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from 책에 대해 2005/01/29 12:37
생각하고, 분석하고, 창조하는 것은(그는 또한 내게 이렇게 써보냈다)
비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라 지성의 정상적인 호흡작용이네.
이러한 일반적인 기능이 이따금 성취시키게 되는 것을 미화시키거나,
케케묵고 시대에 동떨어진 생각들을 보물인 양 떠받들거나,
<만능박사>가 생각했던 것을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게으름과 야만성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네.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미래에는 그처럼 될 것이네.

보르헤스 전집에 주석을 단 바보를 불쌍히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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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9 12:37 2005/01/29 12:37

1월 28일 금요일 맑음

from 우울 2005/01/28 22:49
히스테릭한 시기이다.
꽤나 자주 심하게 군다.

왜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봤자
그 원인은 자잘하고도 단순한 많은 것들이며
그 자잘한 것들은 하나가 사라지면 또 하나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에 대해 히스테릭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자잘함의 양이 심각할만치 많아서 질적으로 히스테릭해지게 할만큼의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요가를 해보았다.
처음 가면 호흡법같은 걸 배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딱히 따로 호흡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걸까?

일단 한달 다녀봐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막상 무척 즐겁거나, 뭔가 설레는 느낌이 없어 조금 실망했다.
게다가 내 몸에 대해서
남들과 다르게 뭔가 나만의 기준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나를 좀 피곤하게 했다.
동작 하나하나 마다 내 오른쪽 다리를 신경써야 하는 것.
그가 어디까지 움직여줄 수 있을까
어디까지 움직여도 되는 걸까에 대한
나 자신도 알 수 없고
딱히 누구에게 물어봐야할지도 모를 질문들이 끝없이 생겨나는 것이
피곤했다.

내 몸에 대해서 스스로 알게 되는 과정인걸까?
당장은 귀찮고 피곤하다는 느낌.
하지만 해야한다는 느낌.
오른쪽 다리가 여느때보다 무겁게 끌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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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8 22:49 2005/01/28 22:49

불가능

from 우울 2005/01/27 01:12
나의 독선은 하루가 다르게 날이 서가고 있다.
심지어 나는 내가 진실을 본다고 믿는다

타인이 원하는 그 무엇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이제는 타인의 의뢰를 받아서 일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그들에 대한 혐오감으로 토할 것만 같아.
그들의 무지를 경멸하게 돼.

한편으로는
내 작업의 하찮음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
내 편견을 두려워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빌어 먹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도 두렵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이 불가능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이 불가능은 내가 알고 있는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두려운 아름다움 중 하나이다.
죽음과 사랑하는 이의 눈만큼 아름다워서
그것은 진실이다.

나는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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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7 01:12 2005/01/27 01:12

프리미엄 휘발유

from 우울 2004/12/29 14:24
뜬금없지만,
오늘 어쩌다 내 차에 프리미엄 휘발유를 넣게되었다.
워낙 안팔려서인지 할인행사라면서 일반 휘발유가격에
프리미엄 휘발유를 넣어준 것이다.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차가 너무 부드럽게 나가는 것이다.
깜딱이야.

평소처럼 액셀을 밟아도 RPM이 아주 부드럽게 조금밖에 올라가지 않아서
보통 2500RPM나올 정도에서 2000이 조금 넘는 정도만 올라가는 것이었다.
차가 진짜 부드럽게 달리기 시작하더니
이녀석이 꼭 살아있는 것처럼 달리고 싶다 보채는 것이 느껴졌다.
시내를 지나면서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차에게 어찌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엔진오일 갈았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하게
차의 변화가 느껴졌다.
레이싱카에 넣는 오일이라더니
무슨 약이라도 탔는지 차가 달리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찬 듯 했다.

프리미엄 휘발유, 정체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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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9 14:24 2004/12/29 14:24

from 우울 2004/12/29 11:40
개토가 빈둥빈둥거리면서
죄악이 어쩌구 무아가 어쩌구 괴로워하면서
이산화탄소나 생산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 분들은 반성의 시간같은 것은 자기자신에게 허용하지 않고
미친듯이 무아의 상태를 유지하고들 계시잖아.

생리를 시작해서
이불속에 들어가 뒤굴뒤굴 반쯤 잠들어 지내고 있다.

쫍.

