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아이가

from 우울 2006/12/15 12:41

당신의 고양이님의 [엄마는 외계인] 에 관련된 글.

예전에 어떤 아이가, 밥 샤코치스의 소설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라고 하면서,

이런 어머니를 갖고 싶다 했었다.

그녀가 그립다.

 

아이는 부엌의 조리대 앞에 앉아 금고처럼 생긴 냉동실의 알루미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냉동실에는 그의 어머니가 쇠고기와 다른 식품들 사이에 냉동된 채 누워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죽어서도 어머니는 호텔의 다른 손님들처럼 보일 뿐이었다.

특별한 요구를 하면서도 친절함이나 서비스를 원치 않은 채

다른 사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번도 아이에게 키스를 해준 적이 없었다.

꼭 어머니의 정을 보일 필요가 있으면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아이는 지금껏 어머니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서본 적이 없었다.

오직 단 한 번, 고등학교 시절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개로와하던

아이를 끌어안고 어머니는 설헙게 눈물을 흘려주었다.

아버지와 이혼하기 1년쯤 전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밤늦게 아이의 방으로 들어오셔서 크게 라디오를 튼 뒤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날 밤 어머니와 아이는 오열했다.

 

어머니는 아무 연락도 없이 뉴욕에 도착했다.

손가방 하나와 가죽 표지의 소설 몇 권, 여러 벌의 수영복과 터키식 긴 소매옷,

그리고 화장품을 들고 나타났다.

어머니가 떠나온 파리는 겨울로 접어들던 참이었다.

어머니가 평생을 통해 남겨놓은 것은 마치 외국어처럼

모호하고 생소한 것들 뿐이었다.

아이는 늘 어머니와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밥 샤코치스, 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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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5 12:41 2006/12/15 1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