 그랴 -_->

 

『죽음의 밥상』 by 피터 싱어, 짐 메이슨

 

 

 

칠 만원짜리 서평 원고를 위해 만 오천짜리 책을 샀다.

서평이란 출판사가 뿌린 책 소개를 밑감 삼아 자기 감상을 양념 치듯 섞어 쓰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화장실 변기 위에서, 달리는 지하철에서, 자다 깨서 노란색 형광펜을 그어가며 읽었다.(덕분에 원고 마감일이 지나서 이 글을 쓰는 중입니다)

진정성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을 주는 이 책, 참으로 기특하다.

허나 허구한 날 동물의 시체를 먹고 사는 인간들이 400쪽이 넘는 도덕적인 책을 읽고 개과천선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진정성의 문제는 늘 재미가 없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소고기에서(누렁아 미안, 널 고기라고 부르다니)

지구 온난화를 만드는 메탄가스의 1/3이 나오고 동물 사료를 만들기 위해 GM 곡물이 재배되어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열림우림은 잘려나가고 수질오염은 엄청나고 소고기만 적게 먹어도 전 세계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블라블라블라.

웬만한 채식 책은 다 읽어서 육식에 대해 A4 20장쯤은 참고문헌 없이 줄줄 써 내려갈 것 같은데도,

나는 7년 동안 채식을 3번쯤 뒤엎었다.

어찌된 것이 고기 냄새가 후강을 타고 내려오면 온 몸이 환장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아, 고기가 먹고 싶어.

인간의 욕망이 진정성을 이기는 순간이란 이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해한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가 여전히 고기를 먹는 것도,

채식에 100% 동의하는 내가 애인과 함께 고깃집에 들어앉아 있는 것도

(된장국만 퍼 먹으면서 언젠가는, 교화시키고 말겠어!!! 부르르르르르 하고 앉아잇음) 

충분히 따뜻하고 인간적인 우리가 나치가 유태인에게 했던 것보다 더 잔악무도한 공장식 축산업에서 나온 고기를 먹는 것도 말이다.

 

올해 세계문학상 당선소설인 ‘스타일’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뚱뚱한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얘기라면,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는 납득하지 못하겠다.

나라면 키가 작으면 하이힐을 신고, 피부에 자신이 없으면 화장을 하라는 빅토리아 베컴의 말에 기꺼이 한 표 던지겠다.”

 

아아, 옳으신 말씀.

 

이 글을 쓴 피터 싱어처럼 윤리학자도 아닌데 윤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밥을 먹는 것은 스스로에게 가혹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래서 우리가 인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으면서 윤리가 무엇인지 고민씩이나 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

사람에게 상처받고 ‘타인의 눈물은 물과 다름없다’는 러시아 속담을 곱씹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가슴 미어지는 쌈박한 동물.

그래서 우리는 이성과 도덕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죽음의 밥상』은 여기에 박차를 가한다.

과연 얼마나 인도적이어야 충분히 인도적인 식사를 하는 것일까.

인도적으로 키워진 동물의 살코기와 공정무역으로 재배된 농산물을 구입하는 ‘양심적 잡식주의자’와,

생선과 유제품까지도 아예 먹지 않는 100%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의 차이는?

유기농 수입 농산물과 비유기농 지역 농산물을 먹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친환경적일까?

문어나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은 고통을 얼마만큼 느낄까?

동물 세포를 실험실에서 키워 만든 배양고기(비동물성 고기)가 나온다면 죄책감 없이 고기를 먹어도 될까? 등등.

 

이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이 쏙쏙 들어오는 것은 저자 피터 싱어와 짐 메이슨이 책상 머리에 앉아 책을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즐겨먹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가족과(우리 집의 모습?),

양심적 잡식주의자의 가족과, 아이 둘을 비건으로 키우는 가족을 졸졸 따라다니며 책을 썼다.

심지어 지구에서 가장 윤리적이며 싼 식사를 하는 ‘쓰레기통 다이버’들과 쓰레기통에서 따끈하게 건져온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다.

이처럼 저자들은 세 가족의 밥상에 올라온 식품 회사들과 농장을 일일이 연결해서 방문하고 인터뷰하면서

우리가 선거일이 아니라 날마다 “마트에서 투표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국에서 풀어놓고 기른 닭의 달걀이 닭장 달걀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는 현실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이 시장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늘 저녁, 한 끼라도 진정성이 욕망을 이기는 밥상을 마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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