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생의 봄

잡기장
최근 한 두달 동안 기록할 만한 일이 꽤나 있었지만 잘 쓰려는 욕심에 자꾸 미루고 좀 더 생각해보고 살 붙여서 쓰려다 보니 못 쓰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받기 위한 글이라도 쓰는게냐. 더 미루지 말고 지금 기분 좋은김에 써버리자.


꿈 꿔오던 것에 어느정도 근접한 공동 생활을 시작했다.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고 다같이 책임지는 공간을 늘 원했고, 서로 교류하며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보길 원했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이 주는 기대감과 동시에 져야 할 부담이 있을 건데, 나 같은 스타일에겐 단 둘이 오래 사는 것보단 여럿이서 바글바글 살다가 혼자 살다가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뭐 물론 둘이 살아보고 싶은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경험이 아직 없으니 모르지만. 여튼 빈집에서 지낸 한달이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 즐겁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곧 밴드 '다락'의 첫 녹음곡이 돌 테니 기대들 하시라. :)


2월 21일, 벌써 한달도 더 됐는데, 모 환경단체에 자활을 했던 인연으로 서버 관리 알바를 잠깐 했는데, 거기서 "그린 IT 그랜드 컨퍼런스"에 참가할 기회를 만들어 줬다. 사실 내가 글더듬이가 되서 가장 답답했던 것중 하나가 이건데, 소비자-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는 기업중심의 반쪽 "그린" 컨퍼런스의 한계가 안타까워 그냥 후기만이 아니라 뭔가 제대로 비판하는 글을 써보려다 못쓰고 시간만 보냈다. 막상 쓰려고 보니 그린 컴퓨팅, 전자폐기물 문제 등에 대해 공부를 좀 더 하고 고민을 더 해야 알맹이가 있는 글이 나오겠다 싶어 들여다보려니 좀 피곤하지 않은가. 뭐 누가 쪼는 것도 아니고 하니 더 안 쓰게 됐다 (사실은 후기를 바로 써 주기로 했던 것이지만 -_-)
아무래도 정보통신활동 워크샵이던 뭐던 여러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기회가 있다면 그때 한 주제로 제안해서 같이 얘기해보고 싶다. 그쯤되면 뭔가 억지로라도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어떻게 쓰던 이런 식이 되겠지. 지금 말해지고 있는 "그린 IT"는 어차피 다른 이유로라도 해야할 것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선점하려는 뻔한 술책이고, 진짜 "그린"을 위해서는 그정도론 안된다. 시민사회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예의 주시하고 소비자 차원에서 운동을 전개해가고 어쩌구저쩌구 ...


IT노조에서는 문화부 활동을 그만하게 됐다. 대신 지각생과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책부로 옮겼다. 작년 한해 IT노조가 내부적으로 특히 많이 힘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통신비밀보호법 개악과 같은 정보통신 이슈를 그 안에서 계속 얘기한 것과, 비정규IT노동자들이 취업과 업무 관련 정보를 주고 받는 "일터Q&A"게시판에 대한 외압에 대응한 것들로 인해 노조 내에서 정보통신정책 연구 뭐 그런 것들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더 많은 역할이 요구된 까닭이다. 스스로 뿌듯하기도 한데 워낙에 "정책" 이란 말에 부담이 느껴져서 걱정되기도 한다. IT노동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얘기를 노조 안팎으로 많이 하고 정보통신활동가들, 자유소프트웨어 커뮤니티들과 좀 더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으면 하는 바램.


좋은 공간들이 생기면서 그동안 꿈꿔오던 것들을 조금씩 실행으로 옮기고 있는데, 지난 주부터 시작한 위키 워크샵, 오늘 하고 온 "리눅스 설치의 날", 그리고 어제 두번째였던 "오픈 소스 개발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학습 모임 (아직 쌈박한 이름을 못 지었다)" 등이 그것이다. 물론 아직 어설프고 부끄럽고 하지만 할때마다 점점 피드백을 받아가며 앞으로를 위한 힌트들을 얻고 있다.
위키 워크샵은 요란하게 선전도 좀 하고 직접 전화도 막 돌리고 하면서 보니 뭔가 크게 될 것 같아서 어깨에 힘좀 들어갔었다. 나름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을 빼먹고 소홀히 해서 별로 깔끔하게 진행되진 못했다. 그래도 적지만 오랫만에 옛날에 같이 일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 함께 뭔가 했다는 것이나, 제법 골고루 - IT노조와 자유소프트웨어커뮤니티와 정보통신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일단 모였다는 것 자체로 의미를 삼으련다.
"오픈 소스.." 모임과 "리눅스.."도 사람은 생각보다 적게 왔는데, 그래도 나름 충실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위키워크샵 다음날은 약간 풀이 죽어 있기도 했는데 점점 회복되서 오늘은 지각생 스스로 생각해도 재밌게 잘 한 거 같어. 다음 주, 다음 달, 다음 해까지 계속 꾸준히만 할 수 있다면 아주 아주 즐겁고 신나는 만남들을 계속 만들어 갈 수 있을거다. 근데 역시 주말을 계속 이렇게 보내는 건 나를 너무 괴롭히는 거겠지? 다음 주까진 잡힌 일정이 계속 있는데 그 다음주쯤엔 자전거타고 서울 좀 벗어났다가 와야지! (근데 뭐 또 잡아놓고 까먹은 일정은 없나? -_-??)


