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잡기장
노조 회의와 뒷풀이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에 왔다.
"세상에서 젤 바쁜 사람"이라.. 후훗
내가 원해서였던걸까
그랬던 것 같다. 일이 많으면, 지쳐 버리면 이런 저런 외로움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사랑을 갈구하는 가장 멀리 돌아가는 방법이 바로 일에 미치는 거 같다.
어쩌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저녁을 먹다 문득 오늘도 난 혼자임을 새삼 느꼈다. 어제도 혼자였고, 내일도 혼자겠고..


어디까지가 내가 원한 것이었을까 아니 원한 것이 맞긴 하는지.

왜 난 혼자일까.
여럿이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라고, 차라리 혼자 있는게 편하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도 이제 약발도 안 먹힌다. 왜 난 외로운 걸까, 왜 외로워야 하는 걸까..
 "시스템에 의한 개인의 소외", 이것도 결국 시스템을 탓하는 거 아닐까. 시스템 이전에 외로움이 있는 거 아닐까. 그렇게 말하는 것도 결국 하나의 회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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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라인에서는 왜 편하게, 재밌게 말할 수 있는걸까. 누가 읽을지 모르니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해서일까. 어떤 맥락도 신경쓰지 않고, 이런 저런 쓸데없는 걱정 없이 하고 싶은 말만 해서 그런걸까. 직접 누군가를 만나면 얼마나 신경쓸게 많은지..

글 쓰기가 말하기보다 좋은 점은 "비동시성"이다. 말하기는 서로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반응에 대해 민감해지고, 여러 가지 고려하고, 판단할 것도 많다. 누구와, 어디서, 어떤 자리에서, 무슨 말의 앞과 뒤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말하기"는 사실 너무 신경쓸게 많다. 결국 일정한 "패턴"을 따르게 된다. 아니면 가만히 듣기만 하던가. (그나마 잘 알아들으면 다행이다) 그 패턴이란 재미난 이야기, 경험담, 컨텐츠에 대한 감상 등..

글이 쓰여질 때도 물론 그 때의 상황,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결부되지만, 결국 지나고 나면 그런 것들은 사라지고, 글은 언제나 새롭게 읽혀질 수 있다. 읽는 사람이 받아들이는거에 따라 결국 달라지는거니까.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분명 쓸 때의 그것과는 다른 글을 발견하게 된다.

온 라인 글쓰기는 더 좋다. 편집도 가능하고, 쓰면서 링크를 걸거나 이미지, 음악을 곁들이거나 할 수도 있고.. 블로그는 더 좋다. 이건 온전히 내 공간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끊김이나 간섭없이(완전히는 아니지만) 할 수 있으니까. 망가지고 싶으면 망가지고, 가벼워지고 싶으면 가벼워지고..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신경쓰지 않고 나불거리고, 앞뒤 흐름 가릴 것 없이 마구 쏟아낸 다음 나중에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 현실에서 복잡한 관계속에 얽혀 부자유스럽지만, 이곳, 블로그는 상대적으로 더 자유롭다. 물론 익숙해지는 시간은 필요했지만.