다같이 겨울잠이나 자면 좋으련만.
하루에 네다섯시간도 못주무시고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 무슨 겨울잠 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래도 개토는 그분들이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그 시간만큼 겨울잠을 잘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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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9 11:40 2004/12/29 11:40
아마도 교과서에 실리겠지.
위인전도 나올거야.
새벽마다 자가용을 타고 단학수련을 하러 가고
동도 트기 전에 연구를 시작해서
하루에 18시간씩 실험을 했다고
그런 와중에도 주말이면 연구실 일동과 등산을 가서 심신을 단련했다고
본받아야 할 사람이 되겠지.

그의 말이 인용되겠지.
'인류를 위한 숭고한 연구,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일등이 된다...는 둥...'

아아 그의 집요함이 나를 지치게 해.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거니까
나는 싸우기가 싫은데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은데
그러다간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바꿔놓겠지.
광신적 믿음과 실천력을 가지고.
인류에게 그 믿음을 전도시키고.
모든 것을 자신이 믿는대로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그들의 욕망은
견디기가 너무 벅차다.
그들끼리만 사는 다른 별을 하나 주고
나는 다른 별에 살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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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9 11:12 2004/12/29 11:12

무제

from 우울 2004/12/29 10:57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돈이고 다른 하나는 내 '생각'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같은 곳에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돈이 없을 때는 워낙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돈이 있을때는 생각이 나를 막아선다.

돈이야 없으면 불가항력이지만
내 '생각'과의 타협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하도 괴로워 그냥 정리나 해보련다.

나이가 들면서 돈을 좀 벌게 되니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막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자가용을 사는 것부터였다.

대체 장애인으로써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일이었지만
돈이 없을 때는 그냥 그럭저럭 참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대중교통을 누구나 편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한?? 보태는게
내 꿈의 수준이었다.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서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모두 이용하게 해야 한다고
내 '생각'은 주장했다.
돈이 좀 생기자 내 '생각'에 내 '몸'의 '욕망'이 반기를 들었다.
1년여 만에 '몸'과 '욕망'의 투쟁은 성공을 거두어
나는 일신의 안락을 위해 대의를 저버렸다...^^;;
어찌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았던 내가 마치 새로운 발이 생긴 것 처럼
어렸을 때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어하게 되었고
실제로 돌아다닐 수도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남태평양의 섬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초특급'이라는 리조트에 머물면서
한 두번 사용한 시트와 수건을 갈게 하고
물이 부족하다는 데도 매일 두세번씩 샤워를 하고 지냈다.
크리스마스에는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원주민이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 했는데
그가 한달 동안 버는 돈은 우리가 하루동안 쓰는 돈에도 못미쳤다.
구구절절이 이야기를 해보자.
개토는 다리가 아파서 물 밖에서는 운동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기타 등등 몸이 약해서 차가운 물에는 들어가지도 못한다.
여름에도 수영장에 못들어가는 내가
그곳에서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습도가 높으니 기침도 안나고 몸을 움직이니 절로 기운이 났다.
정말 너무 행복했다.
천국이었다.
대체 이 사회에서 모든 일신의 안락은 대의를 저버린다.

나는 멍하니 그림을 그릴때가 가장 아무렇지도 않아서
나는 멍하니 그림이나 그리고 살면 좋겠다.
그림을 그리는 상태는 '무아지경'의 상태.
그 때가 젤 편하다.
그러니 또 그놈의 편한게 문제다.
'무아'의 상태야 말로 사회적 최악의 상태가 아닌가.
자기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사회적 관계들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죄악이 아닌가
먹고 살만해져서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먹고 살만해져서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아직 이 사회에서 죄악이다.

30대가 되면 사회와 타협하고 자신과 타협해서
반동이 된다고들 했을 때 나는 그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대체 어떻게 해야 반동이 되지 않을 수 있나?
나는 남태평양에 수영도 하러 가고 싶고
자동차도 없으면 못살겠고
그림이나 그리고 살면 좋겠구만.

그림에 가끔 반자본적 반가부장적 메시지나 얹으면서
그냥 적당히 살 수 있으면 좋겠구만.

그림도 그렇다.
기형도가 쓴 것처럼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형도와 달리
그 믿음을 따라갈 준비가 안 되어있다.
마치 자동차를 살 수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 믿음을 너무나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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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9 10:57 2004/12/29 10:57
오랫만에 좀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제목도 생소한 '투스카니의 태양'.
김상이 짐 캐리 나오는 영화래서 그냥 웃어나 볼까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한참 한참 지나도 짐 캐리가 나올 생각을 안한다.
여주인공이 이사를 하고 나니 옆방에서 매일 울어대는 변호사 목소리가
아무래도 짐 캐리 같아서 둘이 언제 만나려나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주인공이 이태리의 투스카니로 훌쩍 떠나버린다.