또 하나의 큰일이라면, 친구의 소개로 좋은 의사를 만나 싸게 치과 진료를 받고 있다. 나중에 돈 좀 넉넉히 벌어두고 한꺼번에 치료해야지 돈이 많이 깨질거야 가면 치과 의사가 구박할 거야 등등 걱정만 하면서 계속 미뤄왔는데, 친구덕에 그리고 의사선상님의 은덕으로 드뎌 "거듭남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진료받아 보니 역시 참 견적이 많이 나온다. 없는 돈 빌려줄테니 치료 받으라는 권고와 한푼 없는 환자를 긍휼히 여겨 마음 써주는 선상님 덕에(블로그를 알려드렸거던 ^^*) 일단 시작을 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다. 계속 끙끙 앓고 무조건 버티기 모드로 일관하느라 신경 많이 쓰고 에너지 소모하고 그래서 뭐던 집중하기 어렵고 했는데 이젠 상당히 자유로와졌다.
스케일링받고, 충치 대부분을 치료하고 (신경치료할때 한번 마취가 잘 안되서 아파 뒈지는 줄 알았다 orz) 뿌리만 남은 이 뽑고, 염증들 제거하고 그러니 아주 살 것 같다. 깨끗해지고 입냄새도 확연히 줄어든 것 같아 자신감도 생긴다. 다만 한주에 두번 갈때도 있고 한번 가면 한시간 넘게 치료하는 강행군이라 좀 힘들긴 하다. 그래도 이 과정을 다 마치고 나면 에너지를 제대로 써가며 하고픈 것들을 더 몰입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에 즐겁다. 싸게 한다고 해도 역시 치과 진료비는 만만치 않은 것이라 돈 마련 위해 요즘 알바하느라 정신 없다.


흠 또 뭐가 있으려나. 쓰다보니 까먹었네.
여튼 요즘은 힘들긴 해도 대체로 즐거운 날들.
어느새 우리에게 깊숙히 자리잡은 고립장벽들을 허물고
"하찮은 것들을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그래서 어느새 눈치 못채고 새로운 계절을 맞듯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기를 바람. ㅋ 역시 그럴듯한 말을 만들고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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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01:55 2008/03/24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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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 2008/03/24 03:12 URL EDIT REPLY
무엇보다 치과 치료 받는거 너무너무 축하해!! 나도 그동안 지각생 보면서 다른건 다 완벽(??)한데 치아 때문에 너무 속상했거든.. 특히, 윗니에 난 덧니를 빼버리는건 어떨까 하는데... 왜냐면, 나는 대부분 사람들과 대화할때 입을 많이 봐(입모양을 봐야 훨씬 말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거든). 그래서 치아 라든가 입모양이라든가 사투리라든가 이런것에 아주 민감하지. 이왕 하게 된거 완벽한(?) 치료를 하길 바래. 내가 더 기분이 좋아진다...ㅎㅎ
지각생 2008/03/24 15:34 URL EDIT REPLY
안그래도 그 덧니를 빼고 싶긴 한데 겹쳐 있는 앞니가 흔들거려서 고민중. 그냥 그 덧니를 뽑을지 아니면 앞니를 뽑고 덧니를 그 자리로 밀지.
찬물 2008/04/03 16:13 URL EDIT REPLY
하하, 지각생, 이리저리 뺑뺑이 돌려서 미안하삼. 블로그에 립서비스도 해 주시고 감동이요. ^^ 글고 다음주까지 술은 절대 안됩니다. 오늘 일산은 한가로운 봄날. 다른 건 다 짱이신데 앞니,,, 헉. 다른 선생님들과도 얘기해봤는데 결국 수술을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을 못하고 있었소. ㅠㅠ 이 수술은 다행히 보험이 된다오.(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완전 허당은 아닌 듯 합니다) 자세한 건 다음에 또~
지각생 2008/04/05 13:42 URL EDIT REPLY
흐.. 술은 잘 참고 있습니다. 실은 막걸리 한모금 지음의 유도로 마시긴 했지만 ㅋㅋ 오늘 날씨 참 좋군요. 빈집에 놀러오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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