아마, 오프라인에서 나와 만난 사람, 분명한 실체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사람은 그 전과는 다르게 내 글이 읽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말을 비슷하게 한다 해도 .. 근데 그게 맞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여 러 사람에게 읽힌다는 사실을 알면서, 점점 더 재미있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기분 좋을때만 포스팅을 하거나, 억지로 기분 좋은 척하며 글을 쓰는 일이 잦아진다. 물론 그렇게 하면서 실제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허나, 종종, 가끔은.. 기분 나쁠 때의 내 자신은 또 하나의 창구를 잃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다고, 사람들은 이런 얘기 안 좋아할 거라고 미리 짐작하고 말을 안하다가, 혼자 중얼중얼거리거나, 괜히 일만 파고들거나.. 그러다 발견한 하나의 창구인 블로그.. 이제 여기에서도 "어두운 나"는 말할 수 없는가. 자유롭지 않은가.. 사실 아무도 내게 그러라고 하지 않았을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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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생각이 끊이지 않는 나. 이건 한의학적으로 보면 건강하지 않은 상태다. 오직 지금, 딱 필요한(원하는) 생각만, 필요한(원하는) 깊이로 하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겨두는게 좋을 건데,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스케치북으로.. 내 머리는 더 이상 메모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지저분한 암호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이런 내가 싫은 적도 있었고, 싫은 감정을 벗어나 건강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나중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감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 같아서 바꾸고 싶어했다. 안하던 짓을 더 많이 하고, 계속 변화를 주려하고, 어색한 낯선 상황에 계속 나를 던져보고.. 물론 온전히 나를 실어 던져 보낸건 아니겠지만.. 미리 짐작하지 않으려 애쓰고, 눈에 보이는대로만 믿으려 해보고.. 그런 내가 좋고, 느리지만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고 그래서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역시 그건 힘든 작업이다. 너무 쉬지 않고 한 쪽으로만 나가면 지치게 마련이니, 지금쯤 휴식이 필요한게 아닐까 싶다. 변화를 멈추기.. 하지만 사실 그게 가능한 것 같지도 않고.. 멈춰 있는 상태를 스스로 못 견뎌할 것 같다. 애초에 모든게 내 뜻대로 되는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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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생 아니랄까봐 늘 한박자씩 늦는다. 항상 부산하고, 바로 바로 반응하고, 감정 조절 잘 못하고.. 그러면서 많은 실수를 하고, 그때 그 순간에 정확히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감정이 가라앉거나 하면 상황을 더 정확히, 긍정적으로 보는 법을 찾아내기도 하고, 지레짐작이지만 다른 사람의 상황,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곤 한다. 하지만 뒤늦으면 소용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그때, 그 순간에 깨어있고 싶다. 뒤늦게 말고, 가장 이해심이 필요할때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고 싶다.

또 하나 원하는 것이 있다면 .. 좀 더 천천히, 느긋하게 살면서 내 "그릇"을 키우는 것. 컴퓨터의 메모리를 늘린다고 할까. 컴퓨터는 메모리가 부족하면 더 많이 두뇌CPU를 회전시키고, 더 느린 하드디스크에 쓰고 읽고를 해야한다. 내 스스로 내린 진단이 그거다. CPU는 어느 정도 쓸만하다. 하지만 메모리가 부족하다. 언젠간 이걸 포스팅하리. 컴퓨터가 인간을 모델로 해서 발전하면서 얼마나 인간, 사회와 비슷한 점이 많은지, 오히려 그걸 통해 현실, 인간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꺼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그릇"이라는게 삼국지류의 낡은 소설에서 나오는 그런 그릇은 아니다.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을 다 포용하기 위한, 쓸데 없이 큰 그릇 말고, 작은 흔들림에도 넘치고 쏟지 않기 위한 정도의, 지금 담아두고 있는 걸 좀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편안해질 수 있는 만큼의 크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 일, 믿음들을 비록 흔들릴지언정 쏟지 않을 수 있는 만큼의 그릇. 긴 흐름을 보고, 변화하는 양상을 보고 지금 당장의 현실, 특정한 반응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안정감..

그래서, 뒤늦지만 소중한 그 "이해"들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지금의 난..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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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런 청승을 오랫만에 떤다. 그냥.. 나중에 보면 또다시 부끄러워 할지 모르고, 몇달 후에 읽으면 다시 피식 웃을지 모르지만..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서기 위해 주머니를 비우고,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한, 쏟아냄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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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3 02:38 2006/11/03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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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nPlease 2006/11/03 04:01 URL EDIT REPLY
저도 말하는 건 온라인이 훨씬 편해요. 그래도 오프가 좋아요.^^
지각생 2006/11/03 04:08 URL EDIT REPLY
ㅎㅎ 역시 새벽불로거 스캔 :) 저도 오프가 좋아요.
지각생 2006/11/03 05:33 URL EDIT REPLY
참으로 재밌는 것은, 이렇게 한번 쏟아내고 나면 부끄러워서인지 확 달아오르더니 기분이 좋아진다는 겁니다. 자려다가 다시 보니 참 처져 있었군요 ㅋ 스캔이 덧글 안달았으면 비공개로 할까도 생각했삼 ㅎㅎ *^^*
ScanPlease 2006/11/03 09:25 URL EDIT REPLY
비공개로 못하게 하려고 덧글 재빨리 달았삼~ㅎㅎ
지각생 2006/11/03 11:50 URL EDIT REPLY
윽, 역시 그런 것이었군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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