짐캐리가 언제 나올 것인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였으나
결국 짐캐리는 나오지 않고......

어쨌든 보는 동안 내내 이 영화는 여성 감독의 영화구나 싶었다.
일상에 대한 시선이 섬세하다.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따스한 시선을 갖고 있다.
뭐랄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원한다.

알고 보니 '개와 고양이의 진실'을 감독했던 오드리 웰스 감독의 영화였다.

영화는 한 여성의 일상을 담은 것임에도 전혀 잔잔하지 않고
상당히 강약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쩌다 한번씩 겪게 되는 스릴도 만나 볼 수 있다.

대체 볼 영화가 없다 생각될 때, 영화 본 뒤 기분이 좋고 싶을 때
'내 어머니의 여자친구(제목이 맞나?)처럼
이 영화도 볼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다.
별 다섯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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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6 10:35 2004/11/06 10:35

메아리

from 불만 2004/11/03 18:25
메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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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3 18:25 2004/11/03 18:25

다시 성매매특별법

from 불만 2004/11/03 17:42
하도 오래 공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아온 터라
지금까지 쓴 3개의 글이 모두
전혀 설득력없는 개인적 감정토로에 불과했다.

오늘도 비슷한 내용으로 비슷한 방식의 글쓰기가 되겠지만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성매매특별법'이 국가적 지원미흡 등 몇몇 문제는 있을지언정
당연히 시행되어야 할 금지법으로 이해되는 것이 여전히 옳지 않다고 생각되므로
대체 나스스로 정리가 될때까지 멈추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성매매특별법에 대해서 나는 성매매여성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듣고 지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성매매특별법이 아무리 포주와 성을 사는 남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법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노동권이라는 말에 하도들 격분하기에)을
국가가 통제하게 되는 상황을 낳게 된다.
포주야 다른 일 찾으면 되고, 성을 사던 남성들이야 다른 나라 가던지 그냥 안가면 그만이지만
성매매여성들은 당장 생존권의 위협을 받게 된다.
국가는 여러가지 자본주의적인 판단아래 적당한 통제와 지원의 제스처만 보이면
그만이지만
성매매여성들 중 다수의 개인들은 갈 곳 없이 더 열악한 환경에 던져지는 수 밖에 없다.
그녀들은 처음부터 갈 곳이 없어 그곳에 던져진 사람들이다.
지금이라고 딱히 갈 곳이 갑자기 생기나?
취업이 이렇게 어려운 한국에서?
정말 묻고 싶다. 대체 그들에게 어딜 가란 말인가?
우리가 그들에게 매달 월급을 줄 수 있나?
우리가 그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줄 수 있나?

나는 솔직히 여성주의자들이 그저 국가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성주의자들이 아무리 성매매에 대해서 격분한들
성매매여성들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생존권이 성매매 가능성 여부에 달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진짜 성매매여성들의 시선에서
그녀들을 위한 정책을 편다면
단순히 보여주기 식으로 금지법의 형태를 띈 법을 툭 던질 일이 아니다.
그녀들의 생존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성매매를 근절하려한다면
단계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집장촌을 국가에 등록하도록 해서 더이상의 집장촌을 허가하지 않고
포주들의 착취를 근절할 수 있도록 성매매여성들에게 맞는 노동법을 채택하고
사업장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교육을 실시하면서 성매매여성인구를 줄여가는 등
아주 조심스럽고 긴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사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내가 생각해볼 수 있는 한에서 예를 써봤다)

현재의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여성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하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에서의 국가의 시각은 여성주의자들의 것과 현격하게 다른
순결주의와 가족주의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조차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나?

솔직하게,
내가 생계를 위해
공장에서 일할지 몸을 팔지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일하는 시간과 받는 돈을 따져서 더 나은 조건을 선택할 것 같다.
현재 성매매여성들이 공장보다 나은 조건에서 일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떤 이에게는 성을 파는 것도 공장에서 일하는 것과 같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수 있고
그것이 노동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은 삶과 아주 무관한 것일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 여성에게 왜 성을 파는 것이 노동이어서는 안되는가?
왜 노동법의 보호를 받아서는 안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신은 '여성주의자인 나'의 이 선택에 돌을 던질 것인가?
가부장제 사회를 비판하고 이 선택 자체를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주장이 현재 존재하는 여성들의 삶을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해하는
아슬아슬한 줄 건너타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11/03 17:42 2004/11/03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