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from 2006/12/14 23:16

엄마는 오늘 담배를 피운다.

피우면 안되는데.

아빠가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먼 곳에 있다.

다용도실에서 찬바람에 얼굴도 손도 발도 내놓고

차갑게 빛나는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하얀 입김과 연기를 내밀었다.

나는 다용도실 유리문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엄마는 내가 없는 것처럼 다시 하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돌아와. 내게서 죽음을 몰아내줘.

나는 무서워. 어둠이 다가오고 있어. 차가운 불빛들은 진짜가 아니야.

나는 이곳에 혼자 있어선 안돼.]

 

엄마는 유리로 된 성안에서 나와 온기가 도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단단한 소파위에 나와 함께 앉았다.

나는 엄마를 지킬 수 없다.

엄마의 차가운 손이 내 무릎에 놓인다.

처음에는 그냥 차갑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무릎을 움직일수가 없게 되었다.

깊은 호수의 표면이 겨울빛에 얼어가듯이

내 몸은 조금씩 조금씩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얼어간다.

호수에서처럼, 얇게 언 수면아래로 미지근하거나 혹은 뜨거운 피가 천천히 흐르고 있다.

 

엄마는 페로시타스에게 걸어가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걷는다.

 

 

[나를 데려가. 아이는 내버려둬.]

 

 

발끝은 페로시타스의 그림자 아래 있다.

그림자가그녀를녹이고있다아니벗기고있는걸까?

그림자에닿은부분이까맣게타들어간다.

 

[그것이 되찾아졌다

무엇이? 영원성이

그것은 태양과 함께

가는 바다] *

 

하늘은 검다.

백합의 독기가 가득한 좁은 방

육각의 석영으로 된 방안에서

태양의 낙하지점에 앉아

용처럼 날고 있는 프테라노돈을 바라본다.

 

혹은

 

하늘은 하얗다.

습기가 가득한 뜨거운 대지위에

초록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아마란타인 한송이만이 신기루처럼 박혀있다.

 

나를 데려가 줘.

타는 듯한 삶의 빛으로부터 거둬가 줘.

 

영원이 두렵지 않은가?

 

나는 순간이 두려워.

 

너는 태양을 품고 있어. 붉은 화염에 휩싸여 하늘을 나는 그것은 배인가?

아니, 그것은 용이구나. 미스릴로 만들어진 심장을 가진 기계용인가?

질투로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온기가 없는 석회가루로 화장한 달인 줄 알았더니

들끓는 용암으로 가득한 끝없는 동굴이었구나.

나는 너를 품을 수 없어. 나는 너를 거둘 수 없어.

내앞에 내민 발을 거두어라.

 

너는 물체의 온기를 빨아들여 무게를 없애주는 존재가 아니던가?

태양은 그저 작은 별일뿐. 언젠가는 스스로를 태워없앨 나약한 존재.

나를 받아들여. 나를 받아들여.

 

지옥이 있다면 그러하겠구나. 그 고통 속에 죽음이 너를 데리러 올때까지

부조리속으로 쉴틈없이 내던져 지거라. 내 그늘에는 네가 쉴 곳이 없다.

 

그녀는 그곳에 그대로 있지만

페로시타스는 에메랄드 속으로 사라진다.

두개의 에메랄드는 쩡 소리를 내며 어둠의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가는

잉걸불이 사라지듯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둠속으로 녹아든다.

 

그녀는 또 담배를 피우러 간다.

심장에 담배끝을 대어 불을 붙인다.

 

 

* 랭보의 영원 마지막 구절. 번역은 정확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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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23:16 2006/12/14 2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