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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06
    혼자되기, 의 지겨움
    금자

혼자되기, 의 지겨움

김훈은 밥벌이가 지겹다고 했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그런데, 나는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를 킁킁, 나누고, 그리고 한 울타리 안으로 사람을 불러 제끼고 그들을 내몰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관계에 환장할 것만 같다. 밥벌이가 지겨운 것이 아니라, 혼자되는 것이 무섭다.


룸메는 한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남친과 근 한달 간의 여행을 떠났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고추도 심어놓고 토마토도 심어놓고 유독가스를 들이마심시롱 칙칙한 철문을 빨간 색으로 페인트칠했던, 그 집 구석에 별로 들어오고 싶지 않아졌다. 바보같기는. 결국 집에 들어와 <<용을 찾아서>>라는 발리에 대한 논픽션 여행기를 읽으면서 비겁하게도 이런 구절에 위안받았다. "모험에 쓸 돈이라면, 벽에 걸어둘 대형 평면 텔레비전을 사는데 보탠다거나 큰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등의 실질적인 일들에 쓸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의무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11) "아, 그래. 발리라면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던데.꽤 좋은 곳 같던걸. 비행시간이 그렇게 길지만 않으면 우리도 한번 가볼 텐데 말이야. 아이가 있으니 여행이고 뭐고 이젠 아주 힘들어졌지 뭐야." (289) '이렇게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는 없는' 서른이 마디게 마디게 지나가면 친구들은 결혼도 할 것이고 아이도 생길 것이고 그리고서는 남친과의 여행이 아니라 이젠 아이가 있으니 여행이고 뭐고 아주 힘들어졌다며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할 것이다. 그 때 여행을 갈거야, 보란듯이! 라고 뻐겨볼라 했지만, 먹고 죽을 돈도 없으면 어쩔테냐, 라는 밥벌이 멘트가 생각나서 더 우울해졌다. '때때로 여자들은 남자를 필요로 한다.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을 때, 욕실 변기가 고장 났을 때, 생수통을 옮길 때, 그리고 당연히 게임과 오락용으로' 식으로 생각하던 호시절도 있었다. 한국에서 하는 결혼은 여자들에게 -2와 -6 중 하나를 택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 고 결혼하는 여자들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한마디로 윤똑똑이 짓은 다 하고 있었던 셈이다. 요새, 그것들이 한달음에 이해가 갔다. 사람이 사무치게 외로우면 과부사정도 홀아비 사정도, 결국엔 결혼도 안 해 보고 결혼한 여자들 심정도 알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서론이 넘어서 공무원이나 선생님 같은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세를 안 내고 살 수 있는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혼공동체'를 꾸리자는 친구들이 정말로 내 곁에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들이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세상이 훈육하는 속도와 중력을 거슬러, 자신만의 리듬을, 자신만의 파고를 간직하는" 사람일만큼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각. (정여울,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문화를 보다>> p307) "어쨌든 우린 이제 서른이 훨씬 넘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쯤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다면 입을 다물로 조용히 있는 편이 낫겠지. 인생에 대해 여태 모른다는 걸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11)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쯤,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조바심. 결혼을 하거나 사랑에 미치면 이렇게 밀치고 올라오는 울컥증이 조금 가라앉을 것 같은 기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지루하고 단조로운 삶에 절망한 상태로, 뭐든 마음을 쏟을 만큼 애정이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안온하고 무감각한 이 생활을 당장 청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20) 나는 외롭고 약하고 관계가 그립고, 그래서 여행을 가버린 친구가 찍어올 사진들이 미울 것이다. 바보같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집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토마토와 고추, 쑥갓을 가지고 소박하고 따뜻한 밥상을 챙겨먹어야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 몸 같았던 그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에서 일인분의 생선을 그릴에 구워 밥상을 차리던 조제처럼. 그렇게 튼튼해지고 나면 '비혼여성생태공동체' 같은 모임에 갈 것이다. 지금은 자신만의 리듬을, 자신만의 파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내가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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